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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5일 수요일

느헤미야 2:1-20 느헤미야가 귀국하여 성전 건축을 독려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느헤미야가 귀국하여 성전 건축을 독려함
느헤미야 2:1-20

1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2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3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4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5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6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7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8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9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10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11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 일에 12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13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더라 14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15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16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
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 17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18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 19호론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리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20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

1.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근심을 알아봄

느헤미야가 훼파된 예루살렘 성을 생각하며 근심함

느헤미야는 주전 444년 바사 왕 아닥사스다 이십 년에 3차 포로귀환으로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습니다. 1차 포로는 주전 538년에 돌아왔는데 바사 왕 고레스 원년으로 사만 이천 삼백 육십 명이라는 많은 사람이 같이 돌아왔습니다. 2차 포로 귀환(주전 457년)은 에스라 때로 1차 포로 귀환 후 81년 뒤인 아닥사스다 왕 7년에 있었습니다.
81년 동안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가 아닥사스다 왕 7년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시고 돌아가게 역사하셔서 돌아왔습니다. 본문의 느헤미야는 3차 포로 귀환 때의 인물로, 지금의 사건은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2차 포로 귀환 후 13년 뒤의 일입니다.

본문 1-3절에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께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에서 술 감독(왕에게 술을 드리는 직분)이 되었습니다. 이방 나라에서도 믿음 안에서 살므로 왕에게도 충성된 자로 보여져 술 감독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왕과 늘 마주하는 신임 받는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바사 나라에서 요새로 말하면 장관과 같은 높은 지위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술은 성도에게 합당치 않은 것으로 특별히 신명기 6장에 보면 나실인은 포도주와 다른 술을 금하였습니다. 나실인이었던 삼손도이 법을 따랐습니다. 제사장이 술을 먹으면 제사를 잘못 드리고 재판장도 재판을 바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술을 금하였는데, 이것은 이방
인은 상관없이, 성도에게만 해당하는 법이었습니다. 술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잘못할까 봐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술 취하지 말라고 하였으므로 술을 먹으면 안 됩니다. 지금 본문의 느헤미야는 식민지의 포로된 신분으로 그 나라 왕의 명으로 술 감독 직분을 맡은 것입니다. 그런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느헤미야가 직분 상 왕에게 술을 부어 드릴 때 왕이 보기에 그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으므로 연유룰 물으니, 왕의 앞에서 수색을 보여 마음을 쓰게 한 것이 신하의 도리가 아니므로 왕은 조금의 근심도 없이 ‘만세수를 하옵소서’라고 하여 변함없는 존경과 충성을 표하는 말로 먼저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조상들의 묘실이 훼손되어 근심이 생긴 것이라고 겸손히 말하였습니다. 예전에 유다의 왕들을 예루살렘 성에 묻었으므로 예루살렘 성을 가리켜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유다 왕국 솔로몬의 성이라 하지 않은 것은 왕의 반감을 사지 않도록 지혜롭게 말한 것입니다. 즉, 유다 백성들을 지배하고 있는 왕이 유다 사람인 느헤미야가 다시 나라를 일으키려 하는가 하는 의심을 하지 않도록 말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열조의 묘실이라고 하여 동감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2. 아닥사스다 왕이 느헤미야의 소원을 허락함

하나님께 구할 것을 간단히 기도한 느헤미야

본문 4-5절에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왕 앞에서 말을 시작하려고 할 때 하나님께 묵도하였다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왕과 말하다 가만히 있음으로 왕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하면서, 중요한 순간이므로 한 1분이 채 안 되더라도 간단히 기도한 것 같습니다. 

보통은 우리가 기도를 오래 하며 정성을 들여 마음이 하나님께로 가고 하나님과 교통이 되는 기도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모든 일이 바로 되므로 무슨 일이든 먼저 기도하고 해야 합니다. 범사에 기도하지 않고 하면 일이 바로 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그렇지만 기도를 오래할 때에는 오래하고 간단하게 할 때에는 간단하게 해야 합니다. 기도를 오랫동안 해야 된다고 오랜 시간 기도해서 일이 다 틀어지게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를 해가 떠올라오도록 해서 직장에 다 늦고 아이들은 학교에 늦고 해서 일에 사고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 느헤미야는 잠깐 동안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기도를 오래할 때는 오래하여 주야로 하고 한 주간을 하고 열흘을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이십 일을 기도할 때에는 이십 일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간단히 해야 할때는 간단히 하여야 합니다. 따라서 기도를 간단히 하는 것도 배워야 합니다. 오래해야만 기도인 것은 아닙니다. 

격식을 차려 구한 느헤미야

그리고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자신의 소임을 행하는 일이 왕의 자비한 허락에 달려있음을 나타내었습니다. 간절한 청의 뜻을 담아 간단하면서도 겸손히 예를 차려 구하였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기쁘게 하여 내어줄 마음이 생기게 하고서 무엇을 달라고 해야지, 대뜸 무조건 “무엇을 주시오. 무엇을 주시오”라고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구하는 것을 줄 마음이 생기게끔 말을 온유하게 하면서 구해야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무엇을 말할 때에 높임의 의미를 지닌 ‘오’를 많이 붙여 상대방에 대한 예를 표합니다. 선물도 ‘오미야게’라 하고 또 “오메데또 고자이마쓰(축하를 바쳐드립니다)”처럼 겸양과 높임의 ‘오’로 시작하는 말이 많습니다. 또 미국 사람들도 무엇을 그냥 ‘주시오’라고 하지 않고 ‘커피 한 잔하게 해주십시오’라고 청하는 형태로 말하여 “May I have”나 ‘저를 양해해 주십시오’라는 뜻을 내포한 “Excuse me”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이런 말들은 내 권리를 주장하기 이전에 상대방에게 먼저 예를 표하여 상대를 높여주고 기분을 좋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무엇을 원하는가를 확실하게 하되, 예를 차려서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가정에서도 기분이 좋게 무엇을 잘하고서 남편한테 돈을 좀달라고 해야지, “돈 좀 줘요”라고 깍쟁이같이 나가면 돈이 있어도 안주게 됩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여 간단하면서도 왕께 대한 예를 다하고 무엇을 원하는가도 분명하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왕이 허락하여주었습니다. 

왕에게 기한을 말해주고 편히 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 느헤미야

본문 6절에 “그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몇 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마침 왕후가 옆에 앉아 있다가 왕이 쾌히 허락하게 도와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후가 앉아있었다는 것이 기록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시온성을 건축하는 데 도와준 사람은 여기 왕후처럼 앉아만 있었어도 성경에 영원히 남도록 기록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에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방해하지 말고 언제나 도와주는 편에 서야 합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유다까지 아이들을 데리고 가면 넉 달을 가야 하는 길입니다. 지도의 축적도로 재어보니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의 여덟 배 내지 열 배가 멉니다. 에스라 때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데 넉 달이 걸렸습니다. 느헤미야는 말을 타고 혼자 갔는데, 팔천 리이므로
빨리 가도 두 달 반이 걸렸을 것이고 갔다 오려면 다섯 달이고 가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데에 오십이 일이 걸렸으므로 다 합하면 일곱달이나 여덟 달이 됩니다. 그러므로 약 일 년이면 다하고 돌아올 수 있겠다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본문 7-8절에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든 강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
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심으로 왕이 허락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통과하도록 강 서편 총독들에게 조서를 내려줄 것을 구하였습니다. 또 들보 재목은 굵은 나무로 해야 되는데, 옛날부터 큰 나무는 함부로 쓰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서를 내려 큰 나무를 확보하게 해주셔서 성곽도 건축하고 느헤미야가 있을 집도 건축하게 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왕이 느헤미야의 요구들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3.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매 원수들이 근심함

본문 9-10절에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의 조서를 전하였더니 호론사람 산발랏과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케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느헤미야가 왕의 조서를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지중해까지 강 서편 전체를 다스리는 총독에게 주며 무사히 그 지역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는 이스라엘이 잘 안되길 바라는 대적들이어서 이스라엘이 다시 흥왕케 될까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4. 느헤미야가 밤에 예루살렘을 시찰함

본문 11-16절에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 일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쌔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 그 밤에 골짜기 문으로 나가서 용정으로 분문에 이르는 동안에 보니 예루살렘 성벽이 다 무너졌고 성문은 소화되었더라 앞으로 행하여 샘문과 왕의 못에 이르러는 탄 짐승이 지나갈 곳이 없는지라 그 밤에 시내를 좇아 올라가서 성벽을 살펴본 후에 돌이켜 골짜기 문으로 들어와서 돌아왔으나 방백들은 내가 어디 갔었으며 무엇을 하였는지 알지 못하였고 나도 그 일을 유다 사람들에게나 제사장들에게나 귀인들에게나 방백들에게나 그외에 일하는 자들에게 고하지 아니하다가”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감동을 주시므로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을 건축하게 하신 일을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만 데리고 예루살렘 성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성은 다 무너지고 성문 및 여러 문이란 문은 다 불타고 형편이 없이
비참하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살펴본 일을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5. 느헤미야의 권고로 백성들이 예루살렘을 중건(重建) 하려고 일어남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힘을 합하여 나섬

본문 17-18절에 “후에 저희에게 이르기를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 저희의 말이 일어나 건축하자 하고 모두 힘을 내어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밤에 성을 다 둘러보고 유다 사람들을 모아놓고 권고하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신 것과 왕의 허락을 들어 확실한 증거와 확신으로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자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 건축하자”고 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을 들을 때에 “무슨 돈을 가지고 건축합니까? 옛날 솔로몬 때는 사람이 많이 동원되었고 돈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돈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건축하겠습니까?”라고 했으면 일이 다 끝장날 텐데 모두 힘을 내어 하고자 한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부족하다. 힘이 없다. 돈이 없다”라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라고 하시면 그저 “예, 합시다”라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또는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합니까? 먹을 것이 없으면 무엇을 먹고 하겠습니까?” 등의 말을 하면 건축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하라”고 하면 “예”하고 하면 되는데, 자꾸 여러 말로 “나는 아는 것도 없고 힘도 없습니다. 나는 약합니다. 빚을 많이 졌습니다”라고
하면 못합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데 빚 많이 졌다는 소리도 돈이 필요하다는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일어나 건축하라”고 하면 “예”하고 일어나서 하면 다른 것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감동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바벨론에서 느헤미야를 보내주셨고 왕이 하도록 허락한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힘을 합해 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을 쌓을 돌이 없다 할지라도 널려 있는 전에 무너진 예루살렘 성의 돌들을 주워 쌓으면 되는 것입니다. “힘이 없습니다”라고 하는데 그러면 두 사람이 돌 하나를 합해서 들면 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네 사람이 들면 됩니다. 하면 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 수 있으므로 하라고 하시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시겠습니까? 스가랴 4장6절에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권력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오직나의 영으로만 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면 다 됩니다.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못한다, 못한다”하면 못하고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안 도와주셔서 반드시 그 사람은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고자 합니다”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하게 됩니다. 언제나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6.25 사변 때에 제주도로 피난를 갔다가 부산에 고려 신학교에 갔는데 피난민 신세이므로 빈손으로 배우러 갔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으라고 하여 밥 먹으며 공부하다가 며칠이 지나니 식비를 내라고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라고 하자 “밥을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돈을 내지 않으면 밥을 못 먹는 것이므로 그때부터 밥을 안 먹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밥을 안 먹고 공부하였더니 첫째 하나님께서 걱정이 생기신 것 같습니다. ‘이것들을 앞으로 한몫 쓰려고 제주도에서 여기까지 데리고 왔는데 죽으면 어떻게 하나’하신 것 같습니다. 또 학교 사무실에서도 ‘저것들 굶어 죽으면 떼로 장사 나겠는데 어떻게 하나...’하여 박윤선 목사님, 한상동 목사님이 의논을 하신 모양입니다. 어느 날 사무실로 오라고 하여 가보니 “요새 어떻게 지내냐?”고 하여서 “밥을 안 먹고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미국에서 보낸 피난민들 원조 쌀로 밥을 해줄 테니 이제부터 밥 먹고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밥 먹으며 공부하였습니다. 밥을 먹지 말라고 하여 무턱대고 밥을 안 먹고 공부하니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원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얼마 있다가 하나님께서 일할 길을 열어주셔서 식비도 내고 다른 필요한 것도 다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구제 물자로 의복도 입으며 신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빈손으로 가서 졸업까지 마친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었어도 이렇게 등록금을 벌어가며 다 마친 사람들도 많은데, 못한다고 하는 사람은 못합니다. 그때 우리와 같은 형편이었던 학생 중 어떤 사람은 공연히 자기는 힘
들어서 신학교 못하겠다고 부민동 오정동 목사의 고려 성경학교로 갔는데, 그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쭉 모르다가 몇 년 전 우리 교회 새 교인 가정 심방 차 연희동 산 동네 아파트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신학교를 그만 두고 내내 사업으로 돈 벌러 바쁘게 다니다 다
늙었다고 합니다. 그때 신학교를 했더라면 되었는데, 스스로 못한다고 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기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들은 못한다는 소리를 그만 두고 “하나님께서 시키시면 한다”고 하며 힘을 내어 “하나님이 맡기신 이 선한 일을 하자”라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달라붙어 모든 것을 다 바쳐 일하므로 그 일이 성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면 잔소리는 그만 두고 “예”하면 되는 것입니다. “콩이 없다. 팥이 없다. 기름이 없다. 가루가 없다”하지 말고 “예”하고 들러붙어 힘을 합하면 하나님의 만능의 손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라고 한 것처럼(18절)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고, 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이라고 하였는데(12절)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일을 하게 하실 때에 순종하니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라고 하신 말씀처럼(20절)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6. 원수들의 방해와 하나님의 도우심

원수들에게 당당히 답변한 느헤미야

본문 19-20절에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리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여 가로되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는 데 대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업신여기고 비웃자 느헤미야가 이 일은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우리는 종으로서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것이므로 총책임자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형통케 해주실 것이라고 대적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순종만 하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심

하나님께서는 시키시는 대로 하면 반드시 형통케 해주십니다. 그러나 제 생각, 제 뜻, 자기 욕심대로 하고 돈을 따라가고 사람을 따라가면 안 도와주십니다. 물욕과 정욕과 자기 명예 영광과 자기 중심을 따라가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십니다. 그저 ‘저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는 종입니다.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오라고 하시면 오고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앉으라고 하시면 앉고 서라고 하시면 섭니다. 동으로 가라고 하시면 동으로 갑니다. 또 가지 말라고 하시면 안 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형통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도 건축하게 해주십니다. 돈이 없어도 권력이 없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다 해주십니다.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하라 하시는 것은 하라는 대로 순종만 하면 형통합니다.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셔서 만능으로 다 일해 놓으십니다. 본문 20절 하반절에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도 없다 하였느니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는 것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만 하라는 것입니다. 니느웨로 가라고 하시면 가고 또 가지 말라고 하시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시면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애굽으로 가라고 하시면 가고 애굽에서도 시내 광야, 호렙 산으로 인도하시면 그리로 가야 합니다. 

모세가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불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제 생각대로 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또 모세가 “말할 줄을 모릅니다”라고 하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또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였는데, 모세가 설명하는 말 같은 것은 잘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말할 줄을 몰라도 가면 하나님께서 되게 해주십니다. 그래도 안 가겠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노하셔서 “아론이 오는 것을 만날 것이다. 나가 보아라”고 하셔서 모세가 나가 아론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설명을 잘하는 아론을 만나 다 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말할 줄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거저 나갔다고 해도 아론을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론을 미리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일이 다 되게 되어 있는데, 괜히 하나님께 책망을 받고 나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가면 되고, 하면 되고,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실 때에 가면 됩니다. 그러면 재력이 없고 권력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해주셔서 형통케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빈 들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할 때에 “네게 있는 것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어보셨고 그들은 “소년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것이 얼마 안 되는구나. 그것은 너나 먹고 다른 데에 가서 구해주어라”고 하셨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네게 있는 그것’을 가지고 오라고 하셨고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떼어주시니 오천 명이 먹고도 열두 바구니에 남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기적을 봅니다. 그리고 그럴 때에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나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도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하나님의 종의 위치에서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라고 하실 때에 “돈이 없다. 힘이 없다. 사람이 없다”라고 하지 않고 “일어나 건축하자”라고 하며 모두가 힘을 내어 나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형통하게 해주시고 성공하게 해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