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을 조롱하지 말고 구원운동을 잘해나가라
열왕기하 2:23-25
2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열왕기하 2:23-25
23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4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 25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아로 돌아왔더라
1. 엘리사를 조롱하던 아이들 42명이 죽음
하나님의 종을 조롱하는 자의 결말
본문 23-24절에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길에 행할 때에 젊은 아이들이 성에서 나와서 저를 조롱하여 가로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엘리사가 돌이켜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콤 둘이 나와서 아이
들 중에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
까? 아이들이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고 엘리사를 조
롱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저희를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할 때
에 암콤 둘이 수풀에서 나와 그 아이들 중 사십이 명을 찢어 죽였습니
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엘리사가 대머리인 모양입니다. 대머리는 김성갑 목사처럼 머리카락
이 다 빠진 것입니다. 그런데 조롱을 했어도 들은 체 만 체하고 가면
되는데, 남의 아이를 사십이 명씩이나 죽였으니 가슴이 너무나 서늘해
집니다. 왜 이렇게 했겠습니까?
본문에서 엘리사가 저주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장하셔서 저주한 것으
로 봐야 합니다. 엘리사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자기 마음대로 저주했다
고 보면 안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
의 명령이 아닌데 저주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주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엘리사가 저주했고, 그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죽
이기로 하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왜 죽이셨습니까? 이 시대는 엘리야는 승천하고 엘리사를 들
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해나가려는 때입니다. 엘리야가 하던 일을
엘리사가 계승 받아 하나님의 구원운동,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해나
가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병거와 마병으로 이스라엘을 지키
고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렇게 엘리사를 조롱하고 무시하면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안 되어 나가
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데 엘리사를 무
시하고 조롱하여 땅에 떨어뜨려 발로 밟아놓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일
이 되어 나가겠습니까?
로 봐야 합니다. 엘리사가 자기를 조롱한다고 자기 마음대로 저주했다
고 보면 안 됩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뜻대로만 하기 때문에 하나님
의 명령이 아닌데 저주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주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엘리사가 저주했고, 그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죽
이기로 하셨기 때문에 아이들이 죽은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을 왜 죽이셨습니까? 이 시대는 엘리야는 승천하고 엘리사를 들
어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해나가려는 때입니다. 엘리야가 하던 일을
엘리사가 계승 받아 하나님의 구원운동, 이스라엘의 구원운동을 해나
가는 것입니다. 엘리사는 하나님의 병거와 마병으로 이스라엘을 지키
고 이스라엘을 보호하며 이스라엘을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렇게 엘리사를 조롱하고 무시하면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안 되어 나가
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들어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데 엘리사를 무
시하고 조롱하여 땅에 떨어뜨려 발로 밟아놓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일
이 되어 나가겠습니까?
교역자들에게 부탁하는 말
조롱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종을 조롱합니까?
물론 하나님의 종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서 말해주는 것은 좋습니다. 또 교역자도 어떤 사람이 잘못된 것 같
다고 말해주면 고쳐야 합니다. 고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원수를 갚으려고 준비했다가 강단에서 그 말한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
는 교역자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역자 자격이 없습니다. 고치라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난 모르고 그렇게 했는데 고치겠습니다”하고 고
치면 되지 않습니까? 고치면 간단한 것입니다. 괜히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조롱하는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종을 조롱합니까?
물론 하나님의 종도 잘못할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서 말해주는 것은 좋습니다. 또 교역자도 어떤 사람이 잘못된 것 같
다고 말해주면 고쳐야 합니다. 고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원수를 갚으려고 준비했다가 강단에서 그 말한 사람을 공격해서 죽이
는 교역자가 있는데, 그런 사람은 교역자 자격이 없습니다. 고치라고
하면 “아 그렇습니까? 난 모르고 그렇게 했는데 고치겠습니다”하고 고
치면 되지 않습니까? 고치면 간단한 것입니다. 괜히 변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전화를 해서 “목사님, 왜 우리를 이렇게 가슴 아프게 합
니까?”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 때문에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
까? 무슨 일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자기는 음성
나환자 촌에 있는 사람인데, 목사님의 방송을 듣고 늘 은혜를 받았다
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죄 때문에 문둥병이 걸렸다고 하는 목사
님의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다고 이런 병에 걸렸나’하고, 너무 가슴이 아파서 몇 사람과 이야
기를 나눠 보니까 같은 생각이었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얘기를 해보
자고 해서 전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내가 잘못
했다고 사과를 드렸습니다. 나는 문둥병자가 성경에 나오는 대로 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했지, 죄 있는 사람이 문둥병에 들렸다고 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들었다고 하니까 내가 잘못한 것
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는 안 그럴 것이니 풀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
니 방송에서 해명해 달라고 하길래 두 주간 있다가 방송으로 해명해주
었습니다. 이렇게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뜻으로 설교한 것
이 아니다. 문둥병 자체가 죄를 상징한 것이라고 했지, 누가 죄 때문에 걸린 것이라고 했느냐. 잘못 들고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 안 듣겠으면 그만두라”고 하면 안 됩니다. 먼저 사과를 하고 고치고 다음에는 그 말을 안 하면 바로 되는 것입니다. 교역자도 고쳐야 합니다. 자기를 보고 고치라는 말을 해주면 그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고, 자기는 신성불가침
인 줄로 알고,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만 복종하라고 하면서 강단에서
내리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음
그러나 본문에서는 잘못된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조롱하는 것
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잘못한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
다. 대머리가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조롱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했기 때문에 이들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엘리사를 조롱하므로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구원운동을 못하
게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조롱받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
원운동을 방해하고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자를
하나님께서는 참으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로 저주를 하
게 하시고, 암콤 두 마리를 보내셔서 사십이 명을 찢어 죽게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구원운동을 방해하고 구원운동을 파괴시키려고 하고 의식적으로 조
롱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못되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
다. 저주를 받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한
사람이 어떻게 저주를 안 받겠습니까? 그러나 목사가 잘못한 것을 말
해주는 사람은 저주를 안 받습니다. 이 말씀을 악용해서 “나를 반대하
다가는 곰이 나와서 찢어 죽인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목사가 잘못한
것은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목사도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는 신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누가 한 마디만 말해도 강단에서 내리쳐서 꼼짝을 못하게 하고 저주받는다고 하면 누가 구원운동을 방해한 것입니까? 교인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게 만들고, 자기 말만 들으라고 협박을 하고, 잘못 말하면 죽는다고 하면, 목사가 구원운동의 방해자입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고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기의 부족한 점은 말도 못하게 하고 무조건 교인들만 내리치면 그 교회가 잘되겠습니까? 뻔한 것입니다. 목사에게 누구나 다 아는 일을 말해주었는데, 무조건 교인들에게 잘못했다고만 하니까 그다음에는 교인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이제는
저 목사하고 말해야 쓸데없으니 아무도 말하지 마라”고 해서 목사는
목사대로 나가고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통하지를 않
습니다. 말해 봐야 그 다음에 준비했다가 그 다음 주일날에 집중 공격
을 할 것인데, 괜히 그것에 맞을 필요가 있습니까? 또 말해 봐야 벽창
호가 되어서 고치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 한 마디를 하면 그 다음 주
일날에 내리치는 것입니다.
롱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못되게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습니
다. 저주를 받은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한
사람이 어떻게 저주를 안 받겠습니까? 그러나 목사가 잘못한 것을 말
해주는 사람은 저주를 안 받습니다. 이 말씀을 악용해서 “나를 반대하
다가는 곰이 나와서 찢어 죽인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목사가 잘못한
것은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 목사도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
님의 구원운동을 방해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월감을 가지고 자기는 신성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고, 누가 한 마디만 말해도 강단에서 내리쳐서 꼼짝을 못하게 하고 저주받는다고 하면 누가 구원운동을 방해한 것입니까? 교인들은 아무 소리도 못하게 만들고, 자기 말만 들으라고 협박을 하고, 잘못 말하면 죽는다고 하면, 목사가 구원운동의 방해자입니다. 성경 어디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고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자기의 부족한 점은 말도 못하게 하고 무조건 교인들만 내리치면 그 교회가 잘되겠습니까? 뻔한 것입니다. 목사에게 누구나 다 아는 일을 말해주었는데, 무조건 교인들에게 잘못했다고만 하니까 그다음에는 교인들이 그런다고 합니다. “이제는
저 목사하고 말해야 쓸데없으니 아무도 말하지 마라”고 해서 목사는
목사대로 나가고 교인들은 교인들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통하지를 않
습니다. 말해 봐야 그 다음에 준비했다가 그 다음 주일날에 집중 공격
을 할 것인데, 괜히 그것에 맞을 필요가 있습니까? 또 말해 봐야 벽창
호가 되어서 고치지도 않습니다. 무슨 말 한 마디를 하면 그 다음 주
일날에 내리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운동을 방해한 것입니까? 그 목사가 구원운동의 방
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운동을 해나가라고 하셨지, 자기를 위해서
교인들을 종 삼으라고 하셨습니까? 교인들은 목사를 위해서 있는, 목
사의 종이 아닙니다. 목사나 교인이나 다 합해서 겸손히 하나님의 구
원운동을 해나가라는 것인데, 왜 자기가 예수님의 자리에 올라가서 내
리치느냐는 것입니다. 누가 곰한테 찢겨야 마땅하느냐 하면 그 목사가
찢겨야 합니다. 그다음에는 좋은 말을 해주어야 내리치니까 말도 안
해줍니다. 그 목사는 말해야 필요가 없습니다. 말해야 다음 주에 강단
에 나올 것입니다. 또 사모님한테도 말해주지 말라고 한답니다. 사모님
보고 목사님 좀 고치면 좋겠다고 말하면, 사모님이 가서 자기 남편한
테 말하고 그다음에 목사는 또 전쟁을 준비해가지고 집중 사격을 한다
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모나 목사나 둘 다 같으므로 사모님한테도 말할 필요가 없고 목사한테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성도들대로 나갑니다. 예배당에 나와서 앉았다가 가는 것뿐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제 구원운동은 다 중단됩니다. 사모들은 교인들이 말해줄 때에 그 말을 달게 받고, 그것을 목사에게 말해줄 때에 잘 말해주고, 목사는 그
말을 듣고 ‘첫째 다 내 잘못이다. 내가 잘했으면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있나, 내가 예수님이면 그런 말을 들을 리가 있겠는가. 내가 좀 더 훌
륭한 종일 것 같으면 그런 말을 듣지 않았겠는데 내가 부족해서 다 그
런 말을 듣는다’라고 회개하고 그다음 주일날에 나가서 겸손한 마음으
로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그 말을 해준 사람을 공격하지 말아야 합니
다. 누가 말했느냐고 하면서 찾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목사는 알아보지도 않고 ‘아무개가 말했을 것이다’라고 한답니
다. 그리고 그 사람을 불러다 놓고 “네가 말해서 그렇게 되었지?”라고
야단을 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사건인데, 자
다가 봉변을 당하는 격입니다. 이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교회에
목사님이 있고 전도사가 있는데, 주일날 목사님이 강단을 비울 때에는
남자 전도사를 시키는 것이 마땅한데 그 전도사를 안 시키고 사모를
시켰습니다. 전도사를 앞에 놓고 사모가 나가서 주일날 설교를 했답니
다. 그러니까 처음으로 온 사람이던가, 아무튼 어떤 말발이 센 사람이
있었나 봅니다. 그 사람이 목사님이 오신 다음에 “목사님, 목사님이 어
디를 가면 전도사를 시켜야지 왜 사모를 시킵니까?”라고 했답니다. 그
러니까 목사님이 그 사람과는 싸우지를 못하고 ‘누가 그 사람한테 가
서 말을 했을까?’를 연구해서 ‘아무개가 했을 것이다’하고는 아무개를
불러다 놓고 “너 어째서 그 말을 해서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게 만들어 놨느냐?”고 야단을 쳤습니다. 그 사람은 알지도 못하는 사
건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에이, 이런 목사한테서 내가 뭘 배
우겠느냐?’고 하면서, 여기서 배울 것이 없다고 다른 데로 갔다고 합니
다. 그래서 아까 그 목사 있는 교회가 안 되었습니다. 교인이 다 나가고 몇 명 안 남았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다 나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구원운동을 잘해나가라
그러니까 교역자나 교인이나 다 같이 ‘나는 쇠하여야 하겠고 그는 흥
하여야 하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운동만 잘해나
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저주하십니
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방해하고 구원역사에 손해를 주고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곰 두 마리를 내보내서 아이 마흔둘을 찢어
죽이신 것처럼 죽이시는 것입니다. 앞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
나 크게 진노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반면에 하나님의 구
원역사가 잘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그 사람을 축복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구원운동이 잘되어 나갈까?’
하고 구원운동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잘되어 나갑니까? 새 그릇을 가져다가 소금을 담아서 물 근원에 두라
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되어 나가는 길입니다. 또 소금은 녹아져서 짠
맛을 내야 합니다.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다가 물에 부어 소금이 녹아
지면 소금은 안 보이는데 짠 맛만 남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좋은 물이
됩니다. 좋은 가정, 좋은 교회, 좋은 사회, 좋은 나라가 되는데, 이런 소
금을 많이 가져다 부으면 우리 한국도 좋은 나라가 됩니다. 열매를 잘
맺는 나라,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됩니다. 먼저 우리 교회부터 단
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가정이 단 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다음
에 사회가 단 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반대하여 막
고 말살되게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곰을 내보내
서 마흔두 사람과 같이 잡아 죽이십니다. 그것은 죽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죽이시는 죄입니다. 그러므로 절대 하나님의 종을 조롱하지 말고 구원운동을 막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25절에 “엘리사가 거기서부터 갈멜 산으로 가고 거기서 사마리
아로 돌아왔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갈멜 산에 무엇을 하러 갔겠
습니까? 기도하러 갔습니다. 갈멜 산은 기도하는 산입니다. 또 호렙 산
이 기도하는 산입니다. 또 다른 기도하는 데가 여러 곳이 있습니다. 엘
리사는 늘 기도하는 곳에 가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기를 항상 힘썼습니다. 그리고 또 내려와서 선지자의 생도들을
가르치기에 힘썼습니다. 또 쓴 물을 좋은 물로 만드는 데에 힘썼습니
다. 우리도 이런 데에 힘을 써서 일을 잘해나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