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할례를 받으라
예레미야 4:1-31
예레미야 4:1-31
1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2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3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4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5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6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7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 8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9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왕과 방백들은 실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 10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미쳤나이다 11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 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 함도 아니며 12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 13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14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 15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16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17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8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치느니라 19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20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 21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22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24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25내
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26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 27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 28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29기병과 활 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 30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찌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31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륙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
1. 여호와께로 돌아와 진실, 공평, 정의에 서면 열방이 복을 빌어줌
본문 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 진실과 공평과 정의로 여호와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면 열방이 나로 인하여 스스로 복을 빌며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돌아 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와 빛이 나타나므로 세계 열방이 좋아하며, 그 빛으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로 인하여 자랑하리라’는 것은 그 빛을 보고 열방이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뢰하여 그 뜻대로 살면, 그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성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됩니다(롬 2:24).
그러면 성도가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려야 합니다.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이란 우상 숭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질투하시고 싫어하십니다(출 20:4-5).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우상을 다 버려야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둘째, 마음이 요동치 않아야 합니다. 마음이 요동하면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고, 하나님을 따라가다가 의심함으로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왕상 18:21; 약 1:6-8).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고 아니라 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고후 1:18-20). 그러므로 어떠한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면 ‘아멘’하고 받아야 합니다(느 8:6). 셋째,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야합니다. 진실은 외식이나 거짓이 없는 참된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성도는 거짓이 없이 신앙 양심대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은 신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또 성도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모든 일을 공평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평을 행한다는 것은 압제하거나 탈취하지 않고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올바른 것을 말합니다.
(고후 1:18-20). 그러므로 어떠한 말씀이든 하나님의 말씀이면 ‘아멘’하고 받아야 합니다(느 8:6). 셋째, 진실과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야합니다. 진실은 외식이나 거짓이 없는 참된 것을 말합니다. 언제나 성도는 거짓이 없이 신앙 양심대로 진실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은 신의를 지키는 것입니다. 또 성도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모든 일을 공평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평을 행한다는 것은 압제하거나 탈취하지 않고 올바르게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는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올바른 것을 말합니다.
2. 묵은 땅을 기경(起耕)할 것
본문 3절에 “나 여호와가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묵은 땅’은 단단하고 가시덤불이 나서 파종할 수 없는 거칠어진 땅을 가리킵니다. 신령한 뜻은 우리 마음이 완악하고 강퍅하여 세상에 속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묵은 땅을 갈아엎으라는 것입니다. 즉,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온유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굳은 마음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며 죽은 것입니다. 언제나 온유함에 생명이 있습니다.
나무도 연한 가지에서 새싹이 나옵니다. 묵은 땅과 가시덤불에 종자를 심은 것은 성공하지 못합니다(마 13:1-30). 또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가시덤불 속에는 씨를 뿌릴 수 없고 씨를 뿌리더라도 가시덤불이 영양분을 다 흡수하기 때문에 결실하지 못합니다. ‘가시덤불’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악한 생각과 욕심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회개하고 진리의 말씀을 받아야 그 말씀이 자기에게 생명이 되고, 그 생명이 자라나 결실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염려, 재리의 욕심 등을 다 뒤집어엎어서 없애치워야 합니다. 염려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욕심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 염려, 재리의 욕심 등을 다 내어버리고 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살려주시면 살고, 하나님께서 죽이시면 죽자’라고 하며, 생명 전체를 하나님께 맡겨 놓고 하나님의 명령대로만 한 걸음씩 걸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 복장부터 고쳐라’는 말이 있는데, 욕심을 채우려는 복장을 다 고쳐야 합니다.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습니다. ‘할례’는 아브라함 때부터 행하여 온 성례로서(창 17:9-10), 남자 아이가 출생하면 8일 만에 양피 끝을 베어버리는 의식입니다. 할례의 뜻은 정욕을 제거한다는 것이고, 하나님께 속한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표입니다(창 17:9-10).
빌립보서 3장에 사도 바울이 참 할례는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봉사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요 4:23). 또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생명으로 삼으며 예수님만 자랑하는 생활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육체 중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즘 오락과 먹자주의, 육체 중심으로 나가는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이 육체 중심으로 나가니까 교회도 육체 중심으로 나가는 곳들이 많은데, 교회가 육체 중심이면 안 됩니다. 열린 예배, 열린 음악회 등이 교회 안에 들어와 육체의 흥분주의로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참 할례가 아닙니다. 참 할례는 육체 중심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봉사하는 교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 그리스도 예수로만 자랑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므로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만족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즐거워하며,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예배는 육체 중심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는데 요즘 교회가 육체 중심으로 다 기울어졌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에서 떠났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것이 마음에서 떠났으므로 육체를 자랑할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설교하면서 자기 가족 자랑을 하는데, 자기 자랑하는 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하려면 무엇을 자랑해야 옳습니까? 자기의 약한 것을 자랑하여야 합니다. 자기가 몇 가지 잘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랑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잘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절대 자기 자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교회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돈 많이 주고 데려와
서 주일에 노래 부르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옳지 않습니다. ‘주일에는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하였는데, 주일에 노래하는 자들을 돈 주고 불러와 교회 안에 세우는 것은 교회가 육체주의로 기울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요새 북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점점 더 늘어납니다. 교회가 굿하는 곳입니까? 북치고, 장구치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교회입니까?
하여간 육체가 없어져야 영의 것이 살아납니다. 서로 반대입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고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린다’고 하였습니다(갈 5:16-17). 육체의 소욕대로 교회가 기울어지면 성령의 역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아예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예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예수로 즐거워하고, 예수로 만족하고, 예수로 충만하고, 예수로 부자가 되고, 예수로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나가는 것이 참 교회입니다. 오직 ‘예수’만 해야 합니
다. 찬송가를 할 줄 모르면 “예수, 예수”만 하여도 제일 좋은 찬송이 됩니다. 꾀꼬리 같은 소리로 찬송을 하면서 속에는 못된 생각을 가지고 남을 미혹시키느라 육체 중심으로 나가는 것은 마귀의 세계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육체의 쾌락주의로 나가는 것이 잘못된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곳이고, 예수님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육체를 자랑하며 예수님은 뒷전에 놓
고 자기 자랑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뜯어 고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참된 할례를 행하는 교회를 이루어나가야 합니다. 참된 할례는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며,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참 교회입니다.
3. 가시덤불을 불사름
본문 5-7절에 “너희는 유다에 선포하며 예루살렘에 공포하여 이르기를 이 땅에서 나팔을 불라 하며 또 크게 외쳐 이르기를 너희는 모이라 우리가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자 하고 시온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라, 도피하라, 지체하지 말라, 내가 북방에서 재앙과 큰 멸망으로 이르게 할 것임이니라 사자가 그 수풀에서 올라왔으며 열방을 멸하는 자가 나아왔으되 네 땅을 황폐케 하려고 이미 그 처소를 떠나 나왔은즉 네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민이 없게 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범죄하고도 회개하지 않으므로 바벨론의 군대가 쳐들어와 그들을 점령하고 기를 세우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타락되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시어 이와 같이 황폐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책임이 교회에 있습니다. 그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오는 것도 교회가 부패하면 오는 것입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부패했으므로 하나님께서 공산주의 혁명을 통해 교회를 말살시키셨습니다. 이북이 공산주의가 된 것도 1938년 제27회 총회에서 신사 참배를 결의했는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입니다.
본문 8-9절에 “이를 인하여 너희는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 대저 여호와의 맹렬한 노가 아직 너희에게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왕과 방백들은 실심할 것이며 제사장들은 놀랄 것이며 선지자들은 깜짝 놀라리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쳐들어올 것이므로 유다 백성들은 굵은 베를 두르고 애곡하라는 것입니다. 즉, 이제 하나님의 맹렬한 노가 내려올 텐데 회개하고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평안하다, 평안하다’하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성도가 죄에 대해 애통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애통하게 됩니다.
본문 10절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진실로 이 백성과 예루살렘을 크게 속이셨나이다 이르시기를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리라 하시더니 칼이 생명에 미쳤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속이셨나이다’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말을 예레미야가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하는 말을 듣고 평안할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환난을 당하고 보니 속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속이신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은 하나님께서 참 선지자들을 보내어 환난을 예고하고 회개하도록 권면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지 않으므로 거짓 선지자들에게 속도록 하나님께서 내버려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들은 미혹을 받도록 내버려두십니다(살전 2:9-12). 진리를 사랑하고 순종하는 자는 미혹을 받지도 않고 속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평안할 줄로 알아 죄를 회개하지 않고 말씀을 순종하지 않다가, 멸망이 임할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참된 선지자들은 성도들의 죄를 책망하고 마음의 할례를 받게 하여 묵은 밭을 기경하게 하고, 가증한 것을 버리게 하며, 진리와 공평과 정의를 세워나가도록 합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하다. 잘된다. 복 받는다”라고 하며 귀에 듣기 좋은 말만 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유다 백성이 죄를 회개치 않고 육체주의로 나가자, 하나님께서 평강 대신에 칼을 보내어 많은 사람을 죽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속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죽하셨으면 칼을 보내셨겠습니까? 죄만 짓고 나가므로 칼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속이신 것이 아니고, 자기들이 칼을 자청한 것입니다.
본문 11-12절에 “그때에 이 백성과 예루살렘에 이를 자 있어서 뜨거운 바람이 광야 자산에서 내 딸 백성에게 불어온다 하리라 이는 키질하기 위함도 아니요 정결케 하려 함도 아니며 이보다 더 강한 바람이 나를 위하여 오리니 이제 내가 그들에게 심판을 베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뜨거운 바람’은 맹렬한 심판의 재앙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무서운 바벨론의 군대를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할 것을 가리킵니다. ‘바람’에는 3가지가 있는데, 키질하는 바람, 정켤케 하는 바람, 심판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첫째, 키질하는 바람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바람입니다. 그 다음에는 정결케 하는 바람, 그 다음에는 심판하는 바람입니다. 키질해서 합당치 않은 것은 내어버리고, 합당한 알곡만 거두는 키질하는 바람은 괜찮습니다. 또 정결케 하는 바람도 괜찮습니다. 합당치 않은 것이 다 날아가고 정결해집니다. 그 다음 바람은 심판하는 바람인데, 이것은 죽이는 바람입니다. 과거에는 키질하는 바람을 너희에게 보내어 키질도 했고, 정결케 하는 바람을 보내어 정결케 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너희 죄악이 사무쳤기 때문에 심판의 바람밖에 보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악이 관용하고 교회가 육체주의로 기울어져 부패했기 때문에
이제는 정결케 하고, 키질하는 바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판의 바람을 일으키신다는 것입니다. 보통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환난은 키질하여 정결케 하는 환난입니다. 그 환난으로 쭉정이와 알곡이 갈라지고 성도가 점점 정결케 되어 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징계하여 회개시키시고 정결케 만들어 나가려고 하실 때에,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를 경히 여기며 자기 생각대로 나가면, 결국은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의 바람이 옵니다.
본문 13-14절에 “보라 그가 구름같이 올라오나니 그 병거는 회리바람 같고 그 말들은 독수리보다 빠르도다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 하리라 예루살렘아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 악한 생각이 네 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겠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원수가 구름같이 떼를 지어 오고 침략군의 병거가 회리바람같이 달려오므로 유다 백성들이 ‘우리에게 화 있도다 우리는 멸망하도다’라고 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네 마음의 악을 씻어 버리라’란 회개하여 악을 버리고 바로 서면 구원을 얻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악행을 계속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환난 중에 회개하면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면 원수가 구름같이 밀려오고 병거들이 회리바람같이 달려와 아주 멸망하게 됩니다.
본문 15-17절에 “단에서 소리를 선포하며 에브라임 산에서 재앙을 공포하는도다 너희는 열방에 고하며 또 예루살렘에 알게 하기를 에워싸고 치는 자들이 먼 땅에서부터 와서 유다 성읍들을 향하여 소리를 지른다 하라 그들이 밭을 지키는 자같이 예루살렘을 에워싸나니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에브라임까지를 점령하고, 유다까지 쳐들어갈 것을 공포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을 미리 공포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열방에 고하며’라고 하였는데, 바벨론의 침략을 이방에 고하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방이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밭을 지키는 자같이’란 밭을 지키는 자가 짐승이나 도적이 와서 해하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지키는 것처럼, 바
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서 조금도 도망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육체주의로 나간 것을 말합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으로 나간 것이며,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만 자랑해야 하는데 육체를 자랑한 것입니다.
바벨론이 이스라엘 북쪽 단에서부터 남쪽 에브라임까지를 점령하고, 유다까지 쳐들어갈 것을 공포하라는 것입니다. 환난을 미리 공포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열방에 고하며’라고 하였는데, 바벨론의 침략을 이방에 고하라고 한 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망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이방이 알게 하고자 함입니다. ‘밭을 지키는 자같이’란 밭을 지키는 자가 짐승이나 도적이 와서 해하지 못하도록 빈틈없이 지키는 것처럼, 바
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둘러싸서 조금도 도망갈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나를 거역한 연고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을 거역한 것은 하나님을 섬기면서 육체주의로 나간 것을 말합니다.
또 그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 중심으로 나간 것이며,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만 자랑해야 하는데 육체를 자랑한 것입니다.
본문 18절에 “네 길과 행사가 이 일들을 부르게 하였나니 이는 너의 악함이라 그 고통이 네 마음에까지 미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죄악의 길을 스스로 걸어왔기 때문에 환난이 온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유다가 죄를 회개하고 바로 섰더라면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았을 것이나,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벨론이 침략하여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 예레미야가 심령으로 전쟁의 경고를 들음
본문 19-20절에 “슬프고 아프다 내 마음 속이 아프고 내 마음이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으니 이는 나의 심령 네가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들음이로다 패망에 패망이 연속하여 온 땅이 탈취를 당하니 나의 천막은 홀연히 파멸되며 나의 휘장은 잠시간에 열파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앞으로 올 침략군의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심령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살구나무 가지는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속속히 이루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성경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보면 앞으로 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 비추어보아 어떻게 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마음이 슬프고 아픕니다. 예레미야는 앞으로 올 침략군의 나팔소리와 전쟁의 경보를 심령으로 듣고 있습니다. 그 침략군들 앞에 유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진지나 무기, 또 도시들은 마치 천막과 휘장과 같이 삽시간에 다 파멸될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깨달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로 나가는 유다 백성을 보고 마음이 슬프고 답답하여 잠잠할 수 없어 외칩니다. 신령한 눈을 떠서 앞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이 슬프고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21-22절에 “내가 저 기호를 보며 나팔소리 듣기를 어느 때까지 할꼬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우준한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다’라는 것은 유다 백성이 악을 행하기에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연구를 많이 하여 악을 행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을 찾아 선을 행하기에는 아주 무지했습니다. 신령과 진정의
세계에서 떠났기 때문에 행하는 것은 악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6장19절에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며,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나가는 데에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온 땅이 황무할 것이나 진멸하지는 않으실 것임
본문 23-26절에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들을 우러른즉 거기 빛이 없으며 내가 산들을 본즉 다 진동하며 작은 산들도 요동하며 내가 본즉 사람이 없으며 공중의 새가 다 날아갔으며 내가 본즉 좋은 땅이 황무지가 되었으며 그 모든 성읍이 여호와의 앞 그 맹렬한 진노 앞에 무너졌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땅이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로 이방 나라의 침략을 받아 성읍은 무너지고 황무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27절에 “이는 여호와의 말씀에 이 온 땅이 황폐할 것이나 내가 진멸하지는 아니할 것이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의 죄를 벌하시되 아주 멸망시키지는 않으시고, 긍휼을 베푸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시는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합 3:2).
본문 28-29절에 “이로 인하여 땅이 슬퍼할 것이며 위의 하늘이 흑암할 것이라 내가 이미 말하였으며 작정하였고 후회하지 아니하였은 즉 또한 돌이키지 아니하리라 하셨음이로다 기병과 활 쏘는 자의 훤화로 인하여 모든 성읍이 도망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에 기어오르며 각 성읍이 버림을 당하여 거기 거하는 사람이 없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서 재앙을 내리기로 이미 작정하셨고 후회하지도 않으시니,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적군의 기병과 활 쏘는 사람들이 훤화하며 쳐들어 올 것인데, 그때에 모든 성읍 사람들은 도피하여 수풀에 들어가고 바위 위에 기어오르며 피할 곳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30-31절에 “멸망을 당한 자여 네가 어떻게 하려느냐 네가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밀찌라도 너의 화장한 것이 헛된 일이라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느니라 내가 소리를 들은즉 여인의 해산하는 소리 같고 초산하는 자의 고통하는 소리 같으니 이는 딸 시온의 소리라 그가 헐떡이며 그 손을 펴고 이르기를 내게 화 있도다 살륙하는 자를 인하여 나의 심령이 피곤하도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이방나라와 짝하며 그들에게 잘 보이려고 붉은 옷을 입고 금장식으로 단장하고 눈을 그려 꾸몄습니다. 그리고 연애하러 다닙니다. 그러나 네가 연애하는 연인들이 너를 멸시하여 네 생명을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즉, 성도들이 세상과 연애하려고 잘 꾸미고 아름답게 화장을 하나 세상이 성도를 멸시하고 발로 밟고 생명까지 빼앗는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과 교통하지 않고 세상과 짝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내버리시므로 세상이 그를 발로 밟고 영적 생명의 역사를 다 빼앗아 갑니다.
살려주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화려한 것들로 장식하고 화장하며 다른 사람의 인기를 끌려고 하지만, 그것은 그 사람한테 이용을 당하는 것일 뿐이고 마지막에는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화장할 돈, 금장식할 돈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과 잘 사귀면 하나님께서 살려주십니다.
인본주의로 잘 살려고 하지만 그것으로는 못 삽니다. 할례를 받아서 참으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예수님을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을 쓰며 여기 저기 돌아다녀도 그것은 터진 웅덩이입니다. 터져서 물이 다 새어나가면 먹을 것이 없습니다. 목이 말라 죽습니다. 생수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 전심으로 돌아가야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그 사람에 주십니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