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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일요일

베드로후서 3:1-18 재림 준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재림 준비
베드로후서 3:1-18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3: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두 번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니 이것들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고, 

3:2 거룩한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한 말씀들과 너희의 사도들이 전한 주님 되신 구주의 계명을 기억나게 하려 한다. 

3:3 너희는 먼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마지막 때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신들의 정욕대로 행하고 조롱하며, 

3:4 말하기를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후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다." 할 것이다. 

3: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옛적부터 있었고 땅은 물에서 나와 물로 형성된 것과, 

3:6 그때 세상은 물이 넘쳐서 물로 망하였다는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 

3:7 그러나 지금의 하늘과 땅은 불사르기 위해 동일한 말씀으로 간수되어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된 것이다.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마라. 

3:9 약속의 주님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니시다. 오히려 너희를 위하여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3:10 그러나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때에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들이 드러날 것이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질 것이니,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여라. 그날에 하늘들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릴 것이다. 

3:13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주님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도록 힘써라. 

3:15 또한 우리 주님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겨라.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를 따라 이와 같이 너희에게 썼다. 

3:16 그가 모든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하여 말하였는데, 그 중에 어떤 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이것들을 억지로 해석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고 있다. 

3: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미 알고 있으니, 불의한 자들의 속임수에 이끌려 너희의 견고함을 잃지않도록 조심하여라. 

3:18 오직 우리 주님,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분을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분께 있을지어다. 아멘.


1. 예언기억

본문 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첫 번째 썼던 편지는 베드로전서이고 두 번째 쓴 편지는 오늘 본문인 베드로후서 입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목적은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곧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의 진실한 심령을 일깨워서 살려내고 하나님께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통한 예언의 말씀을 기억할 것

본문 2절에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라고했습니다. 예언을 기억하라고 했는데 첫째는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는 것과 둘째는 사도들을 통해서 예언한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기억해야할 것은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한 말씀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하여 많은 예언을 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서에 보면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고 했습니다. 다니엘7:13에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라고 했습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사야 11:1-4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공의로 심판하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또한 미가서 4:1-2에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고 했습니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들의 꼭대기에 임하여 굳게 설 것’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세상 나라들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 이외에도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한 것이 여러 선지서에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특별히 다니엘 2장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뜨인 돌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우상을 다 깨뜨리고 그 돌이 점점 커져 태산같아졌다가 천하에 가득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고 예언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수님의 재림, 하나님 나라 건설, 심판을 다 예언을 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말하고 예언대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하시고 세상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믿고 기억하고 나가야합니다.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할 것

두 번째로 사도들의 예언을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할 것을 많이 예언을 했습니다. 특별히 바울선생과 베드로 같은 분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서 많이 예언을 했고, 사도요한 또한 요한계시록에 통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마태, 마가, 누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과 말세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 우리들은 사도들이 예언한 말씀을 언제나 기억해서 그 예언한 대로 될 것을 믿어야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 세상 나라가 심판 받는다는 것, 영원한 성도의 나라가 건설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의 사도들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 세상나라 심판, 하나님 나라 건설에 대해 예언한 것을 언제나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반드시 될 것을 믿고 나가야합니다.


2. 재림 기롱(再臨 欺弄)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많이 나옴

본문 3절에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며”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알아야 될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많이 나오고 자기 정욕을 좇는 자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정욕을 좇아 행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인본주의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모든 사람들이 나가고 진리와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심판을 다 기롱한다 말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믿지 않고 그런 것들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는 다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이 말세에는 많이 나오고 또 교회 안에서도 많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잘못 해석하는 것도 기롱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수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또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 신학교 교수라고 하는 사람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고 정욕에 휩싸여 인간의 생각과 지혜대로 잘못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러한 자들이 본문 말씀처럼 말세에 많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재림을 기롱하고 성경의 예언을 기롱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알아야합니다.

본문 4절에,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신신학자들은 말씀처럼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창조를 믿기는 하지만 완전히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진화시켜서 지금의 모양을 갖추었다라고 믿는 유신진화론을 주장합니다. 또한 자연주의 신학도 자연의 모든 것을 하나님이 다 만들어서 됐다고 믿지만 그 중심에는 진화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목사들 가운데 많다는 것입니다.


3. 재림의 확실성

천지 창조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됨

본문 5절에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서 물로 성립됐다는 말씀은 창조할 때 윗물과 아랫물을 나누어서 창조한 것을 가리킵니다. ‘물로 성립됐다’는 뜻은 헬라어 ‘디 휘다토스’라는 말로서 물을 통과해서 성립됐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즉, ‘물에서 땅이 나왔다, 물을 통과해서 땅이 성립됐다’는 의미로 물과 땅이 섞여 있던 것을 하나님께서 윗물과 아랫물을 갈라놨고 물을 통과해서 위에 있는 물은 구름이 되고 아래에 있는 물은 바다가 됨을 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땅이 드러나게 창조하신 것을 이 사람들은 잊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을 외면한다는 것입니다.

‘땅이 물에서 나와서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이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물이 땅에 섞여있었지만 말씀으로 윗물은 위로 올라가고 아랫물은 아래로 모이고, 육지가 생기고 하늘에 구름이 생기고 바다가 생긴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권세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렇게 권세 있는 하나님 말씀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러 잊어버리게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물심판도 하나님 말씀으로 됨

본문 6절에,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라고 했습니다.
물이 넘침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은 노아의 홍수를 말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입니다. 말씀 한 마디면 이 세상을 다 물에 잠길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만능입니다. 그것을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신 것인데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나 땅에 비가 왔기에 이 세상 산들이 다 잠겼느냐고 반문하며 안 믿는 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들 가운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는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된 것이며 사도들의 예언대로 된 것이지만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것이 창조되었고, 노아의 홍수와 같은 심판도 말씀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이러한 것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 말씀을 믿지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다 믿습니다. 말씀으로 노아 홍수가 임한 것도 믿고 이것이 심판이라는 것도 믿습니다. 성경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불 심판이 임함

본문 7절에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늘과 땅은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마지막 날까지 보존된다고 하였습니다. 반드시 불 심판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에는 물심판이 있었지만 세상 마지막에는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초자연적인 불이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한 것과 같이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져 내려와서 멸망시킬 수 있고 여러 나라에서 만들어 놓은 핵무기들을 통해 이 세상을 심판 하실 수도 있지만 정확한 것은 불 심판은 반드시 임한다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핵무기가 제조되었고 부패한 인간들이 싸우다보면 언젠가는 터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 세상은 잿더미로 변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불 심판을 하실지 모르지만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을 기억해야합니다.


4. 재림의 시기와 형편

회개하여 멸망 받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본문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루가 천년 같다는 말씀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하루를 기다리는 것처럼 천년만큼이나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 같다는 것은 심판을 참으시길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금년이 주후 2000년이 되는 해인데 2000년 참았으니 며칠 참으신 것입니까? 이틀 참으신 것입니다. ‘재림한다, 재림한다 하면서 왜 재림 안 하느냐?’, ‘심판한다, 심판한다 해 놓고 왜 심판 안 하느냐?’ 이런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자들을 예수님께서 이틀을 참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것을 어떻게 하신다는 말씀입니까? 하루를 천년과 같이 참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기다리는 것을 천년 기다리는 것처럼 이렇게 기다리는 계십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하루를 열흘과 같이 기다리는 사람도 있고 하루를 한 달처럼 일 년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 기다리신다는 것은 천 년만큼 이때나 저때나 아침이나 낮이나 저녁이나 간절히 사모함으로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을 우리가 다 모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하기를 하루가 천년 같이 기다리시고, 또 불경건한 자를 심판하기를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주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끝이 있습니다. 내내 참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끝이 되면 심판의 불이 쏟아집니다. 연, 월, 일시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15에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라고 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
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정해 놨다고 했습니다. 그 년 월 일 시는 하나님께서 예정한 날짜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한 해, 예정한 달, 예정한 시간이 되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때가 반드시 옵니다.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

본문 9절에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는 게 분명합니다. 주의 약속은 더딘 것이 아니라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아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게 하시려고 이렇게 천년을 하루와 같이 참아준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5절에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오래 참아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까지 멸망하지 않고 이 구원에 이르게 됐습니다. 참아주지 않으시고 심판했다면 벌써 다 망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한 100년 전에 하나님이 심판했다면 우리는 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한 500년 전에 심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이 오래 참으면서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에 이른 줄을 알아야합니다. 그저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하나님은 심판하지 않고 가만히 놔둡니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인데 아주 잘못 나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고 그냥 두실까요? 당장에 벌을 줘서 심판하면 못된 짓 안 할 텐데 왜 그냥 두는 것일까요? 우리가 괜찮아서 그냥 두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고자 해도 좀 참아 주는 것입니다. ‘조금 있다하자, 조금 있다하자’하고 좀 참아주시는 것입니다. 잘못할 때 즉시 벌하신다면 벌 받아야 마땅하지만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지금도 참아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합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며 심판을 참고 계십니다.

심판은 반드시 임함

그러나 악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성경에 위반된 모든 일들, 믿는 일 안 하고 불신앙으로 나가는 일들, 또 교회 손해 주는 일들, 교역자에게 손해 주는 일들, 믿음을 떠나서 인본주의로 나가는 일들, 이 모든 것들은 100% 다 심판하십니다. 단지 심판하는데 조금 더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장 오늘 심판 해야겠지만 조금 기다렸다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회개하기를 기다리시고 또 하루 종일 회개하기를 기다리셔서 천년과 같이 기다리십니다.
그러다가 그 년 월 일 시가 오면 하나님께서 심판 하십니다. 그래서 심판 받을 일을 한 사람들의 심판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아무리 잘 될 것 같아도 절대 잘되지 못합니다. 자기가 하나님이라며 자기 이름으로 기도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자기가 재림주다, 감람나무다, 사도다, 천사가 함께한다 등등 여러 말로 사람을 속입니다.

김기동씨처럼 모든 병은 다 귀신 때문에 생긴 것이므로 귀신만 내쫓으면 모든 병이 다 낫는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재록씨 같은 사람은 천사를 자기가 움직인다 하면서 ‘자기 피는 새 피를 받아 죄가 없다’, ‘천사를 동원시킬 수 있다’, ‘자기가 짠물을 단물로 바꿀 수 있다’ 는 등 사람을 미혹시키는 온갖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는 것입니다. 지금은 사람을 속여도 결국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년 월 일 시에 가서는 반드시 심판 받기 때문에 양심을 똑바로 써야 됩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바로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을 어긴 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 뽑아내십니다. 가라지와 같이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적인 요소들을 다 뽑아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고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 의를 행한 그 의로운 자녀들만 하늘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심판은 정해 놓은 것입니다. 지금 신복음주의, 신 신학, 빈야드 운동 등 잘못된 것들이 많습니다. 특히 빈야드 운동이라는 것이 있는데 복음성가를 한참동안 열광적으로 부르다가 그 책임자가 나가서 손을 들면 사람들이 뒤로 넘어진다고 합니다. 뒤로 넘어지게되면 머리가 다칠 수 있으므로 머리 또 받쳐주는 사람이 있고 또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위해 넘어지면 담요를 갖고 나와 덮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넘어졌을 때 다른 세계로 간다고 합니다.

이상한 세계에 가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데 돼지 소리, 승냥이 소리, 개소리, 미치광이처럼 웃는 소리를 낸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신기하게 보이기 때문에 이런 것에 이끌려 많은 사람이 모이고 연보도 많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책임자가 다 재물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이 마귀의 장난인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 안에 별별 것들이 다 들어온 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심판하면 이런 것들은 다 없어지겠는데 하나님이 심판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참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연 월 일 시에 가서는 이것들을 심판해서 다 치우십니다. 성경에 탈선된 운동들은 전부 심판이 정해진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 탈선된 모든 행동들은 전부 하나님의 심판에 정해놓은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은 정해놓은 것입니다.
양심을 쓰지 않고 성경을 어기고 나가는 것들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주일 안 지키는 것, 십일조 안 드리는 것, 믿음 안 쓰고 믿음을 배반하는 것들을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또한 우상에 제사 하는 것, 우상의 제물 먹고 추도 예배하는 것 모두 다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주고 교역자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 하는데 방해하고 하나님의 진리운동에 협조하지 않는 것들을 전부 가차 없이 심판하십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함

본문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옵니다. 주의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이고 하나님이 심판하는 날인데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3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도적이 어떤 통지하고 옵니까?
예수님의 재림하는 날이 갑자기 도적과 같이 온다는 말입니다. 오늘이라도 올지 모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3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참 잘 표현된 말씀입니다. 잉태된 여자에게는 정해진 해산의 날짜가 있는데 해산의 고통이 갑자기 오는 것처럼 심판의 날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잉태된 여자가 해산할 생각을 안 하고 해산이 멀었다고 하면서 방심하고 길에 돌아다니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게 길에서 낳은 아기이름이 길동이인 것입니다. 또한 화장실에 가서 낳아서 보따리에 싸가지고 왔다고 해서 ‘보또리’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갑자기 오는 것입니다.

해산 고통이 임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갑자기 온다고 하셨는데 임산부들이 해산을 잘 할 수 있을까? 또 못 낳지는 않을까?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해산의 고통이 오면 아이를 낳습니다. 그리고 다시 여느 때처럼 사는 것입니다. 해산하기 전에는 어떻게 아이를 낳을지 많은 걱정을 하지만 낳으면 아이가 태어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평안하게 나가서 일하며 지내다가도 갑자기 예수님의 재림의 징조가 나타나 주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는데 세상이 다 뒤집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과 같이 갑자기 오고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이를 줄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미리 한 열흘 전에 통지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평안하다 든든하다 하다가 갑자기 해산 고통이 임해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으로 그렇게 믿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또 자던 성도가 다 부활해서 올라가고 또 살아남았던 성도가 변화돼서 올라가고 공중에서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힘으로 올라갑니다. 마치 자석이 잡아당기는 것처럼, 아니 그보다 몇 십 배, 몇 백 배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5. 재림 준비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

본문 11-13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온다고 했는데 그 날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은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할 날 준비는 거룩한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의로운 행실은 세마포라고 했습니다. 경건에 속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하는 날 사모하기를 신부가 신랑을 영접할 날을 사모하는 것과 같이 하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보면 열 처녀가 신랑을 영접하려고 나가 사모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예수님 재림도 이렇게 사모해야합니다.

의를 이루어 가는 생활

그런데 우리가 준비할 것 몇 가지가 있는데 본문 13절에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먼저 의를 준비해야합니다. 그 날에 의를 가지고 갑니다. 마태 13:41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할 때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어 교회를 넘어지게 하는 것, 불법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교회에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자라도록 가만히 두다가 마지막 날 곧 심판날에 모두 다 풀무불에 던져 넣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마태복음 13:43에 “그때 의인들은 자기 어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라고 했습니다. 의를 이룬 사람은 그 때 해와 같이 빛납니다. 의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나라에 가는 것은 돈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금이나 은, 보석을 가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또 무슨 명예 ․영광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의’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할 때 의를 이루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의를 이루어 간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다 뽑아버리십니다. 성경대로 되지 않은 교회 생활, 성경대로 되지 않은 교회운동들 모두 뽑아서 버리십니다. 교회 운동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신앙생활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교회 설립이 성경대로 되었는지 다 심판 하시고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이 있으면 다 뽑아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교회 생활하면서 의를 이루어 나간 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해와 같이 빛난다는 말입니다.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아도 진리의 말씀을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의의 말씀을 지켜나간 것들이 하늘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하늘나라 갈 때는 의를 가지고 갑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므나 비유가 있는데 한 므나씩 총 10명에게 다같이 나눠줬는데 한 사람은 한 므나 가지고 열 므나 남겼고 또 한 사람은 다섯 므나 남겼고 한 사람은 두 므나 남겼고 한 사람은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주인 앞에 갔습니다. 그 때 주인이 열 므나 남긴 자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해라.”고 했습니다. 다섯 므나 남긴 자에게는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해라.”고 하셨고 한 므나 남긴 자에게는 하나에 “한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고 하셨습니다. 고을이라 하면 광주군이면 광주군, 시흥군, 양주군, 남양주군 등, 이 세상에서 말씀하나 지키고 의를 하나 이루어 나간 것이 하늘나라 가면 한 군이고, 한 고을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의를 열 개 지키면 열 고을 권세이고, 다섯 개 지켰으면 다섯 고을 권세입니다.

우리는 교회 생활에 있어서 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의를 지키는 것은 말씀 지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연보해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 하는 것도 의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신학교 기숙사 짓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떡하든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하늘나라 가면 의가 해와 같이 빛난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고 믿는 일을 하고 또 사명을 다하고 하늘나라를 위해서 일 하고 물질을 바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야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쌓은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겁니다. 의가 얼마나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이고 의를 얼마나 이루어 나갔느냐가 문제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자라나야합니다. 거룩에서 거룩으로 계속 자라나야합니다. 그렇게 자라나서 올라가야합니다. 세속이 근처도 못 오게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섬기면서 바로 살아야합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준비가 잘 됐습니까? 열 처녀가 신랑 오기를 사모하면서 기름 준비했던 것처럼 사모하는 것과 기름 준비하는 것 둘 다 있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재림을 사모하고 기름 준비를 잘 하는 신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볼 것
본문 13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한 말씀은 여러 곳에 있는데, 이사야 65장에도 있고 또 요한계시록에도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 나라가새로워지는 것을 말한 데가 많습니다. 이사야 65:17절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보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했고 이전 하늘과 이전 것은 다 기억하지 않는다고 했고, 20절에서는 “거기는 수한이 차지 못하여 죽는 아이와 노인이 다시 없을 것이고 백세에 나서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라”라고 했으며, 25절에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은 이 세상을 뜻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고 해 놓고서는 뱀도 있고 사자도 있고 그 다음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포도농사도 하는 것은 이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새 하늘과 새 땅은 무엇이냐 하면, 이전 하늘과 이전 땅이 없어졌다는 것으로, 곧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은 다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이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의로운 세상으로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땅덩이
는 어떻게 됐을까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땅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고 풀어진다고 했는데, 죄악의 하늘과 죄악의 땅이 다 없어지고 다 떠나갔다는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세력들이 떠나가고 풀어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문 10절 말씀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땅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땅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땅은 하나님께서 창조한 물질인데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불심판이 임할 때 하늘에서 유황불이 쏟아져 내려와 이 세상이 다 타서 없어집니다. 그래도 땅은 그냥 남아 있습니다.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로 심판했지만 소돔 고모라 자리가 남아 있는 것을 통해 말세에 불과 유황불이 내려와서 심판할 것을 알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준비할 때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거룩한 생활, 또 경건, 의를 이루어나가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것을 다 떠나야 됩니다. 하나님과 의로운 일이라 하면 생명 내어 놓고 달려들어서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운동이 의로운 것입니다. 또 신학교 세우는 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또 하나님 일하는 것이 의로운 일입니다. 의를 이루어갈 때, 생명 내놓고 재산 아끼지 않고 연보도 해야 합니다. 의로운 일에 쓰는 것은 하늘나라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쌓아놓은 것은 남아있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의로운 일에 쓴 것은 영원히 의가 되어서 남아있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

점과 흠 없는 모습으로 기다릴 것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라고 했습니다. 주 앞에서 흠과 점 없이 생활해야합니다. 신부가 결혼식장에 나갈 때 얼굴에 새까맣게 먹칠을 했거나 어떤 흠과 점 있는 모습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신부의 얼굴에 뭐가 묻어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다 닦아내야 됩니다. 신부가 얼굴에 흠과 점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나가는 것처럼 우리도 흠과 점 없는 모습으로 신랑을
맞이해야겠습니다. 만일 닦지 않고 나갔을 때 신랑이 물어본다면 우리가 뭐라고 답변하겠습니까? 다 지워서 깨끗한 모습으로 나가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갈 때에는 흠 없이, 점 없이 떳떳한 얼굴로 하나님께 서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다 제거해서 주님 앞에 서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미혹 받지 말 것 

본문 17절에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어서 미혹이 많은데 미혹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힘써서 성경 아닌 것은 절대로 잘라내 버려야합니다.
성경이 아닌 것은 용납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들어오게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마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비성경적인 것이 교회에 들어오게 되면, 곧 마귀가 들어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어긋나는 것이 들어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미혹에 이끌려 떨어질까 삼가야겠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날 것

본문 18절에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아는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곧 점점 바른 지식, 성경을 바로 이해한 지식, 성경을 바로 배운 지식, 바로 깨달은 지식에서 자라 가야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하나님께만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4:1-23 안식일 분쟁과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안식일 분쟁과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로마서 14:1-23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5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7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10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11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12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13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14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15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19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20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21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22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23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 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

14:1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아들이고, 그의 의심하는 것을 비판하지 마라. 

14:2 어떤 이는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으나,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 

14: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마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14: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거나 넘어지거나 하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달려 있다. 주께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있으니, 그가 세우심을 받을 것이다. 

14:5 어떤 이는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 각 사람은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져라. 

14:6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때문이다. 먹지 않는 자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않으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14:7 우리 중에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14:8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이는 죽은 자와 산 자의 주님이 되시려는 것이다. 

14:10 그런데 어찌하여 너는 너의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너의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니, 

14:11 기록되기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14:12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의 일을 하나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것이다. 

14:13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서로 판단하지 말자. 걸림돌이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않기로 결심하여라. 

14:14 내가 주 예수님 안에서 알고 확신하건대, 무엇이든지 그 자체로 속된 것이 없으나, 다만 어떤 것을 속되다고 여기는 그 사람에게만 속된 것이다. 

14:15 만일 음식 때문에 너의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너는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어 주신 그 사람을 너의 음식으로 망하게 하지마라.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기쁨이다. 

14:18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는다. 

14:19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자. 

14:20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이 무너지게 하지 마라. 모든 것이 다 깨끗하나,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며 먹는 그 사람에게는 악하다. 

14:21 고기도 먹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지 말며, 네 형제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14:22 네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간직하여라.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으로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14:23 의심하며 먹는 자는 이미 정죄를 받았으니, 이는 믿음으로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모든 것이 죄이다.


1. 성도의 주인인 하나님께 권능이 있음

믿음이 연약한 자를 비판하지 말라

본문 14: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연약한 사람을 비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먹지만 어떤 사람은 성경에 위반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양심에 거리낍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가 잘 깨닫지 못하여 의심하고 있는 것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는 쪽발 갈라지지 않은 짐승의 고기나 새김질하지 않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비늘 없는 고기를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소나 양같이 쪽발 갈라진 고기만 먹었습니다. 낙타나 사반이나 통발로 된 짐승의 고기는 먹지 않았습니다. 돼지는 쪽발이지만 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구약시대에는 먹지 않았습니다. 또 비늘 없는 물고기를 구약시대에는 먹지 말라고 했으므로 안 먹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시대에 와서는 그것을 전부 해제시켜 주었습니다. 의문과 제도에서 해방시켜 놓았습니다. 십자가로 다 도말했습니다. 즉 구약의 진리는 우리가 그대로 지키지만 외부적인 의식은 신약시대에 와서는 다 해방되었습니다. 또 할례문제도 그렇습니다. 할례도 신약시대에는 안받아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의 의문과 의식은 다 해방시켜 놓았으니까 구약시대에 먹지 말라고 한 것들은 다 먹어도 된다고 하며 먹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구약시대에 내려오던 습관이 있어서 먹으려고 하니까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돼지고기는 늘 먹지 않았었는데 먹으려니까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또 십자가로 도말하여 다 해방시켰다는 것이 믿음이 어리므로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안 먹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서로 분쟁이 생긴 것입니다.

세우시는 권능의 하나님께 맡기라

본문 4절에,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주님의 하인인데 주님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고 되물으십니다.
넘어지는 것이나 섰는 것이나 다 그 주인에게 있다고 하면서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라고 했는데, 이는 그 종들을 세울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가만히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너는 네 믿음이나 잘 지키고 남을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세워주시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2. 안식일 분쟁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진리를 확정하라

본문 5절에,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라고 했는데, 여기의 ‘이 날’이 어느 날입니까? ‘이 날’은 ‘주일날’을 말하고, ‘저 날’은 ‘안식일’입니다. 

그 때에 안식일 문제 때문에 약간의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갑자기 넘어오니까 제도가 달라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먹지 않던 음식을 신약시대에는 먹어도 되는데, 여전히 그것을 먹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켰었는데, 신약시대에는 주일날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사람이 있고, 여전히 ‘토요일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서로 ‘이 날이 낫다’, ‘저 날이 낫다’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다 같다! 날은 다 같은 날인데 구별할 것이 뭐 있느냐?’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 낫다고 했습니까? ‘이 날’이 낫습니다.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는 것이 옳습니다.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고 하는 건, 주일날 지키는 것을 확정해놓아야 하는데, 안식일 지키는 사람은 안식일 지키고 주일날 지키는 사람은 주일날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진리가 있는데 그 옳은 진리를 찾아서 확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 문제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음식 문제는 진리 문제가 아닙니다. 구약시대에 제한했던 음식은 먹어도 괜찮고 안 먹어도 괜찮은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 문제는 진리 문제입니다. ‘토요일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 옳으냐?’, ‘주일날 지키는 것이 옳으냐?’, ‘아무 날이고 하루 정해서 지키는 것이 옳으냐?’에 관한 답에 대한 것은 진리 문제인데, 그런 것은 진리에 맞게 확정해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는 이유

옳은 진리를 바로 찾아서 확정하는 것이 옳은데, 왜 그걸 방황하고 변론하느냔 말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안식일을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다. 왜냐하면, 신약 시대에는 성경에 다른 날을 정하였다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4절에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라고 했고, 히브리서 4장 7절에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대해서 논하다가 7절에서는 ‘한 날’, 다시 다른 날을 정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7장 18절에, “전엣 계명이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연약하며 무익하므로 폐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다른 날을 하나 정해서 이를 지키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구약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고 달리 정해주신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옳습니다. 

주일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이유는 주일날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또한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보면 주일날에 성부께서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강림하신 오순절이 주일날입니다. 오순절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부터 49일 째 되는 날입니다. 유월절에서부터 50일이 되는 날이 오순절인데, 예수님은 유월절 다음날 살아나셨습니다. 유월절 전날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유월절 다음날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주일날은 성자께서 부활하신 날이고, 성부께서 계시를 주신 날이고,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합동해서 은혜 주시는 날이 주일날입니다. 

또한 초대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주일날을 지켰습니다. 바울이 안식후 첫 날, 떡을 떼며 밤새도록 강론하지 않았습니까? 사도행전 20장 7절을 보면,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주일날 밤새도록 예배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6장 2절에,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사도들이 주일날을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안식일을 토요일 날 지킬 것이 아니고, 주일날에 지키는 것이 성경에 옳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안식일을 토요일에 지키는 것이 옳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날이 옳다는 사람, 토요일이 옳다는 사람, 어떤 사람은 아무 날이나 하루 지키면 된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자기 마음에 확정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일날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것을 확정해야 합니다. 진리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바른 진리를 찾아서 확정해야 됩니다. 거기에 대해서 의심하면 안 됩니다. 옳은 진리를 찾아서 확정하고 나가면서 그 진리를 세워나가야 됩니다. 그 진리를 따라가야 됩니다. 진리를 반대하는 세력과 싸워야 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며 나아가야 됩니다. 확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옳은 진리임에도 불구하고 확정하지 못하고 따라가지 아니하면 무슨 확정이 되겠습니까? 옳은 진리면 옳다는 걸 확실히 깨달아 확정하고, 그 말씀대로 힘써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3.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

본문 6, 7절에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살지 말고 주를 위하여 살고, 자기를 위하여 죽지 말고 주를 위하여 죽고, 자기 것으로 삼아 놓지 말고 주님의 것으로 삼아 놓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자기 것을 다 내 놓으라

그러려면 내 놓아야 합니다. 제 것을 다 내놓아야 합니다. 자기 것을 다 내놓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내놓고 죽어야겠다는 생각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라는 생각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내놓아야 그리스도의 것을 갖다 입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어 놓으십시오.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려면 내놓아야 합니다. 예수의 옷을 입으려면 내놓아야 입지, 내놓지 않으면 입지 못합니다. 

다 내놓았습니까? 목숨 다 내놓아야 합니다. 목숨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하여 죽어도 좋습니다. 오늘 죽어도 좋고 내일 죽어도 좋고, 언제나 주를 위해서 끌려가 죽어도 좋습니다. 주의 것입니다. 자신의 목숨 아닙니다. 내 목숨은 내 목숨이 아니고 주의 목숨이니까, 주를 위해야 합니다. 살려주시면 살고 죽이면 죽고, 고통당하게 되면 고통당하고, 끌려가면 끌려가고, 고생 당하면 고생 당할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히 살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내어 놓아야 합니다.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믿는 것이고 내놓는 것이 그리스도를 입는 비결입니다. 내놓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합니다. 내놓고 주를 위하여 고난 받으려면 고난 받고, 주님이 살리시면 살고, 죽이시면 죽고, 재산도 다 내놓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내놓으라면 다 아낌없이 내놓을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마음으로 다 내놓고 살아야 하고 언제든지 내놓으라면 “예”하고 내놓아야 바른 신앙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제 것이 아닙니다. 자녀도 자기 자녀가 아니라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자기 목숨도 다 하나님 것입니다. 모두 내놓으십시오. 내놓는 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안 내놓으면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조금 내놓으면 신앙이 조금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멀었고, 예수의 옷을 조금 밖에 못 입습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환란이 들어오면 통과 못합니다. 지금 못 내놓으면 환난 때도 못 내놓는다는 말입니다. 지금 마음으로 내놓지 못하면 이다음에 내놓아야 될 때가 되어서도 내놓지 못합니다. 그렇게 되면 실패입니다. 내놓지 못하는 건 기름 준비한 것이 아닙니다. 빈 병만 가지고 다니는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습니다.
내놓아야만 기름 준비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내놓아야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자기가 계획하는 것, ‘내가 하겠다’는 생각도 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내가 하겠다는 것’을 다 내놓고 나가야 합니다. 찬송가에도 자기가 계획하는 것 다 내놓고 자기가 애쓰던 것 다 내놓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자기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내놓고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고, 몸 다 내놓고 생명도 다 내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놓았다가 도로 찾아갔다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내놓아야 합니다. 물론 교역자는 모두 내놓아야 합니다. 내놓은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지라면 지고, 주님이 살라면 살고, 저 시골 농촌 산간벽지에 가서 개척교회 하라면 하고, 어두운 데 가라면 가고, 도시에 가라면 가고, 농촌에 가라면 가고, 가서 고생 당하라면 고생 당하고, 죽으라면 죽고, 굶으라면 굶으면서 다 내놓아야 합니다. 

목사는 ‘자’자를 3개 가지고 나가는데, ‘자’자 3개가 무엇입니까?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욕할 때 ‘왜 욕하나?’하지 말고 욕하면 먹고 때리면 맞자 하고 죽이면 죽자 해야 합니다. 이렇게 ‘자’자 3개 가지고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다 내 놓고 순종하면 예수님을 따라가라 다 내놓고 순종하고 따라가야 하겠는데, 그러나 우리가 아직도 내놓지 않았기 때문에 안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지 못하면 내놓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실 때에, 아브라함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야 ‘내놓는 것’입니다. 내놓은 다음에야 말씀을 따라간 것입니다. 

내놓지 않고 아무리 따라간다고 해도 못 따라갑니다. 주께서 ‘나를 따라오라’고 하시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 16 : 25)”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육신의 목숨을 살리고자 하면 영적 목숨을 잃을 것이고 누구든지 주를 위해서 육신의 목숨을 내놓으면 영적 목숨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주를 위해 하라

자, 이제 내놓으십시오. 내놓지 않으면 신앙이 자라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누구를 위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주를 위해서 살자’고 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누구를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까? ‘주를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다. 사업하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돈 버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학교 다니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고, 세상 일하는 것도 주를 위해서 하는 등 결과가 직접 하나님께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주를 위하여 교회의 교역자들은 다 내놓아야 합니다. 마음으로 보따리 싸놓아야 합니다. 보따리 다 싸놓고 있다가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이리 가라 하시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좋은 것만 하겠다는 것은 신앙이 아니고 이기주의입니다.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주님께서 죽으라고 하실 때는 죽어야 합니다. 그때에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순교 당할 때가 왔는데 죽지 아니하고 살아서 즐거워하면 그것이 죽는 것 보다 못합니다.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 것처럼 사람은 죽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아예 목숨을 다 내놓고, 이제는 사는 것도 자기 위해 살지 말고, 사업도 자기 사업을 다 내놓고 주님의 사업으로 만들고, 주를 위해서 살다가 주를 위해서 바치고, 주님의 일에 봉사하다가 주님이 죽어라 하면 죽는 것을 순종해야 합니다.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생 동안 예수 믿다가 죽을 때 잘 죽는 것이 좋은 것인데, 이제부터 결심을 합시다.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하겠는데, 왜 자기가 오랫동안 예수 믿어도 예수의 옷을 입지 못하는가, 생각해보십시오. 내놓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지 못했으니 예수의 옷을 입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 내놓고 ‘주를 위해서 살자’, ‘주를 위해서 죽자’, ‘주를 위해서 바치자’, ‘주를 위해서 희생하자’ 하고 끌려가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죽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가 없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사람, 자기를 위해 죽는 사람은 그리스도 바깥에 있는 사람입니다. 다 내놓고 주님만 따라가는 신앙, 죽기까지 따라가는 신앙을 우리가 가져야 하겠습니다.

4. 형제의 구원에 손해주지 말라

이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다 직고합니다. 우리 행한 대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고 직고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네 형제를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은 형제에게 손해 주지 말고 상처 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행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피 흘려 죽은 형제에게 조금이라도 손해 주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살린 그 형제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도와줘야지, 조금이라도 손해를 주면 안됩니다. 

본문 17, 18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의 나라가 아니고,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사람의 상태입니다.

예수를 바로 믿으면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고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나라가 칭찬해주는 것이 믿음의 상급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사람이 칭찬해주는 사람이 바로 믿는 사람입니다. 사람 앞에 욕먹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바로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본문 19, 20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상의 제물은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28절과 고린도전서 10장 28절에 그것은 별도로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우상의 제물이 아닌 다른 음식인데, ‘다른 건 다 정하지만 사람이 거리끼게 먹으면 죄’라는 것입니다. 

5.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하라

본문 22절에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는 것은 자기가 옳다고 깨달은 진리를 그대로 가지고 지키면서 그 가운데서 살라는 것입니다. 네가 옳다고 깨달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가 양보해서 네 양심에 가책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 죄 짓는 일입니다.

본문 23절에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죄입니다. 자기 양심을 쓰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야 하는데, 믿음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믿음이란 것은 말씀 순종인데, 모든 것을 성경 말씀 그대로 좇아서 해야 합니다.

로마서 13:13-14 재림 준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재림 준비
로마서 13:13-14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3: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를 멀리하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라.

1.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

본문 13절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운동에 취하고, 노라리에 취하고, 술에 취하는 것 등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 취하는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즉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취하는 생활을 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4-36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면 그날이 덫과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덫은 새 잡는 그물과 같은 것입니다. 덫을 쳐 놓으면 새가 멀리서 날아오다가 보이지 않으므로 그물에 걸립니다. 그러면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그물이 멀리서는 안보이고 가까이 가야만 보입니다. 어떤 새는 가까이 갔다가 그물을 보고 싹 돌아섭니다. 앞으로 환난이 올 때도 이와 같습니다. 깨어있어 준비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아니하며,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면서, 매일매일 환난을 통과할 준비를 하는 성도는 앞으로 환난이 올 때에 갑자기 닥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어느 날에 환난이 갑자기 닥치게 되면 그때에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맵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있는 성도에게는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합니다. 그 때에는 거기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탕함과 그 무엇에 취하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

그 다음에는 음란과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은 남녀 이성 간에 짓는 성적 죄입니다. 음란한 마음을 품지 말고, 또 음란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남녀 이성간의 성적인 죄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음란과 호색하는데 빠지면 믿는 일이 다 틀어집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더러운 옷으로, 더러운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말세에는 노아,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음란죄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노아시대나 소돔, 고모라 시대는
음란죄가 가득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
그 다음에는 쟁투과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쟁투와 시기는 싸우는 것입니다. 시기하고 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싸웁니까? 더 많이 먹으려고 싸우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고, 낮아지지 않으려고 싸우고, 멸시 받지 않으려고 싸우고, 또 뭘 좀 얻어 보려고 서로 싸우고, 권세를 잡으려고 싸웁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왜 싸웁니까? 서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싸웁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대접 안 한다고 싸우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자기를 멸시한다고 싸웁니다. 또 그 다음에는 왜 싸웁니까? 자기 마음대로 안 되어서 싸웁니다. 그러면 싸우면 자기 마음대로 잘 되겠습니까? 싸우면 더 안 됩니다. 일이 점점 더 벌어집니다. 싸우지 않고 잘되는 법은 야고보 4장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좋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싸움만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싸우는 바람에 일이 다 틀어집니다. 싸운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다툰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부린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살인하며 시기해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공연히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얻는다고 했습니까?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법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는 것이 잘 구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구하여야 하나님이 잘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은 구하지 아니하고 싸우려고 하고, 다투려고 하고, 빼앗으려고 하고, 대접 받으려고만 합니다. 싸운다고 해서 절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면 됩니다. 누가 나에게 멸시와 천대를 하며, 손해를 주더라도 싸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만들어지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어디에 맡겼는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다 빼앗아 가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안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고도 빼앗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없던 것도 다 갖다 주십니다. 빼앗아 갔어도 하나님의 형상만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더 갖다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서서 자기를 만들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니 내가 무엇을 주어야 되겠다”하시며 도로 갖다 주십니다. 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백배나 하나님이 더 많이 갖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공연히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마귀에 속는 일입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점점 더 오그랑망태기가 되는 것입니다. 즉 점점 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와 다툼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된다고 시기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만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더 잘 되게 해주시는데,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 나가지 않고 시기만 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자기가 만들어진것 만큼 하나님은 주십니다. 자기가 만들어 지려고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싸우려고 하며, 원망,불평하면 하나님께서 더 안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무엇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또 싸워서 빼앗아 오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라는 말입니다. 즉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또 겉옷을 취하고자 하면 속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리를 끌고 가면 “사람 멸시한다”고 하며 싸우지 말고, 십리까지 가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면 영의 사람으로 만들어 집니다. 또 하나님이 몇 백배 더 좋은 것으로 갖다 주십니다. 마가복음 10:29-30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백 배나 더 받습니다. 말씀을 지키느라고 다 희생하고 내놓았지만,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몇 백 배나 더 좋은 것이 온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잘 지키면 어머니도 백 배나 더 좋은 어머니로 받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심을철 목사님의 어머니가 와서 “네가 신사참배하고 나오면 내가 예수 믿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심을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계시다가 8.15 광복으로 인해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에 심을철 목사님이 어머니에게 물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그 때에 제가 신사참배 하고 나왔으면 정말 예수 믿으시려고 하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믿기는 뭘 믿냐?, 너 나오게 하려고 했던 것이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에 심을철 목사님이 말씀을 어기고 신사참배를 하고 나왔다면 다 실패 했을텐데,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 나왔으므로 그 어머니는 “네가 감옥에서 나온 것을 보니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구나”하며 예수를 잘 믿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우상이나 섬기던 어머니였었는데 지금은 백배나 더 좋은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며, 자기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백배나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자기가 붙들려고 하면 안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도 자기가 붙들려고 하고, 자기가 바로 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믿는 일을 잘하며 그리스도의 형상만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일어나서 국가를 잡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만 잘 믿고, 국민으로서 자기 의무만 잘 감당하면 국가는 하나님이 잘 되게 해주십니다. 정치 운동을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바른 사람이 되고,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 해주십니다. 교
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영이 먼저 살고,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고, 자기가 바로 되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바로 됩니다.

2. 예수의 옷을 입는 자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자

본문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두움의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예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옷은 빛의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빛의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볼 때에 벌써 예수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옷을 날마다 입어 나가야 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즉 그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자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깨끗케 해나가는 자

예수의 옷을 입어 나가는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깨끗에서 깨끗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빛도 더 밝은 빛이 있습니다. 등잔불 보다 촛불이 밝고, 촛불보다 전기불이 밝고, 전기불보다 태양 빛이 더 밝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어 나가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좀더 능력을 입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점점 능력이 커져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영이 자라나는 자

그리스도의 감동과 역사, 생명력이 점점 커나가야 하며, 우리의 영이 점점 자라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점점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것을 하는 자

또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모든 것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자(의와 평강과 희락)

항상 기뻐하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즉 의와 평강과 희락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말씀을 죽기까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

또 말씀을 죽기까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

예수님의 옷을 입으려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여야 예수님의 옷을 입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날마다 참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 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 만큼 고난이 오고, 인내하는 것 만큼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하느라고 수고가 많지만 고난을 통과할 때에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쁨으로 통과할 수 없는 일이 닥쳤는데, 기쁨으로 통과하였습니다. 그것이 또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이며, 신앙이 자라난 것입니다.

평강으로 통과할 수 없는 사건인데 평강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러면 평강이 좀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수 없는 환경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며 이겨나갔으면, 그리스도의 옷이 입어진 것입니다. 깨끗해 질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면 깨끗이 좀 자라난 것입니다. 거룩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인데 그것을 이기고 거룩을 지켰습니다. 그러면 또 좀 자라난 것입니다.

요셉이 정절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인데 거기서 시험을 이기고 깨끗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깨끗이 자라난 것이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무 시험없이, 온상의 풀과 같이 가만히 있어도 깨끗한 것이 무슨 깨끗입니까? 여러 가지 연단 속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자꾸 이루어 나가면서 자라나야 그것이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환난을 이기며 올라가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거룩으로, 깨끗으로, 의로, 능력으로 많은 것을 정복해서 올라오는 것이며, 많은 것을 대적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저 “성령이여 오시옵소서”한다고 해서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말씀을 지킬 때에 능력이 생깁니다. 즉 말씀을 지키기 힘들 때에 말씀을 지키면 그 때에 능력이 생기고, 또 말씀을 지키기 힘들 때에 말씀을 지키면 또 능력이 생깁니다. 환난은 인내, 인내는 연단, 연단에서 능력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옷이 입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을 수 없는데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자

또 사랑하지 못할 때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자라납니다. 자기하고 친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백년간 사랑하고 죽어도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사랑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는 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자비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참고, 용서하는 것이 자라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는 자

또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고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데는 시일이 걸립니다.

말씀을 따라가는데 연조가 걸려야 하고, 끊어 버리는데 연조가 걸려야 합니다. 많은 기일이 걸려야 합니다. 즉 사랑하는데 많은 기간, 거룩을 지키고 깨끗을 지키는데 많은 기간, 또 불쌍히 여기는데 많은 기간이 걸려야 자라납니다. 많은 기간을 거쳐서 힘을 쓸 수 없는데 힘을 쓴단 말입니다. 새벽기도 나갈 수 없는데 새벽기도 나가며, 봉사할 수 없는데 봉사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조금씩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두움의 옷을 벗어 버리고 빛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빛의 옷을 입을 때에 어두움의 옷을 벗고 입어야지, 벗지 않고 그 위에 입으려고 하면 더러운 것이 다 묻어납니다. 그러므로 빛의 옷을 입으려면 어두움의 옷을 벗고 오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놓아두고 빛이 오라고 하면 안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진 것만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자기 것을 내어 놓은 것만큼 하나님의 것이 옵니다. 즉 자기 것을 포기한 것만큼 하나님의 것이 와서 머무릅니다. 그러므로 자기 것을 버려야 그리스도의 것이 옵니다. 버리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내 것을 내 놓은 것만큼 옵니다. 어두움의 것을 벗어 버려야 빛이 옵니다. 안 벗어버리면 빛이 어떻게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은 다 내 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를 힘써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