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2-28
데살로니가전서 5:12-28
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
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성령을 소멸치 말며 20예언을 멸시치 말고 21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2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구하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너희를 인도하며 훈계하는 자들을 알아주고,
5:13 그들이 하는 일을 인하여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여라. 너희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5:14 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는데 너희가 게으른 자들을 훈계하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이들을 대하여 오래 참아라.
5:15 너희는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못하게 하고, 오직 서로에게와 모든 이들에게 항상 선을 추구하여라.
5:16 항상 기뻐하고,
5:17 쉬지 말고 기도하며,
5:18 범사에 감사하여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5:21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취하여라.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한다.
5:24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루실 것이다.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5: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여라.
5:27 내가 주님을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령하니, 이 편지를 모든 형제들에게 읽어 주어라.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5:13 그들이 하는 일을 인하여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여라. 너희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5:14 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는데 너희가 게으른 자들을 훈계하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이들을 대하여 오래 참아라.
5:15 너희는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못하게 하고, 오직 서로에게와 모든 이들에게 항상 선을 추구하여라.
5:16 항상 기뻐하고,
5:17 쉬지 말고 기도하며,
5:18 범사에 감사하여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5:21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취하여라.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한다.
5:24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루실 것이다.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5: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여라.
5:27 내가 주님을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령하니, 이 편지를 모든 형제들에게 읽어 주어라.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교회 생활
교역자에 대한 자세(對 敎役者)
교역자에 대한 자세(對 敎役者)
본문 12-1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라는 것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복음 가지고 일하는 일꾼들, 즉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아주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알아주
고 해야 하는데, ‘알아주라는 것’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교인에 대한 자세(對 敎人)
본문 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규모 없이 돌아가는 사람, 말썽꾸러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규모 없이 무법천지로 자기만 잘 한다고 주장하고 자기만 자랑하고 자기만 위하는 이런 사람들을 권계하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어떻게 하라고요? 마음이 약한 자를 안위해 줘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는 붙들어 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이 바로 되기를 오래 참는 신앙을 갖으라는 겁니다.
본문 15절에,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악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겁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은 마귀에게 걸려 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나도 너를 대항한다, 내게 대해서 네가 잘못했으니까 너하고 말도 안 한다, 인사도 안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인데, 이는 자기도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아무리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내게 대해서 악하게 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하라고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면 믿음이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7-20절에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고 원수에게 대해서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대적하면 둘 다 망하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은 자기도 살고 그 사람도 건져 낼 수 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악으로 악을 갚으면 둘 다 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둘 다 망한다고 그랬는데,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고 원수에게 대해서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대적하면 둘 다 망하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은 자기도 살고 그 사람도 건져 낼 수 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악으로 악을 갚으면 둘 다 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둘 다 망한다고 그랬는데,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합니다. 형제간에 재판하는 것은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재판하면 둘 다 망합니다. 여하튼 서로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물고 뜯지 마십시오. 한 사람이 물어도 선으로 악을 이길 생각을 해야지, 같이 악하게 나가면 둘 다 망합니다. 저 사람이 인사 안 한다고 나도 인사 안하면, 둘 다 악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인사 안하는 사람은 인사하십시오. 나이가 젊은 사람에 대해서 눈이 말똥말똥해가지고 인사도 안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은 자기가 먼저 하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먼저 몇 번만 하면, 그 사람이 먼저 인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랫사람이든지, 나이 어린 사람이든지, 무조건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몇 번 인사하면 그 사람이 인사할 날이 옵니다. 인사 안 한다고 나도 인사 안 하면 일생동안 인사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2. 영적 생활
항상 기뻐하라
본문 16-18절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하려면 골로새서의 말씀처럼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3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신령한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라, 생각을 하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땅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죄악의 세상, 마귀가 여러 가지로 시험하는 세상, 악한 것이 선한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인데, 땅의 것만 가지고는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일시적인 기쁨이 들어올 수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요, 피상적인 기쁨이고, 이러한 세상 것을 가지고는 심령이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위엣 것,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세계에는 늘 기쁨이 충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이고, 즐거움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과 같은 것이 다시 있지 않는, 항상 기뻐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나라와 또 믿음의 나라요, 또 항상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나라,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는 나라, 그 나라는 항상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는데,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탁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나가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언제나 찾고 생각하며, 땅엣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만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죄 지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탕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만 생각하고 주님이 잘 인도해 주실 줄 믿고 믿음으 로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마귀의 것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다가는 마귀에게 끌려가서 죄 짓게 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사업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업이든 뭐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성경에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스데반입니다. 사도행전 6:15절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돌로 때려 죽이려고 하는데 그 얼굴을 보니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서 얼굴에까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게 됐는데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곧,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전하다가 죽음에 이르니 “아,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된 걸까” 하면서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
가는 사람, 위에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을 찾는 사람, 위에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본문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24시간 기도만 계속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고넬료가 오후 3시에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는데, 바로 그런 것이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몇 십년간 신앙생활 했는데 새벽기도를 쉰 적이 없다 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성경을 봤다, 쉬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원에 가서,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했노라 하는 것은,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이 곧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를 특별하게 작정하고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계속되면, 그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항상 기도하는 생활, 하나님과 더불어 의로 교통하는 생활, 마음으로 늘 교통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1) 자연 은총과 특수 은총에 감사하라
본문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자연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해가 5분만 없어도, 공기가 5분만 없어도 모두 다 죽고 맙니다. 우리가 하루 한 끼 먹을 것만 있어도,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전쟁 나지 않게 해 주신 것, 병 없는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병 걸렸다가 난 것보다 병이 안 걸린 것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병이 들었어도, 더 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더 심하면 그보다 더 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그러다 죽으면 천당 가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특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영적 양식과 생명의 역사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 복음의 진보가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제일 큰 감사는 구속의 은혜입니다. 제가 유년주일학교 다니던 어느 해 추수감사주일날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헌금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진 것 다 털어도 15전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감사주일날 교회에 가서 많이 울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마음으로 제 몸을 드리기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2) 자기의 본전을 알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려면 자기의 본전을 알아야 범사에 감사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7-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전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벗은 몸으로 왔다가 벗은 몸으로 가니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라도 있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한 끼 먹을 것만 있어도 감사해야 하고, 의복 하나만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래 있었나요?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있기만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없는 것이었는데 있으니 감사 아니겠습니까? 살아 있는 시간도 감사하고 숨 한 번 쉬는 것도 감사하고 살아 있는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있는 것 가지고 언제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감사할 때만 감사하지 말고, 모든 면에 있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나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하지 못할 만한 환경이 닥쳐도 감사하는 생활, 바로 다니엘의 삶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 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사자 굴에 들
어갈 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전과 같이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감사기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서 사자 밥이 될 텐데 그것을 다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감사하며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자 굴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무엇이 감사하겠습니까? 보통사람들 같으면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을 것같습니다. 또 살려달라고 기도하려면 창문 닫고 조심하여 기도해야지,
하나님 앞에 창 닫고 기도하는 것이나 열어 놓고 하는 것이나 같은데 왜 굳이 창 열어 놓고 기도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전과 같이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무엇이 감사한 걸까요? 다니엘은 이미 생명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놓았으며,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살아서 좋을 것 같으면 살려 줄 것이고 죽어서 좋을 것 같으면 이번 기회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것이다” 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빌립보서 1:21-23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런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 좋다”는 것이 다니엘의 소원이요 신앙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죽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도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죽어도 그리스도의 생명,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사를 초월한 신앙인 것입니다. 바울이 삶과 죽음 둘 사이에 끼었는데 무엇을 원한다고 그랬지요?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만나서 거기서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원하는 생활. 이런 신앙에 선 사람은 항상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스데반도 이런 신앙이었습니다. 스데반도 순교당해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된 것이 너무 즐거워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원하는 생활. 이런 신앙에 선 사람은 항상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스데반도 이런 신앙이었습니다. 스데반도 순교당해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된 것이 너무 즐거워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자기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이런 기도입니다. 기도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죽는 마당에서도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또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다니엘도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3번씩 기도하며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과 같은 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이나 다니엘이나 스데반이나 모두 신앙의 표본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죽을 때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이 더 좋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이런 다니엘의 신앙은 무슨 일 당하든지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의 신앙을 본 받아서 범사에 감사하고, 스데반의 신앙을 본 받아서 항상 기뻐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시기와 때를 놓치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인 줄 알고 감사하라
로마서 8: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만 보면 손해인 것 같으나 합동해서 보면 유익이라는 의미입니다. 종자를 땅에 심으면 썩어지지만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를
맺기 때문에 합동하여 유익이 됩니다. 육신만 생각하면 손해난 것 같아도 영과 더불어서는 큰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만 보지 말고 세상과 내세를 함께 보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환란만 보지 말고 장차 큰 영광을 주실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합력, 합동, 즉, 다른 것과 합해 보아야 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합해보고, 처음과 끝을 합해보고, 이생과 내세를 합해보면 다 합동해서 유익이며 그러기에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만 주시고 복이 되는 것만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 잘못된 것 같아도, 모두 합해 놓으면 결국 잘 된 것입니다.
맺기 때문에 합동하여 유익이 됩니다. 육신만 생각하면 손해난 것 같아도 영과 더불어서는 큰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만 보지 말고 세상과 내세를 함께 보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환란만 보지 말고 장차 큰 영광을 주실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합력, 합동, 즉, 다른 것과 합해 보아야 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합해보고, 처음과 끝을 합해보고, 이생과 내세를 합해보면 다 합동해서 유익이며 그러기에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만 주시고 복이 되는 것만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 잘못된 것 같아도, 모두 합해 놓으면 결국 잘 된 것입니다.
욥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고 십 남매가 하루아침에 다 죽었어도,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잘 참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욥에게 배나 더 주었습니다. 재산을 배나 더 주셨고 자녀도 더 좋은 자녀를 생산하게 했습니다. 10남매 주셨는데, 전에 죽은 자녀는 천당에 가서 남아있으니, 이제 또 10남매를 주셔서 두 배 아닙니까? 여러 가지 환란의 때는 잠시 다가오지만 장래에 하나님이 연단 시켜서 더 좋은 것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못 된 것 같아도, 나중에 올 일과 합해 놓으면 큰 유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어서 받는 환란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젊어서 연단 받은 것이 장래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유익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주실 것이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가 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루는데 장지에 가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서 따라갔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어찌 기뻐하느냐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좀 계시라고 하니까, 아니, 우리 아들이 천당 가서 오늘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천당 가는 거 하나 보고 예수님 믿었는데 아들이 천당 갔으니까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19절의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가야 됩니다. 감동을 끊어 버리면 그다음에는 잘 안 됩니다. 이전에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김현봉 목사님 사경회 할 때인데, 제가 저녁 먹고 밖에 돌 위에 나가서 기도 하는데 기도가 여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잘 되고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기도 잘 해 나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잠 잘 시간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고 내일 아침에 해야 되겠다 생
각하고, 뚝 끊어 버리고, 기도 잘 되는 것을 뚝 끊어 버리고서 들어가 잤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려고 나가 보니까 기도가 안 됐습니다. 어제 기도를 좀 더 했으면 잘 했을 텐데 아침에 기도하려고 보니 그 기도의 세계를 다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께 여쭈어 봤습니다. ‘어저께는 기도가 잘 됐었는데, 오늘 아침 기도가 안 되니 왜 그럽니까?’ 여쭤보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어제는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감동이 안 되었기 때문에 안 됐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에 기도가 잘 됩니다. 그 때에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뚝 끊어버리고 가면 좀 있다하겠다 하면 좀 있다가 감동이 안 됩니다. 감동을 시킬 때에 감동을 무시하지 말고 끊어버리지 말고 감동을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성령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
20절의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에서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자기가 행할 때 자기가 성경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깨달았으면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안 하는 것은 멸시하는 것입니다. 가령 십일조 못하는 사람이 ‘십일조 해야 되겠다’ 그런 감동이 왔지요? 그럼 십일조 하면 됩니다. 안 하는 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여야겠다’는 감동이 왔는데,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그 다음에 사랑 안 하면 그것은 감동을, 즉 예언을 멸시하는 겁니다. 언제나 성경 말씀이 깨달아 질 때에 그대로 해야 합니다. 안 하는 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본문 21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너희가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3. 영, 혼, 몸
삼분설과 이분설
본문 23절에 우리에게 3가지 즉, 영, 혼, 몸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3가지가 있습니다. 영, 즉 영혼입니다. 또 혼, 혼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몸입니다. 한문으로도 영(靈)자가 있고, 그 다음에 혼(魂)자가 있고, 몸 신(身)자가 있습니다. 일본말로도 영을 레이라고 합니다, 혼은 다마시, 야마다 다마시라고 합니다. 몸은 가라다 입니다. 헬라어도 3가지입니다. 헬라어에도 영은 프뉴마, 혼은 프슈케, 몸은 소마입니다. 다 다릅니다. 한문에도 다르고, 영이 있고, 혼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영은 spirit, 혼은 soul, 몸은 body입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세 가지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삼분설이 맞느냐, 이분설이 맞느냐 논쟁하는데 사실은 삼분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분설로하게 되면 혼은 몸에 가져다 붙여야 됩니다. 영에 가져다 붙이면 안 됩니다. 삼분설과 이분설이 있는데. 사람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느냐,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여기 영과 혼과 몸을 갈라놓으면 삼분설입니다. 이분설로 하려면 혼을 몸에다 갖다 붙여야 됩니다. 혼은 우리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슈케는 마음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생명, 목숨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목숨도 프슈케입니다. 사람에게는 영과 몸과, 중간에 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과 몸의 중간에 혼이 있습니다. 혼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실제로 우리 영혼이 있고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프슈케입니다. 사실 삼분설도 맞고 이분설도 맞습니다. 이분설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삼분설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두 부분으로 됐다는 것은 영혼과 몸의 두 부분으로 됐다는 것이고, 세 부분으로 됐다는 것은 영과 혼과 몸 세부분으로 됐다는 것입니다. 삼분설도 성경에 맞고 이분설도 다 맞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볼 때 삼분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혼이 있고, 영이 있고, 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혼에 속하는 것입니다. 프슈케에 속하는데, 마음이 거룩해 져야 됩니다. 영은 중생할 때에 완전히 거룩하여 졌습니다.
성화의 과정
이제 혼과 몸이 문제인데, 혼을 성화시켜 나가야 됩니다. 또 몸을 성화 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하여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야 됩니다.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고 또 몸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마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겁니다. 몸을 거룩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겁니다. 마귀는 마음을 이용합니다. 인간은 전적 부패한데, 전적 부패성의 좌소(座所)가 어디 있느냐, 부패성이 어디 있느냐, 육신의 정욕이 어디 있느냐, 이 몸에 있느냐 살에 있느냐 하는데, 부패성이 살에 있다면 살이 뚱뚱한 사람은 죄가 더 많고, 빼빼 마른 사람은 죄가 적은 것이 됩니다. 부패성은 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는 마음에 있습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패성은 마음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게 성령께서 중생한 영으로 마음을 이용해야 합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면 성령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마음이 점점 거룩해 집니다. 마음이 점점 거룩해 지고, 마음이 점점 죄악을 벗어 버리고, 마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또 몸을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으로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시고, 그 다음에 마음은 몸을 이용합니다. 몸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면 몸이 점점 거룩해 집니다.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통하여 이용된 마음이 다시 몸을 통해 역사하면 몸의 구속이 되어서 점점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모두 점차 거룩해 집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혼의 기관이냐, 중생한 영혼의 일부분이냐, 사용하는 부분이냐,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게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중생한 영혼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혼은 별도입니다. 마음하고 다릅니다. 마음은 영혼의 기관이라고 해야 됩니다. 사용하는 기관이며 영혼의 부분이 아니고 영혼의 소속이 아니고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면 마음이 거룩해 지고, 또 그 마음이 몸을 사용하면 몸이 거룩해 지고,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이용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부패한 마음이 되고, 그 마음으로 몸을 이용하면 몸이 또 더러워지고 몸이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의 병을 고치고 마음을 성령의 인도대로 이용하고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몸도 점점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영과 혼과 몸 세가지가 있는데 점점 거룩하여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중생할 때에 이미 다 거룩하여 졌고, 마음과 몸은 거룩해져야 됩니다. 영, 혼, 몸이 예수님 재림할 때에 흠 없게 보전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거룩하게 사용하고 죄 짓는데 마음을 두면 안 됩니다. 마음에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야 됩니다. 마음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점점 거룩해져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해서 몸이 점점 거룩해져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 재림할 때에 흠 없게 보전되는 법입니다.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냐 기관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뻘콥의 조직신학에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되어 있는데, 기능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기능이라고 하면 영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영혼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관이라고 해야 됩니다. 기능이 아니고 기관이어야 됩니다. 마음은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기관이니까 사용하면 거룩하여 지는 것이고 사용 못하면 악해지는 것입니다. 기능이 아니고 기관!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생한 영혼에게 죄 있는 것이 됩니다. 영혼이 기능이니까 마음에 죄 질 생각이 나면 영혼이 죄 짓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능이 아니고 기관이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혼을 중생시키셨는데, 중생한 영혼을 가지고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성령에게 이용당하려고 하는 마음은 거룩한 마음입니다. 또 거룩한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몸이 거룩해 지고, 몸과 마음이 거룩해집니다. 마귀는 어디까지 손을 대는가 하면 마음에 손을 댑니다. 영혼에게는 손을 못 댑니다. 마귀가 마음에 손을 대서 마귀가 죄 지을 마음을 일으켜 놓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죄 짓게 되면 몸도 그것에 이용당해 몸도 죄 짓게 됩니다. 성령은 중생한 영혼을 이용해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고, 마귀도 마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한 마음이 있고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 성령에 이용당할 때는 선한 마음, 마귀에 이용당할 때는 악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둘이라고 어떤 사람이 나보고 전화로 따지곤 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하나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이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성령이 이용할 때는 선한 마음이 되고 마귀가 이용할 때는 악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에게 이용당하는 마음, 그 마음에 이용당하는 몸, 거룩한 몸, 신령한 몸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라고 했는데 ‘미쁘시다’라는 말은 ‘신실하다,’ ‘신용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희를 통해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4. 문안 축복
본문 25절에,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교역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기도해 줘야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해 줘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할수 있게 해주시고 또 자기도 은혜 받습니다. 교역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가까운 인사, 친절한 인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입 맞추는 것이 제일 친절한 인사였습니다. 요새는 그런 방법이 아니고 우리가 쓰는 친절한 방법으로 인사하면 됩니다.
본문 27절에,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읽어 들리는 것,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서 이런 편지가 왔다고 읽어 준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경을 읽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 읽어 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는 강해서 읽어 주어도 좋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교역자들이 교역자 수양회 등, 모이는 데 오게 되면 삼일예배 인도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나가서 성경을 읽어주면 됩니다. 혹은 강해서 읽어 줘도 됩니다. 그리고 찬송가와 주기도하고 끝나면 되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성경이 제일 좋은 설교라 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 설교이고, 성령 설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어떻게 잘 하겠냐는 것입니다. 성경 읽어 주면 예수님 설교, 성령 설교가 되기 때문에 제일 좋다고 하였습니다.
또 책을 읽도록 선물해서 주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설교집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요새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는데 우리교회 안 나오는 사람입니다. 선물하면 그 사람들이 그것을 읽어 보고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는 것은 성경을 읽어 들려라, 강해서 읽어 들려라,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하라!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본문 2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라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