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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골로새서 1:24-29 구원운동을 위한 수고.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구원운동을 위한 수고
골로새서 4:24-29

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5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 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1:24 이제 나는 너희를 위하여 당하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 

1:25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너희를 위하여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 

1:26 모든 시대와 세대로부터 감추어져 왔던 비밀이 이제는 그분의 성도들에게 드러났다. 

1:27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비밀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인지 그분의 성도들에게 알리고자 하셨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이시다. 

1:28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모든 지혜로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들로 세우려는 것이다. 

1:29 이 일을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분의 역사를 따라 힘써 수고하고 있다.


1.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움

본문 24절에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의 일군이 된 바울은 너희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바울은 교회를 위해서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괴로움을 단 마음으로 받으면서, 복음을 위해서 죽도록 충성하는 바울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은 교회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실 때에 고난을 조금 남겨 놓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100% 다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실 때에 1%라도 남겨 놓았다고 하면 그것은 이단이 됩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100%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남은 게 없습니다. 그러면 남은 고난이란 복음을 전하는 고난, 교회를 세우는 고난,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고난 등을 말합니다. 즉 남은 고난이란 복음을 위해 당하는 고난입니다.

이 남은 고난을 우리에게도 남겨 놓으셨습니다.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가는 사명을 우리에게 다 맡기셨습니다. 이것이 남은 고난입니다. 남은 고난을 안 받으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 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으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나가며, 교회를 위해 봉사하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을 때에 괴로움이 많으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기뻐하면서, 감사하면서 복음을 전하였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기쁘게 받은 이유

◉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짐

그러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는 것을 왜 감사하며, 기쁘게 여겼는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으면서 수고할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 성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짐
또 성도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만들어져 나가기 때문입니다. 

◉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있음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받은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이 있습니다.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복음을 전하다가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성도를 섬기기 위해서 얼마나 고난을 받았는가? 등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인데, 그것을 받은 것만큼 상급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많이 받았으면 상급이 많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안 받았으면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즉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을 쓰고, 또 성도를 돌보기 위해서 힘을 쓰고, 교회를 위한 희생 봉사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 나오는 사람을 환영하고, 사랑하고, 그 사람을 믿음의 길로 잘 인도하여야겠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이 남은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남은 고난을 받는 사람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고, 모든 성도들의 구원이 잘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고 하였는데, 내가 고난당하므로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아가게 하여야겠다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2.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경륜을 따라 된 것임

본문 25절에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교회 일꾼 된 것은”이란, 바울이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을 말합니다. 사도나 장로나 집사는 다 교회의 일꾼입니다. 또 전도사나 목사나 교사 등이 다 교회의 일꾼입니다.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즉, 내게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 일꾼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하신 뜻이 있어서 또 말씀을 이루시려고 일꾼으로 세워 놓았기 때문에 괴로움을 달게 받으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비밀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남

본문 26-27절에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비밀”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것인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나타내셨습니다. 만세와 만대는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 전의 모든 세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는 일입니다. 즉 구원역사가 하나님의 비밀입니다. 이것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취었던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하였는데, 그리스도는 우리의 영광의 소망이요,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말입니다.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님의 비밀이며, 영광의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4. 가르침의 목적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

본문 28절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님을 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온전치 못한 것을 고치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아서 고쳐야 됩니다. 부정한 것을 고치고, 되지 못한 것을 고쳐야 됩니다. 고치려면 순종해야 고칠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각 사람을 온전한 자로 세우려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각 사람을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가르치는 것인데, 가르침 받을 때에 잘 받아서 순종하면 점점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갑니다. 자신의 결점을 하나씩 고쳐 나가므로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 때에 고칠 것을 고쳐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됩니다. 고칠 생각을 가져야 하는데, 고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나가면 희망이 없습니다. 기도원에서 사경회할 때 모든 사람 앞에 덕을 세우고, 사랑을 베풀라고 늘 말했는데, 싸우고 다투면 무엇을 배운 것입니까? 이것은 고치지 않은 증거입니다.
고칠 생각은 안하고 그저 말씀을 들으면, 말씀은 말씀대로 듣고, 자기는 자기대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십년 배워도, 백년 배워도 희망이 없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다투고 싸우는 성질을 고쳐야 됩니다. “말씀을 받아서 말씀대로 해야 되겠다, 결점을 고쳐야 되겠다, 온전한 자가 되어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하나씩 결점을 고쳐 나가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습니다. 덕이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게 덕인데,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볼 생각만 합니다. 그런 사람은 덕스럽지 못한 것을 하나하나 고쳐 나가야 희망이 있습니다. 각 사람을 가르치는 목적은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온전한 자로 세워져 나가야 됩니다. 배우는 목적도 온전치 못한 것을 고쳐 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고치지 않으면서 배우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말씀을 배워서 배운 말씀을 실행하고, 그 말씀을 이루어 나가야, 말씀대로 온전한 자로 만들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한 자가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5.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수고함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함

본문 29절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가 있어야 그것이 산 믿음입니다.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역사가 없으면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고린도후서 13:3-5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저가 너희를 향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으셨으니 우리도 저의 안에서 약하나 너희를 향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저와 함께 살리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을 확증하라”고 하였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것을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면 너희가 버리운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능력이 항상 속에서 역사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속에서 역사하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그리스도는 강한 능력으로 감동시키시고, 역사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하였는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가 있습니다. 바울은 그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하였습니다.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 순종하느라고 힘을 다하여 수고하면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디모데후서 1:14-15에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해 수고하였습니다. 사도행전20:22에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심령에 매임을 받아서 올라가는 것이 역사하시는 이의 인도를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바울이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환난과 결박이 기다린다고 하여도,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올라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0:9-10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의 두려움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우리도 고소하리라 하오며 나의 친한 벗도 다 나의 타락하기를 기다리며 피차 이르기를 그가 혹시 유혹을 받으리니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환난과 핍박이 너무 심하기 때
문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예레미야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어서 다시 나가서 여호와를 선포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가 있어야 됩니다. 이것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고, 버리운 자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가 있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겠습니다.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가 없는 사람은 왜 없는가? 고린도후서 12:9에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하였듯이,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역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약해야만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속에서 역사합니다. 자기가 약해야 속에서 역사하는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고, 자기가 온전히 없어져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믿음을 갖고,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

쉬지 않고 역사하시는 하나님

본문 29절에,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끌고 가지 않습니까? 외부로부터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속에서부터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역사하는 것은 쉬지 않고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알아야 됩니다. 하루 몇 번씩이나 하시겠습니까? 매 시간, 매 초, 매 사건에 우리를 지키시고 하나님이 능력으로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힘을 다해서 수고하면서 그 능력의 인도를 따라가야 합니다. 

한 가지 문제는, 능력으로 역사하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얼른 배워서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속에서 나를 붙드시고 이끌고 가시는 능력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겠습니다. 

또한 지식적으로만 알게 아니라, 실제로 우리를 붙들고 역사하심에 감동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속에서 능력으로 우리를 이끌고 나가는데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감동을 왜 못 받습니까? 감각이 없어져서 그렇습니다. 마음이 완악해지고 교만해지고 굳어져서 그렇습니다.
에베소서 4장 18절에,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굳어졌다는 것, 완고해졌다는 것, 방탕해졌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9절에는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시고 역사하지만 그 역사에 반응이 없습니다. 불순종하고 거역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동으로 끌고 가려고 하는데 나는 서로 갑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심에 감동을 받고, 깨달아야 협력할 것인데, 완악하고, 고집 세고, 마음이 굳어져 있습니다.

그러한 죄로 인해서 어두워진 것을 회개해야 되겠습니다. 모든 죄를 찾아서 회개하고,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상한 심령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나 사람 앞에서 죄송스럽게 생각을 하고, 언제나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깨닫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 양심을 날카롭게 써서 온유한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에 전적으로 복종하려는 심령을 가지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감동이 끊어진 사람은 생명이 끊어진 것입니다. 감동에는 외부적 감동과 내부적 감동이 있습니다. 육신의 감정에 감동이 있고 영적 감동이 있습니다. 외부적인 감동은 빠르고 강하지만, 내부에 들어가서는 까딱도 안 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이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다 외부적으로는 강하지만, 심령 속 깊은 곳은 움직이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성령은 깊은 심령 속을 진리가운데로 인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의 역사와 성령의 역사는 무엇으로 분별합니까? 성경에 안 맞는 건 무조건 다 마귀 역사입니다. 성경에 아홉 가지가 맞아도 한 가지가 안 맞으면 마귀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성경과 꼭 맞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하나님은 진실하시기 때문에, 감동의 역사가 성경하고 맞아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말이라도 성경에 안 맞는 건 마귀 역사입니다. 천사가 말해줘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제 감동을 받는 자, 하나님의 인도를 매일 받는 사람이 돼야 되겠습니다. 감동의 역사가 끊어지면 생명의 역사가 끊어지는 줄 알고, 언제나 감동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감동 따라가다 신비주의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먼저 붙들고 거기에 감동이 올 때에 그 감동을 따라가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2절에,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어떠한 감동이 있을 때에 성경에 맞나 안 맞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안 맞으면 회개하고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안 하도록 힘을 쓰라는 말입니다. 성경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여기서 배우고 감동은 저기서 받는 게 옳습니까? 말씀 떠나서 받는 감동은 참된 것 아닙니다. 또 감동 없는 말씀은 안 됩니다. 말씀 속에 감동이 있어야 되고, 늘 감동의 역사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한 번도 감동의 역사가 막히지 않는 사람, 끊어지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늘 깨어 있어야 됩니다. 겸손해야 되고, 자기를 부인해야 되고, 늘 상한심령을 가져야 되고, 늘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서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잃어버립
니다. 언제든지 마음이 겸손하고 온유해야 하나님의 말씀대로 감동을 받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어떻다고 하였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멍에를 메고 나간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말씀의 멍에입니다. 감동을 받아서 말씀의 멍에를 메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가는 것입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자의 역사를 먼저 발견하고, 그를 위해서 힘써서 수고하는 것입니다. 

본토와 친척과 아비 집을 다 버리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말씀만 따라갈 때에 생명이 살아납니다. 따라가지 않으면 도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어떻게 감동하시는가, 나를 인도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바를 바로 감동받아서 따라갈 때에, 있는 힘을 다 써서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력을 다하고 물질을 다 기울이고 이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협력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협력을 하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 속에서부터 성공되어 나갑니다. 그 길이 우리가 달음박질해 나가야 할 길입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먼저 발견해야 됩니다. 늘 발견하고 그에게 붙들리고, 이젠 거기에 나도 힘을 다해서 수고하면서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개인 구원도 있는 모든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