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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11일 토요일

시편 101:1-8 완전한 마음과 완전한 길로 행하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완전한 마음과 완전한 길로 행하라
시편 101:1-8

1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 2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3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 4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 5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 6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7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 8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

1. 완전한 마음과 완전한 길로 행하기를 결심함

본절은 본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라는 말씀입니다.

본문 1절에 “내가 인자와 공의를 찬송하겠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찬양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공의를 찬송한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公義), 이 둘을 다윗이 늘 귀히 여기고 찬송하였습니다. 인자(仁慈)만 있고 공의가 없는 것도 안 되고, 공의만 있고 인자가 없어도 안 됩니다. 인자만 있고 공의가 약하거나 없다고 하면, 죄악을 용납하게 되며 너무 무능하게 됩니다. 또 공의만 있고 인자가 없다고 하면, 잔인한 정치가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자와 공의 둘 다를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2절에 “내가 완전한 길에 주의하오리니 주께서 언제나 내게 임하시겠나이까 내가 완전한 마음으로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완전한 길에 행하고, 완전한 마음으로 집 안에서 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언제나 완전한 길에 행하려고 힘쓰고, 완전한 마음으로 집에서 행하려고 힘써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완전한 마음, 하나님께 옳은 마음, 바른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완전한 길, 바른 길로 갈 수 있을까 하고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하여간 성도는 완전한 마음을 가지고 완전한 길로 행하기 위하여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완전한 길로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하나님께 바른 마음을 가지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바르지 않은 마음이 들어올 때에는 즉시로 회개하고 그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언제나 바른 마음을 가지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섭섭한 마음이나 감정적인 마음은 완전한 마음이 아닙니다. 과거에 무슨 섭섭한 것이 있었다고 하면 다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지 말고 남아 있는 감정들을 풀고 이제부터 잘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옛날에
섭섭한 마음을 먹었던 그 감정을 늘 품고 나가면 심령이 은혜 가운데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따라서 언제나 원인을 자기에게서 찾고 다른 사람과의 혐의는 풀며 상대방을 용서해주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기에게서 원인을 찾아서 바로서야 합니다. 그렇게 완전한 마음을 가지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한 길로 행하기를 힘써야겠습니다.

2. 배도자(背道者)의 행위를 미워함

본문 3절에 “나는 비루한 것을 내 눈앞에 두지 아니할 것이요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하니 이것이 내게 붙접지 아니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비루(卑陋)하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무가치하고 아무 쓸모가 없는 무익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윗은 비루한 것과 배교자들의 행의를 미워하여 멀리하였습니다. 진리에서 떠나 비천하게 비 진리로 돌아가는 것을 눈앞에 두지 않고 배도자들의 행위를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배도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고 옳은 진리를 떠나 이단으로 나간 사람을 말합니다. 신 신학으로 나간 사람들, 해방 신학으로 나간 사람들이 다 배도자입니다. 목사라고 해도 해방 신학으로 나간 사람은 배도자입니다. 그런 사람은 목사가 아니고 안 믿는 사람보다 더 악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참된 진리를 떠나 신 신학, 해방 신학, 이단에 속한 사람들의 행위를 미워해야 되겠습니다. 사람은 사랑하되 배도자들 의 행위와 말은 미워해야 합니다. 미워하지 않으면 그것이 가까이 올수 있고, 가까이 와서 많은 사람에게 큰 손해를 줄 수 있습니다. 배도자는 독한 창질과 같다고 하였는데, 독한 창질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힘을 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도자들의 행위를 항상 미워하고 그들이 가까이 붙접지 못하도록 힘을 써야겠습니다.

본문 4절에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사특하다’는 것은 거짓된 것을 말합니다. 안팎으로 다르고 거짓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즉 거짓으로 아첨하고 거짓으로 보고하고 거짓으로 꾸며대는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각주에 보면 ‘악한 일’을 ‘악한 자’로 받았는데, 악한 자를 알지 아니한다는 것은 악한 자들과 사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악행(惡行)하는 자와 사귀면 악에 물들기 쉽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3절에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동무를 사귀면 안 됩니다. 많은 경우에 악한 동무를 사귀다가 탈선이 됩니다. 학생들, 특히 여자 학생들은 악한 동무를 사귀면서 돌아다니다가 죄 가운데 빠지고, 악한 동무와
사귀어서 노라리 다니다가 술집에 빠집니다. 요새 스탠드바가 날마다 늘어나는데, 이대 입구나 신촌 로터리에도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스탠드바는 술 먹고 춤추는 곳이라고 합니다. 남녀가 술 먹고 춤추는 곳이 매일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기도원에서 들어오다 보니까 시흥 좀 넘어 독산동에도 그런 집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양쪽으로 네온사인이 번쩍번쩍하면서 스탠드바가 열 개도 넘습니다. 술 먹고 춤추는 곳만 자꾸 만들어놓고 노아 시대와 같이 먹고 마시고 춤추는 것만 하며 이 세대가 가는 것입니다. 술 먹고 춤추는 것으로 일을 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젊은 남녀들은 그곳에 빠져서 일은 하지 않고, 돈이 없으면 자기 부모들한테 뜯어가고, 심지어는 도적질을 한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을 다 버려놓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많이 가도록 왜 자꾸 차려놓습니까? 한 군데가 잘되니까 그 옆에 또 차려놓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이 안 가면 있던 것도 문을 닫겠는데, 자꾸 문 여는 것을 보니까 많이 가는 것이 분명합니다. 또 그곳에 어떤 사람들이 많이 출입하는가 하면 등쳐먹는 자들이 많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그런 곳에서 미팅을 한다는 말도 있는데, 그것은 넘어뜨리는 것입니다. 끌고 돌아다니고 끌려 돌아다녀서 마지막에는 불량한 곳으로 가고 자기를 망치는 것입니다. 정당하게 결혼을 해야지, 이 남자 저 여자를 사귀다 싫어지면 또 다른 사람을 사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나가면 여자는 창기와 같이 되고 남자는 정조를 다 잃어버리고 음란한 남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복을 받겠습니까? 그런 일들을 하면 안 됩니다. ‘사특한 마음이 내게서 떠날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악한 자들을 다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일을 내가 알지 아니하리로다’라는 말씀처럼 악한 사람들과 사귀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3. 이웃을 허는 자를 떠나고 충성된 자와 동행함

본문 5절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이웃을 허는 자는 나쁜 사람입니다. 이웃을 도와줘야지, 헐어서는 안 됩니다. ‘헌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주려고 남의 결점을
들어서 헐뜯는 행동을 말합니다. 악한 생활입니다. 그러나 이웃을 헐지 않는 것이 좋지만, 보고할 때에는 정당한 보고를 해야 합니다. 허물이 있는데 없다고 하고, 나쁜 것을 좋다고 하면, 그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좋은 것을 나쁘다고 해도 안 되고, 나쁜 것을 좋다고 해도 안 됩니다. 죄가 있는 사람을 죄가 없다고 해도 안 되고, 죄가 없는 사람을 죄가 있다고 해도 안 되는 것입니다. 보고를 할 때에는 정당하게 보고해야합니다.

그리고 보고할 때에 바로 하는 것은 좋은 것인데, 보고를 바로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바로 못하느냐 하면 나쁜 것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좋고 누구도 좋고, 다 좋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소경과 같습니다. 소경에게 길을 물어보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다 나쁘다고 합니다. 눈이 하나 어두우면 눈이 하나 어둡다고 하고 하나는 본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덮어놓고 눈이 어둡다고 몰아치면 안 됩니다. 또 그 사람이 잘 본다고 해서도 안됩니다. 물론 한 눈으로도 잘 보입니다. 그러나 한 눈이 어두우니까 어둡다고 하는 것도 맞습니다. 그러나 남을 헐뜯는 목적을 가지고 눈깔이 썩어가지고 이렇다 저렇다 하면 안 됩니다. 남을 헐뜯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헐뜯지 말고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고 할 때에는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바로 되는 것입니다. 다 좋다고 하는 사람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눈이 어둡고 양심을 비뚤게 쓰는 사기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 눈이 어두우면 한 눈이 어둡다고 해야 합니다. 왜 다 잘 보인다고 합니까?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소를 팔려고 하는데, 사겠다는 사람이 그 소가 좋으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러자 팔려고 하는 사람이 그 소가 다 좋은데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은 안 한다고 했답니다. 이에 상대방이 소가 나무에 올라가면 뭐 하겠나 하고 샀다고 합니다. 그리고 소를 사서 강을 건너려고 하는데, 소가 배에 타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소 판 사람한테 가서 왜 속여서 팔았느냐고 했더니, 내가 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배가 나무로 됐느냐 쇠로 됐느냐 하며, 내가 나무에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인 것입니다. 소가 배를 안 탄다고 하면 상대방이 사지를 않겠으니까 그렇게 속인 것입니다. 보통 시골은 배 타고 건너는 곳이 많습니다. 하여간 그 사람이 사기꾼입니다. 그 사람이 한 말이 맞긴 맞지만, 사실을 속인 것입니다. 정당하게 해야 합니다. 배를 못 탄다고 해야 합니다.

본문 5절에 “그 이웃을 그윽히 허는 자를 내가 멸할 것이요 눈이 높고 마음이 교만한 자를 내가 용납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용납지 않는다’와 ‘멸한다’는 말은 왕이 정치하는 데에 사용하는 말입니다. 즉, 이것은 왕으로서 허는 자를 벌한다는 것이고, 마음이 높은 사람을 용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스리는 사람인 인도자는 충성된 사람을 살펴서 잘 이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악한 자를 다스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허는 자와 교만한 자를 용납지 않고 치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반면에 충성된 사람을 잘 살펴서 그런 사람을 등용해서 제대로 쓰는 것도 중요합니다.

충성된 사람은 어디에나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 교회를 하는데 보낼만한 교역자가 없어서 큰 일입니다. 실력이 있고 충성된 사람을 보내야 하는데, 별로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충성되지만 실력이 없고, 어떤 사람은 실력은 있는데 충성되지 못합니다. 교역자 난이 심각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실력이 있고 충성된 교역자가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길, 양심을 똑바로 쓰고 바로 하려는 사람을 들으셔서 수종을 들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일, 다윗의 나라 일에 수종을 들게 만드십니다.

4. 하나님께서 거짓된 자와 행악(行惡)하는 자를 심판하심

본문 7절에 “거짓 행하는 자가 내 집 안에 거하지 못하며 거짓말하는 자가 내 목전에 서지 못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행하는 자는 등용할 수 없습니다. 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해야 합니다. 하여간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실한 사람을 하나님 나라에 등용하십니다.

본문 8절에 “아침마다 내가 이 땅의 모든 악인을 멸하리니 죄악 행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에서 다 끊어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아침마다 부지런히 악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사람, 완전한 길에 행하는 사람을 등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하게 하였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아침마다 징계해서 하나님의 성에서 용납지 않고 끊어 버린 다윗입니다.
우리도 악한 자는 끊어버려야 모든 것이 바로 됩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악한 자를 끊어버리고 충성되고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를 등용해야 바로 됩니다. 거짓된 자, 외식하는 자를 등용하면 하나님의 일이 안 됩니다. 이 세상 나라도 그렇습니다. 세상 나라도 악한 자를 다스려야 바로 되지, 민주주의라고 해서 악한 자를 다 용납하면 악한 자 몇 사람이 전체를 다 흐려놓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 전체를 흐린다는 말이 있는데, 그와 같이 악한 자가 충동을 해서 선량한 여러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다스려야 합니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와 회사, 공장 등 모든 곳에서 악한 자를 다스려야 일이 바로 됩니다. 앞에서 말한 대로 민주주의라고 해서 악한 자를 그냥 내버려두면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어느 곳이든 악한 자는 있게 마련입니다. 없는 데가 없습니다. 따라서 악한 자를 다스리면 회사나 사회나 단체가 잘될 것이고, 악한 자를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 사람이 기운을 써서 다른 사람을 충동시키며 세력을 얻어나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전체를 어지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스리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나 잘 다스리고 충성된 사람을 써야만 모든 것이 바로 되어나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