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9일 목요일

로마서 13:13-14 재림 준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재림 준비
로마서 13:13-14

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13:13 낮에 행동하듯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과, 다툼과 시기를 멀리하고, 

13: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마라.

1. 주의 재림을 준비하라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

본문 13절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운동에 취하고, 노라리에 취하고, 술에 취하는 것 등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세상에 취하는 생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지 못하는 생활입니다. 즉 빛의 갑옷을 입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취하는 생활을 하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4-36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하였습니다.

“스스로 조심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면 그날이 덫과 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덫은 새 잡는 그물과 같은 것입니다. 덫을 쳐 놓으면 새가 멀리서 날아오다가 보이지 않으므로 그물에 걸립니다. 그러면 다시 나오지 못합니다. 그물이 멀리서는 안보이고 가까이 가야만 보입니다. 어떤 새는 가까이 갔다가 그물을 보고 싹 돌아섭니다. 앞으로 환난이 올 때도 이와 같습니다. 깨어있어 준비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아니하며,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면서, 매일매일 환난을 통과할 준비를 하는 성도는 앞으로 환난이 올 때에 갑자기 닥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어느 날에 환난이 갑자기 닥치게 되면 그때에 감당하지 못하고 쩔쩔맵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준비하지 않고 있는 성도에게는 그날이 덫과 같이 임합니다. 그 때에는 거기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탕함과 그 무엇에 취하는 생활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

그 다음에는 음란과 호색하지 말아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은 남녀 이성 간에 짓는 성적 죄입니다. 음란한 마음을 품지 말고, 또 음란한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남녀 이성간의 성적인 죄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조심해야 됩니다. 음란과 호색하는데 빠지면 믿는 일이 다 틀어집니다. 더군다나 그것은 더러운 옷으로, 더러운 옷을 입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말세에는 노아, 소돔, 고모라 시대와 같이 음란죄가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노아시대나 소돔, 고모라 시대는
음란죄가 가득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망했습니다.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
그 다음에는 쟁투과 시기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쟁투와 시기는 싸우는 것입니다. 시기하고 싸운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싸웁니까? 더 많이 먹으려고 싸우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싸우고, 낮아지지 않으려고 싸우고, 멸시 받지 않으려고 싸우고, 또 뭘 좀 얻어 보려고 서로 싸우고, 권세를 잡으려고 싸웁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왜 싸웁니까? 서로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싸웁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자기 대접 안 한다고 싸우고,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자기를 멸시한다고 싸웁니다. 또 그 다음에는 왜 싸웁니까? 자기 마음대로 안 되어서 싸웁니다. 그러면 싸우면 자기 마음대로 잘 되겠습니까? 싸우면 더 안 됩니다. 일이 점점 더 벌어집니다. 싸우지 않고 잘되는 법은 야고보 4장에 있습니다. 

야고보서 4:1-3에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좋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괜히 쓸데없는 싸움만 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싸우는 바람에 일이 다 틀어집니다. 싸운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다툰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욕심을 부린다고 얻는 것이 아니고, 살인하며 시기해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공연히 다투고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얻는다고 했습니까? 너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잘되는 법은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구하는 것이 잘 구하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구하여야 하나님이 잘되게 만들어 주십니다. 이것은 구하지 아니하고 싸우려고 하고, 다투려고 하고, 빼앗으려고 하고, 대접 받으려고만 합니다. 싸운다고 해서 절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하면 됩니다. 누가 나에게 멸시와 천대를 하며, 손해를 주더라도 싸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만들어지면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어디에 맡겼는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에게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다 빼앗아 가시고,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이루어진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이 안 주십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고도 빼앗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하나님께서 없던 것도 다 갖다 주십니다. 빼앗아 갔어도 하나님의 형상만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더 갖다 주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사람도 다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로서서 자기를 만들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이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지니 내가 무엇을 주어야 되겠다”하시며 도로 갖다 주십니다. 전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백배나 하나님이 더 많이 갖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공연히 싸우고, 다투고, 시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마귀에 속는 일입니다. 마귀에게 속으면 점점 더 오그랑망태기가 되는 것입니다. 즉 점점 더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기와 다툼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된다고 시기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만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더 잘 되게 해주시는데, 그리스도의 형상은 이루어 나가지 않고 시기만 하고 나가는데 하나님이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자기가 만들어진것 만큼 하나님은 주십니다. 자기가 만들어 지려고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싸우려고 하며, 원망,불평하면 하나님께서 더 안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무엇을 붙잡으려고 하지 말고, 또 싸워서 빼앗아 오려고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라는 말입니다. 즉 왼뺨을 치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또 겉옷을 취하고자 하면 속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리를 끌고 가면 “사람 멸시한다”고 하며 싸우지 말고, 십리까지 가면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면 영의 사람으로 만들어 집니다. 또 하나님이 몇 백배 더 좋은 것으로 갖다 주십니다. 마가복음 10:29-30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린 자는 백 배나 더 받습니다. 말씀을 지키느라고 다 희생하고 내놓았지만,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면 몇 백 배나 더 좋은 것이 온다는 말입니다.

말씀을 잘 지키면 어머니도 백 배나 더 좋은 어머니로 받습니다. 심을철 목사님이 신사참배 문제로 감옥에 갇혔을 때에 심을철 목사님의 어머니가 와서 “네가 신사참배하고 나오면 내가 예수 믿겠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심을철 목사님은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계시다가 8.15 광복으로 인해서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에 심을철 목사님이 어머니에게 물으셨다고 합니다. “어머니 그 때에 제가 신사참배 하고 나왔으면 정말 예수 믿으시려고 하셨습니까?”하고 물었더니 “믿기는 뭘 믿냐?, 너 나오게 하려고 했던 것이지”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에 심을철 목사님이 말씀을 어기고 신사참배를 하고 나왔다면 다 실패 했을텐데, 말씀을 끝까지 지키고 나왔으므로 그 어머니는 “네가 감옥에서 나온 것을 보니 하나님이 참으로 살아 계시구나”하며 예수를 잘 믿었다고 합니다. 이전에는 우상이나 섬기던 어머니였었는데 지금은 백배나 더 좋은 어머니가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말씀을 지키며, 자기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백배나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자기가 붙들려고 하면 안 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도 자기가 붙들려고 하고, 자기가 바로 세우려고 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믿는 일을 잘하며 그리스도의 형상만 이루어 나가면 하나님이 다 해주십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가 일어나서 국가를 잡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만 잘 믿고, 국민으로서 자기 의무만 잘 감당하면 국가는 하나님이 잘 되게 해주십니다. 정치 운동을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바른 사람이 되고, 점점 온전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 해주십니다. 교
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영이 먼저 살고,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고, 자기가 바로 되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바로 됩니다.

2. 예수의 옷을 입는 자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자

본문 14절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6에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고,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어두움의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예수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옷은 빛의 옷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때에 빛의 옷을 입고 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법적으로 볼 때에 벌써 예수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러면 예수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옷을 날마다 입어 나가야 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즉 그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자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깨끗케 해나가는 자

예수의 옷을 입어 나가는 사람은 자기를 깨끗하게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깨끗에서 깨끗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빛도 더 밝은 빛이 있습니다. 등잔불 보다 촛불이 밝고, 촛불보다 전기불이 밝고, 전기불보다 태양 빛이 더 밝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어 나가는 자

그리고 그리스도의 능력에서 능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좀더 능력을 입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점점 능력이 커져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영이 자라나는 자

그리스도의 감동과 역사, 생명력이 점점 커나가야 하며, 우리의 영이 점점 자라나가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점점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모든 것을 하는 자

또 그리스도로 인하여서 모든 것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는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대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을 배우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는 자(의와 평강과 희락)

항상 기뻐하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즉 의와 평강과 희락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말씀을 죽기까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자

또 말씀을 죽기까지 순종하며 따라가는 것이 예수님의 옷입니다. 

예수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

예수님의 옷을 입으려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여야 예수님의 옷을 입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날마다 참여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것 만큼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 만큼 고난이 오고, 인내하는 것 만큼 능력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하느라고 수고가 많지만 고난을 통과할 때에 인내가 만들어집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기쁨으로 통과할 수 없는 일이 닥쳤는데, 기쁨으로 통과하였습니다. 그것이 또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이며, 신앙이 자라난 것입니다.

평강으로 통과할 수 없는 사건인데 평강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러면 평강이 좀 이루어진 것이며,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 수 없는 환경인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며 이겨나갔으면, 그리스도의 옷이 입어진 것입니다. 깨끗해 질수 없는 환경 가운데서 깨끗해졌습니다. 그러면 깨끗이 좀 자라난 것입니다. 거룩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인데 그것을 이기고 거룩을 지켰습니다. 그러면 또 좀 자라난 것입니다.

요셉이 정절을 지킬 수 없는 환경인데 거기서 시험을 이기고 깨끗을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깨끗이 자라난 것이고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무 시험없이, 온상의 풀과 같이 가만히 있어도 깨끗한 것이 무슨 깨끗입니까? 여러 가지 연단 속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자꾸 이루어 나가면서 자라나야 그것이 실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환난을 이기며 올라가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거룩으로, 깨끗으로, 의로, 능력으로 많은 것을 정복해서 올라오는 것이며, 많은 것을 대적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저 “성령이여 오시옵소서”한다고 해서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가지고 말씀을 지킬 때에 능력이 생깁니다. 즉 말씀을 지키기 힘들 때에 말씀을 지키면 그 때에 능력이 생기고, 또 말씀을 지키기 힘들 때에 말씀을 지키면 또 능력이 생깁니다. 환난은 인내, 인내는 연단, 연단에서 능력이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의 옷이 입혀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을 수 없는데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자

또 사랑하지 못할 때에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자라납니다. 자기하고 친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백년간 사랑하고 죽어도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못할 사람을 사랑하는 그것이 사랑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만큼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사람을 용서하는 자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자비가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참고, 용서하는 것이 자라나는 것이며,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는 자

또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는 것이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셨는데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은 끊어 버릴 수 없는 것을 끊어 버리고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나가는 데는 시일이 걸립니다.

말씀을 따라가는데 연조가 걸려야 하고, 끊어 버리는데 연조가 걸려야 합니다. 많은 기일이 걸려야 합니다. 즉 사랑하는데 많은 기간, 거룩을 지키고 깨끗을 지키는데 많은 기간, 또 불쌍히 여기는데 많은 기간이 걸려야 자라납니다. 많은 기간을 거쳐서 힘을 쓸 수 없는데 힘을 쓴단 말입니다. 새벽기도 나갈 수 없는데 새벽기도 나가며, 봉사할 수 없는데 봉사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조금씩 입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두움의 옷을 벗어 버리고 빛의 옷을 입어야 됩니다. 빛의 옷을 입을 때에 어두움의 옷을 벗고 입어야지, 벗지 않고 그 위에 입으려고 하면 더러운 것이 다 묻어납니다. 그러므로 빛의 옷을 입으려면 어두움의 옷을 벗고 오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을 놓아두고 빛이 오라고 하면 안 옵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죽어진 것만큼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집니다. 자기 것을 내어 놓은 것만큼 하나님의 것이 옵니다. 즉 자기 것을 포기한 것만큼 하나님의 것이 와서 머무릅니다. 그러므로 자기 것을 버려야 그리스도의 것이 옵니다. 버리지 않으면 오지 않습니다. 내 것을 내 놓은 것만큼 옵니다. 어두움의 것을 벗어 버려야 빛이 옵니다. 안 벗어버리면 빛이 어떻게 오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두움의 일은 다 내 버리고 그리스도의 옷을 입기를 힘써 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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