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사람의 생활
골로새서 3:12-17
골로새서 3:12-17
12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니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13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4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15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 곧 거룩하고 사랑하심을 받는 자들답게 인애와 친절과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어라.
3: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3:14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여라.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이다.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여라. 이 평화를 위해 너희가 한 몸 안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너희는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풍성히 살게 하여라.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여라.
3:17 또 너희는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려라.
3: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여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여라.
3:14 그리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여라.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이다.
3:15 그리스도의 평화가 너희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여라. 이 평화를 위해 너희가 한 몸 안에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너희는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안에 풍성히 살게 하여라.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하여라.
3:17 또 너희는 말을 하든지 행동을 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모든 것을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려라.
1.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
본문 12-15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외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옷을 무엇으로 입으라구요? 면으로 된 것입니까 나일론으로 된 것입니까? 예, 긍휼의 옷을 입고, 자비의 옷을 입고, 충성의 옷을 입고, 온유의 옷을 입고, 오래 참음의 옷을 입고, 겸손의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옷이라는 것은 인격을 입으라는 말입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의 인격을 좀 더 입으라는 것입니다. 보통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옷을 좀 더 입어 나가야 합니다. 좀 더 온유하고, 겸손하고 긍휼이 있고 자비한 그 옷 좀 입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교역자가 이런 옷을
더 입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므로 교역자가 좀더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 같은 이런 옷을 입으면 좋겠습니다. 교인들도 이런 옷을 더 입어야 합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은 어떻다고 했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습니다. 온유하고 겸손의 옷을 예수님께서 입으셨는데 우리도 온유하고 겸손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특별히 부인들이 온유하고 겸손한 옷을 더 많이 입었으면 좋겠습니다.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했는데, 대답을 해도 유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께서 결혼주례하실 때에 유순한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하느니라는 말을 하시고는, 결혼 선서를 하게 할 때 보통 신랑이 예! 하고 힘차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하지 말고 부드럽고 조용히 네~에에에, 하며 대답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신랑 안에 있던 분노가 다 사라진다고 말입니다. 그러면 걱정이 없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했는데, 대중 앞에서의 대답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값을 수가 있습니다. 대답 한마디로 분노도 쉬게 하고 대답 한마디 유순하게 함으로 사랑도 받고 유순하게 하면 다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산다, 못 산다 이래 가지고서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마귀 일만 해주고 마는 것입니다. 여자의 단장을 고요하고 안정한 심성, 온유하고 안정한 심정을 갖는 것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언제나 유순합니다. 제가 잘했어도 큰 소리 치지 않고, 잘 했어도 유순하라는 것입니다. 유순하면 다 이깁니다. 유순한 것이 이깁니다. 뻣뻣한 것이 집니다. 강하게 나가면 부러집니다. 유순하면 이깁니다. 뿔 부러진 소 가운데 어진 소가 없습니다. 성질이 뻣뻣하니까 뿔이 부러진 소가 많습니다. 유순하면 부러질게 있겠습니까? 또 딱딱하고 강한 이가 빠진 사람은 많아도 부드러운 혀가 빠진 사람은 없습니다.
여자들이 남편을 이기는 법을 알려면 유순함을 배우면 됩니다. 유순함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여자가 무조건 유순함으로 나가면 남편이 아무리 강하게 나와도, 결국 유순한 것에 집니다. 둘 다 강하면 하나가 부러집니다. 부러진 부부들을 보면, 강한 부부들이 부러집니다. 온유, 겸손한 자가 참 하나님의 긍휼도 베풀어 주고, 겸손한 자가 이기고, 온유한 자가 이기는 것입니다.
2. 피차 용서하고 사랑을 더하라
또한 누가 누구에게 혐의가 있으면 주께서 나를 용납하신 것처럼 피차 용납하고,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 모든 것 위에 무엇을 더하라고 했습니까?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습니다. 진리에 어긋나는 경우에는 진리를 양보할 수가 없습니다. 진리만큼은 양보 못하지만, 온유하게 나가는 사람은 그 모든 것 외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라고 했는데, 사랑을 더하면 그것이 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때 띠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띠를 띠어야만 옷이 제대로 갖추어지는데 그와 같이 하나님의 띠를 띠고 사랑으로 다 포섭을 해야 합니다. 사랑의 띠를 띠고 나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본문 15절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속에 와서 넘쳐흘러야 합니다. 풍성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은 영적 평강이요, 하늘에서 오는 평강인데 세상이 알지 못하고 받지도 못하는 평강입니다. 또 세상적으로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다 초월한 평강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믿는 사람 속에 온전하게 머물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장하시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영, 그 영의 주장을 받고 인도를 받으면 온전히 평안한 마음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아무리 환난과 궁핍과 어려운 고통 가운데 처해 있어도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 있으면 항상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언제나 우리 속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주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의 주장을 받아서 모든 것을 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불쾌한 마음, 원망하는 생각, 불만, 불평, 남과 원수지는 것, 보기 싫은 것, 이러한 것들은 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반대면 무엇입니까? 평강의 반대가 무엇입니까? 불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반대는 또 무엇입니까? 마귀입니다. 즉, 마귀의 불안, 불만, 마귀의 고통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마귀의 고통 가운데 빠지는데,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아무 일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일 잘하려고 해도 마귀를 못 이깁니다. 즉,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데서부터 하나님의 일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모든 손해를 다 당하더라도 내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모든 걸 다 빼앗긴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평강만은 빼앗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로 다 갖다 주십니다. 또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벌써 더 좋은 것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자기를 주장하시니 예수님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내게 있는 모든 것 보다 예수님이 더 좋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은 것은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은 것이므로 천하만국 보다 더 큰 것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평안하고 기쁘다’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 있는 사람은 세상으로 볼 때에는 근심이 가득 찬 것 같고, 근심할 조건이 굉장히 많이 있지만 항상 기뻐합니다. 또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합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그 속에서 주장하면 세상적으로 아무리 어려운 환난, 고통이 많아도 언제나 평안한 것입니다. 그저 ‘나의 맘속이 늘 평안해’하며 평안한 마음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말할 수 없는 근심과 고통과 걱정거리가 많을지라도 기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고 영적 세계에서 그의 주장을 받을 때에는 평안한 마음이 들어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찾을 수 없습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고 항상 깨어 기도하고 영적인 세계를 찾아서 그리스도의 인도와 주장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평강이 언제나 넘쳐흐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늘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사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이 세상은 언제나 고통과 환난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늘 그리스도의 평강을 가지고 세상을 다 이겨나가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건져주신 목적,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입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것은 평강을 위한 것입니다. 속죄의 은혜와 구원의 평강을 주신 것입니다. 그 구원 받은 결과는 평강입니다. 영적 생명으로 살 때에는 우리에게 평강이 옵니다. 즉, ‘너희에게 영적 구원을 주기 위해서 너희를 건져서 한 몸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불러 주셨다’하는 뜻입니다.
4. 감사하는 자가 되라
또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온전히 누리고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모든 염려를 어떻게 합니까? 다 주께 맡겨야 합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주님이 다 맡아서 권고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맡아서 하는 것보다 주님이 그 염려에 대하여 더 잘 처리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또 억울한 것들과 원수 갚을 만한 일들을 다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주께
맡기면 주님께서 그 원수를 갚아 주십니다. 원수를 주님이 갚아 줘야지, 자기가 갚을 수 없습니다. 자기도 망하고 상대방도 망하게 만들고, 둘 다 망합니다. 또 혈육으로 대결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억울한 일이 많고 손해 보는 일이 많고 싸워야 할 일이 많고 참을 수 없는 일이 많지만,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주님이 잘 해주실 것으로 가져야 합니다. 주님께 부탁하면 잘 해주실 것 아닙니까? 내가 하는 것보다 주님이 얼마나 더 잘 해주시겠습니까? 주께 맡겨놓고 우리는 그저 믿는 일만 하는 겁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고 그의 뜻대로만 나가고 예수님만 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은 다 주님께서 해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얼른 맡겨야 합니다.
또 기도 할 때에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가지고 놀고 싶지만, 아버지는 그것 말고 다른 것을 가져야 한다고 할 때에는 ‘다른 것 주셔도 좋습니다’라고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합니다. 아이들이 면도칼을 달라고 하면 어른들이 안 줍니다. 그것을 꼭 가지고 싶다고 해도 안 줍니다. 그 대신에 무엇을 줍니까? 다른 것을 사다 줍니다. 면도칼 달라고 울어대도 면도칼 줄 수가 없습니다. 다른 것, 사탕을 사다 주든지, 장난감을 사다 주
든지, 뭐 다른 것을 사다 준다는 말입니다. 면도칼은 안 줍니다. 우리도 우리 생각에 꼭 자기 생각대로 주시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 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안 주시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다른 것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모든 원수 갚는 것도 주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그리스도의 평강을 누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감사하고 합당하게 여기면 되겠습니다.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아니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면 이는 생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돈 얼마 때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생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왼뺨을 치는 자에게는 오른 뺨을 돌려 대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또 억지로 오리(五里)를 가자고 하는 자에게는 십리(十里)까지 동행해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아니하여야 하겠습니다. 또, 어떻게할까요? 겉옷을 취하려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취하게 하면서라도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겠어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고 그것이 성공입니까? 성공 아닙니다. 속옷 다 빼앗아 갔어도 그리스도의 평강만 빼앗기지 않으면, 예수님을 빼앗기지 않은 것입니다.
속옷, 겉옷을 내놓으라고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려는 것입니다. 또 왜 오른 뺨을 쳤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려고 친 것입니다.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아 가면 마귀가 평안하겠다는 말입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있는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으려고 뺨도 치고 속옷도 빼앗아 가고 억지로 끌고 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에 혈육으로 대전(對戰)해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게 되면 겉옷, 속옷은 안 빼앗겼지만 겉옷, 속옷, 뺨맞는 것, 억지로 끌려가는 것보다 몇 만 배 더 몇 천만 배 더 손해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기면 됩니다. 외부적인 면, 내부적인 면, 물질적인 면, 내 권리는 빼앗겼어도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겼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겼으면 나머지 것이 다 도로 옵니다. 다 도로 오는 것입니다. 도로 올 날이 오고 그러다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도 주시는 것입니다. 가져가려야 가져갈 데가 없습니다. 여기서 빼앗아 갔어도 그게 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지구덩이 위에 있겠지, 지구덩이 밖에 다 나가겠습니까? 내 것 아무리 빼앗아 갔어도 이 지구덩이 위에 있습니다. 이 세상 집, 이 세상은 다 누구 손아귀에 있어요? 하나님의 장 중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다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는데 여기서 빼앗아 봐야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빼앗아 가도 세상 밖에 둘 수는 없어요. 하나님의 손 밖에는 절대로 둘 곳이 없
습니다. 하나님은 그것보다 몇 만 배 더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소소한 것 가지고 콩이야 팥이야 하면서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강만 안 빼앗기면 승리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고 믿는 일을 해야 믿는 일이 되지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긴 다음에는 믿는 일이 안 됩니다. 아무 일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떠났는데 하나님의 감동이 떠났는데 하나님의 역사가 다 끊어졌는데 어떻게 믿는 일이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의 평강을 언제나 빼앗기지 않고 믿는 일을 하여야겠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하게 하라
본문 16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무엇이 또 너희 마음에 풍성하게 하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즉, 둘째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안에 풍성히 거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언제나 배우고 그 말씀을 언제나 새김질하고 그 말씀이 언제나 자기에게서 넘쳐흐르고 그 말씀에 붙잡혀 끌리어가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에 붙잡혔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2절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께 부탁한다고 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18장 5절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씀에 붙잡혀서 유대인에게 먼저 전도했습니다. 또 누가복음 5장에 보면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5장 5절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의지해서 하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자기가 깊은 데서 밤새도록 잡아본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 아침에 오셔서 “깊은데 그물을 던져라”하니까 밤새도록 잡아봤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그물을 내린 것입니다. 말씀에 의지해서, 자기 생각은 다 내어 버린 것입니다. 자기 생각 같아서는 그물 던져야 쓸데가 없습니다. 밤새 잡아본 곳입니다. 또 아침에 고기가 깊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얕은 데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안 될 것 같지만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리이다”하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의지해서 움직여야 하겠습니다.
또 말씀을 맘속에 풍성히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말씀의 역사가 풍성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말씀의 역사가 풍성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고 말씀의 역사가 속에 풍성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6.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라
또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고 권면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만 그 말씀을 가지고 있을 것이 아니라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그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가르칩니까? ‘모든 지혜로’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의 지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혜로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하든지 말씀을 따라오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권면해야 합니다. 자기만 말씀을 먹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나눠 주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4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나눠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동회장이 구청에서 밀가루를 오십 포대 타 올 때에는 구청에서 동회장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그 오십 포대를 동민에게 다 나눠 주라고 준 것이란 말입니다. 동민들은 동회장이 밀가루 타 온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동회장 혼자 다 먹으면 어떻게 됩니까? 네? 죄 짓는 것입니다.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나눠 먹으라고 준 것인데, 그것을 혼자 다 먹어놓으면 죄 짓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께서 우리
에게 주실 때에 혼자 먹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눠 주라는 것입니다. 만들어 먹고 남에게 나눠 주어라,하신 것입니다. 나눠 주라고 주신 것인데 안 나눠 주면 하나님 앞에 죄 지은 것입니다. 빚을 안 물어 줬으니 빚진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배운 다음에는 나눠 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는 말입니다. 전하라는 말입니다. 가르치라는 말입니다.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좀 연구하고 지혜를 써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모든 지혜로 가르치라고 했으니, 은혜를 받아서 성령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성령과 능력으로 또 그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건져내기 위해 지혜를 써서 가르치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가르칠 때에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아니하고 무엇으로 전했다고 했습니까? 성령과 능력으로 전했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너희 믿음이 사람의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게 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말 잘하는 것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말 잘하면 교인들이 그 말[言] 잘하는 것을 따라 옵니다. 그러니 사람의 지혜 있는 말에 기초하여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그 신앙이 잘 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에 서고 성령과 능력에 서야만 그 신앙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웅변이 필요가 없습니다. 웅변으로 하면 교인들이 따라오기는 잘 따라옵니다. 그렇지만 신앙이 그 사람의 말에 세워집니다. 진리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일단 웅변하는 습관이 다 없어져야만 그 속에 진리가 들어갑니다. 교인들이 사람의 지혜 있는 말 들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람의 말 하나도 들을 것이 없으면, ‘에이 들을거 없으니까 성경이나 듣자’하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것, 들을 것이 있으면 그것만 듣고 앉았지 성경 안 듣습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리가 먼저 받고 그 말씀을 나가서 전해야 합니다. 전할 때 하나님의 성령과 능력으로 전해야 합니다. 능력을 받아서 전하라는 말입니다.
한번 전한 다음에 내버려 두면 안 됩니다. 내버려두지 말고 늘 가서 돌보아야 합니다. 논에 벼를 심어놓았으면 매일 나가서 한 바퀴씩 돌보아야 합니다. 물이 마르지 않았나, 벌레가 먹지 않았나 살펴보면서 매일 나가서 한 바퀴씩 돌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이 좀 잘 못 된것 같으면 농약을 친다든지 해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실패가 되지 않도록 거기에 마음을 쓰고 늘 돌보고 힘을 쓰고 비료를 쳐야 합니다. 벌레가 오지 못하도록 만들고 시험에 안 들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하여 한 사람을 건져내는 데에도 손이 많이 가야 합니다. 아이하나 기르려면 사람의 손이 몇 번 가야 합니까? 오만 번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북에서는 어머니를 오마니라고 한답니다. 함경도 말로는 아바이, 어마이, 평안도 말로는 아바지, 오마니라고 합니다. 아이 하나 기르는데,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느냐는 말입니다. 하루에도 똥을 몇 번을 싸고 오줌을 몇 번을 쌉니까? 그 오마니의 정신을 가지고 전도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를 낳아 놓기만 하고 돌보지 않으면 그 아이는 죽습니다. 죽지 않겠습니까? 젖을 먹이기를 하나, 똥, 오줌 싸도 치워주길 하나, 먹여주길 하나, 의복을 입혀주길 하나, 아무 것도 안 하면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죽습니다. 아무리 아이 많이 낳아도 다 죽으면 뭐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받은 것만큼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치고 권면해야 하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에게 전도도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또 아이들도 모아놓고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자기 집에 있는 아이들도 성경 가르쳐주고 또 친구들도 만나면 성경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누구 만나면 괜히 세상 이야기하지 말고 가르쳐주어야 하겠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오면 세상 이야기 하지 말고 성경 배운 이야기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지난 주일에 이 말씀 배웠다고 이야기해주면 되는 것입니다.
7.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라
본문 16절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시는 구약 시편을 기리키기도 하고 성도들이 은혜 받아 진리대로 부르는 시도 포함됩니다. 찬미는 하나님께 찬송하는 찬송가이고, 신령한 노래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은혜를 받아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8.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본문 17절에,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즉, 성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이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에서 주님의 진실과 선과 사랑과 의로움이 보여지도록 하고 그리스도의 인격이 나타나 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그를 힘입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뢰하고 그의 주시는 힘으로 모든 일을 하면 그 결과는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생활이 될 것입니다(벧전 4:11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