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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8일 토요일

누가복음 2:1-20 예수님의 탄생,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의 탄생
누가복음 2:1-20

1이 때에 가이사 이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 번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20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1. 요셉이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감

본문 1절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주전 31년부터 주후 14년까지 로마황제 지위에 있던 자로 로마에 속한 모든 나라 전체를 다 호적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때에 유대나라도 로마 식민지에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호적하게 되었습니다. 

본문 4절에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 고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라고 하였습니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인고로 호적 하러 갔습니다. 

2. 마리아가 예수님을 해산해서 말 구유에 뉘임

본문 5-7절에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되었더라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을 해산해서 강보로 싸서 말 구유에 뉘었습니다. 예수님은 신성으로 말하면 영원전부터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의 복중을 통해서 인간의 몸(인성)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실 때에 있을 곳이 없어서 말 구유에 예수님을 강보로 싸서 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하늘 영광을 내놓으시고 이 세상에서 제일 낮은 자리인 말 구유에까지 낮아지셔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부터 고난의 자리로 오셨습니다. 세상에 출생할 때에 말 구유에서 출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뉘일 자리가 없어서 말 구유에 뉘였습니다. 이렇게 고난의 자리에서 예수님이 탄생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예수님이 얼마나 낮아지셨는가를 깨달아야 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지극히 낮은 자리로 고난을 당하시면서 오셨습니다. 탄생하실 때부터 지극히 낮은 자리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란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들은 다 자기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자리를 내어 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알지 못해서 내어주지 않을 수도 있었겠지만 전부 자기 이기주의, 자기 중심 생활, 자기 안일주의에 빠져 구주가 왔으나 구주를 영접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처럼 이기주의, 안일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3. 천사가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전함

본문 8-11절에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구주가 났는데 곧, 그리스도 주시라고 전해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지 못하는 그 때에 천사가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제일 처음 알려주었습니다.

왜 목자들에게 제일 처음 알려주었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에게 알려주지 아니하고, 들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에게 제일 처음 구주가 탄생하신 것을 알려 준 것을 보면 목자들이 양을 치면서 구주가 오시길 늘 기도생활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밤에 밖에서 기도 생활을 많이 하면서 심령이 늘 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심령이 늘 깨어 있는 사람, 늘 기도에 힘쓰는 사람, 성경 말씀을 읽고 구주가 오길 기다리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 제일 먼저 구주가 오신 것을 알려준
것입니다. 심령이 잠자고 흑암 속에 있는 사람은 구주가 왔어도 모릅니다. 밤에 들에서 양을 치며, 기도하며, 구주가 오기를 기다리는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무서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구주가 탄생했으니 너희는 빨리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가서 보아야 합니다. 가서 보면 강보에 싸서 뉘인 아기를 볼 것인데, 그 강보에 싸인 아기가 구주가 된 표적이라고 하였습니다. 알기만 하고 가만히 있지 말고, 가보면 확실한 증거가 있을 것이니 구주가 난 것을 안 다음에는 “가서 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보는 생활, 거기에
도달하는 생활, 실천하는 생활 등 그 세계에 들어가 보는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13절에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라고 하였습니다. 홀연히 천군 천사가 공중에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본문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찬송의 내용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은 하나님을 가르킵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란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십자가 못박혀서 피흘려서 죽으실 목적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보낼 수 없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려고 죽일 수 없는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즉 택한 백성들을 구원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주고,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고, 마귀의 세력을 제거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성부께서 내놓을 수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놓으셔서 이 세상에서 말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시며 구속사업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하늘 보좌를 내놓으시고, 캄캄한 죄악의 세상, 환란과 고난이 가득 찬 세상에 질그릇과 같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는데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시는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늘나라 영광이 충만한 그 자리에서 이 세상에 오신 것만 해도 큰 것인데, 또 당신이 만든 피조물인 이 질그릇과 같은 육신의 몸을 입으시고 오셨다는 것은 얼마나 예수님이 많은 고난을 당하시는가를 나타내 보여주는 것입니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김치 항아리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33년 동안 질그릇 노릇 할 수 있겠습니까? 질그릇 노릇을 1년만 해도, 한달만 해도 얼마나 큰 것입니까? 이 질그릇 생활을 33년 동안 하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으로 지극히 낮아지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질그릇이 되어서 33년 동안 고난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질그릇이 되어서 33년 동안 이런 고난을 당하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질그릇 가운데 제일 낮은 질그릇입니다. 좋은 질그릇이 아닙니다. 제일 낮은 대접을 받으셨습니다. 멸시와 천대와 죄인 취급을 받으시고, 우리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택한 백성을 구원해내는 일, 당신의 사랑을 모든 택한 백성에게 주는 일,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란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평화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기뻐하심을 입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 죄 값으로 사형 받게 된 사람과 같았는데 그런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고 구주가 오셔서 죄를 사해 주셨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 주셨고, 영생을 주셨습니다.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조금 있으면 다 사형 받아서 멸망 받을 자인데, 구주께서 거기에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대신 죽으시면서 죄를 사해주셨습니다. 또 해
방을 시켜주셨습니다. 즉 죄와 마귀와 사망의 감옥에서 석방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원히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자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고, 죽었던 영혼은 살아나서 영적 사망에서 영적 생명으로 예수님과 연결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가 되어서 예수님과 연결된 생명의 생활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기쁜 생활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영적 평화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적 평화를 누린 사람이 구주를 영접한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하여 자기 심령에 영적 평화가 있으며 항상 기쁘고 즐겁습니다. 그러므로 원수와 더불어 평화할 수 있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할 수 있습니다. 

4. 목자들이 그리스도의 나심을 보고 전함

본문 15절에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까지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이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 가서 보고,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을 보았습니다. 속히 실행하는 것을 우리가 본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기쁜 소식을 들은 다음에는 자기만 알고 있지 말고 속히 그 소식대로 그 세계에 들어가 보는 것입니다. 가서 만나보는 것입니다.

본문 16-17절에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고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목자들은 천사가 “이렇게 우리에게 말했다”하며 구주가 난 것을 전했습니다. 자기만 알고 있지 말고, 구주가 난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전파할 때 자기가 그 자리에 들어가 체험하고 전파해야 한다.

본문 18-20절에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하니라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구주가 오기를 기다리는 생활, 늘 깨어서 기도하는 생활, 하나님과 영적 교통을 하는 생활, 기쁜 소식을 들은 다음에는 빨리 가서 보고 예수님을 전하는 생활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