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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1:1-17 복음에 빚진 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복음에 빚진 자
로마서 1:1-17

1:1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다. 

1:2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으로 

1:3 그분의 아들에 관한 것이니, 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으로 나셨고,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권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5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으니, 이는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1:6 너희도 그들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다. 

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어 로마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편지를 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1:8 내가 먼저 너희 모두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니, 이는 너희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1:9 그분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나의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 되시는데,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항상 너희를 기억하며 

1:10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간구하고 있다. 

1:11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영적인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는 것이니, 

1:12 곧 내가 너희 가운데 지내면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서로 격려를 받으려는 것이다. 

1:13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가 다른 이방인 가운데서 열매를 거둔 것같이, 너희 가운데서도 얼마만큼 열매를 얻기위하여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하였으나 지금까지 길이 막혔다. 

1:14 나는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빚진 자이다. 

1:15 그러므로 내가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1:16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이고, 그리고 헬라인에게이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서 믿음에 이르게 하니,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1. 복음의 정의

예수 믿는 사람은 누구나 복음에 빚진 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여줄 의무를 가졌는데 그것을 가르쳐서 복음에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정의가 무엇입니까?
본문 1-2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 ‘복음’이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특별히 사복음서인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있습니다. 또 복음이라는 말이 여러 곳에 자주 나옵니다. ‘복음’은 헬라어 원어로 “유앙겔리온”인데 이것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기쁜 소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제일 기쁜 소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이고, 두 마디로 말하면 십자가와 부활입니다.본문 3-4절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인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영광을 다 내어 놓으시고, 우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사형 받을 자를 살려 주시려 온 이것이야말로 기쁜 소식 가운데 제일 기쁜 소식입니다. 그 다음에 우리를 살려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죄 값으로 사형 받을 자인데, 예수님은 우리가 받을 사형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사형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려 주시려고 부활하셔서 영생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기쁜 소식 가운데 제일 기쁜 소식이며, 참된 기쁨의 소식입니다. 이 복음을 생각하면 우리는 늘 감격에 넘쳐야 됩니다. 죄로 인해서 사형을 받아 영영히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인데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어 주시고, 또 우리의 죽은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영생의 생명을 주신 것이야말로 얼마나 큰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것인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복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찬송과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복음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임

본문 6절에 “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복음을 받은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불러서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 주시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 주셨습니다. 우리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택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예수님이 불러 주시고 예수를 믿도록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르심을 입은 자인 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군대로 말하면 소집령을 받아서 군대에 나간 사람과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 앞으로 나오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왔습니다. 또 믿어라! 하고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습니다. 믿음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지
혜 있고 통달한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자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예수를 믿게 하고, 이 큰 구원에 참여하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그 은혜가 감사한지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아주심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를 피로 값 주고 사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도 내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을 받아서 믿는 사람들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것인 줄로 알고 주를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로마서 14:7-8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주의 것이 되었습니다. 주께서 피 흘려 값 주고 사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삼아 놓았으므로 이제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합니다.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 몸을 자기 것으로 알면 안 됩
니다. 즉 제 맘대로 하면 안 됩니다. 자기 목숨도 자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살하는 것은 살인입니다. 자기 생명을 자기가 끊는데 왜 살인인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자기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살하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죽인, 살인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언제나 살아야 됩니다. 자기를 위해서 살지 말고, 자기의 욕심대로 살지 말고, 자기의 정욕대로 살지 말고, 또 이 세상을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주님을 위하여 살든지, 죽든지 주의 뜻을 이루는 자로 살아야 되겠습니다.

3. 성도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함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

본문 7절에 “로마에 있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을 입어서 살아야 될 자입니다. 이 세상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 속에서 강건해야 되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누리면서 살아야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강건하고, 하나님이 주신 평강을 우리 심령 속에 누리면서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9절에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며, 또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교인들을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은 성도가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에 우리는 심령으로 섬겨야 됩니다. 육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섬겨야 됩니다.

베드로전서 3: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이라는 것은 복음의 비판받은 양심, 중생한 영혼이 쓰는 양심입니다. 이 양심에 비추어 옳은 것은 “옳다”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 하면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니다”하고 떠나야 되며,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따라가야 됩니다.
이것이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중생한 영혼을 써서 영이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고, 그 다음에는 신앙 양심을 써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옳은 것은 옳다고 하여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양심을 안 쓰면서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양심을 안 쓰고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전서 1:19절에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을 안 쓰고 예수 믿는 것은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양심을 버렸는데 믿음은 안 버렸습니다. 양심만 버렸습니다. 그런데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양심 버린 사람은 벌써 그믿음이 파선 된 것입니다. 양심이 이것은 성경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대로 따라가는 것은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또 신앙 양심에도 옳고, 진리에 대해서도 옳을 때에 그것을 안 따라가면 그것도 믿음이 파선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은 양심을 써야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보고 “예수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쳐라”고 말 하는데,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믿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도 믿는 사람이 양심 안 쓰는 것을 보면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이 무슨 믿는 사람이냐?” 하며 핀잔을 합니다. 또 성경에 심령
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고 하였고, 양심이 하나님을 향해서 찾아간다고 하였는데 양심에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며 떠나야 되고, 옳은 것은 “옳다”하고 따라가야 됩니다. 그래야 믿음이 진보가 되고, 영혼이 자라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고, 영적생명이 점점 창성해 나갈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복음의 빚을 갚으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4. 성도는 복음에 빚진 자

본문 14-15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졌습니다. 이 빚을 물어 주어야 됩니다. 복음의 빚을 어떻게 졌는가? 안 믿는 사람들에게 빚을 졌습니다. 빚을 졌다고 하면 그 사람한테 돈을 차용을 해야만 빚진 것 아닙니까? 이것을 물어 주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복음의 빚은 그 사람한테 우리가
차용해온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진 빚인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줄 때에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다 나누어 먹으라”하고 준 빚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받을 때에 즉, 복음을 받을 때에 나 혼자 것으로 받은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빚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청에서 밀가루를 한 자동차 주었기 때문에 동회장이받아 왔습니다. 동회장에게 시청에서 밀가루를 한 자동차 줄 때에는 “너의 동네 사람들과 다 함께 나누어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그런데 동회장이 그것을 갖다가 나누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은 감옥에 가야 됩니다. 밀가루 한 자동차는 자기도 먹고, 그 동네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나누어 줄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자동차 밀가루를 타다가 자기 마당에 쌓아
놓았지만 이것은 그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주지 않고 자기 혼자 다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동회장이 감옥에 가야 됩니다. 안 나누어 먹고, 자기 혼자 먹었으면 거기에 대한 징벌이 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줄 때에 혼자 먹으라고 준 것이 아니고 “너도 먹고 살고, 그 다음에는 여러 택한 백성에게 다 나누어 주어라, 그 사람들도 이것 먹고 살아야 된다”하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안 나누어 주고 저 혼자 먹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가서 화를 받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전서 9:16에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 화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빚진 것을 나누어 줄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빚을 갚아야 됩니다. 자기 민족에게만 갚는 것이 아닙니다. 또 유다사람에게만 갚는 것이 아니라 헬라사람, 로마사람, 야만인, 스구디아인, 지혜있는 자, 어리석은 자 등 여러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갚을 의무가 있습니다. 즉 전파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바울이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0-11절에 “어떠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라고 하였는데 복음의 빚을 나누어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빚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바울이 항상 쉬지 않고 기도 하였습니다.

지나간 주간에 일본 동경에서 사경회를 하고 왔는데, 거기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고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한 17,18년 전에 동경에 김성갑 목사를 선교사로 보내서 동경 중앙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다음 한 5년 전에 김성갑 목사는 캐나다로 갔고, 박성신 목사가 후임으로 와서 인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이 복을 주어서 약 100명이 모입니다. 많이 부흥이 되었습니다. 자립하고 또 예배당이 좁아서 더 큰 예배당을 장만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교회를 많이 발전시켜 주셨는데, 거기에 대해서 참 감사합니다. 동경 중앙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하면 아야세 역전에 있습니다. 아야세역이 있는데 여기로 말하면 청량리역쯤 됩니다. 동쪽에 있는 조그마한 전철역입니다. 그 전철역에서 타고 지나가다 보면 동경중앙교회라고 간판을 써 붙인 것이 보입니다. 전철역에서도 보입니다. 그곳의 전철은 지하철이 아니고 위로 가는 것입니다. 아주 교회 가기가 참 좋습니다. 아야세 전철역에 내리면 한 2-3분이면 교회에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후나바시와 리시후나바시 중간에 야마데 교회가 있는데 그곳에 김숙희씨가 가서 자기 가족들 모아 놓고 예배드리는데 거기도 한번 다녀왔습니다. 거기는 여기로 말하면 그저 공장 좀 있고 집 얼마없는 그런 곳인데 전철역에서 한 2km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철을 타고 가기엔 불편합니다. 그래서 “이건 안되겠다, 앞으로 남자교역자를 한 분 청해서 후나바시나 리시후나바시로 교회를 옮겨야만 교회가 되겠다”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의 정치가 잔인합니다. 한국 사람들 이민 하나도 안 받아주고 또 영주권도 주지 않고, 영주권자가 아이를 낳아도 영주권을 안주고 그저 임시 비자만 준다고 합니다. 얼마나 잔인한지 모릅니다. 한 사람도 이민 안받고, 영주권자가 아이를 낳아도 영주권을 안주고 한국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미국과는 정반대입니다. 미국은 영주권자가 아이를 낳으면 시민권을 줍니다. 또 미국에 여행가서 아이를 낳아도 시민권을 줍니다. 그런데 일본인은 영주권도 안줍니다. 얼마나 각박하게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직도 한국을 통치하고 있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며 생각을 해봅니다. 한국 사람을 만주로 다 쫓아 보냈을 것이고, 일본 사람들이 한국 전체에 다 나와서 살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한반도는 다 일본 사람들의 살림터가 되고, 우리 한국 사람은 전부 만주로 쫓겨들어가서 비참하게 떠돌다가 한국말도 다 없어지고 망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한국을 독립시켜 주신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 말할 수 없습니다.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북해도는 독립 국가였지만 독립이 안 되었습니다. 또 오끼나와도 독립이 안 되었습니다. 일본이 패전한 다음에도 그곳은 아직도 일본에 속해있습니다. 그런데 대만, 필리
핀, 한국만 독립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미국 사람들의 은혜입니다. 만일 미국 사람들이 그 때에 독립을 안 시켜주었으면 그 때 다 끝나는 것입니다. 일본이 패전한 후 미국사람들이 한국에 독립을 주라고 해서 준 것입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한국이 독립이 되었고, 또 한국 말을 아직도 쓰고 있고, 한반도에서 살고 있고, 또 대한항공기가 동경까지 가고, 미국까지 갑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다.
또 6.25사변 때에 첫째가 하나님 은혜로 공산화가 안 되었고, 둘째번은 미국 사람들이 도와 주었기에 공산화가 안 되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안 도와 주었더라면 전부 공산화가 될 뻔 했습니다. 이북이 전부 다 통일할 뻔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도와 주어서 한국이 아직도 이렇게 독립국가로 있고, 공산화 되지 않았고, 자유롭게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게 된 것이 참으로 감사합니다. 미국 사람들의 은혜가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보았습니다. 만일에 독립이 안 되었더라면 한국은 전부 그저 만주에 가서 돌아가다 쓰러지고 말았을 것 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들에 대해서 과거에 여러 가지 압박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이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서 복음을 전하여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일본은 교회가 얼마 없습니다. 절간만 많습니다. 차 타고 가다가 십자가 보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그런데 이젠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 가서 이 복음의 빚을 물어 주어야 될 사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인 재일교포에게도 전도해야 되겠지만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 사람들이 전도해야 되겠습니다. 일본에
가보니 한국 목사가 일본 교회를 맡아서 시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본은 신사가 왕성 합니다. 이세신궁, 명치신궁 등 귀신이 가득합니다. 귀신만 섬기는 나라입니다. 마귀만 섬기는 나라인데 이제 여기에 가서 우리가 복음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일본 말도 배워서 일본 말로도 전도해야 됩니다.

“헬라 사람이나 로마사람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다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 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 이 사명을 우리에게 맡겼습니다. 자기 나라 사람에게만 전도하라고 맡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자기 나라 사람에게도 전도해야 됩니다. “멀리 가서 이방사람 전도하지 못하나 네 집 근처 다니면서 먼저 전도하라”고 했고,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는데, 먼저 유다와 예루살렘부터 시작 해야겠습니다. 서울에서부터 또 이 부근에서부터 그 다음엔 좀 더 국경을 넘어서 사마리아, 좀 더 민족을 넘어서 멀리 이방까지, 즉 땅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예루살렘에서부터 전도하라”고 하였으니, 내 집 근처에 다니면서 전도하는 그것부터 우리가 시작해야 되겠습니다. 

전도할 때에 바울이 먼저 기도를 쉬지 않고 한 일에 대해서 본받아야 됩니다. 바울은 전도하기 위해서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또 로마 사람에게 전도하기 위해 늘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전도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우리 믿는사람들이 “내가 누구를 금년에 교회로 인도하여 내겠다, 자기 친구이면 친구, 또 근처에 있는 사람, 내가 이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여야 되겠다”고 정해놓고 매일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바울이 쉬지 않고 기도했다고 하였고, 사무엘이 기도 안하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유년 주일학교 반장도 자기 맡은 학생들을 위해서 매일 기도해 주어야 됩니다. 또 자기가 전도할 사람, 자기 근처의 아는 사람이라든지, 친구이든지, 자기 가족이든지 매일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전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어디를 가나 신령한 은사의 보따리를 가지고 가서 거기에 풀어 놓고 그것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신령한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른 것 전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말씀을 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거기 사람들이 신령한 은사를 많이 받고, 기뻐하고, 영혼이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다른 말 하지 말고 성경을 다른 사람에게 말해 주라는 것입니다. 듣든지, 말든지 이 말씀을 가서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복을 그 집에 주는 것입니다.

5. 복음의 능력

본문 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안됩니다. 이 복음을 자랑해야 됩니다. 어떤 학생들은 세상 과학책은 자랑삼아 끼고 다니지만 성경책은 끼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또 예배당에 가는 것을 부끄러워 하고, 성경책은 호주머니에 들어가는 것 하나 사가지고 넣고 예배당 가다가 어디에 가냐?고 하면 “저기 가요” 합니다. 교회에 간다고 하면 되지 “저기 가요”가 무슨 말입니까? 그것이 복음을 부끄러워 하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담배 한 대 붙이시오”하면 “난 담배 안 붙인다”고 하지 말고 “예수 믿기 때문에 못 먹는다”고 아예 하여야 합니다. “술 먹으라”고 하면 “난 예수 믿기 때문에 술을 못 마신다”고 하여야 합니다. 배가 아파서 못 마신다고 핑계하다간 마귀한테 걸려 듭니다.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능력이 됩니다. 지옥 갈 사람을 천당으로 인도하고 건져내는 일인데 이것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복음이 제일 귀한 것이고, 제일 아름다운 것이고, 제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원자탄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만 복음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중요합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능력이라는 말은 다이너마이트라는 말로 폭탄과 같은 위력이 있다는 말입니다.폭탄과 같은 능력이 복음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가서 전하는 것은 폭탄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가져다가 전해 놓으면 거기서 폭발이 되어 그 사람이 정복을 당합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믿지 않을 것 같아도 복음의 폭탄을 갖다 던져 놓으면 아무리 그 사람이 반대하고, 완악하고, 대적하고, 강퍅하여도 그것이 얼마 있으면 폭발이 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정복을 당해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어찌할꼬”하며 회개할 날이옵니다. 이처럼 복음에는 위대한 능력이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복음을 던져 놓으면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동경중앙교회에도 17,18년 전에 교인 한 사람도 없는 곳에 김성갑목사가 복음을 가지고 가서 오늘날 약 100명의 교인을 얻은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능력이 있습니까? 아주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을 어떤 사람에게든지 전하여야 합니다. 안 믿을 것 같아도 성경말씀대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는 것입니다. 일본 동경에 있는 이계일 목사가 이북의 평양에 갔었다고 합니다. 이북의 평양에 봉수교회가 있는데 거기서 설교를 했다고 합니다. 거기서 십자가와 부활만 말하였다고 합니다. 또 가면 다른 것 하지 말고 십자가와 부활만 말하라고 하니까 그 목사가 십자가와 부활을 빼놓고 뭘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봉수 교회에 한 100명 쯤 모였는데 공산당들을 다 모아다 놓은 것 같다고 합니다. 하여간 공산당들만 모아다 놓았어도 십자가와 부활만 전하면, 폭탄을 던져 놓은 것이므로 그것이 터지는 날에는 그 사람들이 교인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공산당이 안 터질 수 있습니까? 십자가와 부활만 전하면 다 정복될 수 있습니다.
중국 상해에서 일본에 유학 온 학생이 하나 있는데, 그 학생이 동경중앙교회에 나옵니다.그 학생이 지금 신학을 하려고 하는데, 신학을 마치면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학생이 아주 기뻐하며 말합니다. 하여간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복음만 전하면 완고한 사람도 깨져 나갑니다.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도 깨져 나갑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천당, 영생, 하나님의 심판, 믿음으로 구원받는 도리, 이것을 자꾸 전해 놓으면 그 사람이 하나님 앞으로 나올 날이 옵니다. 
 
금년에는 우리가 이 복음의 빚을 다 졌는데 가까운데 있는 사람부터 다 물어 주어야 되겠습니다. 가까운데 있는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다 물어주고, 그 다음에는 멀리 가서 이 복음의 빚을 물어 주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 내에서도 개척교회를 세우고, 외국에도 선교사를 내 보내서 이 복음의 빚을 물어주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본문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돈으로 살려고 하고, 물질로 살려고 하고, 명예 영광으로 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산단 말입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살아야겠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으로 삼고 살아야겠으며, 하나님을 힘입어서 생명으로 날마다 창성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즉 날마다 새생명으로 살아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