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의 거짓 붓
예레미야 8:1-10
예레미야 8:1-10
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2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8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10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 악한 자들은 사후(死後)에도 비방거리가 됨
본문 1-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 방백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거민의 뼈를 그 묘실에서 끌어내어 그들의 사랑하며 섬기며 순종하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 쬐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이 악한 족속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별 우상, 해 우상, 달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죽은 다음에라도 바벨론 군대가 그들의 뼈를 파서 해와 달과 별에게 쪼이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섬기면 자기가 사랑하며 섬기던 우상들 앞에서 부끄러움
을 당하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도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예레미야 4장 30절에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찌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연애하고 좋아하며 따라가다가 그것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너를 밟고 그것들이 네 생명을 빼앗으며 너를 멸시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
로는 그것들이 살려주는 것 같지만, 살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 때문에 화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만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며, 하나님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고, 다른 것을 사랑하다가는 그 사랑하는것 때문에 마지막에 당할 날이 옵니다. 사랑하는 자가 목을 밟을 날이 오고, 사랑하는 자들이 침을 뱉을 날이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사랑하고, 다른 것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기는 사람에게 그 사랑하고 의지하던 것들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 있을 때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당한다고 하였습니다. 뼈까지, 사후에라도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살아서 남아 있는 자손들은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우상을 섬기던 사람의 자손들은 각처에서 쫓겨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더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을 섬기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보내셔서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것을 따라가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위해서 충성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돌아와야 할 때에 돌아오라
사람이 엎드러지나 다시 돌아갈 수 있음
본문 4-6절에 “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 하도다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엎드러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상례이고 사람이 떠나갈 때에는 돌아오는 것이 상례인데, 하나님을 떠나갔으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원리 원칙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갔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원리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넘어져서 일어날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한 번 떠나간 후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 하도다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엎드러지면 다시 일어나는 것이 상례이고 사람이 떠나갈 때에는 돌아오는 것이 상례인데, 하나님을 떠나갔으면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원리 원칙이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갔으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원리 원칙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번 넘어져서 일어날 생각은 하지도 않고 한 번 떠나간 후에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실수를 해서 넘어질 수도 있고 일시적으로 하나님을 떠날 수도 있으나, 돌아와야 합니다. 일시적으로 떠났다고 해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또 한 번 거꾸러졌다고 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완전히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번 넘어졌으면 엎드린 채 있지 말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한 번 구렁텅이에 빠졌어도 다시 나오라는 것입니다. 또 다시 나올수 있습니다.
돌아오는 방법
그러면 어떻게 해야 나올 수 있습니까? 사닥다리를 붙들면 나올 수 있습니다. 큰 구렁텅이인 무저갱에 빠졌을 때에 무저갱이 너무 깊어서 나올 수 없어도 사닥다리가 거기까지 닿아 있기 때문에 사닥다리를 붙들고 한 계단씩 올라오면 다 올라올 수 있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잠을 잘 때에 꿈에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저갱에서 올라가는 사닥다리도 되고 땅에서 하늘에 닿는 사닥다리도 되는데, 우리가 이 사닥다리를 붙잡으면 올라갈 수 있습니다. 사닥다리에 천사가 오르락내리락하는데, 자신이 올라갈 수도 있고 올라가는 자를 천사가 받들어 주기도 합니다.
결국 이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닥다리가 땅에서 하늘까지 닿았고, 또 땅에서 무저갱까지 내려가 닿습니다. 그러므로 한없이 깊은 무저갱에 빠졌으니 이제는 할 수 없다고 하지 말고 할 수 있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올라오라고 하신다. 나 혼자서는 사닥다리에 올라갈 수 없으니까 천사를 보내주셔서 같이 올라가게 하신다’라고 하며 올라가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실제로 천사를 보내주십니다. 그래서 깊은 구렁텅이에서 함께 올라가자고 하시며 손을 잡아주십니다. 한 손은 사닥다리를 잡고 한 손은 천사인 하나님을 잡고 올라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힘이 모자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올라가게 하십니다. ‘사닥다리가 있는데 왜 안 올라가려고 하느냐? 여기 있으면 죽는다. 올라가자’고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가게 하십니다. ‘네가 힘이 없으면 천사를 보내서 손을 붙들어줄 테니 같이 올라가자’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붙들고 하나씩 올라가면 하늘에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이렇게 좋은 사닥다리가 있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구원의 길이 있는데, 왜 한 번 구렁텅이에 빠졌다고 해서 나오지 않는 것입니까? 왜 한 번 넘어졌다고 일어서지 않습니까? 어리석은 일입니다. 일어서야 합니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일어서라는 명령이 있기 때문에 구렁텅이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나오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나오려고 작정하고 달려 붙으면, 천사가 붙들어주고, 올라갈 수 있습니다. 천사 하나는 붙잡아주고 천사 하나는 뒤에서 받쳐줘서, 어찌하든
지 올라가려고 힘을 쓰면 올라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구렁텅이에서 나오고, 넘어진 사람들은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이 넘어졌으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이 떠나가면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떠났으면 돌아오십시오. 하나님 말씀 안으로 돌아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언제나 떠나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기다리십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찬송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
다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지 올라가려고 힘을 쓰면 올라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여러분들도 구렁텅이에서 나오고, 넘어진 사람들은 일어서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이 넘어졌으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고, 사람이 떠나가면 어찌하여 돌아오지 않느냐고 하셨는데, 떠났으면 돌아오십시오. 하나님 말씀 안으로 돌아오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언제나 떠나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고 기다리십니다.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찬송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기
다리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이렇게 기다리고 계시는데 왜 돌아오려고 하지않습니까? 집에 돌아가 아버지께 나아가면, 탕자가 돌아왔을 때 그의 아버지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며 금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기고 즐겁게 맞아주듯 맞아주실 텐데, 왜 아버지의 집을 찾지 않고 나가서 고생하는 것입니까? 왜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나 먹고 생활하는 것입니까?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이 떠났으면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넘어졌으면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구렁텅이에 빠졌으면 다시 올라와야 합니다.
돌아오지 않은 뒤의 결과
본문 5-6절에 “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찜이뇨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 악을 뉘우쳐서 나의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올 수 있고, 돌아오도록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주셨는데, 그럼에도 말을 듣지 않고 거짓을 고집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하면 어떻게 됩니까? 구렁텅이 밑에서 악을 뉘우치지 않고, 전장을 향하여 달리는 말같이 영원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데로 나가면, 그 결과가 비참합니다. 불쌍하게 되고, 멸망하게 됩니다. 심판밖에는 남은 것이 없게 됩니다. 죽은 다음에도 뼈다귀까지 수치를 당하며 자손까지 수치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께 배울 때에도 얼마나 좋았습니까? 삼각산에 가서 사경회를 하고, 관악산에 가서도 하고, 교회에서도 사경회를 하였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배우려고 보따리를 싸가지고 따라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버스가 목적지까지 다니지도 않아서 처음에는 효자동에서부터 1시간 이상 걸어가야 했습니다. 관악산을 가는데도 상도동부터 걸어가야 했습니다. 버스가 없어서 한 2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을 때가 있고, 또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6·25 사변 이후 이남에 나온 사람들은 여기서 성경을 배울 수 있었지만, 이북에 있는 성도들은 그때 배우지 않았으면 몇 십 년 동안 영영히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지 모르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몇 십 년인데 그 전에 배웠어야 합니다. 이북에서 잠깐 배웠을 때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기회가 없어져서 영영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닌 줄 알고, 은혜를 주실 때에 받고, 돌아올 때 돌아와야 하며, 배울 때에 배워야 합니다. 받을 때에 받아야 합니다. 잠깐이면 지나가고, 지나가게 되면 받지 못합니다.
제비도 자기 때를 알고 먹으려고 하는데, 너희는 왜 먹을 때를 알지 못하여 먹지도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자기 세계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학이나 두루미도 자기의 때와 먹을 것을 알고, 먹을 것이 있는 곳이나 살 수 있는 곳으로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왜 때를 모르고 돌아오지 않느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때를 놓치면 이렇게 책망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앞으로 말세 대 환난이 오면 배우지 못할 때가 옵니다. 아모스8장 11절에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이 없어 기근을 당할 때가 오는데, 때를 놓치면 큰 심판을 면할 수 없음을 알고 돌아올 때에 돌아와야 합니다.
지금은 돌아와야 할 때임
본문 7절에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 하도다 하셨다 하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올 때에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제비가 돌아올 때 돌아오고, 비둘기가 돌아올 때 돌아오고, 학이 돌아올 때 돌아오고, 두루미가 돌아올 때 돌아오는 것처럼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학이나 반구나 제비나 두루미는 자기가 돌아올 때를 잘 알고 돌아오는데, 너희는 학보다 못하고 새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돌아올 때에 돌아와야지, 돌아올 때 돌아오지 못하면 안 됩니다.
제비는 양춘가절(陽春佳節)인 봄에 돌아옵니다. 얼음 동산이 다 녹고 날씨가 따뜻해지며 나무의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나올 때에 제비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가 제일 먹을 것이 많고 살기가 좋기 때문입니다. 두루미나 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돌아올 때가 있는데, 그때를 놓치면 돌아오지 못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이 돌아올 때이기 때문에 지금 돌아와야 합니다. 조금만 더 있어도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때가 지나가면 후회 막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을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하고, 돌아올 때에 돌아와야지, 머뭇머뭇 거리다가 못 돌아오면 누구 손해입니까? 은혜를 받을 만한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늘 있을 것 같아도 때가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이기선 목사님께 성경을 배울 때가 참 좋았는데, 지금도 그 광경이 훤합니다. 평양에서 성경 연구회를 하는데, 서 평양의 남 장로님 집이 숙소였습니다. 새벽에는 걸어서 새벽 기도를 나갔는데, 그 당시 이기선 목사님은 수염이 하얗고 털 모자를 쓰시고 새벽 예배를 인도해주셨습니다. 그때는 늘 그렇게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어느 날 보니까 이기선 목사님께 더 이상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배워서 다행이지, 그 때 배우지 못했으면 많은 한이 될 뻔 했
습니다. 그런데도 한 5년 정도밖에 배우지 못해서 안타깝습니다. 6·25사변이 1950년에 일어났으니까 좀 더 많이 배웠으면 좋았을 뻔했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듭니다. 이처럼 기회가 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여간 지금이 돌아올 때이고, 지금이 회개할 때이며,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여기서 작정을 합시다. 끊어버릴 것은 끊어버리고, 아예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를 작정하며, 다시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은혜 가운데 살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이전에 세상에 치우쳤던 것을 다 내려놓고, 완전히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내 집을 찾아 왔사오니 주여 나를 받아주시옵소서’라고 작정하며 말씀을 생명으로 삼아 말씀으로 걸어나가는 신앙
에 서야 되겠습니다.
3. 서기관의 거짓 붓으로 인하여 백성이 그릇된 길로 가게 됨
거짓 붓으로 인해 그릇된 길을 따르는 사람들
본문 8-9절에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배우기는 배워서 지혜가 있는 줄 알았는데, 말씀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우기는 배우는데, 말씀을 떠났습니다. 무엇 때문에 떠났습니까?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서기관은 성경을 기록하는 사람들인데, 그때에는 인쇄기술이 없어서 붓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기록할 때에 거짓 붓으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거짓 붓’이라는 것은 성경을 그대로 기록하지 않고 조금씩 가감해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배워도 성경에서 떠나고, 성경을 아무리 연구해도 말씀에서 점점 떠나며, 성경을 아무리 안다고 해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뚤게 알면 모르는 것보다 못합니다. 결국 망하는 데로 들어갑니다.
옛날 한문에 ‘야백(夜白)은 수(水)’라는 말이 있는데, 밤에 흰 것은 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는 밤에 흰 것은 물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밤에 어디를 다녀오는데, 일행 중에 나보다 10살 위인 박명호 씨라는 사람과 또 다른 사람들이 같이 걷게 되었습니다. 나는 ‘야백은 수’니까 하얀 곳은 딛지 않았는데, 박명호 씨는 ‘야백은 땅’이라며 하얀 곳을 디디라고 하였습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서 자기 주장을 하면서 말다툼을 하였는데, 해결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고 나하고 박명호 씨만 서로 다투며 ‘야백은 수다’, ‘야백은 땅이다’라고 하였는데, 한참 다투다 보니 박명호 씨가 물로 쏙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박명호 씨는 야백은 땅이니까 흰 곳만 찾아갔고 나는 야백이 수니까 그곳으로 가지 않았는데, 박명호 씨가 물에 쏙 빠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아직도 야백이 땅이냐고 물어봤더니, 그때에는 입이 열 개라도 대답을 못하였습니다. 자기가 물에 쏙 빠졌는데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잘못 알면 박명호 씨처럼
됩니다. 배우기를 바로 배워야 합니다. 야백이 물인지 땅인지 어찌 압니까? 바로 배우는 것뿐입니다. 성경도 바로 배우지 못하면 박명호씨처럼 됩니다. 차라리 몰라서 나를 따라왔으면 빠지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무엇을 좀 안다고 하다가 물에 쏙 빠진 것입니다.
‘서기관의 거짓 붓’은 성경을 조금씩 가감한 것입니다. 성경을 그대로 옮겨야 하는데, 그대로 하면 재미가 없고 안 될 것 같아서 조금씩 가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람을 망하게 하는 길입니다. 성경을 번역할 때에는 말이 되든지 안 되든지 그대로 직통번역을 해야 하는데, 말이 안 될 거 같아서 조금씩 고치는 것이 이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는 성구를 예수님께서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여자여”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머니여”라고 고친다면,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입니다. 어머니지만 “여자여”라고 해야 뜻이 딱 맞는데, 사람의 생각으로는 ‘아들 입장에서 어머니를 여자라고 하는 것이 무슨 말이냐?’며 말이 안 된다고 어머니라고 번역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여’가 맞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신적으로는 아들이지만, 신성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구속주이십니다. 구속주로서 구속 사업을 해나가시는데, 어머니인 마리아라고 해도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머니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속주가 구속주 역할을 하고, 마리아도 구속 사업에 간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어머니를 여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어머니라고 고치는 것이 바로 거짓 붓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예로 ‘바리새인 교회들과 서기관들 앞에 백성의 잘못된 것 너희가 살인하지 말라 하였다고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또 ‘간음하지 말라고 하였다는 것을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성구가 있습니다. 거짓 붓으로 고치는 사람들은 ‘하였다는 것을 들었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며 고치자고 합니다. 즉, ‘구약에는 살인하지 말라 하였으나 나는 네게 말하노니’, ‘구약에는 간음하지 말라 하였으나 나는 네게 말하노니’라고 고쳐놓는 것입니다. 고쳐놓으면 그럴 듯도 하고 말은 잘 통하는듯합니다. 원문대로 하면 ‘살인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읽어보면 이상하고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것이 맞습니다. ‘구약에는 이렇게 말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고치는 것은 아주 잘못된 해석으로 되기 때문에 잘못된 것입니다. 요즘 새 번역은 이렇게 표현되었는데, 잘못되었습니다.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는 것은 너희가 구약을 잘못 배웠다는 뜻인데,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배웠지만 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고치면 예수님께서 구약을 고치셨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을 고치신 것이 아니고, 구약성경을 근본 정신대로 가르치셨습니다.
또 요즘은 ‘하나님’을 ‘하느님’이라고 표현해놓은 데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하느님은 다른 분인데,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떼어 놓고 하느님을 모셔놓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하느님은 무엇이 다릅니까? 하나님은 유일신(唯一神), 한 분 밖에 없으신 하나뿐인 하나님이십니다. 한 분 밖에 없으신 유일신이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하느님이라고 하면 대아(大我), 우주만물 전체를 말합니다. 하느님 사상은 범신론 사상에서 나온 것인데, 우주는 대아이고 나는 소아(小我)로 나누어집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은 하느님, 나는 작은 하느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이라고 표현하고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라는 단어는 잘못된 것이고, 사용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는 유일신,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신, 한 분밖에 계시지 않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신입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렇게 성경 번역을 잘못하면 아무리 연구를 해도 진전이 되지 않고, 아무리 배워도 점점 더 잘못된 길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잘못 배우는 것도 서기관의 거짓 붓이 신앙을 망쳐놓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 번역된 성경을 읽으면 신앙의 전부를 망쳐놓게 되는데, 서기관의 거짓 붓 때문에 다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바른 성경을 보면서 번역이 제일 잘되었다고들 하는데, 해석이 잘되었습니다. 요새는 해석을 잘하기 위해서 어학을 연구하는 사람들
이 이렇게, 저렇게 재번역을 하면서 공동 번역도 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잘되는 것 같습니다.
한 성경을 다른 길로 배우는 사람들
우리는 같은 성경을 가지고도 성경 공부를 바로 해야 합니다. 같은 성경이라고 해도 길이 다르기 때문에 바른 성경말씀으로 바른 길을 걸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알미니안주의는 알미니안대로 성경을 공부해서 알미니안의 길로 나가고, 칼빈주의는 장로교라서 장로교로 나가고, 루터 파는 루터 교리로 나가고, 천주교는 천주 교리로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가는 길이 각자 다릅니다. 같은 성경인데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제 신사 참배 때에 같은 성경으로 신사 참배가 죄라고 하는 목사가 있었고, 같은 성경으로 신사 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하는 목사도 있었습니다. 모두 한 성경으로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지 않는 법이 없다. 권세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복종하지 않는 것이니, 권세를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목사들도 있었습니다. 또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국가의 의식으로 신사 참배를 하는 것이지, 우리가 복을 달라고 비는 것이 아니다. 즉, 이것은 우상이 아니다. 우상은 복을 달라고 빌어야 우상인 것인데 이것은 국가 의식으로 국가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사 참배가 하나님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해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로 해석하신 분들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했으니, 우상을 섬기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같은 성경인데 해석이 이렇게 서로 다른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선거를 하는 것에 대해서도 괜찮다고 하는 목사가 대부분이었으나 그 와중에도 ‘주일날 선거를 하는 것은 국가 사업이니까 안 된다. 개인 사업도 안 되는데 국가 사업을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라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북에서 감옥에 들어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또 화폐를 개혁하여 신청하는 날이 주일날이었는데 이것도 성경에 위반이라고 가르치는 목사들이 있었고, 신청하는 것은 노동하는 것이 아니라며 신청한 목사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일날 이삭을 잘라 잡수셨는데, 그것이 무슨 죄냐? 돈이 얼마나 있다고 종이 한 장을 못 쓰겠느냐?’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 해석을 달리한 것입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지 못한 결과
그래서 바른 해석, 바른 성경, 바른 번역을 배워야 바른 신앙이 됩니다. 번역이 잘못된 것을 배워도 안 되고, 또 성경이 바로 된 것을 잘못 배우면 비뚤어진 길로 나가게 됩니다.
요새 배우기를 잘못 배운 사람들이 구원을 사회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불쌍한 사람, 억압 받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고 건져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니까 그렇게 나가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영적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학생이 나에게 와서 왜 사랑이나 구제 사업, 사회사업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다른 교회는 많이 하는데 우리는 왜 밤낮 성경대로 바로 믿고 영적 구원과 바로 서라는 것에 대해서만 가르치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서 하는 것이 진짜인 줄 알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왜냐하면 영이 먼저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영이 살지 못하였는데 아무리 사회사업을 많이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영이 살고 사람이 바로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사람이 바로 되면 나가서 선한 일은 얼마든지 많이 한다. 교회는 선한 일을 하는 기관이 아니고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기관이며, 영이 사는 기관이고, 하늘나라 운동을 하는 기관이다. 사람을 바로 만드는 공장이다. 이렇게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늘나라 운동을 하고 영을 살리며 사람을 바로 만들어 내면, 그 사람이 나가서 정치도 하고 사회사업도 하고 구제도 하며, 많은 일을 해나가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만들어내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교회에서는 자체적으로 구제 사업, 사회사업을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할 만한 사람을 만들어내서 그 사람들이 나가 구제 사업, 사회사업을 잘하게 이끄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어느 것이 진짜인지 대답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원리는 영이 살아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고 하늘나라 운동을 하여 사람을 바로 세우면, 그 사람이 사회에 나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그런데 근본을 뿌리는 일을 하지 않고 사회사업만 해나가면 교회가 사회사업기관만 되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신 신학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우리는 우리대로 해야 구제도 제대로 하고, 사랑도 진짜 사랑을 하고, 나가서도 진짜 선한 일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나에게 왜 안하느냐고 하지 말고, 나가서 네가 그런 사람이 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서기관의 거짓 붓이 문제입니다. 잘못 배우기 때문에 주일 하루도 못 지키고, 교회에서 잘못 배웠기 때문에 우상의 제물을 먹고, 교회에서 잘못 배우기 때문에 주일날 교회에서 바자회도 하는 것입니다. 정신이 나갔습니다. 교회가 바자회를 하는 곳입니까? 하다하다 안 되니까 교회에서 장사까지 합니다. 또 계를 들어서 예배당을 짓는다고 하는데, 그렇게 예배당을 지어서 뭐합니까? 차라리 예배당을 안 짓는 것이 낫습니다. 또 어떤 교회에서는 우량아 선발대회도 하고 미인대회도 한답니다. 교회에 별 것이 다 들어왔는데, 그런 것들은 다 목사가 만드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 안에서 합동 추도예배도 한다는데, 배우기를 잘못 배워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역자가 바로 가르쳐주었을 때는 교인들이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하다가 다른 교역자가 오면 하루아침에 싹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청주에 한 목사님이라고 옛날에 평양 신학을 나왔고, 그 교회 소속은 기장 측이었는데, 그 목사님이 9년 동안 잘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본인이 평양 신학대를 나왔기 때문에 소속이 아무데라도 상관없다고 하면서 기장대로 하지 않고 보수 신앙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은퇴를 하시고 기도원 원장으로 가신 후에 한국기장에 소속되어 있는 젊은 목사님이 후임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싹 다 바뀌어가지고 합동 추도예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부 흰옷을 입고 촛불과 사진을 가지고 다 모여서 예배당에 사진을 쭉 붙여놓고 합동 추도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사진마다 촛불을 피우고 흰옷을 입으며 절을 하게 한 것입니다. 결국 교회가 우상 당, 마귀 당이 되었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아닌 마귀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다 뒤집어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단이 중요하고 교단 소속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보수로 있을 때에는 바로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늙어서 못할 수도 있고 병들어서 못할 날이 오는데, 그렇게 되면 다른 교단의 신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오게 되고, 그 신학교에서 잘못 배워가지고 오면 싹 바뀌는 것입니다. 10년이 아닌 몇 십 년을 바로 가르쳤다고 해도 하루아침에 다 없어지고 맙니다.
하여간 서기관의 거짓 붓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안다고 해도 비뚤게 알기 때문에 알지 못한 것보다 못하고, 지혜가 있어도 지혜는 지식에 지배를 받기 때문에 지식대로 하면 배우기를 잘못 배웠기 때문에 비뚤게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바로 배우지 못했는데 무슨 지혜가 있겠습니까? 바른 진리를 떠났는데 지혜가 있겠습니까? 진리는 영이 사는 진리이며 신령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진리여야 합니다.
교회가 성경을 깊이 가르치지는 못하고, 남녀 학생들로 짝을 지어 여러 방에서 모임을 갖게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무엇을 하도록 했는데, 무엇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 연보로 음식만 먹이고 음행 연습만 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음욕을 품는 것이 간음이라고 하였는데, 그 전에 음욕이 들어왔기 때문에 간음을 하는 것이고 간음은 마음에서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음욕이 들어왔고 음욕이 들어와 실제로 간음을 하게 되는 것입니
다. 성경을 근본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성경은 가르쳐주지 않고 오히려 죄만 장려시킵니다.
가르치기를 잘못 가르치면 그것이 좋아 보이고 그렇게 해야 교회라고 잘못 알게 됩니다. 밤낮 앉아서 ‘주여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케케묵은 것으로 취급을 당하고, 버스를 태워서 흔들어대고 어딘가 놀러 다녀야 믿는 맛이 난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미가 너무 없다고 합니다. 노는 재미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놀고먹고 목사한테 업히고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하면서 다닙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지가 20년 전이니까 이것은 구식이고 요새는 최신식이 나왔답니다. 그것은 놀러갈 때 맥주를 박스로 싣고 가서 취한 다음한 절반은 제 정신이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이쯤 되었으면 가르치는 사람이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교인들은 무엇을 알겠습니까? 가르친 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서기관의 거짓 붓이 문제입니다. 잘못 가르치는 것이 제일 큰 문제라는 것입니다. 비뚤게 가르쳐서 그렇게 배우면 그것이 옳은 줄 알고 그대로 다 나가는 것입니다. 요새 교회들이 거침없이 죄를 짓는 것은 다 배우기를 잘못 배워서 그런 것입니다. 죄인 줄 알면 그렇게 나가겠습니까?
고려 신학생 중에 한 명이 부산 문화원에서 방화를 한 사건이 있었는데, 물어보니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방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고려 신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지만, 해방 신학자들이 쓴 책에 서기관의 거짓 붓 표현이 있었던 것입니다. 즉, 억압 받는 사람에 대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물리치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나와 있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미국 사람이 와서 한국을 억압한다고 생각하고 불을 놔서라도 쫓아버려야만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순교의 정신으로 잘못 행동한 것입니다. 이렇게 잘못 배우면 죄를 짓는 것도 의인 줄 알고 생명을 내놓고 나갑니다.
본문 10절에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와 전지(田地)를 모두 타인에게 빼앗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원수를 보내서라도 빼앗아가게 만들어놓으시고 비참한 상태에 빠지게 만드십니다. 결국 바로 배워야 하는데 잘못 배우는 것이 큰 문제인 것입니다. 바로 배울 수 있는 것이 큰 감사이고, 바로 배우는 것이 생명길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자기만 살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사는 길이며, 자손들도 사는 길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비뚤게 나가면 자손들도 거침없이 죄를 짓고 망하게 되며,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오게 되는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