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단 받아 정금같이 됨
욥기 23:1-17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3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4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5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6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8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11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13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 하는구나 16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17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
욥기 23:1-17
1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2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 3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4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5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 6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7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 8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9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11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12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13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14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 15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 하는구나 16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17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
1. 욥이 자신이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하다고 함
본문 1-2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원망한다’는 말은 ‘수심, 근심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욥이 오늘도 수심 가운데 탄식을 하는데, 그가 받은 재앙이 너무 크기 때문에 탄식하는 것입니다.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재앙 때문에 탄식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있지만, 그 받는 재앙은 탄식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너무 재앙이 크기 때문에 근심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근심하는 것보다 재앙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오늘도 혹독히 원망하니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원망한다’는 말은 ‘수심, 근심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욥이 오늘도 수심 가운데 탄식을 하는데, 그가 받은 재앙이 너무 크기 때문에 탄식하는 것입니다. ‘받는 재앙이 탄식보다 중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재앙 때문에 탄식하고 근심하는 가운데 있지만, 그 받는 재앙은 탄식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너무 재앙이 크기 때문에 근심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근심하는 것보다 재앙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2. 욥이 하나님을 발견하여 변백(辨白)하고자 함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는 욥
본문 3-5절에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 그리하면 그 보좌 앞에 나아가서 그 앞에서 호소하며 변백할 말을 입에 채우고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래서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라고 하는 것입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하고 그 앞에 좀 더 나가서 호소하며 그 보좌를 찾아서 그 보좌 앞에 좀 더 가까이 나가고자 합니다. 변백할 말, 아뢸 말씀을 입에 채우고 하나님께 모든 말씀을 고할 작정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내게 대답하시는 말씀을 내가 알고 내게 이르시는 것을 내가 깨달으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 앞에 응답 받기를 간절히 고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좀 더 호소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좀 더 받아서, 바른 것을 깨달으려 하는 것입니다. 욥에게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욥이 지금 고난을 당하는데, 그 고난의 이유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제 그가 하나님을 좀 더 발견하고 좀 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가서 자신이 왜 고난당하는 것인지에 대한 응답을 받아보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을 듣고 좀 더 바른 것을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가 마땅히 하여야 할 일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이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어찌하면 하나님 발견할 곳을 알꼬’하며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간절히 찾는 마음이 아주 좋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많이 하고 힘을 많이 쓰고 좀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애를 많이쓰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욥은 지금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기의 어려운 문제를 고백하고 왜 그런 일이 자신에게 닥치는지 알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아뢸 말씀이 그 입에 가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을 들어서 바른 것을 깨달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로 더불어 다투실까 아니라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권능을 가지시고 다투지 않으시며 부족한 인간들의 말이라도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큰 권능의 하나님이시지만, 그 권능으로 다투시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자신의 말을 들어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믿고 나가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거기서는 정직자가 그와 변론할 수 있은즉 내가 심판자에게서 영영히 벗어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는 정직자가 하나님과 더불어 변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정직한 자가 하나님께 나가서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정직자’는 하나님께 바로 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고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에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욥은 구원 받게 해주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정직자’는 하나님께 바로 행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고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진실한 마음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용서해주십니다.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주시며 긍휼과 자비를 베푸셔서 심판에서 벗어나게 해주십니다. 이와 같이 욥은 구원 받게 해주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본문 8-9절에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앞으로 가도 하나님께서
안 계신다는 것입니다. 또 뒤로 가도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또 왼편이나 오른편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분명한데, 그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찾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보이시지도 않고, 응답도 없고, 나타나시는 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는 것도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없을 때, 믿음으로 계속 기도하며 기다려야 함
그래도 욥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지 않으셔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주실 때에 낙심하지 않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십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을 찾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도 안 보이시고, 뒤로 가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또 왼편으로 가나 오른편으로 가나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계신 것과 같습니다. 내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내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욥은 낙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반드시 돌봐주실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욥은 과거에도 정직하게 나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기도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셔도 조금 있으면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신다고 안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셔도, 얼마 가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그대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도 욥이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해주지 않으셔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주실 때에 낙심하지 않는 신앙이 진짜 신앙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십니다.
또 아무리 하나님을 찾으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가도 안 보이시고, 뒤로 가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또 왼편으로 가나 오른편으로 가나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 계신 것과 같습니다. 내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내버리신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해도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그래도 지금 욥은 낙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 것을 믿고 버리지 않으실 것을 믿으며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직한 자를 반드시 돌봐주실 것을 믿는 신앙입니다. 욥은 과거에도 정직하게 나가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기도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셔도 조금 있으면 들어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신다고 안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당장에 안 들어주셔도, 얼마 가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다 들어주시고 그대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대로 응답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이 없는 할머니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 할머니가 동생네 집에 가서 지냈는데, 자기가 병들어서 오래 병석에 누워있으면 누구 한 사람 돌봐줄 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녀도 없고, 지금은 비록 동생네 집에 가있지만 남 동생네 식구들이 뭐 달갑게 해주겠습니까?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하나님께 늘 기도했다고 합니다. 세상 떠날 때에 오래 앓지 않고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할머니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기도한 모양입니다. 다른 기도도 물론 했겠지만 기도하다가 그 기도도 한 번씩 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떠날 때 어떻게 떠났느냐 하면 저녁까지 말을 다하고 어디를 나갔다 들어오고 그리고 밤에 잤는데, 아침에 밥을 잡수러 나오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가서 문을 열어보니까 기도하는 것과 모양으로 엎드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보니까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할머니가 얼마나 잘 죽었습니까? 전 날 저녁까지 식사도 드시고 말도 하며 쌩쌩했다는 것입니다. 또 그 할머니가 겨울에 연탄을 사다가 때기 힘들겠으니까 연탄을 미리 많이 사다 놨다고 합니다. 겨울에 땔 것을 다 사다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쌀도 사다놓았다고 했던가, 하여간 겨울 날 준비도 다 해놓았는데 자기도 그렇게 갑자기 세상 떠날 줄을 모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아마 기도하다가 떠난 모양입니다. 연령은 75세입니다. 75세이면 장수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할머니가 세상 떠날 때에 병석에 오래 있지 않고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습니다. 자녀라도 있으면 오래 있어도 수발을 다 해주겠지만, 자녀가 없으니 누가 그 일을 해주겠습니까? 동생네 아이들이 누가 해주겠습니까? 또 가보니 해줄 아이들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 할머니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십니다. 또 이 할머니가 한 것을 듣고 나도 그렇게 기도해야 되겠다며 욕심으로 하면 안됩니다. 욕심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기도할만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욕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적합한 기도에 대하여 반드시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을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그 기도가 헛된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면 그 기도가 절대로 헛된데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욥도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당장에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앞으로 가도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보이시지 않고, 오른편으로 가도 만날 수 없고, 왼편으로 가도 뵈올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욥은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회개하면서 바른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내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였습니다.
3. 욥이 연단 후에 정금같이 될 것을 믿고 인내함
하나님께서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음
본문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은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지만, 그래도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 이 어려움은 하나
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시기 위해 주신 고난으로 믿고, 이 고난이 다 지난 다음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안 들어주셔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과 같은 인격이 될 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인격으로 만드셔서 하나님 앞에 데려다가 귀하게 쓰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정금과 같은 자를 만드시려고 고난도 주시고 기도도 안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단련하신 후에 정금같이 나올 것을 믿음
본문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지금은 비록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안 들어주시지만, 그래도 나의 가는 길을 하나님께서 아실 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또 지금 이 어려움은 하나
님께서 자신을 연단시키시기 위해 주신 고난으로 믿고, 이 고난이 다 지난 다음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안 들어주셔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그가 나를 연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과 같은 인격이 될 것’을 아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인격으로 만드셔서 하나님 앞에 데려다가 귀하게 쓰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정금과 같은 자를 만드시려고 고난도 주시고 기도도 안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유익이 많음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많습니다.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고 견디는 것,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을 아는 것 등, 하나님께서 기도를 바로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많습니다. 또 참고 견디면서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재까닥 주시곤 하면 그것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안 들어주시다가 주셔야 귀한 줄 압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많습니다.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를 안 들어주실 때에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고 견디는 것, 하나님을 더욱 더 신뢰하는 것,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을 아는 것 등, 하나님께서 기도를 바로 안 들어주실 때에 얻는 것이 많습니다. 또 참고 견디면서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재까닥 주시곤 하면 그것이 귀한 줄을 모릅니다. 안 들어주시다가 주셔야 귀한 줄 압니다.
아이들도 돈을 달라고 할 때에 재까닥 재까닥 주곤 하면, 아이들을 버리게 됩니다. “돈 천 원 주십시오, 가져가라”, “만 원 주십시오, 가져가라”, “오만 원 주십시오, 가져가라”, “십만 원 주십시오, 가져가라”, “백만 원 주십시오, 가져가라”고 하면 아이들을 버립니다. 돈이 귀한 줄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안 줄 것은 안 주어야 합니다. 안 주면, 돈이 귀한 줄을 알고 돈 절제할 것도 알게 됩니다. 돈이 조금밖에 안 되니까, 조금씩 써야 되지 않습니까? 좀 비싼 것을 사먹으려고 했는데, 돈이 모자라니까 싼 것도 사먹게 됩니다. 하여간 그런 가운데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거스름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다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 주시는 것이 우리를 만드시는 것인줄로 알면 됩니다. 그리고 안 주실 때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안 주실 때에 바라보는 것이 진짜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또 거기서 인내가 생기고 연단
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즉, 안 주실 때에 또 고난당할 때에 거기서 연단이 생기고 거기서 좋은 믿음이 생겨서, 결국 좋은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금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격이 됩니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아이들에게 심부름을 시키면서 거스름돈을 가져오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다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 주시는 것이 우리를 만드시는 것인줄로 알면 됩니다. 그리고 안 주실 때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진짜 믿는 것입니다. 안 주실 때에 바라보는 것이 진짜 바라보는 것입니다. 거기서 믿음이 생기고 소망이 생깁니다. 또 거기서 인내가 생기고 연단
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것이 금보다 귀한 것입니다. 즉, 안 주실 때에 또 고난당할 때에 거기서 연단이 생기고 거기서 좋은 믿음이 생겨서, 결국 좋은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금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인격이 됩니다.
정금과 같은 인격이 되려면, 많은 환난 가운데서 잘 참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견뎌야 함
그러므로 연단이 있어야 합니다. 연단이 없으면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금광에서 금을 캘 때에 정금을 캐는 것이 아닙니다. 금 광산에 가보면 금이 섞인 돌을 캐냅니다. 광석을 캐내는 것입니다. 금이 아니고 돌입니다. 그리고 그 돌에 금이 이따금 박힌 것을 캐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것을 가져다가 갈아서 돌을 기계에 부어 금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그래야 금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 금을 가져다가 용광로에 녹여서 찌꺼기를 다 제거시키며 걸러내야 합니다. 금이 되려면 불 가운데도 들어갔다 나와야 하고 돌이 다 깨지기도 해야 합니다. 또 거기서 걸러지는 것이 있어야 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정금과 같은 인격이 되려면 많은 환난을 겪는 가운데서 참을 것은 참고, 바라볼 것은 바라보며, 끝까지 잘 견뎌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견디며,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것을 믿고, 바칠 것은 바치면서 나가야 합니다. 생명 전체를 바쳐놓고, 하나님만 계속 바라보고 나갈 때에 정금과 같은 인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불같은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불같은 시험을 통과하지 않으면 정금이 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환난과 난관이 많아도 모든 것을 믿음으로 통과해서 정금과 같은 인격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욥이 많은 고난 속에서 정금과 같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 아
무리 기도해도 안 들어주시는 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안 돌봐주시는 데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어려움들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금과 같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김
본문 11절에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셔도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들어주실 때만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안 들어주셔도 따라가는 것이고, 들어주셔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어주시나 안 들어주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안 들어주시고 나를 안 돌봐주시지만,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라 갔다. 내가 그의 길을 지켜서 치우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음식보다 그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욥이 하나님의 발걸음을 봤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으로 가도 그가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갔겠습니까?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발걸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욥이 끝까지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셔도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들어주실 때만 따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안 들어주셔도 따라가는 것이고, 들어주셔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들어주시나 안 들어주시나 마찬가지입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나의 간구를 안 들어주시고 나를 안 돌봐주시지만,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라 갔다. 내가 그의 길을 지켜서 치우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음식보다 그 말씀을 더 귀히 여겼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서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욥이 하나님의 발걸음을 봤다는 뜻이 아닙니다. ‘앞으로 가도 그가 계시지 않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갔겠습니까? 하나님의 발걸음을 따라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발걸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욥이 끝까지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계신 말씀이고 그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나가시는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욥이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또 그 길을 지켜서 치우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았습니다. 또 하나님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명령을 어기지 않고 명령대로 다 지켰습니다.
욥이 하나님의 명령인 말씀을 얼마나 귀히 여겼습니까? 일정한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음식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말씀을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서 욥은 그 말씀대로만 따라갔습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걸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며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진리를 치우치지 아니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또 욥은 그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였고 마땅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갔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그 말씀을 귀히 여겨서 음식보다 귀중히 여기며 생명보다 귀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날마다 사모하고 금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꿀보다 달고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겼습니다. 하여간 욥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겨서 따라갔습니다.
시편 19편 10절에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 119편 131절에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편 119편 103절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편 148절에는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야경이 깊기 전에 깼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새벽에 일찍 깬 모양입니다. 깨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경이 깊기 전이면 몇 시쯤 될 것 같습니까? 아마도 밤 2시나 1시쯤일 것 같습니다. 그때에 깨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사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고 사모하며, 그 말씀을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게 여기는 것입니다. 말씀 하나를 송이꿀 하나 먹는 것처럼 달게 여기며 생명으로 여기고 귀히 여겼습니다. 이런 믿음을 모든 성도들이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욥도 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4. 작정하신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짐
본문 13절에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고자 하시는 대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일정합니다. 이랬다 저랬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대로 일정하게 하나님의 뜻대로만 모든 것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뿐입니다.
본문 14절에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대해서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뿐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해주십시오’라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렇게 해달라고 하면 저렇게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대로 모든 것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구하는 것,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합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아버지의 원대로 되는 일에 우리가 맞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맞춰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제 뜻대로 이뤄달라고 하지 말고 아버지의 하시는 대로, 즉 ‘아버지의 뜻에 맞춰서 살도록 해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 그런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단 것을 주시면 단 것을 먹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쓴 것을 주시면 쓴 것도 먹어야 되겠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니까 쓴 것을 먹으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환난을 주시면 환난 고통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평안을 주시면 평안한 가운데서 또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또 부요하게 해주시면 부요한 데서 믿음을 잘 지키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믿음을 쓰면서, 그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궁핍을 주시면 궁핍한 가운데서 또 믿음을 잘 지키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단 것을 주시면 단 것을 먹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신앙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쓴 것을 주시면 쓴 것도 먹어야 되겠기 때문에 주시는 것이니까 쓴 것을 먹으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환난을 주시면 환난 고통을 받으면서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평안을 주시면 평안한 가운데서 또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또 부요하게 해주시면 부요한 데서 믿음을 잘 지키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믿음을 쓰면서, 그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궁핍을 주시면 궁핍한 가운데서 또 믿음을 잘 지키면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궁핍할 때에 ‘넉넉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지 말고, 환난이 들어올 때에 ‘이 환난을 없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냥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살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해주시옵소서. 승리적으로 이 시험을 통과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며 믿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승리적으로 모든 환난과 모든 고난을 다 통과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는 뜻이 일정하기 때문에 능히 돌이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뜻대로만 이루어나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뜻대로 이루어나가시는 일에 대해, 그것을 알고 믿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믿음을 지켜야 진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환경을 감사하게 여기며, 그 가운데에서 연단을 받아 믿음으로 승리해야 함
사람마다 처한 환경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환경을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런 환경을 주십니다. 그러나 어떠한 환경을 주시든지, 각자에게 주신 그대로 거기에서 맞춰서 믿음으로 통과하면 자라납니다. 그렇게 나가면 연단이 됩니다. 연단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풍부함에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함에 처할 줄도 알았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풍부한 것이 아닙니다. 또 믿는 사람이 다 가난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환경도 주시고 저런 환경도 주시는 것입니다. 또 누구에게나 십자가의 고난을 주십니다. 좋은 것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시키시려고 이런 것을 주신 줄 믿습니다.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겠습니다’라고 하며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정금같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금같이, 연단을 잘 받아서 하나님께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환경, 자기에게 주신 모든 처지, 형편을 감사하며 달게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환경이 되어야만 연단이 되겠기 때문에 그 환경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믿음으로 통과하고 승리적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뜻에 맞춰서 살며 범사에 감사하면서 지내면, 그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환경을 억지로 바꾸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이 제일 좋은 환경인데, 바꾸면 안 됩니다. 거기에서 연단을 잘 받아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합니다. 거기에서 믿음을 지키고 거기에서 자기가 만들어져야,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갈 때에 정금과 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팔자에서 도망치려고 하니, 어떻게 되었다고 했습니까? 팔자가 앞서갔다고 했습니다. 팔자에서 도망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슨 팔자가 이런 팔자냐?’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부다 상팔자인줄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상팔자로 주신 것입니다. 전부 상팔자로 주셨는데, 거기에서 믿음만 잘 지키면 전부 정금을 만드는 것입니다. 정금을 만드시려고 다 허락하신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가 전부 상팔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로 거기서 정금을 만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팔자에서 도망쳐야 되겠다. 무슨 팔자가 이런 팔자냐? 다른 사람은 안 그러는데 나는 왜 이러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과 처지는 하나님께서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 주신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금과 같은 자를 만드시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맞춰 나가야겠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자기가 만들어져 정금과 같은 자로 나오는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만들어져 나와야 되겠습니다.
아무튼 하나님께서는 그 뜻대로, 작정하신 대로 이루실 뿐입니다. 변동이 없습니다. 사람이 변동해달라고 해도 변동을 안 해주십니다. 우리가 그런 기도는 하면 안 됩니다. 시험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시험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시험을 이기는 것이 바로 자기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없애달라는 기도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하기 때문에 주신 것인데, 그것이 왜 없어지겠습니까?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해야만 바른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의 앞에서 떨며 이를 생각하고 그를 두려워하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대로만 다해나가시니까, 그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하나님이 나로 낙심케 하시며 전능자가 나로 두렵게 하시나니 이는 어두움으로 나를 끊지 아니하셨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욥이 왜 하나님께서 나로 낙심케 하시고 두렵게 하시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어두움이 오기 전에 나를 죽지 않게 해주시고 흑암으로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즉, 환난이 오기 전에 욥이 죽지 않았으므로 이런 일들을 당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오기 전에 죽었으면 이런 일들을 안 당할 것인데, 환난이 오기 전에 안 죽었기 때문에, 즉 하나님께서 안 죽게 하셨기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고난을 많이 당하는 것입니다. 또 낙심할 만한 일도 생기고 두려운 일도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욥은 그 모든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 자신이 정금과 같이 나올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이 오기 전에 죽었으면 낙심이나 두려움이 없었겠는데, 하나님께서는 미리 안 데려 가시는 것입니다. 고난과 두려움을 다 통과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정금과 같이 나오게 만드시려고 지금 욥을 이렇게 연단시키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