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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3일 일요일

마태복음 7:6-12 하나님께 받아서 사람에게 나눠주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나님께 받아서 사람에게 나눠주라
마태복음 7:6-12

6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7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 거룩한 생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

본문 6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희가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 성도의 자세부터 바로 해야 되겠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또 거룩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성전, 이 거룩한 것을 가지고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개에게 던지지 말라 말했는데, 그럼 거룩한 것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것은 영감 받은 것,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도의 심신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몸과 마음 그것이 거룩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몸과 마음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았으니까 거룩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을 마음에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우리 몸에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성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6-17에,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우리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입니다. 거룩한 몸, 거룩한 마음, 성전 된 우리의 몸, 이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개와 같은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는 특징이 무엇입니까? 개는 싸우고 다투고 물고 찢고 음란하고 자기 혼자 다 먹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고, 찢고, 음행하고, 그것이 개의 특징입니다. 너희를 물어 찢는다고 했습니다. 너희는 거룩한 자인데, 성령이 너희 속에 계셔서 너희가 거룩한 성전이 되는데, 이것을 가지고, 너희 몸과 마음을 가지고, 개와 같은 생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들은 한번 처음 만나면 싸워봅니다. 서로 처음으로 만나면 싸우는 것이 인사입니다. 이것들은 한번 싸워보는 것입니다. 또 물고 찢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음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 너희는 거룩한 성전이 된 몸인데, 몸과 마음인데, 개와 같은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그 다음에는 너희의 진주가 있다고 했습니다. 너희 진주라고 했습니다. 남의 진주가 아닙니다. ‘너희의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 마태복음 13장에 진주 비유가 있습니다.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진주를 구하다가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니까, 가서 있는 것을 팔아다가 그 진주를 샀다고 했습니다.

너희의 진주는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3장의 진주 비유를 보면 그 진주는 진리입니다. 진리를 깨달은 너희 몸과 마음, 진리를 받은 너희 몸과 마음입니다. 너희의 진주라는 것은 너희가 진리를 받은 것, 너희가 진리를 깨달아 가진 그 몸과 마음이 진주라는 말입니다. 진리가 속에 있으니까 진주 아니겠습니까? 진리를 받았으니까 너희 속에 진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 진주가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돼지 앞에 던지지 말아라’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고 했는데, 돼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돼지는 ‘먹자주의’입니다. 먹자주의는 먹는 것이 첫째고, 먹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저 먹을 것만 생각하다가 조금만 먹을 것 안주면 더 달라고 “꽤액 꽤액 꽤액!” 하고, 그러다가 조금 있으면 또 “꽤액 꽤액!” 하다가 또 조금 주면 더 먹고, 돼지는 그렇습니다. 더러운 데에 눕습니다. 돼지에게 비단 옷을 해 입히면 그것은 몇 시간 못갑니다. 조금 있으면 또 더러운데 누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돼지의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너희 진주를, 하나님의 귀한 진주와 같은 진리를 깨달은 너희의 몸과 마음, 이것을 갖다가 먹자주의로 기울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는데 기울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자주의, 물질주의, 탐욕주의, 이런 데로 기울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리로 거기다 마음을 두고, 몸을 거기다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돼지 생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돼지는 깨끗한 생활을 못합니다. 더러운 곳에 가서 눕습니다. 그런 돼지와 같은 생활하지 말라는 것인데, 성도는 돼지와 같은 생활하면 안 됩니다. 돼지와 같은 생활하라고 했습니까? 먹자주의로 기울어지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것만 밤낮 생각하고, 먹을 것만 따라가고, 물질만 따라가고, 물질제일주의로 나아가고 그러다가 생활은 더러운 곳에 가서 눕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돼지와 같은 생활입니다.

뉴스에 외국에서는 포도주 한 병에 천만원짜리가 있답니다. 얼마 크지도 않고 조그만 병인 모양입니다. 포도주 한 병에 몇 십 년 된 것이라는데, 천만원 주고 사다 먹는답니다. 컵으로 말하면 두 서너 고삐(잔) 밖에 안 될 것 같은데, 그것이 세 고삐라 하면 한 고삐에 삼백만원씩 해서, 한 모금 꿀꺽 넘기면 몇 십만 원이 꿀꺽 넘어가는 것입니다. 몇 백만원이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돼지와 같은 생활입니다.

먹는 것만 알고,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까, 좋은 것 먹을까, 이것만 아는 것이 돼지 생활입니다.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많이 벌까 이것만 아는 것이 돼지 생활입니다. 그리고 또 생활은 또 무슨 생활입니까? 돼지 같은 생활은 더러운 곳에 가 눕는 생활, 눕는 장소가 더럽단 말입니다. 깨끗한 생활을 못합니다. 먹기는 잘 먹는데, 많이 먹는데, 좋은 것을 먹는데, 생활은 깨끗한 생활을 하지 못합니다. 더러운 생활을 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돼지는 더러운데 가서 눕습니다.

너희는 성도인데, 거룩한 자인데, 하나님의 성전인데,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더럽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싸우고 다투는 데에 너희 몸과 마음을 사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자주의로 나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교훈입니다.

2.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본문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구하라는 것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또 찾으라는 것도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또 문을 두드리라 이것도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것도 기도, 찾는 것도 기도, 두드리는 것도 기도, 기도하는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을 세 가지로 나누었는데, 구하는 기도, 찾는 기도, 두드리는 기도, 세 가지로 나눴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씩 생각해봅시다.

신령한 것을 구하라

구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는 기도를 첫째 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는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신령한 것, 너희는 신령한 것을 먼저 구하라 했습니다. 위의 것, 위의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신령한 것을 구하고, 신령한 것을 찾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고, 자기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자기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그 세계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계를 떠나면 그것은 사망입니다. 하나님 떠나는 것입니다. 구하는 세계에 있어야 합니다. 먼저 신령한 세계에서 살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신령한 세계를 떠나는 것은 고기가 물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고기가 물속에서 살아야지, 물을 떠나면 고기가 살 수 없습니다. 고기가 죽습니다. 우리의 사는 세계는 신령한 세계, 이 세계를 떠나면 우리 심령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도해서 하나님의 세계에서 언제나 떠나지 아니하도록, 하나님의 품속에서 언제나 떠나지 아니하도록, 언제나 하나님의 인도하는 자리에서 떠나지 아니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은혜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 더욱더 은혜를 많이 구하라, 많이 받는 자리에 들어가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으라

둘째는, 무슨 기도입니까? “찾으라. 그러면 찾는다.”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면 그것은 100% 다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못하고 자기 욕심대로, 정욕대로, 육신대로 나가면 그것은 100%로 다 실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그 뜻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 뜻대로 살까? 무슨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바로 이것을 해결을 할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재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재판 안하고 양보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매를 맞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안 맞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그것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집을 파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전세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그것도 찾아야 합니다.
욕심으로 그저 사는 것만 되는 줄 알면 안 됩니다. 파는 것도 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사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사야 되는 것이면 사는 것이 좋고, 파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파는 것이 좋고, 또 이사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가는 것이 좋고, 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안 가는 것이 좋습니다. 또 이사 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오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범사를 하면 그것은 다 성공입니다. 다 잘 됩니다.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100% 다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힘써서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문이 열리도록 두드리라

셋째 기도는 무엇입니까?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입니다. 두드리는 기도, 두드리는 기도는 이제 문 열어달라고 기도, 두드리는 것입니다. “문 열어 주십시오. 문 열어 주십시오” 하고 두드리면 주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자꾸 두드리면 문 열어서, “왜 그러냐?”라고 물어봅니다. 그러니까 두드리는 기도라는 것은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리기를,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구해서 하나님을 만났으면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알았습니다. 알았으니 문이 열려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열리도록까지 하나님께 두드리는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얼마동안 해야 할지 모릅니다. 두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단계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3.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심

본문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이거 먹어라” 하고, 떡 달라하면 돌을 갖다 주면서 “이거 먹어라.” 하는 사람 없습니다. 인절미, 찰떡을 달라하면, 하얀 차돌이 있습니다, 떡과 같이 생긴 차돌 주면서 “이거나 먹어라” 그거 먹고 이가 다 부러지도록 그렇게 만드는 아버지가 어디 있냐는 말입니다. 또 생선을 달라고 하면, 독사 한 놈을 잡아다가 “이거나 갖다 먹어라” 그러다 물려서 죽게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악한 이기주의

본문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겐 좋은 것으로 줄 줄 아는데 왜 선하신 하나님께서야 왜 너에게 안주겠느냐는 말입니다.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 찾는 자, 두드리는 자에게 왜 안주시겠느냐는 말입니다. 반드시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악한 자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다 악한 자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셨는데, 왜 악한 자라 했냐면 이기주의가 되서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이기주의입니다. 그 이기주의는 악한 것입니다. 이기주의자들이라도 자식에겐 좋은 것을 줄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는 하나님 앞에 악으로 취급 받습니다.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자입니다. 우리는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이주주의로 나가야 합니다. 이주주의는 주님을 의롭게 하는 주의, 주님을 영광스럽게, 영화롭게 하는 주의, 주님께서 높아지는 주의가 되겠습니다. “나는 쇠하고 그가 흥해야 되겠다” 세례요한이 말했는데, 이주주의로 나가는 것은 선한 일이고 이기주의로 나가는 것은 악한 일입니다. 이기주의, 자기중심, 자기 유익만 구하는 것, 그것 악한 일입니다.

성경에 보면 흉년 들 때에, 여자들이 아이를 잡아먹었습니다. 자기아들을 잡아먹었습니다. 여자 둘이서 아이가 있었는데, 굶어 죽게 되니까, ‘오늘은 네 아들 잡아먹고, 내일은 우리 아들 잡아먹자.’ 그래서 하나 잡아먹었습니다. 그 다음날 다른 여자 아들 잡아먹으려니까 안 내놓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약속 안 지켰다고 솔로몬 왕 앞에 가서 재판하지 않았습니까? 어저께 우리 아이 잡아먹을 때는 그 다음날 이 여자 아들 잡아먹기로 했는데, 우리 아이만 잡아먹고 자기 아이 안내놓으니까 이 여자가 안 되겠다고 재판한 것입니다. 그것이 악한 것 아닙니까? 하여간 다 악한 줄 아십시오. 다 악한 줄 알아야 합니다. 다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인데 그래서 악하다는 것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좋은 것으로 주심

아무리 악해도 그래도 자식에게는 잘 할 줄 압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자식에게는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것으로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습니까? 너희가 악해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다 주려고 하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왜 좋은 것을 안 주시겠습니까? 떡을 달라는 자에게 돌을 줄 아버지가 없고, 생선을 달라 하는 아들에게 뱀을 줄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또 반대로 해봅시다. 이번에는 떡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돌을 달라고 하면, 먹겠다고 돌을 달라고 할 때에는 아버지가 무엇을 주겠습니까? 그럴 때 떡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미련해 가지고 하얀 인절미 같은 돌이 있으니까 그것이 떡인 줄 알고 그거 먹겠다고 자꾸 달라고 하면, 아버지가 “야, 이건 못 먹는다. 이거 먹으면 이 다 부러진다. 떡이 먹고 싶은 그러는 모양이다. 인절미 가서 하나 사다가 줘라.” 하고 가서 사다주는 것입니다. 또 뱀을 자꾸 먹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무엇을 주시겠습니까? “이거 생선이 먹고 싶어 그러는가 보다, 가서 명태라도 하나 사다줘라” 하십니다. 잘못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여간 구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바로 기도하면, 그것은 없어도 하나님께서 다 갖다 주시고, 만일 잘못 기도한다 할지라도, 아버지가 먹어서 될 것인지 아닌지 모르시겠습니까? 먹어서 안 될 것 달라고 하면, 양잿물 자꾸 먹겠다고 하면,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이들이 양잿물 먹겠다고 자꾸 달라고 졸라대면, “아, 이것은 사탕이 먹고 싶어서 그러는가 보다, 나가서 박하사탕이나 사다줘라” 그러시면서 사다 줄 수 있습니다. 하나 사서 “이거 먹어라” 주실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도하는 사람은 하여간 다 받는다는 말입니다. 기도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 주십니다. 잘못 기도해도, 잘못 먹으려고 먹겠다고 해도 먹을 수 있는 것을 주시고, 잘못 기도해도 좋은 것으로 주시고,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기도를 통해 자격을 만들라

그럼 왜 기도해야 주십니까? 기도하기 전에도 하나님께서 다 아시는데, 떡 주어야 될 것 모르시겠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밥 주어야 될 것 모르시겠습니까? 생선 주어야 될 것 모르겠습니까? 다 아시지만 왜 구해야 주신다고 했습니까? 자격을 만드느라고 그렇습니다.  구하고, 자라나고 구해야만 자격이 만들어집니다. 회개하면서 구해야만 그릇이 깨끗해지고, 또 회개도 하고, 그 다음에 자라나기도 하고, 구하느라고 실력도 늘고 자격이 만들어진다는 말입니다. 그때 주시는 것입니다. 자격이 만들어질 때 주시려고 하나님은 구하기를 고대 하십니다.

또 기도 감을 주십니다. 기도 감을 줘서 기도를 시키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기도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뜻대로 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온 교회가 다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 온 교회에 기도 감을 주시고, 기도할 만한 제목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기도하면 첫 마디에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좀 기다려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은 첫 날부터 듣기는 들으시는데 기다리시다가 주시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에 보면 며칠을 기다렸다고 했습니까? 첫 날부터 기도를 들으셨지만, 21일 간을 하나님께서 기다리다가, 응답을 21일 만에 하셨습니다. 자격이 만들어져야 되니까, 영적 실력이 생겨야 되니까, 좀 더 하나님과 가까워져야 되니까, 좀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되니까, 그래서 기도하기를 기다리시다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
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지 않겠느냐”라고 하셨습니다.

4. 대접하는 생활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하십니다.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접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대접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고, 대접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섬기려고 왔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고 왔다’는 것이 대접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대접해야 합니다. 주어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아가지고 자기 혼자 먹으려 하면 며칠 못 갑니다. 다른사람에게 주면 더 많은 것이 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면 또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주면 하나님께서 계속 주십니다. 주면 주십니다. 안 주면 하나님께서 안 주십니다. 대접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대접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을 주라

무엇을 주어야 되겠습니까? 달라면 주라고 했으니까 무엇을 주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주어야지, 무엇을 주기는 무엇을 주겠습니까? 무엇을 받았습니까? 신령한 것, 또 하나님의 뜻, 그것을 받았으니까 주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하나님께 받지 않았습니까? 구해서, 찾아서, 두드려서 받지 않았습니까? 그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먹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
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대접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대접하시려고 오셨는데 우리에게 무엇을 대접해주셨습니까?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에게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이렇게 목숨을 대속물로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생명으로 주신 것입니다. 사죄, 생명구원, 거룩함, 진주, 이것을 우리가 다 받은 것인데, 이것을 받았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고 하셨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먼저 남에게 주라

“네가 소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자기에게 소원이 있으면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으려 하지말고 다른 사람에게 먼저 주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주라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둬두고 더 많이 받으려 하지 말고, 있는 것을 가지고 쓰면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시고, 다른 사람도 그것을 가지고 유익을 보고, 또 있는 것을 써서 나눠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자기에게는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것이 오고, 온 것을 또 나눠주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더 많은 것이 오고 그러는 동안에 자기가 자라납니다. 받아서 주고, 받아서 주고, 받아서 주는 동안에 자기는 자라나고, 하나님의 것은 점점 더 많이 오고, 그것을 받은 많은 사람이 유익을 봅니다. 얼마나 유익을 많이 보겠습니까?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사랑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네가 사랑 받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용서받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네가 구원받기를 원하면, 다른 사람을 가서 구원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죄의 복음, 구원의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 이것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긍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일, 그러면 더 많은 긍휼이 우리에게 옵니다. 

자기가 하나님께 바로 서기를 원하는 것, 하나님의 아들로 합당한 자가 되기를 원하는 것, 이것을 하나님께서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대로 하면, 너도 구원을 받아 자라나서, 영광스런 구원이 되는 것이고, 네가 나눠준 사람, 나눠 받은 사람, 그 사람도 또 많이 자라나서 영광스러운 구원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계속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받아서 사람에게 나눠주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는 것이 구원을 이루어나가는 것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이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