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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1:23-29 모세의 믿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모세의 믿음
히브리서 11:23-29

23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 24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 28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1. 믿음의 발걸음

믿음으로 모세의 부모는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함

본문 23절에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달 동안 숨겨 임금의 명령을 무서워 아니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7:20에는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모태에서부터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아이 위에 충만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 부모가 모세를 볼 때에 “이 아이는 하나님이 같이 하시는 아이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 아이에게 충만하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앞으로 귀히 쓰실 것이다”라는 것을 알 만큼 아름답게 보인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에는 노인도 아름답고, 어린아이도 아름답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입니다. 애굽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이 남자 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때에 왕의 명령을 어기면 그 부모까지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모가 “이 아이를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될까?”, “하나님이 같이 하는 아이, 하나님이 앞으로 이 아이를 귀히 쓰실 것이 분명한데 나일강에 빠뜨려 죽이면 안되겠구나”하며, 석 달을 숨겨서 기르다가 석 달 후에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역청을 칠하고, 그 안에 모세를 넣어, 살려 주실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나일강에 놓았습니다.

그 때에 바로 왕의 딸, 공주가 하숫가를 거닐다가 아이 우는 소리를 듣고 가서 갈대 상자를 열어 보니까 아이가 있는데,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로 삼아서 기르려고 유모를 구하려고 할 때에, 모세의 누이가 숨어서 보고 있다가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당신을 위하여 이 아이를 젖 먹이게 하리이까” 할 때에, 바로의 공주가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어머니를 불러다가 유모로 삼았고,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가 젖을 뗄 때까지 길렀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를 기르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었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백성인지를 가르쳤으며, 장차 어떻게 될 것인지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래서 젖 뗄 때까지 완전한 신앙이 모세에게 들어갔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함

본문 24-25절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장성하여 사십세 되던 때에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면 바로의 아들과 같은 지위에 있고, 왕위까지 물려받을 만한 그런 위치에 있습니다. 왕의 자리에 올라 갈 희망이 있는 자리인데, 모세는 그것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자리를 택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택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는 백성이고, 하나님의 권고가 있는 백성이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백성이고, 장차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백성이므로, 모세는 이 모든 것을 공주의 아들의 지위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귀히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애굽의 모든 쾌락주의, 향락주의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종살이 하는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이 무엇이 좋겠습니까?
일반적으로 자기 백성이 잘 되면 자기 백성 말하기를 좋아하겠지만, 자기 백성이 종살이 하면 말하기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도 일본에 가서 잘되고 출세하면, 한국 사람이라고 안 한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으로 귀화해서 아예 일본 사람으로 출세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고, 왕위와 그 모든 것을 물려받을 위치에 있었으나 종살이 하는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공주의 아들이라는 지위, 또 앞으로의 모든 부귀영화는 현재는 좋은 것 같으나 잠시 잠깐이면 다 없어질 것들임을 믿었으므로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인간의 일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잠깐 동안입니다(약 4:14). 칠십년, 팔십년도 못되어서 다 없어집니다.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참여한 것임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고 이스라엘의 구원 운동에 참여하면, 그것은 영이 사는 것이며, 하나님의 약속에 참여하는 것이며, 영원한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으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에 같이 참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현재는 종살이를 하지만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이 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에 참여한 것임

창세기 15:5-6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하였습니다.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는 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리스도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오실 것을 믿고,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데 참여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에게 참여한 것입니다. 창세기 12:1-3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은 아브람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승되어 내려갑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종살이 하는 백성이지만 거기에 참여하기를 작정한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그리스도가 나셔서 세계만방이 구원받을 것을 아브람에게 알려주셨는데(창 15:5), 장차 그대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에서 그리스도가 나셔서 “그리스도로 인해서 모든 백성이 복을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로 인해서 구원 받을 것이다”를 믿었기 때문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기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하였는데, 죄악의 낙이란 믿음을 쓰지 않고 육신의 사욕을 좇아 방탕과 향락주의로 나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낙을 추구하는 모든 것이 죄악의 낙입니다. 애굽의 낙은 죄악의 낙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은 영광스러운 즐거움입니다.

◉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임

베드로전서 1:8에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예수를 믿으면 외부적으로는 고난도 있으나 속에는 그리스도와 영으로 교통할 때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즐거움은 영적 즐거움이고,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즐거움이고, 말씀을 지키므로 영이 자라나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세상 즐거움은 외부적으로는 즐거움이 있으나 헛된 것이고, 쓴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술 마시면 기쁘고 즐거운 것 같지만 속에는 쓴 것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고난 받는 사람은, 외부적으로는 고난을 받으나 속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고난 받아,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참여하려고 하였고, 또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주신 복에 참여하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출세, 향락주의는 죄악의 낙으로 그 가운데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외부적으로는 고난을 받아도 속에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있습니다.

◉ 그리스도에게 참여한 것임

본문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기 전 1500년 전 사람인데 어떻게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았는가? 모세는 장차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바라보고 믿었으며 영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리스도에게 참여하였습니다. 창세기 3:15-16절에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해 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또 예언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으로 같이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10-11에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모든 선지자들 속에서 역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영으로 구원역사를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3-4에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도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셨고, 만나를 먹었는데 하나님이 내려주셔서 먹었습니다.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라고 했는데, 반석이나 만나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그리스도가 저희를 영으로 따라 간 것입니다.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생수를 준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려고 반석에서 물을 내게 하신 것입니다. 또 만나를 내려 주신 것도 육신의 양식으로 주셨지만, 이제 그리스도가 오셔서 “영적 신령한 양식이 된다”는 것을 상
징적으로 가르쳐 주시려고 만나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동행하고 영으로 교통하며 믿음을 지키느라고 고난과 능욕을 다 받았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능욕을 받는 것이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 더 큰 재물입니다. 애굽의 모든 재물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때에는 애굽이 세계 일등 국가이므로 애굽의 재물을 값으로 말하면 상당한 재물일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의 모든 재물보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는 것을 더 크게 여기며 나갔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능욕을 더 귀하게, 더 크게 여긴 것입니다.

◉ 하늘의 상에 참여한 것임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인해서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거짓말로 비방을 받을 때에 복이 있습니다. 그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상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고난 받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애굽의 모든 재물은 다 쓰라고 해도 쓸 수가 없습니다. 뭣에 씁니까? 애굽의 재산을 다 준다고 해도 하루에 얼마나 쓰겠습니까? 다 쓰지 못하고 죽으면 못 가져 갑니다.
또 죽으면 자기 것이 아닙니다. 살았을 때만 자기 것이지, 죽으면 자기 것이 못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큽니다. 또 하늘의 상은 영원토록 있습니다. 하늘의 상급은 영원토록 자기의 것입니다. 면류관도 자기의 것입니다. 세상 재물은 잠시잠깐 쓰다가 놓고 가는 것이고, 또 자기 것이 못 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의 상급은 하늘나라에 간 날부터 영원토록 자기 것이 됩니다. 하늘나라에 가보면 “아! 내가 그 때에 조금만 더 고난을 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못 받았다, 아! 그때에 내가 좀더 참았어야 하는데 못 참았다”하며 후회할 것입니다. 이제 잠시잠깐이면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다 가게 됩니다. 그 때에 믿음을 지키면서 고난 받은 만큼 상급을 다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것을 택하여야겠습니까? 애굽의 재물을 택하여야겠습니까?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 받고, 고난 받는 것을 택하여야겠습니까?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과 고난 받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재산보다 더 크며, 영원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믿음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당장에 세상에서 잘 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돈을 많이 벌고,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을 택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하여야 책망을 받지 않겠는가를 항상 생각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재산을 택하였다면 하나님 앞에서 책망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을 택하였기 때문에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받습니다. 잠시 잠깐이면 이 세상은 다 지나갑니다.


2. 믿음을 지킨 모세

믿음으로 애굽을 떠남

그 다음에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났습니다. 애굽을 떠나서 유월절을 지키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본문 27절에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라고 하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또 하나님께서 가나안까지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애굽을 떠났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는 것같이 믿고, 모든 시험과 난관을 참고 견디며 나아갔습니다. 또 하나님을 살아 계시는 분으로 믿고 나아갔습니다. 애굽은
자기 나라가 아닙니다. 이제는 가나안 땅이 자기 나라입니다.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이 남의 오이 밭에 들어가서 오이를 따려고 자기 아들한테 “누가 오면 알려 달라”고 하며 망을 보라고 하였답니다. 그리고 밭에 들어가서 오이를 따려고 하는데 아이가 밖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봅니다!”라고 소리를 치니까, 오이 밭에 들어갔던 아버지가 놀라서 후닥닥 뛰어 나와 “누가 봤느냐?”고 하니까, “하나님이 봅니다!”라고 했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오이는 따지도 못하고 자기 아들한테 책망만 받았습니다. 죄 짓는 사람들은 다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있는 줄은 모르고, 사람의 눈만 피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고 계시는데, 사람이 안 보면 괜찮은 줄 알고, 못된 짓 하며 다니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은밀히 다 보시고 죄에 대해서 징계 하시고,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안 보시는 줄 알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양심을 안 쓰며 온갖 못된 짓을 하고 돌아가는데, 왜 책망을 안받겠습니까?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함

본문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를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저희를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는 것과 같이 믿고, 의뢰하므로 애굽을 떠날 때에 유월절 양을 잡아 먹고,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장자가 죽는 것을 면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될 것을 믿고 그렇게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애굽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일 때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넘

본문 29절에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믿음으로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 때에 홍해를 만났습니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따라오고 앞에는 홍해가 가로 막고 있어 죽게 되었는데,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손에 있는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출 14:16). 그리고 바다 가운데 생긴 마른 땅을 건너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이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홍해를 가리키면 홍해가 갈라질 것을 믿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면 육지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널 것을 믿습니다”하며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 때에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다음에 건널 때에는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물이 벽과 같이 쌓여서 넘실대지만 하나님이 무사히 건너게 해 줄 것을 믿습니다”하며 건너갔습니다.

홍해를 건널 때에 “이 물벽이 허물어지지 않겠나?”의심 하면서 건너면 안 됩니다. 어떻게 건너야 됩니까? “하나님이 말씀대로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켜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다 건너가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보호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널 것을 믿습니다”하면서 건너가야 다 건널 수가 있습니다. 애굽 군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 “우리도 건너가자”하며 갔으나, 애굽 군대가 강에 다 들어간 다음에는 “이것이 합해지지 않겠
나?”하며 의심하다가 홍해가 합해져서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즉 애굽 사람들은 홍해가 갈라진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믿지 않고 홍해가 우연히 갈라진 것으로 알고 자기들도 건너보려고 시험하며 건너 간 것입니다. 즉 애굽 군대가 건너면서 이 갈라진 물이 다시 합하여지지 않을까? 하며, 의심하고 염려한 것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에 대해 의심하고, 믿지 아니하고 나가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해주신다고 했으면 그대로 될 줄로 믿고 나가야 됩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으로 된다”하며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모세의 신앙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모세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나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다 떠날 수 있고, 다 버릴 수 있고, 고난도 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향락주의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주를 위하여 고난 받는 길로 가는 것이 참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기에 아브람의 축복이 있고, 여기에 가나안 땅을 허락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같이 일하고, 같이 고난 받고, 같이 걸어가고, 같이 봉사하는 것에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능욕을 많이 받을수록 하늘나라에 가면 받을 상이 큽니다. 그러므로 “주를 위해 고난을 좀더 받고 왔으면 좋을 뻔 했다, 내가 좀더 그리스도를 위해서 핍박을 받았으면 좋을 뻔 했다”고 그 때에 후회하지 말고, 하늘나라에서 받을 좀더 큰 상급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애굽을 담대히 떠나 홍해를 믿음으로 통과하는 이런 신앙을 가지고 우리가 전진하면, 모세에게 주었던 하나님의 복을 우리에게 다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