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만을 의뢰하며, 신앙을 지키라
시편 11:1-7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1-7
1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 2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 3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4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 5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 6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 7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
1. 악인이 의인을 핍박함
본문 1절에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피하였거늘’이라고 한 것은 여호와께 피해 있는 성도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피난처로 삼고, 여호와의 능력의 품을 의지하며, 아무리 환난이 많아도 하나님을 자기의 힘으로 삼고, 생명으로 삼고 나가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 피하려면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부르짖으며 하나님을 힘입어 그로 말미암아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바로 서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며, 하나님을 힘입어 사는 생활이 여호와께 피하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런데 ‘너희가 내 영혼더러 새같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인고’라고 한 것은 악한 친구들이 네 산으로 도망하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악한 친구들은 도망치라고 합니다.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은 여호와께 피하는 생활로 만족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되며, 네 산, 곧 인간의 피난처로 가라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의 피난처에만 거하지 말고 인간이 피할 만한 곳으로 가라, 인간이 살 만한 곳으로 가라,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을 의지할 만한 곳으로 가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양보하고 인간이 피할 만한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네가 인간적으로 살 만한 피난처를 택해서 가라는 것입니다. 즉, 믿음대로만 나가면 너는 죽는다, 그러므로 그것을 양보하고 네가 살 만한 곳, 피난처가 될 만한 곳을 찾아서 그리로 가야만 네가 살수 있다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악한 친구들은 계속해서 믿음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권면합니다. 믿음으로 나가면 안 되고, 성경말씀대로 나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육신이나 가정이나 자녀들이나 사업이 좀 될 만한 곳으로 나가야지, 고지식하게 신앙양심으로 나가면 살 수가 없다, 양보하고 인간의 피난처로 가라, 이렇게 계속해서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양보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에서 유익될만한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육신이 유익될만한 곳, 세상적으로 유익될만한 곳, 평안한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말씀만 따라가면,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죽을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이 좀 평안한 곳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사도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있을 때에, 친구들이 와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있으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떠나지 말라고 했지만, 거기 있다가는 네가 손해를 보고 죽을 것이므로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네 산으로 도망하라는 것입니다. ‘새와 같이 하라’는 것은 빨리 날아서 어서 도망을 치라는 뜻입니다. 그래야만 네가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권면입니다.
예수님께도 도망치라고 권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2장20-25절에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저희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온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헬라 사람 몇이 와서 예수님을 만나자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갈릴리 벳새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였고 빌립은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안드레와 빌립 둘이 예수님께 가서 헬라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자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예수님으로 하여금 어서 도망가시도록 권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뭐라고 답변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이 되어 떨어져 죽을 각오를 하시고, 헬라 사람들이 와서 피난을 가자고 할 때 가지 않으셨습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도 여호와께 피하고 그 말씀에 피해 있을 때에, 악한 친구들이 와서 “새같이 빨리 날아서 네 산으로 도망하라. 네가 살 만한 곳으로 가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왜 핍박을 받고 있느냐? 핍박이 없는 곳, 네 산으로, 평안한 곳, 잘 살 수 있는 곳으로도망치라’는 권면입니다. 그러나 ‘네 산으로 도망하라 함은 어찜이뇨’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 피해 사는 것이 성도가 참으로 사는 길입니다. 영이 살고, 말씀이 생명이 되며, 하나님께서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여호와께 피해 사는 것이 참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한 친구들이 와서 뭐라고 권면합니까? ‘네 산으로 도망하라, 거기서는 핍박을 받다가 죽을 것 같다. 곤고를 당하고 있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 빨리 네 산으로 도망치면 네가 평안히 살고 핍박도 없을 것이다. 잘 살 수 있는데, 왜 그러고 있느냐? 일단 신앙을 양보하고 가서 거기서 하나님을 섬기면 되지 않느냐? 양보하고 도망치라’고 계속해서 권면합니다. 악한 친구들은 그렇게 권면합니다.
본문 2절에 “악인이 활을 당기고 살을 시위에 먹임이여 마음이 바른 자를 어두운 데서 쏘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악한 자는 마음이 바른 자를 죽이려고 활을 당기고 살을 먹입니다. 당장에라도 쏘려고 합니다. 잠시라도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합니다. 순식간에 활을 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만큼 위기 일발에 처해 있는 성도입니다. 잠시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지 못합니다. 순간적으로 언제 활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이 그런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당장 아침에 죽이겠는지, 낮에 죽이겠는지, 저녁에 죽이겠는지, 모릅니다. 악한 자는 죽일 태세를 가지고, 죽일 기회를 엿보아 틈만 있으면 잡아 죽이려 합니다. 그들은 마귀의 사자들입니다. 그 배후에는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기회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매일, 매 시간, 매 분, 매 초, 마귀는 우리를 잡아 삼키려고, 핍박하려고, 잡아 죽이려고, 여러 면으로 공격해 들어옵니다. 그러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마귀는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핍박을 가하며, 피하라고 합니다. 신앙을 양보하고 피하라는 것입니다.
2.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설 수 없음
본문 3절에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고 하였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터가 무너진다’는 것은 진리가 무너지는 것, 신앙양심이 무너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 라는 것입니다. 진리를 세워나가는 것이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0절에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여기서 사도들과 선지자의 터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성경말씀 위, 진리 위에 영적 성전을 지어나갑니다. 그런데 터가 무너지면, 진리를 세워나가는 진리가 무너지면, 의인은 설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세워나가려면 터가 언제라도 무너지면 안 됩니다. 진리를 세워나가는 터가 견고해서 진리를 계속해서 세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바로 깨달은 신앙양심이 곧 터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바로 깨달은 신앙양심이 무너지면, 신앙양심을 양보하면, 의인이 무엇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양보하면 성도는 죽은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죽어버립니다. 우리는 신앙양심을 양보하지 않아야 합니다. 신앙양심을 양보한 사람은 서리 맞은 채소와 같습니다. 가을날 채소가 서리를 맞으면 삶은 것처럼 됩니다. 꼿꼿하던 채소들이 서리를 맞으면 다 수그러듭니다. 잎사귀가 푹 늘어져 땅에 붙고 생명력이 없어집니다. 성도가 옳다고 깨달은 신앙양심을 양보하면 힘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악한 친구들은 여러 가지 말로 성도를 권면합니다. ‘그렇게 믿어야만 바로 믿는 것이냐? 예수를 그렇게 믿느냐? 우리도 다 믿는다. 그렇게 안 믿고도 얼마든지 예수 믿는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데, 거기에만 나가야 계시느냐? 우리도 성경을 믿는다, 성경대로 다 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는 다 하느냐? 다른 것도 다 못하면서 그것 하나만 지키려고 하느냐? 주일날 지키려고 하느냐?’고 하며 여러 가지 말로 신앙을 양보하게 만듭니다. 새와 같이 네 산으로 도망치라고, 약한 동무들은 갖가지 말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 신앙양심을 양보하면 터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터가 무너지면 아무 힘이 없습니다. 흑암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 힘이 없어서 믿는 일 하나를 제대로 못합니다. 예배당만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됩니다. 믿는 일은 아무것도 되지 않고, 신앙은 죽은 상태에서 나갑니다. 터가 무너진 그 사람은 살았어도 죽은 것입니다. 죽은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라는 것입니다. 의인은 성도를 가리키는데, 성도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의 터, 진리의 터, 의를 세워나가는 의의 터, 그것이 무너지면 그 다음에는 전부 흑암 속에 갇힙니다.
의가 중요합니다. 의가 무너지면 성도는 흑암 속에 갇히고, 악한 사람들은 독재하며, 불의한 사람들이 잘되어가게 됩니다. 의인은 아무것도 할 것이 없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믿는 일을 못합니다. 심령의역사가 다 죽습니다. 의인이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이 진리의 터가 많이 무너졌습니다.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내놓고 믿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믿는 것이 아주 힘든 시대가 되었습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떠나야 합니다.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힘 있게 서서 나가야 합니다. 그것을 못하게 되면 터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러면 성도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형식적으로만 예배당에 왔다 갔다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양보하면 안 됩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떠나야 합니다. 신앙양심에 옳은 것은 옳다하고, 세워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대로 걸어가야 합니다. 걸아가지 아니하면 터가 무너집니다.
캐나다에 교단 교회가 하나 있는데, 그 옆에 100명 정도가 모이는 교회에서 자기들과 합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지시해달라고 편지가 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합하지 않으면, 지금 그 교회는 성도 수가 열 몇 명밖에 되지 않으므로 여간 곤란하지 않은 것입니다. 합하면 백 한 이십 명 정도가 되므로 경제적으로도 괜찮습니다. 목회도 딱 절반씩 나누어 하자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네 시간 일을 보면, 두 시간씩 나누어 일하자는 것입니다. 심방도 절반으로 나누어서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단 교회 옆의 그 목사는 에큐메니칼에 속한 사람입니다. 캐나다 장로 교회에 속한 목사로서 WCC 계통 목사입니다. 그 사람은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왔고 영어를 상당히 잘하며 실력이 있는 목사입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그 목사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오고 영어도 잘하고 그곳에 몇 십 년째 있는 목사이니, 우리 교단 목사와는 비교할 바가 안 됩니다. 우리 교단 교회의 목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우리 신학교를 마친 것이 고작이어서 영어도 그 목사에 비하면 어림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 가르치는 것은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그 캐나다 목사가 7년만 있으면 퇴임한다고 하는데, 7년 후 그 목사가 퇴임하면 그 교인들이 다 우리 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7년만 참으면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러나 두 교회가 합하여 7년 정도 있으면 한 100명의 성도를 그냥 얻게 되겠지만, 합해서 교인들을 제대로 기를 수 있겠는지, 그것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7년 있다가 교인을 많이 받을
생각, 그것은 인간의 생각이 아닙니까? 7년 뒤에 우리 목사가 죽을지, 쫓겨날지 어떻게 압니까?
내일 일도 모르는데, 7년 후의 일을 기대하고 인본주의로 나가면 안됩니다. 현재의 일이 바로 되겠느냐를 잘 살펴야 합니다. 영을 살려나가는 일, 진리를 바로 세워나가는 일이 되겠느냐? 또 진리대로 그 교회를 끌고 나갈 수 있겠느냐? 그것을 봐야 합니다. 지금 합해놓으면
진리대로 바로 끌고 나갈 수 있겠습니까? 기관사가 둘이 되는데, 하나는 저리로 가자고 하고 하나는 이리로 가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교회가 풍비박산 나는 것입니다. 서로 가르치는 것이 다릅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가지를 가르치면, 십자가 지고 가는 쪽보다 공짜로 먹는 쪽으로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터가 무너지면 세울 수가 없습니다. 옳은 진리 절반을 입으로 말하지만, 결국은 쉬운 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당회와 제직을 세워도 다수로 결정되므로, 따라가는 것은 결국 그쪽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진리를 세우려면 굉장히 힘들게 됩니다. 해산하는 수고를 해도 세우기가 힘듭니다. 그것이 바로 ‘터가 무너지면 의인이 무엇을 할꼬’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외부적으로는 잘되겠지만, 영적 교회는 다 무너집니다. 터가 무너집니다. 진리를 양보하면 의인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고독을 당하고 외면당하게 됩니다. 진리를 양보하지 않아야만 설 수 있는 것입니다.
3. 징악상선(懲惡賞善)의 하나님을 믿고 힘을 얻음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에 그 보좌가 있으십니다. 하늘나라에 계시고, 영적 세계에 계십니다.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며, 깊은데까지 다 살펴보십니다. 그 안목이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늘에 그 보좌가 있으십니다. 하늘나라에 계시고, 영적 세계에 계십니다.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며, 깊은데까지 다 살펴보십니다. 그 안목이 모든 것을 다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5절에 “여호와는 의인을 감찰하시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의인을 감찰 하시는 분이십니다.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의인을 돌봐주시고, 권고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여호와이십니다. 그리고 악인과 강포함을 좋아하는 자를 마음에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셔서 의인, 믿음 지키는 자를 돌봐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보호해주십니다. 악한 사람들은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6절에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치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물고기를 잡을 때 그물을 치고 잡는 것처럼, 악인은 하나님께서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처럼 잡아서 불과 유황에 태워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불로 심판 받을 때에 저희가 받을 것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 얼굴을 뵈오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확신하는 것입니다. 징악상선의 하나님을 확신하고 힘을 얻어서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