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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월 3일 화요일

창세기 18:6-32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계약신학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함
창세기 18:6-32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그들이 아브라함에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리라 16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17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18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19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20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21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 22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23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24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25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27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28오십 의인 중에 오 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 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29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0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31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32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1. 아브라함의 신앙 대접하는 신앙

본문 6-8절에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아브라함이 또 짐승 떼에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취하여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나무 아래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를 잘 대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언제나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특별히 교역자는 가르치는 것과 대접하기를 잘해야 합니다. 가르치기만 잘해서도 안 되고, 대접만 잘해도 안 됩니다. 가르치는 것과 대접하는 것, 두 가지를 같이 잘 해야 됩니다.
미국 교회는 대접하기를 잘하지 못하면 교회가 안 됩니다. 한국에서 새로 이민 오는 교인이 있으면 그 교회 목사가 가서 이삿짐을 실어 주어야 하고, 수속을 해주고 직장을 찾아주고 여러 가지 이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목사 집으로 초대해주어야 그 교회 교인으로 있습니다. 그러므로 미국 목사의 가정은 의례히 대접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 교역자들도 대접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대접할만한 사람을 목사의 가정에서 대접하면 교회가 잘 됩니다. 또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라고 하였는데,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떡을 만들라고 하면 “예” 하고 사라가 속히 가서 떡을 만든 것처럼, 교역자의 가정에 대접할 사람이 오면 속히 대접하여야 합니다.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하면 됩니다. 없는 대로 해도 정성만 들어가면 대접받는 사람이 기뻐합니다. 산골에 있는 교역자 가정이라면 강냉이를 삶아 주어도 좋고, 고구마를 삶아 주어도 좋습니다. 자기에게 있는 대로 정성을 다 해서 대접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손님 대접하는 일을 하다가 천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접하는 일은 참 귀한 일입니다. 대접하노라면 그 후덕이 다 돌아옵니다. 대접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 것이고, 자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대접하기를 힘을 쓰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또 교인은 교역자를 잘 대접할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는 신앙

아브라함은 언제나 낮아지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존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을 귀히 여기며 즐거워하며 성도를 대접하고자 할 때 아브라함이 천사를 영접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람을 영접했는데 천사 영접하게 된 것이고, 또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송아지를 제일 좋은 것으로 드리고 모든 음식을 준비해서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아낌없이 바치는 자는 복 받습니다. 아끼고 인색한 마음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에게 안 주십니다. 인색하여 벌벌 떨면서 작고 형편없는 송아지를 골라잡으면 세 사람이서 얼마나 먹겠습니까? 또 떡을 아까워서 한 스아만 준비하고 버터와 우유도 억지로 준비한다면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안 주십니다. 우리가 사람에게 한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방패로 삼으면 하나님께서 방패가 되시고 또 하나님을 상급으로 삼으면 우리의 상급이 되어 주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낌없이 하나님을 위해서 바쳤습니다. 대접을 잘 했습니다. 정성껏 아낌없이 송아지를 제일 좋은 것으로 골라서 대접을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따라서 그 대접이 누구에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까? 아브라함에게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대접하고 바친 것은 그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종자 심은 것과 같이 심은 대로 돌아옵니다. 많이 심은 자는 많이 거두고 적게 심은 자는 적게 거두고 심지 않은 자는 거둘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바친 것은 자기를 위해서 종자 심은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후서 9: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서 정성껏 아낌없이 드리는 것은 실제는 자기를 위하는 것입니다.
자기 위해서 쌓아놓는 것은 자기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자기 위하는 것이 못됩니다. 이것은 얼마 가면 다 없어집니다. 언제 없어집니까? 첫째는 이 세상 떠날 때 없어집니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이 세상 떠날 때 것 가져가지 못합니다. 또 둘째는 환난의 날에 없어집니다.
환난의 날인 전쟁 등이 나면 다 없어지고 남아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 쌓아 놓은 것은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빈손 들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빈털터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해놓으면 하늘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최유선 목사님이 세상을 떠났는데 우리 신학교 강사를 오래 동안 했습니다. 그 분은 서울대학을 다니시다가 고려신학대학을 나왔습니다. 영어가 능통하고 중앙여고에서 교사생활을 오래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세상 떠난 다음에 아쉬운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창광교회도 잘 나왔는데 제가 “목사가 개척교회를 해서 목회를 해야 된다. 중학교 선생만 하면 뭘 하겠느냐?”고 하면서 교회를 개척할 것을 권면했더니 개척교회를 하겠다고 예배당 자리보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해서 교회를 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집은 잘 안 팔리니까 집을 담보해서 은행융자를 하도록 했었습니다. 그런데 은행에서 도장 찍고 싸인 하라고 하니,돈을 먼저 줘야 싸인 하겠다고 했답니다. 최유선 목사님은 너무 단순하니까 “도장 찍어줬는데 만약에 돈 안주면 어떡하겠느냐?”고 “세상이 험악해서 믿을 수 없다”고 은행에서 도장을 안 찍었답니다. 그러다가 병들어서 한 6개월 이상 앓아 병석에 누웠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정말 작정을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낫게 해주실 것을 믿는데, 낫게 해 주시면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퇴직금 받으면 개척교회 하기로 작정 했다고 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병을 꼭 낫게 해주실 것을 굳게 믿고, 퇴직금을 타면 즉시로 개척교회 하기로 작정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시질 않았습니다. 때가 다 지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불러가셨습니다. 그래서 가끔 최 목사가 ‘개척교회를 하고 갔었으면 좋았겠다’ 하며 아쉬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개척교회 했으면 교회 하나 바쳤을 것이 아닙니까? 안하고 갔으니까 그것으로 끝난 것입니다. 개척교회 했으면 하나님의 일을 해놓고 갔으니, 하늘나라에 쌓여있고 면류관에 별 하나 더 붙을 것인데 그만 못하고 간 것이 아쉽습니다. 그 목사님은 57세에 하늘나라에 간 것입니다. 57세면 아직도 내가 보기엔 어린 아이 같습니다. 요사이는 오십대에도 천당에 많이 갑니다. 오십대가 위험하니까 오십대들 정신 차려야 됩니다. “덕천이 멀다”하고 앉아 있다가는 갑자기 옵니다. “덕천이 멀다”는 것은 평안북도에 덕천이라는 곳이 있는데 “덕천에 적군이 왔다, 적군이 왔다” 하니까 ‘덕천은 멀리 있다’ 하고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갑자기 습격을 당해서 다 죽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떻게 하든지 주를 위해서 일하면서 준비 잘하고 주님 앞에 가야 되겠습니다. 또 바칠 것은 바치고 가야지 놔두어도 쓸 데 없습니다. 세상에 쌓아두면 하나님 앞에 빈털터리로 갑니다. 가족들이 물질이 없다고 굶어죽을 줄 아십니까? 또 재산이 얼마 있다고 해서 잘 살 줄 아십니까? 없어도 얼마든지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은 종자 심는 것과 같아서 반드시 자기 것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 안하고 쌓아놓은 것은 자기 것이 못되고 다 없어지고 남의 것이 됩니다. 전쟁이 나거나 죽어도 가자고 못가니 남의 것이 됩니다. 또 언제 하나님께서 다 빼앗아 가실지 모릅니다.

장막 생활하는 신앙

또 아브라함은 장막 생활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9-10에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장막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5:6-7절에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육축과 은금이 풍부한 부자이지만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 살았습니다(13:2).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할 때에 집에서 기르고 연습한 자 318명을 거느리고 나간 것을 보아도 아브라함이 부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기 집을 짓지 않고 장막에 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본향이 하늘나라임을 알고 땅 위에 사는 동안 장막생활을 한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생활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으로 사는 아브라함과 같이 우리도 ‘하늘나라’의 더 좋은 집을 사모하며 장막 생활을 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이 땅에서는 장막 생활 하며 살아도, ‘하늘나라에 가면 더 좋은 본향 집이 있다’하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 되는 것만을 중요시 여기며 나가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아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 위에서 사는 동안 어떤 집에서 살더라도 만족하는 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즉 자족하는 생활을 배워야겠습니다.

제가 기도원에 있을 때에는 아침 새벽에 산에 올라가서 11시쯤에 내려옵니다. 산에 천막을 쳐놓았는데, 영하 16도, 18도까지 내려가도 춥지 않습니다. 뒤집어쓰는 것과 모자 두 개, 마스크는 두개를 하고 갑니다. 마스크 한 개 해서는 안 됩니다. 마스크 두 개를 해야 히터가 됩니다. 그래서 마스크는 밤낮 가지고 다닙니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영하 10도만 내려가면 뺨이 다 얼어 예배당에 들어오면 가렵고, 아리고, 쓰립니다. 그러나 마스크 두개를 하면 더운 김 나가지 못하니까 귀도 다 안 시리고 그저 훈훈합니다. 하여간 장막생활도 그다지 춥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있는 동안에 장막생활 하는 정신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런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천사들이 앞에 나타났을 때에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빨리 나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접할 생각이 난 것입니다(1-2). 열왕기하4:9-10절에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수넴 여인도 엘리사가 지나갈 때에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인줄 알고 영접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영접하였기 때문에 수넴 여자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서 송아지를 잡아 대접을 하였습니다. 그 때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대접을 받고는 어떻게 하였습니까?

2. 천사가 사라를 통해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함

본문 9-10절에 “그들이 아브라함에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그가 가라사대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정녕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부지중에 손님 대접을 하였는데, 그 사람이 천사였습니다. 즉 천사인 동시에 하나님이십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대행자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비적 현상이라고 합니다.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영접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즉 천사가 음식을 다 먹은 후에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요새 ‘축복 기도한다’면서 “이삭도 그 아들에게 별미 축복을 했으니까 목사를 대접해야만 축복을 받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내야 축복을 받는다고 많은 물질을 요구하는 목사들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사도 먹고 축복을 해 주었으니까 먹어야만 축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교역자는 삯군 목자입니다. 물질을 받고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겠다는 것은 참람한 생각입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잘 대접하였으므로 천사가 그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였는데, 얼마나 귀한 소식입니까? 보통 아들이 아니고 그 아들을 통해서 만백성이 구원을 얻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입니다(갈 3:19). 이것은 이삭을 통해 그리스도를 주시겠다는 약속이며 만민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구원받을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을 잘 대접하므로 하나님 구원운동의 귀한 소식을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하면 이런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을 잘 대접하고 도와주고 받들어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가 대접받는 데에 이용한다면 그 사람은 거기서부터 타락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한번 부흥회 해주면 얼마 주겠느냐?”고 하는 교역자들이 있는데 그것은 이스마엘 족속과 같습니다. 이스마엘 족속은 물질 밖에 모릅니다. 교역자는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을 축복해 주려고 해야 하고, 교인은 교역자를 존경하고 받들어 주려고 해야 합니다.

3. 사라의 불신앙

본문 11-12절에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 많아 늙었고 사라의 경수가 끊어졌는지라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어찌 낙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을 듣고 사라가 웃었습니다.

본문 13-15절에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서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사라가 두려워서 승인치 아니하여 가로되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두려워서 웃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를 속인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런 웃음을 웃었으면 일이 다 틀어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라와 같은 불신앙의 웃음을 웃지 않았습니다.

“가라사대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명년 이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며 네가 아들을 낳을 때에야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회개하고 신앙의 호주되는 남편의 신앙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심령 골수를 살피심으로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잠 21:2). 사라가 웃은 것은 불신에서 나온 웃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책망하시면서 여호와께서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굳건한 신앙의 호주가 되는 아브라함이 신앙에 서니까 사라가 믿음이 약하여 일시적 실족을 했어도 회개하고 일어섰습니다.

신앙의 호주가 굳건히 서 있으면 그 가정에 복이 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라에게 “하나님이 능치 못할 것이 있겠느냐?”고 하시며 책망하실 때에 “아이고 내가 잘못했습니다”라고 회개 하였을 것입니다. 또 이삭을 낳은 후에 회개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호주가 굳건히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의 호주만 굳건히 서서 나가면 주위의 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실족하여 넘어졌어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4. 소돔 고모라에 죄악이 관영함을 탄식하심

만물이 불의에 이용당함을 탄식함

본문 20절에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하노라”라고 하였는데 “부르짖음이 크다”라고 하는 것은, 야고보서 5:4절에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라고 한 것처럼 모든 불의를 당하는 사람들의 부르짖음이 만군의 여호와의 귀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원리대로 하지 않고 원리에 어긋나게 모든 것을 사용하고 음란하고 방탕하면, 불의를 당한 사람들이 탄식을 하고 불의에 이용당한 만물이 탄식을 합니다.

몸이 불의에 이용당하여 탄식함

히브리서 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죽었으나 믿음으로 말하느라”고 한 것은 순교자의 부르짖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몇 가지라고 했습니까? 만물이 탄식을 하면서 부르짖는 것은 만물이 불의로 이용당할 때입니다. 또한 우리 몸도 원리대로 쓰지 아니하고 불의로 사용하면 우리 몸이 하나님께 탄식을 하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로마서 1:26-27절에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순리대로 쓰지 못하고 역리로 하면 몸도 합당한 보응을 받고 그에 대한 부르짖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몸도 순리대로 써야 합니다. 역리로 쓰면 그 대가가 옵니다. 즉 몸에 병이 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처럼 만물도 하나님 앞에 바로 사용되지 못하고 불의에 사용되면 만물이 탄식하고 부르짖습니다. 로마서 8:22절에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만물탄식 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도 불의를 당하면, 남한테 불의 당한 사람이 억울해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입니다. 품꾼이 제대로 삯 받지 못하면 품꾼이 부르짖고, 또 핍박 받을 때에 성도가 부르짖고, 순교 당할 때에 그 피가 하나님께 호소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 그 죄악이 하늘에 사무쳤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대한 합당한 보응을 하시려고 내려 오셔서 심판을 하십니다.


5.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심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중하니”라고 하였는데,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관영해서 망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버리실 날은 시간문제입니다. 1년 있다 내버리시겠는지 10년 있다 내버리시겠는지 반드시 내버리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겸손해야 됩니다. 낮아지고 높임을 받으려는 생각은 버리고 높임을 받을 때에 조심해야 됩니다. 높임을 받으면 자기의 부족한 것을 붙들고 회개하는 가운데로 낮아지고 예수님만 높여야 됩니다. 다 같은 죄인인 입장에서 교역자도 예수님만 높이도록 해야 됩니다. 오순절날 다락방에 일백 이십 명이 모였는데 베드로와 막달라 마리아도 있었고 예수님 모친인 마리아도 있었지만 다 같은 죄인인 입장에서 같이 기도하고 같이 낮아져서 하나님께만 간구하였습니다. 그때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언제나 교역자들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겸손이 생명이므로 낮아져야겠습니다. 높아지는 것은 생명에서 떠나는 길입니다.
언제나 낮아지고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을 존대하며, 하나님을 사모하고 영접하여 하나님과 동행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두 가지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구원에 대한 비밀

본문 1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알게 해주신 그비밀은 첫째는 구원에 대한 비밀의 복음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구원에 대한 복음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명년 이맘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아브람의 후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만민을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접하여 동행하는 신앙을 가질 때에 구원에 대한 비밀의 도리를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아낌없이 다 바쳐서 영접 했을 때에 구원에 대한 비밀의 도리를 알게 해주셨습니다. 또한 구원의 도리를 알게 해 주실 뿐만 아니라 거기에 이용당할 수 있게도 만들어주셨습니다. ‘네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시겠다’ 하신 말씀은 ‘네 자신이 구원의 기관이 된다’는 뜻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심판에 대한 비밀

둘째로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신 비밀은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심판에 대한 하나님의 비밀을 본문20-21절에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을 사모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감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비밀을 미리 알게 해주십니다.

과거에도 어떤 사건이 나기 전에 미리 알게 해주신 것이 많습니다. 옛날에 신사참배를 안하기 위해서 만주로 도망갔던 성도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은 일본이 망할 것을 미리 알았다고 합니다. 일본이 그 해에 망할 것과 또 6.25사변 날 것도 미리 영감으로 알았다고 합니다.
예루살렘 멸망할 때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감으로 사는 사람은 미리 앞으로 환난이 올 걸 다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를 심판할 것을 아브라함에게도 미리 알게 해주신 것과 같습니다. 아모스 3: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미리 보이시고 행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삼년 육 개월 동안비가 오지 않을 것을 알게 해주시고, 또 삼년 육 개월이 된 다음에는 비 올 것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가 날 것과 심판이 올 것을 알게 해 주셨는데 몇 년 전에 알게 해주셨습니까? 한 70여 년 전에 알게 해 주셨습니다. 또 7일 후에 홍수가 온다는 것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영감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비밀을 미리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영감으로 살고,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이기 때문에, 숨기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6.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알게 하신 목적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하심

본문 18-19절에 “아브라함은 광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릇이 되며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너로 더불어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과 의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왜 택하였습니까? 여호와의 도를 지켜 공의를 행하게 하려고 택하였습니다. 의와 공도를 행하시려고 아브라함을 택하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무엇을 숨기겠냐고 하셨습니다. 복음의 비밀도 알게 해주시고 심판의 비밀도 알게 해주셔서 의와 공도를 이루어나가는 아브라함에게 유익이 되도록 알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알게 해주신 목적은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것입니다.

7.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함

본문 22절에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에서 두 천사는 소돔을 향하여 갔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에 섰습니까?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천사를 영접했는데 여호와 앞에 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19:1절에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라고 하였는데 두 천사는 소돔으로 가고 한 천사는 남았습니다. 처음에 천사가 셋이었습니다.

창세기 18:2절에 “눈을 들어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섰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어 세 사람을 봤는데, 두 천사는 소돔 고모라로 갔고 한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남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지금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처음에 영접했는데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천사 앞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 앞에 그대로 있었다” 고 하였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처음에는 손님을 대접하려고 사람을 영접했는데 천사를 영접했던 것이고, 천사를 대접하고 보니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비밀을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함

본문 23-25절에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시는 하나님도 아니시며, 의인과 악인을 함께 죽이시는 하나님도 아니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때 공의로 심판하실 하나님이신 줄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기도함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을 바로 알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과 악인을 같이 죽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또한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여기시는 하나님도 아니시기에, 의인과 악인을 같이 취급하시지 않습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바로 깨닫고 하나님 뜻에 의한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 기도함

또 아브라함이 기도할 때 자기 개인 문제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 개인 잘 되게 해주시고 돈 벌게 해주시고 아들 잘 되게 해 주시고 집이나 하나 장만하게 해달라는 등의 개인 문제 때문에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정욕으로 쓰라고 잘못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에 기도를 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구원받는 문제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의인을 구원하는 문제에 대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구원운동을 위한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멸망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거룩한 기도입니다. 의로운 기도입니다. 우리도 개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는 것보다는 좀 더 거룩한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다.
택한 백성의 구원문제와 의와 진리를 세워나가기 위한 기도가 중요한 것입니다.

죄로 멸망케 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며 기도함

또 아브라함은 죄로 멸망케 될 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기도를 했습니다.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인 것이 가하니이까?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어떻게 하시렵니까?”라고 기도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은 의인을 귀히 여기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의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보호해주시고 건져주시는 줄 믿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겸손하게 기도함

본문 26-29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 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 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오 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 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인 오십 인이 있으면 소돔성을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십 인을 찾으면 온 지경인 소돔 고모라 전체를 다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생각해보니까 오십 인이 못 될 거 같습니다. 만일 오십 인이 못 되면 또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면 의인도 같이 멸망당해야 되지 않겠는가? 생각을 해서 그 다음 몇 명으로 낮췄습니까? 사십 오인만 있으면 어떡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십 오인만 있어도 멸망시키지 않겠다” 또 “사십인이 있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사십 인을 찾아도 멸망시키지 않겠다”, 하나님께서 그러셨습니다. 그 다음 무엇을 기도 했습니까? 본문 30절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라고 하였고, 또한 본문 32절에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감히 또 내 주께 말하리이다” “노하지 마옵소서” 또 “이번만 한 번 더 말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해서 참 예를 지키면서 말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말할 때 언제나 그렇게 말해야 되고 또 윗사람에게 말할 때도 그렇게 말해야 됩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때도 “감히 내가 이번만 말하게 해 달라”고 하고 또 “노하지 마옵소서”라고 하는 것은 노하지 않게 말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윗사람에게 말할 땐 노하지 않게 말하는게 중요합니다. 눈치를 봐서 기분이 좋을 때 말을 해야 합니다.
언제든지 상대방을 노하지 않게 하고, 허물을 가리어주고 도와주고, 기도도 해 주어서 진리운동을 같이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진리운동에 협조하는 말을 하고, 어떻게 하든지 전적으로 몸 바쳐서 일이 잘되어 나가도록 하면 그 일이 다 자기에게 돌아옵니다. 아무리 적게 한 것 같아도 다 돌아옵니다.

8. 의인 열 명을 찾으시는 하나님

의인이 기둥임

본문 29-32절에서 아브라함은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라고 하며 “의인 45인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40인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하고 고했습니다. 처음엔 5명씩 내려 오다가 그다음엔 10명씩 내려옵니다. “3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20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라고 하였는데도 하나님은 다 용서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최종에는 몇 명입니까? “10인을 찾으시면 어찌하시려나이까?”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10인을 인하여도 멸망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의인을 위하여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기둥입니다. 의인이 기둥이 되어서 멸망시킬 것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전이 다 무너지게 되었는데 의인 10명만 있으면 그 전이 무너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8절에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땅 위에 기둥들이 있는데 세계를 그 위에다 세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인이 기둥이라는 것입니다. 시편 11:3절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의가 터입니다. 이 세계는 다 멸망당하게 되는데 그 기둥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지 않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둥들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도 죄악이 관영해서 다 멸망하게 되었지만 의인들이 기둥을 잘 버티고 있으면 멸망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둥이 있으면 자기만 사는 게 아니고 그 나라 전체를 살립니다. 그 도시 전체를 멸망시키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둥의 사명이 아주 중대합니다. 의인 10명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의인 몇 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셨습니까? 의인 한 명입니다. 예레미야 5:1절에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의인 한사람만 있으면 예루살렘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의인

그러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의인은 어떤 의인입니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인되는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의인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의 의를 입은 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의와 합한 의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2:7-9절에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하였습니다. 롯이 음란한 행실을 보고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즉 롯은 죄를 보고 용납하지 않는 의인입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를 인해서 의로운 심령이, 상하고 고통당하고, 죄로 더불어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죄를 철저히 구별하며 안타까워하는 의인이라는 말입니다.
죄를 용납하는 것은 의인이 아닙니다. 죄를 용납하면 안 됩니다. 불의와 진리가 아닌 것을 분명히 규명 하여야 합니다. 아니면 ‘아니다’고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아예 갈라놓으란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성경말씀을 어기고 나가는데 이것이 잘못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탄식을 해야 됩니다. 마음이 상해야 됩니다. 의인은 죄를 미워하는 데서 의를 세워나가는 것입니다. 창세기 17:1절에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행하여 완전해진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 믿어도 의를 행하지 못하면 경건한 자가 되지 못합니다. ‘경건한 성도다’ 하면 벌써 의를 행한 성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2:9절에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신다”고 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3:12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경건하게 믿는 자를 기둥으로 삼으시고 전 세계를 붙들고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게 믿고 의를 행하며 세워나가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의를 세워나가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의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를 찾습니다. ‘교인 많이 모이는 교회가 어디 있는가?’를 찾는 것이 아닙니다.

요새 교역자들이 어디다 목적과 초점을 두고 목회합니까? 교인 많이 모이는데다가 목적과 초점을 두고 목회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인이 많은 교회가 있으면 용서한다고 했습니까? 다수를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의를 세워 나가는 교회와 교역자와 성도가 있는가?”와 “의를 세워 나가는 교단이 있는가?”를 찾습니다. “의를 세워나가며 경건하게 사는 성도가 몇 명이나 되는가?”를 찾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교회의 목적을 바로 정하고 초점도 바로 정해야겠습니다. 교인 많이 모이는데에 목적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교인 많이 모이는 교회와 많이 모으겠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목회한다면 그것은 타락되어 가는 것입니다. 많이 모으려니까 책망하지 못하고, 많이 모으려니까 교인들 비유 맞춰야 하고 듣기 좋은 말해야 되고, 많이 모으려니까 육신에게 좋은 말 해줘야 하고 죄를 다스리지 못하니 의가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인 많이 모이려는 생각을 가지면 진리를 세워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만 사랑하고 영접하여 믿고 의를 행하는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또한 소돔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것을 전감으로 삼아 하나님의 의를 세워나가려고 애쓰며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