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
누가복음 22:35-38
누가복음 22:35-38
35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 36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37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 38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
1. 전도자는 하나님만 의지하라
본문 35절에,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가로되 없었나이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9-10에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고 했고, 마가복음 6:8-9에는,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신만 신고 가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러 나갈 때에 전대나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가지지 말고 하나님만 믿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통해서 주실 바를 다 주신다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얻어먹으려는 정신을 가지면 안 됩니다. 얻어먹으려는 정신, 대접을 받고자 하는 생각, 남을 의지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가다가 실패합니다.
남을 의지하려고 하면 하나님도 안 도와주시고 어떻게 하든지 대접을 받으려고 수단을 쓰며 나가면, 첫째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고, 사람들도 다 압니다. “이 사람은 얻어먹으려고 하는 사람, 이것은 대접이나 받으려고 하는 사람이다”라고 취급을 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대접을 하려다가도 안하는 겁니다.
어떤 조사가 있었는데, 교회에서 어떤 집사가 수영하라고 수영할 수 있는 표를 하나 사주었다고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인가 두 달인가 표를 끊어준 그 기한이 다 된 다음에, 집사들보고 “아 수영을 했더니 2kg가 늘었다”고 말하면서 집사들 여러 명에게 말한 모양입니다. 그건 무슨 뜻으로 여러 집사들에게 말한 것이겠습니까? 표 더 사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운동을 하면 보통은 빠집니다. 뚱뚱한 사람이 보통은 빠지는 게 보통인데, 2kg 늘었다고 이사람 저사람 보고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수영하면 줄게 되어있지 늘지 않을텐데 아마 십중팔구는 거짓말 같습니다. 그렇게 2kg 늘었으니까 또 사달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폼이 벌써 어떻게 하든지 대접받겠다는 정신인 것입니다. 나이나 많아서 무슨 건강관리가 꼭 필요하다고 할 것 같으면 모르지, 젊은 사람이 수영은 무슨 수영을 하려는가 싶습니다.
어떤 목사에게 장로들이 수영하는 표를 자꾸 사주겠다고 했답니다. 그 표가 지방에서는 천 만 원인가 한다는데, 그 목사는 장로들이 자꾸 사주겠다고 하는 것을 거절하고 안 샀다고 하길래 제가 잘했다고 했습니다. “목사님 수영하시라”고 표 사주겠다고 하는 장로들은 잘한 것 같습
니다. 목사가 나이 좀 들었으니까 건강상 현재대로 나가다가는 안 되겠다고 생각이 된 모양입니다. 그래서 수영을 좀 해서라도 건강을 잘 유지해야 자기네들을 잘 가르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일을 잘 하지 않겠느냐 해서 아마 그렇게 말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목사가 안하겠다고 한 것도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조사는 아직도 새파랗게 젊은 사람인데 무슨 수영을 하러 다닌다고 하는지, 아무리 사주겠다고 해도 그만둘 것이지 또 가서 수영을 합니다. 또 받아서 했으면 가만히 있고 그만둘 것이지, 무엇을 또 2kg 늘었다고 여러 사람에게 거짓말 보태가지고 말하고 말썽을 일으키고 돌아다닙니다.
남을 의지하는 정신은 합당치 않습니다. 남을 의지하고 어떻게 하든 대접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또, 어떤 조사는 누가 양복 한 벌 해주겠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양복 잴 때에 바지 두 벌 해달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양복 사주겠다고 했던 사람이 속으로 상당히 시험을 받았답니다. 양복 해주겠다고 하면 한 벌 얻어 입고 관둘 것이지 왜 바지를 한 개 더 해달라고 해서, 그 말이 교인들에게 돌아가고 “이 조사는 양복해주면 바지 둘 해달라는 조사다”
하는 그 말이, 지방에 있는 조사의 일인데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제게 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역자 수양회 때에 단단히 해 놓았습니다. “바지 하나만 입지 왜 두 개 해달라고 했느냐? 아, 둘 있으면 물론 좋겠지만 그러나 대접하는 사람이 하나만 해도 힘겨운데 왜 둘 해달라고 하느냐”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대접하나 더 받으려고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어떤 목사는 누가 양복 하나 해준다고 하니까, “해줄 바에는 영국제로 해 달라”고 했답니다. 그 사람이 해주겠다고 했고 목사가 해달라고 하는데 어떻게 안하겠습니까? 그래서 영국제로 해 줬답니다. 또 그것을 목사는 자랑하고 다닌다고 합니다. 한심하기가 짝이 없습니다. 아니 영국제로 해 주겠다고 해도 국산으로 하라고 해야 되겠는데, 목사가 어떻게 하든지 건더기만 있으면 비벼대고, 하나 더 받아먹으려고 하고, 대접받으려고 하는 정신 그것은 다 썩어진 정신입니다. 그런 정신 가지고 전도하면 전도 안 됩니다. 합당치 않습니다.
그리고 안 나오는 사람에게 심방 다녀오라고 하고, 갔다 왔냐고 물어보니 갔다 왔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까 못 만나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곤 그것으로 끝난 겁니다. 아니 낮에 갔다가 “아무개 있습니까?” 해 놓고, “없습니다”라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그만둡니까? 돈 받으러 다니면 그렇게 다닙니까? 낮에 갔다가 못 받으면 저녁에 가고, 저녁에 가서도 못 받으면 새벽에 가고, 어떻게 하든지 만나는 것이 상책이지 한번 갔다 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한국에 ‘처삼촌 산소에 벌초하도록 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처삼촌 산소에는 시원치 않게 하고 별로 정성이 없습니다. 그저 대강 해치우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일 보는 것, 심방하는 것을 그렇게 마지못해 대강 한번 쓱 갔다 와서는 다 끝났다고 하다니, “갔었느냐?” 물으니 갔었다고 하는데, 결국 못 만난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렇게 하면 세상에 될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새벽에 가고, 저녁에도 가고 어떻게 하든지 만나서 일을 해결할 생각을 해야지 한번 갔다 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무슨 말입니까.
전도자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 생각은 절대 그만둬야 합니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도 없이 갈 때에라도 부족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서 다 주셨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은 괜찮습니다. 대접받으려는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주셔서 먹을 것을 받았고 입을 것도 받았고 비용도 받은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미리부터 대접받고자 하는 생각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전도부인들이 남의 집에 가서 수세미 얻어오고 바가지 얻어오고, 호박 따 달라고 하고, 강아지 얻어오고 못되게 한다고 하는데, 아니 전도하러 다니라고 했지 강아지 얻으러 다녀요? 가서 강아지 하나 달라하면 안 줄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한번 하고 나면 끔찍합니다. “야 전도부인 또 왔다 강아지 감춰라”고 합니다. 그 다음엔 강아지 낳고 나면 전도부인 온다고 하면 감춥니다. “거지같은 게 하나 올 것이니까 호박 따 놓은 것 감춰라. 또 달라고 하겠다”고 합니다. 아예 가서 달라고 할 생각은 그만 두십시오. 대접 안 받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도 옳고 자기도 떳떳하고, 전도 할 때도 힘이 있고, 그 전도 받는 교인도 하나님 말씀을 잘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심방 오는 것도 좋아합니다. 가서 자꾸 달라고 하면 심방 올까봐 걱정합니다. “오늘 또 금요일인데 또 오지 않겠는가. 아예 나갔다 들어와야 되겠다. 없다고 해라”, 이래가지고는 복음 전도하는데 큰 방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전도자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야 하는 겁니다.
2. 전도자는 환란의 때 자기 먹을 것을 준비하라
본문 36절에,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전 구절에는 전대 없이 나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지라’고 하십니다. 주머니도 전여기 전대와 주머니는 무엇이 다릅니까? 전대는 돈을 넣는 것이고, 주머니는 군인들이 가지고 다니는 더블 백 같이 옷도 넣고 건빵도 넣고 살림살이 여러 가지 넣고 다니는 것이 주머니입니다. 먹을 것이나 이런 살림살이를 넣는 것은 주머니로 볼 수 있고, 전대는 돈을 넣는 것입니다. 이제는 다 준비하라고 하십니다.
전에는 준비 안 해도 환영받는 때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왔다고 하며 대접을 잘했고, 옷도 대접했고, 환영을 받았기 때문에 가지고 가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환난의 때이며 예수님을 핍박하는 때입니다. 그래서 지금 나가면 누가 영접하는 사람도 없고, 대접할 사람도 없습니다. 이제는 아예 대접 안 받아도 괜찮을 만큼 준비해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누가 대접 안 해도 굶지 않도록 먹을 것을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은 얼마나 가져가면 되겠습니까? 쌀 한말 지고 가는 겁니다. 밥해 먹는 그릇 제일 조그만 것 하고, 그리고 소금 한 홉하고, 반찬 약간 할 것만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쌀 한 말하고 다른 것 약간 준비해가면 한 달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가서 대접받을 생각하지 말고, 아예 자기 책임을 제가 할 생각을 가지고 나가라는 말입니다. 환난의 때에는 아예 자립할 생각을 하고 나가야 합니다. 대접받을 수 있을 때에는 괜찮았지만, 기독교가 똘똘 몰려서 환난 받을 때에는 아예 자립할 생각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의지할 생각으로 다른 사람이 도와주겠거니 하면 안 됩니다. 주머니에 조금 넣고 나가도 한 달 살 수 있습니다. 그런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으로 여기에 무슨 뜻이 있는가 하면, ‘영적 양식을 준비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환난의 때이므로,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되겠는데 영의 양식이 풍족해야만 나가서 그것을 가지고 견뎌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 양식, 영적 살림할 준비, 영적 주머니, 전대를 다 가지라는 뜻이 있습니다.
3. 겉옷을 팔아 하나님의 말씀인 ‘검’을 사라
하나님의 말씀 ‘검’
그리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했습니다. 검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겉옷을 팔아 사라’, 검을 사야만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제자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본문 38절에,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검이 둘이 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실제로 검 두 개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검 두 개를 가지고 다녔는데, 겉옷을 팔아 검 둘을 사라하니까 검 두 개를 빼면서 여기 둘이 있다하므로 예수님이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검 두 개 가진 것에 대해 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신명기 3 :26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연고로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여기에 ‘그만해도 족하니’라는 그런 말이 있습니다. 모세가 가나안까지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그만해도 족하니 다시 이런 기도는 하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해도 족하다’는 말은, ‘바라만 봐도 족하다’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들어가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고 “바라만 봐도 족하다”고 하십니다.
여기의 ‘족하다’는 것에는 그 뜻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하는 말을 들은 것이 분명하기에 제자들이 지금 검 두 개 내놨습니다. 그 말씀을 들었기에 내놓았겠습니다. 그 말씀은 ‘오늘은 듣기만 했어도 족하다’는 뜻입니다. 알기만 해도 족하다는 뜻입니다. 그 말 내용의 자세한 뜻은 이다음에 알 것이므로, 오늘은 ‘검을 사라’는 말을 들은 것만 해도 족하다는 이런 뜻입니다. 제자들이 내놓은 그 검 둘이 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하신 ‘겉옷을 팔아 검을 사라’는 말은, ‘검’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을 하라는 뜻입니다. 에베소서 6:17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의 검을 가지라’, ‘말씀으로 무장을 하라’는 뜻입니다. 검을 가지라는 말은, 말씀으로 무장을 하여 말씀이 네 무기가 되고, 말씀이 힘이 되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길만한 실력을 길러나가라는 뜻입니다.
겉옷을 팔아 말씀으로 무장하라
그런데 이렇게 말씀으로 무장을 하려면, 말씀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 이겨나가는 실력자가 되려면, ‘겉옷을 팔라’고 하셨는데, 겉옷을 팔아야만 말씀으로 무장을 할 수가 있습니다. 겉옷을 무엇인가? 겉옷은 없어도 되는 것들입니다. 없어도 될 것이 ‘겉옷’이라는 것인데, 그러면 없어도 될 것을 무엇입니까? 없어도 될 것은 없으면 안 될 것 이외의 모두입니다. 그것들이 겉옷입니다.
그런데 없으면 안 될 것은 말씀 하나밖에는 없습니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다 됩니다. 그 이외에는 다 없어도 될 것입니다. 말씀 하나만 있으면 모든 것이 다 해결이 나고 자기 생명이 삽니다. 마가복음 10: 29-31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0:38-42은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음식 차리느라고 여간 분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앞에 앉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와서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하고 예수님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를 많이 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한 가지’는 말씀입니다. 이세상일로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일을 하느라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게 많이 떠벌리고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몇 가지만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간단하게 해야지 너무 이세상것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 해도 족하니라고 하셨는데, 그 한가지인 말씀 하나만 받아서 생명으로 삼으면 그것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영생을 얻는 것이고, 말씀 하나 받아서 생명이 살면 영이 살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살길을 열어 준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말씀 하나입니다.
다른 게 다 겉옷입니다. 말씀 하나 이외에 다 겉옷이라는 것입니다. 말씀만 붙들면 영생을 얻습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삽니다. 또 말씀만 붙들고 살면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안 주셔서 죽게 되면, 말씀만 붙들고 나가다가 죽는다 해도 그것은 안 죽는 것입니다. 결국은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라는 말은 없어도 될 것을 희생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네 생명으로 삼아 무장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없어도 될 것은 희생을 하고 말씀으로 무장을 하라는 것입니다.
겉옷을 팔라고 했는데 파는 것은 희생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팔아야 삽니다. 희생을 해야 하나님의 말씀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귀중한 것이라도 그것을 내놓아야만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명으로 삼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내놓지 않으면 말씀을 생명으로 삼을 수가 없습니다. 다 가지려면 어떻게 합니까? 세상 것도 다 가지고, 말씀도 다가지고 그렇게 가질 수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세상 것을 내놓아야만 말씀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가질 수 있을 때에는 둘 다 가지는 게 좋겠지만, 둘 다 가질 수 없을 때에는 세상 것을 내놓고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직장에 대해서 보자면, 직장을 가지고 말씀을 따라 갈수가 있으면 직장가지고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 직장 가지고는 말씀을 따라 갈수가 없겠다 싶으면 그때는 직장을 내놓고 말씀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람에 대해 보자면, 모든 사람을 다 거느리고 말씀을 따라 갈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만, 그 사람들 내놓지 않으면 말씀 못 따라 갈 때가 옵니다. 사람 내놓지 않으면 못 따라 갈 때에는, 모든 사람, 부모나 형제나 자녀나 자매나, 다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팔아서 말씀을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물에 대해서도 재물 다 가지고 말씀 따라갈 수 있다면 그것 좋습니다. 그러나 재물 다 가지고는 말씀 따라가지 못할 경우에는 그것 다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가옥이나 전답 가지고 말씀 따라갈 수 있으면 따라가는 게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 가지고 못 따라 갈 때에는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부모나 형제나 고향이나 친척이나 다 데리고 말씀 따라갈 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따라가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가지고는 못 따라갈 경우가 되면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그것이 겉옷을 파는 것입니다.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는 그것이 ‘파는 것’이고, 팔아서 말씀 따라가면 영적 무장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 팔아서 말씀을 사라는 것입니다. 파는 것, 희생하고 다 내놓고 포기하고 성경말씀만 따라가라고 하십니다.
겉옷은 없지만 하나님을 소유한 사람
그러면 겉옷은 다 없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자기 하나님이 되고 말씀이 자기 생명이 되었으므로 얼마나 유익인가 말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소유했으니, 천하보다 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천하보다 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겉옷을 내놓지 않고 말씀대로 나가지 않으면, 성경 붙들고 나가지 않고 다른 것 붙들고 나가려고 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다 내놓은 사람이 됩니다. 그 사람은 말씀도 다 내놓은 사람이고 세상 것만 따라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비참한 가운데 빠진 것입니다.
다 내놓고 하나님만 따라가면 다 없어졌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하박국 3:17-18을 보면,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를 보면 다 내놓아 졌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다 빼앗겼습니다. 포도나무의 열매도 다 없어졌습니다. 감람나무의 소출도 다 없어졌습니다. 또한, 밭에 식물이 없습니다. 우리에도 양이 없이 되었습니다. 다 없어지고 다 내놓게 되었습니다. 외양간에 소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없어도 말씀만 따라가므로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 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이 성경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을 곳에 다니게 하시리라”고 합니다. 다 내놓고 말씀만 따라가면 여호와는 나의 힘이 되시고, 나의 구원이 되시고, 나의 즐거움이 되시고, 나의 기쁨이 되신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검을 산 것입니다.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산 사람은 이렇게 귀중한 것을 받은 것입니
다. 영원한 것을 소유한 것입니다.
본문 37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고 했습니다.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하는 이 말이 다 이루어 간다’는 말인데, 불법자로 취급을 받아서 핍박을 받고 환난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저희가 여짜오되 주여 보소서 여기 검 둘이 있나이다. 대답하시되 족하다 하시니라”고 했는데, 족하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라고 했습니까? 그만큼만 알아도 족하다는 말입니다. ‘검을 사라’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것을 안 것으로 족하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