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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0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3장 1-9 육에 속한 신자, 영에 속한 신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육에 속한 신자, 영에 속한 신자
고린도전서 3장 1-9

1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
라 2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
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4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5그런즉 아볼로
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
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
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3:1 형제들아, 내가 영적인 자들에게 하듯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에게 하듯이 말하였다. 

3:2 나는 너희에게 젖을 먹이고 단단한 음식을 먹이지 않았으니, 너희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너희는 감당할 수 없다. 

3: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들이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다툼이 있으니, 너희가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니냐? 

3:4 어떤 이는 말하기를 "나는 바울에게 속한 자이다." 하고, 다른 이는 말하기를 "나는 아볼로에게 속한 자이다." 라고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냐? 

3:5 그러면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우리는 너희를 믿게 한 사역자들이며,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겨주신 대로 일했을 뿐이다.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나, 하나님께서는 자라게 하셨다. 

3:7 그러므로 심는 자나 물을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요,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3:8 심는 자와 물을 주는 자는 하나이며, 각자 자기 수고만큼 자기 상을 받을 것이다. 

3: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며 하나님의 건축물이다. 


1. 육에 속한 신자
본문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
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 하
였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직도 신령한 성도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라고 하였습니다. 즉 젖이나 먹고 밥은 먹지 못
할 정도로 너희가 아직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도 신령한 성도
가 있고, 육신에 속한 성도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육신에
속한 성도입니까? 고린도교회도 예수를 믿습니다. 예수를 믿는데도 불
구하고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요, 아직도 어린아이라고 하였습니다.
즉 신앙이 아이라는 말입니다. 

시기, 분쟁, 당파를 짓는 자
본문 3절에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
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라고 하였습니다. 시기와 분쟁이 있는 것은 육신에 속한 증거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시기와 분쟁이 있고, 또 당파가 있으면 육신에 속한 것
입니다. 즉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에게 속했다, 나는 아볼로에게 속
했다,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는 등 당파를
묻는 것은 육신에 속한 것입니다. 육신 중심의 신앙생활은 젖이나 먹
었지, 밥은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라나지 못합니다. 오랫동안
믿었어도 자라나지 못합니다.

어린이의 신앙을 가진 자
히브리서 5:12-14절에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은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아직도 어린아이라는 말입니
다. 초보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어린아이입니까? 의의 말씀을 경험하
지 못한 자이고, 지각을 사용하지 못한 자이고, 연단을 받지 못한 자
이고, 선악을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는 시험이 들어오면 넘어갑니다. 연
단을 못 받았으므로 연약해서 쓰러집니다. 연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가 어린아이고, 육에 속한 신자이고, 선악을 분변할 줄 모르는 자입
니다. 즉 영적 깨달음이 약한 사람들이 어린아이라는 말입니다. 오랫
동안 바른 진리를 배웠어도 분별할 줄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바른 진
리를 좀 배우면 깨달아서 “이 진리가 생명이다, 생명 내놓고 이 진리
의 말씀을 따라가야 되겠다”하며 분별을 잘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무리 오래 배웠어도 “뭐 다 같다, 아무데 가
도 같다”하며 이렇게 생각을 하며 깨닫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도 있
습니다. 그런 자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자이며 어린아이입니다. 그런
자는 젖이나 먹었지, 단단한 식물은 먹지 못합니다. 단단한 식물을 받
아서 먹지 못하고, 또 소화를 시키지 못하여 다 내어 버립니다. 단단
한 식물을 먹었으면 소화를 시켜야 되겠는데, 소화를 못시키고 다 흘
러 떠내려 보내므로 자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젖으로 먹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못합니다. 그러나 장성한 자는 단단한
식물을 자기 생명으로 받고, 거기서 힘을 얻고, 소생함을 얻어 담대해
집니다. 또 거기서 지혜를 얻고, 깨달아서 분별하는데 이런 사람은 장
성한 자로 신령한 성도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좀 더 고상한 진리, 좀 더 깊은 진리, 좀 더 신령한 진리를 말하는데, 성도는 이 단단한 식물을 먹어서 힘을 얻어야 장성한 성도가 됩니다. 장성한 사람이 젖만 먹으면 못 삽니다. 어린아이일 때에는 젖만 먹어도 삽니다. 그러나 이제 한 서너 살 되면 그 다음에
는 젖만 먹으면 못 삽니다. 영양부족에 걸립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이유식을 먹이다가 죽을 먹이고 그 다음에는 밥을 먹입니다. 그래야만
자라납니다. 우리의 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밤낮 초보적인 진리만
먹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성경을 “예수를 믿으면 된다”는 것까지만 해석하는 것은 젖으
로 먹이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어떻게 믿
고, 어떻게 힘을 쓰고, 어떻게 해야만 자라나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그런데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단단한 식물을 먹어
도 다 갖다 쏟아 내버리고, 또 소화를 시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
무리 먹어도 쓸 데 없습니다. “좀 더 신령한 도리를 깨달아야 되겠다,
거기에 대한 내 신앙이 확실히 서야 되겠다”는 것은 단단한 식물을
사모하는 성도입니다. 언제나 단단한 식물을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모든 성경을 다 젖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초보적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성경을 단단한 식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새벽에, 하나님의 지혜와 사람의 지혜를 말했습니다. 사
람의 지혜로 성경을 배우고, 교리를 배우고, 신학을 배워도 그것 가지
고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무
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이 하나님
의 지혜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지혜이며, 셋째는 성
령으로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일서에 물과 피와 성령이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물은 하나님의 말
씀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더 많이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지혜를 더 많이 받아야 된다, 더 많이 거기에 참여해야만 된다”는 것은 단단한 식물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많이 받는데 대해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세계에 좀 더 깊이 들어가고, 그리스도의 구속
의 은혜에 깊이 감격하고, 하나님의 말씀에서 신령한 보화를 더 많이
발견하고,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단단한 식물로 먹이는 것이고, 이 말씀을 받고 자기의 생명으로 삼고
나가는 자가 하나님의 지혜를 더 많이 받는 것입니다. 

또 좁은 문과 넓은 문에서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는 사람들이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젖으로 먹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단한 식
물로 먹이려고 하면 “예수를 믿어도 성경 말씀을 안 지키면서 나가는
것은 넓은 길로 가는 것이고, 성경 말씀을 지키면서 나가는 것은 좁은
길로 가는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 단단한 식물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길이 힘이 드는 것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을 지키지 않고
넓은 길로 가면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영에 속한 사람들은 말씀을 지
키면서 좁은 길로 가면서 예수 믿는 것입니다. 시기, 분쟁하고, 당파
짓는 것은 전부 육신에 속한 신자들입니다. 교회들이 정신 안 차리고
나가면서 자기 지방 운동을 합니다. 또 자기 지방 사람이라면 무조건
다 좋다고 합니다. 선거할 때에도 자기 지방 사람이면 무조건 다 좋다
고 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교회이며, 육신에 속한 신자들입니다.
대통령을 뽑는다고 하면 나라를 바로 할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야
지, 무조건 자기 지방 사람이면 좋다고 하여 세워 놓으면 나라가 어떻
게 되겠습니까? 이것은 전부 육신 중심이고, 자기 지방 중심입니다.
이런 교회는 신령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육에 속한 신자들은 뭘
한다고 하였습니까? 시기하고, 분쟁하고, 싸우고, 당파나 짓고, 또 젖
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은 먹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2. 영에 속한 신자
시기하지 않음
영에 속한 신자는 시기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시기했습니까? 엘닷과
메닷이 예언할 때에 여호수아가 와서 금하라고 하니까 모세가 무엇이
라고 하였습니까? “네가 나를 위해서 시기하느냐? 나는 모든 사람이
다 예언하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분쟁하지 않음
또 모세가 분쟁했습니까? 모세는 분쟁하지 않았습니다. 시기와 분쟁
은 육에 속한 증거입니다. 육에 속한 신자는 젖이나 먹고, 또 단단한
식물을 먹어도 다 흘러 떠내려 보냅니다. 지식적으로만 알지 자기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무슨 자기의 생명이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몇 십 년 배워도 일이 안 됩니다. 성공이 되지 않습니다.

당파 짓지 않음
본문 5-7절에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
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
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당파가 왜 생겼습니까? 바울에게
장점이 있기 때문에, 즉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기
때문에 바울의 은혜를 받은 성도가 좋아서 바울을 따라다니므로 바울 당파가 생겼습니다.
또 베드로 파는 왜 생겼습니까? 베드로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베드로에게 은혜를 받고 좋아서 베드로를 따라다니므로 베드로 당파가 생긴 겁니다. 베드로는 신령한 면을 많이 증거했는데, 신령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베드로를 따라갔습
니다. 또 아볼로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장점이 있습니다. 아볼로는 지
식이 풍성하고 논리적이고 성경에 능한 사람입니다. 즉 성경 박사입니
다. 그래서 성경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볼로를 따라다니므로 아
볼로 당파가 생겼습니다. 바울은 교리에 철저하므로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울을 따라가므로 당파가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 각자에게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은 당파를 만들
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유익을 주기 위
해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
를 주신 것은, 바울을 통해서 하나님의 요긴한 구원 운동을 하시기 위
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이 아니면 못합니다. 바울이 죽은 다
음에는 없습니다. 바울이어야만 해놓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에게 하나
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셔서 진리에 대한 신령한 모든 것을 다 증거
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아니면 못합니다. 베드로가 죽은
다음에는 없습니다. 다시 베드로가 나오지 않고, 다시 바울이 나오지
않습니다. 또 아볼로는 아볼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면
이 있기 때문에 아볼로를 세워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볼로가 아니면
못합니다. 아볼로가 죽은 다음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들을 세우셔서 하나님의 필요
한 모든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물론 큰 종도 있고, 작은 종도 있습
니다. 칼빈이나 어거스틴이나 루터와 같은 사람들은 또 그렇게 쓰시려
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칼빈이 세운 진리가 지
금도 남아있는데, 칼빈이 죽은 다음에는 칼빈이 없습니다. 바울이 기
록한 성경을 보고 우리가 바울적인 은혜를 받고, 베드로가 기록한 성
경을 보고 우리가 베드로적인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또 요한이 기록
한 성경을 보고 요한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각각 다릅니다. 그래서 다 받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준 은혜도 받고, 바울에게 준 은혜도 받고, 아볼로에게 준 은혜도 받아 원만하게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아도 하나만 받으면 안 됩니다. 또 다른 것도 받아서 여러 가지를 보충을 해나가야 합니다.

고기만 밤낮 먹는 사람, 오래 살 것 같습니까? 우리 고향에 고기만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 오래 못살고 영양부족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치도 먹고, 채소도 먹고, 여러 가지를 다 먹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만 먹으면 영양 부족 걸립니다. 아무리 고기가 좋다고 고기만
먹으면 안 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다”고 하였는데
다 필요한 것입니다. 심었다는 것은 바울이 교회를 세운 것이고, 아볼
로가 물을 주었다는 것은 말씀을 가르친 것입니다. 즉 바울이 전도해
서 교회를 세웠는데, 아볼로가 가서 성경 말씀을 가르쳤다는 것입니
다. 또 베드로도 물을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다 필요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너희 것이다, 아볼로도 너희 것이다, 게바도 너희 것이다”라
고 하였습니다(22절). 다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알아
야 될 것은, 바울이 죽은 다음에는 다시 바울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
아야 됩니다. 칼빈이 죽은 다음에 다시 칼빈이 안나옵니다. 또 바울
다음에도 바울과 같은 진리에 철저한 교역자들이 많이 나왔지만 그래
도 바울과 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가 김현봉 목사님이 세상
떠난 다음에는 다시 김현봉 목사님과 같은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 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는데, 그 다음
에는 다시 그와 같은 종이 없습니다. 또 길선주 목사님도 하나님이 길
선주 목사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셨는데, 길선주 목사님이 돌아
가신 후에는 다시 길선주 목사님과 같은 종이 없습니다. 그 종을 통해
서 하시고자 하는 일은 그 종을 통해서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러므로 그 종이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면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쓰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릅니다. 

자기의 일한대로 자기의 상을 받음
본문 8-9절에 “심는 이와 물 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
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심는 이나 물 주
는 이가 문제가 아니라, 밭이 잘 되는 것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누가
심었든지, 누가 물을 주었든지, 밭의 곡식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곡식만 잘 되면 하나님이 성공하시는 것입니다. 누구를
시키셔서 심었든지, 누구를 통해서 물을 주셨든지 일한 사람들은 상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래 목적은 곡식이 잘 자라는 것, 밭이 잘
되는 것이 원래 목적입니다. 즉 우리의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되어 나가
는 것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입니다. 이것이 잘 되어야 합니다. 밭이
잘 되어야 하고, 농사가 잘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백 배, 육십 배, 삼
십 배의 결실을 얻어야 합니다. 
 
옥토가 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은 것이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
의 결실을 맺어야 됩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었
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곡식이 얼마나 잘 되었느냐?가 문제입니다.
열매를 얼마나 맺었느냐?가 문제입니다. 영적 성전을 얼마나 잘 건축
했느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과 같은 사람을 세우셔서 그
일을 해 나가셨고, 베드로와 같은 사람을 세우셔서 또 그 일 해 나가
셨고, 아볼로와 같은 사람을 세우셔서 그 일을 해나가셨으나 원목적은
밭의 농사가 잘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즉 열매가 많이 맺혀야 되고,
영적 성전이 잘 건축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