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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1일 토요일

고린도후서 4:1-6 직분 충성.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직분 충성
고린도후서 4:1-6

1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2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 3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5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6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1. 하나님의 긍휼로 직분 맡은 자의 자세

본문 1절에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하므로”란 3장5절 이하에 말한 대로 “복음의 직분은 영광스러운 것이므로”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란 우리가 복음의 직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부족함이 많은 우리가 복음의 직분을 받아서 나갈 때에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낙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직분을 맡기실 때에 무슨 자격이 있어서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라고 하였는데, 긍휼을 입혀서 이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즉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셔서, 자격이 없지만 긍휼을 베풀어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낙심하지 말라

하나님이 긍휼로 직분을 맡겨 놓으셨기 때문에 부족하지만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맡기시고, 하나님이 하시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맡기셨다면 자기가 자격이 없을 때에는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라

본문 2절에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버린다고 하였습니까? 숨은 부끄러움, 궤휼, 진리를 혼잡케 하는 것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 가지를 사도 바울이 버리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것을 버려야 합니다. 숨은 부끄러움은 은밀한 가운데 죄 짓는 생각으로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버려야
합니다. 또 썩어져 가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날마다 버려야 합니다. 마귀는 계속 이런 것들을 넣어 주려고 합니다. 

궤휼 가운데 행하지 말라

궤휼은 속이는 것을 말합니다. 남을 속여서 대접 받으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한 량짜리가 열 량짜리로 나타내려고 하는 것은 속이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도는 진실하여야 합니다. 되지 못했는데 된 사람으로 나타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말라

그 다음에 무엇을 버리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는 것은 죄입니다. 말씀에 무엇을 섞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말씀에 무엇을 섞어 좋게, 아름답게 만들어서 하려면 생명이 없습니다. 종자는 그대로 심어야 합니다. 즉 옥수수는 옥수수대로 심고, 호박씨는 넓적해도 호박씨대로 심어야 합니다. 보리는 길쭉해도 보리대로 심어야지 그것을 보기 좋게 하려고 가루로 만들어 밀가루와 꿀을 섞어 아름답게 모양을 만들어 심으면 좋은 것이 나겠습니까? 그렇게 하면 아무것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생긴 대로 전해야지 그것을 아름답게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맛이 있도록 꿀을 좀 섞어서 주면 달아서 먹기는 잘 먹을 수있으나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까? 생명이 없습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젊은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섞고, 노인에게는 노인이 좋아하는 것을 섞어서 말씀을 전하면 좋아하긴 좋아하지만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듣든지, 말든지 말씀 그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엇을 가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것을 섞어서 좋아하도록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교회들이 사람들이 좋아하는 여러 가지를 많이 섞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 목적이 이끄는 삶” 등은 다 섞은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 자체가 틀렸습니다. 예수님이 이끄는 삶이 되어야지, 목적이 삶을 이끌어서야 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이끄는 교회가 되어야지 왜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됩니까? 나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는 반대합니다. 요즘 많은 교회가 열린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에서 젊은 사람에게 맞추어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악단을 만들어 놓고, 강단에서 남녀가 섞여 춤을 추고, 의복은 가슴이 다 보이는 의복을 입고 춤을 추는데, 모두 사람들의 입맛에 달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경꾼들이 많이 모이는데, 그 사람들이 교인입니까? 조금 있던 참 교인들은 구경꾼들에게 다 빼앗기고 나중에는 참 교인들이 다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만 전하여야 하고, 말씀을 혼잡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2:17에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합니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전합니다. 조금만 달라도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만 원짜리 세종대왕의 얼굴에 수염 하나를 없애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종대왕의 얼굴에 수염이 많은데 거기에서 수염 하나만 없애도 그것은 가짜 지폐가 됩니다. 또 수염 하나를 더해도 가짜 지폐가 됩니다. 

이와 같이 성경말씀에 하나라도 더해도 가짜이고, 빼도 가짜입니다. 만 원짜리 세종대왕 얼굴에 수염이 하나가 없어서 구천 원짜리로 써달라고 하면 그것이 됩니까? 안됩니다. 도리어 감옥에 가야 합니다. 수염 하나 없는 만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니다가 잡히면 감옥에 가야 됩니다.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는데, 양심이 안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혼잡케 하지 않고, 말씀만 전하는 것을 각 사람이 양심으로 다 안다는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만일 우리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 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 신”이란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가 복음의 광채를 가리워서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종의 위치에서 섬기라
 
본문 5절에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란 교역자가 교인들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교역자는 종의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장로도 종, 목사도 종, 전도사도 종입니다. 하나님의 종인 동시에 교인들의 종입니다. 종으로 교인들을 섬기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주인 노릇을 하면 안 됩니다. 주님만 높이고 자기는 쇠하여지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종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라
 
본문 6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추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어 주었습니다. 빛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 빛을 받았으므로 빛 가운데 거하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