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성도의 믿기 전 행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성도의 믿기 전 행위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1월 18일 토요일

에베소서 2:1-3 성도의 믿기 전 행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성도의 믿기 전 행위
에베소서 2:1-3

1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1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2:2 그때 너희가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죄 가운데 행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행하였으니, 그는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이다. 

2:3 그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 속하여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들을 행하여 우리 육체의 정욕 가운데서 살았고, 그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1.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심

예수님 믿기 전에 모든 사람의 영은 죽은 상태

본문 1절에,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려주셨습니다. 우리의 죽었던 영을 살려주셨는데,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의 영은 다 죽은 상태였습니다. 산 영혼이 하나도 없이, 사람이 날 때에 모태에서부터 영이 죽은 상태로 출생했습니다.

요한복음 3:3-6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다시 난다는 말, 즉, 중생이라는 말은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과거에는 우리 영혼이 다 죽었었는데, 예수님을 믿을 때에 그 죽었던 영혼이 살아난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정죄 받았고 죽었습니다. 영혼이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끊어졌습니다. 영혼이 사는 것은,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는 것을 가르칩니다. 하나님과 연결되어야만 산 영혼이고, 하나님과 단절되면 우리 영혼은 죽은 영혼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단절되었고 끊어졌습니다. 그것은 마치 나뭇가지가 원 나무에서 떨어진 것과 같습니다. 나뭇가지가 원 나뭇가지에 붙어있으면 살아있지만, 떨어지면 죽은 가지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영적 생명이 살아남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물과 피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여기서 허물은 비교적 작은 죄를 가리키고,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거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들이 다 죄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조상 아담의 죄로 인해 죽었고, 다 죄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런 것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믿게 하여 주심으로서 우리를 다시 살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는데, 안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모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적 생명이 없습니다. 육신만 살아있고 신령한 면은 다 죽어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그래서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신령한 세계를 알고, 영적인 면을 알고, 영의 생명이 있지만, 안 믿는 사람은 영적 생명과 지식이 없기 때문에 생각하는 길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고, 모든 판단이 다르고, 전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물과 성령
으로 우리를 살려놓아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고, 산 생명의 세계에서 우리는 살게 되었습니다.

2.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

우상 섬기는 세상풍속을 좇아 살던 것

본문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때에’라는 것은 믿기 전을 말합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영혼이 죽음 가운데서 행했습니다. 다 죽은 영혼이었고 죽음 가운데서 있었으며, 이 세상풍속을 좇았습니다.

또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좇았는데, 곧 마귀를 좇았다는 것입니다. 마귀는 공중에서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다 마귀를 좇아 살았고, 세상풍속을 좇아 살았습니다. 세상풍속이라는 것은 우상 섬기는 일, 죄 짓는 일, 방탕 하는 일들입니다. 세상풍속은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있고, 우상섬기는 일이 많고, 마귀섬기는 일이 많습니다. 죄 짓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는 멸망입니다. 안 믿는 세계에서는 우상을 섬기는데, 무당 데려다가 굿하고, 박수 데려다가 점치고 합니다. 다 마귀 쫒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 죽고 나면 우상섬기는 일을 많이 합니다. 무덤에 가서 제사하는데, 먼저 산 귀신에게다 제사를 합니다. 나무나 돌 같은 것을 산신령이라 해놓고 제사하고는 무덤에 상 차려놓고 제사를 합니다. 제사 상 음식은 조상이 먹는 게 아닙니다. 제사지내는 것은 다 마귀 섬기는 것입니다.

저 어릴 적에 제삿날 우상 섬기는 일을 많이 했었는데, 어릴 적에 많이 따라다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조상 뼈를 지고 사방으로 명당자리 찾으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30리 밖, 한 50리 밖에 무덤자리를 해놓고는 추석에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 다 동원시키고, 어른들도 하나씩 다 조상 뼈를 지고서 멀리 가는 것입니다. 9월 9일에는 문중, 먼 조상들 제사를 또 지내는데 그 무덤들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명절에는 차례 하느라 제사하고 굿도 하기도 합니다. 추석 때 떡을 해놓아도
먼저 못 먹고 대문간 귀신에게 제사하고 먹는 것입니다. 여기저기 사방 다니면서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입니다. 결국 마귀섬기는 것입니다. 또, 성황당이라고 해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하고 음식 해먹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세상풍속입니다. 사람하나 죽으면 제사하고, 죽은 사람 생일이 되면 또 제사하고, 일년이 지나면 일년 기념식하고, 삼년이 되면 뭘 모시고 곡을 벗는다고 하는데, 이런 것들이 다 세상풍속입니다. 이사하는 것도 아무 날이나 못 간다고 합니다. 제주도는 아직도 날을 정해놓고 그 날만 이사를 한다고 하는데 미신이 꽉 들어찼습니다. 그런 것이 다 세상 풍속을 쫒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말띠, 소띠, 쥐띠 해서 말은 어떻고, 쥐는 어떻고 하는데, 이것이 다 미신입니다. 띠는 무슨 띠입니까? 그런 것들 다 집어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술 먹고 방탕 하는 세상풍속이 있습니다. 요새도 많습니다.

허황된 미신과 풍속

그런 것들이 전부 공중에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역사는 영인데, 그러한 허황된 미신과 우상과 방탕과 악한 죄악을 따라서 행하던 저희들입니다. 그런 세상 풍속이 얼마나 맹랑한 것이 많이 있습니까?

어떤 여자는 사주에 과부될 팔자라고 해서 과부 안 되게 하려고, 길가는 사람을 자루에 넣어 데려와서는 신랑이라 하곤 하룻밤 자게하고는 다시 그 사람을 자루에 넣어 물에 빠뜨려 죽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고나면 이 여자가 과부팔자였는데 과부가 된 샘이니까 앞으론 과부될 일 없다고 그리한다고 합니다. 이게 얼마나 미신입니까? 미신에 빠지면 이런 허무맹랑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을 낳았다하면 늘 죽었기에, 이름을 칠성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들 일곱을 낳았는데 다 죽었다고 합니다. 그리곤 여덟번째 아들을 또 낳고는 아예 죽은 자의 이름으로 칠성판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마침 그 사람이 안 죽고는 나중에 커서 목사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도 다 미신입니다. 그렇게 아들을 낳아놓고는 대감 집에 팔았다 해서 ‘대감 섬이’, 길에 다 팔았다 해서 ‘길동이’, 무슨 국수집에다 팔았다 해서 ‘국수네’, 칠성별에 팔았다 해서 ‘칠성네’, 이런 이름들이 저 어릴 적에는 많았습니다. 그것들이 그 귀신에다가 팔았다는 것입니다. 귀신에게 팔아야 안 죽고 그 귀신이 보호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상풍속, 미신 좆는 것입니다.

3. 전에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낸 우리들
하나님의 진노의 자녀였던 우리

본문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진노를 많이 쌓았는지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욕심만 따라갔습니다. 육신의 욕심,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만 따라갔었습니다.
도적질하고 남을 속이고 살았고, 육신의 부패성에 이용되는 마음으로만 살았습니다. 부패성이 원하는 대로만 했었습니다. 본질상 우리가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가 과거의 죄 지은 것만 생각을 해도 벌써 멸망을 받았을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참아주시지 않았다면 다 멸망 받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가 열여섯 살인가 나서 믿었는데, 그 전에 죄 지은 일이 많습니다. 무슨 우상섬기는 곳에 따라다니고, 무덤에 떡 해서 지고 따라다니던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때는 제사하고 죄를 많이 짓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도 세상 풍속을 많이 따라갔고, 육신의 욕심을 따라 지냈고, 하나님의 진노를 쌓은 것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쌓은 것을 생각할 때에 스스로 마땅히 멸망을 받을 자들인 줄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형 받을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자유하게 하신 예수님

우리는 사형선고를 받은 자들인 것으로 알아야 하는데, 사형선고 받은 우리는 건져주셨음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사형선고를 연기해 주셨습니다. 사형을 연기해주시고는 예수님께서 대신 우리를 위해 사형을 받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셨습니다.

죽을 자를 살려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형받을 자인데 안 죽이고 그냥 감옥에 두어두면 감사하겠습니까? 안 죽고 감옥에 그냥 있는데 그것이 참 감사할 것입니다. 그렇게 안 죽이고 감옥에만 두어도 감사할 텐데, 이제는 감옥이 아니라 자유롭게 놓아주었습니다.

우리가 뭐가 없다고 괴롭다, 어떻다, 하는데, 그것은 사형 받을 자를 용서해주시고 자유하게 하심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불평불만이 어디 가합니까? 예수님께서 대신 사형 받으셨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서 살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또 산다고 하면, 얼마나 패역무도한 일입니까?

우리는 육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만 살지 말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그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저 무엇이든지 감사해야하는 것입니다. 물 길어오라 해도 감사, 흙을 파라고 해도 감사, 무얼 지고 가라고 해도 감사, 전부 감사 뿐 입니다. 옛날에 둑을 막을 때에 전부 사람이 다 이고지고 날라서 막는 일을 아주 힘들게 일하고도 얼마 받지 못했습니다. 사형 받을 사람을 살리고는 둑 막는 일하라고 하면 즐겁게 하겠습니까? 죽을 것을 살려주면 그 사람에게는 무엇을 시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가 우상섬기고, 마귀 따라가고, 육신의 욕심대로 살던 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쌓아 반드시 멸망 받을 자였던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멸망 받아 죽을 자를 살려주신 것을 알면 하나님께서 무얼 시키셔도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죽을 자였던 것을 알고, 살려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함으로 모든 것을 하며 주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고 충성하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