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
영적 예배, 산 제사
로마서 12:1-2
영적 예배, 산 제사
로마서 12:1-2
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
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
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받은 몸
본문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
로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하
심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그러므로’라는 것은 ‘은혜
로 구원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택하심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님이 너희를 불러 주셨다. 너희를 하나님이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어서 은혜 가운데로 인도하였다. 참 감람나무에 접붙여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라고 했는데, 우
리 구원은 전부 하나님의 자비에서부터 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
든 자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고, 그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한다고
했습니다. 너희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
으니, 이제는 자비하심에 권면을 받아 말씀대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은혜에 감격해서 하라는 것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라는 말씀은,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풍성하신
은혜로 구원을 거저 주셨으니, 이제는 너희가 권면을 받아 감격에 넘
치고, 사랑에 끌리어서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2.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산 제사의 조건
1)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함
제사는 산 제사가 있고 죽은 제사가 있습니다. 죽은 제사 드리지 말고 산 제자를 드리라 는 말씀입니다. 아벨과 가인 둘 다 하나님을 같이 섬겼습니다. 가인은 산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죽은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은 산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도 정성을 다해서 처음 익은 곡식 모든 정성을 다 해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것은 산 제사가 되지 못하고 죽은 제사가 됐습니다. 그건
왜 산 제사가 못 됐습니까? 가인의 제사는 왜 산 제사가 못 됐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산 제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산 제사가 되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됩니다. 아담이 자
기 자손들에게 늘 가르쳐준 바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고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려 주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나갈 때에는 피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해 입혀 주셨기 때문에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 그게 하나님 앞에 옳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아담이 아들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같이 들었지만, 가인은 일 년 농사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처음 익은 곡식으로 제사 드렸습니다. 곡식으로 하나님께 정성
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지만 말씀에 맞지 않았고, 아벨은 자기 아버지
가 보내준 복음을 명심해 두고 있다가 ‘하나님께 갈 때는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다. 우리는 범죄 했기 때문에 피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제사
드렸고, 그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성경말씀에 맞는 제사입니다.
드리지 못하고 죽은 제사를 드렸지만, 아벨은 산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도 정성을 다해서 처음 익은 곡식 모든 정성을 다 해서 하나님을
섬겼지만 그것은 산 제사가 되지 못하고 죽은 제사가 됐습니다. 그건
왜 산 제사가 못 됐습니까? 가인의 제사는 왜 산 제사가 못 됐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산 제사가 되지 못했습니다.
산 제사가 되려면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맞아야 됩니다. 아담이 자
기 자손들에게 늘 가르쳐준 바가 있는데,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죽옷을
입혀주시고, 또 여인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고 장차 그리스도가 와서 마귀의 권세를 깨뜨려 주겠다고 우리에게 약속한 바가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나갈 때에는 피을 가지고 나가야 된다”고,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해 입혀 주셨기 때문에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 그게 하나님 앞에 옳다”는 진리의 말씀으로 아담이 아들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진리를 같이 들었지만, 가인은 일 년 농사해서 제일 좋은
것으로 처음 익은 곡식으로 제사 드렸습니다. 곡식으로 하나님께 정성
을 다해서 제사를 드렸지만 말씀에 맞지 않았고, 아벨은 자기 아버지
가 보내준 복음을 명심해 두고 있다가 ‘하나님께 갈 때는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되겠다. 우리는 범죄 했기 때문에 피가 없이는 하나님 앞에 갈
수가 없다’고 생각해서 양의 피를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제사
드렸고, 그 때문에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아벨의 제사가 성경말씀에 맞는 제사입니다.
2) 영적 교통이 있는 제사를 드려야 함
아벨의 제사는 피만 가지고 나간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당시 때 사람은 수만 강수의 양의 피와 희생의 피를 가지고 나가도 하나님이 안 받는다 그랬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받으셨는데, 왜 이사야 당시
때는 사람이 피를 가지고 나갔는데 안 받으셨는가? 이사야 1장 11절
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
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많은 수송아지의 피 수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서 번제와 여
러 가지 제사를 드리고 월삭과 안식일과 대세로 모이고 성전 마당을
밞고 기도하지만, 나는 그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안 받는
다고 하셨습니다. 피를 가지고 나온 아벨의 제사는 성경에 맞았기 때
문에 받았는데, 이사야 당시 사람도 피를 가지고 나왔으니까 성경에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안 받으셨을까요?
아벨은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갈 때 받으셨는데, 왜 이사야 당시
때는 사람이 피를 가지고 나갔는데 안 받으셨는가? 이사야 1장 11절
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
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
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많은 수송아지의 피 수양의 피를 가지고 나와서 번제와 여
러 가지 제사를 드리고 월삭과 안식일과 대세로 모이고 성전 마당을
밞고 기도하지만, 나는 그건 기뻐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안 받는
다고 하셨습니다. 피를 가지고 나온 아벨의 제사는 성경에 맞았기 때
문에 받았는데, 이사야 당시 사람도 피를 가지고 나왔으니까 성경에
맞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안 받으셨을까요?
왜 안 받으셨나 하면 영적인 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그 피
를 가지고 나올 때에 그 피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피를 가지
고 나오는 것은 성경 말씀 순종인데, 말씀 순종 할 때에 “장차 그리스
도가 와서 이렇게 피 흘려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는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를 가지고 나올 때에 그 피만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닙니다. 피를 가지
고 나오는 것은 성경 말씀 순종인데, 말씀 순종 할 때에 “장차 그리스
도가 와서 이렇게 피 흘려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는 그리스도를 바라
보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통을 하면서 피를 가지
고 나와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가 된 것입니
다. 이사야 당시 때 사람들은 그저 피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리스도
께서 피 흘려주실 것을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마음, 그리스
도와 영적으로 교통하는 것은 없고 그저 성경 껍데기만 가지고 나와
서 ‘성경대로 했습니다’하고 제사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런 제사는 받지 아니하십니다.
산 제사가 되려면 오늘 날에도 두 가지가 합하면 산 제사가 됩니다.
첫째는 성경에 맞아야 합니다. 성경에 안 맞는 것은 다 산 제사가 아
닙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와 더불어 영적 교통, 영의 역사가 있어야만 산 제사입니다. 그 심령
과 마음을 그리스도에게로 기울여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 교통하
며, 그리스도의 역사로서 심령의 역사가 있으면서 말씀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산 제사입니다. 영이 살아나면서 드리는 제사, 영적 역
사가 있는 제사가 산 제사입니다. 그런 제사는 말씀도 살아 역사하고,
영도 살아서 역사하는 제사이기 때문에 산 제사입니다. 그런 제사는 응답이 있습니다.
3) 생명의 역사가 있어야 함
엊저녁에 한 청년이 찾아와서 여러 가지 물어봤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에 대해서 말해달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응답을 받는 기도를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어서 제가 뭐라고 답변했는가 하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저렇게 하는 것이 옳습니까? 하나님 응답해 주세요. 가렵니까? 가지 말렵니까?”하는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옳은 것
인지 그른 것인지는 성경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
게 하렵니까? 저렇게 하렵니까? 가르쳐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그랬습니다. 옳고 그릇
된 것은 성경으로 판결하여 우리가 해결을 하고, 그 다음에 기도하는
것은 성경대로 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 성경대로 할 힘을
주시고, 이 말씀대로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줬습니다.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옳은 것
인지 그른 것인지는 성경을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에 ‘이렇
게 하렵니까? 저렇게 하렵니까? 가르쳐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기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그랬습니다. 옳고 그릇
된 것은 성경으로 판결하여 우리가 해결을 하고, 그 다음에 기도하는
것은 성경대로 할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됩니다. 이 성경대로 할 힘을
주시고, 이 말씀대로 걸어갈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고 가르쳐 줬습니다.
기도의 응답이라는 것은 생명의 역사 자체가 응답입니다. 생명의 역
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그 예배시간에 심령이 움직여야 되고, 산
역사가 일어나야 됩니다. 그래서 심령이 벌떡 일어나고 새로운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새 생명을 받아가지고 가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죽은 제사는 예배시간에 예배드리러 올 때나, 또 다 끝난 다음에 갈
때나 아무 가망이 없습니다. 올 때는 귀딱지가 팍 늘어져 왔다가 갈
때도 귀딱지가 팍 늘어져 간단 말입니다. 즉, 올 때도 힘이 없이 왔다
가 갈 때도 힘이 없이 간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이 하나도 안 됩
니다. 그러면 응답이 없는 것이고, 그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그러므
로 우리가 산 제사를 드려야 되겠는데, 까딱 잘못하면 죽은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산 제사로 드리는 예배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다 내버려놓고 믿습니다. 요새는 성경대
로 안 믿습니다. “어떻게 성경대로 할 수 있겠는가?”하며 못한다고 말
합니다. 주일하나 지키지 않습니다. 주일을 다 내놓고 믿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주일을 지킵니까? 어떤 교회에 목사가 없어서 다른 목사를 청하려고 하는데, 한 주씩 걸쳐서 목사들을 선보는 일을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 끝난 다음에 음식점에 가서 목사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목사들이 다 ‘잘 먹고 갑니다. 잘 먹었습니다’하고 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사 한 분 데려다가 그 날의 예배를 드리고 음식
점에 가려는데, “아! 나는 주일에 안 먹는다. 주일에 음식점 가면 주일
에 음식 팔아 주는 것이라서 이건 안 먹는다”고는 부딪히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를, ‘여러 목사들이 와서 다 먹었는데 조사
가 와서 안 먹고 갔다. 이 분이 진짜인가? 저번 목사들이 진짜인가?’
하고 저희들끼리 판단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조사가 진짜라고 생각했
다고 합니다. 목사라도 주일에 먹는 것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조사를 그 교회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요새 주일을 다 내놓고 믿는 시대입니다. 주일에 재직회하고
음식점 다니면서 단골 음식점 만들어 놓고 사다 들이고, 또 어떤 교회
에서는 양심의 가책이 오니까 외상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외상으로 사
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건 낫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입니다. 하여간 성경을 다 내놓고 믿는 시대가 됐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다 내버려놓고 믿습니다. 요새는 성경대
로 안 믿습니다. “어떻게 성경대로 할 수 있겠는가?”하며 못한다고 말
합니다. 주일하나 지키지 않습니다. 주일을 다 내놓고 믿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주일을 지킵니까? 어떤 교회에 목사가 없어서 다른 목사를 청하려고 하는데, 한 주씩 걸쳐서 목사들을 선보는 일을 한 모양입니다. 그리고 주일날 예배 끝난 다음에 음식점에 가서 목사들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목사들이 다 ‘잘 먹고 갑니다. 잘 먹었습니다’하고 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조사 한 분 데려다가 그 날의 예배를 드리고 음식
점에 가려는데, “아! 나는 주일에 안 먹는다. 주일에 음식점 가면 주일
에 음식 팔아 주는 것이라서 이건 안 먹는다”고는 부딪히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하기를, ‘여러 목사들이 와서 다 먹었는데 조사
가 와서 안 먹고 갔다. 이 분이 진짜인가? 저번 목사들이 진짜인가?’
하고 저희들끼리 판단을 해봤는데, 아무래도 조사가 진짜라고 생각했
다고 합니다. 목사라도 주일에 먹는 것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조사를 그 교회로 모셨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요새 주일을 다 내놓고 믿는 시대입니다. 주일에 재직회하고
음식점 다니면서 단골 음식점 만들어 놓고 사다 들이고, 또 어떤 교회
에서는 양심의 가책이 오니까 외상으로 먹는다고 합니다. 외상으로 사
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 건 낫으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
입니다. 하여간 성경을 다 내놓고 믿는 시대가 됐습니다.
성경에 분명히 우상의 제물 먹지 말라고 하였는데, 우상의 제물을
거침없이 다 먹고 나가고 있습니다. 이 시대가 성경 많이 내 버렸습니
다. 선진국에서도 성경 많이 내버렸습니다. 옛날 미국에서는 주일 하
나 지키는 것 때문에 비가 많이 와도, 일 년 농사한 것 다 떠나가도
주일에 나가서 걷어 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올림픽 할 때는 주일에
한다고 해서 미국 선수단을 올림픽에 보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오늘 날은 얼마나 다 타락이 되었습니까? 성경 다 내놓고
예수 믿는 시대가 됐습니다. 말씀에 맞추어 예수 믿는 것이 진짜입니
다.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리 잘한다 해도 그것은 다 산 제사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가인의 제사와 같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한다고 해도 무엇이 없으면 산 제사가 못 된다고
했습니까?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제사자체
는 말씀에 맞았는데 영적인 역사가 없었습니다. 아벨은 영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양의 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기울여서 영적 교통을 하고,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
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영적인 산 역사와 운동력이 있어야
하고, 그 심령에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며,
그리스도의 역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으며, 우
리 영이 살아나며, 말씀에 바로 서며, 그 말씀에 생명이 되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날마다 살아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살리는 운동이지,
형식적 운동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운동입니다. 살아나가
므로 자라나는 운동입니다. 산 것 만치, 자라난 것 만치, 하나님이 그
가운데 들어와 계셔서 성전으로 삼으시고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운
동입니다. 하늘나라 운동입니다. 사는 게 없다고 하면, 이것은 사는 교
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산 제사를 늘 드리기를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했습니까? ‘영적인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사야 당시에는 제사자체
는 말씀에 맞았는데 영적인 역사가 없었습니다. 아벨은 영적인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 양의 피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에게
마음을 기울여서 영적 교통을 하고, 영접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의 역사
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산 제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영적인 산 역사와 운동력이 있어야
하고, 그 심령에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며,
그리스도의 역사를 하나님께 드리며,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있으며, 우
리 영이 살아나며, 말씀에 바로 서며, 그 말씀에 생명이 되며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산 제사입니다.
그러면 영혼이 날마다 살아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살리는 운동이지,
형식적 운동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살아나가는 운동입니다. 살아나가
므로 자라나는 운동입니다. 산 것 만치, 자라난 것 만치, 하나님이 그
가운데 들어와 계셔서 성전으로 삼으시고 역사하는 하나님의 구원운
동입니다. 하늘나라 운동입니다. 사는 게 없다고 하면, 이것은 사는 교
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산 제사를 늘 드리기를 힘을 써야 되겠습니다.
3.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 영적 예배, 산 제사
몸으로 드리는 제사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인 예배니라’고 그랬는데,
‘영적예배’라고 하면서 영에 대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말씀에 맞고, 영적으로 드려야 그것이 하나님께 산 제사
가 된다는 말입니다.
무엇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까? 또 무엇의 권면을 받으라
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권면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강건함
을 받아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권면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강건함
을 받아 너희 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산 제사는 누가 기뻐합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그건 또
무슨 제사입니까? 거룩한 제사입니다. 영적 예배, 산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입니다. 거룩한 제사입니다. 또한 살아 역사하는 제사
입니다. 그것이 영적 예배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희 몸으로 드리라
고 하십니다. 너희 몸으로, 말로만 드리지 말고, 물질로만 드리지 말고
몸으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형식적으로 드리지 말고 몸으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몸이라 하면 신, 혼, 신(神, 魂, 身) 전체를 다 가르칩니다. 데살로니
가전서에 신, 혼, 신이 나왔는데,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몸이라 하면 이 세 가지가 포함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
도 여기 들어갑니다. 몸이란 말은 헬라어로 ‘쏘마’인데, 쏘마라 하면
우리 영, 우리의 마음, 우리의 몸을 다 합해서 쏘마, 몸이라 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영적으로 제사를 드리는 동시에, 네 육신의 몸도
마음도 다 하나님 앞에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입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쳐서 이 산 제사를 드리는데, 이 산 제사에는 너희 마음과
몸이 전부 이용이 되라는 것입니다. 산 제사에 너희 마음과 몸이 전부
이용이 되고, 전부 희생하라는 말씀입니다. 제물이 되라는 말입니다.
산 제사는 진리와 영으로 드리는데, 거기에 너희 마음과 몸이 이용
이 되어 끌리어 가고, 거기에 희생이 되어야 합니다. 말로만 하고 마
음은 딴 데 두거나, 마음으로 하는데 몸이 안가면 그것은 온전한 제사가 되지 못합니다.
희생하는 데까지 나가는 제사
산 제사는 진리와 영적인 영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진리의 역사가
있는 동시에 영의 역사로 인도합니다. 진리의 인도와 영의 인도함에
자기 몸이 끌리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희생하는 데까지 나가야
됩니다. 전적으로 바쳐 나가야 됩니다. 그런 영의 인도와 진리의 인도
에 자기 몸과 마음을 전부 바쳐서, 그 인도하는 데로 어디까지나 끌리
어가는 제사, 가다가 희생하는 곳까지 나가는 제사가 산 제사입니다.
십자가 안지고, 희생하지 않고는 가지 못합니다. 몸 바쳐 놔야 가고,
십자가를 져야 하고, 희생을 각오해야 갑니다. 이것이 옳은 줄을 알고
하나님의 인도를 알면서도 안 따라 간다고 하면, 그게 무슨 제사가 되
겠습니까? 안 따라가는 것은 산 제사를 알기만 할 뿐이지 맛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말씀과 영의 인도를 따라가는 것이고, 따
라가다가 거기에 희생되는 것이 산 제사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씀과 영의 인도를 따라가면서 희생할 줄 아는 신앙을 가져
야 되겠습니다. 나는 나대로 있고, 예수님은 예수님대로 있는 것은 산
제사가 아닙니다. 그러면 산 제사를 못 드립니다. 끌리어 가야 됩니다.
따라가야 됩니다.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하면서 말씀의 인도와 영
의 인도를 받아 어디든지 따라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거기에 희생되고 이용당하려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다 바쳐서 그 일을 위해서 순종하고, 따라가고, 이루어 드리
는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입니다. 왜 거룩한 제
사인가? 이는 하나님의 영의 인도와 말씀의 인도를 따라가기 때문에
그것은 사욕을 다 버리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
을 버리고 따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아주 거룩한 제사입니다.
그렇게 따라오려는 사람이 자기 몸을 말씀의 인도와 영의 인도에
전적으로 바치지 않고, 인도를 안 따라가는 것은 산 제사 구경만 하러
가는 것입니다. 구경꾼입니다. 자기는 못하고 맛이나 조금 보고 남의
산 제사 드리는 데 가서 떡이나 한 개씩 얻어먹고 오는 것입니다. 잔
치 집 가서 떡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전적으로 바치지 않고, 인도를 안 따라가는 것은 산 제사 구경만 하러
가는 것입니다. 구경꾼입니다. 자기는 못하고 맛이나 조금 보고 남의
산 제사 드리는 데 가서 떡이나 한 개씩 얻어먹고 오는 것입니다. 잔
치 집 가서 떡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들과 같습니다.
우리도 이전에 남의 잔치 집에 떡 얻어 먹으로 가곤 했습니다. 남의
잔치 한다고 하면, 가서 대문간에 가서 “떡 하나 줄 것 없습니까?”,
“야! 하나 얻었다”, “또 하나 줘라”하면서 하나 갖다가 좋다고 또 갖다
먹고, “또 녹두전 하나 줘라”, 또 뭐 하나 달라면서 그것 가지고 아이
들이 좋다고 뛰놉니다. 그래서 잔치 집에는 하나씩 얻어먹으려는 아이
들도 많고, 개들도 뼈다귀 얻어먹으려 해서 마당에 개들도 많습니다.
이제는 산 제사 드리는 데에서 그런 떡이나 한 개씩 얻어먹고 다니
는 사람 되지 말고, 자기가 산 제사 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사
는 일이고, 그것이 복 받는 길이고, 그것이 생명이며, 하나님의 큰 모
든 것을 다 받는 것입니다.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제사
본문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
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
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산 제사를 드리려면 너희는 이 세
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으면 다 틀어지므로 산 제사를 드릴 수 없습니다. 풍
속, 습관, 풍조, 부흥, 세대적인 사상, 신학사조, 교회풍습, 이런 세대적
인 것을 따라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으면 산 제사는
못 드립니다. 세대 본받으면서 산 제사 드리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
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세대를 본받는 것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사랑할 수 있다고 그랬습니까?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
입니다. 세대적인 풍속, 이 세대에 맞혀서 예수 믿는 것, 세대적인 신
학사조, 세대적인 교회 운동이나 운영법, 인본주의 법, 이렇게 세대적
인 신자들이 하는 모든 것, 그것을 다 본받지 말라고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