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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에스라 1:1-11 고레스의 조서(詔書)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고레스의 조서(詔書)
에스라 1:1-11

1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2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3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4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 5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6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
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7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8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9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구요 10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 11금, 은기명의 도합이 오천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1. 고레스 왕의 포로 귀환 명령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응하게 하신 하나님

본문 1-2절에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은 주전 535년이라고도 하고 536년이라고도 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전에 예레미야가 기록한 그 성경을 응하게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유다 백성을 바벨론 포로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귀환 명령을 내리게 하셨음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 29장 10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고 하였고 예레미야 25장 11절에는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땅은 포로가 되어서 칠십 년간 황무해지고 칠십 년 후에는 유다 백성이 본국으로 돌아오게 되겠다고 예레미야가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한 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칠십 년 전에 예언한 것이고 에스라는 칠십 년이 된 후의 지금 포로 상태에서 돌아올 때의 사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그 말씀대로 반드시 역사하셔서 그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을 여기에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갈 때에는 느부갓네살 왕이 강퍅하고 바벨론의 군대가 강하고 무자비하게 나왔었습니다. 그들이 유다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성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을 다 헐었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눈알을 뽑고 자녀를 그 앞에서 죽이며 모든 재산을 다 빼앗아 포로로 잡아 가는 등 잔혹하게 침략하고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칠십 년이 지나고 나서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말씀으로 역사해주셨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죽고 그 이후 몇 사람의 왕이 지난 후에 바사(페르시아) 나라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다스리게 되었을 때 성경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여호와께서 감동시키신 것입니다. 

범사에 반드시 기한이 있다

잠언 21장 1절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의 마음이 강퍅하고 완악하고 사자와 같지만 그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어서 여호와께서 임의대로 그것을 주장하신다는 것입니다. 가둬 둔 저수지 물의 물길을 이쪽으로 열면 물이 이쪽으로 쏟아지고 저쪽으로 열면 저쪽으로 쏟아지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마음에 역사하시는 대로 그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 종으로 부리고 학대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노고를 겪게 한 원수의 핍박도 70년이라는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마귀의 종들이 각처에서 성도를 핍박하는데, 바벨론과 같은 이 세상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같은 마귀의 앞잡이와 그가 부리는 마귀의 종들이 강퍅하고 완악한 심정을 가지고 성도를 잔인하게 괴롭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종으로 부리며 잡아 죽이려고 하고 성도를 자기의 이용물로 삼으려고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다 멸망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세력은 어느 곳, 어느 때에라도 있는데, 직장에도 있고 동네에도 있고 가정에도 있습니다. 성도가 있는 곳은 어디이든지, 이 느부갓네살 왕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로 하여금 믿음을 지키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적 성전을 다 파괴시키려고 하는 마귀의 역사가 어디든지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반드시 기한이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70년이라는 기간이 있었던 것처럼, 성도를 핍박하는 마귀의 세력에는 반드시 기한이 있습니다. 7수는 만수인데, 하나님의 내정수의 기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내정수의 기간만 차면 그때에는 하나님께서 그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돌이키셔서 왕의 마음을 당신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예정대로 일하십니다. 70년을 예정해놓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대로 그때까지는 가만히 내버려 두신 것입니다. 그러나 기한이 차면 느부갓네살 왕과 같이 죽일 사람은 죽이시고 다른 왕을 세우셔야 할 때에는 다른 왕을 세우시며 또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실 것은 감동을 시키셔서 당신의 예정하신 뜻을 반드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무한하시며 절대적인 주권을 가지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막을 자는 절대 없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것을
그대로 하지 않을 자가 없는데, 그대로 하지 않는 자는 죽이시며 그 일을 이루십니다. 어떻게 하든지 당신의 백성들을 해방시키시고 자유를 주시며 원상회복을 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주셔서 하나님의 예정하신 복을 반드시 받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일시적으로는 마귀가 이기는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이기시는 것이므로, 기한만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일해주실 것을 확신하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바벨론의 세력이 다 녹아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는 사람이 막지 못합니다. 이렇게 택한 백성들에게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는 때가 반드시 옵니다. 자유와 해방과 생명 운동과 성전 건축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구원 운동이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절에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라고 하였는데, 고레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감동시키셔서 고레스로 하나님을 알게 만들어주셨습니다. 고레스 왕이 세상 여러 나라를 점령했는데,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것으로 깨닫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또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라고 하였는데, 어떠한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떤 영감으로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고레스 왕이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므로 즉시 그대로 실천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이상 지체하지 아니하고 즉시로 실천하기 위해서 조서를 내리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

본문 3절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순종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명령을 깨닫고 둘째는 감사하고 셋째는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고 하였고 또 “너희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해주었습니다. 

고레스가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하실 것이므로 빨리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원수 나라의 왕이 지금 하나님의 백성의 편이 된 것입니다. 70년 전에는 무자비하게 잡아 죽이고 멸망 시키고 성전을 불사르며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다 종으로 부리던 바벨론이었습니다. 그 바벨론 나라의 왕이 이제는 “올라가서 성전을 건축해라.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고 하며 180도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면 원수들, 마귀의 종 노릇하던 사람들도 180도로 전환이 됩니다. 핍박하고 잡아 죽이고 못 살게 하고 영적 성전을 다 무너뜨리려고 하고 파괴시키려고 하던 마귀의 종이 하나님께서 한 번만 감동을 시키시면 변하는 것입니다. 180도로 전환되어서 이제는 “성전을 건축해라. 하나님의 명령이다. 하나님께서 너희와 같이 하신다”고 하면서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핍박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인데,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변화를 일으키셔서 오히려 그들로 성전을 다시 건축하라고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입니다. 직장에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시고 길러주심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이제는 겨울이 다 지나고 해빙기가 되어서 얼어붙었던 얼음장이 녹아지고 양춘가절(陽春佳節)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라는 명령도 내려오고 들에는 모든 곡식을 심을 만한 아름다운 좋은 시절이 오게 되었습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나라에서 돌아올 때에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했다고 했습니다.
시편 126장에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들 돌이키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송이 찼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하는 말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연구하고 그것을 믿고 전하면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날이 반드시 온다는 뜻입니다. 눈물을 흘릴 때에는 안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대로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 생활할 때에 눈물을 흘리면서 그 말씀을 연구하고 고난당하는 가운데 말씀을 바라보고 말씀을 전하고 그대로 믿었는데, 말씀 그대로 이루어져서 이제는 포로 생활을 접고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6.25 사변 때에 이북에 유엔군이 들어오자 큰 기쁨에 넘쳐서 꿈인가 생시인가 꼬집어본 사람이 다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파서 이것이 꿈이 아닌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눈물 흘릴 일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눈물을 흘릴 때에 말씀을 바라보고 믿으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눈물을 흘릴 만한 때가 많이 옵니다. 어려운 고통, 환난, 시험, 죽을 고비에 빠지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말씀을 바라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믿어야 합니다. 또 자기도 믿고 다른 사람에게도 말을 해주면 반드시 말씀대로 거둘 날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 말씀대로 거두게끔 만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있으면 다 된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말씀을 뿌려 놓고 말씀을 믿으면 그대로 되기 때문입니다. 말씀은 아무리 견고한 바벨론 세력이라도 다 깨뜨려버릴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완악한 바로 왕의 세력이라도 다 깨뜨려 내버릴 수 있습니다. 말씀은 자유와 해방을 주시고 구원운동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2. 유다 인이 일어나매 이방 사람들이 도와줌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옴

본문 4절에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찌니라 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사람을 각처에서 도
와주라는 것입니다.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은 유다 백성을 가리키고 ‘그곳 사람들’은 바벨론 사람을 가리킵니다. 유다 사람이 어느 곳에 있든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할 때에 그 동네 사람들(바벨론 사람들)이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도와줍니까?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라고 하였습니다. 도와주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을 위해서 예물을 즐거이 드리려고 하는 사람은 다 드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건축을 위해서 예물을 드리고 싶은 사람은 가지고 가는 것을 얼마든지 줄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명령을 고레스 왕이 내린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이전에는 바벨론에서 군대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의 금과 은과 백성들을 다 빼앗아 갔는데 이제는 돌아올 때에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도와줄 뿐만 아니라 성전 짓는 데 필요한 예물을 바칠 만한 사람은 바치라는 것입니다. 180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헐던 사람이 도리어 짓게 만들고 빼앗아 가던 사람이 도리어 주고 먹었던 사람이 도리어 먹을 것을 주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삼손이 수수께끼를 한 것과 같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라고 하는 말처럼, 나를 잡아먹으려는 곳에서 먹을 것이 나오고 사자와 같이 강퍅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는 것을 가리킵니다. 잔인하여 물어뜯는 사자에게서 먹을 것과 단 것이 나왔으므로,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사자와 같은 사람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거기에서 먹을 것이 나오고 단 것이 나올 수있기 때문입니다. 사자를 보기 싫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자가 오늘은 이를 드러내며 당장에 공격해서 상처를 내고 물어뜯어 잡아먹을 것 같이 굴어도 그 사자를 가만히 두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두면 거기에서 먹을 것이 나오고 단 것이 나옵니다. 사자가 앞으로 좋은 것으로 먹여주고 또 단 것을 얻을 수 있게 해줍니다.

핍박하던 사람이 갑자기 돌아서서 잘해줄 때에는 제 살이라도 베어 먹이려고 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과거에 한국 교회를 많이 핍박하고 교역자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했는데 한편 그 사람들이 한국을 도와주고 한국 백성들을 많이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먹는 자에게서 먹을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잡아먹힌다고 해서 걱정할 것이 없고 잡아먹으려 한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잡아먹게 하셔야 잡아먹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물어뜯게 하셔야만 물어뜯을 수 있지, 사자가 아무리 잔인하다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잡아먹을 수 있습니까? 못 잡아먹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들의 목을 양쪽 기둥들에서 붙잡아 매어놓으십니다. 그래서 이 놈이 이쪽으로 바로 잡아먹을 듯이 오는 것처럼 보여도 끈에 걸려서 결국 오지 못하고 저편에 있는 놈이 오려고 해도 끈에 걸려서 못 오게 하시는 것입 니다. 지나가는 사람은 사자 사이 가운데로만 들어가면 되는 것입니다.
정로(正路)로만 가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리 사자와 같은 마귀의 종들이 우리를 잡아 삼키려고 해도 하나님께서 잡아먹지 못하도록 만들어놓으신 대로 역사해주십니다. 그러다가 거기에서 단 것이 나오고 먹을 것이 나올 때가 반드시 오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나도 그것을 한 번 경험해 보았습니다. 어떤 분이 하나 있었는데 형편없이 핍박을 하고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나를 욕하고 매장을 하고 안한 것을 했다고 하고 죄를 지었다고 별 소리를 다 하면서 돌아다니는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만나면 꼭 죽이려는 듯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만히 두었습니다. 그랬더니 몇 년 후에 꿀을 한 병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야, 참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온다고 하더니 진짜 단 것이 나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 받겠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전에 신세를 많이 지었다고 굳이 받으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만히 두고 내가 바로 나가면 거기에서 단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바벨론 나라 왕이 어떻게 유다 사람들을 돌려보낼 수 있었겠습니까? 유다 사람들을 종으로 부려야 벽돌도 굽고 모든 공사를 다하게 되어 있는데, 유다 사람들을 보내어 일꾼이 다 없어지면 누가 벽돌을 굽고 누가 일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러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
니까? 돌려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니까 “돌아가라. 또 (바벨론 사람들에게) 도와주라”고 하며 성전을 헐고 불사른 바벨론 왕(물론 왕은 바뀌었지만)이 성전을 짓기 위해서 예물까지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방 나라 왕도 하나님께서 붙들고 역사하시고 주장하셔서 하나님의 구원 운동에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말씀만 지켜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하나님의 역사로 당신의 예정하신 뜻대로 하나님의 영적 구원 운동을 반드시 이루어나가십니다.

바벨론에 머물지 말고 즉시 일어나라

본문 5-6절에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감동이 될 때에 즉시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 왕을 감동시키셔서 유다 사람들로 본국으로 돌아가서 성전지을 기회를 주셨습니다. 또 그때에 유다 사람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즉시로 순종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금 있다가 올라가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감동이 될 때에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즉시로 순종해야 합니다.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 일시에 “일어나서 올라가자”하고 만사를 제쳐두고 올라가고자 하는 결심을 가지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올라가는 일은 영적으로는 좋은 일이지만 육신적으로는 고난이 많습니다. 황무지에 가서 무엇을 먹고 살겠습니까? 어떻게 살겠습니까? 그것이 큰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황무지를 건설하겠는가? 또 무슨 돈으로 건설을 하겠는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많았습니다. 또 올라가는 길은 머나먼 길, 몇 천 리가 되는 길입니다. 걸어가면 넉 달이 걸리는 길입니다. 가는 길에는 도적도 많고 강도도 많습니다. 그렇게 위험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예산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에 가야 되겠다’고 하며 무조건 일어서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것이 육신적으로는 평안합니다. 오랫동안 거기에 살았기 때문에 이제는 자리가 다 잡혀 있습니다. 집도 있고 직장도 있고 평안하게 살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내버리고 올라간다고 하는 것은 모험적인 신앙입니다. 그래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올라가자고 하며 일시에 다 일어났습니다. 가다가 길에 어떠한 위험이 있겠는지, 황무지에 가서 어떻게 살겠는지, 어떻게 성전을 짓겠는지에 대한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믿음으로만 나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평안보다는 영적인 자유와 해방과 생명과 예루살렘 건설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다 일어섰습니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그런데 아무 예산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무조건 올라가려고 일어서니까 하나님께서 사면에 있는 그 부근 사람들을 감동시키셔서 다 도와주게 하셨습니다. 일어서니까 도와주는 것입니다. 도와줘야 일어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때에 무조건 말씀대로 하려고 일어서니까 본문 6절에 “그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고 하였습니다. 나가자고 하고 나가니까 하나님께서 물질을 주신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안 나가는 사람은 안 주십니다. 아예 예산을 다 해놓고 나가려고 하면 못 나갑니다. ‘하나님의 명령이면 나가자”하고 벌떡 일어서서 나가면 모자라는 것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사방 사람들이 무엇을 주었습니까? 은그릇, 황금, 기타 물건, 짐승, 보물, 예물을 다 주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 일어서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없다. 무엇이 없다”고 하는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나가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학개서 2장 8절에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네게 필요한 것은 내가 준다. 그러니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욕심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서라고 할 때에 일어서고, 나가라고 할 때에 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또 영적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실 때에 영적 성전 건축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어디에 있는 은을 가져다주실지 어디에 있는 금을 가져다주실지 모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금, 은, 보물, 예물, 짐승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에 당나귀를 주시고 또 애굽으로 피난 갈 때에는 동방 박사들을 통해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주셨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찬 예식을 할 때에는 마가 요한의 다락방을 준비했다가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있는 금, 은, 당나귀, 그릿 시냇가, 과부네 집, 수넴 여자의 다락방 등 모든 필요한 것을 준비하셨다가 다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성전을 건축하려고 벌떡 일어서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명령하지도 않으셨는데 욕심을 가지고 해봐야 되겠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심으로 결국 넘어집니다. 욕심은 버리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대로만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어디에서 가져다주실지 모릅니다.

본문에서도 필요한 재물들을 바벨론 사람을 통해서 공급하실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전에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00년 종살이를 하고 나올 때에는 애굽 사람들이 은, 금을 주면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사람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돈이 없다. 은이 없다. 금이 없다”고 하는데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인데 순종하지 않고 인간의 생각대로만 하려고 하니까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됩니다. 또 돈을 벌어서 하겠다는 사람은 안 됩니다. 여기 어디 돈 벌어서 하라고 했습니까? 나간다고 하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다 주시게 되어 있는데 “여보시오. 나는 나갈까 하는데 당신네가 도와주면 나가고 안 도와주면 안 나갑니다. 주겠소. 안 주겠소. 얼마나 주겠소?”하면 하나도 안 줍니다.

아예 그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가라고 하셨으므로 “예”하고 벌떡 일어서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보시오. 우리 집에 무엇이 있소. 은 좀 가지고 가시오. 금 좀 가지고 가시오. 보물 좀 가지고 가시오. 예물도 다 드립니다”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나가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주시지, 받은 다음에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안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갑니다”하니까 다 도와주었습니다.

3. 성전 기구들을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냄

믿음으로 나가면 택한 백성들을 예비해두셨다가 보내주심

본문 7-11절에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그 수효는 금반이 삼십이요 은반이 일천이요 칼이 이십 구요 금대접이 삼십이요 그보다 차한 은대접이 사백열이요 기타 기명이 일천이니 금, 은 기명의 도합이 오천 사백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고 하였습니다. 고레스 왕이 성전 기명을 자기 신들의 당에서 꺼내어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두 가지고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옛적에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금, 은 기명을 가져다가 자기 신당에다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더러는 신당에서 우상을 섬길 때에 사용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고 있던 성전 기명들인데 올라가려고 하니까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해서 다 꺼내 오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계수하자 금반(상)이 삼십, 은반(상)이 일천, 칼이 이십 구, 금대접이 삼십, 은대접이 사백 열, 기타 기명이 일천으로 모두 오천 사백인 것입니다. 상당히 많이 가져다주었습니다. 이것이 다 신당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영적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은 상상 밖으로, 생각 하지 못했던 모든 것들을 다 얻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나가면 택한 백성이 어디서 나올지 모릅니다. 그 신당에 가서 옛날 성전 기명이 어디에 있나 없나를 보려고 하다가는 매나 얻어 맞고 감옥에 갇힙니다. 남의 신당에 가면 잡힙니다. 그 신당에 가서 찾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믿음을 써서 순종해 나가면 금과 은 그릇이 무더기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릇은 다 나오게되어 있습니다. 그 신당에서 그릇이 나올지 누가 알았습니까?
그러므로 개척 교회를 할 때에 어디에서 교인들이 올지 모릅니다. 또 전도할 때에 신당에서 택한 백성이 나옵니다. 귀신 섬기는 데에서 우상 섬기는 사람이 쑥쑥 나오고 불교에서 중들이 쑥쑥 나오고 무당이 다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나올 수 없는 곳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있다가 쑥쑥 다 나오는 것입니다. 금대접도 나오고 은대접도 나오고 은상도 나오고 금상도 나오고 은칼도 나오는데 전부 오천 사백이라는 많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것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 유다 사람들이 고레스 왕에게 달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령의 감동대로 올라가려고 일어선 것 뿐입니다. 그때에 고레스 왕이 하나님의 기명들을 신당에서 가져다가 뚝뚝 떼어서 가지고 가라고 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올라가는 사람에게는 걱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들을 다 맡겨서 가지고 가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올라가지 않으면 안 주십니다. 교회가 안 되는 이유는 올라가지 않아서입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이유는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지 않고 일어서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일어서서 올라갈 때에 성도를 주십니다. 그릇을 주시는 것입니다. 올라가지도 않고 일어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도를 주실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하는데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안 주십니다. 일어서면 그릇이 어디에선가 모르게 쑥쑥 나오는 것입니다. 나올 수 없는 데에서 나옵니다. 신당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다. 나올 수 없는 데에서 하나님의 것이 나옵니다. 거기에 하나님의 것이 있습니다. 절에도 있을 수 있고,사방에 다 있습니다. 어디에서 나올지 모릅니다. 핍박하던 사람에게서 나오고 반대하던 사람에게서 나오고 나올 수 없는 데에서 하나님의 기명이 다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의 하나님, 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만능의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다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잘 깨달아야겠습니다.

여기 세스바살이라는 감독이 나왔는데, 이 사람은 성전의 모든 기명을 다 맡아서 감독하는 사람입니다. 이 세스바살을 스룹바벨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스룹바벨을 바벨론에서는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니엘을 바벨론에서 벨사살이라고 부른 것처럼, 스룹바벨을 아마 세스바살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 같습니다. 스룹바벨이 감독이 되어서 이 기명을 다 가지고 여러 사람을 거느리어 예루살렘으로 성전을 건축하려고 출발해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만능입니다. 백성들은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났는지 꿈꾸는 것처럼 꿈인가 생각을 하면서 기쁘고 즐거움으로 올라왔습니다. 시편126편의 내용처럼 말씀을 믿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씀을 뿌리고 그 말씀을 바라보고 전했던 대로 이제야 일이 이루어졌구나 하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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