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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9일 수요일

히브리서 11:11-19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
히브리서 11:11-19

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12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14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15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17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18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1. 모든 믿는 사람의 모본이 되는 신앙

본문 11-12절에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사라의 믿음은 우리에게 모본이 됩니다. 로마서 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15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마귀의 세력을 멸하실 것을 가르쳐 준 최초의 복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창세기 15:5에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하시며 정식으로 그리스도를 언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어 구원 받는 사람은 전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며, 아브라함은 우리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정식으로 네 자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는 사람은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2-23에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 품에 들어갔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뜻이고, 아브라함의 신앙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모든 믿는 사람의 모본이 되는 신앙이고,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신앙도 모든 믿는 사람의 모본이 되는 신앙입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

사라의 신앙은 참 좋습니다. 사라는 90세가 되어서 전혀 생산할 희망이 없는 자리에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명년 이때에 네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실 때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형편상으로는 아들을 낳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는 구십 구세이고, 사라의 나이는 팔십 구세인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도 사라는 믿었습니다. 또 아브라함도 믿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낳을 수 없지만 “하나님이 낳게 해주신다고 하셨으니까 낳을 것을 믿습니다”하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 믿음이 더 견고해졌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갔습니다. 죽은 몸과 같은 몸을 살려서 아들을 낳게 해주실 것을 믿은 신앙이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입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아브라함과 사라입니다. 인간의 모든 방법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다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창세기 21:1-3에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사라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늙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아브라함이 그 낳은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라고 하였습니다.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사라에게 권고하셨습니다. 또 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까 그 말씀대로 하나님이 사라에게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라가잉태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죽은 몸과 같은 그런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회생시켜서 아들을 잉태하게 하셨고 또 기한에 미쳐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은 죽은 나무가 다시 살아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을 믿은 신앙입니다. 즉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죽은 몸과 다름없지만, “하나님이 죽은 몸을 다시 회생시켜서 아이를 낳게 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할 것이 없다”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고 사라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 이름을 이삭이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

본문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내가 네게 지시한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려라”고 할 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였는데, 이삭이 결혼도 하기 전에 번제로 드리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는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번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이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서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작정하고,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나무를 쪼개어 나귀에 싣고, 이삭과 사환들을 데리고, 한 손에는 불을 들고 하나님이 지시하신 산으로 갔습니다.

4. 변하지 않는 신앙

하나님이 지시하신 모리아 산으로 가는 길은 사흘 길입니다. 사흘 길을 가는 동안에 아브라함의 신앙이 변치 않았습니다. 사흘 동안 이삭과 이야기를 하면서 갈 때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에 대하여 시험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아브라함의 신앙입니다.
보통 한번 드리기로 작정했다가도 마음이 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나니아는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하나님께 바치려고 했다가, 마음이 변하여 얼마는 감추고, 얼마만 바쳤다가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서 죽었습니다(행 5:1-11). 그런데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가는 사흘 동안 어떻게 신앙이 변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을 했으므로 “무조건 바쳐야 된다”는 신앙을 가지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안 들어오도록 하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 안 돌아가고, 항상 하나님과 영적 교통하며 갔기 때문에 사흘 동안 그 마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모리아 산으로 갈 때에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갔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려야 되겠는데, 어떻게 해야 될까?’하면서 갔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고 하고, 이삭에게 번제 나무를 지우게 하고 아브라함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아브라함과 이삭만이 동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창 22:5). 사환들과 함께 갔다고 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에 사환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사환들은 젊은 사람들일 것이고 또 몇 사람이었을 것인데, 나이 많은 아브라함이 젊은 사람들한테 이기겠습니까? 그러면 제사 드릴 때에 방해를 받게 되고, 흠이 있는 제사가 됩니다. 그러므로 흠 없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야 할 텐데, 어떻게 하여야 시험이 들어오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십니다. 그래서 사환들은 산 아래에 떼어놓고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고 내려올 때까지 너희는 여기 있어라”고 한 것입니다.

5. 하나님을 경외한 신앙

이삭이 아버지에게 ‘번제할 나무는 여기 있는데,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할 때에도 아브라함은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22:8-12에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방해받지 않으려고 사람들을 산 아래 머물러 두게 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입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가면 분명히 아이를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 확실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면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서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쉬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가니까 하나님이 그런 지혜를 주신 것입니다.

6. 정성을 다하는 신앙

또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을 나무를 집에서 준비하여 나귀에 싣고 사흘 길을 갔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섬길 때에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섬겼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섬길 때에 정성껏 섬겨야 합니다.

7. 단 마음으로 바치는 신앙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하나님이 너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다”고 했을 때에, 이삭은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김현봉 목사님 해석에 의하면 이삭이 “참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다 받아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라고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신앙교육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즉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참 복이다”라고 가르쳤으며, 이삭은 아브라함의 신앙을 그대로 배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큰 복인데 나 같은 것을 이렇게 받아주겠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결박해 주십시요”라고 하면서 결박을 순순히 당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단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야만 하나님이 그 제물을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그러면 단 마음으로 드리는데 결박은 왜 했겠습니까? 그 이유는 칼로 찌를 때에 사람이 본능적으로 칼을 붙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좋지 않은 행동이 나올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박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합당치 않는 행동을 하게 되면 흠 있는 제사가 되겠기에 결박한 것입니다. 사람이 결박당하고 사는 게 중요합니다. 처음에는 단 마음으로 나가지만, 나가다가 보면 인간의 본능이 나올 염려가 있습니다. 인간의 본능이 나오게 되면 처음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얽매여 살아야 됩니다. 즉 서로 제재를 받으면서 살아야 됩니다. 법에 매여 살아야 되고, 환경에 매여 살아야 됩니다.

교회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얽매여 사는 게 좋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나가서 등록을 하게 되면 얽매일까봐 등록을 안하고 뒷전에 앉아 있다가 예배가 끝나기도 전에 달아나는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나중에는 안 나가고 싶으면 교회에 안 나갑니다. 또 중간에 나가고 싶으면 나갑니다. 교회에 안 나가고, 나가고 할 때에 누가 권면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얽매여 살아야 됩니다. 교회에 등록을 하고, 주의 종들의 권면을 받으며 신앙생활을 하여야 신앙이 자라납니다. 목사들도 처음에 목사 안수 받을 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단 마음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며 생명까지 바치겠다고 하며 나갑니다. 그러다가 원망 불평하며, 예배당을 파는 사람 등, 별의별 사람들이 다 생깁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노회나 총회에 얽매여 법 안에서 제재를 받으면서 나가야 하나님의 일에 지장이 없이 되어 나갑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같이 하겠다”는 말씀도, 한 사람이 기도하는 곳에 물론 하나님이 함께 계시고 들어 주시지만, 두 세 사람이 모였다는 것은 결국 제재를 당하는 것입니다. 즉 서로 협력하는 것도 되고, 잘못 나갈 때에는 제재를 받습니다. 어떤 목사는 노회와 총회를 탈퇴해서 교회를 팝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반드시 노회나 총회에 속해 있어야 됩니다. 또 우리 자신들이 제재를 받고 살아야 됩니다. 그래야 마귀의 시험에 들어 인간의 욕심대로 못된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결박을 하지 않으면, 자기 본의 아닌 행동이 나올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고 번제로 드려 이삭이 재가 된다고 하여도 아브라함은 전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변함없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삭으로 말미암아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지겠다고 하신 약속인데, 아브라함은 그대로 될 줄을 믿고, 칼로 이삭을 찌르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급히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수양을 잡아 제사 드리고 이삭을 데리고 내려갔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이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고 말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은 신앙입니다. 사라의 신앙도 죽은 몸을 살려서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을 믿은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라를 권고하셔서 아들을 낳게 하셨습니다. 믿은 그대로 된 것입니다.

8. 부활신앙

창세기 22:5에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하였는데 이 구절을, 한국성경공회의 ‘바른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 머물러라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우리가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라고 번역한 것이 바른 번역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다시 살려 주셔서 이삭과 같이 (우리가) 돌아온다”는 이런 부활신앙이 있었으므로 “우리”가 돌아온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서 경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는 것은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주실 것을 믿고 이삭을 데리고 다시 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본문 19절에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란 이삭을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찌르려고 할 때에는, 아브라함이 마음으로는 이삭을 완전히 주께 바친 것이며, 하나님은 이삭을 완전한 제물로 받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친 자이며,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자입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신앙을 우리가 본 받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치라고 하면 무조건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순종할 때에 언제 일어났습니까? 아침 일찍 일어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이렇게 정성껏 해야 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야 합니다. 즉 새벽 기도부터 정성껏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늘 하나님과 교통하며, 육신의 생각이 들어오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또 방해받을만한 것은 언제나 미리부터 처리해 나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사람들을 데리고 갔지만 번제 드리는 곳에는 방해받을 게 뻔하므로 “여기 머물러 있어라”하고 데리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때는 한마디면 됩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러 있게 하지 않고 데리고 올라 갔다고 하면 이것은 고함을 치고 죽을 힘을 다한다고 해도, 110세 넘은 영감이 어떻게 젊은 사람들한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여기에서 잘 배워야 됩니다. 또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었는데, 이것이 믿음입니다. 로마서4:19-24에 “그가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아브라함의 신앙과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9.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는 신앙

예수 믿는 사람이 죽어 장사 지낸바 되어도, 마지막 날에 다시 예수님과 같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 올라갑니다. 거기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삽니다. 우리의 본향 집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본문 15-16절에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13절에, 성도를 “외국인과 나그네로라”고 하였습니다. 땅에 있은 본향은 잠시 살다가 이 세상 떠날 때에 영원히 떠나게 되지만, 하늘에 있는 우리의 본향은 영원히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영생 복락을 누리는 곳입니다. “저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 세상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오직 하늘에 있는 본향을 찾으려고 힘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늘에 있는 본향을 늘 사모하면서 준비하며 나가야 합니다. 세상을 자기 본향으로 삼고 하늘나라를 바라보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이 기뻐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임을 기억하고 하늘의 본향을 사모하면서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한 성을 예비하셨습니다. 저희를 위하여 한 성, 즉 하늘나라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늘나라를 본향으로 믿고 사모하는 성도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하늘나라를 준비했습니다. 창세전에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신앙을 가지고, 천성을 향해서 나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