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목욕한 자는 발을 자주 씻어라
요한복음 13:1-17
요한복음 13:1-17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야 할 자신의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13:2 만찬 때에 마귀가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사람 유다의 마음에 주님을 넘겨줄 생각을 넣었다.
13: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맡기신 것과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13:4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13:5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13:6 시몬 베드로에게 오시니,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 주께서 제 발을 씻기십니까?" 하니,
13: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13:8 베드로가 말하기를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않으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13:9 시몬 베드로가 말하기를 "주님, 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소서." 하므로,
13: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밖에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가 깨끗하나 모두는 아니다."
13:11 이는 예수께서 자기를 넘겨줄 자를 알고 계셨으므로 "너희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3:12 예수께서 그들의 발을 씻겨 주신 후에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13: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 이라고 부르니, 너희 말이 옳다. 내가 과연 그러하다.
13:14 내가 주이며 선생으로서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라고 내가 너희에게 본을 보여 주었다.
13: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종이 그의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이있다.
13:18 내가 너희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대항하여 그의 발꿈치를 들었다.' 고 한 성경이 이루어질 것이다.
13:19 이제부터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그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13:20 내가 진정으로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누구든지 내가 보내는 이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다."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괴로워하시며 증언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하나가 나를 넘겨줄 것이다." 하시니,
13:22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시는지 몰라 서로 바라보고 있었다.
13:23 그분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13: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가리켜 말씀하시는지 여쭈어보라고 하니,
13:25 그가 예수님의 가슴에 그대로 기댄 채 그분께 말하기를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므로,
13: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빵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바로 그 자이다." 그리고 빵 조각을 적셔서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13:27 그가 빵 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러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셨다.
13:28 식탁에 앉은 자들 가운데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는지 알지 못하였다.
13: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았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사라." 하고 말씀하시거나, 또는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는 줄로 생각하였다.
13:30 유다가 그 빵 조각을 받고 바로 나갔는데, 밤이었다.
13: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
13:32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영광을 받으셨다면, 하나님께서도 자신 안에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시되, 즉시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3:33 자녀들아, 내가 아직은 잠시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곧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내가 유대인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올 수 없다.' 고 말한 것처럼 지금 너희에게도 말한다.
13:34 새 계명을 내가 너희에게 주니,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다."
13:36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니,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네가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나를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것이다."
13:37 베드로가 또 말하기를 "주님, 왜 제가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제가 주님을 위하여 제 목숨을 내어놓겠습니다." 하니,
13:3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내어 놓겠느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하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한 번 목욕 했으면 발만 자주 씻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심
본문 1절에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로 돌아갈 때가 된 줄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그래서 자기 사람들인 제자들, 믿는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께서 극진히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되 이렇게 최고의 사랑으로 사랑하십니다. 극진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고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가 늘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같이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 늘 기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들은 다 부족해서, 누군가가 기도해 준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들의 기도는 그저 기도하면 다 이루어 주신다고 했으니 그것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지극한 사랑으로 늘 기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요만치 만큼이라도 지금 나왔습니다. 아주 망하지 아니하고 아주 하나님을 배반하지 아니하고 요만큼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늘 감사해야 합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예수님
본문 4-5절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겉옷, 즉 두루마기 같은 옷을 벗으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허리에는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이후 담아온 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차례차례 하나 씩 하나 씩 그렇게 하시다가 베드로 앞에까지 오셨습니다.
본문 6-8절에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고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주여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하며, 감히 선생님께 발을 내밀고 씻겨 달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십니까”는 말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후에는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라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겸손한 마음으로 “선생님께서 어떻게 제 발을 씻기시겠습니까,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길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상관이 없으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그러니 이 말을 듣고 베드로가 깜짝 놀랍니다. 본문 9절에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씻어 주시 않으시면 주님과 상관이 없다고 하니, 베드로는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다 씻어 달라”고 한 것입니다.
목욕했음은 중생을 가리킴
본문 1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는 말은 이미 목욕을 했으니 발만 씻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이미 목욕했다’는 것을 ‘너희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앞으로는 안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지금은 그 뜻을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지금은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앞으로는 안다고 하신 것을 보면 깊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에 깊은 뜻이 있고 이미 목욕했다는 말에도 깊은 뜻이 있습니다.
‘이미 목욕을 했으니 발만 씻어도 족하니라’에서 이미 목욕했다는 것의 신령한 뜻은, 중생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피로 죄 사함을 완전히 받고, 회개하고 깨끗해졌다는 뜻입니다.
회개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기본 회개와 중복 회개입니다. 기본 회개는 예수님을 믿을 때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한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한 번밖에 안 됩니다. 일생동안 한 번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을 때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이제 다시는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이미 다 깨끗해 진 것입니다. 그러나 발은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발은 늘 씻어야 합니다. 발은 나가서 여러 가지 더러운 것을 밟고 돌아다니니 그것은 날마다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때마다 자주 발을 씻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복 회개입니다. 날마다 때마다 나와서 죄 짓던 것을 회개하는 것은 발 씻는 것과 같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미 목욕한 것은 기본 회개로서, 중생한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로 다 씻음을 받았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다 깨끗해졌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다 깨끗하게 씻음을 받았습니다. 다 깨끗해진 것입니다. 다 깨끗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이미 깨끗해졌지만 다는 아니다’라는 말씀에서, ‘다는 아니라’는 것은 가룟 유다가 불택자라는 뜻입니다.
가룟 유다 이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믿었으니, 다 깨끗해졌다는 말입니다. 이제 발만 씻어도 된다는 말씀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사람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 전부를 깨끗하게 씻음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 깨끗해졌습니다.
본문 10-11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이미 다 깨끗해졌는데 다는 아니다’는 말씀은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본문을 보면 분명합니다. 가룟 유다는 깨끗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목욕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육신적으로 목욕을 안 했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를 참 구주로 영접해서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욕했다’는 것은 중생한 것을 가리키는 게 분명합니다. 또, ‘다는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을 보면 가룟 유다가 육신의 목욕을 안 했다는 말이 아니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깨끗함을 받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발도 씻겨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발도 예수님께서 씻겨 주셨지만, 그는 목욕을 못 했기 때문에 발 씻은 게 그다지 효과가 없습니다. 온 몸이 더러운데 발만 씻으면 뭘 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중생의 도리를 알려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또, 발 씻는 것은 때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때때로 죄 짓는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은 중생의 도리를 알려주신 것이 분명합니다. 또, 발 씻는 것은 때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때때로 죄 짓는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생한 영혼은 깨끗하다
우리가 중생하게 된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서 중생한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예수님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중생했는지 안했는지 뭘 보고 안다고 했습니까? 요한일서 5장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다 중생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중생하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중생은 ‘살아난다’, ‘산 영혼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깨끗해졌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깨끗합니다. 더러운 게 없습니다.
발 씻는 것은 때마다 짓는 죄를 회개하는 것임
그런데 발이 문제입니다. 발에는 부패성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에 부패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 밖에 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부패성, 그로 말미암아 때마다 죄를 짓습니다. 그것을 회개하는 것이 발 씻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발 씻는 생활을 날마다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날마다 회개해야 함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미 중생한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이미 깨끗해졌는데, 그래도 부패성이 있습니다. 날마다 때마다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발을 씻어 주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회개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씻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발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누가 안 내밀었습니까? 베드로가 안 내밀면서 절대로 씻지 못한다고 하다가, 안 씻으면 상관이 없다고 하니 머리와 손도 다 씻겨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너희 발을 내밀고 발 씻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는 생활을 날마다 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죄를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발 씻는 것입니다.
무슨 죄를 회개해야 되겠느냐며 어떤 사람은 자신이 죄가 없다고 합니다. “내가 도적질을 했느냐? 살인, 강도를 했느냐? 음란 방탕을 했느냐?”라며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 없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다 죄가 있다고 했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를 회개할 것
무슨 죄를 회개해야 할까요? 첫째로 과거에 지은 죄를 늘 회개해야 합니다. 과거에 죄 안 지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과거에 자기가 지은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과거에 지은 죄를 늘 회개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2-13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5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스스로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내가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요,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는 데서 증인을 서고, 다메섹에서는 믿는 사람을 끌어다가 핍박하려고 했다’, 이것을 바울은 늘 회개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전에 지은 죄를 매일 회개하고 그 다음에 다른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6:6에 보면, 다윗이 한 번 지은 죄를 가지고 늘 회개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간음죄 한 번을 지었는데, 그것을 가지고 늘 일생동안 매일 밤마다 회개한다고 했습니다. 밤마다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린다고 했습니까? ‘침상을 띄우고 요는 적시고’, 요가 다 젖도록 매일 밤마다 전에 지은 죄, 간음죄 한 번 지은 것을 가지고 회개했습니다. 침상이 뜨고 요가 젖도록 회개했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자기 부인을 하게 됨
전에 지은 죄를 가지고 회개해야 합니다. 물론 전에 지은 죄에 대해 한 번 회개했으면 다 사함 받는 것입니다. 매일 회개해야 사함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한 번만 회개해도 다 사함 받습니다.
그런데 왜 날마다 회개해야 하느냐 하면, 회개함으로 자기 부족함을 늘 깨닫게 되고 자기를 부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회개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살려 하는 생각이 생기고, 하나님이 가까워집니다. 전에 지은 죄가 심령의 거름이 됩니다. 썩어진 데가 비료가 되는 것입니다. 썩어진 것은 좋지 않지만, 그 썩어진 것인 비료를 가져다 곡식 뿌리에 퇴비로 뿌리면, 곡식이 그 퇴비의 기운을 흡수해서 잘 되는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영혼의 거름입니다. 그것이 심령의 거름이 되어 늘 회개하는 사람이 됩니다. 거름은 썩은 것입니다. 풀이나 짚 같은 것을 썩혀 만드는 것이 퇴비 아닙니까? 그것을 갖다 곡식에 주면 곡식이 아주 잘 자랍니다. 금비 친 것보다 퇴비 친 것이 더 잘 됩니다. 염화칼슘 등의 비료보다 이 퇴비가 더 잘 됩니다. 이렇게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은 퇴비 치는 것과 같습니다. 썩어진 그것을 곡식이 흡수하고 자라나고 새 힘을 얻어 생생해져 나가는 것입니
다. 그래서 전에 지은 죄를 늘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 자기를 부인하게 되고 겸손해집니다. 그 다음에 영혼에 거름이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게 됩니다.
전에 지은 죄에 대한 것은 버리면 안 됩니다. 일생동안 써먹어야 합니다. 퇴비를 일생동안 곡식에 준다고 하면 그 곡식이 얼마나 잘 되겠습니까? 그러니 사도 바울도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였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도 한 번 간음죄 지은 것을 가지고 매일 밤마다 눈물 흘리며 침상이 뜨고 요를 적시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회개해야 합니다.
한 번만 회개해도 죄 사함을 받지만, 한 번 회개하고 그만 두면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자기 부인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 있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또 자라나지 못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전에 지은 죄를 회개해야만 자기가 부인이 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자기가 전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며 더 받으려하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죄, 하나님의 표준에 오르지 못한 죄를 회개할 것무슨 죄를 회개해야 하느냐, 둘째는 자기 속에 있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 속으로 지은 죄와 나타나지 않은 부패성, 욕심, 더러운 마음, 음란한 마음, 남을 미워한 것, 이 모든 것을 늘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부패성이 다 있습니다. 그것을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발 씻는 것입니다. 발을 잘 씻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올라가지 못한 것, 즉 사랑하지 못한 것, 남을 용서해 주지 못한 것, 혈기 부린 것, 좀 더 자라나지 못한 것, 좀 더 잘 믿지 못한 것, 믿는다고 해도 하나님께 충성하지 못한 것, 충성했다고 해도 오히려 부족한 것, 이러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충성하긴 했지만 백 점 맞는 충성을 못 했습니다. 충성하긴 했지만 몇 점이나 맞겠습니까? 우리 충성한 것 몇 점이나 맞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을 잘 공경하려고 힘을 쓰는데, 몇 점이나 맞을 것 같습니까? 하나님 보시기에 10점? 그래도 한 50점은 맞아야지 10점짜리가 무얼 하겠습니까? 60점은 넘어야 낙제를 면하는 것입니다. 충성했다고 해도 쥐꼬리만큼 충성한 것, 그것은 점수 못 올라갑니다. 하나님을 섬겼다고 해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야지, 전폭을 쏟아 부어서 섬기지 못하고 그저 조금 충성하면서 섬기면, 그것은 죄입니다.
과불급(過不及)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표준에, 성경 말씀에 과불급, 즉 지나가도 죄고 못 미쳐도 죄입니다. 말씀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긴다 하면서 모든 정성, 모든 힘, 모든 노력, 모든 뜻,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다 기울여서 충성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충성했다고 해도 얼마나 부족합니까? 하나님께 바쳤다고 해도 얼마나 부족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려고 하지만 얼마나 부족합니까? 그것을 늘 회개하십시오.
그렇게 회개하는 사람은 점점 바로 서 나갈 것입니다. 점점 진보가 됩니다. 회개하니 그 잘못한 것을 버리고 또 올라갈 것 아닙니까? 고칠 것 아닙니까? 그래서 진보가 되는 신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점점 깨끗해집니다.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함
그 다음은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제일 즐거워하는, 하나님의 그 영적 세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지 못한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 세계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회개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나올 때에는 발을 씻고 나오십시오. 발을 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목욕해서 깨끗하지만, 날마다 때마다 더럽힌 일이 있으니 그것을 늘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오라는 말입니다. 나와서 또 발을 씻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오는 것만 기뻐하시는 게 아니라 발 씻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또 발을 씻어주시려고 대야에 물을 떠오시고 수건으로 허리를 동이시고 하나 씩 하나 씩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발을 씻어 주려고 하시는 예수님이신 줄 알고, 감사하고 감사하면서 발을 씻는 저희가 다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온전케 돼 나가는 것입니다. 못된 성품 다 고쳐야 하고, 사랑하지 못한 것을 사랑해야 하고, 용서해 주지 못한 것을 용서해 줘야 합니다.
3. 사랑과 용서의 본을 보이신 예수님
서로 사랑하라
본문 14-15절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발을 내가 씻어 주셨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라고, 본을 보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발을 씻어 주라는 말은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본’입니다.
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내가 너희를 목욕시켜주고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발 씻어 주시는 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 나가는 일, 구원해 나가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또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34절에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내가 너희를 목욕시켜주고 발을 씻어 준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예수님의 발 씻어 주시는 것을 본받아서 우리도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살려 나가는 일, 구원해 나가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남의 죄를 하나님을 믿음으로 용서하라
몇 번까지 용서해 주라고 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씩 일곱 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든지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칠 수는 만수(滿數)인데, 얼마든지 용서해주라는 것입니다. 서로 남의 허물만 보지 말고, 남의 허물만 보고 또 정죄만 하지 말고 용서해주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해 주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도 예수님께 용서 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은 백 데나리온밖에 안 됩니다. 육십만 분의 일밖에 안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용서해 주신 것은 일만 달란트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게 잘못한 것, 내가 용서해 줘야 할 것은 백 데나리온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우리가 예수님께 용서 받은 것의 육십만 분의 일밖에 안됩니다.
그렇게 큰 죄를 우리가 예수님께 다 용서 받았는데, 다른 사람이 내게 조금 잘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용서 못해 준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용서해 주면 또 그럴 것이다, 아예 싸워야지 용서해 주면 또 그러고 또 그러고 할 거니까 아예 싸워서 해결을 해야지, 대가리가 열 쪽이 나도 아예 싸워야 되겠다, 대가리가 깨지든지 어떡하든지 해결을 봐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제 대가리만 깨졌지 해결이 안 납니다.
그러나 용서해 주면 해결이 납니다. 해결되는 법입니다. 어떻게 해야 해결이 나겠는가 하면, 용서해 주고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보호해 주시고 또 상대방을 감동 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셔서 바로 될 날이 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 주고 사랑하면 됩니다.
‘또 그러지 않겠느냐’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부처(夫妻)끼리 서로 맞지 않아서 따로 사는 집이 하나 있는데, 합하라고 제가 말했습니다. 합하라고 그러니 합해야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합하면 또 그 버릇 할 거니까, 그것을 또 어떻게 당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같이 살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소름이 다 돋는답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을 믿어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는데 무섭기는 뭐가 무섭다는 것이냐,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떠한 환난이 올지 그것을 미리 겁내지 말고,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잘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회개시켜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해 주실 것을 믿고 해 봐라”고 말했습니다.
믿고 하면 됩니다. 아무리 사자와 같이 사나워도, 다니엘 앞에서 사자가 꼼짝 못하지 않았습니까? 괜찮습니다. ‘다 할 수 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다’, 이런 신앙을 가지져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느냐,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 또 내게 어떤 피해가 올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을 믿는다. 또 사자는 하나님께서 굴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다 된다고 했습니다. 믿고 나가십시오. 용서해 주고 사랑하고, 본을 받아서 이렇게 나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4.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라
먼저 예수님의 사랑을 알자
본문 16-17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에서 상전은 예수님이시고 보냄을 받은 자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알고 행하면 너희가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서 우리 발을 씻어 주신 것을 알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목욕시켜 주신 것과 우리 발을 씻어 주신 것, 이것을 알고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알고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그 큰 사랑,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해 주신 그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얼마나 많이 죄를 지었습니까? 현재도 우리에게 부패성이 가득하지만, 이러한 우리를 예수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시고 사랑하셔서 건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큰 사랑을 알고 행하는 사람,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큰 구원의 은혜를 알고 행하는 사람, 예수님의 사랑의 세계에서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먼저 자기가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믿음의 세계에 들어가고 영적 세계에 들어가고 예수님의 사랑의 세계에 들어가서 얼마나 큰 사랑을 해주셨는지, 그 사랑에 감격해야 합니다. 이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여기 본문에 십자가를 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각자가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거저먹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으니 십자가의 길로 가셨으니, 우리도 십자가의 길로 가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셨으니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가야 하겠습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짊으로 영광이 된다
이렇게 하면 큰 영광이 됩니다. 하나님께도 큰 영광이 되고 자기에게도 영광이 됩니다. 본문 31-32절에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면 또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면서 자기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면서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가고, 말씀을 순종해나가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어떻게 하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십니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그 사람에게도 또한 영광을 주신다
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第一)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부터 알고 다녀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 어떠한 일이라도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겠느냐,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되겠느냐?’, 안 될 것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광 될 것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영광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야 예수를 따라갈 수 있다
본문 37-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목숨을 버리겠다고 작정을 하고 나가지만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는 생각이 있습니까?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닭이 울어 보아야 압니다. 닭 몇 번울어 봐야 압니까? 베드로는 세 번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자기 생명까지 내놓고 따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주여 내가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라고 했는데, 그 잡히시던 날 밤에 왜 못 따라갔습니까? 다 버리겠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왜 못 따라갔느냐 하면, 베드로가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날 성령 강림 후에는 은혜에 사로잡혀서 목숨을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에 사로잡혀서, 감격해서 나아가야 목숨까지 버리고 따라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며, 그 은혜에 사로잡혀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신앙을 가지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