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중에 죄와하나님의 의를 깨달음
예레미야애가 1:10-22
예레미야애가 1:10-22
10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 11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
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 12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 13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 14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 15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 16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 17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 18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 19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 20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 21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 22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
1. 고난 중에 자기들의 죄와 하나님의 의를 깨달음
본문 10절에 “대적이 손을 펴서 보물을 빼앗았나이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 저희가 성소에 들어간 것을 예루살렘이 보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군대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모든 금, 은, 보물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주께서 이미 이방인을 금하여 주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셨사오나’라고 하였는데, 본래 이방인들은 예루살렘 성소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신 23:3; 느 13:1), 그런데 이방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와 보물들을 다 빼앗아 간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에게 가장 마음 아픈 일입니다.
본문 11절에 “그 모든 백성이 생명을 소성시키려고 보물로 식물들을 바꾸었더니 지금도 탄식하며 양식을 구하나이다 나는 비천하오니 여호와여 나를 권고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백성이 보물로 식물을 바꾸어 먹을 정도로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천하오니’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대표하여 하는 말로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비천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본문 12절에 “무릇 지나가는 자여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 내게 임한 근심 같은 근심이 있는가 볼찌어다 여호와께서 진노하신 날에 나를 괴롭게 하신 것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지나가는 자여’란 이방나라들을 가리킵니다. ‘너희에게는 관계가 없는가’란 유다가 심한 근심을 당할 때에 다른 나라도 이런 근심이 없는가 한 번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이방 나라들에도 유다가 받는 고난과 근심이 있으며 그들에게도 관계가 없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본문 13절에 “위에서부터 나의 골수에 불을 보내어 이기게 하시고 내 발 앞에 그물을 베푸사 나로 물러가게 하셨음이여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의 범죄로 하나님께서 골수에 불을 보내는 것처럼 뼛속까지 뜨겁게 아프도록 재앙을 내리셨다는 것입니다. ‘종일토록 고적하여 곤비케 하셨도다’란 그물에 걸린 새나 짐승처럼 더 갈 수도 없고, 물러갈 수도 없는 곤비를 당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내려 올 때에는 이와 같이 됩니다. 그물에 걸린 양이나 짐승, 노루, 사슴처럼 더 나갈 수 없는, 뒤로 물러 갈 수도 없는 가운데 빠집니다. 즉, 진퇴양난의 난관에 빠져서 어찌할 수 없게 됩니다.
본문 14절에 “내 죄악의 멍에를 그 손으로 묶고 얽어 내 목에 올리사 내 힘을 피곤케 하셨음이여 내가 당할 수 없는 자의 손에 주께서 나를 붙이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 죄악’은 유다의 죄악을 가리킵니다. 죄 때문에 이런 무거운 멍에가 왔다는 것입니다.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붙여서 원수의 멍에를 메고 나가게 하시고, 견딜 수 없을 만큼 곤란하게 하십니다. 원수의 멍에를 하나님께서 메워주시면 사람이 벗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원수의 멍에를 메기 전에 회개하고 바로 서야지, 일단 원수의 멍에를 메고 가게 되면 감당하기 힘듭니다.
본문 15절에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지경 안 모든 용사를 없는 것같이 여기시고’란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때에 군대가 있어도 아무 맥을 못춘다는 뜻입니다. ‘성회를 모아 내 소년들을 부수심이여’란 원수들이 예루살렘의 젊은 사람들을 다 쳐부순다는 것입니다. ‘처녀 유다를 술틀에 밟으셨도다’란 처녀같이 순진한 유다를 포도를 술틀에 넣고 발
로 밟는 것처럼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이렇게 비천한 가운데 빠집니다.
본문 16절에 “이를 인하여 내가 우니 내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 나를 위로하여 내 영을 소성시킬 자가 멀리 떠났음이로다 원수들이 이기매 내 자녀들이 외롭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에는 도와주는 자도, 위로해주는 자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 예루살렘은 저희 가운데 불결한 자 같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시온이 두 손을 폈으나 위로할 자가 없도다’란 무엇을 붙잡고 어려운 가운데에서 나오려고 도움을 구하지만 도와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사면에 있는 자를 명하여 야곱의 대적이 되게 하셨으니’란 징계를 당할 때에 아무리 두 손을 펴서 무엇을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을 것이 없고, 하나님께서 사면에 있는 모든 자로 하여금 대적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도와준 자가 다 대적이 됩니다.
본문 18절에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였도다 너희 모든 백성들아 내 말을 듣고 내 근심을 볼찌어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는 의로우시도다’란 유다는 죄 값으로 징계 받는 것이 마땅하며,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는 의로우시다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4절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징계 받을 때에 ‘왜 내게 이런 고난이 오는가, 다른 사람은 다 잘되는데 나는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깨닫지 못한 증거입니다. 자기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선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바로 선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간섭하셔서 이러한 징계를 주시니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깨닫는 것이 바로 선 것입니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많은 남, 녀 소년들이 적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불신 세계로 나아가 세상과 짝하고, 해방 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에 감염되어 기존 체제를 부인하며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바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며, 교회는 영적구원 기관이지, 사회주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바른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생명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미혹을 받아 잘못된 길로 나아갑니다. 해방 신학은 공산당과 똑같습니다. 해방 신학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 억압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산당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사상에 한 번 감염이 되면 좀처럼 나오기가 힘듭니다. 젊은이들이 바른 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신앙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이론만 따라가고,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나가면 마귀에게 다 넘어 갑니다.
‘나의 처녀와 소년들이 사로잡혀 갔도다’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많은 남, 녀 소년들이 적에게 사로잡혀 갔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불신 세계로 나아가 세상과 짝하고, 해방 신학이나 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에 감염되어 기존 체제를 부인하며 나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바로 마귀에게 사로잡혀 있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며, 교회는 영적구원 기관이지, 사회주의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바른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생명에 서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이 미혹을 받아 잘못된 길로 나아갑니다. 해방 신학은 공산당과 똑같습니다. 해방 신학은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사회를 구원해야 한다. 억압 받는 사람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공산당과 똑같은 것입니다. 이 사상에 한 번 감염이 되면 좀처럼 나오기가 힘듭니다. 젊은이들이 바른 진리에 서지 못하고 영적 신앙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미혹을 받기 쉽습니다. 이론만 따라가고, 육신 중심, 세상 중심으로 나가면 마귀에게 다 넘어 갑니다.
본문 19절에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 저희가 나를 속였으며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불렀으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이 유다를 도와준다고 약속하였으나 유다가 위급하게 되었을 때에 도와주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자가 도와주는 것도 잘될 때에 도와주는 것이지, 어려움을 당할 때에는 못 본체하고 달아납니다. 이때는 특별히 애굽 나라가 유다 나라를 도와준다고 약속을 했는데, 유다나라가 망하게 되니까 안 도와주었습니다. 사람이나 국가나 다 비슷합니다. ‘무엇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그것도 형편이 괜찮을 때에 도와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못 본체하고 슬슬 내빼는 것이 세상입니다. ‘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소성시킬 식물을 구하다가 성중에서 기절하였도다’란 제사장과 장로들이 식물을 구하며 돌아다니다가 식물이 없어서 기절했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보면 당시에 식물이 아주 핍절한 때를 당한 것이 분명합니다. 환난 당할 때에는 먹을 것이 없습니다. 특별히 영적 양식이 다 끊어집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는 영을 소생시킬 수 있는 영적 양식이 있어서 언제나 백성들에게 나눠주어야겠는데, 그러한 양식이 없습니다. 말세에는 영적양식이 다 끊어집니다(암 8:11).
2. 성도의 구원과 원수의 멸망을 믿고 기도함
본문 20절에 “여호와여 돌아보옵소서 내가 환난 중에서 마음이 괴롭고 마음이 번뇌하오니 나의 패역이 심히 큼이니이다 밖으로는 칼의 살륙이 있고 집에는 사망 같은 것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큰 환난으로 인해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환난 때에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죄를 깊이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환난 때에 낙심하거나 ‘누구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하며 원망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며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말씀대로 바로 서서 나가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본문 21절에 “저희가 나의 탄식을 들었으나 나를 위로하는 자가 없고 나의 모든 원수가 나의 재앙을 들었으나 주께서 이렇게 행하심을 기뻐하나이다 주께서 반포하신 날을 이르게 하시리니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의 탄식 소리를 듣고 원수가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나와 같이 되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유다의 재앙을 기뻐하던 원수들이 유다와 같이 재앙을 당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잠 24:17-18). 예루살렘이 망할 때에 두로와 암몬 자손이 기뻐하다가 망했습니다(겔 25:3-7,26:1-6). 하나님의 백성이 망할 때에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본문 22절에 “저희 모든 악을 주 앞에 나타내시고 나의 모든 죄악을 인하여 내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 행하옵소서 나의 탄식이 많고 나의 마음이 곤비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원수들도 죄값으로 유다가 망하는 것처럼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즉, 지금은 원수들이 하나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되고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나 하나님께서 그 원수들을 반드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신 후에 회개시켜 반드시 구원해주십니다. 하지만 원수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하나님의 교회가 비참하게 되고 쇠멸하게 되는 것을 기뻐하므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려고 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교회는 안 되어도 자기 집만 잘되면 된다는 것은 교회를 대적하는 원수들과 같은 것입니다. 자기 집이 잘 안되어도 교회가 잘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먼저 세우고, 자기 집을 세워야 합니다. 자기 집보다 교회가 더 중요합니다. 교회를 세워야 자기 집도 세워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우지 않고 자기 집만 세우겠다는 것은 이기주의로,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일만 생각하고, 자기 볼 일만 보려고 하면 어떻게 하나님께 복을 받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를 아끼고 자기 집에 있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먼저 갖다 드리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런 사람을 반드시 잘되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이 잘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자기 일은 둘째, 셋째로 하고 하나님의 일을 첫째로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