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으로 만들어지라
데살로니가후서 1:5-12
데살로니가후서 1:5-12
5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5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이며, 너희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니, 이를 위하여 너희가 고난을 당하고있다.
1:6 하나님의 공의는 너희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1:7 환난을 당하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자신의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1: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불꽃 가운데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1:9 그들은 주님의 얼굴과 그분의 능력의 영광에서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1:10 그 날에 주께서 오셔서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도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기 때문이다.
1:11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
1:6 하나님의 공의는 너희에게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1:7 환난을 당하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자신의 능력 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1:8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불꽃 가운데 형벌을 내리실 것이다.
1:9 그들은 주님의 얼굴과 그분의 능력의 영광에서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1:10 그 날에 주께서 오셔서 성도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 가운데서 기이히 여김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도 그들 가운데 있을 것이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기 때문이다.
1:11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하시고, 또한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일을 그분의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따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분 안에서 영광을 받게 되기를 원한다.
1. 하나님 나라를 위한 고난
환난 받는 자에게 안식과 위로로 갚아주심
환난 받는 자에게 안식과 위로로 갚아주심
본문 5절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고,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고난 받는 일, 그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게 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것입니다.
본문 6-9절에,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또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라고 하였습니다. 고난 받는 것은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환난 받게 하는 저희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십니다.
환난 받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안식과 위로를 주십니다. 환난을 믿음으로 이기면 하나님이 안식을 주시고, 위로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환난과 핍박받은 것을 채워 주시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위로와 안식입니다. 위로와 안식을 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나가신다고 했는데 환난과 핍박을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 나라의 합당한 자로 잘 만들어집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첫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둘째도 참고 견디는 것이고, 셋째도 참고 견디는 거라고 했습니다. 잘 참고 견디십시오. 왼뺨 치면 오른 뺨 돌려대십시오. 오른뺨 맞을 예산하고 나가십시오. 아파도 참는 것입니다. 참으면 뭐가 생깁니까? 참으면 하나님이 안식을 주시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주십니다. 안 맞으면 뭐하겠습니까? 안 맞으면 안식 못 받고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자가 못됩니다.
환난 받는 것이 큰 복임
예수님이 재림할 때 상급으로 갚아주시는데, 로마서 5장 3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환난 중에 슬퍼하고 낙심하지 않고,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이 성도입니다. 왜 즐거워 한다 하였습니까? 환난은 인내를 만들어내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소망을 이룬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자격을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환난을 받는 것이 큰 복입니다. 환난 받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안식과 위로를 베풀어 주시고, 예수님 재림할 때에 상급으로 주십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이런 것이 없습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인내도 없고, 연단도 없고, 소망 이루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환난 받는 사람에게 인내가 생기고, 연단이 생기고, 소망이 이루어지는데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만들어진다는 뜻입니다. 환난 안 받는 사람은 그 복이 없습니다.
다니엘이 환난 받아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았습니까?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를 먹지 않겠다고 하다가 환난 받았습니다. 또 사자 굴에 들어가는 환난을 받았습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풀무 가운데 들어가는 환난을 당했습니다.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풀무 가운데 던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인내가 만들어지고, 소망이 이루어지고, 연단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많은 환난 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환난 받은 자가 쓸 만한 사람입니다. 미국에 어떤 교회에서 교역자를 초청하는데, 한국에서 환난을 많이 받은 교역자를 초청 한다고 했답니다. 미국에 살면서 환난 받지 못한 교역자보다는 한국에서 공산당 환난, 일본 제국주의 시대 환난, 신사참배 환난, 주일환난 등 여러 가지 환난 겪은 교역자를 초청하겠답니다.
환난 받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연단을 받고, 인내가 생기고, 소망이 이루어져서 믿는 일이 되어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에 있는 사람들이 요새 환난 없이 평안히 사는데, 여기서도 믿음 지키려고 하면 환난 받을 수 있습니다. 제대로 바로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으려고 결심하고 적극적으로 따라가면 고난이 옵니다.
무슨 고난이 오는가 하면, 전도하는데도 고난이 오고, 주차장 당번을 해도 고난당하고, 교회에서 봉사해도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식당에서 밥하는 것, 기도원에 가서 봉사하는 것이 다 고난당하는 것 아닙니까? 고난 중에 인내가 생기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고,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2. 환난을 자청함
환난을 만들어 받은 사도바울
환난을 만들어 받은 사도바울
김현봉 목사님은 환난이 없는 사람은 환난을 만들어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환난이 안 옵니다.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환난을 만들어 받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바울입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4-33절에,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 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했습니다.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나의 거짓말 아니하는 줄을 아시느니라 다메섹에서 아레다 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새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많은 환난을 받았습니까? 성벽을 지키고 잡으려 할때 광주리를 타고 도망치느라고 많은 환난 당했습니다. 매를 몇 번 맞았습니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태장은 세 번, 돌로 한번 맞았고, 또 세 번이나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 됐습니다. 전도하러 가다가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그 다음엔 강도의 위험, 강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했습니다. 바울이 가만히 있었으면 그
환난을 받았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있었으면 바울보고 뭐라고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평안히 공부만 하던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환난은 하나도 안 받고 평안히 잘 살다가 평안히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난을 만들어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해도 올라갔습니다. 올라가서 잡혔습니다. 환난이 그냥 오는 것도 있고, 자기가 만들어 받는 환난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음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따랐습니까?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에,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에게는 배와 그물이 재산입니다. 그러나 배와 그물, 부친을 다 버리고 혈혈단신으로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혈혈단신이라는 건 모든 것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따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하니까 예수님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아버지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른 너희도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버리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좀 평안하게 사는데 자기가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만들어 받으면 얻을 게 많습니다. 만들어 받지 않으면 거저 오는 것이나 받아야 되는데, 거저 오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주일날 시험 치는 것에 대한 환난이 오겠는데, 장년들은 그것도 오지 않기 때문에 만들어 받아야 됩니다. 만들어 환난을 받을 때 제자들과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된다는 말입니다.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주가 인도하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봉사 많이 하고, 연보 많이 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연보도 안하고, 봉사도 안하고 평안히 거저 하겠다는 것은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건 상급이 없습니다.
3. 환난은 인내와 소망과 위로의 상급이 됨
환난이 있는 곳에서 만들어질 것
환난이 있는 곳에서 만들어질 것
바울이 당한 고난은 만들어서 당한 고난인데, 선교하느라고 당하는 고난도 우리가 만들어서 해야 합니다. 선교사는 몸 바쳐서 선교하는 것이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없는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는 환난이 많은 교회에 나가야 일할 게 많습니다. 요새 교인들이 다 부자들이 되어서 게으르고 나태하여 조그만 개척 교회는 안 나간다고 합니다.
그런 교회는 안 나가고 크게 지어놓은 교회에 앉았다가만 오는 그런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그건 믿는 게 뭔지도 모르고, 믿는 법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자기가 져야 하고, 또 자기가 만들어 고난 받아야 되는데, 고난 받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난 없이 예수님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환난을 받아야 제대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기도원에서 신학생들이 봉사를 하는데 그렇게 봉사하는 데서 만들어집니다. 환난을 안 받으려면 신학교 그만두면 됩니다. 봉사 할 때 땡땡이 부리는 신학생도 있는데, 환난 받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인데, 안 받고 어떻게 만들어지겠습니까? 일을 안하면서 일하는 척 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앞으로 사람 구실 못합니다. 제대로 힘을 쓰고 달라붙어서 일해야 앞으로 희망이 있습니다. 봉사 안하고 땡땡이 부리는 사람
은 앞으로 희망 없습니다. 교역자 되어도 희망 없는 사람입니다.
환난 없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다. 환난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지고, 예수님 재림 할 때에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새벽기도하기가 힘들어도 겪어 나가는 것입니다. 금년에 기도하기를 힘쓰라는 말입니다. 전도하기를 힘쓰고, 연단과 환난 많이 받으십시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하는데, 이북에는 ‘젊어서 고생은 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생함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고생 안하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야 됩니다.
환난 받은 성도에게 재림하실 때 갚아주심
우리 성도들도 고난을 많이 당해야 예수님 재림할 때 그 사람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본문 7-8절에,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의 천사와 함께 불꽃 가운데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는데 심판주로 나타나십니다. 심판주로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고,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준다는 것입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 하나님께서 안식을 주시고, 또 환난 받게 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사람은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가운데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재림할 때는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온다고 했습니다.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셔서 심판하십니다. 심판하기 위해서 능력의 천사와 함께 오시고 불꽃 가운데 나타 나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 심판하기 위해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재림 하실 때 성도에게는 신랑으로 오시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순종치 않은 자에게는 능력의 천사와 함께 불꽃 가운데로 나타나신다고 했습니다. 무서운 것입니다. 불꽃가운데 나타나신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불신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두 종류의 사람,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와 복음을 듣고도 복종치 않는 자에게 형벌을 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능력의 천사와 같이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심판 받을 종류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형벌 받게 되어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 즉 듣고도 복종치 않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 자 같습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도 복종치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형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善惡)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예수님 앞에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행한 것이 하나님 마음에 합당하면 상급을 받고 영광을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행한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복음에 합당치 아니하면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도 심판대 앞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대로 믿었느냐 성경대로 믿지 않았느냐에 대하여 심판하십니다. 상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복종치 않는 자는 형벌을 받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대로 복종치 않는다고 해도 지옥은 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옥에는 안 가도 형벌을 받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안 하고 믿음대로 안 하면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서의 일인데, 어떤 부부가 차를 타고 가면서 말다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중에 다른 차가 뒤에서 와서 부딪쳤답니다. 그래서 그 부부가 바로 회개했다고 합니다. 말다툼 하는 것에 대해 ‘이것 봐라 하나님이 당장에 징계하신다’하고 회개했다는 것입니다. 말다툼은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소리가 나는 것은 둘이 같아서 그런 것입니다. 손도 부딪쳐야 소리가 납니다. 한 손으로는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말다툼하는 자체가 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한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하면 왜 소리가 나겠습니까. 가만히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지 않으시면 안 죽는 거지, 뭐 사람이 죽인다고 해서 죽겠나’하고 서로 부딪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형벌을 주시는데, 차 사고의 형벌도 있고 하나님의 축복이 떠나기도 하고 고통이 오기도 하고 징계가 오고 가시가 오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징계가 옵니다. 믿는 사람이 믿음을 안 지키면 하나님께서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믿음 안 지키고 세상으로 나가고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음란하고, 그렇게 믿음 안 지키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형벌을 주십니다. 요즘은 노아시대 같아서 아주 ‘자유방종(自由放縱)’하는 시대입니다. 방탕하는 시대입니다. 노아시대에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방탕하지 않았습니까? 음란방탕하면 하나님께서 형벌을 주십니다. 당장에 징계가 오는 수도 있고 후에 어떤 형벌이든지 오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징계하시기도 합니다. 또 몸의 병으로 징계가 오기도 하는데, 가시가 생기는 것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시를 줬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여간 믿음 안 지키고 신앙 안 지키고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의 형벌이 옵니다.
안 믿는 사람하고 둘이 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형벌은 누가 받습니까? 믿는 사람이 먼저 받습니다. 안 믿는 사람은 괜찮습니다. 왜 괜찮은지 아십니까?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왜 믿는 사람에게 징벌이 먼저 옵니까? 고린도전서 11장 32절에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고 믿는 사람들을 먼저 징계하십니다. 지옥에 가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 보내면 공의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믿는 사람은 지옥에 안 보낼 것 아닙니까? 그래서 먼저 세상에 있는 동안 다 징계하여 회개시키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사탄에게 내 준다’고 했습니다. 육신은 다 망하고 영혼만 구원 얻게 하려고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으로 오는 것입니다. 불신자(不信者), 즉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는 형벌을 주십니다.
또 복음을 듣고도 순종치 않는 자, 즉 믿노라 하면서 성경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9절에,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라고 하십니다.
주의 얼굴과 그 힘의 영광을 떠나서 형벌 받는다고 하였는데, 이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을 순종치 않는 자들이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실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날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이히 여긴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기이히 여기겠습니까? 부활체로, 신령한 몸으로 영광 가운데 재림하시는데, 예수님만 쳐다봐도 참 기이히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생기셨구나, 예수님의 영광이 저렇게 크구나, 저렇게 아름다운 예수님이시구나’ 이렇게 기이히 여기면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겠습니까?
예전에 중국에 가서 말씀 인도했을 때 교회 나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내 앞에 와서 나를 계속 쳐다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부끄럽게 왜 계속 쳐다보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마 전에 말만 들었는데 오늘 바라보게 되니까 어떻게 생겼나하고 기이히 여기며 쳐다본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이히 여기게 생긴 게 아닙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얼마나 기이하겠습니까? 한 번 바라만 봐도 눈이 다른 데를 볼 여지가 없고 또 너무 좋고 너무 아름답고 너무 영광이 충만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기이히 여김을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재림하실 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4. 바울의 기도
11절에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기도한 내용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기도합니까?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하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해달라’,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하여 항상 기도했는데,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함
첫째는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렀는데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부르신 목적이 있을 것 아닙니까? 왜 부르셨는가? 바울은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 하나님의 뜻에 딱 맞는 자,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방탕하며 세상에 나가 놀고 자유방종 하라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있는데, 거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에 딱 맞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경대로 행하고 성경대로 말하고 성경대로 생각하고 성경대로 인격이 이루어져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합당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새 국회의원 출마하겠다는 사람이 많은 모양인데, 국회의원 되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다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국회의원 되기에 합당한 자가 나오면 괜찮습니다. 그러나 되지 못한 사람이 명예 영광심으로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하면 그런 사람은 안 써줘야 합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자,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면 참 좋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딱 들어맞는 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목적에 딱 맞는 사람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합당하게 쓰시려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쓰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거기에 합당한 자가 되게 해 달라는 것이 첫째입니다.
선한 일 하게 해 달라고 기도함
그 다음은 ‘선한 일 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선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악은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선으로 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를 선으로 해결하고 선으로 취급하고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해석하고 선으로 보아야 합니다. 악으로 보면 안 됩니다.
같은 사건이지만 악으로 보는 사람이 있고 선으로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다 선한데, 마귀는 전부 악하게 보는 겁니다.
선을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선으로 하면 하나님께 상을 받고 악으로 모든 것을 하면 형벌을 받습니다. 악으로 하지 마십시오. 악으로 생각하지 말고 선으로 생각하십시오. 악으로 해석하지 말고 선으로 해석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악으로 맞지 말고 선으로 맞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날 사랑하셔서 이렇게 바로 세우시려고 징계하신다, 이렇게 매를 맞는 것이 마땅하다’하며,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악으로 ‘왜 때리십니까, 내가 뭘 잘못 했습니까, 내가 다른 사람보다 못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이렇게 갖다 붙이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가 아니면 안 주시는 하나님, 복이 아니면 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부 다 은혜와 복으로 주신 줄 알고 선으로 해석하고 선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악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원망 불평하면 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도 선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통과했습니다. 그러나 악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왜 우리를 인도하셨나, 우리를 죽이려고 인도하셨다, 라고 여기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리고 올라가라 했는데 안 올라 가다가 다 멸망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선으로 해석하십시오. ‘나를 만드시려고 이런 환경을 주셨다, 가시를 주신 것도 나를 교만하지 않게 하고 바로 세우시려고 주셨다’라고 생각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바로 세워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만드시려고 주셨다’ 하며 달게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선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하나님께서 다 잘 되게 하려고 했지 죽이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악으로 해석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죽이려고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도 만나만 먹고 고기 못 먹는다고 원망했습니다. 만나 속에는 고기와 채소 성분이 다 들어가 있어서 그것만 먹어도 사십년간 살게 되어 있는데도, 고기 못 먹고 채소만 먹는다고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능력으로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함
선으로 범사를 해석하면 큰 유익이 됩니다. 선을 기뻐함과 또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기게 해달라고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가다가 막힐 때가 많습니다. 그때 능력으로 성공적으로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 될 것 같아도 됩니다. 다시 말하는데 믿음을 지켜 나가다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도록 해달라고 기도하는 겁니다. 믿음으로 나가는 일, 믿음으로 시작한 일, 우리가 믿음으로 걸어 나가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가 그것들이 다 능력으로 좋은 열매가 맺히도록, 성공적으로 통과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사람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함
12절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면 너희도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32절에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를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를 통하여 영광을 얻으시면 하나님도 너희에게 영광을 주시리라’,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또 우리에게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된 길로 걸어가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을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먹고 마실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이 아닌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는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을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주일 잘 지키는 것,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지키는 것입니다. 주일날을 지키지 아니하고 놀러가고 방탕하고 자유방종하는 것들은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됩니다. 주일 잘 지키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또 십일조 드리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안 드리는 것은 영광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하고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 할 때에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영광이 안 되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한 말, 강퍅한 말은 영광이 안 됩니다. 우리는 영광되는 말만 해야 합니다. 또 무슨 일을 해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된
다고 하면 손해되는 길도 걸어가야 합니다. 핍박 받는 길과 매 맞는길이라 해도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하면 가는 것입니다. 죽을 일이 생겨도 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된 죽음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크게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됐는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일이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영광되는 일이기 때문에 십자가도 예수님께서 달게 지고 나가신 것입니다. 죽어도 영광 돌리는 죽음이 큰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죄를 안 짓고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입니다. 세상에 빠지는 것은 영광된 길이 아닙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 된 일입니다.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죄를 이겨야 합니다. 경건한 생활, 의로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선을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영광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 영광된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책임지십니다. 절대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되는 일만 하시기 바랍니다. 매를 맞아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매를 맞고 굶어도 하나님께 영광 되게 굶고 죽어도 하나님께 영광되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영광되지 않은
길은 걸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 되게 해야 합니다. 싸우고 다투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지는 것입니다. 욕심 부리는 것, 즉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등은 다 영광을 가리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광 가리우는 것들을 싹 끊어 버려야 합니다. 영광되는 일만 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하는 증거를 얻습니다. 마치 에녹과 같이 ‘저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다’라고 보이게 됩니다. 술 먹는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술을 먹어도 괜찮습니다. 담배 피는 사람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면 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영광이 안 되면 먹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이 되겠나, 안 되겠나’ 생각해야 합
니다. 어디를 갈 때도 이 길이 하나님께 영광 된 길이겠나, 아니겠나 생각해 보고 갈 것은 가고 안 갈 것은 안 가야 합니다. 영광되지 않은 것은 생명을 내 놓고 싹 끊어야 합니다. 영광 될 것은 어떠한 희생이 와도 그 길, 즉 하나님께 영광되는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니다. 어디를 갈 때도 이 길이 하나님께 영광 된 길이겠나, 아니겠나 생각해 보고 갈 것은 가고 안 갈 것은 안 가야 합니다. 영광되지 않은 것은 생명을 내 놓고 싹 끊어야 합니다. 영광 될 것은 어떠한 희생이 와도 그 길, 즉 하나님께 영광되는 그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영광을 얻는 길은 세상에서 공부 많이 하고 명예를 얻고 출세하고 무슨 학위를 받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영광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된 길을 걸어가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교회 조사 일을 보았는데, 조사 일보는 것은 그만 두고 다른 곳에 가서 박사 학위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것도 학위를 괜찮은데 가서 받으면 되겠는데, 시원치 않은 곳에 가서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교회 일 보는 것이 영광이지, 그 일 그만 두는 것이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박사 학위 받으면 뭐하겠습니까? 누가 알아줍니까?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영광된 길만 걸어가십시오. 이사 가는 것도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 같으면 가고 안 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 될 것 같으면 가지 마십시오. 우리는 모든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느냐, 안 되느냐’ 거기다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영광 된 길을 걸어가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고 다니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땅에 떨어뜨리십니다. 자기가 잘 되려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리면 자기도 땅에 떨어질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