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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3일 금요일

열왕기상 19:1-21 세미한 음성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세미한 음성
열왕기상 19:1-21
1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9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0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취하려 하나이다 11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12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엘리야가 듣고 겉옷
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
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저가 대답하되 내
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
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
다 15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
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16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
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
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그러나 내가 이스라
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
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
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
느냐 하니라 21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1.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잠이 듦
본문 1-2절에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은 아합 왕의
아내로 이방 시돈 왕의 딸인데, 자기 나라에서 섬기던 바알 신과 아세
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온 백성으로 우상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아합 왕으로부터 엘리야가 갈멜 산에서 모든 백성들
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이킨 것과 거짓 선지자들 850명을 기손 강에
서 죽인 것, 또 엘리야가 기도하므로 비가 온 사실을 듣고 사자를 엘
리야에게 보내어 내일 이맘때에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4절에 “저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
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
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니까 엘리야가 브엘세바로 도망가 로뎀나무 아
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였는데, 이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
가 죽여 달라고 해서 죽이시고, 살려 달라고 해서 살려주시는 하나님
이 아니십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올 때도 세상에 보내달라고 해서 왔
습니까? 그러므로 죽여 달라는 기도는 불신앙입니다. 이와 같은 기도
를 엘리야가 한 것은 신앙의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와 같은
사람도 신앙의 잠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세례 요한도 신앙의 잠이 들었을 때에는 예수님께 제자를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라고 물어 보았습니다(마 11:3). 세례 요한이 얼마나 확실하게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까?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서 몇 달 있는 동안에 신앙의 잠이 드니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가, 아닌가?’하며 의아한 가운데로 들어갔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신앙의 잠이 드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엘리야가 신앙의 잠이 든 이유 첫째는 자기가 하려고 하였기 때문입
니다. 즉,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쓰러졌습니다. 그러므로 어
떤 일이 하나 되었을 때, 자기가 해서 된 줄로 알면 안 됩니다. 갈멜
산에서 백성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리고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한 것
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자기가 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자기
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돌리고 이스라엘을 회개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나갔는데, 그것이 안되니까 쓰러졌습니다. 낙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한 것이 없는 줄 알아야 합니다. 갈멜 산에서 불이 내려온 것
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백성들이 일시에 돌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거짓 선지자들을 숙청한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비가 온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자기는 심부름만 한 것뿐입
니다. 그러므로 자기는 전적무능한 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래부터 자
기는 무(無)요, 공(空)인 줄 알면 쓰러질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대성공한 줄 알고 돌아가다가, 그것이 다 수포로 돌아가니까 낙심 가
운데 빠져서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낙심하는 것은
자기가 하려고 하다가, 즉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낙심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전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이고, 전적부패
한 자이고, 전적무능한 자인 줄 알아야 합니다. 또 벗은 몸으로 와서
벗은 몸으로 가는 것이 본전입니다. 올 때에 아들과 딸, 돈을 가지고
왔습니까? 주신 이도 하나님이시며,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데, 무슨 낙심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청지기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에서 쓰러진 이때가 본전을 찾는 때입니다. 본전을 찾으면 그때부터 됩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둘째는 환난을 보고 두려워했기 때문에 신앙의 잠이 들었습니다.

셋째는 생명에 대한 애착심 때문입니다.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
나이다”라고 한 것을 보면, 육신의 생명에 대하여 애착심을 가진 것입
니다. 육신의 생명을 내놓고, ‘죽이면 죽자’는 마음으로 나가야 하는데,
육신의 생명에 애착심이 있기 때문에 쓰러진 것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위태하므로 이제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넷째는 조급한 마음 때문입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일시에 하나님께로 돌리려고 하다가 잘 안되므로 낙심하여 쓰러진 것입니다. 

다섯째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잘 안되는
것 같아도, 때가 되면 하나님의 만능으로 성취하실 것인데, 하나님의
권능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여섯째는 하나님께서 친히 하실 것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
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지 못하고 자
기가 하겠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낙망하고 쓰러진 것입니다. 시편 118
편 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게 두려움이 없나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엘리야와 같이 낙망하는 가운데 빠
지지 않아야겠습니다.

2. 엘리야가 깨어 호렙 산으로 감
본문 5-8절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
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잠이 들었는데,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어루만지시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낙
망하여 쓰러져 있는 엘리야를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일으켜 세워주
시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또 떡과 물을 주신 것은 엘리야에게 필
요한 모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엘리
야가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는데, 여호와의 사
자가 두 번째로 와서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
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가 다시 일어나서 먹고 밤낮 40일을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어떤
면으로든지 권고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여기에 대한 신령한 뜻은 떡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고, 물은 성령
의 역사를 가리킵니다(요 7:37-39). 사십(四十)은 고난의 수입니다. 예
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 기도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였고,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 생
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의 수가 다 차기까지 계속해서
영적 시온 산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3. 호렙 산에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심
본문 9-10절에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
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
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
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하는 바람에 엘리야가 호렙 산에 가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떼어 놓고 보면, 불행한 일 같고 실패한 것 같습니다. 또 살 가망이 없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호
렙 산에 못 갑니다. 즉, 이세벨이 엘리야를 잡아 죽이려고 체포령을 내
리지 않았다면 엘리야가 호렙 산에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엘리야를 호렙 산으로 보내셨고, 이것을 통해서 하
나님의 일을 해나가시는 것입니다. 실패한 것 같아도 그 실패를 통해
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어 나가십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후에 예수
께로 나옵니다’라고 하는 찬송이 있는데, 우리가 살 길이 막히고 실패
하였을 때에 하나님 앞으로 와서 부르짖으며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므
로 잘되는 것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못되는 것도 영적으로 유익
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주셨으면 그것을 먹고
가야 되겠는데, 엘리야는 안 가고 또 누워서 잤습니다. 하나님께서 가
라고 하시는데 왜 다시 눕습니까? 하라는 것을 안 하는 것을 보면 하
나님께서 벌을 내려 죽이시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긍휼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주셨고, 재차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4. 세미한 소리를 들음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
지 아니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굴에서 나가 여호와 앞에 섰을 때에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바람과 지진과 불의 세 가지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첫째,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산’은 큰 세력을 가리키
는 것으로, 불교․유교․마호메트교 등과 같은 큰 세력이 기독교 특수
운동 앞에 깨어져 나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위’는 완강한 마음을 가
리키는 것으로, 완고한 세력과 사상들이 기독교 특수 운동 앞에 깨어
져 나가는 것을 뜻합니다. 둘째, 지진이 지나갔는데, 그 가운데도 여호
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은 진동하는 역사를 가리키는 것인데,
기독교 특수 운동이 일어날 때 전국의 교회가 동요되는 때가 있었습니
다. 셋째, 불이 지나갔는데, 그 맹렬한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신비주의나 감정주의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바람과 불과 지진은 마귀의 역사입니까, 하나님의 역사입니
까? 하나님의 역사라면, 왜 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에서 일어나는 특수 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이 세 가지 특수 역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다 여호와 앞에서 일어나는 운동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여
호와께서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지 않았
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생명 운동이 아니라
는 것입니다. 바람, 지진, 불은 여호와께서 지나간 다음에 일어난 작용
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람, 지진, 불이 여호와인 줄 알고 그것을 가지고
한 몫 보려고 하면 실패합니다. 또 이런 방법으로 일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 것과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것으로 하나님의 일이 되는 줄 알고 거기에서 하나님을 찾으려고 하였
습니다. 즉, 아버지가 자동차를 타고 지나갈 때에 먼지와 바람이 일어
나는데, 그 바람과 먼지 가운데서 아버지를 찾으려는 것과 같은 것입
니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외부적 운동은 영의 운동 같지만 영적 운동이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는 외부적 운동이 아니라 내적 생명의 역사에 있습니다. 이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뜨겁고 맹렬하니까 감동이 크지 않습니까? 그러나 외부적 감동입니다. 감동에는 육신의 감동과 영적 감동이 있습니다. 또 외적 감동과 내적 감동이 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외적 감동입니다. 외적 감동은 심령 속 깊은 가운데에 감동이 없습니다. 그리고 외적 감동은 빨리 됩니다. 그러나 내적 감동은 빨리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 지진, 불과 같은 역사가 다 지나간 다음에 세미한 소리가 들렸
는데, ‘세미한 소리’는 은밀하고 고요한 가운데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세미한 소리는 영적 감동으로서 심령 속 깊은 곳에서 들려옵니다. 이
러한 세미한 소리가 들려오려면 자기가 온전히 죽어져야 합니다. 은밀
한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은밀하다는
것은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져야 고요해집니다. 자기는 아
무것도 할 수 없는 자, 전적으로 실패한 자, 전적으로 무능한 자임을
깨달을 때, 세미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자기가 무엇을 하겠다고 할 때
에는 안 들려옵니다.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가 죽어져야 들려옵
니다. 자기 주장, 자기 생각, 자기 계획은 없고, 그저 하나님 앞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입니다’하며 거꾸러질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
하시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옵니다. 그때에는 말씀이 바로 깨달아집니
다. ‘아, 이렇게 해야 되겠다’하며 깨닫는 것이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것
입니다. 그것은 우리 심령 속 깊은 내적 감동으로 오는 것입니다. 그래
서 이제는 그 세미한 음성을 붙들고 따라갑니다. 살든지 죽든지, 어디
든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생명이 있
습니다. 따라가면 영이 자라나고, 또 따라가면 또 영이 자라나는 것입
니다. 외적 감동은 물을 가져다 끼얹는 것이므로 다시 목마름이 있으
나, 내적 감동인 세미한 음성은 생명 강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거기
에는 목마름이 없고 영생하는 생수가 속에서 흘러나옵니다. 이것 하나만 바로 깨달아도 아주 큰 것입니다. 

본문 13-14절에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있어 저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엘리야야 네가 어찌
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
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
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세미한
음성을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갔습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을
실제로 만난 것입니다. 강한 바람, 지진, 불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안
계셨는데, 여기에서는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엘리야가 겉옷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감히 하나님을 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하실 때, 엘리야가 자신의 처지에 대해 대답하였습니다.

5. 엘리야의 사명
본문 15-16절에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
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
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
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
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주신 사명 첫째는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
게 하라는 것입니다. 아람은 이방 나라인데, 이방 나라 왕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방 나라, 즉 세상 나라에 대
해서 모든 것을 바로 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도 하나님이 주관하
시는데, 세상 나라를 바로 보고, 세상 나라에 대한 심부름을 바로 하라
는 것입니다. 하사엘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왕하 8:10-12). 그래도 하
나님께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서 왕을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스
라엘을 도와줄 사람을 왕으로 세우면 좋겠는데, 이스라엘에게 큰 손해
를 줄 사람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세워야 하며, 이방에 대한 관점을 바로 갖고 거기에 대한 책임을 바로
하여야 합니다. 세상 나라에 대해서 바로 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아
닙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셨는데,
세상 국가에 대해 해야 할 의무를 바로 감당하여야 합니다.

둘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은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섬겼습니다(왕하 10:29).
또 7월 15일 절기를 8월 15일로 변경 시켰으며, 제사장은 레위 사람만
세워야 되는데 아무나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북 이스라엘은 성경을
어기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타락된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락된 교회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즉, 잘못된 교회
를 바로 볼 줄 알고, 거기에 대해서 바른 관계를 가지고 나가라는 것
입니다. 바른 관계라는 것은 한계를 두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해야 될
것은 하고, 안 해야 될 것은 안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를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타락된 북쪽 이스라엘 나라로는 하나님의
일이 안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남쪽 이스라엘 나라를 통해
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계속 내려왔습니다. 그러므로 타락된 교회를
바로 알고 비진리와 타협하지 말고 자기가 할 일을 바로 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는 것입니다. 이것은 후계자를 세워 참 교회를 세워 나가라는 것입니
다. 참 교회를 세워 어두운 세상에 진리의 등불을 비취게 하라는 것입
니다. 또 엘리사를 후계자로 세우라는 것은 엘리사를 참된 일군으로
세워서 후계자를 삼아 엘리야가 하던 구원운동을 후대까지 계승시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
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사엘이 죄를
정결케 해 나가다가 못 다한 것을 예후가 하고, 예후가 다 하지 못한
것을 엘리사가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사엘은 큰 죄만 청산하는
것이고, 그다음의 중간 죄는 예후가 청산하고, 그 다음의 작은 죄는 엘
리사가 청산한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불신 세상에서도 어느 정도 정
화를 시키고, 그다음에는 타락된 교회가 좀 더 정화시키고, 마지막에는
참 교회가 성경대로 정화시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성경대로 바로 세워 나가는 참 교역자가 필요합니다. 제
일 중요한 것은 참 교역자를 길러내는 것입니다. 참 교역자가 나와야
만 모든 것을 깨끗하게 만들고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아 있는 줄 알았는데, 숨
어서 믿는 사람 칠천 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칠천 명은 우상에게 절하
지 않고 숨어서 믿는 사람입니다. 숨어서 믿는 사람은 자기 신앙만 지
켜 나가지,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리지는 못합니다. 많은 환난을
받으면서도 진리를 나가서 전파하고 세워나가는 한 사람이 숨어서 믿
는 천 명보다 낫습니다. 즉, 환난과 핍박이 심한 곳일지라도 엘리야와
같이 복음을 가지고 가서 전파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역자가 필요하
며,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해 나가십니다.

6. 엘리사를 부름
본문 19절에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둘째 겨리와 함
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라고 하였는데, 엘리야
의 두루마기는 능력의 두루마기로 이 상황은 하나님의 권능을 엘리사
에게 주는 것을 가리킵니다(왕하 2:8-14). 즉, 엘리야에게 있던 권능과
사명을 엘리사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대가 끊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바른 신학교를 세워서 바른 교
역자들을 길러내야 합니다.

본문 20-21절에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 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
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
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가 부모와
입 맞춘 후에 엘리야를 따르겠다고 할 때에 엘리야가 허락하였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가족을 작별하고 오겠다고 할
때에는 예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가족을 첫째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엘리사는 믿
는 일을 첫째로 하고 가족과 작별하겠다고 하였으므로 엘리야가 허락
한 것입니다. 엘리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전적으로 몸 바쳐서 엘리야
를 따르기로 작정하였는데, 우리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
라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