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옮겨 놓으라
요한복음 11:3-44
요한복음 11:3-44
3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가로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4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5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6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7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11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5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 16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17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마르다는 예수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맞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24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 25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7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28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형제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의 맞던 곳에 그저 계시더라 31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의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보이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33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34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 하며 37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39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 41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저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43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44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
1. 나사로가 병들어 죽음
베다니라 하는 동네에 나사로라 하는 사람이 살았는데, 나사로에게는 ‘마르다와 마리아’라는 누이 두 명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가정을 때때로 방문하시고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들어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누이들이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하며 빨리 오셔서 살려달라는 기별을 했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들으시고 가라사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의 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났다, 는 것입니다.
병이 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죄 때문에 나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려는 것, 마귀 때문에 나는 것, 자기 잘못으로 인해서 나는 것, 하나님의 징계로 나는 것 등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여 병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즉시 가셔야 하겠는데, 머무르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유하고 가셨습니다. 본문 6-10절에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는 밤 12시, 낮 12시로 하여 하루가 24시간입니다. 즉, 저녁 해질 무렵인 6시부터 새날이 시작 되어 다음 날 저녁 6시가 되면 그 날이 끝납니다. 그래서 밤 12시간 낮 12시간, 그것이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낮 12시간이라고 하셨습니다. 낮 12시간에는 사람이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계실 때는 낮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같이 있으면 밤을 만나지 않고 실족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본문 11-12절에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깨우러 간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제자들이 듣고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14절에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것을 예수님께서는 잠들었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말한 것이 여러 곳입니다. 잠들었다는 말은 생명이 그냥 있다는 뜻입니다. 잠든 사람은 생명이 그냥 있습니다. 세계만 바뀌어졌습니다. 현실 세계에서 꿈 세계로 바뀌어졌다는 말입니다. 세상 떠난 성도도 현실 세계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은 잠든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잠든 것은 내일 아침에 깨어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다시 부활합니다. 부활할 것이므로 잠든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잠든 것입니다. 잠든 것은 ‘생명이 그냥 있다, 또 이제 부활한다, 깨어난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 가셨습니다. 마르다가 먼저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말을 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와서 하는 말이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러나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참 좋은 말, 기쁜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마르다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본문 24절에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에 나사로의 집에 가셔서 가르쳐 주신 내용입니다. “사람이 죽지만 마지막 날 부활한다, 다시 산다”하는 것을 마르다가 예수님께 배웠는데, 그녀는 이 말을 그대로 믿었습니다. ‘죽었지만 마지막 날 다시 부활할 것을 믿습니다’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참 믿음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께서는 전에 가르쳐 주신 ‘부활하여 다시 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하여 여기 오셨습니다.
3.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이것을 네가 믿느냐
본문 25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모르던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이며, 생명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부활이시기 때문에 다시 살아납니다. 또, 예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에 예수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을 언제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에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그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큰 환난을 받아서 다 죽은 것 같았지만 “나는 부활의 주님이다, 너도 살린다, 다시 살리는 주님으로 찾아왔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으로서는 소망이 없는 것 같을 때가 있지만, 주님은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그 주님을 영접하면 다시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고, 또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다시 살려주시고, 생명의 주님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그 다음에 마르다가 들어가서 마리아를 불렀습니다.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고 하니 마리아가 집에 있다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예수님께로 나갔습니다. 위문을 하러 왔던 많은 사람들도 마리아를 따라서 함께 나왔습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와서 그 발 앞에 엎드리어 가로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까지만 알고 있으며, 또 마지막 날, 부활 때에 다시 살아날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조금 전에 배운 것이 있습니다. ‘예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다시 살아난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은 안 죽는다’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방 안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못 배웠습니다. 진리를 못 배웠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죽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또 마지막 날 다시 살 것을 믿는다’, 여기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리아가 진리를 많이 배웠지만 마르다가 배운 것은 못 배웠습니다. 마르다는 그것을 배워서 이제 나사로가 다시 살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주님이시므로안 죽는 것을 믿습니다. 또,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시므로 안 죽을 것을 믿습니다.
본문 33절에 “예수께서 그의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의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가라사대 그를 어디 두었느냐 가로되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 하니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를 어디 두었느냐”하니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하고 무덤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께서는 일생 동안 세 번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첫 번째는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바라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두 번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세 번째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왜,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까? 나사로가 죽은 것이 불쌍해서 눈물 흘리신 것이 아닙니다. 이제 살리러 가는데 무엇이 불쌍합니까?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부활이요 생명 되시는 그리스도가 여기에 와 있는데, 즉 생명의 주님이 여기에 와 계신데 그들이 나사로가 생명 없다고 울고 있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여기 와 있는데 생명 없다고 우는 것을 보시니 너무 안타까워 눈물 흘리신 것입니다. 생명이 있는데 없다고 하니 다 소경들입니다. 다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 사망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주님인 줄 믿었더라면 눈물을 흘릴 것이 없습니다. 마르다는 눈물을 안 흘렸을 것 같습니다. 마르다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전에 배우지 않았습니까? 또, 예수님께서 “나사로가 다시 살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살 것을 믿는데 왜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살리실 것인데 왜 눈물을 흘리겠습니까?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생명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있는데 없다고 하니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입니까? 부활의 주님이 왔는데 부활하지못할 것으로 알고 우니까, 생명의 주님이 왔는데 생명이 없다고 우니까, 소망이 있는데 소망이 없다고 우니까, 그래서 그것이 불쌍하여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통분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아 놓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 앞에 가신 것만 해도 상당히 큰 역사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 무덤 앞에 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은사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찾아오셨고, 생명의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무덤 앞에 계십니다. 그들 가운데 함께 계십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 오셔서 자기네 가운데 계신데, 문제가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해결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 함께 계시면 다 해결된 것입니다. 죽었다 해도 살려내시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생명이 없다 해도 생명이 여기 왔는데, 무엇이 걱정입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려 놓으려 하시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알게 해주시려는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모르므로 그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생명의 주님을 모르므로 그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의 주님이요, 생명의 주님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우리를 살리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목적은 살리려는 것입니다.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 주시려고 찾아오셨고, 부활 시켜주시려고 찾아오셨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고 찾아오셨고, 우리를 생명의 세계로 인도하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4. 돌을 옮겨 놓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본문 39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가로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실 때 마르다가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희망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돌을 옮겨 놓아야 희망이 없습니다, 안 됩니다, 벌써 일이 다 틀어졌습니다, 썩어져서 냄새가 납니다, 돌을 옮겨 놓아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본문 4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믿으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명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살려주시는 예수님을 믿으라,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라, 네게 생명을 줄 것을 믿으라”, 이에 “믿습니다, 믿습니다”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
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안 된다는 생각은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안 된다, 희망이 없다, 다 틀어졌다, 썩어졌다, 냄새가 난다, 다 끝장났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 믿는다는 것에는 순종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해주실 것을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산 믿음입니다. 믿고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순종해야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다 죽고 냄새가 나는데 돌을 옮겨 놓아야 무엇을 하겠느냐, 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오셨으면 안 죽었을 텐데, 이제는 다 죽어 냄새가 나는데, 무엇을 하겠습니까, 라는 것입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통지를 받고도 왜 미리 안 오시고 이틀을 더 있다 오셨습니까?, 즉시로 오셔서 안 죽게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가는데 하루, 또 예수님께서 머무르시던 곳에 이틀을 더 계시므로 사흘, 예수님이 오시는데 하루, 이렇게 하여 나흘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 틀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즉시로 오지 않으시고 이틀을 더 있다가 오셨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즉시 와서 안 죽게 해주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겠습니까? 또 그 이후로도 웬만하면 예수님을 청하려 할 것이고 그래서 죽을 만하면 예수님을 청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쁘시기 때문에 그렇게 시간을 내실 수가 없습니다. 이틀 뒤에 오신 것은 다 죽은 다음에, 장사 다 지낸 다음에, 썩어진 다음에, 사람의 소망이 다 끊어진 다음에 와서 살려 놓아야 예수님
이 부활이요 생명인 것을 사람들이 믿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믿게 하시려고 이틀을 더 계시다가 오신 것입니다. 즉, 나흘 만에 오신 것입니다. 죽은 지 나흘 만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것을 믿게 하려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이틀을 더 있다 오셨습니다.
이처럼 기도를 빨리 들어주시는 것도 좋지만, 오래 있다 들어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빨리 들어주시면 자기가 기도해서 된 것처럼 자기의 공로를 나타내려 하고, 또 ‘이래라, 저래라’하는 식으로 하나님을 심부름꾼처럼 시켜 먹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심부름꾼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오래 있다가 들어주어도 좋은 것입니다. 기도하면 즉시로 들어주셔도 좋고, 오래 있다 들어주시면 더 좋고, 그렇게 알면 됩니다. 예수님께서 즉시로 들어 주시지 않는 것은 인간의 소망이 다 끊어진 다음에, 인간의 힘과 방법이 다 끝장난 다음에 도와주시려는 것입니다.
조금 모지랄 때 도와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실 때에도 포도주가 없어서 당황할 때, 포도주 항아리에 포도주가 바닥이 나고 없을 때, 그때에 항아리에 물을 부어 포도주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것이 다해진 다음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십니다. 사람이 ‘희망이 없다’하는 것은 하나님께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직도 ‘희망이 있다’하는 것은 희망 없는 것입니다. 다 죽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왜, 희망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지 않으셨으면 아무 희망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모든 희망이 다 생겼습니다. 부활의 희망이 생기고, 또 영원히 죽지 않을 희망이 생기고, 하늘나라의 희망이 생겼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 계시면 모든 희망이 다 생깁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나사로를 살려내시려고 돌을 옮겨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르다는 돌을 옮겨 놓아야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다 썩어져 냄새가 나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 안 된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되게 해 주실 것인지 어떻게 압니까? ‘안 됩니다’하면 자기가 하나님입니까? ‘못 살아 난다’,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지 어떻게 압니까? ‘이제는 다 죽었다’, 하나님께서 안 죽게 해주실지 어떻게 압니까? 사람이 희망이 없을 때에 하나님의 희망이 있는 것이고, 사람이 힘이 다 없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고, 사람이 이제는 다 틀어졌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희망이 없다’하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희망이 없다. 다 틀어졌다’할 때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 죽었다’할 때에 살아날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 썩어졌다’할 때에 썩어진 것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것을 살려 놓으시고, 썩어진 것을 살려 놓으시고, 사람이 내어 버린 것을 살려 놓으시는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저 살려 놓으시면 좋겠는데, 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능력으로 살려 낼 수 있는데, 왜 돌을 옮겨 놓으라 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시켜서 예수님이 하시고자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살려 놓는 일도 순종을 시켜서 살려 놓으시고, 부활도 순종을 시켜서 살려 놓으시고, 생명을 주시는 것도 순종을 시켜서 주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 할 때에 ‘희망이 없다, 냄새가 난다’하지 말고 ‘예’하고 옮겨 놓으면 됩니다. 옮겨 놓으면 살려 내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나는 옮겨 놓는 것만 하면 됩니다. 순종만 하면 됩니다. ‘순종해야 아무 쓸데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지 누가 압니까? 순종하면 아무 쓸데없이 괜히 헛수고만 할 것 같고, 냄새만 더 날 것 같고, 일은 더 커질 것 같아도 주의 명령에 “옮겨 놓아라”하실 때에 옮겨 놓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순종하여야 합니다. 희망이 없다고 내어 버리지 말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제는 다 썩어졌다고 생각하지 말고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실 때 순종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살려 놓으시는 예수님이신데, 왜 죽이시겠습니까? 반드시 살 길로, 부활의 길로, 소망의 길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만 하면 됩니까? 돌만 옮겨 놓으면 됩니다. 돌만 옮겨 놓으면 일은 하나님께서 해 주십니다. “돌을 옮겨 놓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에 “예”하고 옮겨 놓으면 됩니다. 나흘이 되어 썩어졌어도 괜찮습니다. 돌만 옮겨 놓으면 됩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아니라 사십 일이 되었어도 괜찮고, 사십 일이 아니라 사 년이 되었어도 괜찮습니다. 죽은 지 사십 년이 되었어도 “돌을 옮겨 놓으라”하실 때에 옮겨 놓으면 예수님께서 살려 내십니다. 냄새가 나는 것은 아직도 시초입니다. 냄새가 나고, 뼈다귀까지 다 썩어져서 흙이 되었다고 해도, 화장해서 연기가 되어 다 없어졌다고 해도, 물에 빠져서 다 풀어져 없어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돌을 옮겨 놓으라”하실 때에 옮겨 놓으면 살려 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려내실 것을 믿어야지 못 살려내신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가 마땅히 옮겨 놓을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 명령하시는데 그것을 잘 찾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무엇을 하라는 것이 다 있습니다. 그것만 하면 하나님이 살려 내십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 하실 때에 그것을 가져오니까 오천 명을 살려 내지 않으셨습니까? 또, 당나귀도 바치니까 예수님께서 당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왕의 거동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마가 요한의 다락방도 순종해서 내어 놓으니까 예수님께서 그곳에서 성찬 예식을 거행하시고 또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우리에게 명령하는 바를 아낌없이, 주저 말고 순종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이 시점에서 어느 것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현재 어떤 것을 순종해야 하겠습니까? 이것을 잘 찾아서 순종을 잘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살려 내십니다. 처음에는 ‘안 된다, 썩어졌다’하다가 이들이 돌을 옮겨 놓았습니다. 옮겨 놓으니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감사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하셨고 죽은 나사로가 벌떡 일어나 나왔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되었는데, 벌떡 일어나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가 생명입니다.
최유선 선교사는 이 말씀을 가지고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였기에 나사로만 나왔지, 만약에 “죽은 자여 나오너라”하였다면 창세 이후로 죽은 모든 자가 다 나올 뻔 했다고 말했습니다. 나사로 한 사람만 나오라고 하여서 나사로 하나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나사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죽은 자야 나오라”하셨으면 아담 때부터 죽은 사람들이 다 나올 뻔 했습니다. 이번에는 나사로만 나오라고 하셨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자던 성도여 나오너라”고 하시면 죽은 성도들이 다 나와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산 성도는 부활해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오너라”하면 우리가 “예”하고 다 나가는 것입니다. 죽지 않았다고 해도 우리 생명이 나가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아 나오너라, 러시아 사람들아 나오너라”하면 다 나옵니다. 또 “이북 사람들아 나오너라”하면 이북 사람들이 다 나옵니다. 또 “신학교 학생들아 나오너라”고 하면 다 나옵니다.
금요일에 성경공회가 있었는데, 약 육십 교단이 모였습니다. 그곳에서 계약신학대학교대학원에 학생들이 많이 왔다고 소문이 났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너무 많이 왔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것도 어떻게 많이 왔는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신 것처럼 신학생들을 불러 그들이 다 온 것입니다. 이 다음에 누가 세상을 떠나면 그 사람 이름을 부르면서 “나오너라”하면 조금 있으면 나옵니다. 다 살아납니다. 일이 다 틀어진 것 같아도 안 틀어진 것입니다. 사람의 소망이 없는 것이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오너라”하니까 나사로가 벌떡 일어서 나왔습니다.
5. 살려 낸 다음에는 사람이 할 것을 하여야 함
본문 44절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나사로가 수건을 동인 채로 나왔는데, 예수님께서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할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돌을 옮겨 놓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살려 내셨는데, 그 이후에 사람이 할 것이 무엇입니까? 얼굴을 쌌던 수건을 풀어 놓는 것입니다. 살려 낸 다음에 사람이 할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하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