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베드로전서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베드로전서강해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12월 2일 토요일

베드로전서 5:7-14 염려를 주께 맡기고 마귀를 대적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염려를 주께 맡기고 마귀를 대적하라
베드로전서 5:7-14

7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10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 11권력이 세세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2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5:7 너희의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라. 이는 그분께서 너희를 돌보시기 때문이다. 

5: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라. 너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으니, 

5:9 너희는 믿음으로 굳게 서서 마귀를 대적하여라. 너희가 아는 대로 너희의 형제들도 세상에서 동일한 고난을 겪고 있다.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를 자신의 영원한 영광 가운데로 부르신 분께서 잠시 고난을 당하는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우시며 강하게 하시고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5:11 권력이 영원히 그분께 있을지어다. 아멘.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편에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너희를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였다. 너희는 이 은혜 안에 견고히 서 있어라.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와 나의 아들 마가가 너희에게 문안한다. 

5:14 너희가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여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두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라

본문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면 하나님이 권고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걱정 근심이
많은데 그것을 다 자기가 맡아서 염려하며, 근심하며, 두려워하면 마귀에게 삼키워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는 것입니다. 염려가 한 가지 들어오면 즉시로 주께 맡겨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염려를 맡기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다 책임져 주시고, 처리해 주시고, 권고해 주시고, 돌보아 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나 맡기지 않고 자기가 해결하려고 하면 염려와 두려움과 걱정으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또 자기에게 해결할만한 실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해결하시고, 처리하시고, 심판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신데, 얼마나 모든 것을 알아서 잘 처리해 주시겠습니까?

요셉이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일생동안 살았는데, 하나님이 요셉을 권고해 주셨습니다. 어디에 가나,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이 무슨 일을 하든지 형통하도록 해주셨습니다. 종살이 할 때도 형통하게 하셨고, 감옥에서도 형통하게 하셨고, 총리가 되어서도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염려를 주께 맡기는 사람은 항상 맘이 평안하고, 아무 근심 걱정이 없고, 언제나 안정된 심령을 가지고 나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권고해 주시므로 무슨 일을 당하든지 형통합니다. 염려는 마귀의 올가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면 벌써 마귀의 올가미에 목이 걸려 끌려가는 것입니다.

올가미가 무엇입니까? 올가미는 목에 걸어 잡아당기는 것으로, 옛날 만주에 가면 수양버들나무 아래에서 도적이 올가미를 가지고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의 머리에 올가미를 던져, 목을 올가미로 걸어 수양버드나무 아래로 사람을 잡아 끌어들입니다. 그러면 올가미에 걸린 사람은 있는 것을 다 빼앗기고 도적은 달아납니다. 그래서 그 길을 걸어가려면 막대기를 하나 갖고 이마에 대고 가야 됩니다. 이마에 대고 걸어 가다가 올가미가 머리에 걸리면 막대기로 걷어치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괜찮습니다. 이와 같이 마귀가 염려라는 올가미를 가지고 끌고 들어가려고 할 때에 벗어 버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는 것이 마귀의 올가미를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나보다 몇 백, 몇 만 배 낫지않습니까? 지혜가 낫고, 능력이 낫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면 근심이 없습니다.


2. 마귀를 대적하라

본문 8-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마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근신하고 깨어라’는 것은 정신을 차리고 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근신하라는 것은 정욕, 감정, 염려 등에 대한 자제이고, 깨는 것은 육신에 속해 살던 자가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영으로 사는 것입니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
를 찾나니”라고 했는데, 마귀는 항상 성도를 대적하고 하나님께 참소하는 자입니다(욥 1:9).

피하지 말고 대적하라

그러므로 마귀를 대적하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대적해야 이기지, 피하면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마귀를 대적하려는 결심을 가지고 나가야 되고, 마귀를 알아야 합니다. 마귀가 어떻게 들어오는지 마귀가 들어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악령입니다. 악령은 여러 가지로 성도를 시험하고, 미혹 시켜서 믿는 일을 못하게 하고, 성도를 멸망시킵니다.

마귀의 특징은 교만, 불의, 거짓, 속임, 낙심, 파괴 등 입니다.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잠시도 쉬지 않고 삼킬 자를 찾습니다. 성도의 마음에 마귀가 들어오면 시험에 들게 하고, 낙심하게 하고, 불의를 행하게 하고, 자포자기 하게 하고, 싸우게 만들고, 혈기 부리게 만들고, 거짓말하게 합니다. 마귀는 여러 가지로 역사 합니다. 여러 가지 일을 파괴 시키고, 안되게 만들고, 사고 나게 만드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지 않고 나가다가는 마귀에게 속습니다.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라

마귀의 역사를 이기려면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였습니다. 즉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이깁니다. 믿음을 굳게 하라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는 뜻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나가면 마귀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합니다. 마귀의 역사가 온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의 역사가 들어올 때에는 원망할 수 있습니다. 원망하면 마귀에게 속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 의뢰하고, 믿음을 굳게 하여 나가면 반드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승리하시는 것이지, 마귀가 승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역사로 하나님의 일을 파괴하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하게 하실 것을 믿고,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야겠습니다.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려고 하고, 성도를 낙심시키려고 합니다. 그 때에 성도는 원망이나 불평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최후에는 반드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가정에도 들어오고, 기업체에도 들어오고, 교회에도 들어오고, 우리 마음에도 마귀가 들어옵니다. 마귀가 안 들어가는 데가 없습니다. 들어가서 죽이려는 것이 마귀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만능이시기 때문에 다 이기십니다. 그러므로 승리를 확신하고 담대히 나아가야겠습니다. 국가적으로도 마귀가 어떻게 하든지 나라를 안 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성도는 마귀의 역사를 분별할 줄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파괴시키려는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여야 합니다. 불의한 세력과 대적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즉 하나님을 믿고 마귀를 대적하면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3. 잠깐의 고난 후에 받는 복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심

본문 9-10절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간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고 하였는데, 고난을 각오하라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2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를 용납하지 않고, 마귀와 더불어 싸워 이기려면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즉 고난이 오는데, 그 고난을 잘 참고 나가야 합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은 모든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신데 은혜가 아니면 주지 않습니다. 첫째는 무엇을 내주었습니까? 우릴 불러서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했고, 둘째는 잠깐 고난을 당하게끔 해주십니다. 잠깐 고난을 받게 해주셨는데 고난도 은혜로 준 것입니다. 은혜가 아니면 주지 않습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만들려고 주는 것입니다. 고난도 은혜로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라고 하였는데, 은혜의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또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라고 하였는데, 우리를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했다는 말입니다. 즉 예수 믿는 사람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 있습니다.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해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영원한 영광의 빛 가운데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다는 것은 성도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하는 것이 빛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하는 것은 빛 가운데 있는 생활입니다. 또 예수님 믿는 것이 빛 가운데 있는 생활이며, 은혜 가운데 있는 것이 빛 가운데 있는 생활입니다.

그 다음에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세상에서 받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지극히 작고, 잠깐입니다. 고린도후서 4:17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왜 고난을 성도에게 주십니까? 그것은 고난 중에 성도를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려는 것입니다. 잠깐의 고난으로 얻는 것이 몇 가지입니까? 4가지입니다. 즉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난은 금을 주고도 못삽니다. 속담에 젊어서 고난은 금을 주고도 못산다고 했습니다. 잠시 잠깐 고난을 받으며 마귀와 싸우니까 하나님은 온전케, 굳게, 강하게, 터를 견고케 해주셨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성도가 온전케 되고 다 깨져나가는 것입니다. 고난이 와야 다 깨져나갑니다. 고난 가운데 믿음을 굳게 해야 믿음이 굳어집니다. 고난을 통과해야 믿음이 굳어집니다. ‘강하게 하고’라고 했는데, 모든 시험을 통과해야 믿음이 강해집니다. 또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고 했는데, 터가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은혜로 주었는데 잘 참고 견디면서 통과하며, 말씀을 견고하게 붙잡고 마귀를 대적하면 진리의 깨달음과 신앙 인격이 반석과 같이 견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귀를 대적하기를 피 흘리기까지 대적해야 합니다. 마귀를 대적하려면 마귀의 말인가 하나님의 말인가 분별할 줄 알아야합니다. 무엇으로 분별한다고 했습니까? 성경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지 않으면 전부 마귀의 말인 줄 알면 됩니다. 마귀에게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만 붙들고 참고 견디면서 나가면, 온전케 하고 굳게 하고 강하게 하고 터가 견고해집니다. 고난은 잠깐이라고 했습니다. 잠깐 고난이 지난 다음에 터가 견고해집니다.

하나님께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있음

본문 11절에 “권력이 세세 무궁토록 그에게 있을찌어다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있다는 말입니다. 모든 나라의 영광과 권세와 능력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주기도의 마지막에도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란 “왜, 그런고 하니”란 뜻입니다.
하나님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있는데, 우리에게도 같이 영원히 있습니다. 즉 하나님 혼자만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도 하나님과 같이 권세와 능력과 영광에 참예해서 영원히 있을 자입니다.

나도 영원히 있을 자이며, 여러분도 영원히 있을 자입니다. 좀 있다가 없어질 자가 아닙니다. 이것 하나만 해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마귀의 세력도 우리가 받는 고난도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염려는 주께 맡기고 마귀와 싸워 이겨야겠습니다. 그러면 권력이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께 있기 때문에, 우리도 하나님의 권력과 영광과 나라에 세세무궁토록 참예합니다. 세세무궁토록 하나님의 권력과 영광과 나라에 참예할 자들이 여기에 다 모였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4. 문안 축복
본문 12절에,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에,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라고 했는데,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문안 한다는 것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이 당시에 로마에 있었는데, 그 당시에 바벨론에 복음이 안 들어간 때입니다. 바벨론은 유다나라 동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입니다. 옛날 바벨론 유브라데강 메데 파사에 있는 나라인데, 거기에 있는 성도가 문안한 게 아니고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세계주권국가이므로 로마라고 한 것입니다. 그 때에는 로마가 바벨론의 주권을 차지했습니다. ‘로마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고 했는데, 마가는 바울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믿고,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섬기고, 또 바울에게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라고 했는데, 자기가 전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교회 나오고 그 사람이 믿음이 좋아졌다면 참 좋은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몇 사람 교회 나와서 신앙 잘 지키면 참 귀한 것입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교회 잘 나와서 믿음 잘 지키는 사람은 보배입니다. 실제로 전도는 안 했어도 하나님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사람의 믿음을 길렀으면 그 사람도 믿음의 아들이 됩니다. 예수를 믿던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그 사람에게 잘 가르쳐서, 믿음에 굳게 세워 놓으면 그 사람도 믿음의 아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고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입맞춤은 친절한 인사가 아니지만 그 당시에 입맞춤으로 문안하는 것은 제일 친절한 인사입니다. 그것이 제일 친절한 인사라고 했습니다. 가장 친절한 인사로 문안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라 했는데, 예수 안에 있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평강이 항상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1-6 모본이 되며 순종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모본이 되며 순종하라
베드로전서 5:1-6

1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6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1. 장로 모본

그리스도를 증거 할 신앙 원로들의 책임

본문 1절에,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나도 같이 함께 장로 된 자요”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 장로는 신앙의 원로급을 장로라고 했는데, 중견의 한 원로급인 베드로도 장로라고 했고 요한도 장로라고 했습니다.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하여 이 세상에 증거 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타낼 영광에 동참할 자로라’라고 했는데, 주님이 재림 할 때에 장로의 책임을 잘 감찰하면 나타낼 영광에 동참할 자가 됩니다. 요새는 목사도 장로고 다 장로입니다.

본문 2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라고 했습니다. ‘양 무리’는 하나님의 양 무리입니다. 양 무리를 치는데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자원함으로 할 것이고, 즐거움으로 할 것이고,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 것입니다. 이익을 위해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즐거움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희생 봉사함으로 본이 될 것

본문 3절에,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습니다. 교인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
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는데, 장로는 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장로의 직분은 권세를 부리는 직분이 아니고 봉사의 직분의 직분입니
다. 봉사를 잘 하는 직분이 되어야겠습니다.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하겠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되겠습니다. 장로는 자기가 원해서 되
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세우는 사람, 희생봉사 할 수 있는 사람, 즐
거움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양 무리에 본이 되는 사람이 장로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 4절에,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
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에서
목자장은 예수님이십니다. 장로의 직분을 잘 한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봉사를 잘 한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 할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2. 교인 순종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심

본문 5절에,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했습니다. ‘젊은 자들’이란 장로에 대한 젊은 사람들, 즉 교인들을 가리킵니다. 먼저 장로들을 위해 권면하고, 다음에 교인들을 위해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장로들을 위해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고 했습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잠언 18: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했는데, 교만하면 전부 망한다는 것입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겸손하면 전부 존귀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됩니다. 
교만하면 하나님이 가만 안 두십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를 주십니다.

끝까지 겸손하면 때가되어 높여주심

본문 6절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높아지려 하면 낮아지고,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항상 겸손히 나가면 때가되어 높여질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고 높아지려는 것은 안 됩니다. 때가 되기 전에 자기가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겸손해서 잘 순종하고 받들어 나가면, 때가 되면 하나님이 높여줍니다. 제가 높아지려 하면 하나님의 대적이 되서 망하게 되고, 끝까지 순종하려고 하고 겸손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잘 복종하면,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줄 날이 옵니다.

요셉이 바르게 잘 순종했습니다. 애굽에 팔려나갔어도 보디발 밑에서 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에게 잘 순종했습니다. 총리가 되었어도 잘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높여줬습니다. 겸손하게 자기 위치에서 윗사람에게 잘 순종하고, 겸손하게 나가며 자기가 잘 만들어지면 하나님이 때가 되면 높여줄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남편 집에 가서 잘 순종하고 충성하면, 때가 되면 그 며느리를 높여줄 날이 옵니다. 시어머니와 싸우고 아랫목을 자기가 차지하려고 하다가는 쫓겨납니다. 끝까지 잘 순종하면 아랫목이 자기 차지가 됩니다. 그걸 못 참아가지고 싸우고 다투다가는 그 시어머니가 가만 안 두게 됩니다. 그러다간 오히려 자기가 형편없이 됩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순종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19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베드로전서 4:7-19

7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12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18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19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여라. 

4:8 무엇보다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라. 이는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어 주기때문이다. 

4:9 불평 없이 서로 대접하고, 

4:10 각자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섬겨라. 

4:11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 말씀처럼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여라. 이는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려는 것이다. 영광과 능력이 영원 무궁히 그분에게 있다. 아멘.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같은 시험을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여기지 말고, 

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여라. 이는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너희가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다.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복 있는 자들이니, 이는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이다. 

4:15 너희 가운데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행악자나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받지 않도록 하여라. 

4:16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4:17 이는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먼저 시작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느냐? 

4: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하지 못한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느냐?" 

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자들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겨라.



1. 말세의 징조들

다음에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사방에서 난다고 하였습니다. 요새 세계적으로 테러가 많이 일어나는데, 이것도 말세가 된 징조입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성경대로 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원자재 고갈이 옴

고원용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각처에서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나고, 또 나라마다 핵무기 준비를 많이 하고, 이젠 얼마 안 있으면 석유가 다 없어지기 때문에 석유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3차대전으로 나간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 나라가 핵무기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랍 국가들은 석유를 팔아서 핵무기 만드는 기술을 사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계 각국에서 핵무기를 만드느라고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핵무기를 부패한 인간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핵전쟁이 날 위험이 있고, 일단 핵전쟁이 나면 전 세계가 다 망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불심판이 있다고 하였는데, 그 불심판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핵무기 전쟁으로 지구가 불에 태워지는 것일 수도 있고, 또 소돔 고모라에 내렸던 유황불처럼 초자연적 하나님의 역사로 불이내려와서 지구가 멸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노아시대와 같이 음란 방탕함

또 말세에는 소돔 고모라와 노아시대처럼 죄악이 많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노아시대의 죄악이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등인데, 지금 세상이 먹고 마시는 세상이 되었고, 음란 방탕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것은 음란이 가득한 것을 말합니다. 한 40년 전 우리 창광교회를 처음 지을 때에는 술집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술집과 여관이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또 노래방은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예배당 문 밖에만
나가 보아도 노아 시대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술집에 가서 술 마시고, 여관에 가서는 음란하고, 노래방에 가서는 방탕합니다. 이것을 보고 말세인줄 알아야 합니다.

어린아이와 여자에게 권세가 옴

이사야 3:12에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나의 백성이여 너의 인도자가 너를 유혹하여 너의 다닐 길을 훼파 하느니라”고 하였는데, 말세에는 여자에게 권세가 오고 또 아이들에게 권세가 옵니다. 이사야 3:4에는 “그가 또 아이들로 그들의 방백을 삼으시며 적자들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아무 것도 모르는 젊은 사람들에게 권세가 돌아오는 때이고, 여자에게 권세가 돌아오는 때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자 목사를 세워야 된다, 여자 장로를 세워야 된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여자에게 권세가 돌아오고, 세상에서도 여자에게 권세가 돌아옵니다. 이것이 말세가 된 징조입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

또, 복음이 온 세상에 다 전파되면 끝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기독교가 전 세계에 다 전파되면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기독교가 전세계에 다 전파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나면 세상 끝이라고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유대나라를 가리킵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해지고 잎사귀가 난다는 것은 유대나라가 독립이 되고, 그 민족이 본토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이 되었고 그 민족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말세가 된 징조입니다.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고, 별들이 떨어짐

그 다음에 말세에는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고, 별들이 떨어진다고 했습니다. 해가 어두워진다는 것은 진리가 어두워진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참 진리를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또 ‘달이 빛을 내지 않는다’고 했는데, 달은 교회를 가리킵니다. 이는 교회가 진리의 빛을 비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죽는다는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교인들도 다 세상에 빠지고, 방탕, 음란하며, 향락주의로 기울어집니다.

오늘도 꽃구경하러 나간 교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히, 두렵고 떨림으로 지킬 줄 모르고 놀러 다니는 것입니다. 다 향락주의에 빠졌습니다. 또 술 마시는 목사들도 A. B. C급으로 나뉜다고 합니다. A급 목사는 알콜을 마시는 목사고, B급 목사는 맥주를 마시는 목사이고, C급 목사는 사이다를 마시는 목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A. B. C급 중에서 무엇인가? 물어 보면, “난 A급이다”라고 한답니다. 그러면 소주를 갖다 준다고 합니다. B급은 맥주를 갖다 준다고 합니다. 이쯤 되었으면 이젠 세상 끝이 다 된 것입니다. 이제 더 나가려고 해도 더 나갈 수 없습니다. 
작년에 기도원 기숙사를 지은 것 참 잘 지었습니다. 왜냐하면 금년에 기숙사를 지었다면 20% 더 비용이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철근을 사려고 해도 철근이 없다는 것입니다. 말세에는 원자재 고갈이 오는데, 말세가 다 된 것입니다.

사랑이 식어짐

또 말세에는 사랑이 다 식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여러 면을 보아서 이제 말세가 다 된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말세가 다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말세가 된 줄 모르고 나가면 안 됩니다. 환난이 멀다 해서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상아 침상에 눕고, 기지개를 켜고, 귀한 기름으로 몸에 바르다가 갑자기 망합니다. 요새 사람들이 얼마나 사치합니까? 향락하고, 술 마시고, 상아 침상에 눕고, 몸에 귀한 기름을 바릅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또 몸에 계란을 바른다는 것입니다. 오이도 바른다고 합니다. 이발소 갔더니 무엇을 발라 주겠다고 합니다. 무엇을 바르려고 그러느냐고 하니까 계란을 바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먹을 계란도 없는데 왜 바르려고 하느냐며, 그만두라고 했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왜 몸에 계란을 바릅니까? 이것이
말세 된 증거입니다. 여러 면으로 보아서 이제 말세가 다 되었습니다.


2. 말세 성도의 생활

정신을 차리라

본문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첫째가 정신을 차리라는 말입니다. 정신을 차리라는 말은 바른 정신을 가지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바른 정신을 못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믿는 일을 못합니다. 바른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검은 것은 검게 볼 줄 알아야 하고, 흰 것은 희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죽을 자를 살 자로 알고, 살 자를 죽을 자로 아는 것은 정신을 못 차린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에 취하지 말고, 정신을 차려야겠습니다. 바른 지식을 가지고, 바로 판단하여야겠습니다. 또 이때가 어느 때인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며, 빛의 갑옷을 입어야 될 때입니다. 로마서 13:13에 방탕과 술 취하는 것, 음란과 호색하는 것, 쟁투와 시기하는 것 등, 6가지 죄가 나왔는데, 말세에는 이런 죄악이 가득해집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서 이때가 어느 때인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거기에 빠지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여야 겠습니다.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 다음에는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기도를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이 세대가 어떠한 세대인지 분별하지 못합니다. 술 취한 사람이 제정신 없이 돌아가다가 꼬꾸라지는 것처럼,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믿는 일을 하지 못하고, 제정신 없이 돌아가다가 꼬꾸라집니다.

믿음으로 서로 사랑하라

본문 8-10절에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12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서로 사랑하여야겠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

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남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대접을 받고자 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서로 대접을 하면 사랑이 넘치고 원망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0:28에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겠습니다. 어떻게 남을 대접할까? 하는 것이 믿음을 쓰는 것입니다. 또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주는 사람은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십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

본문 11절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합한 말을 하라는 뜻입니다. 즉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

또 봉사하려면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그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라는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하라

또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판단하여야 합니다. 즉 말씀에 합한 말을 하고, 말씀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생명으로 삼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하여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가 먼저 알아야 되고, 그 말씀을 자기가 생명으로 삼아야 되고, 그 말씀에 자기가 붙잡혀야 되고, 그 말씀이 자기에게 영의 양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모든 것을 말씀대로 바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세상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하고, 교회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하고, 자기 처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합니다. 또 교역자를 길러내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여야 합니다. 그 다음에 무슨 힘으로 하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나가면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라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면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다 잘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도 그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은 다 열매가 맺혀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나가려면 기도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옵니다. 기도 안하고는 하나님의 능력이 안 옵니다.

환난 받을 각오를 하라

본문 12-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세에는 대환난이 오는데, 그 환난 받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위해서 욕먹고, 예수님을 위해서 매 맞고, 예수님을 위해서 감옥에 갇히고, 예수님을 위해서 순교당하는 환난이 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없다” 하고 있다가 갑자기 환난이 오면 당황하지 말고, 환난받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평북에 오산교회라고 있었는데, 3.1 운동 때에 일본 경찰들이 만세 부르던 사람들을 잡으러 다녔습니다. 그 때에 교인들이 많이 나와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일본 경찰들이 교회 집사들을 잡으러 다닐때에, 어떤 집사는 잡혀 갈까봐 자기 집 문에 “아무개는 오늘부터 예수를 안 믿음”라고 써 붙여 놓았습니다. 자기는 잡으러 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집사입니까? 예수를 위해서 고난당하는 자가 복 있는 자이며, 하늘나라에 가서는 큰 영광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환난이 오는 것은 대목장입니다. 대목장을 잘 보면 과거에 밑지고 장사한 것 다 보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대목장에 시험에 들어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면 일생동안 실패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환난 받을 각오를 해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를 위해서 고난 받을 각오를 하여야 합니다. 
공산당도 3대 각오를 하고 나갑니다. 즉 굶어죽을 각오, 맞아죽을 각오, 얼어 죽을 각오입니다. 우리도 3대 각오를 하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즉 예수를 위해서 욕 먹을 각오, 맞을 각오, 죽을 각오를 하며 앞으로 올 환난을 대비해야겠습니다. 예수를 위해서 욕 먹고, 매 맞고, 죽임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오고, 예수님 앞에 갈 때에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지는 자에게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박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인줄 알지 못하느냐?’ 고 하였습니다. 상을 얻도록 달음질하여야 합니다. 죽도록 충성하여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15에는 불 붙는 집에서 나오는 해 받는 구원이 있습니다. 그런 구원은 면류관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에게 다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것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면류관은 이기는 자에게 주신다고 했습니다(계 2:10). 그러므로 환난 받을 각오를 하고 나가야겠으며, 그 환난이 올 때에 이기며 나가야겠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함

본문 17-19절에,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를 가리킵니다(딤전 3:15). 교회에서부터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심판한
다는 것은 교회가 먼저 환난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잘못하면 하나님이 먼저 교회를 심판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1:30에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라고 하였고, 또 고린도전서 11:31-32에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우리가 판단을 받은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죄 정함을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먼저 징계하십니다. 불신자는 죄를 범해도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가만히 놓아두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불신자는 사후에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믿는 사람을 먼저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로 인해 병든 사람, 약한 사람 등 환난과 고난을 당하는 사람이 많이 생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세상과 함께 심판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이 마지막에 심판하셔서 한꺼번에 다 멸망시키는데, 성도는 거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세상보다 하나님의 교회가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함

그 다음에는 마지막에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완전히 다 멸망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그 때에 환난 받을 3대 각오를 하고 나가야겠습니다. 즉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하며 “결사각오” 하며 나아가야겠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습니다. 말세에는 반드시 심판이 오는데, 그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을 이제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마지막 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분별하여 정신을 차리고 기도 많이 하고, 서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바로 처리하며 걸어가야겠습니다. 내내 평안한 게 아닙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이 올 것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믿음 준비를 잘 해야겠습니다.

베드로전서 4:1-6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갑옷을 삼으라
베드로전서 4:1-6

1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에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 2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4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5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1. 육체의 고난 받을 생각으로 무장하라

본문 1절에,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한국성경공회의 <바른성경>에는여기서의 ‘갑옷을 삼으라’를 ‘무장하여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너희도 마찬가지로 육체의 고난 받을 생각으로 무장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육체의 고난 받을 생각으로 무장하고, 십자가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라가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고난 받았습니다. 우리의 의를 위해서, 생명을 살려주려고 고난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은 죄를 위해서 죽고, 의를 위해서 사는 고난입니다. 너희는 이 생각으로 죄악과 싸우다가 피 흘리기까지 죽을 각오하고, 의를 위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죽기까지 고난 받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평안한 생각, 잘 될 생각 가지고 따라오지 말고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가 죄를 그쳤으니’라고 했는데, 죄와 더불어 싸우고 의를 이루어 나가느라고 고난 받는 사람은 죄가 다 멀리 떠난다는 것입니다. 죄와 더불어 계속 싸우고, 의를 위해서 계속 달음박질하고, 하나님 순종하느라고 생명 내놓고 달음박질하면, 그 때 죄가 멀리 떠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들어옵니다. 선을 행하려고 힘쓰지 않을 때에는 죄가 들어옵니다.

창세기 4:7절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했는데, 선을 행하면 죄가 달아난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려고 애를 써야 죄를 안 지을 수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려고 힘쓰고, 예수님과 하나님을 순종하려고 힘쓰고, 하나님의 구원운동을 위해서 몸 바쳐서 나가려고 힘을 쓰면 죄가 그쳐집니다.
그러나 그 생활에 대해서 힘쓰지 않으면 죄가 또 들어옵니다. 항상 주를 위해서 선을 행하느라고 언제나 힘을 쓰는 것을 계속 할 때는 죄가 안 들어옵니다. 방심 부주의는 죄에 대해서 들어오라고 문 열어놓은 것입니다. 방심 부주의 할 때 죄가 들어옵니다. 항상 죄에 대해서 싸우고 선을 위해서 힘을 쓰면 죄가 점점 멀어집니다.


2.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라

본문 2절에,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아야 됩니다.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도 하나님이 데려가려면 언제 데려갈지 모릅니다. 연령 많은 자만 데려가는 게 아닙니다. 연령 많은 사람을 보통은 먼저 데려가시는데, 젊은 사람도 일찍 데려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알 수 없습니다. 건강하다가도 쓰러져서 한 며칠 만에 세상 떠나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 떠나는 사람도 있고, 뇌출혈로 떠나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됩니다. 남은 때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남은 때’는 말세,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이 세상에 점점 죄악이 번창하여 노아시대와 같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죄악이 가득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왔음을 알고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남은 때를 어떻게 해야 바로 사는 것인지가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바로 살다 가는 것입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 받은 것을 생각하면서 무장을 삼고, 항상 죄를 위해서 싸우고 의를 이루어 나가려고 항상 싸우고, 겸손한 생활하고, 기도를 많이 하며 사는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다 남겨 가지고 가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 다 남겨서 가야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다 남겨서 가야 됩니다.
또한 자라나야 되겠습니다. 자라나서 큰 자가 되어서 가야 됩니다. 자라나려면 어떻게 해야 자라나겠습니까? 죄를 버리고, 순종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그 젖을 날마다 먹고, 어린아이와 같이 신령한 젖을 먹어야 그로 말미암아 자라나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2: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면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중생할 때는 어린 영으로 중생을 합니다. 어린 영에서 자라나려면 죄를 버리고,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어야 합니다. 신령한 젖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한 것이 신령한 젖입니다. 그것이 자기 영의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먹으면 영이 힘을 얻고, 소생함을 얻고, 영혼이 자라나고, 병든 영이 강건해지고, 영적 소경이 눈을 뜨게 됩니다. 이 말씀을 먹으면 문둥이가 깨끗케 됩니다. 이 신령한 말씀으로 영적 병을 날마다 고치고, 자기 자신이 날마다 자라나서 강건해져야 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먹고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린아이와 같이, 갓난아이와 같이 먹어야 합니다. 갓난아이들같이 계속 신령한 젖을 사모해서 먹으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그걸 즐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달란트 장사 다 해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맡긴 사명 다 하라는 것입니다. 남은 때는 그것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았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말입니다.


3. 과거의 음란방탕하고 우상 숭배하던 생활을 벗으라

본문 3절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음란한 행동에 족했습니다. 정욕대로 살았습니다. 밤에 술 취했습니다.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연락했습니다. 과거에는 우상 숭배를 하고 살았습니다.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지나간 때에 어떻게 살았습니까? 음란한 마음과 음란한 행동, 정욕대로 살며, 술 취하고, 방탕한 생활, 연락을 하는 생활, 우상 숭배하는 생활을 하고 살았습니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다 벗어 버려야 합니다. 멀리 떼어내 버리십시오. 음란한 마음과 음란한 행동을 멀리 떼어 내버리십시오. 정욕대로 사는 것, 술 취하는 것, 방탕한 것, 연락하며 사는 것 등을 멀리 떼어 내버리라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무엇이 우상입니까? 돈이 우상이고, 사람이 우상이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더 구애받는 것이 우상, 또한 자기가 우상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보다 자기 일하는 것이 우상이고, 자기 목숨이 우상입니다. 자기 목숨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니까 목숨이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우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때가 족하다고 하십니다.

본문 4절에, “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라고 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에게, “왜 술 먹지 않느냐? 왜 같이 놀지 않느냐?”하고 이상히 비방합니다. 하지만 본문 5절에,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고 했듯이,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하나님 앞에 가서 다 직고해서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대로 전부 직고해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안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죄 값은 사망이기 때문에 반드시 죄를 따라서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그 죄로 인해서 심판받아서 망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새 술집이 밤낮으로 늘어가고, 여관이 계속 늘어나가고, 노래방이 계속 늘어나가는데 이런 것들이 다 방탕입니다. 노는 장소, 술집 등을 많이 만들어 놓습니다. 이런 악한 세대가 됐는데, 그러나 좀 있으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 앞에 가서 직고하게 됩니다. 다 직고해서 그대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를 심판하신 하나님이 말세에도 반드시 심판하시고, 소돔 고모라를 심판하신 하나님이 말세의 고모라와 같은 이 세상을 반드시 심판하게 됩니다.

본문 6절에,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죽은 자에게 복음이 전파됐다’는 것은, ‘믿음이 죽은 자’에게 복음이 전파됐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도, 산 믿음이 있고 죽은 믿음이 있는데, 믿음이 죽은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믿음이 죽은 사람은, 본문 3절 말씀처럼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죽은 이유는, 믿음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믿음이 죽은 성도는 믿음의 행위는 없고, 그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음란, 정욕, 술 취함, 방탕, 연락,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죽은 사람은 영적인 세계에 재미가 없고, 세상 것에만 재미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21 말씀과 선한양심을 따라가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말씀과 선한양심을 따라가라
베드로전서 3:21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1.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라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1:18-19에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경계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언이란 성경말씀을 가리키는데 특히 앞으로 행해야 될 말씀, 또 앞으로 이루어질 말씀을 가리킵니다. 요즘 예언한다고 하여 점장이처럼 “당신이 어떻게 되겠다, 당신 속에는 죄가 있다, 이 집에 마귀가 있다”는 등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인도하십니다. 구약의 다니엘이나 신약의 요한계시록은 말세에 대한 예언이고, 또한 우리가 행해야 될 성경 말씀 모두가 예언입니다. 즉 이대로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는 성
경 말씀도 예언이고, 이대로 하지 않으면 망한다고 하는 성경 말씀도 예언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간다는 것도 예언이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것도 예언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디모데에게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라고 했는데, 디모데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의 지도를 따라갔습니다. 즉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서 디모데가 잘 따라갔습니다. 우리도 오늘날까지 성경 말씀이 지도해서 그 인도를 따라왔습니다. 지금도 말씀이 우리를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 하며 지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지도해 줄 때에 그 말씀을 따라가야겠는데, 어떻게 따라가야 합니까? 여러 면에서 우리를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일조를 드려라, 주일을 지켜라, 서로 사랑하라”는 등,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를 공경하라, 부부 간에 사랑하고 순종하라”는 등, 지도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일에 멍에를 메고 충성 잘하라는 것이 지도하는 말씀입니다. 또 시험이 들어올 때에 그 시험을 이기라는 것도 지도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전에도 우리를 지도해 주셨지만, 지금도 우리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또 앞으로도 우리를 지도합니다. 그러므로 너를 지도한 예언의 말씀을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2. 선한 양심을 따라가라

또 선한 양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21에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고, 디모데전서 1:19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한 양심을 버리면 파선된 배와 같음

선한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된 믿음입니다. 배가 깨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버린 신자는 파선된 신자입니다. 항해하다가 배가 파선되면, 침몰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선한 양심을 버린 믿음은 배가 깨진 것처럼, 깨진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양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현봉 목사님은 착한 양심을 버린 자의 믿음은 벼 알에서 쌀알을 뺀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벼 알에서 쌀알을 빼내면 겨만 남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버리면 그것은 껍데기 믿음이고, 죽은 믿음으로 생명이 없습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도 양심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로마서 2:15에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갈 때에 억울하다고 하면 “네가 아무 때에 그렇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며, 양심이 나와서 증거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그들이 옳게 살지 못한 것을 그들의 양심이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이 양심은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은 예수 믿는 사람이 갖는 양심임

선한 양심은 착한 양심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갖는 양심입니다. 즉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는 양심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에게는 선한 양심이 없습니다.

선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 받은 양심임

또 중생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받는 양심이어야만 선한 양심이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도 양심대로 한다고 하면서 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비판받는 양심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받지 않은 양심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이라든지, 주일을 안 지키는 것이라든지, 무덤에 가서 절하는 것이라든지, 이런 것 등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나갑니다. 그 양심은 선한 양심이 못됩니다. 왜 못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비판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에 무엇이라고 하였는가를 상고하여, 성경 말씀을 따라 가야 선한 양심이 됩니다. 하나님이 예수 믿는 사람에게 선한 양심을 주셨고, 그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이 선한 양심을 안 쓰면 옳은 것을 따라갈수 없습니다. 빛을 잃어버리고, 흑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게 중요합니다. 선한 양심을 쓰면 하나님의 뜻을 점점 찾아 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고, 선한 양심을 따라갈 때에 중생한 영이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써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아닌 것은 “아니다”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중생한 영이 자라나고, 하나님 의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그러나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안 따라가면 점점 하나님이 멀어집니다. 그 사람은 마귀의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것이 믿는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전도부인이 어떤 교인이 교회도 잘나왔는데 귀신이 들렸다고 보고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 왜 귀신이 들렸습니까? 그것은 양심을 안 썼기 때문입니다. 양심을 안 쓰면 마귀가 들어옵니다. 양심을 안 쓰면 진실이 없어지지 않습니까? 거짓은 마귀에 속한 것입니다. 양심을 쓰는 것이 진실인데, 진실한 사람에게는 마귀가 못 들어옵니다. 그러나 양심을 안 쓰면 각종 마귀가 다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안쓰면 앞으로 어떠한 마귀가 들어올지 모릅니다. 양심을 안 쓰면 마귀가 여러 가지 죄악 된 요소를 갖다가 집어넣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선한양심을 써야 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양심을 안 씁니다. 동대문 시장에 가서 양말 한 켤레를 사는데, 장사꾼이 자기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며, 아주 싸게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는 대로 값을 주고 샀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똑같은 양말이 있어서 얼마냐고 물어 보니까 양말 가격이 더 쌉니다. 그러니까 “나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속인 것입니다. 하여간 거짓말하고, 속이고, 양심 안 쓰며, 돈 몇푼 벌겠다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결국은 자기를 팔아먹는 것입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믿음을 팔아먹으면서 어떻게 예수를 믿겠습니까? 양심을 버린 믿음은 파선된 믿음으로, 언제 마귀에게 끌려갈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쓰는 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헛수고 하는 것입니다. 헛되이 믿고, 다른 것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양심의 가책을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잘못된 것을 떠나지 아니하고, 그냥 나가는 사람은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입니다. 신앙 양심을 안 쓴 사람은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다 나타납니다. 그 때에 가서 후회해도 쓸 데 없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양심을 써서 믿는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믿는 일을 바로 하는 게 양심을 쓰는 것입니다. 하여간 믿는 일을 하는지 믿는 일을 안 하는지를 보면 양심을 쓰는 것인지 안 쓰는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한 양심은 중생한 영이 사용하는 양심

중생한 영에게 사용되는 양심이 선한 양심이며, 그 양심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계속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영의 인도를 받아 선한 양심을 따라 살면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며, 성령께서 그 선한 양심과 같이 하십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버리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을 버리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써야 됩니다. 양심을 어기고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그것은 자기를 팔아먹고, 예수를 팔아먹고, 믿음을 팔아먹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따라가는 것이 사는 길이고, 영이 자라나는 길입니다. 또 의가 이루어져 나갑니다. 의를 이룬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습니다. 양심을 따라가고, 양심을 안 따라 간 사람과의 차이는 많습니다.

마태복음 13:41-42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의인이란 믿음을 지킨 사람입니다. 믿음을 지킨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이 세상에서 말씀을 지킨 것만큼, 선한 양심을 쓴 것만큼 하늘나라에 가면 그 빛이 큽니다.
어떤 사람은 별과 같이, 어떤 사람은 해와 같이, 어떤 사람은 달과 같이 빛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예수 믿는 성도들의 훈련장소입니다.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면 완전히 다 나타납니다. “너는 양심을 따라갔구나, 너는 영이 자라났구나” 등 다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며 예수를 믿지 말고, 말씀을 지키며, 선한 양심을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을 지킬 때에 하나님이 지키라고 하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일반적으로 보통 다 지키는 말씀이 있지만, 특별히 개별적으로 그 사람에게 지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셉에게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동침하자고 할 때에 “제 7계명을 지키라”는 것이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때에 요셉이 제 7계명을 지켜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그 때에 제 7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다른 것을 다 잘해도 쓸 데 없습니다. 마귀에게 걸려 들고 맙니다. 가룟유다에게 있어서는 “물질에 대한 시험을 이기라”는 것이 개별적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그런데 가룟유다가 그 말씀을 지켰습니까? 그 말씀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망했습니다. 롯과 아브
라함에게 있어서는 “싸우지 말고, 서로 양보하라”는 것이 개별적인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 고모라에 욕심을 가지고 갔다가 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양보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창대케 해주셨습니다. 일제시대 말기에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제 2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안 지키고 신사참배하면 다른 것을 다 잘했어도 불합격입니다. 또 해방 이후에는 제 4계명인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즉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다른 것을 다 지켜도 주일을 안 지키면 하나님께 낙제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따라간 것이 아닙니다. 남을 미워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고, 화목하지 못하는 사람은 화목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공경하여야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부부간에는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지켜야 됩니다.

하여간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다 있는데, 그것을 지켜야 됩니다. 자기가 지키기 힘든 말씀, 그것을 지켜야 합니다. 또 선한 양심을 따라가려면 손해가 많아도 따라 가야합니다. 쫓겨나도 따라가야 합니다. 선한 양심 따라가다가 쫓겨나는 때도 있고, 많은 재물을 잃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선한 양심을 따라가는 것이 생명입니다.
다 잃어 버렸어도 선한 양심을 따라 갔으면 그것이 생명이고, 대성공입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해와 같이 빛납니다. 그러므로 그저 “믿는다”고 하지 말고, 말씀을 따라 가고, 양심을 따라 가야 합니다. 즉 말씀에 비판 받는 양심을 따라 가면 살고, 또 하나님 앞에 갈 때에는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게 됩니다. 이것을 못하면 다 낭패입니다. 일생동안 예수 믿었어도 헛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녁 다섯시에 포도원에 들어간 사람처럼, 양심을 써서 믿는 일을 제대로 하여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가서 누리게 될 영광과 상급이 큽니다.

베드로전서 3:8-22 고난 승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고난 승리
베드로전서 3:8-22

8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10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11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12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3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15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16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18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19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22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

3:8 마지막으로, 너희는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해져라. 

3:9 악을 악으로, 또는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여라. 이는 너희가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추구하여 이것을 이루어라. 

3:12 이는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기울이시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3:13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면 누가 너희를 해치겠느냐? 

3:14 그러나 너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들이니,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리지도 마라.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3:16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자들이 너희를 비방하는 그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3:17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 

3:18 그리스도께서도 죄를 인하여 고난을 당하시므로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너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셨으나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 

3:19 주께서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셔서 선포하셨다. 

3:20 그들은 전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하던 날 동안 하나님께서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불순종했던 자들이다.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던 사람이 적으니 여덟 명뿐이다. 

3:21 물은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 곧 세례이니, 이것은 육체의 더러움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3:22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 오른쪽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권능들이 그분께 복종한다.



1. 일반에게 주신 교훈

형제를 체휼하며 원수에게 복을 빌어줄 것

본문 8절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라고 했습니다. ‘체휼하라’는 말은 동정하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을 동정하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사정이 딱할까’하고 자기가 당하는 것처럼 동정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겸손하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라는 것입니다.

본문 9절에,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한 욕을 욕으로 갚지 말라는 말입니다. “네가 욕했으니까 나도 욕한다. 보복한다. 네가 내게 악행을 했으니까 나도 악행 한다. 악으로 대한다. 네가 나를 때렸으니까 나도 때린다”, 이렇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어주라는 말입니다. 자기를 욕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십시오. 내게 악행 하는 사람의 복을 빌어 주라는 말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복을 빌어주라고 그랬습니다. 원수 갚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원수 갚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원수가 잘 되기 위해서 축복해 주는 그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저 사람이 내게 악을 행했다 해도 나는 악으로 갚으면 안 됩니다. 도리어 복을 빌어주고 사랑으로 하십시오. 사랑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저 사람이 나를 욕을 했다고 해도 같이 욕하지 말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사랑으로 그걸 이겨야 되겠다’ 하며 그 사람이 자기를 욕했어도 그 사람을 사랑하고 위해주면 그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욕을 욕으로 갚으면 영원히 원수가 됩니다. 원수가 되면 그 사람 건져낼 수 있습니까? 악을 선으로 갚고, 욕하지 말고 축복해 주면 언젠가는 그 사람을 건져낼 날이 옵니다. 그 사람 건져내면 하나님이 기뻐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원수지고 가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내게 악한 일을 해도 악으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욕을 해도 같이 욕하지 말고 사랑으로 하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끝까지 사랑해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입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기는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면 자기가 망합니다. 자기 믿음이 떨어지고, 그 사람하고 영영 원수가 되고, 그 사람 건져낼 수가 없고, 자기가 전도해도 다 여기서 막혔으니까 하나님 역사가 떠나고 비참한 자가 됩니다. 절대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말조심하고 남을 축복하며 화평할 것

본문 10-12절에,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다 생명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생명 안 사랑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좋은 날 보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사람은, 첫째 ‘혀를 금하라’ 그것입니다. 혀가 죽이는 독입니다. 말조심하라는 말입니다. 하지 않을 말은 하지 마십시오. 욕하지 마십시오. 욕으로 욕을 갚지 말라고 했는데 혀를 금해서 악한 말을 하지 말고, 남을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욕하면, 그 욕을 그 사람이 안 받으면 제게로 돌아옵니다. 그 사람을 축복해 주면 그 복이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입니다. 남을 절대 욕하지 마십시오.

남을 저주하면 자기가 저주 받습니다. 그러나 남을 축복하면 그 사람이 받든 안 받든 자기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하여간 무조건 축복해 주고 욕하지 마십시오. 혀를 금하고 악한 말을 그치고, 그 입에 궤사를 말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진실하라는 말입니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악은 멀리 떠나고,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선을 행하여 화평을 구하여 쫓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할 수있는 대로 화평하십시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려고 하십시오.
악에서 떠나서 선을 쫓아가고, 욕으로 욕을 갚지 말고,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어떻게 하든지 선으로 악을 이기고 화평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과 화목하십시오. 화목하는 자는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불목하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화목하십시오. 화목 하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라고 하였는데, 주님은 의인을 향하시고 귀는 의인의 간구하는 데 기울이셔서 잘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를 향하시느니라’는 것은 악행하는 자는 주님이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주의 얼굴은 의인을 향하시고,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는 주님이십니다.


2. 의를 위하여 고난 받는데 대한 교훈

열심히 선을 행하고 의를 위할 것

본문 13-15절에,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라고 했습니다.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라고 했는데, 열심으로 선을 행하라는 말입니다.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또 내게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도 선을 행하고, 그렇게 열심히 선을 행하면 그 사람들이 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라고 했는데, 의를 위해서 고난을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의를 행하다 고난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악을 행하다 고난 받으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의를 행하다 고난 받으면 하늘나라에 상급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의를 행하십시오. 악한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고, 불의를 행하는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고, 욕하는 사람에게도 의를 행하면,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복으로 갚아준다는 것입니다.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고 소동치도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라’라고 했는데,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서 언제나 거룩한 길을 걸어 나가고, 거룩한 사람이 되고 선한 사람이 되고 의로운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으면,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했다가 그 소망에 대해서 잘 대답하라는 말입니다.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항상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고 진실할 것

본문 16-17절에,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면 됩니다. 그러면 실패하지 않습니다. 실패해도 또 소생해 올라옵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면 다른 사람이 신임해줍니다. 선한 양심을 가진 사람이 가다가 거꾸러지면 다른 사람이 도와서 일으켜 세워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한 양심 없이, 양심을 안 쓰고 거짓말 하고 속이는 사람이 쓰러지면, 그것은 일으켜 세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 속여 먹을 것이니까 거꾸러지더라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양심 안 쓰는 사람은 한 번 거꾸러지면 망하고 그만두게됩니다. 아주 망합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선다고 그랬습니다. 의인은 양심을 쓰는 사람입니다. 양심을 쓰고 옳게 하겠다는 사람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사람들도 도와줍니다.

그런데 양심 안 쓰면 첫째, 하나님이 안 도와줍니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도와주겠습니까? 양심 안 쓰는데 도와줘야 무슨 소용이 없습니다. 거짓말하고 돌아가니까 그 사람 말을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안 쓰는 사람은 절대 도와주지 마십시오. 도와주면 함정에 빠져서 둘 다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을 쓰는 사람이 희망이 있습니다. 믿음직합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양심을 쓰고 거짓말 하지 말고 진실하게 말하십시오. 매를 맞아도 진실하게 하고 맞으십시오. 부끄러움을 당해도 진실하게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십시오. 진실한 말을 하고 부끄러움을 당하십시오. 그러면 살아나고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끄러움 안 당하려고 거짓말 슬슬하고, 매 안 맞으려고 거짓말 하고, 양심 안 쓰면 희망이 없습니다. 하나님도 내버리고, 사람도 그를 도와줄 수가 없습니다. 도와줘야 쓸 데 없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말 하고 또 속일 건데, 100번 도와줘도 쓸 데 없습니다. 양심 안 쓰고 거짓말 하는 사람은 희망이 없습니다.
양심을 쓰라는 말입니다. 양심 쓰는 사람은 믿음직합니다. 신임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하지 마십시오. 매를 맞아도 사실대로 하고 매를 맞으십시오. 돈을 많이 손해를 봐도 진실하게 하고 손해를 보라는 말입니다. 돈을 손해 보지 않으려고 거짓말 하면, 그 이상, 몇 백 몇 만배 더 손해를 봅니다. 자기가 불신임 받고나면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진실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양심 쓰고 언제나 진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양심대로 하면 다른 사람이 욕해도 마지막에 다 드러나니까 그 사람이 부끄러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욕하던 사람이 부끄러워합니다. 양심대로 한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떳떳하다는 것입니다. 욕을 먹었어도, 고난을 받았어도, 손해를 봤어도, 양심대로 하는 사람은 성공한 사람이고, 그러나 욕하는 사람은 이제 부끄러움을 당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나음

본문 17절에,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이 좋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습니다.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도 많은데,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면 복이 있습니다.
고난을 안 받는 것보다,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는 것이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안 받는 것 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다가 고난 받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고난 받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악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 있는데, 선을 행하다가 고난을 받으면 얼마나 좋은지, 큰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선을 행하지 않고 평안한 사람 되지 말고 적극적으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사람이 되면 그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3. 고난승리

본문 18절에,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죄인을 위하여 고난 받아 죽었다는 것입니다. 의를 위해서 불의한 자를 대신해서 죽었는데,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입니다.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서 육체는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성령으로는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성령으로 다시 살려준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죄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영으로 다시 살려주십니다. 성령으로 다시 살려 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죄가 없지만 의를 위해서 고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다시 살려 놨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주를 위해서 고난 받으면, 의를 위하여 다시 하나님이 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루터파에서는 본 절을 인용하여 “예수님이 지옥에 갔던 일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우편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신 것을 보아 예수님의 영이 육신을 떠나 즉시 낙원에 가셨기 때문입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별세하시어 영혼이 지옥 가서 전도했다고 주장하며 연옥설의 근거를 삼고 있으나 이것도 잘못된 해석입니다. 사람이 한번 지옥에 가면 다시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본 절에 대한 신임할 만한 해석으로는, (1) “영으로”를 예수님의 영으로 보지 아니하고 성령으로 해석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와 구속을 완성하고 부활로 대 승리한 사실을 지옥에 있는 영들에게 성령으로 전하여 알게 했다(믿게 한 것이 아님)는 것입니다. 또한, (2) 그리스도의 영이 노아에게 가서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그 복음을 듣고도 믿지 않다가 지옥에 갔습니다. 그러므로 지옥에 있는 그 영들도 그들이 세상에 살았을 때에 복음 전파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20절에,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전 절에 말한 옥에 있는 영들에 관한 설명입니다. 그들은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순종치 않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노아시대 사람만 가리킨 것이 아니고,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 전체를 다 말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믿는 자의 조상이요, 대표가 된 것처럼(롬4:16) 노아시대 사람들은 불순종한 자의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식구 여덟 명 이외에는 전 세계가 다 불순종하였으니 노아시대 사람들은 불순종의 대표가 된 것이 확실한 것입니다.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고 했는데, 노아 시대에 순종하여 방주에 들어가 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 자는 겨우 여덟 명 뿐이었습니다. 구원 얻은 무리는 언제나 소수입니다(눈 12:32).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노아시대에 물로 심판한 것은, 그 때 노아시대 사람들을 표본으로 들어서 여러 시대에 불순종하는 자는 다 심판 받고, 순종하는 사람들은 구원 받는다는 것을 대표적인 일 하나를 예로 들어서 말한 것입니다. 노아시대에 사람이 지상에 가득했지만 순종해서 구원받는 사람은 몇 사람입니까? 여덟 명입니다. 몇 년 동안 노아가 전도했다고 봐야 되겠습니까? 방주 예비할 동안 전도했다고 보면 약 70년간에 노아가 전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 70년간에 구원 받는 사람 몇 사람입니까? 자기 아내, 아들 셋, 며느리 셋, 자기까지 8명입니다. 70년 동안 전도했다고 해도 자기 가정만 구원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난 것 아닙니까? 70년간 전도해서 8명 구원 받았어도 대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천하보다 더 귀한 줄 알고 우리가 계속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여덟 명이 세계를 다 살려놓은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고 했는데, 여기서 ‘ 물’은 노아시대의 물입니다. 노아의 시대의 물과, 세례는 같은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물>은 순종하는 자는 구원하고 불순종하는 자는 심판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즉 노아시대의 물은 불순종 심판, 순종자는 구원한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을 믿는 성도에게 죄 씻음을 받고 구원 얻은 표로서 인치는 것입니다.

본문 21절 하반절에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는 자는 영이 중생하였는데, 중생한 사람도 몸은 죄와 사망 하에 있습니다. 몸에 부패성이 있습니다. 우리 몸을 중생시킨게 아니고 영을 중생시켰습니다. 육체는 부패성은 정죄 아래 있습니다. 그러나 죄 사함 받은 영은 인정받아 새로 살아났습니다. 영이 이제 하나님 찾아가는 것입니다. 선한 양심이라는 것은 중생한 영을 쓰
는 양심인데, 중생한 영이 하나님을 찾아갑니다. 영이 양심이 있어서 찾아갑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서 계속 죄와 더불어 싸우면서 나가는 것입니다.

로마서 8:10절에,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인하여 살아 있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어떻게 됩니까?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너의 몸은 죄와 사망 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어떻게 됐습니까? 의로 인하여 살아났습니다.

본문 22절에,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심복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서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앞에 있는 즐거움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나갔습니다. 십자가에까지 나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습니다. 

너희도 예수님과 같이 피 흘리기까지 싸우면서, 신앙양심을 써서 중생한 영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전진하며 항상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시고 천사와 권세와 능력들이 복종하는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며 죄와 싸우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면, 하나님이 살려가지고 이제 영광스런 가운데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러니까 죄와 싸우면서 죽기까지 복종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신앙의 선한 양심을 써서 계속 하나님을 찾아가면서 자라나는 사람, 달음박질 하고 자라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영광스럽게 된 것처럼, 너희도 하나님 옆에 가서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7 부부에게 주신 교훈.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부부에게 주신 교훈
베드로전서 3:1-7

1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2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3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5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6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 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3:1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3:2 이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라도, 너희가 두려움으로 행하는 정결한 행실을 보고, 말이 아니라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3 너희는 머리를 땋거나, 금 장식을 달거나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치장하지 말고, 

3:4 오히려 마음에 숨은 자를 온유하고 안정된 영의 썩지 않을 것으로 치장하여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매우 값진 것이다. 

3:5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여자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스스로를 치장하였다. 

3:6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부르며 그에게 순종한 것과 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며 어떤 무서운 일에도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여자의 딸들이 된 것이다.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아내는 더 연약한 그릇이니, 지식을 따라 동거하고, 또한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이니, 귀하게 여겨라. 이는 너희의 기도가 막히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3:8 마지막으로, 너희는 모두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해져라. 

3:9 악을 악으로, 또는 욕설을 욕설로 갚지 말고, 도리어 축복하여라. 이는 너희가 복을 유업으로 받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못하게 하고,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못하게 하며,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추구하여 이것을 이루어라. 

3:12 이는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그들의 기도에 기울이시나, 주님의 얼굴은 악을 행하는 자들을 대적하시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3:13 너희가 열심히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면 누가 너희를 해치겠느냐? 

3:14 그러나 너희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이 있는 자들이니,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흔들리지도 마라. 

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안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모든 자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3:16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져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너희의 선한 행실을 비방하는 자들이 너희를 비방하는 그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는 것이다. 

3:17 선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을 행하다 고난받는 것보다 낫다. 


1. 아내에게 주신 교훈

본문 1절에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남편에게 복종해야 됩니다. 왜 복종해야 됩니까? 하나님이 복종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기 때문에 복종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잘 해주고, 돈도 많이 주고, 자기를 위해준다고 해서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복종하는 것입니다. 잘 못해주든, 가난하든, 병들었든, 하여간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기 때문에 복종하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그리고 속사람을 단장하라고 했습니다. 외모로 하지 말고, 속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으로 단장하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마음, 온유한 성품, 온유한 말, 온유한 대답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잠언 15장 1절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합니다. 유순하게, “예~예~” 해야 됩니다. 맞서지 말고 온유하라는 말입니다. 남편이 잘못했다고 해도, 속이 상해도 ‘성경에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복종하자, 성경에 유순하게 하라고 했으니까 유순하게 하자’ 하라는 말입니다.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언제나 남편을 우러러보면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윗사람에게 할 것이기도 합니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입니다. 머리되는 윗사람에게 하는 것도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머리되는 사람에게 잘 복종하고 유순하게 나가라는 말입니다.
잘 우러러 받들어나가면서 순종해나가면 그것이 잘되는 길입니다. 가정도 잘되고, 직장도 잘되고, 사회도 잘되고, 교회도 잘되고, 다 잘됩니다. 성경에 순종하라고 했으니까 순종하는 겁니다. 잘해준 게 뭐냐? 시집올 때 뭘 해줬느냐? 그건 옳지 않습니다. 하나도 안 줘도 그저 성경에는 남편을 복종하라고 했으니까 복종하는 겁니다. 언제나 우러러 받들면서 복종하면 잘 되어나갑니다. 이것이 잘되는 법입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이렇게 하면 잘 됩니다. 섭섭한 거 있어도 그건 다 참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앞으로 좋은 걸로 갚아주실 거니까 그거 분풀이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원수 갚으셨습니까? 원수를 위해서 예수님이 희생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가 예수님과 원수였었는데 원수인 우리를 위해서 죽지 않으셨습니까? 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라는 말입니다.


2. 남편에게 주신 교훈

아내가 연약한 그릇인 줄 알고 사랑할 것

본문 7절에,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연약한 그릇이요”고 했습니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라’는 지식을 언제나 따라서 아내와 동거해야 됩니다.
남자보다 여자는 연약합니다. 마음도 연약하고 몸도 연약하고, 연약한 그릇이라는 말입니다. 연약한 그릇은 연약한 그릇대로 취급을 해야지, 그걸 강한 그릇대로 취급하면 다 깨져 나갑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연약한 그릇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연약한 그릇을 가만 가만 다뤄야 됩니다. 그걸 갖다 콱 갖다 놓고, 콱 갖다 놓으면 다 깨진다는 것입니다. 연약한 그릇은 살살 들어서 살살 옮겨 놓고 해야 됩니다. 아내는 연약한 그릇인 줄로 언제나 알고 그 연약한 그릇에 잘 맞춰 살라는 말입니다.

아내들은 언제나 남편이 자기 사랑하는 것을 의심합니다.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 늘 의심합니다. “사랑한다”라고 말하면 ‘아, 오늘은 참 사랑하는구나. 좋다’고 그런다는 것입니다. 내일도 사랑하나 안 사랑하나 또 의심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또 “사랑합니다”하고 살면 또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하루 한번씩 “I love you", “난 당신 사랑합니다”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그것을 못합니다. 속으로 사랑하고, 속으로 사랑하면 모르니까 어디 나갔다가 오면서 군고구마 하나씩 사다주고, 그렇게 군고구마 하나 사다주면 사랑하는 줄 알고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고구마 사왔다고 하루 종일 좋아합니다. 고구마 집에 있어도 사다 주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내는 연약한 그릇이니까 그 연약한 그릇에 잘 맞춰서 살아야 됩니다. 아내는 남편이 자기가 연약한 것도 모르고 그저 쾅쾅 다뤄도 그걸 잘 참으십시오. 주님이 준 십자가인줄 알고 거기서 잘 참아야지, “여보, 당신, 다른 사람은 나 연약한 그릇이라고 그렇게 했는데, 또 다른 집에서는 자기 부인에게 잘 해주는데 이게 뭐예요?” 그러지 말고, 자기에게 당한 십자가를 잘 참으며 나가면 됩니다.

남편은 언제든지 아내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 늘 사랑합니까? 변함 있습니까? 늘 사랑합니까?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또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틀림없이 사랑한다’ 그렇게 생각하십시오. 욕을 해도 ‘사랑하기 때문에 욕 한다’, 또 뭐 잘못해줘도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해준다’ 그렇게 언제나 알면 됩니다. 의복을 안 사줘도 ‘사랑하기 때문에 안 사준다’, 고구마 안사와도 ‘사랑하기 때문에 안 사온다’하고 남 하는 걸 보지 말고, 언제나 사랑한다고 믿으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걸 다 승리적으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아내를 귀히 여겨 사랑으로 잡을 것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하였습니다. 귀히 여기라고 하였는데, 그렇게 하면 기도가 막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아내를 귀히 여기라고 했으니까 귀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귀히 여길 만한 행동을 안 해도, 그래도 성경에 귀히 여기라고 했으니까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내가 귀히 여길 만한 일을 못하고 반대만 하고, 악돌이가 되어서 물어뜯어도 성경에 귀히 여기라고 했기 때문에 ‘귀히 여기자’하고 자꾸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저 자꾸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 마지막에는 누가 이기겠습니까? 사랑이 이깁니다. 사랑으로 귀히 여기는 것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까짓 것 다 사랑으로 다 사로잡고, 귀히 여기는 걸로 다 사로잡아 가지고 얼마든지 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호랑이 같은 부인들, 또 깍쟁이 같은 부인들, 악돌이 같은 부인들, 그런 사람이 있어도 사랑으로 다 사로잡아, 귀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로잡아 나가면 다 잘 이용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귀히 여기면서 끝까지 사랑하면서, 사랑으로 포로로 잡아가지고 잘 인도하여 나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무리 날아다닐지라도 그물 속에 들어가 놓으면 제까짓 것이 날아다닐지라도 뛰어야 벼룩이고, 날아야 하루살이지, 뭐 사랑의 그물 속에 들어가 놓으면 갈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뛰어도 그만이고 날아도 그만입니다. 사랑으로 사로잡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잘 될 것 같습니까? 잘 될 것 같습니다. 가서 이제 잘 하십시오.

그리고 혼자 사는 사람은 윗사람에 대해서 그렇게 하면 됩니다. 교회 와서 윗사람들 잘 순종하며 잘 받들어 나가고, 자기 아랫사람도 잘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그렇게 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혼자 사는 사람들이 교회 와서 기도 많이 하고, 윗사람을 잘 받들어 나가고, 교인들 잘 사랑하고 귀히 여기고 그러면, 그 사람 때문에 교회가 잘 됩니다. 자기도 잘 되고 다른 사람도 잘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9-25 예수님을 본받고 그가 주신 은혜 중에서 살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을 본받고 그가 주신 은혜 중에서 살라
베드로전서 2:19-25

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전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19 누구든지 부당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이것이 은혜이다. 

2:20 너희가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는다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가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일이다. 

2:21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2:22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으며, 

2: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셨다. 

2:24 그분이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친히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이 채찍에 맞아 상하심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분께 돌아왔다.


본문 20절에,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끼쳐준 예수님의 본대로 우리는 따라가야 합니다. 본문 22절에는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죄를 범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입에 궤사도 없다는 말은 거짓말 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진실하게만 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셨다는 것은 예수님은 욕을 받으셨지만 대신 욕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란 고난을 받았지만 예수님은 위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위협했다는 것은 죽인다든지 앞으로 망한다든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권세가 있으셔서 한 번만 기도하면 열두 영 되는 천사를 보내서 고난당하게 하는 자들을 다 멸망시킬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도 아니하시고 또 위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십니다.


1. 예수님을 본 받으라

궤사가 없으신 예수님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신 길은 입에 궤사가 없는 길입니다. 거짓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말을 신실하게 해야 합니다. 사실보다 더 나가지도 말고 덜나가지도 말고 사실 그대로 하는 일 그것을 본받아야 됩니다. 

본문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욕을 많이 받았습니다. 귀신의 왕이 들렸다는 욕도 받았고, 또 성전을 헐고 사흘 만에 짓는 자라고 욕도 받았고, 술을 즐기는 사람이요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먹기를 탐하는 사람이라는 욕도 받았고, 로마 가이사 황제를 반역한 반역자라는 등 여러 가지 욕을 많이 받았지만 위협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들이 우릴 욕하고 핍박하고 고난을 준다고 할지라도,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또 위협하지도 아니하시고 거짓말도 아니 하신 예수님의 가신 길을 걸어야 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신 예수님

그리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라고 했는데,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예수님 자신이 심판하시려 하지 않으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원수 갚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는 무리들을 향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랑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은 사랑으로 일관해 나가시면서,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으므로 우리가 원수 갚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고 공의로 원수 갚으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자신의 갈 길만 걸어가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30냥에 팔아 먹은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가롯유다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저주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친구여 너 하기를 하라’고 말씀하시고, 가롯 유다의 심판은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결국 가롯유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먹은 후,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 그 돈을 제사장들에게 갖다 주려고 하였으나, 제사장들이 받지 않자, 성전에 그 돈을 던지고 가서 목매어 죽었습니다. 목매어 죽은 것도 온전하게 죽은 것이 아니고 높은 나무에 목매어 죽은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떨어져서 배가 터져 창자가 다 나와 죽었다고 했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가차 없이 심판 하십니다. 며칠 내로 이렇게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죄 없는 줄 알면서도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준 빌라도는 어떻게 하나님이 공의로 심판했습니까? 빌라도는 주후 36년에 네로 황제 때 참수 당했다는 설도 있고 자살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주후 36년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후, 불과 10년 안에 빌라도가 목 잘려 죽었든지 그렇지 않으면 자살 했든지 심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에 헤롯왕은 주전 4년에 죽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주전 4년에 났다고 그러는데 그 해 죽었습니다.
베들레헴 아이들을 두 살 이하로 다 죽이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그 헤롯왕이 그 해에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멸망시켰습니다. 헤롯의 아들도 사도행전에 보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친히 공의로 심판했습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시니까 가만 둬도, 예수님이 친히 원수 갚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가롯 유다도 빌라도도 헤롯왕도 하나님께서 다 공의로 심판 하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공의로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교회를 말살하려고 하는자는 다 하나님이 심판해서 멸망시킵니다. 일본도 1945년 망하기 직전에 한국 기독교 목사와 장로들을 다 잡아 죽이려고 계획해 놨다고 합니다. 금강산의 어느 굴 속에 전기를 다 가설해 놓고는, 1945년 8월 15일 지나서 한 2, 3일 내로 목사와 장로들을 수련회 한다고 전부 모아 놓고, 목사 장로가 다 모이면 스위치 한번 눌러서 전부 다 몰살하려고 계획했답니다. 그런 계획을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1945년 8월 15일 며칠 전에 미국을 시켜서 히로시마에 원자탄을 투하해서 일본 왕의 항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망했습니다. 그래서 목사 장로들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공의로 심판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보호하시고 공의로 심판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게끔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요새 기독교 선교사를 안 받아 들입니다. 선교사 간 사람들을 다 쫒아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지금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복을 못 받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교회를 잘되게 하고 자유를 주는 나라들은 하나님께서 복을 줍니다. 기독교를 핍박하고 선교사를 쫒아 내는 나라들은 하나님이 얼마 안 가면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면 진리운동 방해하는 사람들을 다 물리치십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됩니다.


2. 예수님이 주신 은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심

예수님이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친히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본문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않으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친히 원수 갚으려고 하지 아니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당신은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자기 할 일만 한 것입니다. 자기 할 일을 하시되 원수 갚는 것과 대적하는 세력들, 핍박하는 세력들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고 예수님은 자기 할 일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 구속사역을 이루는 것, 친히 나무에 달려 십자가에 못 박혀서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으셨습니까? 우리 죄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우리 죄 때문에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시고, 우리가 죽을 것을 대신 죽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 값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가 사형 선고를 받아 마땅히 죽게 되었는데, 그것을 대신 예수님이 받았습니다. 우리가 우리 죄로 인하여 사형 받을 것을 예수님이 받으셨고, 사형 집행 받을 것을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습니다. 얼마나 큰 사랑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어 주셨고, 우리 죄를 위해서 피 흘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지 않았으면 할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있습니다. 죄가 없으시고, 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 예수님 속에 들어가 계시고, 또 마
리아의 복중에서 완전한 사람이 돼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됩니다. 죄 있는 사람들 같으면 죽어도 자기 죄값으로 죽는 것이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지 못합니다. 또 우리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됐는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그 진노를 풀어 드릴 수가 없습니다. 또 사람이 아니면 우리의 죄를 대속할 권리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이 속에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시고, 또 마리아에 복중에 탄생했기 때문에 사람입니다. 사람이 시기 때문에 사람의 죄를 대속 할 수 있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믿습니다’ 함으로 죄 사함 받게 하심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을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 받습니다. 예수님이 다 해놨습니다. 다 해놨는데 이젠 믿으면 됩니다. 밥으로 말하면 밥을 다 해놨는데 이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하면 죄 사함 받는 것입니다. 밥 다 해놨는데 먹으면 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오시고 죄가 없으시고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대신 짊어지시고 죄 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밥 다 해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먹으면 됩니다.
먹는다는 것은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죄 사함 받습니다. ‘믿습니다’하면 죄 사함 받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생명이 속에 쑥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시간부터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믿기 전의 영혼은 죽었던 영혼이어서 하나님도 모르고 내세도 모르고 자기 영혼도 모릅니다. 하지만 ‘믿습니다’ 하고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부터는 하나님을 알고 자기가 죄인인 줄도 알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납니다. 살아나서 압니다.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는 산 생명, 산영혼이 있는 사람입니다.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는 내 아들이다’ 하시고, 또 목자가 되셔서 ‘너는 내 양이다’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도 되시고 우리의 목자도 되십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새 생명, 산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지 않았다면 우리의 죄는 구원 받을 길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유교에서는 공자의 교훈을 지키면 구원 받는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교훈을 지키면 구원 받는다고 하지만, 공자의 교훈을 지켜도 구원 못 받고, 석가모니의 교훈을 지켜도 구원 못 받습니다. 왜 못 받습니까? 불교에서는 선한 일 행함으로 구원 받는다고 하는데, 선한일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아무리 행해도 원죄를 없앨 수 없기 때문입니다. 원죄는 사람이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납니다. 조상 때부터 원죄는 내려옵니다. 아담 때부터 선을 행함으로 원죄를 없앨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원죄 때문에 지옥가야 합니다. 또 지금부터 선을 행한다고 해도, 그 전에 지은 죄는 그대로 있습니다. 가령 10살부터 선을 행했다고 하면 5살 났을 때, 9살 났을 때 죄를 짓지 않았습니까? 그 죄에 대하여는 죄 사함 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그 죄 값으로 지옥에 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죄 사함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이 불교나 유교에는 없는 것입니다. 도덕적인 선을 행했다고 해서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는 죄 사함을 받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혀서 피 흘려 우리 죄를 대속해 줬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가 사형을 받지 않습니다. 또 3일 만에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산 생명이 있습니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목자시고 우리는 양이 됐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해 주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고 했는데 죄에 대해서 우리는 죽은 자입니다. 왜 죽은 자일까요? 그 죄를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사형 받아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은 죄, 앞으로 지을 죄, 일생 동안 지을 죄를 예수님이 다 대신 짊어지시고 대신 죄 값으로 사형 받았습니다. 우리 죄는 사형 받는 죄입니다.
하지만 대신 예수님이 사형 받았습니다. 우리 죄가 예수님을 죽인 죄이고 우리가 사형 받을 죄는 예수님이 대신 죽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형 받지 않고 오늘까지 살았습니다.

본문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죄에 대하여 죽고’라는 것이 사형 받은 죄를 말하는 것이고 이것이 예수님이 죽은 죄입니다. 내가 죽을 죄였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죄 지을 환경이 닥쳤다고 가정하겠습니다. 그럴 때에, ‘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은 내가 죽은 거다’라고 생각하십시오. 어떤 죄든지 우리 앞에 당면 했을 때에, 양심의 가책과 성경에서 죄짓지 말라는 말씀 때문에 죄를 질까 말까 할 때가 혹시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죄가 내가 사형 받은 죄다, 내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라는 말은 죄를 지려고 할 때에, ‘내가 받을 사형을 예수님이 대신 받았다, 내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죽었다, 예수님과 내가 함께 죽었다, 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그 죽음은 내 죽음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죄에 대해서 죽으라는 말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으면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 짓고도 자기가 잘 될 줄 알고 짓는데 만약 죄 지으면 죽인다고 하면 죄 지을 사람 많지 않습니다. 홧김에 ‘너 죽고 나 죽고 하자’ 하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죄 짓고 잘 사려고, 재미 보려고 합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놀러 가는 것은 죄입니다. 만일 이 죄 짓고 그대로 사형 받는다 하면 주일을 범하겠습니까? 어떤 손해가 있어도 교회 나가고 하나님 잘 섬길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죽어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영이 사는 것은 의에 대하여 삽니다. 의에서 우리 생명이 살므로 의는 천하보다 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이 살아야 됩니다. 영이 살아야 새 생명의 역사가 있고 마음이 기쁘고 세상을 다 이기고 나갈 수 있습니다.
영이 살지 못하면 마귀의 종이 됩니다.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는 말은 영은 의에서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에 나라입니다. 의를 아주 사모한다고 했습니다. 8복 가운데 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름을 얻습니다. 의에 주리고 굶주린 자는 배가 부릅니다. 만족 한다는 말입니다. 의에서 살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은 의를 행해야 합니다. 옳은 일,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일을 하며 의에서 살아야 됩니다. 죄
에서 죽고 의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할 일입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했는데 예수님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서 고난당하심으로 우리가 나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아 주셨기 때문에 나은 것입니다. 병에 걸렸다 나은 사람은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아 줬기 때문에 나았다 생각하십시오. 감기 걸렸다 나은 사람도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아 주셨기 때문에 나았다 그렇게 믿으십시오. 최정숙 전도 부인이 이번에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못 왔습니다. 이제 좀 있으면 나아서 올 것입니다. 그럼 물어 보십시오. 어떻게 나았나 물어보십시오. ‘어떻게 나았나요?’라고 물을 때 예수님이 대신 채찍에 맞아 주셨기 때문에 나았다고 하면 만점이고, 모 병원에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해서 나았다고 하면 그것은 낙제입니다.

길을 잃었던 우리에게 목자와 감독이 되어 주심

본문 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했는데 우리는 과거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습니다. 갈 길을 몰랐습니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하며 미신을 섬기고 성황당에 가고 또 무당한테 가서 물어보고 환상 보고 손금보고 사주팔자 보고 길을 잃어버리고 돌아다닌 것입니다.

옛날 어떤 정승이 있었는데, 그 정승이 자기 딸이 과부될 팔자라는 미신을 믿고는, 어느 날 길에서 지나가는 남자 하나를 자루에 잡아넣어 메고 들어 와서 하룻밤 자기 딸하고 자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남자를 물에 빠뜨려 죽였답니다. 그 남자는 그 처녀와 하룻밤 자고 물에 빠져 죽은 것입니다. 이제 정승의 딸은 과부가 됐습니다. 그래서 그 정승은 자기 딸이 시집가도 잘 산다고 믿었습니다. 옛날에는 그렇게 어리석었습니다. 양과 같이 길을 잃어 버려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방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으면 방황 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른길을 찾아야 합니다. 감독되신 이에게, 목자 되신 이에게 찾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요 우리의 감독이요 우리를 지키시는 자시요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 왔느니라’고 했는데, 우리는 주인 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목자가 있습니다. 목자는 예수님이십니다. 양들이 이제는 제 길을 찾았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제 길을 찾았습니다. 제 목자를 찾았습니다. 이제는 지켜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염려 없습니다. 우리의 목자 되시고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길을 잃어서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이제는 생명길을 찾았으니까, 우리의 감독이시요 우리의 목자가 되신 예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목자 있는 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든지 걱정이 없습니다. 목자가 다 인도해 주시기 때문에 걱정이 없습니다. 함정에 빠져도 나오게 해주시고, 잔잔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시는, 감독되시는 목자가 있기 때문에 염려와 걱정이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9-25 인고효주(忍苦效主).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인고효주(忍苦效主)
베드로전서 2:9-25

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11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3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14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 15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16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 18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19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20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고, 거룩한 나라이고, 그분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움에서 그분의 놀라운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의 덕을 선포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며,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으나,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들이다.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는 외국인과 나그네 같은 너희에게 영혼을 대적하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한다. 

2:12 너희가 이방인 가운데서 행실을 선하게 하여라. 이는 그들이 너희를 악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비방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행위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돌아보시는 날에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2:13 인간의 모든 제도를 주님을 위해 복종하여라. 권세를 잡은 왕에게나, 

2:14 또는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고 선을 행하는 자들을 칭찬하기 위해 왕이 보낸 총독들에게 복종하여라. 

2:15 이는 너희가 선을 행함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2:16 너희는 자유인으로 살아라. 그러나 그 자유를 악행의 구실로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라. 

2:17 모든 이들을 존경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왕을 존경하여라. 

2:18 종들아, 너희는 모든 일에 두려움으로 주인들에게 복종하여라. 선하고 너그러운 자들에게 뿐 아니라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렇게 하여라. 

2:19 누구든지 부당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여 슬픔을 참으면 이것이 은혜이다. 

2:20 너희가 죄를 지어 매를 맞고 참는다면 무슨 칭찬이 있겠느냐? 그러나 너희가 선을 행하다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운 일이다. 

2:21 너희가 이것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게 하셨기 때문이다. 

2:22 그분은 죄를 짓지 않으셨고, 그분의 입에는 거짓이 없으셨으며, 

2:23 그분은 모욕을 당하셨으나 모욕으로 갚지 않으셨고, 고난을 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분께 맡기셨다. 

2:24 그분이 나무에 달려 자기 몸으로 우리의 죄를 친히 짊어지셨으니, 이는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분이 채찍에 맞아 상하심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다. 

2: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나,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이 되신 분께 돌아왔다.


1. 신자의 신분

본문 9-10절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고 했습니다. 신자들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요, 또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사랑하셔서, 사랑으로 택하여 준 족속입니다. 우리가 사랑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고 볼 것도 없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시고, 사랑의 대상자로 삼으시고 우리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또 왕 같은 제사장이다, 즉, 세력이 없는 제사장이 아니라 왕권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으로 선택을 받았습니다. 제사장의 할 일은 세 가지입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의 피를 가지고 나가야 되고, 또 자신의 몸을 산 제물로 바쳐야 하고, 그 다음엔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받으심직하게 하는 일, 이것이 제사장의 할 일입니다. 금년에 몇 명 인도했습니까? 또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몇 명을 받으심직하게 길렀습니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받으심직하게 성도들을 잘 길러나가야 됩니다. 심방하는 사람들은 자기 구역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이 받으심직한 성도들로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해서 하나님 앞으로, 또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서 받으심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무엇입니까? 거룩한 나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요’라고 하였는데, 거룩으로 교제하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거룩한 나라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더럽고 부정한 것이 많이 있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는, 개인적인 더럽고 부정한 것은 다 내어 놓고, 거룩한 주의 이름으로, 거룩한 백성으로, 거룩한 중생한 영으로, 거룩한 나라가 되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셨으니까 거룩하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거룩합니다. 성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거룩한 나라가 됩니다. 성도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을 섬길 때는 다 거룩한 나라입니다. 다 거룩한 성도입니다. 전에 마귀 노릇 하던 것은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거룩한 나라가 된 믿는 백성 가운데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다음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라고 하였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왜 하나님의 백성을 삼았습니까? 본문 2장 3절에,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고 너희를 이렇게 불러 택해주시고 제사장을 삼으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삼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 하나님의 그 사랑, 하나님의 거룩, 하나님의 의를 세상에 선전하게 하려고 너희를 불러줬다고 했습니다.


2. 승육(勝肉)생활

본문 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은 나그네요, 행인입니다. 행인의 삶은 잠시 잠깐이면 지나갑니다. 나그네 생활을 끝마친 다음엔 하나님이 오라고 하면 가야 됩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과 야곱도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면서, 하늘에 있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고 살았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위하여 한 성, 즉 더 나은 본향을 예비했다가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11절에,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하였습니다. 누구에게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부패성이 속에 있습니다. 그것을 늘 제어하고, 아예 말살을 시켜야 됩니다. 그래야 영혼이 살 수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에,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항상 너희가 부패성을 제어하고 정욕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 하나님이십니까? 사랑이 충만하고, 의롭고, 거룩하신 그 하나님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3. 제도 순종
본문 13-14절에,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 혹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장하기 위하여 그의 보낸 방백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왕을 세우시는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왕이든지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세워놓은 다음에는 그 왕이 잘 하기를 기도해줘야 되겠습니다. 받들어나가야 되고, 또 그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나라가 평안해야 너희가 평안히 믿는 일도 하고, 또 복음도 전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왕 자리에 대통령이 있으니까 대통령이 왕입니다. 그가 잘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말입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그 손해가 성도들에게 다 옵니다. 잘하면 또 혜택이 성도들에게 다 옵니다. 대통령이 잘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본문 15-17절에,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유합니다.
신자는 영의 자유, 신앙의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면 안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종과 같이 우리가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여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말씀했는데 ‘사환들’이란 아랫사람을 가리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는데 있어 선하고 관용하는 윗사람만 순종하는 게 아니라 까다로운 윗사람에게도 순복하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러면 잘 된다는 말입니다. ‘까다로운 자에게도 그리하라’고 하였듯이 까다로운 윗사람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4. 인고효주(忍苦效主)

19-20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은 세 가지입니다. 애매히 받는 고난이 있고(19절), 죄가 있어서 매를 맞는 고난과, 선을 행함으로 받는 고난이 있습니다(20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으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며, 상급이 큽니다. 하나님 앞에 제일 아름다운 일입니
다. 선을 행하면 고난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또 자신의 구원도 이루어지고, 끝까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여주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는 것입니다. 애매히 고난 받는 것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잘 참으면 그것도 아름답습니다. 주님이 선으로 갚아주십니다. 그러면 죄가 있어서 받는 고난은 유익이 없을까요? 그것도 유익이 많습니다. 그래야 회개하지 않겠습니까? 고난 받지 않으면 회개하지 못합니다. 죄가 있어서 매를 맞고 고난 받아도 회개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유익이 많은 것입니다. 죄가 있는데도 매 맞지 않으면 내내 못되게 나가다가 망할 것 아닙니까?

본문 21절에,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을 위해서 부르심을 입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순종해서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고 참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자기의 구원도 되고, 다른 사람의 구원도 되고, 하나님의 빛이 널리 비추어나가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 우리가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본문 21절 중반 절에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오게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발자취는 무엇입니까? 죄 없이 욕을 받았지만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그 고난 안 받으려고 대적하지도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부탁한 그것입니다. 욕을 받아도 대신 욕하지 않고 그 욕을 잘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범치 않으셨고, 욕먹으실 일이 한 가지도 없는데 많은 욕을 잡수셨단말입니다. 그래도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각종 잘못을 다 했다고 해도 가이사의 ‘반역자다, 성전을 헐겠다고 한 자다, 율법을 고치겠다는 자다, 먹기를 탐하고 술을 즐기는 자다’라는 등 별것을 다 갖다 붙였지만 예수님은 대신 욕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한테 다 맡기셨습니까?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다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공의로 다 심판해주실 것이므로 자기가 할 것이 아닙니다. 또 섭섭해 하셨습니까? 내가 안 했는데 왜 했다고 하느냐고 하며, 예수님이 섭섭해 하신 게 아닙니다. 안한 걸 했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셨습니다. 모든 고난을 다 갖다가 예수님께 지웠어도 그 고난 안 받으려고 하지 아니하시고, 또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다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입니다. 그 발자취를 따라오면서 예수님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과 욕먹은 것을 잘 배워나가라는 겁니다.
너무 억울하지 않습니까? 하나도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욕하고 고난을 주나? 그러나 그것을 누구에게 다 맡기라구요?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세밀하게 다 심판해주실 것이고, 아닌건 아니라고 밝혀질 것이고, 또 죄를 지었으면 죄지은 것을 나타나게 해주실 것이니, 파리 한 마리도 안 잡아먹었는데 백 마리 잡아먹었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입니다. ‘안 잡아먹었다’ 한 마디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잘못했는지 안 했는지, 파리 잡아먹었는지 안 잡아먹었는지 그대로 드러내주십니다. 그러니 ‘안 잡아먹었는데 왜 잡아먹었다고 그랬느냐, 사람을 죽이려고 하느냐’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안 죽습니다. 안 잡아먹었는데 왜 죽겠습니까? 잡아먹었다고 해도 안 죽으니까 욕을 해도 순순히 그 욕
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 다음엔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고난주는 게 문제가 아니고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고,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자기 사명 다하고, 자기가 순종할 것을 순종하고, 자기에게 지워주신 십자가를 지고, 자기의 할 일을 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좋은 것을 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이 좋은 것을 하겠다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지워주시는 대로 십자가를 져야합니다. 그러면 공의로 심판 하시는 하나님께서 다 드러내주실 날이 옵니다. 자기가 진실하게 양심대로 하고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이 다 드러내줄 날이 옵니다. 요셉이 죄 짓지 않은 것 드러내 주신 날이 오지 않았습니까? 죄 졌다고 해서 감옥에 가두었지만 다 드러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다 해주시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이 각종 잘못을 했다고 뒤집어 씌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예수님 죄 없으신 것을 다 드러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어찌 마시지 않겠느냐’고 하셨는데, 아버지가 주시는 왜 마시지 않겠다고 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주는 잔이 여러 개입니까? 한 개입니다. 여기서 주는 잔을 안 마시고, 다른데서 주는 잔을 마시려고 거기에 가면 안 됩니다. 그것은 다른 잔입니다.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잔을 주셨는데 그 잔을 안 마시고 딴 잔만 마시겠다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쓰지 않으신다는 말입니다. 또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라고 했는데 갈릴리에 가서 지겠다고 하면 그것도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당하는 것이 하나님을 바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을 당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퍼진다고 했는데,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갈릴리에
가서 좀 쉬운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지워 준 십자가는 예루살렘에서 짐으로서 그 책임을 다해야 됩니다. 어디까지 복종하셨습니까? 친히 나무에 달려 죽기까지, 자기 몫으로 주어진 십자가, 또 하나님이 명령하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시니까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사시고 우리도 살았습니다! 그러니 자기 할 일을 하는 게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가지 말들을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라고 물어보시니까 “어떤 사람은 엘리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라 합니다, 선지자 중에 하나라 합니다”라며, 세상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말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거기에 답변도 하지 않으시고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날 누구라 하느냐?”고 물어 보셨습니다. 그 사람들이 이 말 저 말 하는 거 다 들을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말하라고 그냥 놓아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대답에 대하여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네게 복이 있다. 네가 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알게 하셨다. 그런데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임을 당하고 삼일 만에 살아나야 되겠다”고 가르치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그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를 멀리하라고 하자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너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만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것, 십자가 멀리하겠다는 것, 또 예루살렘에서 지라고 했는데 다른 데 가서 지겠다고 하는 것 등은 전부 자기 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에서 십자가를 져야지, 다른 데 가서 지겠다는 것은 안 됩니다. 전도도 하나님이 요나엑 어디 가서 하라고 하셨습니까? 니느웨로 가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말씀을 순종해서 전도를 하긴 하는데 다시스로 가서 하겠다고 해서 잘 되었습니까? 전도하는 건 니느웨 가서 하는 거나 다시스에 가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니느웨 사람도 사람이고 다시스 사람도 사람인데 아무데서나 전도하면 되지 왜 꼭 니느웨를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수 있습니다. 그래도 니느웨로 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 뜻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을 잘 순종하다가 죽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잘 하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습니까? 죽으니까 성공입니까 실패입니까? 성공입니다. 안 죽으셨으면 실패입니다. 죽었더니 하나님이 살려놓았습니다. 지극히 높여 놓으셨습니다. 모든 무릎을 꿇게 만드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주라’ 칭하여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살려놓았습니다. 자, 이것이 대성공 아닙니까? 예수님이 죽기까지 하나님이 명하신 곳에서 자기 할 일을 순종하고 사명을 다하니까 많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가 맺힙니다.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는가는 문제가 안 됩니다. 자기 책임을 다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책임, 자기 갈 길, 자기의 진 십자가, 하나님이 자기에게 메워주신 멍에 잘 감당하는 것, 이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몫에 내어준 그 십자가를 잘 지고 나가고, 또 지고 나가다가 죽으면 하나님이 살려놓으십니다. 높여놓으십니다. 더불어 많은 사람도 살려놓습니다. 또 하나님이 이로써 영광을 받으십니다. 

본문 25절에,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양과 같이 길을 잃었었는데 이제는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예수님에게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명을 다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그 예수님에게로 돌아 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욕 안 먹었으면 우리가 예수님에게 돌아올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고난을 안 받았으면 우리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사명을 다하셨으니까 살아난 것입니다. 욕을 먹고 안 먹는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고난 받고 안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사명을 다하면 자기도 살고 남도 살리고, 사명을 다하다가 죽으면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잘 이루어져나갑니다.

베드로전서 2:1-8 산돌.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산 돌
베드로전서 2:1-8

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3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4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5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6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7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8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2:1 그러므로 너희는 모든 악독과 모든 속임수와 가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2:2 갓난아이들처럼 영적이고 순전한 젖을 사모하여라. 이는 너희가 이 젖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는 것이다. 

2:3 너희가 주님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여라. 

2:4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았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2:5 너희도 산돌같이 영적인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영적인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라. 

2:6 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보아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니, 그분을 믿는 자는 결단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2:7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였고, 

2:8 또한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라고 하였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넘어지는데, 이는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정하여진 것이다. 



1. 예수님이 산 돌이시고 너희도 산 돌임

산 돌은 자라남

본문 4절에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했습니다. 산 돌이란 말이 여기에 두번 나왔습니다.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와 ‘너희도 산 돌 같이 되라’, 이 둘입니다. 예수님께서 산 돌이시고 또 너희가 산 돌 같이 되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산 돌이시고 예수 믿는 사람도 산 돌이 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2장에는 큰 우상이 나왔는데, 머리는 정금이고 가슴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정강이는 철이고 발가락 절반은 철이고 절반은 진흙이라고 했습니다. 거기 사람의 손을 대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공중에서 날아와 우상의 발에 내려졌습니다. 그때에 우상이 다 깨져 전부 가루가 되어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다 날아갔다고 했습니다. 또 우상을 친 돌은 점점 커져서 태산만하게 되었다가 천하에 가득차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산 돌입니다. 점점 커지고 천하에 가득하고 태산만큼 커진 그것도 산 돌입니다. 금과 은과 놋과 철과 진흙은 세상 나라들입니다. 세상 나라들이 여러 형태로 변화되고 변동되고 내려가는데 돌이 점점 커져서 마지막에는 다 돌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면 예수님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돌은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세상나라가 서로 물고 찢고 싸우고 다투고 또 잡아먹고 망하고, 또 약육강식하며 나아가지만 그 가운데서 커나가는 것은 돌입니다. 돌이 커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커나가는 것입니다.

돌은 예수 그리스도, 성도,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나라가 어지럽게 돌아가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 안에서 점점 커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나라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가 강하게 됐다가, 그 다음 다른 나라가 강해졌다가, 또 셋째 나라가 강해졌다가, 넷째 나라가 강해졌다가 또 무너지고 다른 나라가 일어나고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커나가는 것입니다. 세상나라를 위해서 교회가 있는 것이 아니고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점점 커나가서 마지막에는 세상을 다 심판하고 하나님의 나라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아주 중대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산 돌이십니다. 산 돌이라는 것은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생명이 있습니다. 또 강합니다. 세상나라를 쳐서 다 부숴뜨렸으니까 강한 것입니다. 또 자라납니다. 산 돌은 자라납니다. 또 산 돌은 세상나라를 심판합니다. 다른 것은 다 깨뜨려 내버립니다. 너희도 산 돌같이 되라고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도 산 돌 같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 돌같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 돌이시기 때문에 우리도 산 돌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산 돌같이 되면 성도도 강해지고 능력 있고 생명력이 있게 됩니다. 살았으니까 그 다음 자라나고 그 다음 세상을 심판합니다. 예수님께서 산 돌이시고 우리도 산 돌입니다.


2. 산 돌이 자라나는 법

산 돌이 어떻게 됐느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라고 했습니다. 즉 나아와서 예수님과 더불어 연합이 되어야 합니다. 합해져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 딱 들어붙어서 예수님과 더불어 연합이 되었습니다. 외부적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속이 하나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에 딱 들러붙어야 되는 것입니다. 나무로 말하면 접붙인 나무가 껍데기가 붙어야 하고 속도 붙어야 합니다. 껍데기만 붙어서 그 나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속이 붙어야 하고 껍데기가 붙는 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다 붙은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다 붙은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속이 붙어야 하는데, 외부적으로만 붙어가지고는 생명력이 없습니다. 또 자라나지도 못합니다. 능력도 없습니다. 속이 붙어야 합니다. 속이 딱 들어붙어서 예수님과 딱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을 다 닦아내어야 합니다. 더러운 것이 그 안에 있으면 예수님과 더불어 연합하지 못합니다.

죄를 회개할 것

본문 1-2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예,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전서 4장 3절에 보면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음란, 정욕, 술 취하는 것, 방탕, 연락, 우상 숭배 등을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음란 방탕이 말세에는 노아시대와 같이 가득한 때인데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 술 취하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한 잔도 취합니다. 한 잔에 안 취하면 백 잔에도 안 취합니다. 그 다음 방탕, 연락, 쾌락주의 등입니다. 딤후 3 : 4에는 말세에는 사람들이 연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 연락을 버려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상숭배도 있습니다.

이 모든 죄가 있으면 예수님께 딱 들어붙지를 못합니다.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죄악이 하나라도 들어가 끼우면 서로 통하지 못합니다.
통해야 되겠는데, 나무로 말하면 딱 가서 붙어서 껍데기도 붙고, 속도 붙어가지고 아래 뿌리에 있는 양분을 올려 보내고, 잎사귀에서 받은 양분은 내려 보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통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통해야 합니다. 요새 예수 믿는 사람이 껍데기는 붙었습니다. 믿으니까 껍데기는 붙은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보면 다 붙었습니다. 그런데 속이 붙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속에 생명력이 없고 아무 능력이 없고 자라나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산 돌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껍데기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속이 붙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속이 붙어야 되는데 속이 붙으면 그것이 진짜 신자(信者)입니다. 속이 붙어야 진짜 산 신자인 것입니다. 속이 붙지 못한 것은 죽은 신자입니다.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속이 붙으려면 첫째가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죄를 다 회개해야 합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할 것

본문 2절에 "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젖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신령한 말씀인데, 이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서 말씀을 지식적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그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신령한 젖, 영의 양식으로 말씀을 사모해서 그 말씀으로 인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자라나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 속이 붙으려면 첫째는 죄를 회개하고, 둘째는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고, 셋째는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기에게 은혜가 되고 생명이 되고 말씀이 자기를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속이 붙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주님과 가까워져야 하고 주님을 의뢰해야 합니다. 주님을 영접해야 하고 마음으로 주님과 더불어 교통해야 합니다. 그것이 속이 붙은 것입니다. 또 주님을 사모하고 사랑하고 의뢰하고 주님을 힘입고 주와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붙은 것입니다. 속이 붙지 못한 사람은 예수를 믿긴 믿어 껍데기는 붙었는데 그 속에 사모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 주님을 의뢰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또 주님을 힘입으려고 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껍데기만 그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예배 시간에 밤낮 늦는 사람, 또 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한 잔씩 먹고 가서 방탕하고 음란하는 사람도 속이 붙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속이 붙어야 산 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죄가 나오지 않았어요? 몇 가지입니까? 악독, 궤휼, 궤휼은 속이는 것입니다. 외식, 시기, 비방, 또 4장 3절에는 음란, 정욕, 술 취하는 것, 방탕, 연락, 우상 숭배가 나왔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다 회개해야 합니다. 깨끗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죄를 다 깨끗하게 치워버려야 합니다. 죄에서 떠나야 하고 죄를 내다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의뢰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영접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자기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주님을 영접해서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생활, 주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를 의뢰하고 주님이 주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하려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와야 합니다. 주님께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무엇을 받아야 합니까? 예수님께로 붙은 사람은 주님께로부터 위로가 오고 또 능력이 옵니다. 힘이 옵니다. 그 다음에는 생명력이 옵니다. 역사가 옵니다. 그리고 주께 모든 것을 의뢰합니다. 맡깁니다. 그러면 주님으로 더불어 살게 됩니다. 그것이 속이 붙은 생활입니다. 그러려면 회개하고 기도를 많이 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성경 말씀도 지식적으로만 알지 말고 영적인 양식으로 먹어서 자기가 그 말씀의 힘에 의지해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다 이겨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빌4 : 13), 능력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다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왔는데 왜 못 이기겠습니까? 다 순종할 수 있습니다.
또 성경 말씀이 꿀보다 달고 꿀 송이 보다 달아집니다. 그것은 영이산 증거입니다. 성경 말씀을 볼 때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책 볼 때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몇 십 년 예수 믿었어도 신구약 성경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 한 번도 못보고 예수 믿는 사람, 그 사람은 속이 붙었을까요? 못 붙었을까요? 여기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속이 붙는다고 했는데, 신구약 성경 한 번도 못 본 사람은 속이 붙었겠습니까? 껍데기는 잘 붙었다고 해도 그런 신자는 속
이 붙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한 신자는 껍데기 신자입니다. 속이 붙어야 산 신자, 산 믿음입니다. 힘 있는 성도입니다. 껍데기만 붙은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모든 면에 힘이 없습니다. 힘을 안 씁니다. 힘을 쓰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겠는데 힘을 안 씁니다. 전도하기를 힘 써야 하겠는데 전도 안 합니다. 힘을 써야 힘이 오지 힘 안 쓰면 어떻게 오겠습니까? 위에 있는 것을 써야만 내 보내어서 아래 있는 것이 오지 않겠습니까? 내보내야 아래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샘물을 퍼가야만 아래에서 또 올라오고 퍼가면 아래서 올라오고 하는 것입니다. 안 퍼가면 안 올라옵니다.

그러니까 다 산 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고 했습니다. 그래야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 믿는 사람, 즉 산 돌이 합해가서 성전을 이뤄나가는 것입니다. 돌로 짓는 것입니다. 산 돌이 몇 백개, 몇 천개 사방으로부터 와서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썩어진 돌은 안 됩니다. 또 죽은 돌은 안 됩니다. 산 돌만 가지고 와야 합니다. 성전이 되어 나가는데 그 다음으로 제사장이 된다고 했
습니다. 5절 한번 읽어보세요.

제사장 직무를 잘 감당할 것

본문 5절에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했습니다. ‘제사장이 되라’고 했는데, 예수 믿는 사람이 신령한 집을 지어나가는데 제사장이 되라는 말입니다. 로마서15장 16절 에 보면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여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제사장입니다. 전부 다 제사장입니다. 사도 바울도 제사장, 우리도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이방인을 제물로 삼아 그리스도께 드린다고 했습니다. 여기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제사장인데, 제물이 무엇입니까? 이방 사람을 전도해서 데려다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다 제사장입니다. 제사장 아닌 사람은 안 믿는 사람이고 믿는 사람은 다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이 할 일이 무엇입니까? 제물을 가져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은 무엇입니까? 이방 사람, 안 믿는 사람이 제물인데 이들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제사장이 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제물은 세 가지입니다. 예수님으로 더불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것, 그리고 산 제물로 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 이방 사람을 데려다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볼 때에 우리가 선교해야 하겠습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 전도하지 못하나 내 집 근처 다니면서 전할 죄인 많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집 근처, 그 다음 멀리 가서 또 이방 사람, 다른 나라 다니다가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돌려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 다음에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네가 얼마나 전도했느냐, 몇 사람 하나님께 돌렸느냐’하실 것입니다. ‘이방 나라에 선교사 보내서 얼마나 하나님께 돌렸느냐’, 이런 것 다 물어보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제사장 직무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3. 산 돌은 심판하는 산 돌

본문 6-8절에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산 돌은 심판하는 산 돌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산 돌은 자기 자신이 살아서 성전을 지어갑니다. 영적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것입니다. 실력 있는 능력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산 돌이기 때문에 산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또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돌리는 제사장입니다. 마지막에는 거치는 반석과 부딪히는 돌입니다. 산 돌은 심판합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성도가 세상을 심판합니다. 성도가 예수님으로 더불어 심판합니다. 고린도전서 6:2절에도 ‘성도가 세상을 심판할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예수님과 더불어 세상을 심판합니다. 철장으로 질그릇 깨뜨리는 것처럼 그렇게 심판한다고 했습니다. 철장, 쇠파이프로 질그릇 깨뜨리는 것이 얼마나 쉽겠습니까? 한번 툭 치면 깨질 것 아니에요? 성도가 세상을 심판합니다.

그리고 ‘부딪히는 돌’이라는 것은 돌에 와서 부딪히면 깨진다는 것입니다. 돌에 와서 부딪히면 깨집니다. 또 돌이 그 위에 떨어지면 가루가 됩니다. 성도가 세상을 언제 심판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공중 재림했을 때 심판합니다. 예수님이 구름타고 공중 재림하시면 자던 성도가 부활해서 다 올라갑니다. 그 다음에 살아남은 성도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올라갑니다. 그리고 공중에 있는 얼마 동안은 세상을 심판하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공중에 있던 성도와 예수님이 지상 재림하여 마귀를 잡아 가두고 지상은 그리스도의 왕국이 됩니다. 천년 간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해서 지금 모든 것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산 돌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산 돌의 역사는 계속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나라,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고, 그때에 혼인 잔치가 천년 동안 열립니다.
공중에서 혼인 잔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중에서는 세상 심판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성도가 천년 왕국에 들어가서 천년 동안 혼인 잔치하는 것입니다. 천년이 하루와 같다고 했습니다. 혼인 잔치 하루 하는 것이 천년입니다. 천년 왕국 때 천년 동안 혼인 잔치하고 천년 다 지난 다음에는 영원히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영원히 지옥으로 갑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 나라입니까? 하늘나라 갔다하면 얼마나 떠들썩하겠어요. 2008년 4월 8일에 이소연은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소유스 TMA-12를 타고 우주로 출발하여 350km 인가 올라가서 인공위성 타고 우주인이 된 것도 굉장히 대단해보입니다. 달나라 가려면 사흘을 가야 합니다. 금성에 가려면 6개월을 가야 한답니다. 화성에 가려면 3년인가 가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늘나라 한번 가는 것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해보세요. 조금 이소연 우주인이 우주에 올라간 것도 굉장히 큰 것처럼 떠들썩한데, 우리는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그보다 억 만 배 더 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산 돌입니다. 예수님이 산 돌이시고 우리도 산 돌입니다. 딱 붙어야 합니다. 껍데기는 "믿습니다"하면 붙는 것입니다. 속은 이제 예수님께 나아가서 예수님을 의뢰하고 그로 말미암는 능력이 우리에게 오고 생명이 오고 산 역사가 일어나고 산 돌이 되는 것입니다. 산 돌이 되면 세상을 다 이깁니다. 그러려면 우리가 회개해야 합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신령한 세계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다음은 신령한 젖,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