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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디모데전서 6:11-21 영생을 취하고 명령을 지키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영생을 취하고 명령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6:11-21

11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12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13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1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15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16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17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19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20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21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6:11 하나님의 사람아, 너는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라라.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또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신앙 고백으로 고백하였다. 

6: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6:14 너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켜라. 

6:15 정한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보이실 것이다. 하나님은 복되신 분이시요, 오직 한 분이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님이시다. 

6:16 오직 그분만이 죽지 않으시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며,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분이시다. 그분께 존귀와 영원한 능력이 있을지어다. 아멘. 

6:17 너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하지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며,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어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 하여라. 

6:18 또 선을 행하고 착한 행위들을 많이하며,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여라. 

6:19 그렇게 하여 그들이 장래에 자신들을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게 하여라. 

6:20 디모데야, 너에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된 지식에서 나오는 속되고 헛된 반론을 피하여라. 

6:21 어떤 이들은 이것을 주장하다가 믿음에서 벗어났다.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

본문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는 것은, 우리 믿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믿는 사람,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은 교역자를 특별히 가리키는 동시에, 예수 믿는 사람이 다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람아’ 이렇게 불러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3장 1절에,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에는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라고 했고, 본문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했는데 하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내신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의 부르심을 입었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고,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이전에 우리 동창생 가운데 이성홍 목사라고 있었는데, 그 목사는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는 말씀을 가지고 매우 기뻐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르는 것은 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한 마디만 불러줘도 그것은 아주 굉장한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것을 피하라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이것들을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피하고’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디모데전서 6장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라고 했는데, 부하려 하는 생활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는데, 이제는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구별하셔서, 불러 내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부하려 하는 생활’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부하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시험에 빠지고, 올무에 걸리고,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고,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올무에 걸립니다. 올무로 새나 뭘 잡으려면, 그 새가 먹기 좋아하는 것을 끼워 놓습니다. 새를 잡으려면 딱정벌레를 끼워 넣어야 됩니다. 딱정벌레라고 새까맣고 조그만 벌레가 있는데, 그 딱정벌레를 덫에다 끼워놓으면 새가 와서 딱정벌레를 먹으려고 하면 올무에 탁 쳐서 걸립니다. 또 참새를 잡으려면 뭘 끼우면 됩니까? 벼 이삭입니다. 참새는 벼 이삭을 잘 먹습니다. 벼 이삭을 끼워놓고 그 올무를 놓으면 그것을 먹으려고 참새가 와서 쪼다가 올무에 걸립니다. ‘쇠부리 맞는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덫을 해 놓아 새가 쪼아 먹으면 탁 걸려서 덫의 위아래 사이로 들어가야 잡히는데, 덫 사이에 새가 다 들어가기 전에 덫이 빨리 닫히는 바람에, 꼬리나 날개만 조금 맞고는 달아납니다. 그것을 ‘쇠부리 맞는다’고 합니다. 덫 안에 다 들어가야만 잡겠는데, 쪼아 먹다가 아마 새가 너무 빨리 달아났는지, 하여간 덫이 툭 닫히는 바람에 새가 달아나는 것입니다. 쇠부리 맞은 새는 다시는 거기에 안 옵니다. 한 번 쇠부리 맞으면 다시는 안 옵니다. 죽을 뻔 했는데 다시 오겠습니까? 아무튼 부하려 하면 새가 덫에 걸리는 것처럼 덫에 치입니다. 올무에 걸립니다. 아예 부하려 하는 생각이 없으면 올무에 안 걸립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 알고 최선을 다해서 정당하게 버는 수입으로 살고, 그 이상 더 바라지 않으면 올무에 안 걸립니다. 그러나 부하려 하는 사람들은 다 팔아서 더 크게 사업해서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은 올무에 걸립니다. 

목사들도 교인은 얼마 안 되는데 큰 예배당을 짓고 큰 교회 하겠다고 하다가 빚더미에 올라 앉아서, 그 다음에는 경매 붙이고 실패한 목사가 많습니다. 과분하게 욕심으로 크게 하겠다는 생각을 그만 두라는 것입니다. 욕심으로 “큰 일 하겠다”, “돈 많이 모아야 되겠다”는 그런 생각 그만 두십시오. 또, “힘을 쓰려면 밥을 많이 먹어야 되겠다”하면서 힘쓰겠다고 밥을 두 그릇씩 먹으면 오히려 힘을 못 씁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병듭니다. 너무 많이 먹으면 병듭니다. 또 운동하면 좋다고 해서 운동을 지나치게 하면 도리어 병이 납니다. 무엇이든지 적당하게 해야 됩니다. 

부하려 하는 것은 적당한 게 아니고, 그 이상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게 부하려 하는 것입니다. 부하려 한다는 것은 “돈 많이 벌어서 부자 되어야 되겠다”면서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또 “건강해져야 되겠다”고 해서 지나치게 먹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병이 듭니다. 또, “운동해야 된다”고 하면서 지나치게 두 시간, 세 시간씩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든 사람 많습니다. 지나치는 것이 부하려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시험과 올무와 함정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나 지나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현 위치에서 잘 해나가야 됩니다. 현 위치에서 잘 해나가십시오. 운동을 하는 것은 좋은데, 한 시간 정도 매일 걷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나치는 것은 다 시험과 올무와 함정에 빠집니다. 지나치게 하지 마십시오. 돈도 지나치게 많이 벌려고 하다가 함정에 빠집니다.

의, 경건, 믿음, 사랑, 인내, 온유를 좇으라

본문 11절에,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을 피하라는 것은 돈 사랑하는 것, 부 하려하는 생각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 피해야만 믿음이 되지, 그걸 피하지 못하면 믿음이 안 됩니다. ‘피하고 의와 경건과’라고 하였는데 경건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것입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부하려는 것을 피하고’, ‘의’, 그 다음에 ‘경건’, 그 다음에 ‘믿음’, 그 다음에 ‘사랑’, 그 다음에 ‘인내’, 그 다음에 ‘온유’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피하고 의의 사람, 의를 이루어가는 사람, 경건을 이루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 입니다. 그 다음은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 믿음으로 모든 것을 다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 사랑, 인내, 참고 견디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 다음은 온유를 좇으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영생을 취하라

본문 12절에,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는 것은, 믿음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지 못하게 하는 마귀 역사들, 믿음 지키지 못하게 하는 죄, 마귀의 미혹, 유혹 등과,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다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다 통과하고 믿음으로 다 이기고 믿음으로 해결해야됩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서 믿음 못 지키게 하는 것과 싸우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싸워서 승리하고 통과하라는 것입니다.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하십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기면 영생을 취하게 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못하면 영생을 취하지 못합니다. 영생은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고, 또 이 세상에서 우리의 영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 즉 영적 생명의 역사가 영생입니다. 히브리서 12:4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것입니다.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서 이기면 영생을 취하고, 죄와 싸워서 지면 영생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무엇과 싸운다고 했습니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라고 했습니다. “정사”를 권세자로 번역한 성경이 있는데, 정사는 일 처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계획하고 나가는 게 다 정사입니다. 진리를 대적하는 정사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싸워서 이기면 성공이고,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실패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되겠는데 대적이 누구입니까? 대적은 자기이며, 또 정사과 권세와 모든 어두움의 세상주관자들입니다. 이것들과 싸워서 이기면 영생을 취하고, 이기지 못하면 영생을 취하지 못합니다. 즉 날마다 이겨야, 날마다 살아납니다.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영생을 취하라.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것을 위해서 네가 부르심을 입은 것입니다.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승리하여 진리를 세운 증거, 즉 선한 증거를 나타내는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2. 책망 받을 것 없이 명령을 지키라

본문 13-14절에,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거로 증거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네게 명한다는 것입니다. 

뭘 명령합니까? 본문 1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까지’, 예수님 재림하실 때까지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점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바른 진리를 전하며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재림이 임박한 줄 알고 우리가 늘 예수님의 재림을 매일 기다리며, “오늘 오시지 않겠나?”, “재림하시면 책망 받을 것이 없겠나?”, “점이 없겠나? 흠이 없겠나?”하며 생명 내 놓고 명령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 가면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모든 죄를 회개하고, 재림하시는 예수님 앞에 갈 때에 책망 받을 것이 없고 흠도 없고 점도 없이 다 깨끗하고 거룩한 자로 주님을 영접할 준비를 항상 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믿고 섬기라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존귀와 영원하신 하나님

본문 15-16절에,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신다고 했는데, ‘그의 나타나심’이 누구십니까? 예수님 재림입니다. 때가 되면 예수님의 재림을 보이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되신 하나님이시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고, 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이십니다. 세상에 왕이 많지만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이십니다. 세상의 왕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왕들을 통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왕들을 세우고 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왕을 세우시고 폐하시는 것을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됩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는, 하나님께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히 사십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십니다.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고 오직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시고, 만주의 주시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이십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지만, 그러나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홀로 주관하십니다. 

그것을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믿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 왕들이 많지만 그 왕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대통령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만주의 주’, 세상에 주가 많지만 그 주를 다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주의 주이십니다. 

보이지 않아도 함께하시는 하나님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자이신데, 이제 그 하나님께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하나님께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이 계시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를 돌봐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십니다. 여기에 ‘같이 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함께 하심을 하나님이신 줄로 믿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하셨는데, 예수 이름으로 모이면 하나님께서 그 가운데 계십니다. 교회 안에 계십니다. 또한 믿는 사람과 같이 계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모든 사정을 다 아십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기도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기도하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안 들어주시면 계속 기도해야 됩니다. 바울이 며칠동안 기도했다고 하였습니까? 14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계속 기도하면 마지막에는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니엘이 21일간 기도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21일 만에 들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것을 믿고 계속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이십니다. 볼 수 없는 하나님이시므로 보여 달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존귀와 능력을 돌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하나님께 존귀와 능력을 돌리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하나님을 언제나 공경하고 우러러 받들어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을 믿는 신앙, 하나님을 높이는 신앙,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4. 장래에 좋은 터를 쌓으라
부한 자들은 마음을 높이지 말라

본문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부한 자들은 마음을 높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한 자는 마음을 높이기 쉽습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어렵다고 하였습니까?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 하였는데, 사람으로서는 능히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실력이 있으면 마음이 부해집니다. 실력 있는 것만큼 마음이 부해집니다. 돈이 많든지, 지식이 많든지, 지혜가 있든지, 인물이 잘 났든지, 말을 잘하든지, 뭐 조금 실력이 있으면 그걸 배경으로 해서 마음이 부해진다는 것입니다. 부한 사람이 좋
은 것 같아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부하면 마음이 높아지기 쉽고, 교만해지기 쉽고, 낮아지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에서도 점점 멀리 떠나게 됩니다. 마음이 낮아져야 됩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마음이 낮아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고, 아무 것도 없는 자와 같이 되며 낮아지면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에게 믿음을 부요하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라

그러나 부한 사람이 그만 마음도 부하고 높아져서 나가면 믿음에서는 점점 멀리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부하려고 하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디모데전서 6장 9-10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부하려 하는 생각을 버려야 되고,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 돈을 따라가는 마음을 버려야 됩니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여 장래에 좋은 터를 쌓으라

본문 18절에,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네 가지를 하라고 하셨는데, 첫째, 선한 일을 행하라. 둘째, 선한 사업에 부하라. 셋째, 나눠주기를 좋아하라. 넷째, 동정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되면, 본문 19절에,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다 장래에 갈 하늘나라에 좋은 터를 쌓아놓는 것이고 생명을 취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는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해서 좋은 터를 쌓는 것입니다. 또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 나가는 어떤 사람이 이제 얼마 있으면 세상 떠날 것 같은데, 돈이 조금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 일을 제대로 못했다고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지나간 세월동안 믿는 일을 잘 했어야 되겠는데, 이제 삶이 몇 달 남지 않으니까 믿는 일 하지 못한 게 참 원통하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지는 않고 조금 있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인도해줘야 될까 하고 제가 생각을 좀 해봤습니다. 생각을 하다가 하늘나라 갈 때 가지고 가는 게 제일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습니다. 돈 있는 것 중에, 치료비로 조금 남겨놓고, 나머지는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는 게 좋겠다고 생각이 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바쳐서 사용하면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국에 교회를 하나 세워야 되나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학교나 다른데 바쳐도 되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중국에다 예배당 하나 사는데 바치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중국은 시골엔 예배당 값이 싼 데도 있으니까 예배당 하나 사놓으면, 하늘나라에 재물을 쌓아놓고 가는 것인데, 죽어도 하늘나라 가면 남아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어떤 것 같습니까? 좋겠습니까? 그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고, 동정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를 위해서 좋은 터를 쌓아두는 것입니다.

허탄한 말과 망령된 지식을 피하라
 
본문 20-21절에,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 했습니다. 디모데에게 “네게 부탁한 것을 지켜라”, 또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탄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고 했는데, ‘허탄한 말’은 진리가 아닌 것, 성경에 없는 말입니다. 이런 말, 허탄한 말, 변론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고 하였는데, 진리가 아닌 것을 좇아가면 믿음에서 벗어납니다. 성경만 따라가야지, 성경에 맞지 않는 것을 따라가면 믿음에서 벗어나서 타락합니다. 마지막으로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하고 축복을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1-10 자족하며 하늘에 쌓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자족하며 하늘에 쌓으라
디모데전서 6:1-10

1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 2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 3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4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
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6:1 멍에 아래 있는 종은 누구든지 자기 주인을 매우 존경받을 자로 여겨라.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6:2 믿는 주인이 있는 자들은 그 주인을 형제라고 하여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더 잘 섬겨라. 이는 섬김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 이들이 믿는 자들이요, 사랑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여라.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가르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않으면, 

6:4 그는 교만하여져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오히려 변론과 말다툼을 좋아하는 자가 된다. 이로써 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이 생기며, 

6:5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자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니,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6:9 그러나 부하게 되려는 자들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 

6: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어떤 이들은 돈을 사모하다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렀다. 


1. 멍에 아래 있는 자들의 도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라

본문 1절에, “무릇 멍에 아래 있는 종들은 자기 상전들을 범사에 마땅히 공경할 자로 알지니 이는 하나님의 이름과 교훈으로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멍에 아래 있는 종’이라는 것은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을 가르칩니다. 남의 수하에서 일하는 사람은 상전 윗사람을 잘 공경해야 됩니다. 윗사람을 존경하고 순종하고, 양심을 똑바로 쓰고 맡은바 일은 하나님이 맡긴 줄 믿고, 맡은바 일에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 하도록 충성해야 됩니다. 

우리가 보통 다 수하에 있고, 수하에 있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다 상관이 있으니까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수하에 있는 사람들은 상관인 윗사람을 공경 하십시오. 윗사람을 공경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둘째는 순종인데 명령을 순종하고, 셋째는 하나님이 맡긴 줄 알아야 됩니다. 윗사람이 맡겼다고 생각 하지 말고 ‘하나님이 맡겼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이 맡긴 줄 알고 하나님 앞에 하듯 충성을 다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양심을 똑바로 써야 됩니다. 양심 안 쓰고 떼먹고, 속이는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충성을 다해야 됩니다. 일심정력을 다 기울여서 맡은바 일에 충성을 다해서 그 일이 잘 되도록 해야 됩니다. 요셉이 애굽에 가서 종살이 할 때에 얼마나 충성 했습니까? 믿음으로 하니까 하나님이 같이 했다고 했습니다.

믿는 상전을 더 잘 섬기라

본문 2절에, “믿는 상전이 있는 자들은 그 상전을 형제라고 경히 여기지 말고 더 잘 섬기게 하라 이는 유익을 받는 자들이 믿는 자요 사랑을 받는 자임이니라 너는 이것들을 가르치고 권하라”고 했습니다.
믿는 상전이 있는 사람, 믿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윗사람이 믿는 사람이라고 해서 경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자기를 일꾼으로 사용해 줬으면 더 잘 하라는 것입니다. 믿는 상전이 잘 되면 하나님 일도 잘 되게 됩니다. 믿는 윗사람이 잘 되면 연보도 많이 할수 있고, 이로 인해서 하나님 일을 더 많이 하면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되어나간다는 것입니다. 

2. 바른 말에 착념하고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지 말라

본문 3절에,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이라고 했습니다. ‘바른 진리에 착념하지 아니하면’, 바른 진리를 가르치지 아니하고 다른 걸 가르치면 그것은 아주 잘못 된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진리에 열중해야 됩니다. 또 바른 진리가 아닌 것은 따라가면 안 됩니다. 또한 말해도 안 됩니다.

본문 4절에, “저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했습니다. 바른 진리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니까 아무것도 알지 못 하는 사람이고, 언쟁과 변론만 좋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자는 투기와 분쟁과 악한 생각이 나게 됩니다.

본문 5절에,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 한다’는 것은 신앙생활 하는 것을 무슨 유익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오고 신앙생활 하는 것을 자기의 어떤 유익을 위해서 한다는 것입니다. 영이 살고 하나님을 순종하는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하면 자기가 잘 된다’는 어떠한 유익을 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이 자기를 인정해 준다”하며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이 살고,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어떠한 유익을 위해서 교회에 열심히 한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이 무슨 좋은 직장 알아줄까 기대한다든지, 결혼하기에 좋은 대상자가 있을 걸 생각한다든지, 또는 무슨 장사하거나 사업하는데 도움이 될까 생각한다든지, 여러 가지 다른 목적을 교회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 하는 자로서, 세상의 유익을 생각하면서 교회 일을 하기 때문에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계하러 나온 사람은 악한 사람입니다.
교회는 계하는 곳이 아닙니다. 또 이자놀이 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 장사 하러 나오는 사람은 다 잘못된 생각입니다. 아예 교회 장사하러 나오지 마십시오. 계하지 마십시오. 요즘도 계합니까? 교회에서 계하는 사람들이 예전엔 많이 있었습니다. 

3. 자족 생활

본문 6절에,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지족’이라고 했는데, 자족을 배우라는 것이고,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본문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빈 손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간다는 것입니다. 빈 손 들고 왔다가 빈손 들고 가는 세상입니다. 

본문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는 말입니다. 하루 먹을 것과 하루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공자의 제자 안자는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하고 곡굉이침지(曲肱而枕之)라도 낙역재기중(樂亦在其中)"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소쿠리에 밥을 담아 먹고 바가지로 물을 떠먹으며 팔꿈치를 베고 잠잘지라도 그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소쿠리에 밥을 담아 먹고 바가지에 물 떠먹고 베개가 없어서 팔꿈치를 베고 자겠습니까? 그래도 그 중에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하루 먹을 것과 하루 입을 것만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내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내일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내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갈지, 내일 지진이 나서 땅에 다 묻힐지, 하룻밤에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또, 오늘 하루 일할 것을 하나님이 주시면 그것도 감사히 여겨 일하라는 것입니다.

4. 부하려 하는 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

본문 9절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하려 하면 이렇게 됩니다. 침륜이라는 것은 가라앉는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지게 하고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부하려 하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루 나가 일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벌면 감사한 줄 알라는 것입니다.

일할 것 없으면 나가서 아무것이나 하십시오. 놀고먹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3:10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일해서 먹게 되어 있습니다. 하루 나가서 일하면 먹을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러면 족한 줄로 알라는 것입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했는데, 새가 날아다니면 먹고 살도록 하나님이 다 준비 해놓았습니다. 새가 농사하지 않고 창고도 없고 저축 안 해도 하나님이 다 먹고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일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먹을 것을 주십니다. 

본문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거기서 일만 악이 다 나옵니다. 돈 사랑하면 일만 악이 다 나옵니다.
가룟 유다가 돈을 사랑하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지 않았습니까? 그 돈 가지고 잘 살았습니까? 성소에 돈은 던지고 목매달았다가 끈이 끊어져서 떨어져 배가 터져서 창자가 다 흘러나와 죽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됩니다. 

주신 것을 하늘나라에 쌓을 것

돈은 있는 바로 족한 줄 알고, 하나님이 돈을 주면 바로 써야 됩니다. 돈을 바로 써야 되는데, 바로 쓰지 않고 쌓아 둔다고 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바로 써야 제 것이지 쌓아 두는 것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바로 쓰는 것이 하나님이 돈 준 목적입니다. 돈 준 목적이 뭐라고 했습니까? 먹고 살라고 주셨고, 그 다음에는 믿는 일 하라고 주셨습니다. 쌓아 두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많이 쌓아두면 뭘 하겠습니까?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잘 지어서 여러 해 쓸 것을 창고를 크게 지어 쌓아두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영혼에게 말하기를, “영혼아 여러 해 쓸 것을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먹고 쉬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어리석은 자야. 오늘밤에 네 영혼을 찾으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하셨습니다. 오늘밤에 그 자의 영혼을 찾으면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습니까? 다 버리고 가야 됩니다. ‘공수래공수거’, 빈 손 들고 왔다가 빈 손 들고 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쓰지 못하는 것은 죄입니다. 

어떤 사람이 토지와 집과 돈도 좀 있었는데, 미국 가서 자격증 따고 좋은 직장에 취직해서 잘 사는 양자에게 다 상속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는 별로 바치지 못하고 갔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양자에게 다 주고 하나님 앞에 갈 준비는 잘 못하고 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가면 아무것도 가져 간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어느 정도 주고 자기가 벌어먹게 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쌓아두고 가야 됩니다. 그것이 지혜 있는 부자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아두고 가야지, 세상에 쌓아놓고 가는 것은 다 없어지고, 결국은 다 내놓고 갈 것들입니다. 자녀들에게 너무 많이 줄 필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없는 것 같았었습니다. 세례도 못 받고 담배도 못 끊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떠날 때 자기 부인보고 “재산의 절반정도는 내가 가지고 가야겠다”고 하며, 절반을 하나님께 바치자고 했답니다. 그 부인이 그렇게 하자고 했다는데 믿음이 괜찮습니다. 집을 팔면 이십 억이라는데 아이들도 다 동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천당에 갔습니다. 얼마나 잘 하고 갔습니까? 절반을 하늘나라에 쌓아두고 갔으니까 이 사람은 십억을 하나님께 쌓아 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얼마나 많이 쌓아두고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조카주고 갔습니다. 한 5억짜리 집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믿지도 않는 조카에게 그 집을 주고 갔습니다. 그리고 유언으로 조카에게 “내가 죽어 교회에서 장례할 때에, 교회에 오 만원 감사 연보하라”고 했답니다. 오만원 연보하라고 했는데 몇 십 년이 지나도 아직도 안 가져왔습니다. 감사 연보도 외상을 하고 갔습니다. 돈을 바로 쓰지 못하면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찌릅니다. 한 사람은 재산이 좀 있는 사람인데 맏아들을 많이 줬습니다. 작은 아들을 주기는 좀 줬는데 얼마만 주고 맏아들만 많이 줬습니다. 그리고 세상 떠났습니다. 뒤에 형제 끼리 여러 해 동안 재판했습니다. 싸우고, 감옥에 가두고 아주 비참하게 됐습니다. 그러니까 살아 있을 때 하나님께 바칠 건 바쳐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절반 바쳤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재산이 천억이라고 했는데, 오백 억은 하나님께 바치고 오백 억은 자녀들에게 똑같이 나눠줬으면 재판을 안 했을 것 아닙니까? 공연히 부모가 재판하도록 만들어 놓고 간 것입니다. 자녀들이 재판 하는 건 부모 책임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고, 하나님이 재산을 주시면 쌓아두지 말고 믿는 일 하십시오. 세례도 못 받았지만 절반을 하늘나라에 쌓아두고 간 사람처럼 재산을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십시오. 세상에 쌓아 두고 가면 그 자손이 얼마나 지키겠습니까? 많은 재산을 쌓아 놓고 가도 자손이 못 지킨다고 했습니다. 많은 책을 쌓아 놓고 가도 자손이 다 읽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쌓아 놓은 것은 다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에 쌓아놓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고 믿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5:1-25 공경(恭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공 경(恭 敬)
디모데전서 5:1-25

1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하고 2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하라 3참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4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
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 5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7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9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10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것이요 11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12처음 믿음을 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 13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 다니고 게으를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4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 15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16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 17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 18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19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 20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 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 22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 23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 24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25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5:1 나이 많은 남자를 꾸짖지말고 아버지를 대하듯이 권면하여라. 젊은이는 형제를 대하듯이 권면하여라. 

5:2 나이 많은 여자는 어머니를 대하듯이 권면하고, 젊은 여자는 자매를 대하듯이 일체 순결함으로 권면하여라. 

5: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여라. 

5:4 그러나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으면, 그들이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여라.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받으실 만한 것이다. 

5: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간구와 기도를 계속하지만, 

5:6 향락을 좋아하는 여자는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다. 

5:7 너는 또한 이것들을 명령하여 그들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여라. 

5:8 누구든지 자기 친척들,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으면, 그는 믿음을 저버린 것이며 불신자보다 더 악하다. 

5: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않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이어야 하며, 

5:10 또 선한 행실들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니, 곧 자녀를 잘 양육했든지, 또는 나그네를 후대했든지, 또는 성도들의 발을 씻겼든지, 또는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했든지, 또는 모든 선한 일에 헌신한 자이어야 한다. 

5:11 그러나 젊은 과부는 명부에 올리는 것을 거절하여라. 그들이 그리스도를 거슬러 정욕에 사로잡힐 때는 결혼하고 싶어 할 것이고, 

5:12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5:13 또한 그들은 게으름에 익숙하여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남의 일에 참견하고, 마땅히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할 것이다. 

5:14 그러므로 젊은 여자들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집안일을 돌보아 대적자에게 비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않기를 바란다. 

5:15 이는 어떤 이들은 이미 사탄에게 갔기 때문이다. 

5:16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 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주고, 교회로 짐을 지지 않도록 할 것이니, 이는 교회가 참 과부들을 도와주게 하려는 것이다.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두 배나 존경받아야 하고, 특히 말씀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자들은 더욱 그렇게 되어야 한다. 

5:18 성경에 말하기를 "곡식을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마라." 하였고, 또 "일꾼이 자기의 품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5:19 장로에 대한 고소는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마라. 

5:20 죄를 짓는 자들을 모든 이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자들도 두려워하게 하여라. 

5:21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숙히 명령하니, 너는 이것들을 편견 없이 지키고, 어떤 일도 불공평하게 처리하지 마라. 

5:22 아무에게나 경솔하게 안수하지 말고, 다른 이들의 죄에 참여하지 말며, 너 자신을 정결하게 지켜라. 

5:23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너의 위장과 잦은 병을 생각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써라. 

5:24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심판으로 먼저 나아가고, 어떤 이들의 죄는 그 뒤를 따른다. 

5:25 이와 마찬가지로 선한 일들도 밝히드러나고, 그렇지 않은 것들도 숨길 수 없다.


1. 노인과 청년에 대한 도덕

본문 1절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를 형제에게 하듯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늙은이는 늙은 남자 즉 노인을 가리킵니다. 아비란 아버지와 같은 말입니다. 아비는 웃사람이 아랫사람을 부를 때에 아비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새 새 번역에는 아버지라고 하였습니다. 나이 많은 남자가 비록 잘못한 일이 있다고 해도 꾸짖지 말고 권하되 자기 아버지에게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이는 자기 형이나 동생처럼 여기고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인 여자를 어머니에게 하듯 하고, 젊은 여자를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는데, 여기에는“일절 깨끗함”이 들어가야 합니다. 자매란 남자가 여자를 보고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분별을 못해서 여자들끼리 자매라고 하는데, 여자들끼리는 “언니, 또는 형제”라고 해야 합니다.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손 위에 있는 여자한테는 언니라고 해야 합니다. 형제라고 하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도 형제이고,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도 형제입니다. 또 남자는 남자들끼리 형제라고 하면 됩니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들한테는 자매라고 해야 합니다. 노인 남자는 아버지에게 하듯 하고, 노인 여자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고, 젊은 남자는 형제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젊은 여자는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고 하였습니다.

2. 교회 과부에 대한 방침

참 과부를 경대할 것

본문 3-4절에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만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나 손자들이 있는 과부에 대해서는 그 자녀나 손자들이 공경하라는 말입니다. 손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효를 행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이고, 복 받는 길입니다. 요새 자녀들이 부모에게 대한 책임을 안집니다. 그러면 부모에게 대한 책임은 누가 지며,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합니까? 그러므로 다 한 식구인줄 알고 서로 책임을 지며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한달에 얼마씩 도와주어야 합니다. 따로 살아도 도와주어야 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은 첫째 예수를 잘 믿게 하고, 둘째는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고, 셋째는 용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용돈을 드려야 효하는 것입니다. 용돈을 안 드리면 효가 아닙니다. 넷째는 의복을 잘 해드리고, 다섯째는 음식을 잘 해드려야 합니다. 효를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5-6절에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참 과부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를 하므로 믿음을 잘 지킬 수 있고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에게 봉사를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고 하였는데, 노라리 하러 다니는 것은 다 일락의 종입니다.
과부가 아니라도 일락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신앙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락을 좋아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4-36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 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 가서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기 쉽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것은 살았으나 죽은 것입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사람은 믿음을 못 지킵니다. 말세에는 방탕하다가 다 망합니다. 노아시대에도 방탕하다가 망하였습니다. 일락을 좋아하면 마귀가 들어오고, 그것은 벌써 신앙이 죽은 것입니다.

본문 7-8절에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 받을 것이 없게 하라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불신자보다 악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친족을 잘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을 배반한 자입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의 자격

본문 9-10절에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 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육십세부터 올리라는 것입니다. 또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자,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한 자, 성도들의 발을 씻긴
자,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한 자, 모든 선한 일을 좇은 자라야 합니다.
이런 과부들이 좋은 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과부들은 자녀들을 잘 양육하고, 나그네를 대접하며,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환난 당한 자를 구제하며, 모든 선한 일을 좇아야겠습니다.

젊은 과부는 과부의 명단에 올리지 말 것

본문 11-12절에 “젊은 과부는 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과부의 명단에 올려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라고 하였는데, 정욕과 욕심으로 믿음을 저버리고 시집가는 과부가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믿음을 저버렸으므로 심판을 받느니라”고 하였는데, 과부로서 믿음으로만 살 때에는 교회와 성도를 위하여 봉사하였는데,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믿음을 버렸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또 저희가 게으름을 익혀 집집에 돌아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게으를 뿐만 아니라 망령된 폄론을 하여, 즉 정직하지 못한 말을 하여 일을 만들며 돌아다니는 과부도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과부는 교회에 해를 끼치는 과부이며, 믿음의 역사가 죽은 자입니다.

본문 14절에 “그러므로 젊은이는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조금도 주지 말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는 시집을 가서 될 수 있는 대로 아이를 낳고, 집을 다스리고,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억지로 독신 생활하다가 정욕에 끌려 합당치 않게 시집을 가든지, 혹 범죄하면 자신도 망치고, 대적에게 훼방을 받게 되며, 교회에도 큰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집니다.

본문 15절에 “이미 사단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젊은 과부가 사단에게 돌아간 자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정욕에 빠져 믿음을 배반한 자들을 말합니다. 어떤 젊은 과부가 믿음이 괜찮은 것 같았는데, 그만 시집가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 안식교에 다니는 사람과 결혼을 했습니다. 바른 진리를 배웠는데, 안식교인한테 시집을 간 것은 믿음을 배반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38-39에 “그러므로 처녀 딸을 시집보내는 자도 잘하거니와 시집보내지 아니하는 자가 더
잘하는 것이니라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과부된 다음에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라는 것은 믿음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시집을 가도 주 안에서, 자기와 신앙이 맞는 사람에게 가라는 것입니다.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줄 것

본문 16절에 “만일 믿는 여자에게 과부친척이 있거든 자기가 도와 주고 교회로 짐지지 말게 하라 이는 참 과부를 도와주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교인들은 자기 친척 중에 과부가 있으면 자기가 돌보아 주고, 교회로 짐을 지게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참으로 도움을 받아야 할 참 과부를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3. 장로존경

본문 17절에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장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치리 장로와 교훈 장로입니다. 치리 장로는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고 교회의 치리만 하고, 교훈 장로는 가르치는 일과 치리를 겸하는 것으로 목사를 가리킵니다. 본문에서는 장로에 대해서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잘 다스리는 장로, 잘 다스리지 못하는 장로,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는 목사를 말합니다. 장로 가운데서 잘 다스리는 장로가 있고, 잘못 다스리는 장로가 있습니다. 장로를 존경하되 잘못 다스리는 장로보다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장로를 더 잘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인도자를 공경해야 그 단체가 바로 됩니다. 나라에서도 대통령을 존경하고 대통령을 잘 도와주어야 그 나라가 잘됩니다. 도와주지는 않고 발목이나 잡고 깎아내리면 대통령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도는 대통령이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잘 다스리는 장로를 배나 존경하고, 말씀을 잘 가르치는 장로는 더 잘 존경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지도자를 도와주어야 그 단체가 잘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목사와 장로를 존경하고, 잘 도와주어,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어 나가도록 해야 되겠습니다.

본문 18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군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는데, 망이란 소가 무엇을 먹지 못 하도록 입에 소쿠리 같은 것을 씌우는 것을 말합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소가 좀 먹게 그냥 두라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사람이 곡식을 떨려면 힘이 드니까 소가 곡식을
밟아 떨게 하였습니다. 소가 곡식을 밟아 떨 때에 먹고 싶은데 망을 씌워 놓으면 먹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주의 종에게 대접하라는 뜻이 있습니다. 곡식을 밟아 떠는 소는 교역자를 가리키고, 망을 씌우지 말라는 것은 먹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일군이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교역자는 대접을 안 받으려는 생각을 가져야 하고, 교인들은 대접을 하려는 생각을 가져야 옳은 것입니다.

4. 범죄자 처리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인정하지 말라

본문 19절에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장로는 교회의 중요한 직분이므로 장로의 범죄사실이 퍼지면 교회와 복음운동에 막대한 손해가 옵니다. 그러므로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와서 이 사람이 잘못하였다고 하여도 인정하지 말고, 두 세 증인의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에 인정하라는 것입니다. 목사에 대한 송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아야 합니다. 확실한 증거가 없이 받으면 안 됩니다.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으라

본문 20절에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 꾸짖어 나머지 사람으로 두려워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범죄한 사람이 있으면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죄를 가만히 두면 전체가 다 부패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고린도 교회에 음행 죄가 들어왔는데, 거기에 대해서 바울이 책망을 했습니다. “어떻게 음행죄가 교회에 들어올 수 있느냐?, 왜 교회에서 음행 죄를 물리치지 않았느냐?”하며 책망을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전 5:5절에 “이런 자를 사단에게 내어주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단에게 내어주어 육신을 멸하고, 영혼만 주 예수의 날에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편벽되이 하지 말라

본문 21절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장로에 대한 송사나 일반적 범죄자들을 책벌함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즉 정도(定道)로, 원리 원칙대로, 성경대로 하고, 편벽되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괜히 억지로 옳은 것을 옳지 않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면 그것은 편벽되이 하는 것입니다. 편벽되이 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약한 자를 봐주거나 미워하는 자에게 가중한 처벌을 하는 것은 편벽되이 하는 것입니다.

5. 경솔히 안수하지 말 것

본문 22절에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지 말고 네 자신을 지켜 정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안수 받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무조건 안수만 받으면 다 되는 줄 알고 안수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안수하지 않고 기도해도 괜찮습니다. 안수 기도 한다고 해서 병이 안 나을 게 낫는 것이 아니고, 또 안수 기도 안 한다고 해도 병이 나을 것은 기도만 해주어도 낫습니다. 안수 기도를 꼭 해야 되는 게 아닙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에는 또 무슨 뜻이 있는가 하면 경솔히 목사 안수 하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자격도 없는 자를 무조건 목사 안수해 주면 무슨 목사 노릇을 하겠습니까? 제대로 신학과정을 밟지 않고, 돈 내고 졸업장 받아 목사 노릇하는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의 도가 훼방을 받습니다. 확실하게 정당한 신학교를 졸업하여야 됩니다. 돈이나 좀 내고 졸업장 타서 목사 안수 받은 자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신학교 졸업하고, 강도사 고시에 합격이 되어, 목사의 신덕이 있고,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줍니다.

6.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 것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고”란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하고 상관없는 사람의 죄에 간섭하는 것은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6:17에 “길로 지나다가 자기에게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개 귀를 잡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개가 물것 아닙니까? 싸움하는 것을 말리는 것은 괜찮지만, 자기와 상관이 없는데 괜히 간섭하여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개 귀를 잡는 것과 같아서, 나중에는 물립니다. 즉 싸우는 것 말리다가 자기가 손해를 봅니다. 그러므로 싸우는 것을 말리는 것도 지혜롭게 말려야 됩니다.

7.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쓸 것

본문 23절에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비위와 자주 나는 병을 인하여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위병이 있어서 위가 나빴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하였습니다. 위병에는 포도주가 좋은 모양입니다.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는 것은 약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약으로 쓰는 것은 괜찮습니다. “약을 쓰면 믿음이 아니다”하며 약을 안 쓰고 기도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약을 쓰면서 기도하는 게 좋습니다.
바울이 디모데의 병이 낫기를 기도 안 했겠습니까? 기도하면서 약을 조금씩 쓰라는 것입니다. 건강을 돌보면서 하나님의 일을 하라는 뜻입니다. 

디모데전서 4:8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다고 하였으므로 운동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루 반시간 이상씩 걷는 것이 좋습니다. 반시간 이상 걷는 것은 누구나 다 걸을 수 있습니다. 걷는 게 자기 건강 유지하는데 제일 좋습니다. 건강해야 심방도 하고, 전도도 하고, 선한 일도 할 수 있습니다.

8. 죄와 선행이 밝히 드러남

본문 24-25절에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라고 하였는데, 어떤 사람은 죄가 드러나서 심판 받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죄가 드러나지 않고 좇아가고 있으나 그것을 회개하지 않으면 죄가 드러나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는 회개 해야지, 회개 하지 않고 몰래 죄짓고 다니다가는,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망합니다. 죄는 반드시 다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1:15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는데, 욕심을 잉태하면 점점 커집니다. 아이가 잉태하면 점점 커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이를 해산하듯, 죄를 잉태하면 죄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지은 죄, 또 과거, 현재의 모든 죄를 다 회개해야 됩니다. 다 회개하고, 빼내어 버려야 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빼내어 버려야 합니다. 또 디모데전서 6:10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했는데,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디모데전서 6:8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엇을 더 많이 가져야겠다, 무엇을 더 많이 사야 되겠다”고 해서,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고, 더 많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한날 괴로움은 그날로 족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4:13-14에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저녁이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생명을 부르시면 우리의 생명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16-17절에는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이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고 하였습니다. 허탄한 자랑은 악한 것이며,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8:1에 “악인은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고 하였는데,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죄를 지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다 내어 버려야 하며, 다시는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살지, 죄를 그냥 덮어두고 나가면 얼마 안가서 망하게 됩니다. 

또 죄는 은밀한 가운데 행했어도 다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죄가 드러나기 전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좀 있다가 죄가 다 드러나게 되어 있고, 그 다음에는 심판을 받아 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가 무서운 줄 알고, 과거의 죄도 회개하고, 현재의 죄도 회개하여,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9에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여러 가지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구렁텅이에 빠지고,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있는 것으로 족한 줄 알고 모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앞길을 열어주시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2017년 11월 24일 금요일

디모데전서 4:1-16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고 너의 진보를 나타내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고 너의 진보를 나타내라
디모데전서 4:1-16

1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혼인을 금하고 식물은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6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7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10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11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12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13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14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없이 말며 15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16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4:1 성령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이들이 믿음에서 떠나, 속이는 영들과 악령들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다." 라고 하시니, 

4:2 그러한 가르침은 자기 양심에 화인이 찍힌 거짓말쟁이들의 속임수에서 나오는 것이다. 

4:3 그들은 결혼을 금하고 식물을 멀리하라고 할 것이나, 식물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도록 지으신 것이다. 

4:4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다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아무것도 버릴 것이 없으니,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진다. 

4:6 네가 이것들을 형제들에게 깨우쳐주면, 너는 네가 따르는 믿음과 선한 교훈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될 것이다. 

4:7 속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단련하여라. 

4:8 육체의 훈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며, 현재와 미래에 생명의 약속이 있다. 

4:9 이 말씀은 확실하며, 모든 이가 받을 만한 것이다. 

4: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며 힘쓰는 것은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기 때문이니, 그분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이시다. 

4:11 너는 이것들을 명령하고 가르쳐라. 

4:12 누구든지 너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순결에 대하여 믿는 자들의 본이 되어라. 

4:13 내가 갈 때까지 너는 읽는 것과 권면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여라.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너에게 주어진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마라. 

4:15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가 모든 이에게 드러나게 하여라. 

4:16 네 자신과 네 가르침을 살피고 그 일들을 계속하여라. 이렇게 함으로써 네 자신과, 또 너의 말을 듣는 자들을 구원할 것이다.


1. 미혹 받지 말라
 
본문 1-2절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했는데, 성령께서 밝히 말씀했기 때문에 이것이 아주 중요한 말씀 입니다. 후일 즉 말세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귀신의 가르침을 좇아갑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하나님이 그러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귀신이 시키는 것입니다. 또는 “어떻게 된다. 이렇게 저렇게 된다”고 예언하는 목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은 가짜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일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귀신의 가르침,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 저렇게 하라고 했다. 또 꿈꾸니까 꿈에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했다. 저렇게 하라고 했다”하는 꿈은 모두, 제 꿈 아니면 개꿈입니다. 꿈을 믿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을 꾼 제 꿈 아니면 ‘개꿈 하나 꾸었다’고 하고 잊어버려야 합니다. 꿈 따라가면 마지막에 귀신의 가르침을 좇아가게 됩니다.

성경에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에스겔13장 2절에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의 예언하는 선지자를 쳐서 예언하되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또 예레미야 14장 14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
희에게 예언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즉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느껴지는 것, 뭐 생각하다가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지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라고 했다. 저렇게 하라고 했다”고 느껴지는 것이 하나님의 지시라고 믿는 사람에게 결국은 귀신이 와서 합작을 합니다. 처음에는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하나님의 지시라고 믿는데, 그 다음에 귀신이 와서 합작해서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그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그렇게 받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 원리 원칙대로 인도하시지 성경에 없는 것을 이래라 저래라 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게 귀신의 가르침 좇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과부가 남편이 세상 떠났는데 하나님이 “매일 무덤에 가라”고 해서 매일 그 무덤에 남편을 만나러 간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귀신의 가르침을 좇는 것입니다. 장례지낸 것은 쓰고 살던 장막 집 벗고 영혼은 벌써 천당에 간 것인데, 왜 매일 무덤에 갑니까? 귀신의 가르침을 좇지 말고, 이래라 저래라 마음에 느껴지는 것, 귀신의 가르침을 좇아가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에서 느껴지는 대로 시작하는데, 다음에는 귀신이 와서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가지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절대 좇아가면 안 됩니다.

본문 2절에,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양심에 화인 맞아서’라고 하였는데, 화인 맞은 양심은 양심이 없는 마음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은 양심이 아닙니다.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은 양심이 없어서 성경을 부인하고, 양심도 부인하고, 그저 귀신의 가르침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예언하고 이래라 저래라 할 때에 그것이 양심입니까? 성경입니까? 성경도 양심도 다 부인하고 귀신의 지시하는 대로만 가는 사람들입니다.

2.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한 줄 알라

본문 3절에,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혼인하는 게 죄다”, “독신 생활을 해야 된다”는 금욕주의, 그리고 “어떤 식물은 먹으면 죄다”, “고기 먹으면 죄다. 고기 먹지 말아야 된다”는 그런 금욕주의가 나왔습니다. 

본문 4절에,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것은 다 선하다는 것입니다. 선하게 다 하나님이 내셨는데, 그걸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혼인하는 것도 정당하게 하는 것은 선한 것입니다. 또한 고기 먹는 것도 정당하게 먹는 것은 다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십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지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은 것이기에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습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하도록, 말씀에 어긋나지 아니하도록, 성경말씀에 맞도록 다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먹으라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맞추고, 기도하고, 감사하고 그러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것이 다 선한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3.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본문 6절에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하였는데, 이것은 위에서 말한 거짓 교훈에 대한 주의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하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4절의 말씀인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는 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된 것은 속되고 허망한 것을 말합니다.
속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것은 이 세상에 헛된 신화가 많이 있는데, 그런 것들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건도 연습을 해야 됩니다. 연습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됩니다. 기도하기를 힘쓰는 것도 경건의 연습이고, 또 죄를 떠나려고 하는 것도 경건의 연습이고, 의를 이루고 선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경건의 연습이고, 진실한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도 경건의 연습입니다. 그래서 선하고, 의롭고, 진실한 사람이 되는 것이 경건입니다. 즉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 앞에서 벌벌 떨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순종하는 신앙을 갖는 것이 경건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경건으로 기도하기를 연습하여야 합니다.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8절에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아주 유익이 많다는 것입니다. 운동하는 것도 약간의 유익이 있습니다. 요새 운동들 하느라고 힘을 많이 쓰는데 운동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운동도 방탕한 운동이 절반입니다. 골프 치러 다니는 사람은 노라리가 절반입니다. 요새 여자들이 골프 바람이 나서 골프 치러 다니느라고 야단입니다. 골프 치러 다니다가 나쁜 친구들도 사귀고, 나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운동은 걷는 운동이 제일 좋은 운동인 것 같습니다. 수영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노라리하고 방탕하는 운동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골프 치러 가려면 몇 십만원씩 들어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 나가서 골프치면 비행기 값을 다 제하고도 한국에서 하는 것 보다 싸다고 하여, 외국에 골프 치러 다니느라고 바람들이 났습니다. “동남아 간다, 우즈벡에 간다, 대만에 간다”고 하며 갑니다. 그래서 외국에 가서 며칠씩 돌아가는데, 그 운동은 돈이 너무 들어 돈 많은 사람이나 하지, 돈 없는 사람은 못합니다.
제일 돈 안 드는 운동은 걷는 운동입니다. 한 30-40분씩 매일 걸으면, 그 운동이 제일 좋은 운동입니다. 아무 때나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걷든지, 그렇지 않으면 점심때이든지 저녁때이든지 걸으면 됩니다. 특별히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걷는 운동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걸어 다니면서 살게 해놓았는데 안 걸어 다니니까 여러 가지 병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가서 노력하고 걸어 다니고, 노동하는 사람은 병이 잘 안 걸립니다. 아무튼 걸어 다니면서 활동하며 몸을 쓰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육체의 연습을 하는 사람들도 건강에 약간의 유익을 봅니다. 

그러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고 하였습니다. 경건이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야고보서 1:27에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고,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이 경건한 생활입니다. 즉 경건이란 믿음을 잘 지키는 생활입니다. 죄에서 떠나서 믿음을 잘 지키고, 죄를 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는 일을 잘 하려고 힘을 쓰는 것이 경건입니다.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란 경건을 연습하는 사람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경건생활을 하면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복을 주시고, 또 내세에 가서도 생명의 약속이 있습니다. 경건 생활을 하면 이 세상에도 건강합니다. “술을 마시지 말라, 개고기를 먹지 말라,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이북에서 우리가 어렸을 때에 가르침을 받았는데, 그때에는 잘 모르고, 그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습니다.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해서 담배 피우지 않았는데 요새 와서보니까, 그것이 건강에 상당히 좋은 법들입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방탕하는 사람들은 다 맥을 못 춥니다. 우리와 같이 자라난 사람들 중에 경건생활 하지 못한 사람들은 많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생활을 하면 육체도 건강하고, 다른 것도 다 잘 됩니다. 또 내세에 가서 큰 복을 받습니다.

4.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라

본문 9-1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네가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미쁘다는 것은 “신실하다, 믿을만하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이라고 하였는데, 진력한다는 것은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하였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이 경건 생활을 하는 사람을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구주시라”는 것은 경건 생활을 하는 사람을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5.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라

본문 12절에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라고 하였는데, 연소란 젊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나이 어린 사람들은 경험이 없으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기 쉽습니다. 또 나이 어린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행하다가 업신여김을 받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본이 되라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면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의복 입는 것도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도록 입어야 합니다. 무슨 의복을 입으라고 했습니까? 아담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의복을 최고급으로 입으면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 합니다. 의복을 고급으로 입을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의복은 보통으로 입어야 됩니다. 중쑬쑬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파묻히게, 다른 사람보다 드러나지 않게 입는 것이 좋습니다. 또 다른 사람보다 너무 떨어지게도 입지 말고 그저 보통으로 입으면 좋습니다. 의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너저분하면 할머니 거지같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쪽 빼고 다니면 기생오라비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무 쪽 빼고 다니지 말고, 그렇다고 또 너무 너저분하게 입고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말에도 본이 되고, 행실에도 본이 되고, 사랑에도 본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라고 하였는데, 정절이란 이성관계에 대해서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본문 13절에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고 하였습니다. “착념하라”는 것은 열중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사도 바울이 가려고 하는데 그때까지 성경을 매일 읽고, 다른 사람들을 권면하고,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라는 것입니다. 즉 힘쓰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루에 몇 장씩 읽으라고 했습니까? 하루 열장 이상은 읽어야 합니다. 직장에 다녀서 정 분주하면 하루 다섯 장이라도 읽어야 합니다. 성경 다섯 장 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성
경 열장 읽는 데에 한 시간 잡으면, 다섯 장은 30분이면 읽습니다. 기도는 얼마나 하라고 하였습니까? 기도는 두 시간 이상하여야 합니다. 정 바쁜 사람은 1시간은 하여야 합니다. “한 시간도 나와 같이 깨어있지 못하느냐”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으니까, 1시간 이상은 기도하여야 하고, 다섯 장 이상씩 성경을 읽어야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권하고, 가르치는 일에 힘을 써야겠습니다.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받은 은사를 등한히 여기지 말라 본문 14절에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목사 안수 받을 때에 받은 은사를 등한히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디모데가 장로의 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는데, 그때 받은 은혜를 항상 조심해서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네 속에 있는 은사”란 디모데가 목사 안수 받을 때에 특별한 은혜와 말씀을 받았습니다.

6.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본문 15절에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일심정력을 다해서 네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라는 것입니다. 즉 진보가 되라는 것입니다. 진보라는 것은 좀 더 나아지는 것입니다. 전보다 더 나아진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나아져야겠습니까?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전보다 좀 더 나아져야겠습니다.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하였는데, 불평불만 하는 사람은 불만이 없어져야 나아지는 것입니다. 원망하는 사람은 원망이 없어져야 나아지는 것입니다. 

네 자신을 가르치라

본문 16절에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를 가르치라고 합니까? 네 자신을 가르치고, 다른 사람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자기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자기부터 가르치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는 것은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라

다른 사람을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하고, 자기에게 맡겨진 사람들 즉, 집사람들을 맡아서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준 하나님의 양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전도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보통 나이 많은 사람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나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하십니다. 매일 운동도 하시고, 부인이 세상을 떠나셨으므로 밥은 손수지어 드신다고 합니다. “뭐 하시는 것이 있으시냐?”고 하니까 하는 게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는 게 없으면 그것은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는 가치가 뭐가 있습니까? 사람이 하는 게 있어야 하는데, 하는 게 없이 매일 운동해서 건강하면 뭐 합니까? 그것은 백세를 살아도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백세를 살아도 그것은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는 일이 있어야 됩니다.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나이가 많아서 장사를 하겠나? 나가서 무슨 취직을 하겠나? 뭘 할 수 있습니까? 집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집사람들을 많이 맡은 사람도 있고, 적게 맡은 사람도 있습니다. 안 맡은 사람은 없습니다. 죽는 날까지 다 맡았습니다. 가족, 부모, 자녀, 형제들이 다 하나님이 맡기신 사람들입니다. 손자들, 자기 친구, 옆의 사람, 늘 만
나는 사람, 만날 수 있는 사람 등을 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말입니다. 또 가르쳐 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쳐 주면 다 좋아 합니다. 처음에는 잘 모르지만 계속 가르쳐 주면 믿음이 들어갑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 같아도 믿음이 들어갑니다. 가르쳐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몇 사람이라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유년부 학생이든 중고등부 학생이든 맡아서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됩니다. 그렇게 하다가 하나님이 오라고 하시면 가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가르치고, 손자들을 가르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친구들을 가르치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노인들이 파고다 공원에 많이 모이는데 여름에는 더우니까 전철은 무료이므로, 전철 타고 저쪽 끝에서 이쪽 끝에까지 갔다, 왔다 하다가 점심은 거저 얻어먹는다고 합니다. 전철 타고 다니면 전철 타는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좀 앉으라”고 해놓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자기부터 가르친 후에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 平天下)”라고 하였습니다. 수신은 자기부터 바로 하라는 것이고, 제가는 가정에 대해서 바로 하라는 것이고, 치국은 나라에 대해서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자기부터 가르치고, 그 다음에 자기 집을 바로 세워 나가고, 그 다음에 나라를 바로 세워 나가고, 그 다음에 천하를 바로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15 진리의 기둥과 터.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진리의 기둥과 터
디모데전서 3:15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디모데전서 3장 15절에,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는데,
이 집은 교회를 가리키고 또 우리 교단의 신학교도 가리킵니다. 신학교도 이 집이 됩니다. 모든 교회도 이 집이고, 땅 위에 모든 교회도 모두 이 집에 속합니다. 우리 신학교도 이 집인데, 이 집인 우리 신학교에 대해서 오늘 조금 생각해보겠습니다.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교회요 사람의 교회가 아닙니다.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우리 신학교의 주인도 하나님이며, 우리는 모두 종입니다.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의 신학교이므로 모두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것이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이루어 나가실 것이고, 전부 하나님의 것이다 이렇게 믿어야 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믿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집에서 우리
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이 죽었다는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죽은 하나님, 아무 능력 없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왜 신신학자들이 믿는 하나님은 힘이 없습니까? 그들은 이적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홍해 바다 하나 가르지 못하고,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가지도 못합니다. 또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사건도 믿지 않으니 그 하나님은 죽은 하나님이 아니고 뭐냐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됩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집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아야 되고, 발견해야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야 되고, 살아계신 하나님과 동행을 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집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태복음에 보면 “골방에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신 네 하나님께 기도하라. 그러면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갚아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은밀한 가운데 계시고, 은밀한 가운데서 보시고, 은밀한 가운데서 들어주시고, 은밀한 가운데서 갚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가 있습니다. 골방을 찾으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고는 골방을 못 찾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고, 또 기도원에서도 기도 많이 하고, 골방 찾는 생활,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힙 입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이 건설되어 나갑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집에
서 기도를 많이 해야겠습니다. 기도를 쉬는 것은 죄입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는다고 사무엘이 말했는데, 하루 2시간 이상씩 기도하고, 특별기도하고, 은밀한 골방을 찾고, 거기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거기서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받고, 그 살아계신 하나님, 만능의 하나님을 믿고 나아가야 됩니다. 만능의 하나님만이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문을 사람이 열 수 없지만 하나님은 문을 다 열 수 있기에, 이북에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북한이 하나님의 만능으로 열릴 것은 분명하고, 시간문제입니다. 왜 안 열어주겠습니까? 천하 만물을 다 하나님이 주장하여 하나님이 닫았다 열었다 하시는데, 북한을 안 열어 주실리가 있습니까? 이제 열어주시면 우리가 들어가 일시에 예배드리고, 일시에 다 교회를 세워야 됩니다. 

우리 신학교에 교육부에서 실사 나온 분들이 신학교 세우는 목적을 말해보라고 하기에, 바
른 진리 세우고, 바른 교역자 양성하고, 얼마 있다가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한국에 교회가 6만 개라는 말을 들었는데, 한국이 6만 개면 북한에는 못해도 3만 개는 있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북한에 문이 열리면 일시에 다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되므로 앞으로 교역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한국에 신학교가 많아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신학교 졸업한 교역자들 다 합해도 북한에 교회 세우려면 교역자가 모자랍니다. 북한도 하나님이 하시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만능으로 언제 열릴지 모르므로 앞으로 열릴 것을 믿고, 모든 것을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2. 진리의 기둥과 터

그 다음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는데, 터가 견고해야 됩니다. 터는 진리의 터인데, 터가 견고하지 못하면 집이 그만큼 견고하지 못합니다. 터가 흔들흔들하면 그 집은 얼마 못갑니다. 시편 11장 3-4절에 보면,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라고 했는데 터가 무너지면 믿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터가 견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견고한 터가 되려면 섞은 것이 없이 순수한 말씀 그대로만 전해야 됩니다. 섞어 놓으면 약해집니다. 
그래서 사도바울는 여러 사람과 같이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는,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허다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했습니다. 바울 당시에, 또 오늘날에도 허다한 사람이 말씀을 혼잡케 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신학자들, 신비주의자들. 인본주의자들 또 무슨 현실주의자들,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다른 것을 많이 섞어서 혼잡케 하고 있습니다. 그 터는 견고한 터가 못됩니다. 말씀 그대로만 말씀만 뭉쳐놔야 견고한 터가 되지, 뭘 갖다 섞은 것은 튼튼하지 못합니다. 콘크리트 할 때 막대기도 좀 들어가고 흙덩이도 좀 들어가고, 비닐, 나일론 줄 등이 섞여 마구 들어가면 콘크리트가 튼튼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섞지 않고 콘크리트 배합하는 법대로만 해야지 거기에 다른 것을 섞으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할 때 미국 사람들이 와서 콘크리트 하는 것을 다 감독 했는데, 한국 일꾼들이 위에 올라가서 콘크리트 배합을 다 해 놓고는 거기에다 소변을 봤다고 합니다. 미국 감독이 그것을 알고는 전부 바꾸었다고 합니다. 콘크리트 배합을 다 해 놓은 그 많은 것을 전부 다 갈아 치우고 다시 한 것입니다. 소변 하나 불순물이 들어가도 이 다음에 원자력 발전소 사고 날 수 있으므로 다시 교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하는 참된 종복(從僕)이 되어 가감 없이 전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터를 견고하게 세워났는데 사람들이 괜히 섞어서 맥없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터가 견고해져야 합니다. 견고한 터가 섰다고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2장 16~19절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찌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 망령된 말을 하는 사람들, 잘못된 것을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 부활이 지나갔다고 하는 사람들, 여러 가지 진리에 대해서 잘못 전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 전하는 사람, 이단,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 사이비한 것들이 아무리 와서 혼란하게 만들어도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다는 것입니다. 안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세워놓은 진리가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거다 저거다 해서 속이고, 뭐 별거다 해도, 하나님이 세워놓은 진리는 그대로 있다는 말씀입니다. 절대 안 없어집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성경말씀 그대로 그 위에 세워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번역을 잘못해도 견고한 터가 못되고, 성경해석을 잘못해도 견고한 터가 못됩니다. 
또 거기에다 다른 것을 섞어놓으면 그건 더 견고한 터가 못됩니다. 그래서 성경번역부터 바로
해야 됩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표준새번역본을 한 3년 전에 출간했는데 번역 가운데 자유주의 신학사상, 공산주의 사상, 진화론 사상이 등이 들어간 잘못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표준새번역본이 ‘터’가 되면 잘못된 이 ‘터’ 위에는 진리를 바로 세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국성경공회’를 조직해서 ‘바른 성경을 번역해야 되겠다’는 취지 하에 총력을 기울여 성경번역을 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각 신학대학교 교수들 30명이 바른 성경을 내기 위해, 새로이 성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번역된 ‘바른 성경’만 출간해 놓으면 자유주의신학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괜찮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을 제대로 번역해 놓으면 터가 바로 됐으므로 잘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번역을 잘못해 놓으면 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바로 세우려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터가 벌써 잘못 됐는데 아무리 집을 지어놓아도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집이 점점 침몰 당하고 무너지고 맙니다.
또한 성경해석을 바로 해야 합니다. 잘못 해석해 놓으면 그만 삐뚤어져 나가고 맙니다. 모든 이단들이 성경 해석을 잘못해서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죄 짓는 사람들은 성경 해석을 잘못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왜정시대에 신사 참배하는 사람들이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의식이다. 또 권세를 복종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복종하지 않는것과 같으므로 신사참배를 해야 하고, 안 하면 죄다.”라고 성경해석을 한 것입니다. 성경 해석을 잘못해서 교인들을 온통 다 신사참배하게 만들었습니다. 성경해석을 잘못하면 교인들이 전부 함정에 빠집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이므로 성경해석을 바로하고 또 깊이 하자는 것입니다. 또 신령한 뜻을 여기서 찾고, 생명의 양식을 먹자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신학교는 성경해석을 바로 하고, 깊이 가르치고, 젖이나 먹는 것이 아니고 단단한 식물을 먹이려 하는데 그러려면 먼저 자기부터 생명의 양식을 찾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신학교에서 터를 바로 세워야 됩니다. 학생들에게 성경을 많이 가르쳐야 되고, 성경을 깊이 배우게 해야 하며 성경에 대한 참 뜻을 가르쳐주어서, 생명의 양식으로 삼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학교는 앞으로 진리의 기둥과 터가 잘 되게 하는 데에 주력을 할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은 여기 오면 됩니다. 요새 신학교 졸업한 목사들 중에도 성경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니, 설교할 때 이 소리 저 소리 갖다 붙이고, 정작 성경을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또는 불 받아야 된다, 성령 받아야 한다는 등 교회를 깨뜨릴 소리를 합니다. 바른 터 위에 세우는 하나님의 집이 되어나가야 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성경의 터, 진리의 터가 제일 중요합니다.

또한 진리를 높이, 기둥위에 세워 나아가야 됩니다. 터만 잘 닦아놓고는 세워 나가는 것이 없으면 되겠습니까? 진리를 받들어 진리를 세워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진리의 신학교가 중요하고, 일꾼 양성이 중요하고, 교회 세우는 것이 중요하고, 선교사 보내는 것이 중요하고, 더 널리 세계적으로까지 진리의 기둥을 높이 세워 놓아야 합니다. 진리의 등대인 것입니다. 등대는 기둥위에 세워놓아야 등불이 멀리까지 비춰 나갑니다. 오늘날 우리가 참된 진리를 우리만 가지고 있지 말고, 신학생들을 양성하고 우리 자신들을 다 진리로 세워나가는 일, 진리를 높여나가는 일, 널리 전하는 일, 비춰 내보는 일들을 우리가 해야겠습니다. 기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터가 바로 되어야 하고, 진리가 바로 되어야 되고, 교회에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시고 믿어야 되고, 신학교도 마찬가지이고, 그렇게 그리스도의 정병을 길러내야 겠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6절에 “이르시되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찌어다”라고 했습니다. 겉옷을 팔아 검을 사는 영적 무장, 하나님의 말씀과 영감으로 무장하는 그리스도의 정병을 길러내야 됩니다. 겉옷을 팔아야 검을 살수 있습니다. 희생이 없이는 검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할 때에 겉옷을 팔지 않으면 검을 살 수 없는 줄 알고, 우리 모든 성도들도 우리 겉옷을 팔아서 신학생들의 검을 사주는 사람, 또 신학생들도 자기의 겉옷을 팔아서 검을 사는 사람, 우리 자신들도 겉옷을 팔아서 자기 검을 사는 사람이 되어 말씀의 무장을 하는 것입니다.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희생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생명 전체를 내놓고 희생적으로 나가서 가나안 정복하는 일, 이스라엘 건설하는 일을 해나가는 그런 그리스도의 정병이 많이 나와야겠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지금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데,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 순종해서 오늘까지 온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이렇게 신학교를 세워 주셔서 감사하기 위해서 다 같이 모였는데, 다 같이 감사해야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14-16 신령과 진리의 교회를 세울 것.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신령과 진리의 교회를 세울 것
디모데전서 3:14-16

14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알 것을 알게 하려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6크도다 경건이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3:14 내가 속히 너에게 가기를 바라면서도 이것을 너에게 쓰는 것은, 

3:15 내가 늦어질 경우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 것인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3:16 이 경건의 비밀은 참으로 위대하다. "그분은 육신으로 나타나시고, 성령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으시며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나라들 가운데 전파되시며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 올리우셨다."


1.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

본문 14-15절에,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알 것을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또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교회에 살아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내 이름으로 두 세 사람이 모이면 나도 그들 중에 있겠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요,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교회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예수님이 거기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거기 계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어야 됩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므로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당신의 뜻대로 다 해나가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순종해 나가야 되겠습니다.

2.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는 기둥이 되어야합니다. 등불을 켜서 기둥 꼭대기에 올려놓고 기둥을 높이 들면 멀리까지 비춰나가게 됩니다.
진리를 비춰 내보내는 기둥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데, 진리의 기초, 진리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고 또 진리의 빛을 어둔 세상에 비춰 내보내야 합니다. 교회를 통해 비춰 내보내는데, 교회가 있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와 교회가 있는 지방은 다 밝아집니다. 교회가 안 들어가면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가 발전이 못 됩니다. 

한국이 이만큼이라도 발전이 된 것은 교회가 들어온 지 120년 정도 되어 교회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라도 빛을 비추어서 이만큼 된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는 기독교의 자유가 없습니다. 인도네시아는 교회 세우려면 아주 힘이 듭니다. 이슬람이 90%라고 하는데, 그래서 기독교가 들어가려면 반대가 심하여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우리도 선교사 한 사람을 보냈는데, 교회를 자유스럽게 세우지 못하게 한다고 합니다. 교회의 자유가 없는 나라는 보통 어둡고 뒤떨어진 경우가 많고, 교회가 들어간 나라는 문명한 나라가 되고 발전하고, 빛을 비추어서 밝아지게 됩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십니다. 사무엘하 6장에, 법궤를 옮길 때,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가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가다가 소들이 뛰므로 법궤가 흔들리자 손으로 법궤를 붙들었다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궤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데 자기가 잡으려다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언제나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는데, 진리를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기독교 즉 예수교라 함은 기본 진리를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기본진리, 즉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죽었다가 삼일 만에 살아나시고, 승천 하시고 재림 하실 것을 믿고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3. 기독교의 여러 가지 교단들
신신학자들은 예수 재림과 속죄를 믿지 않음

재림을 안 믿는 교단도 있지만 대개는 재림을 믿습니다. 요즘 재림을 믿지 않는 신신학자가 많은데, 재림을 믿지 않고, 속죄를 믿지 않고, 몸의 부활도 믿지 아니하는 신신학자들 많이 생겼습니다. 옛날에는 다 믿었었는데 이제는 타락되어서 예수님의 속죄와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들이 그럼 뭘 믿느냐 하면, 예수를 인간 가운데 선생으로, 또 공자와 같은 좋은 선생으로, 좋은 말 가르쳐 주는 선생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천당도 안 믿는 신신학자들이 세계적으로 많아졌습니다. 

처음에는 Union 신학교에 신신학자가 몇 사람 없었는데, 점점 퍼져서 미국의 북 장로교 보스턴신학교에 신신학자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매킨타이어 박사가 쫓겨났습니다. 요즘은 미국에 신신학자와 신신학 교회가 굉장히 많습니다. 북 장로교가 여러 장로교로 갈라졌는데 대개 신신학자가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신신학자는 예수님의 부활도 안 믿고, 재림도 안 믿고, 하나님 말씀인 성경도 믿지 않습니다. 성경 가운데에 하나님 말씀도 있고, 사람의 말도 있고, 마귀의 말도 있다고 하면서 성경의 무오성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신학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W.C.C.와 에큐메니칼(Ecumenical)
1948년에 신신학자들이 모여서 세계적인 대회를 조직했는데 그것이 W.C.C.( World Council of Churches)입니다. 세계 기독교 협의회(W.C.C.)인데, 이 세계 기독교 협의회에 가입한 교회는 신신학을 용납하는 교회입니다. 한국에는 W.C.C.에 ① 기독교 장로회(기장) ②예수교 장로회(통합) ③ 기독교 감리회 ④ 성공회 ⑤ 구세군 ⑥ 복음교회 ⑦ 정교회 ⑧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총 8개 교단이 가입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1948년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W.C.C. 창립총회 때부터 교회의 지도자들을 파견하여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세계기독교 협의회가 있고, 또 그 한국지회가 있는데 그 지회는 N.C.C.K.(The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입니다. 1970년 제23회 총회 이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가 회원으로 활동해왔으며 1996년 제45회 총회 이후 한국정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가 회원교단이 되어 현재 8개 교단이 회원교단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밖의 여타 교단들과도 사안별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등의 세계교회들과 연대하고 있으며 독일, 미국, 캐나다, 일본, 필리핀, 러시아, 중국 등의 교회협의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들은 '일치~화해' '종교간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데, 여기서 '종교간'이란 타 종교(이방귀신종교)와의 협상까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통합측은 신신학에 대해서 그다지 반대하지 않고 어느 정도 용납하고 나갑니다. 통합측인 광나루 장로회신학교가 있는데 거기는 신신학자가 많이 있습니다. ‘요나서를 요나가 기록하지 않았다 비유다’ 하며 성경을 제대로 바로 해석하지 않습니다. 통합측 교회는 W.C.C.과, N.C.C.K.에 속해 있으며, 연보 일부는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하는데 사용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하는 교단들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또한 그에 속한 교회가 바른 진리를 전하지 못합니다. 아무리 성경대로 가르치는 것 같아도 바른 진리를 전할 수 없습니다. 

순복음 교회는 하나님의 성회임

그러면 순복음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순복음 교회는 ‘하나님의 성회’입니다. 이름을 순복음 교회라고 붙인 것이지 하나님의 성회가 원래 이름입니다. 순복음 교회에 가 보면 하나님의 성회라는 간판이 붙어 있을 것입니다. 진짜 이름은 ‘하나님의 성회’입니다.
하나님의 성회는 한국만 있는 교단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있는 교단입니다. 미국에도 많습니다. 순복음 교회는 초대교회 식으로 병을 고치고 방언하며 예언하며 신비주의로 신앙생활합니다. 그러나 십계명 4계명인 주일은 지키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여의도 순복음 교회 주일 예배가 끝나면, 교회 양 옆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쭉 와 있고, 성도들은 주일에 물건을 사가지고 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그럼 장로교는 무엇입니까? 장로교는 칼빈주의인데, 개혁주의라고 합니다. 감리교는 알미니안주의이고 장로교는 개혁주의입니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다른 점은, 알미니안주의와 칼빈주의의 차이인데, 칼빈주의는 절대예정을 믿고 예정예지(豫定豫知)를 믿습니다. 하나님이 예정해 놓은 사람은 반드시 구원 받는다는 하나님의 주권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리교인 알미니안주의는 예지예정(豫知豫定), 즉 미리 예지하고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사람이 나서 언젠가 믿을 것을 미리 알고서 그 사람을 하나님이 예정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는 예정이 먼저고, 감리교는 예지가 먼저입니다. 

구렁텅이에 빠져서 사람이 죽게 됐는데 위에서 구원의 밧줄이 내려왔습니다. 감리교는 “그거 잡으면 산다. 잡아라. 안 잡으면 죽는다”고 해서 잡으면 건져주는 것입니다. 안 잡으면 죽는 것입니다. 자기가 잡으면 살고, 안 잡으면 죽는 것이 감리교 교리입니다. 구원의 선택권이 자기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장로교 교리는 구원의 밧줄을 내려서 아예 잡아 묶어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장로교 교리에서는 자기가 아무리 올라가지 않으려고 해도 안 올라갈 수 없습니다. 궁극적 구원에 대한 칼빈 5대 교리가 있는데, 첫째가 ‘전적 부패’, 인간이 전적 부패하다는 것입니다. 둘째가 ‘무조건적 선택’, 하나님이 택할 때 예정예지로 조건 없이 택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제한적 속죄’, 택함 받은 자만을 위하여 속죄하셨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불가항력적 은혜’ 불가항력적으로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총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는 ‘성도의 견인’, 궁극적이고 영원한 구원입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그 구원을 잃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로교의 칼빈 5대 교리입니다. 

침례교는 감리교와 비슷합니다. 침례교는 감리교와 장로교 중간쯤에 있습니다. 침례를 받아야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침례를 받아야만 세례로 인정하고 침례를 안 받으면 세례로 인정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침례를 안 받은 사람도 세례로 인정해줍니다.
장로교 가운데 여러 파가 있습니다. 고려파가 있고, 합동측이 있고, 통합측이 있고, 기장측이 있습니다. 이렇게 장로교도 여러 교파로 갈라져있습니다. 

장로교 분리 -고려파, 기장, 통합, 합동

‘고려파’는 1945년 해방 후에, 일제시대동안 신사참배에 가담한 목사들은 근신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기성교회에 들어가 회개를 촉구하고 개혁을 해보자고 했는데, 이 가운데 이북에 이기선 목사가 “6개월동안 근신하고 혁신 복구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신의주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기선 목사를 따르던 교인들이 평양 여러 교회들에서 쫓겨나서 혁신복구파가 생겨났습니다. 저도 이기선 목사님 밑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혁신 복구파입니다. 그 주장이 옳기 때문에 따라간 것입니다. 남한에서는 한상동, 손양원, 주남선 목사를 중심으로 혁신 복구파가 활동했습니다. 남한 인사들은 고려신학교를 만들어 경남노회를 통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부산에 김길창 목사라고 하는 유명한 정치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1938년 9월 장로교회가 신사참배하기로 가결하였을 때 부 총회장으로 신사참배단을 인솔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본이 한국교회 탄압의 일환으로 한국교회 모든 교파를 ‘일본기독교조선교단’으로 통 폐합하는 강경 수단을 동원하였을 때, 경남교구의 교구장을 맡았던 목사로서, 그를 주축으로 근신에 반대하였습니다. 김길창 목사가 근신주장 측을 반대하여 1949년 3월 8일 부산항서교회에서 경남노회를 따로 조직함으로서 경남노회가 분열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1951년 5월 25일 부산중앙교회에서 열린 36차 장로회 총회 속회에서 김길창 목사 파가 따로 조직한 경남노회의 총대를 정식총대로 받아 주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고려파 중심인 기존 경남노회는 교회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고려파’가 생겼습니다.

1940 년 승동교회에서 시작된 조선신학교는 1948년 김재준 목사의 성서해석학 등 신학논쟁으로 갈등을 겪다가 1954년 대한예수교 장로회 대구총회에서 김재준 목사를 지지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교단에서 탈퇴하고 조선신학교(현 한신대학교)를 중심으로 교단을 창립한 교단이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입니다.

고려파와 한국기독교장로회가 분리된 장로교단은 1959년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등 에큐메니컬 노선의 차이로 대전중앙교회에서 치러진 44회 총회에서 갈라서게 됩니다.W.C.C. 가입을 지지했던 인사들이 연동교회에서 구성한 총회가 장로회신학대 출신의 인사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입니다.W.C.C. 가입을 반대하고 복음동지회(NAE)운동에 찬성하는 인사들이 승동교회에서 구성한 총회가 총신대학교 출신으로 구성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입니다.

4. 우리 교단의 진리에 대해

한번 중생하면 지옥가지 않음

‘진리의 기둥과 터’라 했는데, 어떤 기둥을 세워 나가야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각 교회마다 진리를 세워 나가는데, 천주교는 천주교 진리, 감리교는 감리교 진리, 장로교는 장로교 진리, 루터파는 루터파 진리, 그렇게 각각 다릅니다.

장로교 가운데서도 여러 교단이 생겨났는데, 우리 교단은 장로교 진리 가운데서도 “좀 더 바른 진리를 믿자. 좀 더 바른 신앙생활을 하자”고 해서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나가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자”, “신령과 진정으로 나가는 교회가 되자”,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다”, “한번 중생한 사람은 절대 지옥 가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도 범죄 하면 지옥 간다는 교단이 많습니다. 루터파, 천주교, 감리교, 성결교 등 여러 교단이 한번 중생했어도 범죄 하면 지옥간다고 하지만, 장로교는 한번 중생했으면 절대 죽지 않고 지옥 가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느냐? 안 하느냐?”의 질문이 생깁니다. 한번 중생한 사람도 범죄 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사람도 범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교파에서는 “범죄 하면 지옥 간다”고 하는데, 장로교에서는 “범죄 할 수 있지만 지옥은 안 간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생한 영혼이 범죄 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범죄 하는 것은 육체의 부패성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옛사람이 범죄 하는 것이지, 중생한 새사람은 범죄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주장입니다. 

자라난 대로 천당에 감

보통은 “천당 가면 다 같고 상황만 다르다”고 보통 이렇게 주장하는데, 우리는 “천당 가면 다 같은 게 아니라 자라난 대로 간다. 자라나지 못한 사람은 자라나지 못한 대로 가고, 자라난 사람은 자라난 대로 간다”, “천국에는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어느 게 옳은 것 같습니까? 또, “신령과 진정으로 믿어야 된다”, “영이 살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저 예배만 드리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제 어느 한의사한테 전도했는데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 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전했습니다. 제가 “영이 살아야 된다”고 하니까 그 사람 말이 “영생이라는 게 무언가? 신령이라는 것이, 또 영이 사는 것이 무언가?”하고 묻습니다. 그런 것을 교회에서 안 배워준 것입니다. “영이 살아야 된다. 신령한 신앙을 가져야 된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된다. 예수의 피를 먹지 아니하고 예수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고 하였는데, 우리
는 예수의 피를 먹고, 예수의 살을 먹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됩니다. 

예수의 살을 먹는 법 3가지인데, 예수님의 살을 먹는 법은 ‘도성인신’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이신데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우리의 의를 위해서 예수님을 오신 것, 우리에게 의를 이루어주신 것, 그리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신 것, 대신 죽어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신령한 제사, 신령한 예배, 산제사를 드리자는 것입니다. 영이 살아야 되는 것, 예배시간에 영의 양식을 먹어야 된다는 것, 중생한 영혼은 범죄 하지 않는다는 것, 주일날을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추도예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혁주의인 칼빈의 5대 교리를 통해서 하나님 말씀대로만 믿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영이 살고 자라나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그런 교리입니다. 

우리가 깨달은 진리를 전하는 교회를 하나 세우면 이 진리를 더욱 세워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진리를 세워나가고 있고, 또 교회를 하나 세우면, 이 진리를 더욱 세워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기존 교회가 있는 지역이라도, 우리 교단의 교회는 계속 세워 나가야합니다.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이사를 가도 우리 교단의 교회를 찾아가십시오. 각처에다가 우리 교단의 교회를 세우고 있습니다. 금년에도 개척교회 하나 세우려고 작정 했는데, 우리 교단의 교회가 없는 곳에 세우려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해외에 보내서 교회를 세우려고 합니다. 바른 진리, 영적 생명이 살아나는 교회, 영생하도록 하는 양식이 있는 교회, 자라나는 교회, 영을 길러 나가는 교회, 주일을 지키는 이런 교회를 세워나가려 합니다. 앞으로 아프리카에도 하나 세우려고 하고, 월남에도 하나 세우는 등, 여러 곳에 세우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진리의 기둥과 터’이고, 이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고, 교회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교회인 줄 알고,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어서 진리를 세워 나가는 교회여야 합니다. 진리가 기초가 되어서 세워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신령과 진리로 교회를 세워갈 것

본문 16절에,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라”고 하였습니다.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고 했습니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라고 했는데, 그는 예수님입니다. ‘육신으로 나타나신 바 되시고’,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도성인신입니다. 또,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라고 하였는데, 영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즉, 성령으로 부활했다는 말입니다. 부활해서 ‘의롭다 함을 입으시고’, 즉 부활해서 천사들에게 보이셨다는 말입니다.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예수님을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예수님을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고 하였는데,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을 우리가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집(교회)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 교회인 줄 알아야 됩니다.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는데,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는 곳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살려나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세워 나가면서 또한 영적 면이 있어야 됩니다. ‘신령과 진리’의 교회, 즉 신령과 진리로 영혼을 살려 나가는 교회, 자라나는 교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교회,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 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어서 예수님 재림 하시는 날 영광 가운데 들어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이런 교회들을 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디모데전서 3:1-13 직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직분
디모데전서 3:1-13

1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2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근신하며 아담하여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3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4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찌며 5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6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7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8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9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 10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 11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 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3:1 만일 어떤 이가 감독의 직분을 바란다면, 그는 선한 일을 열망한다는 그 말은 참되다. 

3:2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받을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고, 신중하고, 단정하며,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가르치기를 잘하며, 

3:3 술을 즐기지 않고, 구타하지 않으며, 온화하고, 다투지 않으며, 돈을 사랑하지 않으며, 

3:4 자기 집을 잘 다스리고, 자녀들을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한다. 

3:5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 있겠느냐? 

3:6 또 새로 입교한 자도 안 될 것이니, 이는 그가 교만해져서 마귀가 받는 정죄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7 또한 불신자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 것이니, 이는 그가 비방을 받지 않고 마귀의 올무에 걸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8 이와 같이 집사들도 존경할 만하며, 일구이언을 하지 않고, 많은 포도주에 빠지지 않으며,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고, 

3:9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자라야 한다. 

3:10 이런 이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일을 하게 하여라. 

3:11 이와 같이 여자들도 존경할 만하고, 비방하지 않으며, 절제하고, 모든 일에 신실한 자라야 한다. 

3:12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며,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한다. 

3:13 집사의 직분을 잘 수행한 자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좋은 지위를 얻게 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 안에서 큰 확신을 얻게 된다. 
 

1. 감독의 자격

본문 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의 직분은 목사나 장로를 가리킵니다. 목사나 장로를 세우려면 선한 일을 사모하는 자를 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근신하며 아담하여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절제하며, 근신하여야 합니다. 근신은 삼가 조심을 말합니다. 아담은 깨끗한 것으로 신앙생활과 도덕면에 질서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나그네 대접을 잘하여야 하며, 가르치기를 잘 하는 것이 중요 합니다. 목사는 가르치는 직분이므로 가르치기를 잘하여야 합니다. 장로도 가르치기를 잘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본문 3절에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이따금 먹어도 괜찮은 것처럼 생각이 되지만, 성경 전체 사상이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언 23:31에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포도주나 맥주는 같은 것으로서, 그것들을 보지도 말아야 합니다. 술은 마시면 안 됩니다. 또 “구타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때리는 것을 말합니다. 감독은 구타하면 안됩니다. 즉 목사나 장로는 남을 때리면 안 됩니다. 가정에서도 자기 부인을 구타하면 안 됩니다. “오직 관용하며”하고 하였는데, 모든 것을 너그럽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다툴 일이 생겨도 웬만하면 다투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교회 직분을 맡은 사람이 돈을 사랑하면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본문 4절에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하므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라고 하였습니다. 자녀들이 잘 복종하도록 자기 집을 잘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하나님의 집을 잘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먼저 자신의 몸을 닦고(수신:修身), 그 다음에는 집을 다스리고(제가:齊家), 그 다음에는 나라를 잘 다스리고(치국:治國), 그 다음에는 천하를 평정케 한다는 것입니다(평천하:平天下). 

본문 6절에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란 감독을 세울 때에 새로 입교한 자를 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새로 입교한 자를 세우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교회에 큰 손해을 줄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7절에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고 하였습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안 믿는 사람에게 욕이나 먹고, 비방을 당합니다. “저 따위가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이냐?”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를 직분자로 세우면 안 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도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외인에게 비방을 당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왕따” 당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저게 무슨 예수 믿는 사람이냐?”고 손가락질 당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덕을 세워야 합니다. 아파트 같은 곳에서는 보통 반상회가 있는데, 반상회에 가서도 덕을 세워야 합니다. 반상회에 안가면 만원 낸다고 하면, 반상회에 안가고 만원 내는 것보다, 반상회에 참여해서 건설적으로 덕을 세우는 말을 하면 좋습니다. 또 무엇을 의논할 때에 좋은 의견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전도할 기회도 생기지 않습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도 덕을 세우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반상회에 모여서 “누구 도와주자고”하면 좋지 않습니까? 안 믿는 사람에게도 아름다운 말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의 큰 담력을 얻어 나가는 직분자가 됩니다. 직분을 맡지 않은 사람도, 언젠가 직분을 맡을 수 있으므로, 말씀대로 덕을 세우고 하나님이 직분을 맡겨주시면 직분을 맡는 것이 좋습니다.

2. 집사의 자격

본문 8-9절에 “이와 같이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사들은 단정하라고 하였습니다. 또 일구이언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일구이언”이란 한 입을 가지고 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입이 하나이면 한 말을 하여야지, 두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라고 하였는데,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은 아예 마시지 않아야 합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는데, 정당한 사업을 해서 이를 얻어야지, 남을 속여서 얻는 정당치 않은 이를 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지자”라는 것은 신앙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집사들이 선한 양심을 써야 합니다. 양심을 쓰지 않으면 집사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써야 합니다. 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17에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의 비밀이란 믿음을 지킴으로서 알게 되는 비밀을 말합니다. 즉 믿음을 지켜본 사람만이 그 비밀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밖에는 알 수 없는 믿음의 비밀이 다 있습니다. 다른사람이 알지 못하는 믿음의 비밀을 가진 사람이 집사의 자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신령한 믿음, 경험적인 믿음, 여러 가지 시험을 다 통과한 믿음, 믿음을 지킴으로서 자기 밖에는 알 수 없는 믿음의 결과 등 이런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이어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맡기려면 먼저 시험해 보고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주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1절에 “여자들도 이와 같이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들도”란 여자 집사들을 가리킵니다. 여자 집사들도 단정하고, 참소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소란 남을 헐뜯어 거짓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절제하며”란 쓸 때는 쓰고 안 쓸데는 안 쓰는 것을 말합니다. 막 쓰고 다니다가 쓸 때 가서 쓰지 못하는 것은 절제가 아닙니다. 절제해서 돈도 안 써야 할 때에는 안 써야 하고, 써야 할 때에는 쓰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찌니라”고 하였는데, 여 집사들도 모든 일에 충성되라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라야 집사의 직분을 맡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은 충성을 다하여야 합니다. 또 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경험적인 신앙으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비밀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라고 하였는데, 이혼하면 안 됩니다. 일단 결혼했으면 그냥 살아야 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이것은 못 살 지경이다”해도 하나님이 지워준 십자가인줄 알고 잘 참고 나가면, 하나님이 믿음의 비밀을 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 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지위를 얻습니다. 집사의 직분을 가지고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하면, 집사의 직분을 가지지 않고 전도하다가 순교를 당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지위를 얻습니다. 

그러나 집사가 잘못하면 평교인보다 더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집니다. 집사가 잘하면 평교인이 잘한 것보다 아름다운 지위와 영광이 됩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잘하면 더 큰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가고, 세상에 빛이 더 드러납니다. 그러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좋지 않은 일을 하면 평교인보다 더 비방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이 더 많이 가리워집니다. “저 따위가 집사냐?, 저 따위가 장로냐?, 저 따위가 목사냐?”하면서 더 많은 비방이 돌아갑니다. 직분을 안 가진 것보다 더 못해서, 자기에게도 더 부끄러움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도 더 가리워집니다.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을 가진 사람은 자기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달려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직분을 가진 사람은 더욱 충성하여야 합니다. “일구이언”하지 않아야 하고, 양심을 똑바로 쓰고, 모든 일에 선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그 직분이 아름다운 지위가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리라”고 하였는데, 맡은 직분에 충성하면 큰 담력을 얻고, 다른 사람에게도 큰 담력을 줍니다. 즉 다른 사람도 힘을 얻습니다.

스데반 집사가 집사의 직분을 잘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스데반 집사를 통해서 은혜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직분을 맡은 사람이 잘하면 큰 영광이 되고, 큰 은혜가 됩니다. 그러나 잘못하면 더 큰 손해가 나고, 더 큰 부끄러움이 나고, 더 크게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집니다. 그러므로 직분 가진 사람들은 잘 하여야 합니다. 특별히 돈에 대해서 잘 하여야 합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에 대해서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다른 곳에도 양심을 안 씁니다. 물질에
대해서 어떻게 하든지 절제하면서 하나님 앞에 바치도록 힘을 써야하고, 남의 돈은 꾸지 않아야 합니다. 남의 돈을 꾸어 썼으면 바로 갚아 주어야 합니다. 돈에 대해서 양심을 쓰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욕이 돌아갑니다. 직분을 가진 사람은 돈에 대해서 양심을 써야 합니다.
또 때리고 싸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를 몇 개 가지고 나가라고 하였습니까? “첫째는 욕하면 먹자, 둘째는 때리면 맞자, 셋째는 죽이면 죽자”입니다. “자”자를 세 개 가지고 나가면 싸우지 않습니다. 욕하면 먹으면 됩니다. “욕” 아무리 먹어도 소화불량 생기지 않습니다. 그 다음에 때리면 맞는 것입니다. 죽이면 “죽자”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싸울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죽여야 죽지, 하나님이 죽이지 않으면 죽지 않습니다. 

누가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비방해도, 자기가 안 잡아먹었으면 된 것입니다. “내가 언제 잡아먹었느냐?”고 따지며 싸우지 말고,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비방하면, “안 잡아먹었다”고 한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파리 안 잡아먹었는데 왜 잡아먹었다고 하느냐? 증거를 대라, 누가 그러더냐? 아무개가 그랬지” 하며, 또 그 사람을 찾아가서 “너 왜 날더러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그랬냐? 내가 보니까 네가 그랬다”고 하여 온통 싸움판을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하지도 않은 것을 했다고 하면, 안 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남이 자기에게 아무리 했다고 비방해도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다 벗겨 주십니다. 하나님이 안 잡아 먹은 것을 다 나타낼 날이 옵니다. 괜히 싸우면 마귀만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직분을 낼 때에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직분을 내면 안 됩니다. 자격 있는 사람에게 직분을 내어야 하고, 직분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교회가 잘되고, 복음 운동이 잘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사, 장로는 모든 일에 모본이 되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2:1-15 남자와 여자에 대한 교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남자와 여자에 대한 교훈
디모데전서 2:1-15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5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6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7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8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9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11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12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13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14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15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2:1 그러므로 내가 무엇보다도 먼저 권하니, 모든 이를 위하여 탄원과 기도와 간구와 감사를 드려라. 

2:2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여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정중함으로 조용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는 것이다. 

2:3 이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다.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신다.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다. 

2:6 그분께서는 모든 이를 위하여 자신을 대속물로 주셨으니, 정해진 때에 주신 증거이다. 

2:7 이것을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었으며,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으니, 이것은 참말이며 거짓말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나는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바란다. 

2:9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한 옷을 입고, 수줍음과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며, 땋은 머리나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으로 하지 말고, 

2:10 오직 선한 행위로 단장하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고백하는 여자들에게 합당한 것이다. 

2:11 여자는 온전히 순종하면서 조용히 배워라. 

2:12 나는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지배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여자는 조용해야 한다. 

2:13 이는 아담이 먼저 창조되고 그 다음에 하와가 창조되었으며, 

2:14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라, 여자가 속임을 당하여 죄에 빠졌기 때문이다. 

2:15 그러나 여자가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머물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을 것이다.


1.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라
본문 1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데 
첫째는 간구, 
둘째는 기도, 
셋째는 도고, 
넷째는 감사하는 기도입니다. 간구한다는 것은 탄원한다는 뜻입니다. 즉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도고라고 하였는데, 도고는 어떤 사건이나 어떤 사람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에 우리가 기도하여야 합니다. 
봉원동 연세대학교 뒷산에 제 기도실이 있는데, 연대에서 철망 친다고 철거하라고 해서, 요새 나는 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중에 있습니다. 기도실을 철거하면 기도하러 갈 곳이 없습니다. 기도에는 외상이 없습니다. 반드시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주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주실 것은 들어 주시고, 안 들어 주시는 것은 다른 더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본문 2절에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하나님이 세우셨는데, 임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해 주는데, 잘 하도록 도와 주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제 어떤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기독교 정당이 나왔다고 합니다. 기독교 이름을 가지고 정치 운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목사들을 정치 운동하라고 세워놓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전하라고 세워놓은 것입니다. 통일가정당은 문선명이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여간 왕을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하고, 왕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바른 정치, 바른 나라를 세우고 앞으로 잘되게 하려면 대통령이 잘하여야 하고, 우리가 도와주는 입장에 서야 되고,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북한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리고 이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이북에 있는 성도들이 지금 많이 굶어 죽고 있다고 합니다. 아주 비참한 가운데 있습니다. 또 강제수용소에 들어가서 고생하며 비참한 가운데 있는데, 이북에 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겠습니다.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경건한 생활, 단정한 생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여야 믿는 일도 해나갈 수 있고, 복음도 전할 수 있고, 선교사도 보낼 수 있습니다. 나라가 잘 되어야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게 되면 아주 비참해 집니다. 일제시대에 다 겪어본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 탄광촌에 끌리워 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죽고, 여자들은 정신대에 끌리워 가서 일본 군대의 위안부 생활을 하다가 죽고, 얼마나 비참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나라가 잘 되어야 합니다. 고요하고 평안한 중에 경건생활과 믿음생활을 하려면 나라가 잘 되도록 왕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왕을 도와주는 자리에 서야겠습니다. 그리고 지켜야 할 말씀을 지키며, 말씀을 따라가면 영이 잘되고 또 나라도 잘되고, 앞으로 모든 것이 잘되도록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본문 3절에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고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는 것은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더 잘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2.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심

본문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택함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즉, 택함 받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진리를 많이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진리를 깊이 알고 많이 알아야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건축법과 건축 재료와 그 용도를 잘 알아야 훌륭한 집을 건축할 수 있는 것처럼 진리를 알아야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갈 수가 있습니다.

본문 5절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요 또 중보도 한분이시라고 하였는데, 중보란 하나님과 사람 중간에서 연결시켜주는 분입니다. 중보는 예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율법의 중보는 모세이고, 복음의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 6절에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속전으로 주셨다는 것은 돈을 주고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노예를 값을 주고 사서 해방을 시켜 주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께서 자신을 속전으로 우리의 죄 값을 물어 주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본문 7절에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는 직접 보내심을 입은 자입니다.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란 바울이 이방에 복음을 전파하는 자가 된 것을 말합니다.

3. 남자에 대한 교훈

본문 8절에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손을 들어 기도한다는 것은 자기 심령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손을 안 들어도 마음과 영이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한다고 하였는데, 각처에서 남자들이 기도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분노와 다툼이 없이”라고 하였는데, 분노하는 것은 잘못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도 분노했습니다. 

마태복음 20:20-27에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
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은 요한과 야고보인데,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예수님께 와서 아들 하나는 주의 나라에서 주의 우편에 앉게 해주시고, 또다른 아들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한다, 내 좌우에 앉는 것은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이 얻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열 제자가 듣고 어떻게 했다고 했습니까? 분히 여겼다고 하였습니다. 좌우에 앉는 것은 제일 높은 자리입니다. 두 사람만 하나님 나라에서 예수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하니까 열 제자가 듣고 분히 여겼습니다. 자기네들도 예수님을 같이 따라다녔는데 왜 그 두 제자만 좌우에 앉게 해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남자들은 분히 여기는 게 단점입니다. 분노 중에 모든 것을 처리하다가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믿지 않고 분히 여기는 자체가 잘못되었습니다. 또 하늘나라에서 큰 자가 되려면 세상에서는 남을 섬기며, 낮아져야 합니다. 즉 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공연히 분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예정하신대로 하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하시는데, 왜 분히 여기느냐고 책망을 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장로 투표를 했는데, 분히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될 줄 알았는데 안됐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몇 사람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장로 투표를 안 했으면 좋았을텐데, 괜히 죄만 짓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분해서 교회에서 인사도 안하고, 목사에 대해서 비방하고, 그 다음에는 얼마 있다간 다른 교회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것 참 한심합니다. 그 교회에서 몇 십 년 배운 사람인데, 장로 투표 떨어졌다고 다른 교회로 간다는 게 말이 됩니까? 분해서 말도 안하고, 인사도 안 한다는데 그런 사람이 장로가 되었다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떨어진 게 잘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장로로 내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장로가 못되었다고 분해하는 사람이 장로가 되면 그 사람도 망하고, 교회도 은혜스럽게 나갈 수 없고, 목사도 일을 잘할 수 없습니다.

열두 제자들이 밤 낮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는데 마지막에 분히 여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얼마나 한심합니까? 믿음에 서지 못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않고, 하나님이 세우시는 사람이 하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가 앉으려고 하다가 분히 여겼습니다. 분히 여기는 것을 고쳐야 합니다. 

주차장 당번들이 분히 여기면 안 됩니다. 잘못하는 사람이 있어도 분히 여기면 안 됩니다. 차 세우는 것을 몰라서 잘못 세우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을 분히 여겨서 경찰을 불렀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경찰을 부르고 또 소송하는 것은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고소하지 말고 재판하지 말아야 합니다. 재판하는 것은 삼대가 원수가 된다고 합니다. 재판을 안하고 해결해야 됩니다. 

고천 기도원 때에 수해가 나서 다 밀려 내려갔기 때문에 그 윗 산에 수해가 안 나도록 콘크리트 벽을 세웠습니다. 그 산은 남의 산입니다. 그런데 얼마 있다가 “왜 남의 산에 허락도 안받고 콘크리트 벽을 세웠느냐?”고 산 주인이 알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땅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올 때에 토사를 방지하려고 콘크리트벽을 세웠는데, 당신네가 산 사용할 때에는 언제든지 콘크리트 벽을 부수고 사용하라”고 하여도 야단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들이 고소는 안 했습니다. 고소하면 삼대가 원수가 되기 때문에 고소는 안 한다는 것입니다. 고소 안하고 그저 우리에게 욕을 하고, 책망을 하며 나갑니다. 사실은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잘못했습니다. 남의 산에 콘크리트벽을 쳤으니 되겠습니까? 우리는 땅을 가져가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비올 때에 좀 방지 하자는 것이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나겠습니까? 그래도 그 사람들이 고소를 안 했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우리가 원수가 안 되었습니다. 그 사람 아버지가 세상 떠났을 때에는 우리가 가서 문상했습니다.

고소하게 되면 삼대가 원수가 됩니다. 자녀들이 원수가 되고, 또 그 다음 자녀들이 원수가 되기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법정에 고소 안하고 무엇이나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 화목이 됩니다. 고소해 놓으면 화목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경찰은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합니다. 경찰을 부르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절대 경찰은 부르지 말고 자기네들끼리 해결해야 됩니다. 또 남자들이 분노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4. 여자에 대한 교훈
아담한 옷을 입어라

본문 9-10절에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라고 하였는데, 자기에게 적당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즉 사치하는 옷을 입지 말고 아담한 옷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의복은 보통 사람처럼 입는 게 제일 좋습니다. 너무 잘 입고 다니는 것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너무 너절하게 입고 다니면 할머니 거지같다고 하고, 너무 잘 입고 다니면 기생오라비 같다고 합니다. 낡은 옷이라도 세탁해서 깨끗하게 입고 다니면 얼마나 좋습니까? 옷은 모든 사람보다 두드러지지 말고 파묻혀야 됩니다. 즉 보통 옷으로 입어야 합니다. 또 깨끗하게, 자기에게 적당하게 입어야 합니다. 

옷으로 모양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옳지 않습니다. 옷은 단정하고, 아담한 옷을 입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원하십니다. 옷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옷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옷을 너무나 특별하게 입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립니다. 다른 사람의 보기에 이상하게 입지 말아야 합니다. 할머니들이 새빨간 옷을 입고, 구두도 새빨간 것을 신고 다니는 것은 적당한 옷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할머니에게 적당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서 옷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걸리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옷에 대해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돋보이거나, 말썽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라

또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라고 하였는데, 염치없이 돌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치없이 돌아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염치가 있고 정절이 있어야 합니다. 염치없이 돌아가고, 정절이 없이 돌아가면 믿는 일을 못합니다.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성문제에 있어서 깨끗하라는 것입니다. 또 모든 일에 있어서 정절을 지키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새 젊은 여자들이 가슴 내놓고 다니는 것, 참 한심합니다. 또 넓적다리도 다 내놓고 다니는데,
가슴은 왜 내놓고 다니고, 넓적다리는 왜 내놓고 다닙니까? 그것은 아담한 옷을 입는 게 아니고, 또 염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아담한 옷은 정결하고 단정해야 합니다. 

금, 진주,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

그 다음에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라고 하였는데, 요즘에 금, 은방이 종로 3가에서 2가까지 있습니다. 금, 은방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요즘 금, 은, 진주 얼마나 비쌉니까? 또 무슨 눈물이라고 했습니까? “행복한 눈물”이라는 그림을 한국 돈으로 30억이나 주고 샀다고 하는데, 정신 나간 일입니다. 이런 것은 다 성경에 위반입니다.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값진 옷 요즘 얼마나 합니까? 의복 한 벌에 몇 천 만원씩 한다는 것도 있다는
데 정신 나갔지, 의복 한 벌에 몇 천 만원씩 주고 사 입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것 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선행으로 하라

본문 10절에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행으로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선행으로 단장하면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좋아합니다. “그 여자가 선행을 많이 한다”고 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인물이 못생겼어도 선행을 많이 하면 존경할 만한 여자입니다.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본문 11-12절에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성경에 의해서 여자 장로, 여자 목사를 내지 않습니다. 장로나 목사는 남자를 가르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자 목사는 반대합니다. 여자 장로도 안 세웁니다. 교회에서 여자는 일절 조용함으로 배우라고 했는데, 여자가 가르치는 것이나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학교는 여자 목사를 반대하며, “여자 목사” 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여자 목사가 우리 신학교에 들어왔습니다. 그 여자 목사는 성경 위반이라고 하며 아무리 내리쳐도 다른 데로 가지 않고 끝까지 잘 참고 다니며 졸업까지 했습니다. 특별히 조영엽 목사님이 여자 목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아주 강하게 말해도 잘 참고, 잘 참여해서 졸업까지 했는데, 졸업하고도 우리 신학교에 후원금을 냅니다. 또 우리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떤 여자는 목사가 아니었는데, 다른데 가서 몰래 목사 안수 받고 여자 목사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몇 년 동안 여자목사는 안된다고 배우고, 나가서 여자 목사가 된 사람이 몇 사람 있습니다.

여자 목사는 성경에 의해서 합당치 않습니다. 여자 장로도 합당치 않습니다. 지금 여자 목사를 내자는 교단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합동측에서도 여자 목사를 내자고 제의하는 교회가 있는데, 반대하는 목사가 많아서 여자 목사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합동측에서 앞으로도 여자 목사를 안내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리교, 통합측 등 여러 교단에서는 이미 여자목사를 내고 있습니다. 

5. 여자가 남자를 주관하지 못하는 이유
창조의 원리로 아담이 하와보다 먼저 지음을 받음

본문 13절에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꼬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라고 했는데, 여자 목사를 안내는 이유는 창조의 원리를 보아서 여자가 적당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범죄의 원리로 아담보다 하와가 먼저 범죄함

본문 14절에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또 여자가 목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범죄의 원리를 보아서 여자가 주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여자가 남자를 주장하지 못한다고 했습니까? 첫째, 창조의 원리를 보아서 주장하지 못합니다.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후며, 하와는 남자를 도와줄 자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또 범죄의 원리를 보아서 하와가 먼저 선악과를 따먹고, 그 다음에 아담에게 주었기 때문에 남자를 주관하는 자리에 나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대개 여자보다 남자가 먼저 죽습니다. 그러면 왜 남자보다 여자가 오래 사는지 압니까? 그것은 여자는 남자를 잘 보필하라고 하나님이좀더 오래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보통 그런 것이지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자가 먼저 죽는 집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통은 여자보다는 남자가 먼저 죽습니다.

6. 해산함으로 구원을 이루어 나감

본문 15절에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정절을 지키고, 믿음으로 하고, 사랑으로 하고,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해산해서 아이를 기르는 것은 하나님이 여자에게 주신 직무입니다. 여자들이 결혼해서 해산하여 아이를 기르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직무인데, 자기에게 주신 이 직무를 잘 감당하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남자를 주관하고, 가르치는데서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여자는 시집을 가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잘 양육하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것은 자기를 잘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처녀 때에는 쫙 빼입고 다녔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 낳아 기르면 날선 것이 없어집니다. 사치하는 정신이 없어집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집니다. 또 이기주의가 없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멸시하고, 자기 자랑하는 것이 없어집니다. 아이가 가만히 두나요? 아이들이 코도 묻히고, 침도 묻히고, 똥도 싸는데 언제 여자들이 사치하는 것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자기의 직무를 잘 감당하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는 뜻이고, 또 한 가지 신령한 뜻은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만 그리스도 형상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19에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즉 해산하는 수고를 하여야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나갑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안하면,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없습니다. 계속 해산하는 것처럼 힘을 써야 됩니다. 그렇게 나가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해산하는 게 쉽습니까? 

우리 사촌 누이가 하나 있었는데, 해산할 때에 메주 가마니를 다 잡아 뜯고, 또 얼마나 난리를 쳤는지 버선에 구멍이 뚫어지면서까지 그렇게 해산을 했다고 합니다. 그 만큼 해산의 수고를 하여야 자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힘을 안 쓰면 구원을 이루어 나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힘을 바짝 써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겠습니다. 계속 힘써 나가면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회개하면 그 사람은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도 회개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기의 부족을 깨닫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하며, 구원을 잘 이루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