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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4일 월요일

요한일서 3:10-24 서로 사랑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서로 사랑하라
요한일서 3:10-24

10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11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12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13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15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 20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23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24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 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1. 마귀에게 속한 자

마귀의 자녀는 의를 행치 아니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음

본문 10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 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는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 예

본문 11-12절에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고 했습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담의 맏아들이 가인이고 작은 아들이 아벨인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왜 죽였다고 하였습니까? 그의 행위는 악하고, 불순종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양을 잡아서 제사한 것이 아니라 제 생각대로 한 것입니다. 곡식으로 드렸는데 그것은 불순종이고 악한 것입니다. 아벨은 양의 피와 기름으로 드렸는데, 이것이 순종한 것입니다. 가인이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아우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시기가 나서 그 동생을 죽였습니다.

이 시기 마귀라는 것이 아주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로 자기 동생을 죽였습니다. 동생이 잘 되었는데 시기할 게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동생의 제사는 받고 자기의 제사는 안 받으셨는데, 동생의 제사를 받고 자기 제사를 안 받았으면 왜 안 받으셨는지 동생하고 의논을 좀 했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 동생이 말해줬을 것이 아닙니까? 아니면 아버지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아담한테 “왜 제 제사는 하나님께서 안 받으시고, 동생의 제사는 받으셨을까요?”라고 물으면, 아버지가 “너 무엇을 가지고 드렸느냐?” 했을 것이고, 가인이 “농사한 그 곡식을 가지고 드렸습니다.” 하면 “그래서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우리가 범죄 했기 때문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가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네 동생은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가서 제사를 했기 때문에 그것은 받은 것이다. 너도 이 다음에 그렇게 해라.”고 답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가인도 양의 피를 가지고 나갔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실 뻔 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행위는 악하고 동생의 행위는 의롭기 때문에 그것이 시기가 나서 잡아 죽였다고 했습니다. 시기 마귀가 악독한 마귀입니다. 사촌이 전답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는데, 사촌이 전답을 사면 좋지, 왜 배가 아픕니까? 자기가 못 사는 것을 사촌이라도 사면 그래도 좀 낫지 않겠습니까? 시기 마귀가 악한 마귀입니다. 시기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고 다 좋은 것인데 그것을 기뻐해야지 시기가 나서 죽이면 큰 죄를 범한 것입니다.


2. 서로 사랑하라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거든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5:19에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겠지만, 너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불러내서 내게 속했기 때문에 세상이 미워한다고 하십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속한 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 것이니까 세상이 다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님께 속한 증거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라

본문 14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치 않는 자는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사망에 거하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면 생명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치 않는 자은 사망에 거하는 자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생명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다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로 모두 다 한 세계입니다. 
그리스도의 세계는 생명의 세계고, 빛과 사랑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또 반대로 마귀의 세계는 사랑이 없는 세계이고, 미워하는 세계이며, 시기하는 세계이고 죽이는 세계입니다. 어느 세계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사랑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을 할 것이고, 사랑이 넘쳐 나올 것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살면 사랑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미움 밖에 안 나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세계에서 산다고 하면, 그것은 사망의 세계입니다. 마귀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속에서 사랑이 나와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그것은 생명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미워하면 무슨 세계에서 사는 줄 알면 됩니까? 사망의 세계, 마귀의 세계입니다. 미워하는 것은 죄의 세계에서 사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해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사랑이 나옵니다. 몸뚱이는 마귀의 세계에 있는데 아무리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이 됩니까? 사랑의 세계에 자기가 들어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랑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됩니다. 들어가지 않고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것은 자기 세계가 아니고 다른 세계의 것을 가져다 하는 것인데 되겠습니
까? 사랑하지 않는 자는 사망에 거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망의 세계에 지금 있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

본문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나옵니다. 구약에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살인이라고 알았는데, 예수님은 미워하는 데서부터 살인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살인이 미워하는데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근본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미워하다가 살인하게 되니까 살인의 뿌리가 미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워하는 것부터 살인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른뺨을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셨습니까? 왼뺨을 돌려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가지라고 하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5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10리 까지 가면서 미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워하지 않는 그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미움이 나올 만할 그 때에 믿음을 쓰면 미움이 안 나옵니다. 그것이 마귀를 이기는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를 잡아먹었다고 해도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으면 됐지, 미워할 것이 무엇입니까?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고, ‘난 안 잡아먹었다’ 한 마디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꾸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괜히 그것을 가지고 미워하고 속상해할 것이 뭐가 있습니까? 속상해하는 것은 벌써 마귀에게 진 것입니다. 파리 100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속상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 하나님이 그 안 잡아먹은 것을 나타내주십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다 드러내주십니다. 안 잡아먹은 것은 안 잡아먹은 대로, 잡아먹은 것은 잡아먹은 대로 드러내주실 거니까 속상해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은 미워하다가 나오기 때문에, 살인의 뿌리는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채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선교하러 가고, 전도하다가 매 맞아 죽고, 이 복음을 들고 가다가 목숨을 버리고 나가다가 순교당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본문 17-18절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 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했습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도와줄수 있는데 안 도와줬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거하지 않는 것입니다. 형제의 궁핍함을 도와줄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됩니다.

그러나 도움 받는 사람은 도움을 안 받겠다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도움을 받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자립해서 자기가 자기 일 해먹는다는 생각으로 자기 할 일을 하면 하나님께서 먹을 것을 주십니다. 도움 받을 생각은 절대 그만두라는 것입니다. 자립을 하고, 자기가 일 해먹고, 어떻게 하든지 자기가 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애쓰다가 그 다음에 굶어서 쓰러졌다고 하면, 그 때는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노인들, 고아들, 무의탁 하는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좋지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 해먹어야 됩니다.

화요일 날만 되면 우리 교회 사무실에 아침부터 돈 구걸하는 사람들이 나란히 섭니다. 두 사람, 세 사람 떼를 지어 가지고 오고, 또 오고하는데, 아마 하루 몇 십 명이 화요일 날짜를 정해놓고 옵니다. 그러면 그들에게 얼마씩 줍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이 멀쩡하게 왔습니다. 그래서 “왜 젊은 사람이 왔느냐? 일 해 먹으라”고 하고는 그냥 보냈습니다. 노인들은 당연히 우리가 얼마씩 도와줘야겠지만, 젊은 사람이 노인들 가운데 끼어서 얻어먹으려고 하다니 무슨 짓입니까? 그러
니까 도와줄만한 사람은 도와주고, 나가서 일 해먹어야 될 사람은 일해 먹어야 됩니다. 자립정신을 가져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아예 자기 할 일을 안 하고 도움 받겠다는 사람들은 도와줘도 희망이 없습니다.

일본에 우에노 공원이 있는데 거기서 김주봉 목사가 도시락을 한 40개씩 매일 만들어서 그 공원에 거지들을 모아놓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매일 나누어주는데 그 사람들 가운데 일 할 만한 사람들이 더러 있으니까 김주봉 목사가 취직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취직을 시켜주면 사흘을 못 가서 또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왜 왔느냐?” 물으니, “거지 노릇 사흘만 하면 그 이상 더 좋은 팔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거지 생활이 얼마나 좋았는지, 거지 노릇 사흘만 해놓으면 부끄러운 것은 다 없어지고, 그저 얻어먹으니까 먹을 것 염려 없고, 화재 날 염려 없다는 것입니다. 집들 다 불붙어도 자기 집은 불 안 붙는다고 했답니다. 어쨋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대로 도와주는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3. 사랑하는 자가 주께 받을 복

주 앞에서 굳세게 됨

본문 19절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행하면 마음이 주 앞에서 굳세게 됩니다. 즉 사랑을 행하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담대해집니다. 힘이 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음

본문 20절에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 하물며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가책 받을 것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면 하나님께 가책 받을 것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혹 우리를 책망할 일이 있거든”라고 했는데,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있습니까? 많이 있습니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지내놓고 보면, 마음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잘 못해 놓고서도 마음의 가책을 받지 못하는 것은 화인 맞은 양심입니다.

보통은 무엇을 하나 잘못하면 “내가 잘못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것이 정상적인 것입니다. 가책을 받지 않고 뻔뻔하게 나가는 것은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이고, 양심이 마비가 된 사람입니다. 언제나 마음은 온유 하여야 하고, 신앙 양심에 가책을 받아야 합니다. 가책을 못 받는 사람은, 완악한 사람이고, 강퍅한 사람입니다. “우리 마음보다 크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일까 보냐”라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가책 받을 것이 많겠습니까? 자기 마음에 가책 받을 것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합니다. 자기 마음이 표준이 아닙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잘못한 것이 많은가 하며 항상 겸손해야 됩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해야 됩니다. 자기 생각에 잘했다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누구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잘했다고 하시도록까지 해야 됩니다.

본문 2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 받음

본문 22절에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세계에서 양심에 가책이 없이 행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과 교통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에게 구하는 바를 하나님께서 다 주십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하였는데, 무엇이나 구하는 바를 주께 받는 방법의 첫째는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려면 회개하며 기도해야 됩니다. 마음에 책망할 것이 있는데 회개하지 않고 나가면 구하여도 못 받습니다. 둘째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원수까지 사랑하여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면서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구해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구하는 바를 다 받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즉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고, 원수 맺힌 것은 다 풀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바가 무엇인가를 찾아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시편 84:11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여야 됩니다.


4.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모든 것을 받음

본문 23절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계명은 예수님을 믿는 것과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구약 성경의 대강령입니다.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만 모든 것을 다 받습니다. 왜 못받습니까? 사랑하지 못하므로 못받습니다. 미워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마귀의 세계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세계입니다. 또 다른 사람과 막힌 것이 있으면 못 받습니다. 사람과 막히면 하나님과 막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막히지 않아야 합니다. 보일러 파이프에 더운물이 돌아야 방이 따뜻해집니다. 그런데 파이프가 한 군데 막히면 다 막히게 됩니다. 첫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둘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히고, 셋째 방에서 막혀도 다 막힙니다. 이와 같이 사람 앞에 막히면 하나님 앞에도 막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면 서로 용납하고 풀어야 합니다. 오른 뺨 치는 자에게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왼 뺨도 돌려대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취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속옷까지 금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는 자에게 십리를 동행하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왼뺨을 돌려대면서라도, 속옷까지 주면서라도, 십리를 동행하면서라도 사람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과 안 막히면 몇 만 배 더 받습니다. 그러므로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히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과 막히지 않으려고 왼 뺨까지 돌려대면 하나님께서는 더 높여주십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높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인격을 무시한다고 해서 사람과 막히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멸시와 무시를 당하셨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이와 같이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24절에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의 참된 아가페 사랑은 하나님과 영적 교통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는 죽은 믿음을 가진 자가 아닌, 산 믿음을 가진 자입니다. 산 믿음을 가진 자는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을 성령께서 알게 해주십니다.

요한일서 3:1-9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요한일서 3:1-9

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4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7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1. 하나님의 자녀

세상이 알 수 없음

본문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을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셨습니까? 독생자를 주셔서, 독생자 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려 주셔서, 우리 대신 속량해 주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리와 사자같은 자들이었고, 또 이방 사람으로서, 죄로 인해 죽어야 하는 자들이었고, 우상을 섬기고 마귀의 종살이하다가 지옥에 가서 영영히 불구덩이 속에서 다시 나오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풀어주셔서 우리 같은 죄인들을 구원해 주시려고 독생자 보내주시고, 또 우리를 구해주시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주시고 우리를 건지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이 큰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왕의 자녀보다 억만 배 높습니다. 세상의 어느 집의 자녀보다 더 큰 것입니다. 안 믿는 자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호적을 다 옮겼습니까? 우리 호적은 다 하늘나라에 올라가 있습니다. “너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호적에 다 올라가 있고, 또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잘 모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의 자녀인줄을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체로 변화됨

본문 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즉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그와 같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고린도후서 3:17-18에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영광을 보면 어떻게 됩니까? 주와 같은 형상으로 화한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와 같이 화하여 예수님의 영광체와 같이 화해서,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참 좋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광을 보고, 예수님의 형상을 보니까 영광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영광의 형상으로 화해진다는 말입니다. 홀연히 예수님의 영광같이, 영광으로 화해진다는 말씀입니다. “영광에서 또 영광으로 이룬다”는 것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되면 얼마나 좋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체는 영광의 부활체입니다. 또, 죽지 않는 부활체입니다. 우리가 영광의 부활체, 썩지 않는 부활체로, 죽지 않는 부활체로, 또 늙지 않는 부활체로, 쇠하지 아니하는 부활체로 다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문을 열지 않아도 가겠다고 하면 가고,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체는 문 닫아 놓은 집안에 문 열지 않고 쑥 들어가고, 나가고, 사람에게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이기도 하고, 또 저기 가겠다고 하면 가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또 먹어도 좋고,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몇 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습니다. 먹어도 괜찮습니다. 영광체가 되어서 예수님과 같은 영광체로 나타납니다.

부활하여 영광체를 입고, 예수님과 같이 공중에서 심판하고, 지상재림하여 천년왕국에서 왕 노릇 합니다. 천년왕국에서는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나와서 왕 노릇하며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며 나오며 다스립니다. 천년왕국 후에는 백보좌 심판을 거쳐서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같이 영광체로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다 얼굴이 변변치 않습니다. 얼굴 잘생긴 것이 별로 없다고 봐야합니다. 다 못생겼습니다. 또 미인이라고 해도 어딘 가에 흠이 다 있습니다. 얼굴이 희기도 하고 불그스레하기도 하고, 코가 쑥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고, 미인은 무슨 미인입니까? 다 시원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재림하시면 다 영광체로 화하니까 전부다 미인이 되는 것입니다. 전부 다 얼굴이 환해집니다. 다 신령한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요즘 비행기 타고 다니느라고 수고가 많은데 그 때는 비행기가 다 필요 없습니다. 여기서 미국에 가겠다고 하면 가지는 것입니다. 오겠다고 하면 와지는 것입니다.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려면 10시간 가고, 오려면 12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영광체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가겠다고 하면 벌써 가지고, 오겠다고 하면 벌써 와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비행기는 갖다가 쓰레기통에 넣어야 합니다. 다 필요 없습니다.

영광체로, 신령한 몸으로, 영광이 있는 몸으로 다 이렇게 변화가 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굼벵이가 매미 되려면 땅 속에서 굼벵이로 있다가 매미가 돼서 공중에 올라가서 날아다니며 노래하는데, 이는 우리가 이다음에 부활해서 하늘나라의 영광체로 화한다는 것을 배우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올라갑니다. 변화가 됩니다. 영광에서 영광으로 화해집니다. 그 때는 화장할 필요 없습니다. 다 영광체인데 화장이 무슨 필요 있습니까? 저보고 마사지 했냐고 물어보는데, 그래서 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사지 하지, 다른 마사지는 안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는 마사지면 되지, 다른 마사지가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영광에서 영광으로 가는 그리스도와 같이, 조금만 있어 보면 우리가 이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영광체와 같이 변화가 됩니다. 그와 같이 됩니다. 땅속에서 굼벵이와 같이 살던 것들이 영광체가 되어서 공중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큰 기적입니까? 이것은 참 한량없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적적인 역사입니다. 이리와 타조와 같던 자들이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예수님 재림하실 때 영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영광의 형상과 같이 화할 줄을 아는 것입니다. 소망 있습니까? 소망 있습니다. 세상에서 ‘못생겼다, 없다, 시꺼멓다, 어떻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는 다 영광체가 되는 것입니다. 늙은 사람도 영광체가 되면 젊은사람 같이 되고, 병신들도, 장애자들도 다 영광체가 되는데, 그때는 장애가 다 없어지고, 영광체가 다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깨끗하게 자라나야 함

본문 3절에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소망을 가졌습니까? 예수님과 같이 되는 소망을 가졌으니까 이제 깨끗에서 깨끗으로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고, 또 깨끗에서 더 깨끗하고, 깨끗에서 더 깨끗, 깨끗에서 깨끗, 그렇게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깨끗하면 자라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2에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계속 깨끗해져갑니다. 과실도 많이 맺습니다. 얼굴에서 광채가 납니다. 얼굴 시꺼먼 사람들도 예수 잘 믿고 은혜 받게되면 얼굴이 환해지고 광채가 납니다. 그리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 광채가 나오고 영광체로 변합니다.

그러면 소망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즉 예수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깨끗하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죄는 멀리 떠나보내고, 순종하는 생활, 분리하는 생활, 더러운 마음, 물욕과 정욕과 사욕 다 떠나서 깨끗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나가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깨끗해지는가 하면, 중생한 영을 사용하면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영에게 이용당할 때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또 중생한 영혼에게 그 마음이 이용당할 때 몸도 깨끗한 몸이 됩니다. 더러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깨끗합니다.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몸을 깨끗케 합니다. 마음과 몸이 깨끗케 되려면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해야 합니다.

상당히 오래 전에 내가 도봉산 굴에 가서, 겨울에 한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중생한 영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깨끗한지, 속이 전부 깨끗해졌습니다. 그래서 ‘아, 이렇게 깨끗한 세계가 있구나’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내 이름을 다 ‘깨끗’으로 개명을 할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이 이상해할까 봐 안 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서 중생하는 영이 아이 마음을 전부 다 이용해서 나가니까 마음이 아주 깨끗해졌습니다.

또 깨끗한 영도 자라나야 합니다. 자라나서 점점 더 깨끗해져야 합니다. 점점 의롭게 되어야 하고,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야 합니다 순종할 때 깨끗해집니다. 순종할 때, 즉 순종해서 영이 마음을 사용할 때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믿을 때 깨끗해지고, 순종할 때 깨끗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그 다음 순종할 때에 점점 깨끗해 나가는 것입니다. 부패성이 이용하는 마음은 더러운 마음입니다.


2. 하나님께로 난 자는 죄를 짓지 않음

본문 4-6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죄와 더불어 싸우라는 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라. 마귀와 더불어 싸워라. 죄는 마귀에게 미혹되어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7-8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깨끗해지려면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죄는 마귀로부터 오고 부패성과 마귀는 언제나 단짝인데, 그 부패성이 우리 마음을 이용하면 악한 마음, 더러운 마음이 되고,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죄 짓는 몸이 되는 것
입니다. 반면에 중생한 영혼과 생명이 내 속에 있고, 또 내부에서 감동을 시키고, 중생한 영이 마음을 이용하면,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그 다음에 그 마음이 우리 몸을 이용하면 깨끗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깨끗에서 깨끗으로 자라나는 몸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마귀 역사가 많기 때문에 죄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와 더불어 싸우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마귀는 우리를 계속 범죄하게 만들려고 물욕과 사욕과 정욕을 계속 충동을 시켜서 불의를 행하게 합니다. 또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가 나오게 해서 불의한 길을 걷게 만드는데, 마귀들이 다 그렇습니다. 거기 넘어가지 말고. 불의한 세력에 넘어가지 말고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지 마귀와 타협하면 안 됩니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싸우지 않았다”는 것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싸워서 이기라는 것입니다. 지면 안 됩니다. 주일날, 교회 못 가게 하는 것이 마귀 역사입니다. 주일날 교회 안 오고 다른 데 가면 죄짓는 것입니다. “나는 주일날 다른데 못 간다”하고 싸워야합니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면 마귀에게 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계명을 범하게 만들어 죄 가운데 빠뜨립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들은 깨끗하게 나가야 하고, 의에서 의로 나가야 하는데, 이것을 못하게 하려고 마귀는 자꾸 여러 가지 시험을 합니다. ‘죽인다’, ‘내 보낸다’, ‘감옥에 가둔다’, ‘직장에서 떨어진다’, ‘이혼한다’ 등 여러 가지로 마귀가 위협하여 계명을 범하게 합니다. 즉 말하자면 성경대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깨끗한 데로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깨끗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했습니까? 중생한 영을 써야 하고, 하나님 말씀 받아서 그대로 믿어야 하고, 또 순종해야 됩니다. 믿고 순종해야 깨끗해집니다. 순종함으로 깨끗해집니다. 성경에 다 있는 것입니다. 믿으십시오. 믿고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죄와 싸우다 피흘리기까지 아니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땅에 떨어져도, 직장에서 떨어져도 주일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까?’라고 고민될수 있습니다. 다른 직장에 가면 되지 뭘 어떻게 합니까? 거기서 주일날 나오라고 해서 쫓겨나면, 다른 직장에 가면 되는 것입니다. 이 동네 쫓겨나면 저 동네로, 저 동네서 핍박하면 다른 동네로,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옵니다(마10:23). 갈 길을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의 권고가 온다는 것입니다. 또 직장이 떨어지면 죽을 것 같습니까? 그 직장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좋으면 뭐합니까? 돈 많이 준다고 합니다. 돈 많이 받으면 뭐합니까? 잘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잘 살면 또 뭐합니까? 집을 크게 산다고 합니다. 집을 크게 사면 뭐합니까? 잘 먹는다고 합니다. 잘 먹으면 또 뭐합니까? 어떻게 먹는 것이 잘 먹는 것 같습니까? 매일 소갈비 좋은 것으로 사다 먹고, 그 다음에 삼겹살이나 사다 먹고, 또 뭘 먹어야 합니까? 그 다음에 칠면조 고기 사다 먹고 해서, 잘 먹어도 사실 잘 먹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잡곡밥에 된장국, 김치와 채소를 먹는 것이 건강식입니다.

죄와 싸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가 다 부활하는데, 부활체의 영광이 다릅니다. 자라나서 가야 합니다. 조금 자라난 사람, 덜 깨끗한 사람, 또 의로우심과 같이 좀 더 자라난 사람이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과 비등하게 자라나야 예수님 신부로 예수님께서 데리고 나가시지, 허리 아래에서 달싹달싹 하는 것을 어떻게 데리고 나가시겠습니까? 신부가 허리 밑에서, 무릎 아래서 달싹달싹 하면 어떻게 데리고 다니느냔 말입니다. 그래도 정 못해도 어깨만큼은 자라나야 데리고 다니지, 허리 밑에, 무릎 밑에 달싹달싹 하는 어린 아이 같은 자를 어떻게 데리고 다닙니까? 자라나야합니다. 자라나려면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또 깨끗하려면 깨끗한 대로 나가야합니다. 깨끗하려면 세상을 멸시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서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깨끗해집니다. 순종함으로 깨끗해집니다. 그리고 죄와 더불어 싸워야 합니다. 죄는 마귀와 더불어 하나이기 때문에. 마귀와 더불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은 범죄치 않음

본문 9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했고 죄는 마귀에게 속했다고 했습니다. 의를 행하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고, 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 자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씨’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것은 거듭난 것을 말하는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습니다. 새로 났다고 했습니다. 거듭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어서입니다. 씨는 말씀입니다. 말씀인 물과 성령으로 중생했고 말씀이 그 속에 있기 때문에,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습니다.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중생되었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지만 믿는 사람이 육체의 정욕대로 살면 범죄 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새사람이고, 육체의 정욕은 옛사람입니다. 육체의 부패성이 옛사람입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새사람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고, 옛사람으로 살면 범죄 한다고 했습니다. 왜 범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거듭났다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육신의 부패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부패성으로 살면 범죄 합니다. 반대로 영으로 살면 범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