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히 쓰는 그릇이 되라
디모데후서 2:20-26
디모데후서 2:20-26
20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라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1. 교회에는 여러 가지 그릇이 있음
필요에 맞게 생긴 그릇들
필요에 맞게 생긴 그릇들
본문 20-21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뿐만 아니라 나무 그릇, 질 그릇이 있는데, 거기서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다고 그랬습니다.
큰집이라는 것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교회는 금 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사용하고 또 나무 그릇도 사용하고, 질그릇도 사용해서 하나님의 교회가 잘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금 그릇만 가지고는 안 되고 은그릇도 필요하고, 은그릇만 가지고는 안 되고 또 나무 그릇이 필요하고, 또한 질그릇도 필요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릇입니다. 다 하나님의 쓰시는 쓰는 그릇입니다. 다 쓸데가 있어서 그릇을 준비해 두신 겁니다. 쓰지 않는 그릇은 괜히 놔둬야 자리만 잡고 소용
없습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쓰는 그릇만 필요합니다. 쓰지 않는 그릇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쓰기에 합당한 그릇이 여러 가지 종류인데 다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다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전부 다 그릇입니다. 교인들 전부 다 그릇인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도 그릇입니다. 다 그릇인데 각자 무슨 그릇인가가 문제입니다. 금그릇인가? 은 그릇인가? 나무 그릇인가? 질그릇인가?
나무 그릇도 필요합니다. 나무를 쓸 데에는 나무를 써야지 금으로 하면 안 됩니다. 강대상이 다 나무고, 의자, 벽에 덴 것이 다 나무이듯 나무가 필요합니다. 금으로 다 해놨으면 그게 무엇이 되겠습니까? 의자 금으로 했으면 좋겠습니까? 세면기, 변기 다 사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밥그릇도 요새는 사기 밥그릇이 유행입니다. 옛날에는 놋그릇에다 밥을 먹었는데, 우리 어렸을때는 다 놋그릇을 사용했습니다. 놋그릇을 사용하다가 좀 더러워지면 그 옛날엔 놋그릇 닦는 약이 없어서 기왓장 같은 것을 가루로 빻아서 그 가루로 닦곤 했는데 다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놋그릇 쓰는 집이 없습니다. 있어도 안 쓰고 얼마 전에는 스텐 그릇을 쓰다가 요새는 사기그릇으로 바뀌었습니다. 다 사기그릇을 씁니다.
그렇게 그릇이 여러 가지인데 우리 교인들이 다 그릇인 줄 알아야 됩니다. 나도 큰집 되는 교회의 그릇이라고 이렇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 그릇을 적당한 곳에서 적당하게 사용해야 됩니다. 그릇 사용하지 않고 둬두면 다 더러워지고 그 다음엔 못 쓰게 됩니다. 사용해야 됩니다. 우리가 다 그릇인 줄 알아야 됩니다. 자기가 무슨 그릇이겠는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난 무슨 그릇이겠나?’, 각자가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제가 이 설교를 했더니 어떤 사람이 와서 자기는 질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질그릇도 필요합니다. 요새 질그릇 무엇에다가 씁니까? 설렁탕 먹을 때, 고추장 담을 때, 사기도 흙으로 만드는 것인데 사기도 질그릇 가운데 일종입니다. 그것 다 필요합니다. 필요하지 않은 그릇이 없습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놨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와 같은 사람은 금 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아론과 미디안 같은 사람은 은그릇이라 볼 수 있고, 그 다음에 모세를 받들어서 나가는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사람, 출애굽 때에 보조한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 나무 그릇, 질그릇에 해당됩니다. 엘리야는 금 그릇이라 볼 수 있고,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는 나무 그릇이나 질그릇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릇은 달라도 상급은 같이 받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1-42절에,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냉수 한 그릇 준 사람하고 선지자하고 상은 같이 받습니다. 그래서 자기 위치에서 잘 봉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필요한 그릇이 되어 이용당할 것
필요하지 않는 것은 다 내 버려야 됩니다. 거기 놓아둘 필요가 없습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은 다 내버리고 언제든지 필요한 그릇만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필요한 그릇만 교회 두어뒀습니다. 한 번이라도 필요한데 쓰려고 하나님께서 우리 그릇들을 다 둬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성도는 잘 이용당하도록 해야겠습니다. 자기가 뭘 해야 될지 모르는 사람 있습니까? 그냥 나는 안 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안 해도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뭘 해야 될지를 찾아서, 그 그릇대로 쓰임을 당하면 됩니다. 하나님 앞에 이용당하십시오. 이용당하지 않을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필요 없는 그릇을 뭐 하러 둬두겠습니까? 필요하기 때문에 둬둔 것입니다. 남자 교인이나 여자 교인이나 다 필요합니다.
이용당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이용당하는 그릇, 합당한 그릇이 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그릇이 있는데 하나님께 다 필요한 사람인 줄로만 알면 됩니다. 자기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 생각입니다. 다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집에 쓰려고 쓸 때가 있어서 둬둔 것입니다.
그릇에 필요한 대로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심
고린도전서 12장 4-11절에,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은사의 그릇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는 지혜의 말씀 전하는 사람, 지식의 말씀 전하는 사람, 성령으로 믿음 받은 사람이 제일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을,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 분별함을, 어떤 이에게는 각종 방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 통역함을 주시나니, 모든 것은 같은 성령님이 행하셔서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그릇이 필요하시기 때문에 여러 가지 필요한 걸 주셨습니다. 그릇은 다 쓰는 것입니다. 안 쓰는 그릇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서 안 쓰는 그릇은 없는 것으로 아십시오. “나도 그릇이다”, 이렇게 알고 하나님께서 쓰실 때에 쓰임을 당해야겠습니다.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려고 할 때에 쓰임을 당하는 그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쓰임 안 당하면 안 됩니다. 쓰시려고 하면 쓰임을 당해야 합니다. 무엇에 갔다 쓰던지, 하나님이 필요한데 쓰시니까 거기에 쓰임을 당해야 합니다.
적재적소에 그릇을 사용할 것
출애굽기 18장 20-22절에, “그들에게 율례와 법도를 가르쳐서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그들에게 보이고 그대는 또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무망하며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재덕이 겸전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실무망하고,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세워서 천부장을 세우고, 백부장을 세우고, 십부장을 세워서 일하라고 그랬습니다. 적재적소라는 말이 있는데, 천부장 자격이 있는 사람은 천부장의 자리에 세워놓고, 백부장의 실력이 있는 사람은 백부장에 세워 놓고, 오십부장 실력 있는 자는 오십부장으로 세워놓고, 십부장 실력있는 사람은 십부장 자리에 세워두라는 것입니다.
그릇이 다 다릅니다. 그릇대로 사용해야 됩니다. 한 말 담을 수 있는 그릇에 두 말 담으면 한 말은 다 넘쳐서 버리게 됩니다. 두 말 그릇에다가 너 말을 담으면 두 말은 또 내 버립니다. 넘쳐서 내 버립니다. 그렇게 그릇이 따로 있습니다. 작은 그릇에 많은 물건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릇을 봐서 천부장 될 사람은 천부장 맡기고, 백부장 될 만한 사람은 백부장 맡기고, 오십부장, 십부장, 그릇에 따라서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적재적소라는 것입니다. 적재적소에 사용을 해야 일이 잘 되나갈 수 있습니다.
큰 집에는 여러 가지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교회는 여러 가지 사람이 다 필요합니다. 사르밧 과부와 같이 공궤하는 사람, 받들어 나가는 사람, 수종을 드는 사람, 엘리사와 같이 사용될 사람 등 교회는 여러가지 그릇이 있습니다.
그릇들은 한 지체로서 하나가 되어 가야함
고린도전서 12장에 14-27절에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한 몸에 비유했는데, 몸에는 이목구비 사지백체(耳目口鼻 四肢百體)가 있습니다. 눈 없으면 못살고, 입이 좋다고 해서 입만 있으면 못살고, 손이 좋아도 손만 있으면 못삽니다. 발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 폐나 간장이나 신장이나 그런 것도 다 필요합니다. 외부에 나타나서 일하는 것보다 내장 속에서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손이나 발이나 입이나 이것도 중요하지만, 속에서 일하는 심장 폐 간장 췌장 등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것들이 다 몸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것을 다 이용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대장, 소장 그것들을 다 이용해서 건강을 유지합니다. 하나가 병이 생기면 전체가 다 병원에 가야 합니다.
지체는 서로 약한 사람을 붙들어 주고, 가서 쓰러진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고, 병든 자를 가서 도와주는 일에 쓰입니다. 힘없는 사람을 도와줍니다. 갈 바를 알지 모르는 사람에게 갈 바를 알려주는 일에 쓰입니다. 이스라엘 육십만 명이 갈 바를 모를 때에 다 쓰였습니다. 모세는 모세대로 쓰이고, 아론은 아론대로 쓰이고, 미리암은 미리암 대로 쓰이고, 이스라엘 육십만 명이 가나안으로 가는데 다 쓰였습니다. 무엇에 쓰였을까요? 약한 사람 붙들어 주고, 쓰러진 사람 일으켜주고,
갈 바를 알지 못하는 사람 갈 바를 알려주고, 만나를 매일 아침 주셨는데 만나를 거두는데 도와주고, 생수를 먹을 때 도와주고, 생수 먹는 법도 도와주고, 힘이 없는 사람은 서로 붙들어 주고 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육십만 명이 상부상조하며 서로 붙들어 주고 서로 도와주고, 모세의 인도를 잘 받들어 가며 가나안으로 향해서 전진하도록 한 것입니다. 몇 달이 되어서 피곤하지만, 그래도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육십만 명을 모세가 다 끌고 갈수 있습니다.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 주고 가르쳐 주고 인도해주고 그러면서 육십만 명이 간 것으로 봐야합니다.
오늘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서로 권면하고 양보하고, 다른 사람을 잘 인도하고, 자기만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을 좋은 자리에 앉도록 하고, 육십만명을 그렇게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에 쓰임을 당해야 하겠는지 연구해야 합니다. 모든 그릇은 자기가 무엇에 필요로 이용당해야겠는지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 예수님 믿는데 도와주는 일하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 하는 것도 쓰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는데 연보해야 될게 많습니다. 선교하는 거라든지, 예배당 짓는 거라든지, 개척교회 연보해서 하는 일이 많은데, 연보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한 몫 하는 그것도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그릇입니다.
귀히 쓰는 그릇하고 천히 쓰는 그릇하고 상급은 같습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와 같은 상을 받고,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과 같은 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일은 달라도 상은 같습니다.
못 쓸 것은 이기주의는 못씁니다. 이기주의는 다른 사람은 상관없이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쓸데없는 그릇입니다. 손해주는 그릇입니다. 쓸데없는 그릇은 어떻게 합니까? 내다 버린다고 했습니다. 버려야 합니다. 쓸데없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자기만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용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쓰임을 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힘껏 봉사할 때 나가서 쓰임 당하는 것이 귀히 쓰는 그릇입니다. 봉사하기 싫은 사람은 관두십시오. 하기 싫은 사람은 제게 얘기하십시오. 죽도록 안 시킬 것이니까 봉사하기 싫은 사람 얘기 하십시오. 봉사하는 게 쓰임당하는 거 아닙니까? 쓰임 당하는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도하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이 쓰임당하는 것입니다.
다 이용당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적 정신을 가지고 이용당해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자, 자기 신앙에도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는 그런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전체 유익이 되는 자,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운동에 유익을 주는 필요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다 이용당해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일을 주어서 서로 도와주고 붙들어주고 인도해주고, 갈 길을 같이 가게 해주고, 만나도 같이 먹게 해주고, 생수도 같이 먹게 데려가 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육십만명을 혼자 다 인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붙들어 주어서 열두 지파가 서로 다 도와주면서 애굽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릇은 주인이 쓰는데 이용당해야 합니다. 자기 욕심으로 잘 되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자기가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제 아무리 잘 되겠다 해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낸 대로 됩니다. 하나님께서 쓰기에 합당한 데에 이용당하면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토마스 목사가 영국 부유한 나라에서 한국에 올 때에, 선교사로 오다가 대동강에서 순교 당하지 않았습니까? 큰 복 받은 것입니다. 선교많이 해서 교회 많이 세운 사람보다, 순교당해서 하늘나라에 간 것이 큰 복을 받은 것입니다. 큰 그릇입니다. 순교당하는 그릇이 큰 그릇입니다. 이것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나는 그릇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그릇이다. 다 이용당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가는 것이다”, 상부상조하여 서로 받들어주고 서로 도와줄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가나안을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릇입니다. 상부상조해서 하나님을 향해서, 하늘나라를 향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자기 몫을 다 차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시는 면에 이용당해야 합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이용당해야 합니다. 다 이용하십니다.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지 말고 무슨 양식을 위해서 하라고 했습니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라고 했는데, 썩는 양식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세상의 썩어질 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해서 하나님께 이용당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돈 많이 버는 대로 가겠다고 해서 나가면 썩는 양식을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첫째는 믿는 일입니다. 믿는 일을 위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위해 그릇에 맞게 쓰심
군대가 한 군단이 움직이려면 여러 가지 역할을 하는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보병이 한 사단 가려면 포병이 따라 가고, 그 다음에 앞에 가서 적진 살펴서 연락해주는 병사들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관측병이 없이는 포를 못 씁니다. 그 병사가 나가서 연락해서 “저기 적군이 몇 킬로 내에 있다”고 포병에게 연락하면 포를 쏘고, 그 다음에 보병이 전진해 갑니다.
항공모함도 한번 움직이려면 여러 선척이 따라 움직인다고 합니다. 항공모함 혼자만 못 갑니다. 여러 함대가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이지스함은 비행기가 500대 나는 것을 한꺼번에 떨어뜨릴 수 있답니다. 적기가 500개가 한꺼번에 날아와도 일시에 다 떨어뜨릴 수 있는 그런 실력이 있답니다.
그렇게 우리 교회가 나가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합니다. 기술자도 필요합니다. 전부다 싸움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병은 나가서 다리도 놔주고, 그리고 기술자가 나와서 포를 고쳐주기도 하고 전차를 고쳐주기고 하고, 또한 전차부대도 필요합니다. 그 여러 가지를 하나님이 다 사용을 해서 이 교회를 인도하고 진리 운동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그릇인데 하나님이 적재적소에 다 사용합니다. 적당한 곳에 사용 합니다. 그릇을 봐서 “이 그릇은 여기에 사용해야 되겠다. 저 그릇은 저기에다 사용해야 되겠다”고 하실 때에, 하나님이 사용하시는대로 이용당해야 됩니다.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뭐 금 그릇 되겠다. 은그릇되겠다. 내가 저기서 하겠다. 여기서 하겠다. 그러는 것이 아니고 주인이 사용하는 대로 사용 당하면 됩니다. 여기다 쓰던지 저기다 쓰던지, 주님이 쓰시는 대로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이쪽에서 쓰다가 저쪽에 필요해서 저쪽으로 그릇을 옮겨 놓으면 거기서 이용당하면 됩니다. 주인이 사용하는 대로 이용당하면 됩니다. 자기가 뭐 “저거 해야 되겠다. 이거 해야 되겠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2. 깨끗케 한 그릇을 귀히 쓰심
깨끗함으로 예비 된 그릇이 될 것
본문 21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그릇을 하나님이 귀히 쓰신다고 그랬습니다.
금 그릇도 깨끗하지 못하면 못 씁니다. 질그릇이라도 깨끗하면 하나님이 귀히 씁니다. 나무 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나는 금 그릇 되겠다. 은그릇 되겠다”는 그런 건 하나님의 예정대로 되는 것이고, 귀히 쓰는 그릇이 되려면 깨끗하면 됩니다. 나무 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질그릇도 깨끗하면 귀히 씁니다. 깨끗해야 됩니다. 청결한 마음, 깨끗한 심령, 신앙 양심을 바로 쓰고 깨끗이 하라는 말입니다.
정욕을 피하고 변론하지 말 것
본문 22절에,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무엇을 깨끗하게 하라고 그랬냐면,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그랬습니다.
정욕을 피해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정욕을 피해서 깨끗해지는 것이 근본 같습니다. 말세에는 음란, 방탕, 향락, 술 취하는 것, 호색하는 것에 다 빠지는데, 그런 정욕에 대해서 깨끗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요새는 정욕적인 세상이 됐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다 벌거벗고 돌아다니고, 뉴스를 봐도 벌거벗고 나오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새 길가에 나가보면 넓적다리 다 내놓고 가슴 다 내놓고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정욕적인 음란, 방탕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정욕을 피해야만 깨끗해진다는 것입니다.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깨끗한 마음 정욕을 피하라는 것입니다. 정욕을 피하는 것이 근본 같습니다. 깨끗해야 귀히 쓰이는데, 정욕이 좀 묻어 돌아가면 귀히 쓸 수가 없습니다.
아예 깨끗하게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아야겠습니다. 의, 믿음, 사랑, 화평에 서라는 것입니다. 의에 서고, 믿음에 서고, 사랑에 서고, 화평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본문 23절에,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고 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4절에는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라고 했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옳으면 옳은 것을 가지고 나가면 되지 변론한 필요가 없습니다. 잘못 나가는 사람 한두 번 말해 놓고 안 들으면 내버려두십시오. 그걸 굴복시키려고 해도 안 됩니다. 굴복은 하나님이 시켜야지, 사람이 굴복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바른 신앙을 가지고 바른 말을 하고, 이렇게 해도 안 들으면 그만두고, 듣는 사람만 인도해야 되겠습니다. 무식한 변론에서 다툼이 나옵니다.
3. 주의 종의 도
비방하는 말에 아니라 하고 가만히 있을 것
비방하는 말에 아니라 하고 가만히 있을 것
본문 24절에,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라고 했습니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며’, 다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툴 일이 생겨도 안 다퉈야 됩니다. 참아야 됩니다.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싸우지 말고, 파리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다른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 대도 자기가 안 잡아먹었으면 되지, 그것 때문에 속상할게 뭐입니까? 언젠가는 안 잡아먹었으면 안 잡아먹은 게 드러납니다. 싸우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할 것은,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는 말이 돌아갈 때에 자기가 ‘파리 발이라도 하나 먹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봐야 됩니다. 발 먹었으면 회개하면 됩니다. 앞 발을 먹었든지 뒷발을 먹었든지, 아예 회개하면 됩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자기를 향해서 비방하는 말이 돌아갈 때에 가만 내버려두면, 그 비방은 물에서 나온 고기와 같아서 말라 죽는다고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이 별소리 다 해도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기는 방법은 가만히 있은 것입니다. 안 했다고 다니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만 바로 했으면 됩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 것
본문 25-26절에,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지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는 파리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돌아다니는 그런 자들입니다.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거역하는 자에 대해서 같이 거역하지 말고 온유함으로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다 이기라는 것입니다. 안 잡아먹었으면 안 잡아먹었다고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입니다. 그러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한다고 했습니다. 거역하는 자, 반대하는 자가 회개하고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날지도 모르니까, 온유함으로 징계하고 믿음으로 잘 이겨나가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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