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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5일 토요일

디도서 3:1-15 선행(善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선 행(善 行)
디도서 3:1-15

1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2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 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 4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7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9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10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11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12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 13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고 14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 15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 

3:1 너는 그들로 생각나게 하여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게 하여, 모든 선한 일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며, 

3:2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다투지 말며, 관용하고, 범사에 온유로 모든 사람을 대하게 하여라. 

3:3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었고, 순종하지 않았으며, 속았고, 여러 가지 정욕과 쾌락에 종노릇 하였으며, 악의와 시기 가운데 살았고, 싫어하고, 서로 미워하였다. 

3:4 그러나 우리 구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람을 향한 사랑이 나타나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들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다. 

3: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풍성하게 부으셨으니, 

3:7 이는 우리가 그분의 은혜로 의롭다하심을 받아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3:8 이 말씀은 신실하다. 나는 네가 이것들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를 원하니,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조심하여 선한 일들에 힘쓰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다. 

3:9 그러나 너는 어리석은 논쟁들과 족보 이야기와 다툼과 율법에 대한 언쟁들을 피하여라. 이것들은 무익하고 헛될 뿐이다. 

3:10 이단에 속한 자들은 한두 번 훈계한 뒤에 멀리하여라. 

3:11 네가 아는 대로, 이런 이는 타락하여 죄를 지으며 스스로 정죄를 받는다. 

3: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너에게 보내거든 너는 속히 니코폴리에 있는 내게로 오너라. 내가 거기에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다. 

3:13 너는 율법학자 세나와 아볼로를 속히 먼저 보내어 그들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게하여라. 

3:14 또 우리에게 속한 자들도 필요한 것들을 위해 선한 일들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여라. 이는 그들로 열매 없는 자들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15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이가 너에게 문안한다. 너도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문안하여라. 은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1. 선한 사람이 되라

본문 1-2절에,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 즉 국가의 권세에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국가 안에 있으나 교회는 국가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만 속하고 세상 국가에는 속해 있지 않지만, 국가 권세도 하나님이 세웠으므로 교회가 어느 국가에 있든지 그 국가에 복종해야 합니다. 또한 대통령 등 국가 지도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 그들이 선한 정치를 하고 국가 안녕 질서가 잘 유지되고, 성도가 신앙생활 하는데 지장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국가의 권세라 하더라도 성경에 위반되는 것은 순종할 수 없습니다. 성도는 개인의 자격으로 정치운동을 할 수 있으나, 기독교의 이름으로 세상국가의 정치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면 안 됩니다. “남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라고 하였는데, 성도는 남의 허물을 덮어 주고 위해주고 다투지 말며 남을 헐뜯어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라디아 5:15절에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으며, 로마서 12:17-19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든 것을 용납하고, 범사에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고, 무슨 일이나 선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전에는 어떤 자였는가 생각해봅시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고, 순종치 아니하고, 속고,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하고,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럽고 피차 미워한 자였습니다. 이와 같이 허물이 많았던 자기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의 허물 또한 용서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2. 사랑으로 구속하여 주심

본문 4-6절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를 중생시켜서 죽었던 영혼을 살려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놓았습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고 긍휼을 베풀어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예수 믿게 해서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회개하고 순종만 하면 성령이 우리에게 풍성히 역사하십니다. 회개하고 순종하고 사모하면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셨기 때문에 성령의 능력이 오고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을 받는 게 아니라 벌써 우리에게 부어 주셨는데 우리가 거역하기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못 받습니다. 회개하고 순종하면 성령이 강력하게 역사해서 우리를 말씀대로 이끌고 갑니다.

본문 7절에,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 하였습니다.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십니다. 후사는 아버지의 것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을 다 물려받는 영생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들을 물려받을 때에, 그것들을 사용할 실력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늘나라를 우리에게 물려주시는데 실력이 있는 사람은 그것들을 다 받아서 이용하
고 감당 할 수 있지만, 실력이 없는 사람은 어린아이로서 자라나지 못했으므로 하늘나라에 가기는 가지만, 그저 좋아하기만 하고 그 심오함도 진실한 기쁨도 모르고 이용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자라나서 실력이 있는 사람은 물려받은 것들에 대해, 이것이 무엇인지 저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들을 사용 할 줄도 알고, 하나님 뜻을 순종 할 줄도 알고 다 해결해 나갑니다. 그러나 자라나지 못하면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생한 후에, 어린아이의 상태에서 점점 자라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후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후사가 되면 자기 실력 있는 만큼 씁니다. 어린아이에게 아버지의 것을 다 물려 주어도 뭘 할 줄 알겠습니까? 하지만 이,삼십년쯤 자라나서 장성하게 되면 아버지가 물려준 것을 사용 할 수있게 됩니다. 자동차도 사용하고 가전제품도 사용하고 은행업무, 등 모든 걸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에게는 그런 것들을 주어도 사용하지 못 합니다. 예수 믿었으므로 하늘나라 가기는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에 가도 자라나지 못했기 때문에 사용할 실력이 없는 것입니다. 자라난 사람은 다 사용할 수 있고, 누릴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고, 하늘나라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열 므나 남긴 사람은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고, 다섯 므나 남긴 사람은 다섯 고을 권세를 차지합니다. 그러나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은 그 한 므나를 빼앗겼으며 책망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갈 때에 장사를 잘 해서 가야 하겠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가서 배나 남겨서,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 할지어다”라는 칭찬을 받았고, 두 달란트 받은 사
람도 배나 남겨서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장사 안 하고 땅 아래 파묻어 놓아서 책망 받았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시며 빼앗아서 열 달란트 받은 자에게 주라고 했습니다. 금년에 달란트 장사를 잘 하십시오. 잘해서 배나 남겨가야 합니다. 이제 새로운 해를 하나님께서 달란트 장사 잘 하라고 주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배나 남겼습니까? 첫째, 바로 가서 장사 했습니다. 둘째, 받은 달란트를 다 투자 했습니다. 받은 것 좀 떼먹지 않고 다 투자 해서 장사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것 다 투자해서 장사 했습니다. 셋째, 부지런히 일심정력을 다 해서 달란트 장사를 잘 해서 배나 남겨 가지고 갔습니다. 우리도 정초에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가지고 나가 달란트 장사를 잘 해야겠습니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이 남겨 가야합니다. 조금 적게 받은 사람은 그것도 배나 남겨야 됩니다. 한 달란트 받았어도 배 남겨서 가면 됩니다. 우리가 달란트로 받은 것이 무엇입니까? 시간, 건강, 힘, 물질, 환경, 이용 할 수 있는 전체가 모두 달란트입니다. 이제 결산할 날이 옵니다.
사도바울이 결산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 내가 달려 갈길 다 마쳤다. 믿음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결산보고 할 때가 다 옵니다. 선한 싸움은 계속 싸우는 것입니다. 이단, 신신학 사이비한 것들, 여러 가지 마귀역사가 많은데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됩니다. 율법주의, 정치주의, 정치가 이용하는 것, 이세벨, 발람, 니골라당, 비 진리들과 싸워야 됩니다. 사도바울이 “달려 갈 길을 다 갔다”는 것은 복음운동을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죽을때 까지 한 것입니다. 넓게 할 때는 소아시아 1, 2, 3, 4차 전도를 했지만, 말년에는 로마 감옥에서도 달려 갈 길을 갔던 것입니다. 사람들을 청해서 가르치며 많이 가르쳐야 될 때는 많이 하고, 적게 가르쳐야 할 때는 적게 하고, 몇 사람을 가르쳐야 할 때는 몇 사람을 가르치면서, 또 자기 가족들, 손자들, 자녀들 가르쳐서 달려가면 됩니다. 
캐나다에 나이 많으신 김세빈 목사는 요즘은 손자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거기서 또 달려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지기 가족들과 자녀들을 잘 가르쳐서 세워 놓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이 가서 못 합니다. 할아버지가 가서 해야 됩니다.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하는 것입니다. 죽는 날 까지 달려갈 길 가는 것입니다. 매일 달려가야지 쉬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켰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다 이겨 나갔다는 것입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이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물욕적으로 오는 시험, 정욕적으로 오는 시험, 자기 볼 장 보는 시험, 이러한 것들을 이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와 싸워서 이기는 것, 다른 사람에게 바로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 지키는 일을 잘하고 하나님께 가야겠습니다. 결산보고 할 때에, 그동안 얼마나 선한
싸움을 싸웠는지 하나님 앞에 내 놓을 것이 있어야 됩니다. 요새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이 많이 생깁니다. 교회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역사들이 많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교회를 뒤집어 엎으려고 하는 역사들이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나 다 나타납니다. 
미국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나와서 다 뒤집어 엎어놓았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지금은 주일을 안 지킵니다. 주일 지키는 사람이 있긴 있지만 대개는 주일날을 지키지 않습니다. 타락이 되어서 그렇습니다. 옛날 청교도들의 신앙은 철저하게 신앙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생명 내놓고 지켰습니다. 이북에서 주일날 지키다가 숙청당한 사람,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왜정시대에는 일본의 신사참배 강요와, 해방 후 이북에서는 공산당의 어용기관인 조선기독교도연맹과 싸워 이겨야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기려면 감옥에 가야 했습니다. 오늘날 보수교단에는
마귀역사가 들어와서 교회를 전복시키려고 하는 역사가 많습니다. 열린 예배는 교회를 무너뜨리려고 세상 운동을 마귀가 집어넣은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하나님 앞에 가서 내 놓을게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회개해야 됩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 했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됐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지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집을 짓고, 술 마시고 방탕하는 것입니다.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은 음행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결혼이 아닙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부패했습니까.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하고 교회 안에도 각종 쾌락주의가 들어왔습니다. 쾌락주의, 오락주의, 노세 놀아 노는주의, 각색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하는 주의가 교회 안에 들어 왔습니다. 교회가 정욕에 종노릇하고, 행락에 종노릇하고 놀자판이 되는 것을 막아야 됩니다. 그래서 참 교회를 세워야 됩니다. 참 교회를 세우려면 디모데와 같이 항상 눈물 흘리는 신앙을 가지고 진실한 신앙, 불일 듯 하는 신앙을 가져야합니다. 안수 받을 때 받은 은혜를 다시 불일 듯 일으켜서 근신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나가는 신앙, 일심정력을 다해서 나가는 신앙인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정병으로 다 택해졌는데, 이 정병은 생명 내 놓고 나가야 됩니다. 일선에 나가서 싸워야지, 사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됩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법대로 싸우고 은혜 속에서 강한 그리스도의 정병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금년에 모두 그리스도의 정병이 되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우십시오. 오늘날 교회가 경건의 모양만 있지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능력 있는 교회가 많지 않습니다. 모양만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했는데 능력 있는 교역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능력 있는 교회, 교인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남의 집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 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은근하고 조용히 그런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향락주의자들이 가만히 교회로 들어와서 교회를 전부 다 그렇게 만들어 놓습니다. 이것을 이겨야 합니다.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는 전도하라고 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의 엄명이라고 했습니다. 또 예수그리스도의 엄명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나가서 전파 하십시오. 전도해야 됩니다. 듣든지 말든지 전파하고 한사람이라도 더 인도하려고 전파해야 합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옵니다. 그래도 한사람이라도 교회로 인도해야 합니다. 금년에 몇 사람 인도해야 되겠는지 계산해보십시오. 한사람도 인도 하지 못하면 그건 바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 한사람은 인도해야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전도해서 한사람 이상은 인도해야 됩니다. 많이 인도 하는 사람은 열 명, 스무 명도 인도 하는데, 한사람도 인도 못해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금년에는 어떻게 하든지 인도 하십시오. 목사들도 가서 노력을 하십시오. 다음에는 얼마나 했는지 결산보고 해야 합니다. 선한싸움을 잘 싸웠는지, 대상을 알고 싸웠는지, 달려 갈 길을 잘 달려갔는지 말입니다. 달려 갈길을 달려가기 위해서 우리교단에서 올해도 개척교회 하나 더 해야 됩니다. 작년에 개척교회 하나했는데 올해도 하나 더 해야 합니다. 한 해에 하나씩은 해야 합니다. 하나도 못하면 그것은 산 역사가 아닙니다. 각 교회에서 연보해서 해야 됩니다. 또 성경번역 한 ‘바른성경’도 올해 나옵니다. 그것도 우리의 달려 갈 길입니다. 그리고 선교사 보내서 선교하는 일을 금년에도 계속해야 됩니다. 선교사로 갈 사람은 계속해서 보내야 그것이 모두 달려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교회를 바로 세우고 참 교역자 세우고, 참된 장로를 세워야 됩니다. 마귀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들어오면 내좇아 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바른 교회를 세워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바른 교회를 통해서 더욱 하나님이 그 나라를 보호해 줍니다. 우리나라 교회가 바로서야 나라가 발전합니다.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면 앞으로 한심한 지도자가 나옵니다. 바른 교회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는 바른 교회가 여기 있다. 희망이 있다” 하시고 나라를 지켜 주십니다. 그러니까 집들을 온통 무너뜨리는 이 말세에 우리가 무너뜨리는 것을 막고 바른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 마음에 기뻐하시는 교회, 성경말씀에 맞는 교회, 하나님 마음에 합한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주님 앞에 갈 때에 내놓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몇 달란트 남겼느냐? 몇 므나 남겼느냐 다 결산 할 텐데 지금 결산한다고 했을 때, 내 놓을 것이 없으면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다시 달란트 장사 므나 장사를 잘해야 합니다. 세상 떠나는 날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노인들도 할 일이 있습니다. 노인들은 자기 가족 친척 손자 친구들을 가르치는 것이 달려 갈 길입니다. 몇 사람씩이라도 전도해서 교회가 부흥되어야 합니다. 인본주의를 쓴다고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입어서 전도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인본주의를 써서 부흥되는 것은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본문 8절에,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미쁘도다’ 는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굳세게 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3. 무익한 것을 피하라

본문 9절에,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변론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말다툼을 피해야 합니다. 말다툼은 유익이 하나도 없고 손해만 납니다. 사랑으로 권면하다가 안 들으면 내버려 둬야지, 끝까지 말다툼하면 손해만 납니다. 헛된 것 가지고 괜히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본문 10-11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 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서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은 한두 번 권면하고 안 들으면 내버려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심판 한다는 것입니다. 탈선되어 나간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하십니다. 끝까지 변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되어 나가는 사람이 별소리를 다 쏟아내도, 그것이 마귀가 하는 말로 알고, 그 소리를 듣지 말고, 내버려 두면, 마침내 하나님이 다 심판합니다.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납니다. 

4. 일군 파송과 문안 축복

본문 12-13절에,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과동하기로 작정하였노라. 교법사 세나와 및 아볼로를 급히 먼저 보내어 저희로 궁핍함이 없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교법사는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율법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입니다. 아볼로도 예수를 믿고 성경을 많이 아는 사람입니다. 먼저 보내서 궁핍함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예비하는 좋은 일에 힘쓰기를 배우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구제하는 구제연보를 보내서 좋은 일에 힘쓰게 하라는 것입니다. 연보 하는 일, 구제 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구제 하는 일도 배우는 것입니다. 연보 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구제와 연보하는 일에 빠지면 배우지 못합니다. 빠지지 않고 모든 것을 자기 힘대로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5절에, “나와 함께 있는 자가 다 네게 문안하니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너도 문안하라 은혜가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항상 너희 무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은혜가 항상 있는데 그렇게 항상 있는 은혜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고기가 항상 물속에서 사는 것처럼 우리가 항상 있는 하나님 은혜 속에서 살아야 항상 평안하고, 항상 강건하고, 항상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항상 은혜 속에서 살기를 우리가 힘써야 되겠습니다.

디도서 2:1-15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라
디도서 2:1-15

1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2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 3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4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5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 6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7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8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9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10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11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5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말라

1. 늙은 남자에 대하여

본문 1절에,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라고 하였습니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라, 즉 성경에 합한 것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의 바른말을 해야 됩니다. 진리에 어긋난 말, 육신에 속한 말, 죄짓는 말,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바른 말 하기를 언제나 힘씁시다.

본문 2절에,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근신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케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남자는 몇 살부터라 하면 될까요? 60세나 65쯤 될 텐데, 그 나이 정도부터는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절제하라는 것은 끊을 것은 끊고, 안 할 것은 안하는 것이 절제입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돈도 절제하고 시간도 절제해야 됩니다. ‘경건하며’라고 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께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근신하며’라고 했습니다. 삼가 조심하여 잘 이겨나가는 생활을 하며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인내, 곧, 신, 망, 애(信, 望, 愛)함에 온전케 하여야 합니다.

2. 늙은 여자에 대하여

본문 3절에,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여자도 이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늙은 여자도 65세 이상은 그렇게 하면 됩니다. 늙은 여자는 첫째가 행실이 거룩해야 됩니다. 둘째는 ‘참소치 말라’ 는 것입니다. 다니면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늙은 여자들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말썽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남을 헐뜯어 말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다녀서는
안 됩니다. 또 처음 교회 나오는 이를 잘 사랑해야 되는데 쓸데없는 말로 시험에 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늙은 여자들은 가정에 시험든 사람이 있으면 잘 이기도록 잘 인도해야 되는데, 오히려 가서 더 책망하고 그 사람을 더 시험 들게 만들어서 교회 안 나오게 만드는 수가 있습니다. 늙은 여자들은 말을 조심해야 됩니다. 말을 많이 안해야 됩니다. 말에 덕이 있어야 됩니다. 말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텐데 왜 자꾸 말을 해서 다른 사람이 시험에 들게 만들고, 교회에 쓸데없는 말이 돌아가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많은 술에 종이 되지 말며’라고 하였는데, 술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 잔 먹어도 취하는 줄 알면 됩니다.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젊은 여자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습니다.

3. 젊은 여자에 대하여

본문 4-5절에, “저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늙은 여자는 젊은 여자를 잘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를 잘 교훈해서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게 하고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일을 하며 선하며 남편에게 복종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훼방받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젊은 여자들은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고 집안일을 잘 하며 남편을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젊은 여자들이 놀러 다니다가 마귀한테 걸려서 망하는 집이 많습니다. 놀러 다니지 마십시오. 계 모임 간다, 어디 놀러 간다하며 하면서 잡아먹는 짐승과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놀러 다니다가 꾀임을 받아 한번 넘어 가면 그 사람의 종이 되서 다 내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집안이 다 망합니다. 나가 돌아다니지 말고 자녀를 잘 돌보고 남편을 순종하고 집안일을 잘 하십시오. 젊은 여자들은 아들, 딸을 다 잘 길러야 됩니다. 아들만 잘 기르면 안 됩니다. 요새 주일학교에는 남자 아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주일학교 졸업생 중에 남자아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여자는 얼마 안 된답니다. 왜 여자가 적은지 알지요? 복중에 있을 때, 여자 남자를 감별해서 여자는 낙태를 합니다. 여자를 죽인 죄 값으로 지금 남자어린이가 많은 겁니다. 우리가 벌써 그 죄 값을 당하는 가운데 있습니다. 왜 여자아이를 낙태합니까? 그 죄 값을 하나님께 받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대로 낳아야지, 남자는 낳고 여자는 낙태하면 안 됩니다. 살인죄입니다. 회개해야 됩니다. 성경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만 낳습니까? 그게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입니까? 두 사람이 하나 낳으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그 아이 하나 죽으면 또 끝장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했으니까 많이 낳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자녀들이 많은 집은 부모님 세상 떠났을 때, 아들, 딸들이 상가(喪家)에 많이 와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집안일을 잘 돌봐야지 밖에 돌아다니면 바람이 들어 갑니다.

4. 젊은 남자에 대하여

본문 6절에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권면하여 근신하게 하되” 라고 하였습니다. 한문 고전에 젊은 사람은 정욕을 경계하고, 늙은 사람은 욕심을 경계하고, 청년들은 싸움을 경계하라고 했습니다.
근신은 자유 방종하지 않고 삼가 조심하며 절제함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절제하라고 했습니다. 행실을 바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혈기 왕성한 젊은 남자는 삼가 조심하여야 방탕하게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문 7-8절에,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 교훈의 부패치 아니함과 경건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가 모범된 생활을 해서 젊은 남자들에게 본을 잘 보여 충성된 사람은 신학교 보내서 교훈을 빛나게 하라고 했습니다.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성경 말씀대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언행심사를 삼가야만이 대적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교를 훼방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건생활을 함으로서 복음이 잘 전파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5. 종에 대하여

본문 9-10절에, “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입니다. 직장에 나가서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다 이 도를 지켜야 합니다.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은 상전에게 순종하고 윗사람에게 거스려 말하지 말아야 합니다. ‘떼어먹지 말고’라고 했는데 조금씩 떼어 먹는 모양입니다. 조금씩 떼어 먹는다고 해서 잘 살지 않습니다. 떼어 먹으면 죄만 짓고 나중에는 다 탄로가 납니다. 한 입도 떼어 먹지 말고 그대로 심부름해야 합니다. 종의 일을 잘 보면 하나님의 교훈이 빛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종의 일을 잘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교훈이 빛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요셉을 귀하게 여겨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다음에 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6. 모든 사람에 대하여
 
본문 11-13절에,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나서 우리를 양육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두 가지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경건치 아니한 것.’ 곧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하나님 앞에 경건치 않은 모든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세상정욕’. 이 두 가지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근신함과 경건함과 의로움으로 세상을 살라고 했습니다. 
 
본문 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일은 하나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열심 있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고 건져냈다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에,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업신여김을 받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고 말씀대로만 항상 나가면 업신여김을 받지 않습니다.

디도서 1:1-16 교회를 바로 세우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바로 세우라
디도서 1:1-16

1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4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5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6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7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8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9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 10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 12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 13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14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16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 사도 임무와 축복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 이 세 가지를 위해서 하나님이 자기를 사도로 세웠다고 했습니다. 첫째, 택하신 자들의 믿음, 곧 택하신 자들에게 믿음을 전하기 위해서 사도로 세워졌고 둘째, 믿는 사람들의 경건에 속한 진리의 지식, 곧 하나님께 바로 사는 진리의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세워진 것이며 셋째,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 세워졌다고 했습니다.
영생의 소망을 위하여 즉,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이 영생이고, 또한 중생한 영혼이 날마다 살아 나가는 것도 영생인데, 중생한 영을 날마다 살려 나가는 그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사도로 세웠다고 했습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시고 진실하신 하나님입니다.

본문 3절에,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때는 예수의 초림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친히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도로서 나타내셨고, 하나님의 명령에 의하여 바울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기신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맡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맡겨졌습니다. 사도바울도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았고,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본문 4절에,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디도는 믿음의 아들입니다. 디도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축복했습니다. 은혜의 결과가 평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면 항상 평강이 있습니다. 

2. 감독 자격
본문 5절에,“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고 하였습니다.

그레데라는 지방에 디도를 떨어뜨렸다고 했습니다. 그 곳에 교회를 세웠는데 그 교회를 위하여 떨어뜨려두었다는 것입니다. 디도를 그레데 지방에 떨어뜨려서 교회를 돌보게 한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볼 때에, 교회는 부족한 일을 바로 잡는 일이 중요하고, 장로를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지상 교회는 언제나 완전한 교회가 아닙니다. 항상 마귀가 부지런히 지상교회를 혼란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만듭니다. 이와 같이 지상교회는 마귀가 계속 시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계속 너는 부족한 것이 들어 올 때에 바로 잡으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부족한 것이 들어오게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장로들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교회에 온전치 못한 것들이 항상 들어옵니다. 그래서 바로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 교회의 증표가 세 가지인데, 첫째는 하나님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둘째는 성례를 거행하고, 셋째는 권징을 부지런히 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라고 했습니다. 권징은 잘못된 것을 징계하는 것입니다. 지상교회는 마귀가 혼란스럽게 하려고 계속 부족한 것을 집어넣고, 마귀가 들어오고, 사
이비한 것이 들어오고, 여러 가지 불순분자도 들어오고, 비진리도 들어옵니다. 그것을 바로 세우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교회에 늘 온전치 못한 것들이 들어와 생기는데, 그것들을 바로 세우지 않으면 참 교회가 유지되지 못합니다. 온통 다 무너지고 맙니다. 언제나 마귀가 들어오고 시험하고 어지럽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교회를 바로 세우고, 계속해서 권징함으로서 마귀의 역사를 제거하고 성결을 보전해야 합니다. 성결을 보전하지 못하면 썩어지고 부패하고 맙니다. 각
성에 장로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장로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교훈장로와 치리장로가 있습니다. 

교훈 장로는 교역자(목사)를 말합니다. 치리 장로는 목사를 보조해서 치리하는 것입니다. 참 종, 하나님 앞에 바로 된 종 교역자도 세우고, 하나님께 바로 된 장로를 세워야 됩니다. 충성된 종, 교회를 자기 생명보다도 더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희생하고 교회를 잘 인도할 수 있는 그런 종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본문 6절에,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찌라”고 하였습니다.
교역자나 장로의 자격은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자라야 합니다.

본문 7절에,“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교역자입니다. 교역자도 장로이고, 치리 장로도 장로입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교역자가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됩니다. 장로들도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 됩니다. 교역자나 장로가 급히 분내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한다는 것은 술을 조금은 먹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성경말씀도 있는데, 술은 한 잔에도 취합니다. 한 잔에 안 취하면 백 잔도 안 취합니다. 백 잔도 한 잔부터 취하여 올라갔기 때문에 한잔부터라도 절대 술은 먹지 않아야 합니다. 술 먹는 장로, 술 먹는 목사, 이것은 다 치리감입니다. 징계해야 합니다. 목사나 장로가 술 마시면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구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때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그거 괜찮을까요? 안 됩니다. 때리지 않아야 됩니다. 또 아내에게 매 맞는 목사도 있답니다. 아내에게 매 맞고 강단에 서면 사람 구실하겠습니까? 아내를 때리지도, 또 아내에게 매 맡지도 말아야 합니다. 힘이 없는 사람은 맞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뚱뚱하고 힘이 센데, 남편 목사는 약해서 가끔 부인에게 매를 얻어맞곤 한답니다. 그래서는 사람 구실 못합니다. 맞지 않아야 됩니다. 맞는 사람 있으면 나한테 오십시오. 안 맞는 방법이 다 있습니다. 하루는 내가 가는 목욕탕에서 구두 닦는 영감이 화가 나서 욕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욕을 하냐고 하니까 젊은 녀석이 자기를 보고 인사를 안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인사 받는 방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방법대로 해서 인사를 받아야지 욕한다고 인사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게 뭐냐고 하기에, 인사하게 하는 방법은 내가 먼저 인사를 자꾸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매일 해 보십시오. 그러면 상대방이 나중에는 먼저 인사 할 것이라고 했더니 좋은 것 배웠다고 하면서, 그저 인사 안 한다고만 욕했지, 인사 받는 방법을 미처 몰랐다고 합니다. 인사 안 하는 사람 있으면 먼저 하면 됩니다. 한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열 번, 스무 번 계속하면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나중에는 염치없어서라도 인사 못 받습니다.
먼저 인사하려고 결심하고 있다가 멀리서 상대방이 오는 것을 보면 먼저 인사 합니다. 난 인사 안하는 사람 있으면 그 방법으로 합니다. 그래서 인사 다 받습니다. 어디 가나 다 받습니다. 인사 안 한다고 섭섭할 게 뭡니까?

본문 8절에,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하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나그네 대접을 잘 해야 됩니다. 근신하는 것은 자기를 잘 이기는 생활입니다.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의로운 길을 날마다 걸어가야 됩니다.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절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스려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독은 성경말씀을 자기가 먼저 지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먼저 지키면서 가르쳐야 됩니다. 감독은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바른 교훈으로 잘 권면하여, 바로서지 못한 사람을 바로 세우고, 그 사람이 권면을 잘 받도록 해야 합니다. 거스려 말하는 사람을 책망해서 바른대로 인도하는 것이 감독의 책임입니다.

3. 교회 전복
교회를 전복하는 세력의 입을 막으라

본문 10절에,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교회 안에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특히 할례당 가운데 이러한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헛된 말, 성경에 없는 말을 하고, 속이는 자가 많이 교회에 들어 왔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본문에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고 했는데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못된 것을 가르치는 사람,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치는 사람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열린 예배’를 가르치는 것과 같이 교회를 속화시키는 자들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Rick Warren의 ‘목적이 이끄는 교회’, ‘커뮤니티 처어치’의 입을 막으라는 것입니다. 이미 내려오던 전통적인 교회를 다 뒤집어엎겠다는 것이 Rick Warren의 주장입니다. 전통적인 교회를 그냥 두면 안 되고, 다 뒤집어엎어야 된다는 그런 사람의 입을 막아서 절대 강단에 세우면 안 되고 그런 사람이 가르치는데 따라 다니면 안 됩니다. 그들은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사람들입니다. 또 젊은 사람들을 모아 ’아름다운 이들의 모임’ 이라는 감상적인 교회 이름을 붙여 놓고, 모여서 세상 음악가가 와서 공연하고, 세상 연극하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구경꾼이 많이 모였지 그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교인이 좀 있겠지만, 가라지가 다 들어오면 곡식이 다 시들어지고 메말라서 곡식 구실을 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또 무슨 짓을 해서라도 그저 교회에 사람만 많이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세상에 개방하여 세상 사람들이 들어오면 그것을 교인이 들어오는 줄 아는 것입니다. 세상과 더불어 타협해서 세상이 들어오게 만들고, 교회가 세상으로 나가게 만들고, 각종 세상의 노랫가락으로 만든 복음성가로 교회를 세상놀이터를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요, 기도하는 집인데 세상 유행, 세상의 노랫소리들을 들여놓아 놀이터를 만들어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린 것이 아닙니까? 온통 무너졌습니다. 새로운 신조어들은 말은 그럴 듯 하면서도 그 말에 포함된 여러 가지 악사상이 들어오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동체’란 말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다른 것이 함께 들어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들어오려니까 그냥 들어 올 수 없잖습니까? ‘공동체’라는 이름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교회’도 나쁜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적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목적이 성경이면 괜찮은데, ‘목적이 이끄는 교회’라고 겉으로 말하면서 사실은 성경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기성교회를 다 뒤집어 엎어놓고, 예배의식 다 뒤집어 엎어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통 다 집들을 엎드러뜨리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 계실 때에는 신사참배 선전하는 사람들이 합당치 않은 이익을 취하고 교회를 온통 엎드러뜨렸는데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신신학사상, 세상사상이 다 들어와서 집들을 온통 어지럽힌다는 말입니다.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저들의 입을 막아야 됩니다. 가만히 두면 교회가 다 온통 무너집니다. 전복됩니다. 집들을 온통 어지럽히는 자들의 입을 막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막으면 참 교회가 되고 이것을 막지 못하면 음란한 교회가 됩니다. 부족한 것을 바로잡고 좋은 교역자와 좋은 장로를 세워야 합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게 할 이런 장로, 교역자를 세우면 안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진리를 깨달은 사람, 진리에 서는 사람, 그런 사람을 교역자로 세우고 장로로 세워야 됩니다. 

교회를 전복하는 세력을 막으라

집들을 온통 엎드러친다고 했는데 집은 교회를 뜻합니다. 어느 시대나 마귀는 하나님의 교회를 온통 엎드러치는 역사를 계속합니다. 말세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하나님의 교회를 온통 혼란스럽게 하고 전복시킵니다. 세상 국가도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이용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는 교회를 일본 정치의 이용물로 삼아서 교회로 하여금 신사참배하게 하고 교회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게 하였습니다. 교회의 종을 다 떼어가서 그것으로 전쟁 무기를 만들었습니다. 찬송가도 고쳐 부르게 하였는데,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라는 구절도 다 고쳐 부르게 했습니다. 성경은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이고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꾸며 쓴 것이라고 하면서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교회들을 온통 엎드러쳤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이 말씀을 가지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할 때에 목사들 가운데 하루에 백 원씩 일본정부로부터 받으면서 “신사참배를 해도 죄가 아니다, 괜찮다”고 돌아다니면서 강연하며 신사참배를 시키는 목사들이 있었습니다. 하루 백원이면 요새 월급으로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합니다. 학교 선생님이 그 당시에 약 이십 원 정도 받았습니다. 몇 달 월급에 해당하는 그 돈을 목사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받으면서 신사참배가 죄가 아니라고 강연하고 다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기선 목사님이 이 말씀을 적용해서 말씀하시기를 목사들이 헛된 말로 속이고,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여 집들을 온통 더럽혔다는 것 입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고 파멸 시켰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은 해방 후에 이북에서 정권을 잡은 뒤 공산정치를 해서 온통 집(교회)들을 엎드러치게 했습니다. 김일성은 이북에서 1946년 자기의 외삼촌인 강량욱 목사를 통해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조직하여 위원장을 맡긴 후 북한의 교회들을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시켜 그들이 인도하는 대로 교회를 움직였습니다. 주일날인 1948년 8월15일에는 북한이 태극기를 사용하다가, 요새 사용하는 붉은 깃발로 고치고 그 경축대회를 하기로 하고, 주일에 모든 교회는 경축대회 할 장소로 모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런 것이 교회들을 온통 다 엎드러치는 것입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을 이용하여 교회를 공산주의의 어용기관으로 다 만들어 놓고,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교회는 다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때, 6.25사변이 발발하는 바람에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만일 6.25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은 전부 감옥에 갇히고 죽었을 것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는 마귀가 강제로는 교회를 엎드러치게 하지 못하겠으니까 다른 방법으로 교회에 침투합니다. 세속주의, 인본주의 그리고 여러 가지 그릇된 사상, 열린 예배, 신신학 사상, 신비주의사상, 공동체 교회 등으로 위장하여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 온통 엎드러치게 합니다. 신비주의 교회가 성령을 따라가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들이 꿈꾼 것과 계시 받았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교회입니다. 이런 것이 집 즉, 교회가 다 무너진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신신학자가 있
습니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신신학자, 내세를 부인하는 신신학자, 예수님의 부활을 부인하는 신신학자, 이 세상을 잘 만드는 것이 천국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사상, 가난한 사람, 억압 된 자들을 해방 시켜주는 것이 예수님의 정신이라는 해방신학자 등이 교회를 온통 다 뒤집어엎어 놓았습니다. 신신학은 교회를 다 뒤집어 엎어놓는 신학사상입니다. 엎드러치게 만들어 놓는 사상입니다. 그릇된 신비주의 교회도 다 마귀가 엎드러친 교회입니다. 요즈음 여러 가지로 성경에 합당치않은 방법들이 교회 안에 많이 들어 와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인본주의 방법이 많이 들어옵니다. 교회가 부흥된다고만 하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여 결국은 교회를 완전히 엎드러치게 하는 가운데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엎드러치는 것은 분별하지 못하면서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왜정시대에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교회가 다 엎드러쳤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나가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교회가 다 온통 전복되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행위로는 하나님을 배반한 자라고 했습니다. 행위가 성경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참 교회는 성경을 바르게 가르치고, 성례를 행하고, 권징을 부지런히 행한다고 했습니다. ‘권징을 부지런히 행한다’는 것은 부지런히 불순사상, 불순세력과 같은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불순사상, 불순세력과 같은 것들을 막아야 합니다. 이런 것들을 막지 못하면 참 교회가 아닙니다.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오늘날에도 마땅치 않은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 일이 없습니까? 오늘날도 교회 안에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 왔습니다. ‘목적을 위한 삶’ 이라는 책이 인기가 있는데, 그것은 미국 LA의 릭 워렌(Rick Warren) 목사의 사상입니다. 자기가 목적을 하나 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교인들 전체가 다 그것을 위해서 삽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늘 바뀔 수 있습니다. 성경이 목적이라면 성경을 위한 삶을 살기에 목적이 바뀌지 않아야 할텐데, 자기가 목적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것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목적이 우상입니다. 목적이 교회 부흥이라고 하면 전부 다 그것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지 않아도, 성경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여도, 목사, 장로도 그것을 위해 살고 설교도 그것을 위해서 하고 주일학교도 그것을 위해서 하게 되는데, 그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목적이 우상이 되는 것 아닙니까? 성경에서 탈선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 무슨 이익을 위해서 산다고 했습니까? 더러운 이익, 다른 번역에는 부당한 이익이라고 했는데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게 하는 것입니다. 벌써 목적을 위해서 살면 집이 다 무너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하고, 또 성경을 바로 순종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목적에 순종을 하는 입니다. 그 교인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목적에 맞춰서 설교하고 그 목적에 맞추려고 모든 것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조직이나 설교나 교훈이나 전부 그 목적을 위해서 해 나가는 것입니다. 집들이 온통 다 무너진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집이 아닙니다. 자기네 목적을 위한 집입니다. 이 시대에 엎드러치게 하는 걸 막아야 할 텐데 우리에게 막을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온통 다 무너집니다. 막는 사람들이 있어야 됩니다. 또 Rick Warren이 말하는 ‘목적이 이끄는 교회’도 성경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끄는 교회로 해야지
왜 목적이 이끄는 교회입니까? 또 ‘목장 운동’, ‘셀 운동’ 등은, 교인들이 목장이고 목장마다 목자가 하나씩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학 공부도 하지 않은 사람을 목자로 세워서 다른 사람을 가르치게 합니다.
신학도 안 했는데 어떻게 바른 진리를 가르칩니까?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전도만 하면 자기가 목자가 되서 그 전도 받은 사람을 가르칩니다.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 교회를 전복시키는 각종 역사가 교회 안으로 많이 들어왔습니다. 또 ‘성령운동’같은 것은 성령을 단 번에 받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으로 받아야 된다고 하면서, 오순절 성령을 받아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한국교회에 이런 신비주의 운동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건전한 가르침들이 아닙니다. 

또 요즘 ‘Community Church’(공동체교회)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열린 예배를 합니다. 열린 예배가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고 있습니다. 교회를 다 전복시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온통 엎드러치고 있는 가운데 열린예배가 더욱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열린예배가 도입되지 않는 교회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우리교단 교회에도 들어오려고 합니다. 열린 예배는 예배당의 강단을 다 없애거나, 낮추어 무대처럼 넓게 만들어 춤추고 노래하는 공연을 합니다. 강단은 성경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초대교회에도 사도요한이 구십 세가 넘어 부축을 받아 올라가 “소자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할 때에 온 교인이 은혜 받았다는 것을 보면 그 때에도 강단이 있었고, 강단에 올라서서 하나님 말씀 전한 것이 분명합니다. 초대교회 때부터 강단에서 전한 것입니다. 사도요한 때로부터 후에 루터, 칼빈이 종교 개혁 할 때도 모두 강단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칼빈이 있었던 교회가 있답니다. 강단이 다 있다고 합니다. 한국교회도 처음부터 강단이 모두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선교사들이 와서 교회를 세우고 강단을 꾸며 놓고 강대상 위에서 가르쳤습니다. 그 때는 예배당을 ‘ㄱ’ 글자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ㄱ’자로 지어서 한 쪽에는 여자 성도들이 앉고, 다른 한쪽에는 남자 성도들이 앉아서 여자, 남자는 서로 볼 수 없고, 강단에 교역자만 남, 녀성도들을 다 볼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사도요한 때부터 강단과 강대상이 있었는데 요새 와서 다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온통 집들을 엎드러뜨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세워야 됩니다. 바로 세우지 못하면 참 교회가 다 없어집니다. 

에스겔 30-31절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못한 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다가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 성을 보호해 준다고 했습니다. 찾지 못하면 그 분노로 하나님이 그 행위대로 징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이 온통 다 무너졌는데 무너진 데 서서 막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막는 세력이 되어야 됩니다. 부족하지만 막는 세력 가운데 우리가 참여해야 되겠습니다. 성 무너진 데를 막아야 합니다. 한국에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이 어딘가에 또 있을 것입니다. 사방에서 성 무너진 데를 막아야 됩니다. 우리교단에서 물론 막아야 되고 우리교단이 아니라도 성 무너진 데를 막는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참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이 나와야 됩니다. 지금 성이 온통 다 무너졌습니다. 통합측, 합동측 온통 다 여기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고려파도 들어갔습니다. 부산 백영희 목사님이 살아 계셨으면 잘 막았을텐데 세상 떠난 다음에 그 후계자들이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정신 못 차린 증거가 뭐냐 하면 백영희 목사의 비디오설교를 보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주일날도 예배 끝난 다음에 그렇게 하고 사경회 때에도 그것을 틀어 놓고 한답니다. 그분들도 5월 사경회를 우리 교단과 같이 하는데 물어 보면 비디오 틀어놓고 사경회 한다는 것입니다. 백영희 목사가 세상 떠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백 목사의 비디오를 보며 설교를 듣는다는 말입니다. 정신이 없습니다. 

그래도 어디가 무너지든 막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막아야 됩니다. 막는 사람이 있는가 하나님이 찾아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찾아보시다가 아! 여기 있다, 아! 저기 있다 하며 찾으시면 그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참 교회를 세워나가야 됩니다. 온통 무너져 들어오는데 열린 예배를 들여온 교회가 지금 절반이 넘습니다. 조금 있으면 자꾸 많아 질 것입니다. 그거 안하면 교인 다 빼앗기고 교회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부당한 이익을 위해서 집들을 다 무너뜨린다고 안 그랬습니까? 이것을 막는 세력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왜정 시대 때는 일본이 교회를 어용기관으로 삼아 자기들의 이용물로 삼는 것을 막는 것이 사명이었습니다. 또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일본 정치를 위해서 교회를 이용 하려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순교당하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까? 해방 이후에는 조선기독교도연맹을 막는 것이 무너진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조선기독교도연맹에 김익두 목사도 넘어갔습니다. 김익두 목사가 얼마나 유명하신 분입니까? 김익두 목사가 정주읍 교회에서 설교할 때에, 조선기독교도연맹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설교하다가 교도연맹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그런 설교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김익두 목사까지 앞장서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미국의 신신학 사상이 들어왔습니다. 프리스턴에서 신학을 하고 온 목사들을 말하는데, 한경직 목사도 거기 감염되어 통합측 신신학 목사하고 손잡고 나가지 않았습니까? 또한 박형룡 목사를 신신학으로 넘어가게 하기 위해,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박형룡 목사를 유럽으로 여행을 보내주었답니다. 가서 유럽에 있는 교회들을 한번 보고 오라는 것이었는데, 그때 유럽교회들은 전부 좌경화되어 있었습니다. 박형룡 목사가 유럽에 다녀와서 하는 말이 “제네바에 가니까 칼빈이 세운교회가 있었는데 거기 신신학자가 강단에 선 것을 보고 아주 원통했다”는 말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북 장로교회 선교사들이 이 사람은 머리가 돌 같은 사람이고, 희망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박형룡 목사를 아예 희망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통합측과 합동측이 갈라진 것입니다. 집들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목사들이 무너지지 않아야 됩니다. WCC와 KNCC의 에큐메니컬 운동이 전부 집들을 무너뜨리는 신신학 운동입니다. 지금까지는 고려파가 조금 나았었는데, 근래에는 고려파에도 신신학 사상이 들어왔고 우리교단에도 들어오려고 할 것입니다. 마귀인데 왜 안 들어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부지런히 막는 것이 중요 합니다. 막으면 우리 백성도 살 것입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다 망하고 맙니다. 

본문 12절에, “그레데인 중에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 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을 물 먹듯 하는 사람들인데, 죄를 죄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거짓말입니다. 양 잡으러 들어오는 악한 짐승같다는 말입니다.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 즉 자기 먹을 것만 아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4. 진리를 배반한 자
진리를 배반한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

본문 13-14절에, “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 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왜 받아들이는지 아십니까?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속적으로 부흥시키려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들을 엄히 꾸짖어서 믿음을 온전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을 배반한 자들입니다.
세상이 교회에 들어오게 한 자들을 엄히 꾸짖어서 교인들의 믿음을 온전케 하여야 합니다.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한자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교회를 세워 나가야 됩니다. 참 교회는 성경 말씀을 바로 가르치는 교회입니다. 성례를 거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권징을 부지런히 행하는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교회에 잘못 된 것이 들어 올 수 있습니다. 마귀가 계속 불순분자들을 교회에 넣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부지런히 제거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교회 성결이 보장됩니다. 이런 것을 조금이라도 교회가 용납하면 온통 교회가 다 엎어집니다. 용납하지 말고 엄히 꾸짖어 바로 세워야 합니다. 바로 세워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는 것을 한국교회에 선포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것은 안 된다’고 선포해 나가면 잘못된 길로 넘어갔던 교회도 정신 차리고 돌아올지 모릅니다. 요즈음 많은 교회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열린 예배를 하면서 다 춤추고 난리가 났습니다. 중국에도 그렇답니다. 많은 중국교회도 혼란한 가운데 빠져 있습니다. 악기를 사 놓고 예배 시간에 춤추고 노래하는 혼란한 가운데 빠져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학교에서 배운 전도사들은 성경대로 그대로 한다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미혹을 받아서 온통 빠져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가르치면 교회가 잘 안 된다고 하는데, 교회를 하나님이 되게 하는 것이지 인본주의로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는 곳이 교회란 말입니까? 성경을 가르쳐서 예수를 믿고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사람만 많이 모이게 하려는 욕심으로 더러운 이를 취하고 집들을 온통 무너뜨리는 이 시대가 되었는데, 잘 싸우고 엄히 꾸짖어 성결을 보존하고, 참 교회를 보존해 나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저희 입을 막아라. 또 엄히 꾸짖으라. 이렇게 해야 교회가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려고 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다 있습니다.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이걸 막아야지 막지 못하면 다 틀린 것입니다. 주일날을 철저하게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되고 성경대로 바로 세워나가는 교회가 되어야 됩니다. 교회가 인본주의를 쓰면 무너집니다. 우리 신학교인 계약신학대학원대학교에 천만 원을 낼 테니 졸업장을 하나 해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천만원도 내라면 낼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인데, 할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몇 억, 백 억을 줘도 우리는 못한다, 신학교를 다녀야 졸업장을 타지 안다녔는데 어떻게 졸업장을 주겠느냐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도 마귀가 돈을 미끼로 삼아 살살 교회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단호하게 거부해 놓았습니다. 아마 그때 천만 원 받고 졸업장을 해줬으면 그런 사람 몇은 더 왔을 것입니다. 한 열 명만 오면 일 억원을 버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면 값을 또 올려 받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신학교를 못하면 못했지 그런 것은 안 한다, 바른신학을 하고자 하고, 바른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지, 우리 신학교는 그렇게 돈이나 받고 하는 학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 우리 신학교에서 자격 없는 사람을 합격시켰다고 비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학원은 교육부 인가 받은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만 입학 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야간신학교에서 공부를 한 것도 대학에서 공부한 것으로 인정합니다. 야간신학교 4년 공부하고 졸업한 사람은 대학졸업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간 신학교는 교육부인가를 받은 학교가 아니기에 정식 대학과정으로는 인정을 안 해 줍니다. 그래서 교육부 인가 받은 다른 대학교에 편입을 해서 졸업장을 받아오면 우리 대학원 입학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야간 신학교점수를 인정해 주는 교육부 인가 받은 대학교가 있는데, 교육부 인가가 된 그 대학교에서 일 년이나, 이년간 공부해서 정식 졸업장을 가지고 오면 우리 신학대학원에서 받아줬습니다. 신학교 4년 졸업하고 다른 학교에 편입해서 졸업해서 받아 주었는데 비방이 들어 왔습니다.
어중이, 떠중이 다 합격시켜 주었다고 말입니다. 우리 야간 신학교 졸업한 사람이 어중이, 떠중이입니까? 자기도 우리 야간 신학교 졸업하고 목사가 된 사람인데, 그렇다면 자기도 어중이, 떠중이 아닙니까? 비방 하는 사람들이 다 비슷합니다. 걸고 넘어지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믿고 같이 넘어가는 사람도 같은 사람입니다. 마귀의 종이 그런 말을 하고 그런 투서도 하는데 그것을 믿고 의아해하는 것은 마귀가 속에 들어 간 것입니다. “사탄아 물러가라!!”하고 아주 쏙 빼버려야 되는데 싹 빼 내지 못하고 의아해하면서 같이 어울려 돌아가면 같은 마귀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바른 교회, 바른 신학교를 해야 합니다. 온통 엎드러치는 것을 막고 입을 막고 엄히 꾸짖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고 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중생한 영과 신앙 양심을 따라 사는 자는 깨끗한 자요 또 모든 면에 깨끗하지만, 더럽고 믿지 아니한 자들은 마음과 양심이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더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도 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 하나님이 미워하는 자입니다. 행위로 어떻게 부인합니까? 열린 예배 등 각종 잘못된 것들이 들어와서 춤추고 돌아가니 이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까? 행위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버리고 자기 주장과 자기 목적을 달성 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온통 다 무너집니다. 여기서 바른 교회를 세워 나가는 일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날 이러한 잘못된 것들이 계속 들어오는데 우리 교단에도 들어 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단단히 경계를 서서 막아야 합니다. 막지 않으면 다 무너집니다. 다 무너지면 다 망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참 교회를 보고 그 민족을 지켜줍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만 됩니다. 금년에 대통령 선거하는 해인데 참 교회를 보고 하나님이 좋은 대통령을 세워주실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예루살렘을 멸망치 않게 해 주시겠다고 하시고, 소돔과 고모라에서 열 사람의 의인이 있으면 멸망치 않으시겠다고 하신 것처럼, 우리가 바로 서면 하나님께서 좋은 대통령을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서지 못하면 온통 다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뭘 도와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될지 모릅니다. 잘못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다 망하고 그르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교회, 공의를 구하고 진리를 찾는 사람,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 교회를 세워 나가는 교회와 같은 이런 교회와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도 바로 세워 주실 것입니다. 교회들이 온통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한심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바로 서면 우리나라도 희망이 있습니다. 
 
경건한 예배당을 놀이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집들을 무너뜨리는 역사, 신신학, 열린 예배, 신비주의, 세속주의, 인본주의 이런 것들이 온통 집들을 엎드러치게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막아야 합니다.
이것들을 막으면 우리 교회도 바로 되고 우리나라도 삽니다. 바로 해야 됩니다. 성경 복종치 않고 자기 목적을 따라 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주를 위해서 살고 성경 따라 살아야지 목적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 다 무슨 일인가 이 말입니다. 이것을 막아야 합니다. 막으면 성공이고 막지 못하면 다 실패하고 맙니다. 우리도 나라도 다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명감을 가지고 잘 막아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9-22 바울의 말년의 상황.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말년의 상황
디모데후서 4:9-22

9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11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13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14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 15너도 저를 주의하라 저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 16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17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18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19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1. 바울의 말년의 상황

누가만 바울과 함께 있음

본문 9-11절에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디모데를 속히 오라고 하였습니다. 왜 오라고 하였는가? 하면, 바울을 도우며 바울과 함께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고 다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왜 바울을 버리고 떠나갔습니까? 세상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진리를 많이 배워도 진리의 신앙에 이르지 못하고 언젠가는 세상으로 나갑니다. 하여간 데마도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도 갈라디아로 갔고,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습니다. 바울을 다 떠나가고 누가만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했고,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또 올 때에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일시라도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음

본문 16절에,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바울과 같이 일하던 사람들이 바울을 버리고 다 갔습니다. 또 빌립보서 2:21에 “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처음에 바울과 같이 복음을 변명했지만,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했기 때문에 바울을 버리고 다 갔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말년에 바울과 같이 일하던 동역자들이 다 떨어져 나갔습니다. 다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일을 구하다가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간 것 같습니다. 바울이 좁은 길을 걸어 갈 때에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같이 나가다가 바울이 끝까지 좁은 길을 걸어가니까, 다 떠난 것 같습니다. 바울은 비진리와 조금도 타협하지 않고,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 떠난 것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2:5에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비진리는 일시라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일시라도 비진리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울이 좁은 길을 끝까지 간 것 같습니다.
또 갈라디아서 6:12-14에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로 할례 받게 함은 저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하여 핍박을 면하려 함뿐이라 할례 받은 저희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로 할례 받게 하려 하는 것은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세상을 못 박았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바울을 못쓰겠다고 못 박아 놓았고, 바울은 세상을 못쓰겠다고 못 박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의 신앙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만 세워나간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즉 바울의 신앙의 길은 처음부터 좁은 길인데, 다른 사람들이 와서 좀 넓게 나가자, 할 때에 바울이 넓히지 않으니까 떨어져 나간 것 같습니다. “좀더 용납하고 나가자”고 할 때에 바울은 일시라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 같이 나갔던 데마는 데살로니가로,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마지막에 바울과 같이 있었습니다. 즉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에 누가만 같이 있었습니다.

본문 11절에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 하는데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마가는 형편없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1차 전도 여행 할 때에 고생이 심하니까 밤빌리아에서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손해를 많이 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안 갔으면 괜찮았을 텐데, 바울과 바나바와 같이 갔다가 어려움이 오니까 바울과 바나바를 버리고 돌아간 것은 배신자와 같습니다. 그 다음에 2차 전도 때에는 바울이 마가를 안 데리고 갔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했으나 바울은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해서, 마가로 인해 바울과 바나바가 심히 다투어 갈라졌습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대 사도인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 문제 때문에 갈라졌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마가는 배신자이고, 사고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말년에 가서는 그 형편없는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형편없는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을 보면 바울을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누가만 바울과 같이 있고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오라고 한 것입니다.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형편없는 ‘마가’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믿음에 바로 서니까 바울이 마가를 쓰려고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에게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져오라고 함

본문 12-13절에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습니다.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의 형편이 말년에 가서 비참한 것 같습니다. 유력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은 다 떠났고, 마가 같은 사람이라도 데려다가 좀 쓰려고 데려오라고 하였고, 의복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누구 하나 옷 해주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겨울이 점점 다가오므로 겨울에 입을 겉옷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년에 겉옷을 지어다주는 사람도 없이 옥중에서 육신적으로 쓸쓸하고 외롭게 보낸 것 같습니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그것은 가죽 종이에 쓴 원본을 가져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을 계속하였습니다. 
바울이 이와 같은 고난 가운데 빠졌지만, 그래도 바울은 항상 자족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4:11-13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수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이 자족을 배웠습니다. 궁핍에 처할 때에, 배고플 때에, 비천해졌을 때, 외로워졌을 때 등 항상 자족을 배웠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이 능력 주시기 때문에, 그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항상 자족을 배우는 바울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또 항상 좁은 길을 걷는 바울의 신앙을 배워야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실패하는 게 아니라, 말씀만 있으면 대성공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도 성공이고, 외로워져도 성공입니다. 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 같아도, 도와줄 사람이 나옵니다. 마가는 형편없는 사람이었으나 회개하고 바로 서니까, 다시 바울에게 쓰임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마가가 전에는 사고나 치며, 배신한 배신자였지만, 이제 회개하고 바로 서니까 하나님이 쓰시고, 또 바울도 씁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형편없는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바로 서면 하나님이 쓰십니다.

바울이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하였는데, 회개하고 바로 선 마가는 하나님의 일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겨울이 오기 때문이고, 바울에게 지금 쓸 만한 사람이 없는데, 디모데가 와야 하나님의 일에 좀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 전에 속히 오라고 할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바울은 육신적으로 로마 옥중에서 겉옷하나 공궤해 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고독하게 지낸 것 같습니다.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이것은 원본 성경인 것 같습니다. 
성경은 원본에 맞는 성경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성경 원본은 없고 사본만 있는데, 그 사본을 보고 우리가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 교단이 속한 한국성경공회에서는 “바른 성경을 번역하자”고 결의하고, “바른 성경”을 번역하기 시작한지가 약 9년이 되었는데, 9년 동안 여러 교단과 여러 신학교 교수들이 매주 토요일에 20-30 명가량 모여서 토론하고, 번역하여 이제는 거의 다 마쳤습니다. 금년 8월 달에 바른 성경이 나올 예정입니다. 하여간, 바울이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고 한 것을 보면 바울이 원본을 보고서 성경을 연구한 것입니다. 우리도 바로 번역된 “바른 성경”이 나오면 그것을 보고, 성경을 바로 연구하여야 됩니다.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신구약 성경을 다 가죽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려면 한 구루마는 싣고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바른 성경을 사모하였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바울이 좁은 길을 걸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좁은 길을 걸으니까 다 달아날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2:21에는 처음에는 바울의 협력자로 나섰지만 다 자기 일을 구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바울과 같이 일 하다가 좀 어려워지니까 다 달아난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나보고 목사님이 살았을 때는 우리 교단이나 진리가 살아가지만, 목사님만 세상 떠나면 이제 다 자기 볼장 보려고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답변했는가 하면,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서 있기 때문에, 아무리 떨어져 나가도 견고한 터는 안 떨어져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견고한 터는 그냥 서 나갈 것이니까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이 있지, 다 자기 볼장 보려고 떼어 먹겠습니까? 교회를 떼어 먹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받습니다. 
하여간 바울은 무엇을 배웠습니까? 자족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자족을 배웠기 때문에 처음에 복음에 협력하며 같이 나가던 사람들이 떨어져 나갔어도 항상 만족한 것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은 나와 같이 하신다, 나는 진리를 위해서 살다가 진리를 위해서 죽는다”하며 혼자 나가도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복음을 끝까지 전하며 바로 나갔습니다. 이런 신앙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2. 바울을 강건케 하시고 건져내신 하나님

본문 17절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바울을 강건케 하신 목적은 이방인에게 전도하게 하시려고입니다. 하나님이 강건케 해주시는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라고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이것을 알고, 나를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복음을 이방인에게까지 전하여야겠습니다. 즉 전도하기에 힘을 쓰고, 또 선교와 교회 세우는 일에 협조하여야겠습니다.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고 하였는데,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자의 입과 같은 위험한 곳에서 바울을 건져 주셨다는 것입니다. 왜 건져 주셨습니까? 복음을 전하라고 건져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바울을 강건하게 해주시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겠으니까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강건케 해주어야 전도가 되겠으므로 강건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이 강건함을 가지고 육신의 기회를 삼지 말고,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아야 됩니다. 즉 기도하는데에 기회로 삼고, 말씀 연구하는데에 기회로 삼고, 또 신학생들을 기르는데에 기회로 삼고, 교회를 세우는데에 기회로 삼고, 선교사를 보내는데에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이런 기회를 삼으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강건하게 해주셨습니다. 

또 우리를 사자의 입에서 건져 주셨다고 했는데, 우리가 6.25때에 다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런데 건져주셔서 오늘날까지 강건케 해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하라고 건져 주신 것이며, 이방인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건져 주신 것입니다. 이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전하게 하려고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항상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강건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강건함을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좀더 힘쓰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8절에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셨다고 했습니다. 즉 사자의 입에서도 건져내셨고, 모든 악한 일에서도 건져내셨습니다. 또 악한 질병에서도 건져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님께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 것을 송축했습니다.

3. 문안축복

본문 19-21절에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렀고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겨울 전에 어서 오라는 것입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는 것은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바울을 잘 도와준 부부입니다.
“드로비모는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하였는데, 드로비모는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시에 함께한 자로서 드로아, 밀레도, 수리아, 예루살렘까지 함께 하였습니다(행 20:4, 21:29). 바울이 전에 드로비모가 병들었으므로 밀레도에 두고 전도 일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군대가 진군하다가 병든 자가 있으면 머물게 하고, 군대는 다시 진군하는 것과 같습니다. 드로비모가 병듦으로 밀레도에 두고 갔습니다. 이렇게 군대가 진군하다가 또 병든 사람이 있으면 거기다 두고, 계속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 때문에 복음 전파가 중단되면 안 됩니다. 신앙의 달음박질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사방으로 복음이 계속 전파되게 됩니다.

바울의 신앙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아무리 고립되고, 지금 도와주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계속 전진하여 나가는 것입니다. 또 강건케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고, 전진합니다.
 
본문 21절에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겨울 전에 오라는 것은 겨울 전에 와야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없겠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이 시기를 넘기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에 모든 것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22절에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심령은 중생한 영에게 이용되는 마음입니다. 즉 영의 역사가 있는 마음입니다. 은혜는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선물 전체가 다 은혜입니다. 성도가 은혜 속에서 살 때에 강건하고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7-8 바울의 신앙결산.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바울의 신앙결산
디모데후서 4:7-8

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1. 선한 싸움을 싸움

본문 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생동안 선한 싸움을 잘 싸웠습니다. 그리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는데, 달려갈 길이 멀지만 바울이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했는데, 바울이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웠다는 것은 이단, 율법주의, 신비주의, 비진리 운동 등과 바울이 잘 싸워서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진리를 어지럽게 하는 이단과 비진리의 역사가 많이 있는데, 그것들과 더불어 싸워야 됩니다. 싸우지 않으면 마귀에게 다 먹힙니다. 적은 누룩이 들어왔는데, 누룩을 제거하지 않으면, 전체가 다 부패하고 맙니다. 

요새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와서 말씀을 떠나 인본주의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그리스도의 속죄를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지 않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는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또 에큐메니컬 운동으로 진리가 혼탁해져 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신신학이 아니라고 하면서 신신학자들을 용납하고, 그들과 연합하고 나갑니다. 또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을 용납하고 나갑니다.
그릇된 신비주의자들은 “계시를 받았다, 꿈을 꾸었다, 천당에 갔다 왔다, 지옥에 갔다 왔다”하며 이런 것들을 믿는데 이것은 다 성경에서 떠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잘못된 교회가 세워지면 바른 교회를 더 많이 세워야 하고, 잘못된 성경이 나오면 바른 성경이 더 많이 나와야 하고, 잘못된 신학교가 생기면 바른 신학교가 더 많이 생겨 바른 진리를 증거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가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마귀들이 와서 전복시킵니다. 마귀의 역사는 교회를 부패시키고, 교회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계속 선한 싸움을 싸우면서 악한 마귀의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합니다. 참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사이비한 역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참 교회를 혼돈시키는 사이비한 것을 용납하면 안됩니다. 싸워서 제거 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가 바로 서 나갑니다. 사이비한 비진리 운동들과 타협하지 말고, 싸워서 계속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달려갈 길을 마침

그 다음에 바울이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하였는데, 바울은달려갈 길을 잘 마쳤습니다. 달려갈 길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나 혼자 예수 잘 믿다가 천당 가야겠다”는 생각은 썩은 생각이고, 죽은 신앙입니다.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나는 가만히 앉아서 예수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달려가라”고 하면 달려가는 게 믿음입니다. 사도행전 20:24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
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달려갈 길은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어디까지 전하려고 결심했는가 하면 로마에까지 전하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감옥에 갇혔던 내용이 기록이 되어있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바울이 다시 석방이 되어 서바나(스페인)까지 전도를 했다고 합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유대, 사마리아, 또 이방나라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바울의 달려갈 길입니다. 자기 집 근처에만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멀리까지, 즉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순종하며, 달려갈 길을 일생동안 잘 달려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즉 자기가 살고 있는 근처에만 복음을 전하지 말고, 좀 더 나가서 유대나라 전체에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즉 우리나라 전체, 더 나아가서 사마리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이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것을 다 하고 하나님 앞에 가야 됩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하겠는데, 땅끝이 어디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땅끝이 이슬람교권의 나라들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마호메트를 믿는 나라들이 땅끝이라고 합니다. 그런 나라에는 복음이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 사람들은 마호메트를 믿고,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래도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들이 많이 갔습니다. 아무리 반대해도 그곳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란, 이라크, 터키, 시리아, 아프카니스탄, 파키스탄 등의 나라들이 다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송완규 목사님이 선교하고 계신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도 마호메트를 믿는 이슬람교 나라입니다. 그래도 거기에 많은 선교사들이 가 있습니다. 복음을 반대하지만, 알바니아 같은 곳에도 선교사가 있고, 터키에도 가 있습니다. 
그러나 제일 교회가 안 들어 간 곳은 북한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였는데, 북한이 땅끝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복음이 안 들어간 곳에 전하라는 것입니다. 북한에 지금 교회가 없습니다. 자유롭게 복음이 들어갈 수도 없고, 교회가 세워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많이 세워 좋은 교역자들을 많이 양성하여 각처에 교회를 세우고, 그 다음에 북한에도 하나님이 복음의 문을 열어 주실 때에 복음을 전하여야 합니다.

앞으로 북한에도 복음의 문이 열릴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열리게 되면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북한에 복음의 문이 중국만큼 열리면 교회를 많이 세울 수 있습니다. 그 때를 위해서 지금 준비하며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신학교를 하는 것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할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또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보내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다 하여야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고 오라고 했는데, 복음을 조금만 전하고 하나님 앞에 가면 책망 받습니다.

예를 들어, 농사를 만평 하라고 했는데, 천평만 농사하고 구천 평은 황무지가 되게 했다면 주인이 책망할 게 아닙니까? “왜, 만평을 농사 하라고 주었는데 구천평은 어떻게 했느냐?”하며 책망합니다. 만평을 농사하라고 했으면 만평을 농사했어야 주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한 것입니다. 주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을 해야지, “천평만 하고 싶다”고 해서 천평만 농사 하면 안됩니다. 천평 농사 하는 것은 만평 농사하는 것 보다 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쉽다고 해서 자기 생각대로 하면 안되고, 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해야 책망을 받지 않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며 달려갈 길을 다 마쳤습니다.

믿음을 지킴

그 다음에 “믿음을 지켰으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은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일 믿음을 지켜야 되고, 사건마다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즉 모든 사건,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시험에 넘어가면 그것은 믿음을 안지키는 것입니다. 시험을 이겨야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매일, 매시간, 우리에게 닥치는 환경 속에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것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통과하면 그것은 믿음을 지킨 것이고, 말씀대로 통과하지 못했으면 믿음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에 대한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즉 일반적인 말씀을 지켜야 되는 반면에 자기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진리가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세리들이 세례 요한에게 와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하며 물어 볼 때에, 세례 요한이 정한 세 외에 더 받지 말라고 하였는데, 세리는 정한 세 외에 더 받지 않는 것이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군병들도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하며 물어 볼 때에 누가복음3:12-14절에,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였는데, 군병들은 강포하지 않고, 무소하지 않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아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지켜야 할 말씀이 다 있습니다.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믿음 지키는 게 다르고, 세리들이 믿음 지키는 게 다르고, 또 군인들의 믿음 지키는 게 다릅니다. 또 처한 환경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할까? 바로 순종할까?”를 잘 생각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일하기 싫은 사람은 “일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하고, 욕심이 많은 사람은 “욕심을 버리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싸우기 잘하는 사람은 “싸우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 되고, 분노하기를 잘하는 사람은 “화목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각자가 다 자기의 믿음을 지켜야 됩니다. 또 마귀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마귀의 시험
인데,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면 직장이 떨어지고, 환난이 온다고 해도 직장 떨어질 각오와 환난 받을 각오를 하며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이 다 살게 해주십니다. 공중의 새를 먹여 주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택한 자녀에게 먹을 것을 안주시겠냐고 하셨는데, 믿음만 지키면 하나님이 다 주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거기서 자기가 연단을 받으며,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즉 영이 자라나고 자기가 만들어 집니다. 믿음을 지키는 일은 달란트 장사를 잘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두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두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를 받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더 남기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달란트를 남기지 않고, 그냥 가져오는 것은 믿음을 지키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장사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투자해서 믿는 일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배나 남기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가라” 하면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면 니느웨로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다시스로 가라”고 하시면 다시스로 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면 고난이 오기 때문에 니느웨로 가지 않고 아무 곳으로 가서 전도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니느웨로 가서 전하라고 하시면 니느웨로 가서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니느웨는 앗수르의 수도로 유대 나라와 원수가 되어서 니느웨로 가면 환난이 올지 모르나, 그래도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갔다가 고기 뱃속에 들어 갔으나 회개할 때에 하나님이 요나를 고기 뱃속에서 나오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했는데,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할 때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예루살렘에 올라 가라” 할 때는 생명을 내어 놓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라고 할 때에, 떠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독자 이삭을 바쳐라”고 할 때에 독자 이삭을 바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풀무 불에 들어가라”고 하면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자굴에 넣는다고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단 6장).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생명이 살고, 영이 자라납니다. 많이 자라나고, 많이 만들어진 자가 하늘나라에 가면 받을 상급이 큽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각자에게 다 다르나, 하여간 복음을 땅끝까지 전할 사명은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다 같습니다. 또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이 다 같습니다.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라”고 하실 때에 가야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가야 믿음을 지키는 것이고, 또 뒤에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데, 뒤에서 도와주어야 할 사람은 뒤에서 도와주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전할 곳으로 가야 할 사람은 가야하고, 뒤에서 기도와 물질로 도와
줄 사람은 기도와 물질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엘리야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죽여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먹여 주시면서 일어나 호렙산에 가서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때에 엘리야가 호렙산에 가는 게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안가고 로뎀 나무 아래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그것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호렙산에 간 다음에는 그곳에서 세미한 소리를 듣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선지자가 되게 하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왕상 19:4-18). 믿음을 지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믿는 게 아니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 생명도 다 바쳐놓고, 물질도 다 바쳐 놓고, 자기의 모든 환경도 하나님께 다 바쳐 놓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얼마쯤 달음박질 하면 많이 나아지고, 자라납니다. 믿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몇 달만 있어도 쑥 올라가서 나아집니다. 장성한 자리에 이릅니다. 그러나 믿음을 안 지키는 사람은 밤낮 그 자리입니다.
믿음을 지키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려고 하지 않으면 자라나지 못합니다. 아무 진보가 없습니다. 계속 선한 싸움에 동참해야 하고, 믿음을 지키며,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가야 합니다. 바울이 계속 신앙의 달음박질을 할 때에 빌립보 교인들이 같이 참여했습니다. 

4. 의의 면류관이 예비됨

본문 8절에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라고 하였는데,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마치며, 믿음을 잘 지키면, 하늘나라에 가서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의의 면류관은 영광의 상급을 가리킵니다. 의의 면류관은 바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바울과 같이 선한 싸
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킨 모든 성도에게 주십니다.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주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므로 편벽됨이 없이 면류관 상급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즉 믿음을 지키지 못하여 책망 받을 사람은 책망을 받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을 잘 달려간 사람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교회에 외부적으로만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선한 싸움을 싸우는데 동참하여야겠습니다. 즉 비진리와 싸우고, 이단들과 싸우고, 마귀의 역사와 싸워서 이겨야겠습니다. 또 평소에 믿음을 잘 지켜 모든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하고, 말씀으로 통과 하여 승리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마땅히 지켜야 할 진리를 잘 지켜야겠습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잘 찾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찾
아서 그 뜻대로 순종하며 나가야겠습니다. 말씀으로 시험을 잘 이겨 나가며, 나의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바쳐놓고 나가는 신앙이어야 면류관 상급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주어진 면류관 상급이,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을 지켜 나가고, 달려갈 길을 다 가므로 주님 앞에 설 때에 면류관 상급을 받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디모데후서 4:1-5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디모데후서 4:1-5

1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5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1. 바른 말씀을 전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하나님이 이루어나가시는 일 가운데에,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 승리의 말씀, 이기고 또 이기는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1-5절에,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
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가서는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한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너는 바른 말씀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되면 교인들이 바른 교훈을 듣지 아니하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둡니다. 사욕에 맞는 말을 하면 다 좋아하고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가게 됩니다. 말세의 교회들이 그리해도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른 말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들이 부패해서 바른 말을 안 듣습니다. 오히려 허탄한 이야기를 좇아갑니다. 자기 귀에 즐거운 말만 좇아갑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타협하고, 인본주의 쓰고, 육체 중심으로 타락되어 갑니다. 세상주의, 육체주의, 향락주의로 젊은 사람들을 방탕하게 만들고, 잘못된 복음 성가를 부르게 하여 혼란하게 만들어 놓는, 이와 같은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복음이 이깁니다. 아무리 떠들어 대며 사람이 많이 모이면 뭘 합니까? 결국 복음이 이기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섞어놓은 것은 생명이 없기에 조금 지나면 다 하나님이 뽑아버리시고, 헐어버리시고,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말씀만 남습니다. 말씀으로 된 것은 남고, 말씀으로 안 된 것은 다 없어집니다. ‘그 나라에서 불법한 것과 넘어진 것은 다 뽑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다 심판합니다. 말씀대로 한 것만 영원히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떡하든지 말씀대로만 해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바른 말씀을 배우게 해 주신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대로, 바른 말씀을 배우도록 해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바로 된 교회를 세울 것

우리 교단이 바른 말씀을 전하는 중에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교역자를 양성해서 전하며, 그 교역자들을 통하여 각처에 전한 말씀으로 여러 교회가 승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학교를 통해서 계속하여 바른 말씀을 전할 사명을 가진 교역자를 양성해야 되겠습니다.
양성해서 국내외에 파송하여야 되겠습니다. 

바른 말씀을 전하면, 바른 진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 교회로 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바른 말씀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으므로, 이 바른 복음을 우리만 가지고 있지 말고 이것을 전해서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 바른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속 해야겠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어느 조사더러 개척교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조사 부인이 질문을 하기를, “미국에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뭘 또 개척교회를 해야 되겠습니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린 바른 진리의 교회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교회가 많지만 바른 진리대로 하는 교회가 얼마나 되느냐가 문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열린 예배와 방탕한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많습니다. 미국에도, 교회 안에서 복음 성가 부르며, 북 치고 장구 치고 해금 연주하는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최근에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목양교회에 가보니까 예배당에 북과, 해금과, 조그마한 두드리는 악기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걸 누가 사용하느냐고 물으니까 같은 교회 건물에서 별도로 예배드리는 미국교회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합니다. 이젠 미국교회들도 북 치고 장구 치며 예배드립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교회나, 기도원도 북 치고 장구치고 해금치는 곳이 많습니다. 교회마다 요즘 이렇게 육신의 흥분제를 이용하여 방탕한 방향으로 변질되어갑니다. 그래야 청년들이 교회에 오니까, 복음 성가와 육신의 악기를 이용해서 육신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진리가 이깁니다. 우리는 그런 육신의 것들 하나도 안 하며, 오직 “진리가 이긴다”는 것을 믿고 나아갑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면 진리에 속한 사람은 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리를 찾아오면, 그 사람들이 계속하여 이기고 또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끝까지 승리해나갑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복음을 전할 것

하나님께서 이 귀한 복음을 주셨는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하고,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됩니다. 예루살렘에 전하고, 유대에도 전해야 되고, 또 사마리아에도 전해야 되고, 또 땅 끝에 가서도 전해야 됩니다. 

최대한 많이 전하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우리가 많이 전해야 되고, 또 교단적으로도 많이 전해야 되고, 개교회적으로도 많이 전해야 되고,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전해야 됩니다. 또한 멀리까지 전해야 됩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결박과 환난이 기다린다고 하지만 올라갔습니다. 가서 잡혔습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재판 받으러 다녔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또, 로마에까지, 서바나(스페인)에까지 전할 소망을 가지고 나갔으며, 바울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전하려고 하다가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고, 감옥에도 여러 번 갇히고, 죽을 뻔하고, 또한 태장으로 맞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사도바울이 말할 수 없이 많은 고난과 핍박과 환난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할 수 있는 대로 얼마나 더 많이 복음을 전하려고 애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몇몇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려고 애를 쓴 것처럼, 우리도 할 수 있으면 더 많이 전해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나 혼자 편안히 예수 잘 믿고 천당 가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전하라고 하셨는데 전하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책망 받습니다. 가라고 하는 곳에 가야 됩니다. 또한 전할 사람을 타 지역에 보내서 전해야 되는데, 한 교회만 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느 교회나 처음엔 잘 자라나다가 조금 있으면 한계가 옵니다. 한계가 온 다음에는 그 이상은 안 자라납니다. 나무도 계속 자라나면 뭐 하늘에 닿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자라나면 한계가 오고 그 이상 더 안 자라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옆에 또 갖다가 심어야 됩니다. 심으면 또 하나가 자라납니다. 옆에 또 심어야 됩니다. 처음에는 사과나무가 한 주였는데, 그 다음에 열 주가 되고, 자꾸 갖다가 심으니까 20주, 100주, 200주, 1000주, 2000주, 3000주... 사과나무가 이렇게 많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점점 큰 과수원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사과나무가 아무리 잘 되어도 한 나무에서 많이 못 땁니다. 사과나무 아무리 잘 되도 한 나무에서 얼마 따겠습니까? 몇 상자 땁니까? 한 나무에서 한 10상자 딴다고 합시다. 아무리 잘 되어도 10상자 따는데, 옆에 두 그루를 갖다 심는다는 것입니다. 세 그루가 되면 각 나무에서 10상자만 따도 30상자, 10그루를 심어놓으면 100상자를 따는 것입니다. 천 그루를 심어 놓으면 10상자씩 따도 얼마입니까? 만 상자입니다. 2000주면 이 만 상자입니다. 

한 나무는 아무리 잘되어도 얼마 못 따지만, 그러나 자꾸 심어 놓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으로 많이 따게 됩니다. 우리도 한 교회만 잘 되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계속 전해야 됩니다. 또한 개척교회를 세워야 됩니다. 개척교회를 세우려면 신학교에서 좋은 일꾼을 많이 양성하여 보내야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서 계속해서 자꾸 바른 복음을 펼쳐나가야 되겠습니다. 

2. 심기만 하면 이기고 또 이기는 말씀

각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만 놓으면 이깁니다. 이 말씀은 능력이 있고, 하나님이 같이 하시고, 하나님은 말씀대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대로 사라에게 역사하시고, 말씀대로 권고하시고, 말씀대로 아브라함에게 아들인 이삭을 낳게 해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창세기 21장 1-2절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섞이지 않은 참 복음이 중요합니다. 섞은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또 다른 복음은 생명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주받는 것입니다. 가감하면 안 됩니다. 말씀 그대로만 전해야 승리하고, 이기고 또 이깁니다. 

얼마나 이겨나갈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만 해도 이 말씀이 많이 이겨 나갔습니다. 이제 좀 더 우리가 힘을 써서 말씀을 전하면 더 많이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각처에서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명을 하나님께 맡았는데 이 사명을 다하여 전할 때에 자기가 은혜를 받고, 전할 때에 자기가 자라나고, 또 전할 때에 많은 생명이 구원받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하늘나라가 건설되어 나갑니다.
이 복음을 전하면 반드시 이기는데 전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전도하러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아가지고 돌아오는 일이 있지 않았습니까?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귀신이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라고 하며 기뻐할 때에,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걸로 즐거워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하면 그 공로가 하늘에 다 갑니다. 하늘에 다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의 모든 것이 하늘에 남아 있습니다. 자라납니다. 상급이 커집니다.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승리의 복음, 참 복음을 우리에게 주신 것을 감사하고, 이 복음을 끝까지 전하고, 전 세계에 전해서, 이기고 또 이기고 천하에서 열매를 맺어 자라나는 그 일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4-17 성경을 따라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경을 따라가라
디모데후서 3:14-17

14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1. 배운 진리에 굳게 서서 나갈 것

본문 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일평생 자기를 만들어야 됩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하는 것은, 사도바울이 바른 복음 전한 것을 알고, 사도바울에게서 바른 복음 배운 것을 언제나 알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 받았으니 얼마나 귀한 복음입니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걸 언제나 알고, 언제나 진리를 떠나지 말고 세상 떠나도록 까지 그 진리에서 굳게 서나가라는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굳게 서나가라는 것입니다. 배우지 못한 사람은 몰라서 진리에 서나가지 못하지만, 바로 배운 사람은 이제 바른 진리 배운 것을 알고 버리지 말고, 끝까지 그 진리에서 서나가라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를 배반하지 말고 배은망덕하지 말고, 그 진리를 뉘게서 배운 것을 알고, 바울에게 배운 진리를 끝까지 확신을 가지고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제가 이기선 목사님한테 많이 배우고, 김현봉 목사님한테 배운 것이 참 감사합니다. 배운 것을 그냥 둬 두면 다 없어질 것 같아서 김현봉 목사님에 대한 것을 문서로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 뵙지 못한 사람은 그 가르침을 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 ‘김현봉 목사 설교집’을 하나 냈습니다. 

그 다음은 이기선 목사님한테 바른 진리를 배워서 ‘이기선 목사님 성경 대소지’ 책을 냈고, 또 이기선 목사님 전기를 김현봉 목사 전기하고 같이 내려합니다. 이기선 목사님의 훌륭한 신앙과 그 진리, 또 김현봉 목사가 가지고 있던 훌륭한 진리가 좀 있으면 다 없어질 것 같고 알지 못할 것 같아서, 제가 책임을 지고 내야 되지 않겠나 싶어서 내려합니다. 

특별히 김현봉 목사는 말세학을 30년 연구한 목사인데, 많이 예언이 돼 놓은 게 더러 있습니다. 뭘 예언했냐 하면, 이제 좀 있으면 한국에서 저녁을 먹고 미국 가서 예배드리고 한국에 도로 와서 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 할 때는 한 1950년경인데, 그때는 꿈도 못 꿨습니다. 어떻게 한국에서 저녁 먹고 미국 가서 예배드리고 올 수 있냐는 것입니다. 도무지 그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다고 다들 그랬는데, 요새 와서 보니 딱 맞습니다.

이제 그분들이 가르치신 바를 책으로 내서 후대에까지 전하려고 합니다. 좋은 거 배운 게 참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여기서 바른 진리 배운 걸 알라는 것입니다. 그 진리 버리지 말고 서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대로 서서 참 교회를 세우고 그대로 전해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는 오산 지방의 “오산중앙교회” 부근에 있는 교인들이 신사참배하는 교회에 나가니까, 신사참배하는 교회에 나가면 신사참배가 옳다고 가르치므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교인들이 갈려고 하니까 “죽은 어머니 젖을 빨면 젖이 나오지 않고, 죽은 피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하며 가르쳤다고 합니다. 최권능 목사가 철저한 신앙을 가지고 바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배우는 것, 바로 가르쳐주는 선생을 만난 것이 참 복입니다.

또 김현봉 목사님이 구원 이루어 나가는 도리 등을 바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 김의홍 목사님한테 말세학을 배웠는데, 김의홍 목사님은 운산교회 목사님으로 말세학을 삼십년간 연구하신 분입니다. 그 분이 아니었다면 우리 청년들이 6.25사변 당시 전쟁터에 나가서 많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 분이 말세학을 가르치면서 “공산당은 붉은 용으로 반드시 망한다, 붉은 용이 얼마 안가면 망할 거니까 그렇게 알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얼마 안가면 망할 군대에 나갈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김의홍 목사님께 말세학을 배운 사람들은 다 산으로 피난 가고 군대에 안나갔습니다. 그 후에 얼마 있다가 유엔군이 들어왔는데, 그 때에 군대에 나가지 않고 숨어있던 청년들은 다 살아서 나왔으나, 그 옆의 교회 청년들 대부분은 전쟁터에 나가서 죽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청년들이 약 35명 정도 되었는데, 하나도 안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 배우는 것이 생명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늘 좋은 스승들을 만나게 해주신 것에 감사해서, 이기선 목사님 대소지책도 냈고, 또 이기선 목사님과 김의홍 목사님의 전기책도 냈고, 김현봉 목사님 강도집도 냈습니다. 바른 진리 배웠기 때문에 바로 나갈 수가 있었지, 바른 진리를 배우지 못했다면 바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천주교와 무슬림과 불교와 장로교가 서로 왔다, 갔다 한다고 하는데, 연합운동하는 목사들은 다 타락된 목사들입니다. 그것은 마귀를 섬기는 것입니다. 불교는 마귀 섬기는데 거기에 가서 합할 게 뭡니까? 또 무슬림은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고, 마호메트를 믿는 것입니다. 타락된 목사가 있는 교회에서 배우면 무엇을 배우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바른 진리를 배운 것이 중요한 것인 줄 알고, 언제나 그 진리에 굳게 서서, 바른 진리를 지켜 나가라는 것입니다.

2. 성경은 구원을 이루기에 합당한 책

본문 15절에,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을 알라는 것입니다. 구원에 이른다는 것은 구원을 이루어 나간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지혜가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 알아야 되는데,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밝히 알았고, 또 사도 바울을 통해서 바른 진리를 많이 배웠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성경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라고 하였는데, 어려서부터 성경을 아는 것이 큰 복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3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즉 성경을 읽을 때에나 들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이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이다”하며 받고, 책망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를 책망하시는 말씀이다”하며 받고, 명령할 때에는 “하나님이 내게 명령하시는 말씀이다”하며 받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1:13-14에 “너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써 내게 들은바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많이 아는 게 중요하고, 그 다음에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말씀을 지키지 못하는데 많이 알아서 뭐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첫째로 말씀을 많이 알고, 그 다음에는 지켜야 됩니다.
다 지키고 아는 게 아닙니다. 십계명도 다 못 지키는데 다른 성경 말씀을 알아서 뭐 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늙어 죽도록 십계명만 지키다가 죽겠다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을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많이 알아야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지혜가 되고, 능력이 되며, 우리를 보호해 줍니다. 또 성경은 우리를 능하게 합니다.

3. 성경은 영혼을 소생케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함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생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을 소생케 하고, 우둔한 자에게 지혜를 줍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는 게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말씀이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배우는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또 여호와의 말씀은 눈을 밝게 합니다. 시편 119:104에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란 주의 말씀으로 인해서 미련한 자가 지혜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란 주의 말씀으로 인해서 거짓 행위가 나타나게 되면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바로 서지 못하면 거짓선지자들의 거짓 행위를 분별 못합니다.
말씀이 있어야 거짓을 분별하는데, 말씀이 없으므로 거짓을 분별 못합니다.

말씀이 있으면 공산당도 이길 수 있고, 불교 등 마귀를 섬기는 이종교들을 다 이길 수 있습니다. 천주교와 무슬림과 불교와 기독교가 합하는 것은 속에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들이 속에 말씀이 없으니까 거짓된 것을 모릅니다. 그저 연합해서 “큰 일을 하자, 사회사업을 하자”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성경은 가르쳐 주지 않고 조직신학, 교회사, 변증론, 신약신학, 구약신학개론, 어학 등 신학 과목만 많이 가르쳐 줍니다. 그래서 신학교를 졸업
해도 성경을 많이 모릅니다. 다른 신학교를 다니다가 우리 신학교로 편입하여 오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성경을 얼마나 읽었느냐고 물어보면 한번도 못 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신학교는 신학생들에게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어서 말씀이 그 사람에게 무기가 되게해야 하는데, 성경을 모르니까 뭘 가지고 싸우겠습니까? 그러니까 불교하고 합하고, 천주교하고 합하고, 마호메트교하고 합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년시절에 영미중학교에 다녔는데, 선생이 계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 하며, 학생들에게 물어 보시길래, 내가 닭이 먼저라고 하였더니 선생은 계란이 먼저라고 합니다. 계란이 먼저이기 때문에 계란에서 닭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이 닭을 먼저 창조하셨기 때문에 계란을 낳았다고 했습니다. 그 선생이 일본대학에서 공부하고 왔지만 성경대로 나가는 사람한테는 이길 수 없습니다. 

하여간 성경은 거짓된 것을 다 드러냅니다. 요새 타락된 교회들도 성경으로 다 드러납니다. 사도행전 20:32에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말씀께 부탁을 한다고 했는데, 말씀께 부탁하는 게 제일입니다. 그 말씀이 너희를 든든히 세워주고, 기업이 있게 하고, 거짓된 것을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제일입니다.

말씀이 지혜이며, 권능이며, 복이며, 명철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매일 읽어야 됩니다. 우리 신학교에서는 매일 성경을 10장씩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는 두 시간 이상 하라고 합니다. 교인들도 성경을 10장 이상 읽는 게 좋습니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으면 5장이라도 읽어야 합니다. 기도는 2시간 못하면 1시간이라도 하여야 합니다. 하여간 어려서부터 성경을 아는 게 큰 보화입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인 줄 알고 그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그 말씀이 자기에게 지혜가 되고, 생명이 되고, 능력이 되어야 하며, 그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대예배시간 전에 성경공부시간을 정해놓고 성경을 가르칩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모조리 가르칩니다.

이기선 목사님도 매일 성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나도 참여했었는데, 성경 대소지를 해놓으시고, 대소지로 모조리 가르치십니다. 성경을 가르쳐야 교인들이 자기의 갈 길을 알고, 눈이 밝아지고, 명철해지고, 거짓을 미워합니다. 또 성경을 가르쳐야 교인들이 생명길을 걸어갈 수있고, 비진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능히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신구약 성경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구약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3:15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있는데, 구약의 전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을 보든, 신약을 보든,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바를 회개하며, 결심하면서 성경을 읽고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소생합니다. 명철해집니다. 거짓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는 게 중요합니다. 집에서도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는 게 중요합니다. 교회에서도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어야 하고, 가정에서도 하루에 한장씩 읽히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중고등부 사경회 때와 유년부 사경회 때에도 성경을 많이 가르쳐 줍니다. 이번 수련회 때에도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많이 가르쳐 주어야 말씀이 아이들에게 힘이 되고, 지식이 되고, 명철이 되고, 능력이 되고, 거짓을 미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어떻게 하든지 교회에 데리고 와서 성경을 배우게 해야 됩니다. 집이 멀어도 일찍부터 데리고 나와서 성경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어떤 가정은 집이 멀기 때문에 아이들을 가까운 교회에 나가게 하고, 어른들만 본교회에 나오는데, 큰 다음에 그 아이들을 본교회로 인도하려고 하니까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큰 다음에는 인도 못합니다. 어떤 집은 집에서 가까운 다른 교단 교회에 아이들이 나가는 것을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큰 다음에 본교회로 데리고 오려고 하니까 말을 듣지 않고 다니던 교회에 내내 다닙니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부터 좀 힘이 들더라도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는 교회로 데리고 와서 거기서 연단을 시켜야 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바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큰 다음에도 그것이 아이에게 길이 되고, 생명이 되고, 명철이 되고, 영혼을 소생시키는 것이 됩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디모데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많이 알았습니다. 

4.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오류가 없게 기록됨

본문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는데, 모든 성경은 사람이 쓰긴 썼지만, 그래도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즉 성령께서 기자들의 성격과 언어와 풍속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뜻을 오류가 없도록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교훈을 받고, 성경에서 책망을 받고, 성경에서 바르게 하는 것을 받고, 의로 교육하는 것도 성경에서 배워서 성경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을 가지고 교훈해야 됩니다. 책망할 때도 성경 한 구절을 읽고 책망하는 게 좋습니다. 또 누가 무엇을 물어보면 성경 말씀으로 대답하는 게 좋습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누가와서 무엇을 물어보면 “성경 몇 장, 몇 절을 찾아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읽어 주시며, 가서 성경말씀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5.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함

본문 17절에,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는 말은 자랑한다는 뜻입니다. ‘온전케 자랑하라’입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언제나 성경말씀을 받아서 자기를 교훈하고, 자기를 책망하고, 자기를 바르게 하고, 자기를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나가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지혜, 구원을 이루어 나가니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성경에서 찾고, 성경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받아야 되고, 성경에서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바르게 하는 것을 받고, 의로 교육하는 걸 배워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 나가라는 말입니다.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점점 자라나고 만들어지고 온전케 만들어져 나가는 것을 일생동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져 나가는 건 일생동안 해나가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신학교 졸업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졸업했다고 다 되는 게 아니고, 성경말씀으로 항상 자기를 교훈해야 됩니다. 또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감동으로 받아야 되고, 교훈을 받고 책망을 받고, 바르게 함을 받고, 의로 교육함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온전케 돼나가라는 말입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선한 일도 해나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케 해나가며, 모든 선한 일을 해나가며, 하나님의 참교회를 세우며, 이 성경에서 모든 것을 받아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온전케 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해나가고 참 교회를 세우는 이런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에 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줄 알고, 언제나 이 말씀대로 항상 서서 시대를 분별하고, 타락된 교회를 바로 보고, 핍박을 각오하고, 자신을 잘 만들어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1-13 말세타락과 경건생활.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말세타락과 경건생활
디모데후서 3:1-13

1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6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7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8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 9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 10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2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13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1. 말세의 현상
자기 자신과 돈만 사랑함 

본문 1-2절에, “내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말세에는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라고 했는데, 여러 가지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 증거입니다. 말세에는 여러 가지 타락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회가 타락이 되고, 세상이 타락이 되고, 교회가 타락이 되는 이런 때에 믿는 일, 경건생활을 잘 하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데 이것이 말세의 고통 가운데 첫째입니다. 전에 어떤 교인의 아들이 미국에 가서 의사가 되었는데, 그 아들네 집에 얼마동안 있다가 왔습니다. 있다가 와서 하는 말이, “자기 아들이 미국사람 다 되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아들이 자기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사람들은 대개 자기만 알고 돈만 아는 사람들로 기울어졌습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돈만 사랑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다 세상으로 나가고 교회에는 노인들만 다 모였습니다. 미국 기도원에 가보면 한사람도 기도원에 안 갑니다. 미국교회 새벽예배 나가 보니까 한 사람도 안갑니다. 노인들만 남고 젊은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해서 다 나갔습니다. 그래서 교회 예배당을 유지할 수 없어서 팝니다. 그런 것을 한국교회가 삽니다. 우리교단도 미국에서 여러 교회를 샀습니다. 

이렇게 타락이 되고, 돈만 따라가고 세상만 따라가니까 교인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이제 한국도 점점 젊은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가게 되면 예배당 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차려서 아이들을 잘 인도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을 잘 믿음으로 인도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것이고, 아니면 미국교회처럼 세상으로 나가고 다른 민족에게 주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거꾸로 되어 고통이 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치 아니하고, 다른 사람이 해준 것도 감사하지 아니하게 됩니다.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게 됩니다. 말세의 쾌락주의, 향락주의를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통 하는 때가 온다고 했습니다. 왜 고통 하는 때가 오냐 하면, 전부 거꾸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되려면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돈을 사랑하면 안 됩니다.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훼방하지 않고, 부모를 공경하고, 감사하며, 거룩하며, 원통함을 풀며, 참소하지 아니하며, 온유하며, 선한 것을 좋아하며, 배반하지 아니하며, 조급하지 아니하며, 쾌락을 사랑하지 아니하게 되어야 합니다.
모두 거꾸로 되어서 고통 하는 때가 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낼 때처럼 바로 살아야 합니다. 초목도 나무나 풀이든 뿌리가 아래로 내려가고 잎사귀는 위에 올라가 있는데, 거꾸로 해 놓으면 식목, 초목 같은 것 못삽니다. 짐승들도 머리가 있는 데에다 꼬리가 붙어있으면 살지 못합니다. 새나 물고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하나님이 낼 때에 바로 살라고 낸 것입니다. 사람은 머리가 위에 있고 다리가 아래에 있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그리스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머리로 둡니다. 그렇게 바로 살아야 합니다. 

거꾸로 해 놓으면 여러 가지 고통이 많이 옵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집안이 잘 됩니다. 또 원통함을 풀고 화목해야 고통이 오지 않습니다. 배반하지 말고, 자고하지 말며, 무엇이든 하나님이 낸 대로 바로 살아야 합니다. 사람을 낼 때도 다 바로 살라고 낸 것입니다. 그걸 바로 사용하지 아니하면 고통이 옵니다. 

말세에는 모든 사람들이 쾌락주의로 나간다고 했습니다. 노아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와 같다고 하였는데, 노아 시대에는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음란 방탕했습니다. 음란도 거꾸로 된 것입니다. 사람에게 이성을 준 것은 경건한 자녀를 주기 위해서인데, 거꾸로 사용해서 음란방탕과 쾌락주의로 나가면 고통이 따라오게 됩니다. 

무정하며 배반하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자기를 높이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합니다. 쾌락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경건생활을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해 준 것입니다.

2. 교회의 타락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교회

본문 5절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가서는 교회는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을 다 떠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모양만 경건, 의식만 경건이고, 의복만 경건이고 능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갖추는 이 말세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여러 가지로 경건의 모양은 많이 갖추어 나가지만 그 속에 경건의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능력의 역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고전4:20에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하였는데, 종교가 다 타락이 돼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는 없고 모양만 아름답게 또 굉장하게 엄중하게 모양만 갖추어 나가는 시대가 됐습니다. 능력 있는 교회, 능력 있는 말씀, 능력 있는 예배가 되어야 하는데, 능력은 다 부인하고 모양만 갖추고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자들, 경건의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따라가지 말고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요새 이 새로운 역사들, 복음성가, 춤추는 것, 유희하는 것, 또 여러 가지 악기를 사다놓고 노라리(놀이)하는 것 등, 외관상으로는 다 경건의 모양을 갖추는 것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들이려고 별의별 수단을 다 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교회에 별의 별세상 것들이 다 들어옵니다. 그와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는 건 따라가지 말고 그와 같은 자에게서 돌아서서 바른 신앙의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힌 교인이 미혹됨

본문 6上절에, "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고 했습니다. "남의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에 가만히 미혹하는 자들이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여자는 교인들입니다. 열 처녀 비유에 보면 열 처녀는 다 교인입니다. 어리석은 교인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는 미혹이 많습니다.
교회 안에 가만히 들어와서 어리석은 교인들을 유혹하고 유인하는 자들이 많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6下-7절에,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이 미혹을 받나하면, 첫째는 ‘어리석은 여자’라고 하였듯이 어리석은 자입니다. 둘째는 ‘죄를 중히 지고’라고 하였는데, 죄를 끊어버리지 못하고 죄를 그냥 지고 나가는 사람, 계속해서 짓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라고 하였는데, 욕심 있는 사람입니다. 그 세 가지가 사람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 회개하지 아니하고 끊어버리지 아니하고 죄를 그냥 지고 나가는 사람, 그리고 욕심에 끌린바 되는 그런 교인들과 그런 교역자들을 유혹합니다. 교회를 갑자기 크게 하겠다는 것도 다 욕심입니다. 그렇게 각종 유혹이 교회 내에 다 들어옵니다. 

본문 7절에, "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항상 배우지만 이 세 가지를 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배워도 이 세 가지를 바로 하지 못하면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영적 지혜가 있어야 되고, 죄를 끊어버려야 되고, 온전히 욕심을 버려야 됩니다. 이거을 못 버리면 아무리 배워도 바로 설 수가 없고 마침내는 잘못된 곳으로 타락하고 맙니다. 

진리를 대적함

본문 8절에,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같이 저희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모세 때에 얀네와 얌브레 거짓 선지자가 있었는데 모세를 대적했다는 말입니다. 타락이 되어서 하나님의 참 종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했고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라’하는 말은, 마음이 바로 서야 하고 믿음이 바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디모데전서 2장 18-19절에 있는 말씀인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는 말과 같습니다. 

양심을 버린 자는 그 믿음이 파선된 것입니다. ‘마음이 부패한 자요’라 하는 것은 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언제나 써 나가라는 것입니다. 양심을 버린 사람은 마음이 부패한 자이고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입니다. 양심 안 쓰는 사람은, 아주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들이라’고 했는데, 양심 안 쓰면 믿음 버린 사람입니다. 희망 없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바로 써야만 바로 됩니다. 그 다음엔 믿음을 바로 지켜야 됩니다. 

본문 9절에, "그러나 저희가 더 나가지 못할 것은 저 두 사람의 된 것과 같이 저희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더 나가지 못합니다. 양심 안 쓰고 믿음 안 지키면 어느 정도는 나갈 수 있지만 얼마 안가면 다 드러납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 대적하다가 얼마 있다 다 드러났는데, 그와 같이 양심 안 쓰고 믿음 안 지키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이 다 드러내준다는 것입니다. 가다가 드러납니다. 무슨 사건이 생겨서 드러나고, 버리운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3. 핍박이 있음
진리의 복음을 전하다 핍박받은 바울

본문 10-11上절에,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핍박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가 어떠한 길을 걸어간 것을 제자에게 보여줍니다. 나의 핍박 받은 것, 고난 받은 것, 또 안디옥에서 어떠한 고난 받은 것, 이고니온에서 어떤 고난 받은 것, 루스드라에서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내다 버림당했다는 그런 일입니다. 또한 ‘핍박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이 진리의 길과 바른 사역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이렇게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11下절에,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른 진리에 서서 바른 복음을 전하면 핍박이 오지만, 이 모든 가운데서 바울을 건져준 것처럼 너도 건져준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경건한 자 핍박받음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핍박받는 것처럼 너도 핍박을 받을 터인데, 핍박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을 것이다. 바로 믿으려면, 바른 진리를 지키려면 반드시 핍박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다 거슬러 가고 교회들이 다 부패했는데 바른 진리를 가지고 나가려면 핍박이 올 건 정해 놓은 것입니다. 바울도 그래서 핍박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도 바른 진리를 지키고 바른 진리를 전하고 바른교회 세우느라고 각처에 가면서 핍박, 고난 또 안디옥에서, 이고니온에서, 루스드라에서 모든 핍박을 받으면서 바른 진리를 지키고 바른교회를 세워 나갔습니다. 그러니까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한 것처럼, 핍박 받을 각
오하고 이제는 바른 진리를 지키고 바른 교회를 세워나가라는 것입니다. 

경건하고자 하면 핍박을 받습니다. 핍박이 오는데 그것을 이겨야 합니다. 세상이 다 타락이 되어서 죄악의 길로 걸어가는 노아의 시대, 소돔과 고모라의 시대가 되었는데, 여기서 경건하게 바로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경건 생활을 하는지 안 하는지 살펴보고, 바로하지 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해야 합니다.

경건한 자를 주께서 건지심
 
베드로후서 2장 9절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라고 했습니다. 경건한 자는 하나님이 건져줍니다. 경건하고 자 하면 여러 가지 환난과 핍박이 많이 있지만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바로 믿으려고 하고, 죄를 떠나려고 하고,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은 것은 다 끊어버리려고 하면 어떤 환난이 와도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건져주십니다. 

주님이 건져주시기 때문에 사는 것이고, 주님이 해주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바로 살려고 노력하면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져주시기 때문에 희망이 있고 앞길이 창창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경건하게 살려고 하고, 핍박을 받으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 나가면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져 주십니다. 아무리 많은 환난이 와도 주님이 지켜주십니다. 핍박을 각오하고, 신앙양심을 쓰고, 믿는 일을 하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의식적인 생활은 하지 말고, 실제로 성경대로 바로 사는 생활, 말씀을 생명으로 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시대가 지금 말세가 되어서 고통하는 때가 이르렀는데 그게 다 거꾸로 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가 전부 거꾸로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고 생명이 없습니다. 하늘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했는데, 능력이 있는 신앙,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이겨나가는 그런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어떠한 환난이 와도 담대히 나가야겠습니다. 주님이 건져 주시는 능력의 손을 붙잡고 우리는 전진하고, 말씀대로 바로서고, 말씀대로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4. 남 속이면 결국 자기가 마귀에게 속은 것
 
본문 13절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비진리로 나가는 사람들로, 신비주의, 신신학 등 타협주의로 나가는 사람들인데 다 여기에 속합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같은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입니다(딤전 1:20). 이런 사람들은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하며, 말씀을 어기면서 나가는데, 이런 사람들은 더욱 악하여집니다. 속이는 사람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남을 속이는 사람은 결국 자기가 속는 것입니다. 남을 속여서 자기가 무슨 좀 이를 볼 것 같지만 결국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자기가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남을 속여서 출세하고, 남을 속여서 자기가 의로운 사람으로 나타나고, 남을 속여서 유익을 많이 봤다고 해도 결국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남을 속여서 유익보고 출세하고 영광 받고 남을 속여서 잘되는 것 같지만, 양심 속이고 남을 속이면 결국은 자기가 속는 것입니다. 남을 속이는 게 자기가 속는 것입니다. 양심 안 쓰는 게 벌써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아무리 유익을 많이 보고, 아무리 높아지고, 아무리 출세 했어도 결국 마귀에게 속았으니까 결국은 마귀의 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버리십니다. 절대 속이지 말고 양심 똑바로 써야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20-26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
디모데후서 2:20-26

20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라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1. 교회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음
필요에 맞게 생긴 그릇들

본문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 질 그릇이 있는데, 거기서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큰집이라는 것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금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사용하고 또 나무 그릇도 사용하고, 질그릇도 사용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 그릇만 가지고는 안 되고 은그릇도 필요하고, 은그릇만 가지고는 안 되고 또 나무 그릇이 필요하고, 또한 질그릇도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릇입니다. 다 하나님의 쓰시는 쓰는 그릇입니다. 다 쓸데가 있어서 그릇을 준비해 두신 겁니다. 쓰지 않는 그릇은 괜히 놔둬야 자리만 잡고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쓰는 그릇만 필요합니다. 쓰지 않는 그릇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여러 가지 종류인데 다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다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그릇입니다. 교인들 전부 다 그릇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도 그릇입니다. 다 그릇인데 각자 무슨 그릇인가가 문제입니다. 금그릇인가? 은 그릇인가? 나무 그릇인가? 질그릇인가? 

나무 그릇도 필요합니다. 나무를 쓸 데에는 나무를 써야지 금으로 하면 안 됩니다. 강대상이 다 나무고, 의자, 벽에 덴 것이 다 나무이듯 나무가 필요합니다. 금으로 다 해놨으면 그게 무엇이 되겠습니까? 의자 금으로 했으면 좋겠습니까? 세면기, 변기 다 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밥그릇도 요새는 사기 밥그릇이 유행입니다. 옛날에는 놋그릇에다 밥을 먹었는데, 우리 어렸을때는 다 놋그릇을 사용했습니다. 놋그릇을 사용하다가 좀 더러워지면 그 옛날엔 놋그릇 닦는 약이 없어서 기왓장 같은 것을 가루로 빻아서 그 가루로 닦곤 했는데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놋그릇 쓰는 집이 없습니다. 있어도 안 쓰고 얼마 전에는 스텐 그릇을 쓰다가 요새는 사기그릇으로 바뀌었습니다. 다 사기그릇을 씁니다. 

그렇게 그릇이 여러 가지인데 우리 교인들이 다 그릇인 줄 알아야 됩니다. 나도 큰집 되는 교회의 그릇이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 그릇을 적당한 곳에서 적당하게 사용해야 됩니다. 그릇 사용하지 않고 둬두면 다 더러워지고 그 다음엔 못 쓰게 됩니다. 사용해야 됩니다. 우리가 다 그릇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무슨 그릇이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난 무슨 그릇이겠나?’, 각자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이 설교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는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질그릇도 필요합니다. 요새 질그릇 무엇에다가 씁니까? 설렁탕 먹을 때, 고추장 담을 때, 사기도 흙으로 만드는 것인데 사기도 질그릇 가운데 일종입니다. 그것 다 필요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그릇이 없습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놨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와 같은 사람은 금 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론과 미디안 같은 사람은 은그릇이라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모세를 받들어서 나가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 출애굽 때에 보조한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나무 그릇, 질그릇에 해당됩니다. 엘리야는 금 그릇이라 볼 수 있고,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는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은 달라도 상급은 같이 받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1-42절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 준 사람하고 선지자하고 상은 같이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 위치에서 잘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그릇이 되어 이용당할 것

필요하지 않는 것은 다 내 버려야 됩니다. 거기 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은 다 내버리고 언제든지 필요한 그릇만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필요한 그릇만 교회 두어뒀습니다. 한 번이라도 필요한데 쓰려고 하나님께서 우리 그릇들을 다 둬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는 잘 이용당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자기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그냥 나는 안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안 해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뭘 해야 될지를 찾아서, 그 그릇대로 쓰임을 당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이용당하십시오. 이용당하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필요 없는 그릇을 뭐 하러 둬두겠습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둬둔 것입니다. 남자 교인이나 여자 교인이나 다 필요합니다. 

이용당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용당하는 그릇,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있는데 하나님께 다 필요한 사람인 줄로만 알면 됩니다. 자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 생각입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쓰려고 쓸 때가 있어서 둬둔 것입니다.

그릇에 필요한 대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심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지혜의 말씀 전하는 사람, 지식의 말씀 전하는 사람, 성령으로 믿음 받은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 분별함을, 어떤 이에게는 각종 방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함을 주시나니, 모든 것은 같은 성령님이 행하셔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그릇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필요한 걸 주셨습니다. 그릇은 다 쓰는 것입니다. 안 쓰는 그릇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안 쓰는 그릇은 없는 것으로 아십시오. “나도 그릇이다”, 이렇게 알고 하나님께서 쓰실 때에 쓰임을 당해야겠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려고 할 때에 쓰임을 당하는 그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쓰임 안 당하면 안 됩니다. 쓰시려고 하면 쓰임을 당해야 합니다. 무엇에 갔다 쓰던지, 하나님이 필요한데 쓰시니까 거기에 쓰임을 당해야 합니다.

적재적소에 그릇을 사용할 것

출애굽기 18장 20-22절에,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재덕이 겸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무망하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세워서 천부장을 세우고, 백부장을 세우고, 십부장을 세워서 일하라고 그랬습니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는데, 천부장 자격이 있는 사람은 천부장의 자리에 세워놓고, 백부장의 실력이 있는 사람은 백부장에 세워 놓고, 오십부장 실력 있는 자는 오십부장으로 세워놓고, 십부장 실력있는 사람은 십부장 자리에 세워두라는 것입니다.
그릇이 다 다릅니다. 그릇대로 사용해야 됩니다. 한 말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두 말 담으면 한 말은 다 넘쳐서 버리게 됩니다. 두 말 그릇에다가 너 말을 담으면 두 말은 또 내 버립니다. 넘쳐서 내 버립니다. 그렇게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작은 그릇에 많은 물건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릇을 봐서 천부장 될 사람은 천부장 맡기고, 백부장 될 만한 사람은 백부장 맡기고, 오십부장, 십부장, 그릇에 따라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적재적소라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사용을 해야 일이 잘 되나갈 수 있습니다. 

큰 집에는 여러 가지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사르밧 과부와 같이 공궤하는 사람, 받들어 나가는 사람, 수종을 드는 사람, 엘리사와 같이 사용될 사람 등 교회는 여러가지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들은 한 지체로서 하나가 되어 가야함

고린도전서 12장에 14-27절에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한 몸에 비유했는데, 몸에는 이목구비 사지백체(耳目口鼻 四肢百體)가 있습니다. 눈 없으면 못살고, 입이 좋다고 해서 입만 있으면 못살고, 손이 좋아도 손만 있으면 못삽니다. 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 폐나 간장이나 신장이나 그런 것도 다 필요합니다. 외부에 나타나서 일하는 것보다 내장 속에서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손이나 발이나 입이나 이것도 중요하지만, 속에서 일하는 심장 폐 간장 췌장 등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들이 다 몸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것을 다 이용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대장, 소장 그것들을 다 이용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하나가 병이 생기면 전체가 다 병원에 가야 합니다. 

지체는 서로 약한 사람을 붙들어 주고, 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병든 자를 가서 도와주는 일에 쓰입니다. 힘없는 사람을 도와줍니다. 갈 바를 알지 모르는 사람에게 갈 바를 알려주는 일에 쓰입니다. 이스라엘 육십만 명이 갈 바를 모를 때에 다 쓰였습니다. 모세는 모세대로 쓰이고, 아론은 아론대로 쓰이고, 미리암은 미리암 대로 쓰이고, 이스라엘 육십만 명이 가나안으로 가는데 다 쓰였습니다. 무엇에 쓰였을까요? 약한 사람 붙들어 주고, 쓰러진 사람 일으켜주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 갈 바를 알려주고, 만나를 매일 아침 주셨는데 만나를 거두는데 도와주고, 생수를 먹을 때 도와주고, 생수 먹는 법도 도와주고, 힘이 없는 사람은 서로 붙들어 주고 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육십만 명이 상부상조하며 서로 붙들어 주고 서로 도와주고, 모세의 인도를 잘 받들어 가며 가나안으로 향해서 전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몇 달이 되어서 피곤하지만, 그래도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육십만 명을 모세가 다 끌고 갈수 있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고 가르쳐 주고 인도해주고 그러면서 육십만 명이 간 것으로 봐야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서로 권면하고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인도하고, 자기만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도록 하고, 육십만명을 그렇게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에 쓰임을 당해야 하겠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모든 그릇은 자기가 무엇에 필요로 이용당해야겠는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예수님 믿는데 도와주는 일하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 하는 것도 쓰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데 연보해야 될게 많습니다. 선교하는 거라든지, 예배당 짓는 거라든지, 개척교회 연보해서 하는 일이 많은데,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한 몫 하는 그것도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그릇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하고 천히 쓰는 그릇하고 상급은 같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와 같은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과 같은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일은 달라도 상은 같습니다. 

못 쓸 것은 이기주의는 못씁니다.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그릇입니다. 손해주는 그릇입니다. 쓸데없는 그릇은 어떻게 합니까? 내다 버린다고 했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쓸데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자기만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쓰임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힘껏 봉사할 때 나가서 쓰임 당하는 것이 귀히 쓰는 그릇입니다. 봉사하기 싫은 사람은 관두십시오. 하기 싫은 사람은 제게 얘기하십시오. 죽도록 안 시킬 것이니까 봉사하기 싫은 사람 얘기 하십시오. 봉사하는 게 쓰임당하는 거 아닙니까? 쓰임 당하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다 이용당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적 정신을 가지고 이용당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자, 자기 신앙에도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는 그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전체 유익이 되는 자,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운동에 유익을 주는 필요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 이용당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일을 주어서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인도해주고, 갈 길을 같이 가게 해주고, 만나도 같이 먹게 해주고, 생수도 같이 먹게 데려가 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육십만명을 혼자 다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붙들어 주어서 열두 지파가 서로 다 도와주면서 애굽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릇은 주인이 쓰는데 이용당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으로 잘 되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자기가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잘 되겠다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낸 대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쓰기에 합당한 데에 이용당하면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토마스 목사가 영국 부유한 나라에서 한국에 올 때에, 선교사로 오다가 대동강에서 순교 당하지 않았습니까? 큰 복 받은 것입니다. 선교많이 해서 교회 많이 세운 사람보다, 순교당해서 하늘나라에 간 것이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큰 그릇입니다. 순교당하는 그릇이 큰 그릇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나는 그릇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그릇이다. 다 이용당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는 것이다”, 상부상조하여 서로 받들어주고 서로 도와줄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릇입니다. 상부상조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몫을 다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시는 면에 이용당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이용당해야 합니다. 다 이용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무슨 양식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했는데,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돈 많이 버는 대로 가겠다고 해서 나가면 썩는 양식을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첫째는 믿는 일입니다. 믿는 일을 위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그릇에 맞게 쓰심

군대가 한 군단이 움직이려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보병이 한 사단 가려면 포병이 따라 가고, 그 다음에 앞에 가서 적진 살펴서 연락해주는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측병이 없이는 포를 못 씁니다. 그 병사가 나가서 연락해서 “저기 적군이 몇 킬로 내에 있다”고 포병에게 연락하면 포를 쏘고, 그 다음에 보병이 전진해 갑니다. 

항공모함도 한번 움직이려면 여러 선척이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항공모함 혼자만 못 갑니다. 여러 함대가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이지스함은 비행기가 500대 나는 것을 한꺼번에 떨어뜨릴 수 있답니다. 적기가 500개가 한꺼번에 날아와도 일시에 다 떨어뜨릴 수 있는 그런 실력이 있답니다. 

그렇게 우리 교회가 나가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술자도 필요합니다. 전부다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병은 나가서 다리도 놔주고, 그리고 기술자가 나와서 포를 고쳐주기도 하고 전차를 고쳐주기고 하고, 또한 전차부대도 필요합니다. 그 여러 가지를 하나님이 다 사용을 해서 이 교회를 인도하고 진리 운동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릇인데 하나님이 적재적소에 다 사용합니다. 적당한 곳에 사용 합니다. 그릇을 봐서 “이 그릇은 여기에 사용해야 되겠다. 저 그릇은 저기에다 사용해야 되겠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대로 이용당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뭐 금 그릇 되겠다. 은그릇되겠다. 내가 저기서 하겠다. 여기서 하겠다. 그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사용하는 대로 사용 당하면 됩니다. 여기다 쓰던지 저기다 쓰던지, 주님이 쓰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이쪽에서 쓰다가 저쪽에 필요해서 저쪽으로 그릇을 옮겨 놓으면 거기서 이용당하면 됩니다. 주인이 사용하는 대로 이용당하면 됩니다. 자기가 뭐 “저거 해야 되겠다. 이거 해야 되겠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깨끗케 한 그릇을 귀히 쓰심

깨끗함으로 예비 된 그릇이 될 것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그릇을 하나님이 귀히 쓰신다고 그랬습니다. 

금 그릇도 깨끗하지 못하면 못 씁니다. 질그릇이라도 깨끗하면 하나님이 귀히 씁니다. 나무 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나는 금 그릇 되겠다. 은그릇 되겠다”는 그런 건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고,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깨끗하면 됩니다. 나무 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질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깨끗해야 됩니다. 청결한 마음, 깨끗한 심령, 신앙 양심을 바로 쓰고 깨끗이 하라는 말입니다. 

정욕을 피하고 변론하지 말 것

본문 22절에,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무엇을 깨끗하게 하라고 그랬냐면,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그랬습니다. 

정욕을 피해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정욕을 피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근본 같습니다. 말세에는 음란, 방탕, 향락, 술 취하는 것, 호색하는 것에 다 빠지는데, 그런 정욕에 대해서 깨끗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요새는 정욕적인 세상이 됐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다 벌거벗고 돌아다니고, 뉴스를 봐도 벌거벗고 나오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새 길가에 나가보면 넓적다리 다 내놓고 가슴 다 내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욕적인 음란, 방탕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정욕을 피해야만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마음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정욕을 피하는 것이 근본 같습니다. 깨끗해야 귀히 쓰이는데, 정욕이 좀 묻어 돌아가면 귀히 쓸 수가 없습니다. 

아예 깨끗하게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겠습니다. 의, 믿음, 사랑, 화평에 서라는 것입니다. 의에 서고, 믿음에 서고, 사랑에 서고, 화평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본문 23절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4절에는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으면 옳은 것을 가지고 나가면 되지 변론한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 나가는 사람 한두 번 말해 놓고 안 들으면 내버려두십시오. 그걸 굴복시키려고 해도 안 됩니다. 굴복은 하나님이 시켜야지, 사람이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말을 하고, 이렇게 해도 안 들으면 그만두고, 듣는 사람만 인도해야 되겠습니다. 무식한 변론에서 다툼이 나옵니다.

3. 주의 종의 도
비방하는 말에 아니라 하고 가만히 있을 것

본문 24절에,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며’,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툴 일이 생겨도 안 다퉈야 됩니다. 참아야 됩니다.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싸우지 말고, 파리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 대도 자기가 안 잡아먹었으면 되지, 그것 때문에 속상할게 뭐입니까? 언젠가는 안 잡아먹었으면 안 잡아먹은 게 드러납니다.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은,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는 말이 돌아갈 때에 자기가 ‘파리 발이라도 하나 먹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봐야 됩니다. 발 먹었으면 회개하면 됩니다. 앞 발을 먹었든지 뒷발을 먹었든지, 아예 회개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자기를 향해서 비방하는 말이 돌아갈 때에 가만 내버려두면, 그 비방은 물에서 나온 고기와 같아서 말라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이 별소리 다 해도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은 가만히 있은 것입니다. 안 했다고 다니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바로 했으면 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것

본문 25-26절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는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돌아다니는 그런 자들입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거역하는 자에 대해서 같이 거역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다 이기라는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으면 안 잡아먹었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 반대하는 자가 회개하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니까, 온유함으로 징계하고 믿음으로 잘 이겨나가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1-19 진리를 분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진리를 분별하라
디모데후서 2:11-19

11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14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 15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16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17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18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19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1. 주와 함께 살고, 주와 함께 왕 노릇함
 
본문 11-12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쁘다 이 말이여”란 진실한 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란 예수와 함께 죽으면 예수와 함께 살 것이요, 예수와 함께 참으면 예수와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과 같이 죽으면 예수님과 같이 살고, 예수님과 같이 참으면 예수님과 같이 왕 노릇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11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를 위해서 참으라는 것입니다. 예수와 같이 참으면 예수와 같이 왕 노릇 할 권세가 이루어지고, 예수와 같이 죽으면 예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즉 예수와 같이 죽으면 예수와 같이 삽니다. 예수의 생명이 그 사람에게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또 예수와 같이 참으면 왕권이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아야 됩니다. 

이기선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시고 참으셨는데, 나도 참자”하며 참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잘못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시고 참으셨듯이 “나도 참자” 하고 참으면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와 같이 죽고, 예수와 같이 참아야 합니다. 예수와 같이 죽으면 예수와 같이 삽니다. 어떠한 환난과 핍박이 와도, 오늘도 “예수를 위해서 참자, 예수를 위해서 죽자”하며 나가면 예수의 생명이 그 속에서 역사합니다. 세가지 “자”자를 가지고 나가야 된다고 합니다. 즉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입니다. 공산당도 이러한 결심을 가지고 나갑니다. 우리도 “예수와 같이 욕 먹자, 예수와 같이 맞자, 예수와 같이 죽자”하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꼴을 보시고 참으셨듯이 참을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때에 “나도 참자”하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참을 수 없다”하고 남을 때려 죽이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자기가 자기를 죽이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자기 생명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살은 살인입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기도 죽는 것은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강화도에서 모녀를 죽인 사건이 요새 신문에 났는데, 왜 죽였습니까? 돈 때문에 죽였습니다. 돈 1억원이 탐나서 같은 동네 청년들이 죽였습니다. 돈이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주와 함께 죽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할 것이요”라고 했으므로 예수님께서 내 꼴을 보시고 참으셨듯이“나도 참자”하며 나가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셨으니 “나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자”하며 나가야 합니다. 예수를 위해서 생명을 내어놓고 날마다 죽음에 넘기워 지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이 생명 예수와 같이 죽자”하며, 때리면 맞고, 죽이면 죽을 각오를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되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
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복음을 전하다가 죽을 일이 닥치면, 예수님을 붙들고 예수님과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납니다. 또 예수님의 생명이 그 속에서 커집니다. 한 번 참으면 그만큼 왕권이 커집니다. 두 번 참으면 그만큼 왕권이 커지고, 세 번 참으면 그만큼 왕권이 커집니다. 또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으면 왕권이 점점 커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왕권을 주시려고 참기 어려운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주십니다. 그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믿음입니다.
또 자기 생명을 예수님과 같이 죽음에 넘기워 주고 나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면 자기 속에 예수의 생명이 점점 커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위해 죽자” 하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같이 죽자, 믿음을 지키다가 죽자, 말씀 순종하다가 죽자, 전도하다가 죽자”하고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점점 커진다고 하였습니다. 죽음의 고개를 넘겨야 예수님의 생명이 점점 커집니다. 또 참지 못하는 것을 참아야 예수님의 왕권이 그 사람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많이 참아야 됩니다. 죽을 것이 와도 많이 참아야 됩니다. 많이 참는 사람과 조금 참는 사람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많이 참은 사람은 벌써 왕권이 커진 것입니다. 조금 참으면 왕권이 작습니다. 그러므로 참을 게 없는 것보다는 참을 게 있는 것이 좋고, 참을 게 있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2.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심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주를 부인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주님께서도 그 사람을 돌보아 주시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 3:10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령, 참을 것을 주셨는데 안 참으면 주님께서도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또 죽을 것을 주셨는데 안 죽으면, 주님께서도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참을 것을 주셨으면 잘 참아야 하고, 죽을 것을 주셨으면 죽어야 합니다. 참아야 할 때에 참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하면 하나님의 것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날마다 잘 참고, 날마다 죽어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이 자기에게 머물러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3. 주는 미쁘시므로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음

본문 13절에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미쁨이란 신실성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다는 것은 우리는 신실하지 못한 면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께서는 신실하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절대 진실하시고, 영원히 변함이 없으시다는 것입니다(히 13:8). 그러므로 예수님은 헛된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약속을 부인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약속하신 모든 복을 다 받습니다. 또 다른 뜻은 예수와 같이 참고, 예수와 같이 죽으면 반드시 예수와 같은 생명과 능력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4. 말다툼을 하지 말라

본문 14절에 “너는 저희로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말다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서로 말다툼 하면서 “내가 옳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방 후, 재건파에 속한 사람들이 이기선 목사님한테 와서 자기네가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재건파는 신사참배한 교회는 전부 “마귀당”이므로 목사는 전부 파면시켜야 되고, 예배당은 다 버려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신사 참배한 사람과 교제하는 것은 신사참배에 동참하는 죄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재건파 사람들이 이기선 목사님한테 와서 자기네가 옳다고 변론하니까 이기선 목사님이 성경에 “말다툼을 하지말라”고 했으니까, 말다툼을 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말다툼은 아무 유익이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옳다”는 변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이단들하고 말다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단들은 한두 번 말해보고 안 들으면 멀리 하여야 합니다. 이단하고 말다툼해 봐야 아무 유익이 없고, 도리어 듣는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말을 잘못해서 손해 주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5. 진리를 분별하라

자기의 영이 사는 신령한 생명의 꼴인가를 분별하라

본문 15절에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라고 하였는데, 진리의 말씀을 분변하지 못하면 미혹 받아서 다른 데로 끌리워 갑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말씀인가? 진리의 말씀이 아닌가? 또,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것인가?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게 아닌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는 것은 아주 힘든 것입니다. ‘진리인가? 아닌가?’를 옳게 분별할 줄 아는 신앙이어야 하는데,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목자의 음성은 신령과 진정입니다. 즉 영이 사는 말씀입니다. 성경 한 구절만 보고 세상 말 하는 것은 진정이 아닙니다. 즉 진리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생명의 꼴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겠는데, 바른 진리를 배웠으면, 들어보면 ‘영의 말씀인가? 아닌가?’를 알수 있습니다. 바로 배운 진리와 비교해 보면, 이것은 “진리이다, 진리가 아니다”를 옳게 분변할 수 있습니다. 벌써 들어보면 자기의 영이 사는 ‘신령한 꼴인가? 인간의 지식적으로만 말하는 것인가?’를 알 수있습니다. 

교리에 맞는가를 분별하라

또 ‘교리에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칼빈주의를 개혁주의라고 하는데, 칼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하면,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예정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즉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하게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원, 즉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을 믿습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는 구속에 대해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믿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의 밧줄이 구렁텅이에서 빠져 죽게 된 우리에게 내려왔는데, 이 밧줄을 내가 잡으면 살고, 내가 안 잡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알미니안 주의입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내가 잡아야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의 역사로 우리를 붙들어 매어 끌고 올라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오셔서 줄로 매어 끌고 올라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 갈래야 안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칼빈주의입니다. 알미니안주의는 제가 안 가고자 결정하면 안 가는 것이고, 제가 가기로 결정하면 가는 것입니다. 감리교와 성결교가 알미니안주의입니다. 장로교는 칼빈주의입니다. 이것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가서 ‘신령한 생명의 꼴이냐? 아니냐?’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6.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가 되라

모든 사람 앞에서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함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는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이 되어야 합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이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합니까?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이 되려면, 다른 사람 보기에 부끄러워할 만한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자기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함

그 다음에는 자기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로 인정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괜찮다고 해도 자기 양심에 “안 되었다”고 하면 그것은 부끄러울 것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함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부끄러울 것이 없어야 됩니다. 고린도전서 4:4-5에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하였는데, 바울이 자기 양심
에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으나, 주님께서 보실 때에 어떻게 보시겠느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하였는데, 주님께서는 어두움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것까지 다 아십니다. 속에 도적이 들어가 앉아있는 것을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어야 하고, 또 자기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이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이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날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아야 됩니다. 십일조를 드렸습니까? 자기는 십일조를 드렸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십일조를 드렸나?, 주일을 지켰다고 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백점 맞도록 주일을 지켰는가? 하나님 앞에 충성했다고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충성을 다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하였는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입니다. 즉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쳐놓고는 다음 날 아침에 다시 자기 몸을 도로 찾아 가서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바쳐 놓았으면, 이제는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인도대로만 해야 됩니다.

7.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본문 16-17에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저희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란 이단들, 비진리로 나가는 잘못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단자들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두 사람은 망령되고 헛된 말을 전하는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8.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서 있음

본문 18-19절에 “진리에 관하여는 저희가 그릇 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하므로”란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는 이단자들의 주장입니다. 부활에 대해서 믿지 않는 것은 악독한 이단입니다. 믿음을 다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이단 사상에 미혹되면 믿음이 다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그러나”가 있습니다. 즉 미혹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서 있다는 것입니다. 견고한 터는 바른 진리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디모데전서 3:15에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를 받아들이는 신앙과 바른 진리로 세워진 교회는 견고한 터입니다. 이단과 신신학과 그릇된 신비주의와 세속화 운동이 들어올지라도 견고한 터인 진리의 신앙과 교회는 무너뜨릴 수가 없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라는 구절을 이렇게 해석 하셨습니다. 바른 진리를 깨닫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즉 바른 진리로 나갈 사람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또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라는 구절은 해석하시기를, 세상이 다 타락이 되고, 미혹이 되어도, 바른 진리를 붙잡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바른 진리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바른 진리를 세워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김현봉 목사님의 해석입니다. 해석을 잘하신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도 신신학자와 이단들이 많이 나와서 진리를 무너뜨리지만, 견고한 터를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바른 진리를 깨닫는 사람을 세워 놓으시고, 그 사람을 통해서 바른 진리
를 세워나가는 일을 하십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고 하였는데, 주께서 자기 백성 즉 인친 백성을 사랑하시고, 보호하시며, 지켜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참 진리의 인침을 받은 사람은 옳지 않은데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떠나라고 했고, 옳지 않은 교훈으로는 영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침을 받은 자는 진리의 말씀으로만 그 영이 살 수 있습니다. 산 영은 비진리와 불의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중요합니다.
비진리가 많고, 교회가 타락 되어 나가지만 반드시 하나님의 견고한 터가 있어 하나님의 구원운동은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견고한 터로 인해 구원받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며, 최후에는 진리가 이기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