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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7일 화요일

신명기 16.9-12 감사의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 전승환목사 안양서부교회 170625

<감사의 삶을 원하시는 하나님>
신 16:9-12

영국 속담에 “감사는 과거에게 주어지는 덕행이 아니라, 미래를 살찌게 하는 덕행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감사하며 살아가는 감사의 삶은 나의 미래를 지금보다 훨씬 풍성하고 복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 주는 맥추절입니다. 맥추절은 보리수확의 첫 열매를 거두고 그것에 감사하여 행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맥추절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부활과 성령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얻는 그 은혜와 복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은 맥추절을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 번째, 예물을 드려라!(16절)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릴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빈손을 보이지 말라”(16절)고 하시는 이유는 빈손으로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신대로, 힘을 다해, 자원하는 맘으로 드리는 것이, 헌금을 드릴 때의 기본 자세입니다.

두 번째, 즐거워하라!(15절) 복 주실 것을 인하여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어떻게 즐거워하겠습니까? 어렵고 힘든 자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택하신 곳에서”(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주신 것들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세 번째, 기억하고 행하라!(12절) 과거의 어렵고 힘들었던 것들을 기억하며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고 반드시 이러한 절기를 통하여 하나님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하나님은 더욱 놀랍고 풍성한 축복의 역사를 나타내시며, 감사하는 우리의 내일의 삶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2017년 1월 20일 금요일

신명기 34:1-12 모세의 죽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죽음
신명기 34:1-12

1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2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3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 4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 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6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7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8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 9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10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11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12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1. 모세가 비스가산 꼭대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봄

본문 1-3절에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느보산에 올라 여리고 맞은 편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길르앗 온 땅을 단까지 보이시고 또 온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땅과 서해까지의 유다 온 땅과 남방과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를 소알까지 보이시고”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느보산이나 비스가산 이나 같은 산 인데 느보산에 올라가서 비스가산 꼭대기에 이르렀던 것을 보면 비스가산 꼭대기가 제일 높았던 것 같습니다. 느보산은 그 산 전체의 이름이고 비스가산 꼭대기는 그 가운데 한 봉우리 같습니다. 거기서 제일 높은 산 같습니다. 모세가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가나안 땅을 다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길르앗 온 땅(요단 강 동쪽에 있는 건너가기 전의 땅)과 단(이스라엘의 제일 북쪽)까지 보이고 또 납달리(갈리리 호수 옆 위치), 에브라임, 므낫세의 땅, 그 다음 서해(지중해)까지 유다 온 땅과 남방 종려의 성읍, 여리고 골짜기 평지 소알(소돔과 고모라 멸망한 사해바다 남방에 위치)까지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느보산은 해발 802미터로 삼각산보다 약 34미터정도 조금 낮은 산입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가나안 땅 전체를 다 바라보았습니다. 저 북쪽(단 지파가 분배 받은 곳)부터 여리고 맞은편 소알(남쪽)성까지 다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4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이는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한 땅이라 내가 네 눈으로 보게 하였거니와 너는 그리로 건너가지 못하리라 하시매”라고 하였습니다. 그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한 땅이라 하셨습니다. 그러한 땅인데 너는 그 가나안 땅을 바라는 보겠지만 그 곳에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느보산에 올라 갈 때에 모세는 혼자 올라간 것 같습니다. 다른 때에는 사람들을 데리고 올라간 적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혼자 올라갔습니다. 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데려간다고 했으니 하늘나라로 갈 목적으로 120세나 된 고령에도 높은 산을 혼자 올라갔습니다. 해발 802
미터는 상당히 높은 산입니다. 그 곳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한번 바라보고 천당에 가려고 올라간 것입니다. 천당에 갈 소망을 가지고 기쁘고 즐거움으로 올라가니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서 그렇게 높은 산에 잘 올라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나올 때부터 400년 동안 사모하고 바라보던 가나안 땅을 이제는 전체를 다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땅보다 모세는 하늘나라를 더 좋아하고 더 기뻐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을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3-16절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것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계승 받았습니다. 야곱의 아들 레위, 레위의 아들 고핫, 고핫의 아들 아므람, 아므람의 아들이 모세입니다. 말하자면 야곱의 아들 레위의 증손자입니다. 레위의 증손자이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을, 아브라함부터 6대손인데 이렇게 계승해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나라보다도 또 세상 본향보다도 또 세상 가나안 복지보다도 하늘나라를 더 사모하고 하늘에 있는 본향을 더 사모하고 그곳에 가기를 즐거워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400년 동안 바라보고 나왔지만 그 땅에 들어가지 않고 곧장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더 즐거워했습니다. 우리도 이 세상 본향보다 하늘에 있는 본향을 언제나 사모하고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믿음을 가지고 우리 본향인 하늘나라로 가도록 모든 준비를 하여야겠습니다.

2. 모세의 죽음과 이스라엘의 슬픔

본문 5-6절에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혼자 올라가 죽었는데 천사를 시켜 장사를 한 것 같습니다. 유다서 1장 9절에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이라고 하였습니다. 천사장 미가엘을 시켜서 모세의 시체를 장사하려고 했는데 마귀가 와서 방해를 하니 천사장이 마귀를 물리치고 모세의 시체를 이스라엘 백성이 알지 못하는 곳에 장사를 했습니다. 모세의 시체나 모세의 해골을 후대에 우상화할지 몰라서 천사장 미가엘을 시켜서 알지 못하는 곳에 장사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하다가 세상을 떠나면 장사하는 것도 다 하나님께서 다 책임을 져 주십니다. 장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살았을 때에 하나님 일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 죽은 다음에 장사하는 것은 하나도 준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천사를 시켜서도 장사하게 해주십니다. 살았을 때에 하나님 일 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에는 이민 간 할머니들이 자기가 세상을 떠나면 장사하려고 상조적금을 합니다. 몇 천불짜리 들어서 매달 물어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들에게 제가 ‘무엇을 하려고 세상 떠나고 쓸 것을 매달 물어나가느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몇 천 불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 낫지 죽은 다음에 자기 장사하겠다고 적금 불입하는 것은 얼마나 손해입니
까? 하나도 없이 죽어도 거지가 죽어도 장사를 하게 되어있는데 왜 장사를 안 해 주겠습니까? 모세도 무덤자리를 장만해 두지 않았어도, 장사할 사람 데리고 가지 않았어도 혼자 올라가서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시체를 천사를 시켜 좋은 곳에 갔다가 장사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알지 못 하게 장사를 했습니다. 어디인지 모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것을 우상화 할까 봐 아는 자가 없게 하였습니다. 

본문 7-8절에 “모세의 죽을 때 나이 일백 이십 세나 그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눈이 흐리지 않고 기력이 쇠하지 않아 좀 더 일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데려갈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데려 간 것입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하나님이 데려가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야 데려가지 때가 되기 전에는 데려가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아무리 건강해도 데려가고 때가 되지 않으면 아무리 가려고 해도 못 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예정한 때가 있기 때문에 그 때까지 할 일을 다 하고 하나님이 오라고 하실 때에 즐거운 마음으로 갈 수 있는 그러한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 8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일을 애곡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삼십일 애곡하는 것이 보통인 것 같습니다. 삼십일 장으로 모압 땅에서 삼십일 동안을 애곡하는 기간을 주시고 모세를 장사했습니다. 장사
는 하나님이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은 애곡만 한 것입니다.

3.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매 백성이 순종함

본문 9절에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후계자로 세우고 또 직분을 맡겼습니다. 지혜의 신이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맡겼기 때문에 그 직분에 대한 감당할 만한 지혜와 능력을 여호수아에게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직은’이라는 것이 있는데 직분에 대한 은사를 말합니다. 직분을 하나님께서 맡기신 다음에 그 직분을 감당할 만한 지혜도 주시고 그 직
분을 감당할 만한 힘도 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그 직분을 감당하게 됩니다. 직분을 맡아서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대로 하려고 하면 힘을 주십니다. 안 맡았을 때보다 힘이 많이 납니다. 전도하러 나가는 것도 전도하러 나가면 힘이
많이 납니다. 안 나가면 힘이 안 나지만 일단 나서고 나면 힘도 나고 또 하나님께서 말도 나오게 만들어 주셔서, 말할 때 어디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상상 밖의 말을 하게 만들어 상대방을 감동시키시고, 하나님의 복음에 복종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에게 지혜와 은사와 능력을 주십니다. 주일학교를 맡아서 힘써 일하면 하나님께서 힘을 주십니다. 건강도 힘도 지혜도 은혜도 다 주십니다. 하나님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힘을 안 주십니다. 지혜와 은혜를 안 주셔서 가졌던 은혜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다 거두어 가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장사를 안 하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도리어 빼앗아 가시지 않았습니까? 빼앗아 가셔서 누구에게 주었습니까? 열 달란트 가진 자, 장사를 잘한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일을 안 하면 있는 것도 다 빼앗아서 일을 잘하는사람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과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해야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사와 능력을 입혀 주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키시는 것입니다.

본문 9절 하반 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백성의 순종입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신 것과 백성은 순종한 것, 이것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한 것입니다. 모세의 수종을 들었던 여호수아가 모세만 못하지만 그래도 그 백성들이 잘 순종하고 잘 받들어 나갔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전부 정복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로 일단 세워놓은 다음에는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순종하면 일이 잘되어 나가고 순종하지 않고 반대만 하면 일이 잘되어 나가지 않습니다. 항상 잘 받들어 순종하면서 일이 잘되어 나가도록 하여야 전체가 복을 받습니다.

4. 그 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함

본문 10절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수아도 모세만은 못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받았고 또 하나님께서도 모세를 대면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한 모세는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대면해주셔서 언제나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대면했기 때문에 체험이 깊고 영력이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컸습니다. 그런 선지자가 없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만큼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기도했습니까? 미디안에서 40년, 호렙산에서 40일 금식기도 두 번, 광야 40년 동안에 늘 모세는 기도했습니다. 80년 동안 기도를 했다고 보아야 합니다. 모세만큼 80년 기도한 사람은 쉽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씀을 받는 자였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하나님의 역사와 체험이 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여 직접 받았으니 얼마나 깨달은 진리가 확실했겠습니까? 확실한 진리가 있고 영권이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힘이 있게 한 것입니다. 그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본문 11-12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고 하였습니다. 또 왜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했냐면 모세는 여호와께서 애굽에 관하여 바로 왕과 그 모든 신하와 그 모든 땅에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였습니다. 애굽의 모든 땅, 강퍅한 바로 왕, 모든 신하 그들 앞에서 하나님의 큰 이적과 기사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신 일, 바로 왕의 수하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나오게 한 일 이런 큰 일을 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가장 큰일을 한 것입니다. 큰 역사를 한 것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 목전에서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목전에서도 권능과 위엄을 행했다는 것은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을 비롯하여 홍해 바다를 육지와 같이 건넌 일,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일,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서 강림하실 때 흑암과 빽빽한 구름과 나팔 소리와 음성과 번개와 불 가운데서 나타나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십계명을 직접 주셨는데 그것을 이스라엘 온 백성이 다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이런 큰 역사로 권능과 위엄을 행하신 일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남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모세가 큰일을 많이 행했습니다.
모세는 자기 할 일을 다 끝마치고 하나님 앞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고 하늘나라에 가면 좋지 않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애굽에서부터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고 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것 아닙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허락해 준 가
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40년 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고생을 가장 많이 하고 제일 앞장서서 나가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은 육신적으로 보면 고생만 하고 하나도 맛보지 못하고 간 것이 됐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맛을 본 것보다 못 들어가고 직접 하늘나라 간 것이 상급이 더 많을 것입니다. 세상 것을 받은 다음에는 하늘나라의 상급이 적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에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 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 앞에서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 앞에서 받지 않아야 하늘나라에 가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수고 많이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맛도 못보고 재미를 보지 못하고 복을 누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크신 복입니다. 들어가서 그 복을 다 누리고 갔다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그만큼 상급이 적습니다. 다 받았다면 상급이 하나도 없고 하나도 안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가서는 다 남아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서 더 좋은 것으로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것입니다. 또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기 때문에 율법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데려가셨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이름 자체가 예수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형으로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우리를 하늘나라로 데려갈 그 모형으로 여호수아를 세워 놓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신령한 가나안 땅인 하늘나라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받지 못하고 간 일이 모세에게 더 유익하게 됐다는 것 또 세상나라 땅보다 하늘나라가 더 좋은 본향 더 좋은 복지 더 좋은 가나안이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 곳에 가기 위해서 더 좋은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서 기쁘고 즐거움으로 느보산에 혼자서 올라갔고 그곳에서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가나안 온 땅을 다 바라보고 즐거움으로 하나님 앞에 갔다는 것입니다.
장사는 누가 했습니까? 장사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장사를 해 주셨습니다. 죽은 다음에 장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해 주십니다. 최선을 다해서 할 일을 다 하고 가는 것 그것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다 하고 가는 일 그것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맡겨 주고 갔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에 들어 가도록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고 안수해 주고 갔습니다.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때부터 지혜의 신을 더 충만케 하셔서 이
스라엘 백성을 잘 인도하게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을 잘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때보다 더 잘 순종했습니다. 모세의 때에는 많이 거역했는데 여호수아의 말을 잘 순종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을 다 정복을 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모세보다 못한 여호수아지만 백성들이 잘 순종했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다 정복할 수가 있었던 것을 잘 배워야겠습니다.

신명기 33:1-29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함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가 이스라엘을 축복함
신명기 33:1-29

1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2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3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 4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5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 6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 7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8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 10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 11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12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 1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14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 15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 16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17그는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 18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 19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20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 21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 22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 23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 24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25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26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 27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 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 28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 29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축복으로 율법을 주심

불 같은 하나님의 율법

본문 1-2절에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강림하시면 멀리까지 그 빛이 비추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불 같은 율법이라는 것입니다. 불 같은 율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뜨겁고 맹렬하여,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어서 죄를 회개시켜 살려나가는 일을 하기도 하고, 또 불 같은 심판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에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율법 혹은 말씀에는 불 같은 하나님의 뜨거운 역사가 있어서 죄를 깨달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만드는 역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대로 하지 아니하면 불 같은 맹렬한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말씀은 이와 같이 뜨거운 능력 있고, 불 같은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무시하면 마지막에 불 같은 말씀이 나와서 심판하십니다. 무능력한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 8절에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
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라고 하였는데, 해라는 것은 말씀, 곧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키는데, 진리가 해와 같은 뜨거운 권세가 있어서 사람을 태워 죽인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나가도 괜찮지만, 말세가 되면 그 말씀이 불 같이 뜨거워지고 해와 같이 뜨거워서 사람을 심판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무능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언제나 권세 있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서, 말씀 앞에 벌벌 떨고 그 말씀에 복종해야 됩니다.

항상 겸손히 주의 말씀을 받으라

본문 3절에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겸손히 낮아져서 주의 말씀을 받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그러면 성도는 하나님의 수중에 있게 됩니다. 성도는 하나님
의 손 가운데 있고 하나님의 발 아래에 앉아서 그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6절에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하나님의 손바닥에 새기시고 늘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우리를 수중에
다 붙드시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오른손에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도록 지켜주는 동시에,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즉시로 심판하십니다. 오른손에 새겨놓고 늘 쳐다보고 계시기 때문에 다 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나중에 심판하려고 가만히 두시지만 믿는 사람이 잘못하면 오른손에 있기 때문에 즉시 즉시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가만히 두시지 않으십니다. 수중에 있는 것이 좋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남보다 먼저 즉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성도는 그 발 아래에 앉아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늘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4-5절에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였으니 곧 야곱의 총회의 기업이로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으니 곧 백성의 두령이 모이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함께한 때에로다”라고 하였는데, 여수룬은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여수룬에 왕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야곱, 곧 이스라엘의 총회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또 두령을 세워서 잘 인도한다고 하였습니다.

2. 모세가 각 지파에 축복함

르우벤에 대한 축복

본문 6절에 “르우벤은 살고 죽지 아니하고 그 인수가 적지 않기를 원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인데, 맏아들이 범죄했기 때문에 장자의 명분을 빼앗겼지만 그래도 회개하고 그 자손이 하나님께 바로 섰으므로 아주 버리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복 받기를 축복하였습니다. 회개하고 바로 서면, 과거에 실수한 것을 다 용서해 주시고 살 길을 열어주시고 그 수가 적지 않도록 번성하는 복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우리는 과거에 잘못 행한 것을 회개 하고, 하나님께 바로 서서 믿음으로 나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생명의 길과 번성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다에 대한 축복

1) 그리스도가 나셔서 원수를 이기실 것임

본문 7절에 “유다에 대한 축복은 이러하니라 일렀으되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지파는 야곱의 넷째 아들인데, 두 번째로 축복하였습니다. 이렇게 넷째 지파를 두 번째로 나오게 한 이유는 유다 지파에서
장차 그리스도가 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모신 지파가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유다 지파에 대한 축복은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셔서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 지파에서 장차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나셔서 원수를 다 멸하고 원수를 소멸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 대적과 선한 싸움을 잘 싸울 때,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셔서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는 뜻도 있습니다.

“여호와여 유다의 음성을 들으시고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라고 하였는데, 유다의 음성을 하나님께서 들어달라는 것과 또 그 백성에게로 인도해 달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49장 10절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고 야곱이 유다에게 축복한 말씀과 본문에서 모세가 “그 백성에게로 인도하시오며”라고 축복한 말씀은 같은 것입니다. 장차 유다 지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시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많은 택한 백성들에게 보내어 천국 복음을 전하고 구속을 이루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유다 지파에서 나신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승리해 주신 것을 믿고 원수 마귀를 정복해 주신 것을 믿어야 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늘 이기라는 것입니다. 이기면 왕권이 점점 커져서 능력 있는 왕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는 자가 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늘 이기고 왕권이 커져서 능력 있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 자기 손으로 싸우는 사람을 도우심

또한 “그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고 주께서 도우사 그로 그 대적을 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손으로 자기를 위하여 싸우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자기 손으로 싸우는 사람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대적을 쳐서 이기게 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유다가 손으로 자기를 위해서 싸울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유다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대적을 쳐서 이기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손으로 나가서 싸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믿는 사람이 선한 싸움을 싸울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대적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러나 자기 손으로 나가서 노력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자기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들어주시지 않고, 자기가 전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수 없습니다. 자기 손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고 대적에게 패하고 맙니다. 성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리는 힘써 기도하고 전도하고, 또 자기 손으로 나가서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하고 대적과 싸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결심하고 달라붙어서 기도하고 이기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다 이기게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만능이시므로 그 만능으로 우리가 이기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이렇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또 많은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 들어주셔서 택한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수 있고, 또 나가서 마귀의 세력과 더불어 싸우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다 이기게 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유다 지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다 들어주시고 다른 백성을 하나님 앞으로 전도해서 인도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또 자기 손으로 나가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사람, 곧 하나님의 일을 부지런히 하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반드시 승리하고 성공하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손으로 나가서 싸우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모든 것을 다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을 가져야겠습니다.

레위에 대한 축복

1)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복

본문 8절에 “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에 대해서 모세가 많이 축복을 해 주었는데, 자기가 레위지파이기 때문에 이렇게 축복을 해 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명령 하시는 대로 축복한 것입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우림과 둠밈이 언제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데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물어보았는데, 예를 들어 “전쟁하러 가렵니까, 가지 말렵니까?”하고 물으면 거기에서 소리가 났던 것 같습니다. 소리가 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뜻이고, 소리가 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가지 말라는 뜻이라고 판단했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해 주는 기구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림과 둠밈이 레위지파에게서 떠나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은 하나님의 응답이 언제나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복이 레위 지파에게 늘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역사가 늘 있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잘 모르면, 일을 하다가 그만 실패하고 맙니다.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안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는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안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또 전쟁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전쟁을 안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모를 때에 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을 사용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시는 전쟁이다’, 또 어떤 전쟁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라고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 수 있고, 그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서 승리하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하다가는 그만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제사장이 늘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와서, 백성이 하나님의 뜻을 모를 때에 우림과 둠밈으로 가르쳐주면 순종하는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고 다투심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 하시고 므리바 물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르비딤에서 마실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고 다투었다는 것입니다(출 17:1-7). ‘므리바’는 다투었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할 때 반석에서 물이 두 번 나왔는데, 르비딤에서 한 번 물이 나왔고(출 17:1-7), 그 다음에는 가데스에서 한 번 나왔습니다(민20:1-13). 그런데 둘다 ‘므리바’라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라고 하였고, 출애굽기 17장 5-7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으로 지나가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게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그가 그곳 이름을 맛사라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였음이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스라엘 백성들이 맛사 또는 므리바에서 모세와 다투었고 하나님을 시험한 것입니다. 이렇게 레위 지파인 모세와 아론을 하나님께서 시험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므리바 물가에서 백성이 다툴 때에 모세가 하나님만 믿고 잘 순종을 하는지 시험을 해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가데스 바네아에서 시험하실 때에는 낙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으나, 모세와 아론은 “우리가 너희를 위해서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하고 반석을 두 번 쳐서 물을 내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복

본문 9절에 “그는 그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 형제들을 인정치 아니하며 그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을 인함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의 말씀을 지키고 주의 언약을 준행하기 위해서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얽매이지 않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
의 말씀을 준행하고, 언약을 지키기 위해서 이렇게 힘 있게 달음박질해 나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 나가다가 부모나 형제나 자녀에게 얽매여서 안 나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낙제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할 때에는 모든 것을 다 내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말씀만 따라가야 됩니다. 부모, 형제, 자녀를 다 뒤에 놓고 말씀 하나만 따라가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가 됩니다. 얽매여서 못 나가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합당치 않습니다.

부모, 자녀, 형제를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것이 큰 은혜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였는데, 다 버리고 말씀만 따라가는 은사, 곧 주님만 따라가는 것이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다 제사장의 위치에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제사장이고 선지자이고 왕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버리고 주와 그 말씀만 따라가는 은사를 받아야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백 배나 많은 것으로 주시고 핍박을 겸하여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4) 주의 율법을 가르치고 제사를 드리는 복

본문 10절에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단 위에 드리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르치는 은사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분향하고 번제하는 제사 드리는 은사를 레위 지파에게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은사가 큰 은혜입니다. 그리고 제사 드리는 것도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가르칠 때 몇 사람 모아다가 놓고 가르치면 좋겠습니까? 한 사람도 놓고 가르칠 수 있고, 또 두세 사람 놓고 가르칠 수도 있고, 열 사람이나 몇 십 명을 놓고도 가르칠 수 있고, 또 좀 더 많이 놓고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놓고 가르치는 것이 큰 열매가 없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이북에서 김의용 목사님이 요한계시록을 가르치셨는데, 한 사람 놓고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기차 운전하던 청년이 혼자 김의용 목사님한테 성경 배우러 온 것입니다. 그러면 둥그런 밥상 하나 놓고 하루 종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그 이튿날 또 하고, 한 사람 놓고 아마 한 주간 가르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가 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서 해운대교회라는 큰 교회에서 시무했고 그 다음에 충무교회로 옮겼습니다. 김의용 목사님이 한 사람을 가르쳤는데, 그 사람이 몇 백 명 가르치고 몇 천 명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이 큰 것입니다. 또한 김현봉 목사님이 삼각산에서 사경회를 하셨는데, 그 삼각산 집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학인 목사님과 전칠홍 목사님이 서울 지방 교회를 순찰하는데 저도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제가 그 때 서른 서너 살 되었을 때였습니다. 같이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이 계신 아현교회에 가보니, 목사님은 없고  누더기만 한 무더기 쌓여있었고 기둥만 열 개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낮에 갔는데 그 기둥에서 한 사람이 누더기를 쓰고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은 그 때 처음 보았습니다. 그 사람에게 목사님이 어디 가셨는지 물으니 삼각산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삼각산에 뭐 하러 가셨는지 물으니 기도하러 가셨다고 합니다. 삼각산에 기도하러 가는 것도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데하고는 좀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이 갔던 두 목사님이 이 다음에 다시 찾아오자고 했습니다. 그 두 분 목사님들이 저보다 나이가 이십 세 이상 많으신 분들인데, 그분들과 함께 같이 또 가서 김 목사님을 한 번 만났습니다. 조그마한 영감님이 머리를 빡빡 깎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아현 교회에서 시무한 지 몇 년 되셨는지 물으니까 그 때 이십 년 되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서 배우기를 한 교회에서 한 삼 년쯤 있다가 그곳을 떠나야 된다고도 하고, 오래 있어야 된다고 하는 교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김 목사님께 “전 삼 년 있다가 떠나야 된다고 배웠는데, 김 목사님은 한 교회에 왜 그렇게 오래 계십니까?”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삼 년 가르치고 떠나면 교인들이 만들어질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래 있을 수 있는 방법을 물어보았더니 가르쳐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한 주일 동안 사경회를 해야 다 가르치지, 몇 마디 가지고는 안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경회를 해주겠냐고 했더니 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 명만 모여도 되냐고 하니까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됐다’ 하고는 사경회를 하자고 하였습니다. 우리 7회 동기 졸업생이 가운데 서울에서 목회하는 목사는 김순진 목사를 비롯해, 신당동에 황기종 목사, 그리고 저까지 세
명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사경회를 하자고 하니, 누가 가르치냐고 묻기에 아현교회 김현봉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모여서 사경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삼각산 제일기도원에 가서 방을 얻었습니다. 

겨울인데 아카시아 나무를 가져다가 방에 불을 때니 연기가 방 안에 가득 찼습니다. 김 목사님하고 우리 셋이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배웠는데, 며칠쯤 되어서 김 목사님하고 저하고 싸움이 붙었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과 안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만 두고 다 돌아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만 두기로 하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한 주간을 약속하고 왔는데, 왜 맞짱을 뜨느냐고 하면서 다른 목사님들이 저 보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사님을 다시 모시고 한 주간을 끝마쳤습니다. 그 바람에 거
기서 신학교 3년보다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해마다 봄에 한번 하고 여름에 한번 해서, 일 년에 두 번씩 사경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세 사람이 하다가 차차 늘어서 오육십 명이 모이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관악산에도 가서 사경회를 했습니다. 점점 많이 모였습
니다. 이렇게 세 사람 가르친 것이 큰 것이었습니다. 교인들 세 사람 모아놓고 사경회를 할 수 있습니까? 김 목사님이 세 사람도 좋다고 하셔서 사경회를 했는데, 그것이 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가서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커서 큰 열매가 맺힐 수 있습니다. 몇 백 명, 몇 천 명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르쳐 보아야 성경이 자기 것이 됩니다. 그래야 많이 깨닫게 되
고 기억도 잘 됩니다. 한 번 가르친 것은 잊지 않고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됩니다. 레위 지파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르치는 은사를 주셨는데 많이 가르쳐야 되겠습니다.

5) 재산이 풍족하고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복 
본문 11절에 “여호와여 그 재산을 풍족케 하시고 그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우림과 둠밈이 바벨론 포로 때 잃어버려서 지금은 없지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아는 지혜, 그리고 말씀을 따라갈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가는 은혜, 그 다음에는 말씀을 가르치는 은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은혜를 받으면, 11절에서 재산을 풍족케 하신다고 하였고, 대적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기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므온 지파에 대한 축복

그 다음에 시므온 지파가 나와야 하는데 순서에서 빠졌습니다. 열두지파가 차례대로 나오다가 시므온 지파가 빠지고,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시므온 지파와 레위 지파는 언제나 함께 취급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창 34:25, 30). 시므온과 레위는 언제나 같이 다녔으
므로 레위 지파에게 한 축복은 시므온 지파에게 대한 축복도 될 수있습니다. 

베냐민 지파에 대한 축복

1) 성전 곁에 있어 안전히 거하는 복

본문 12절에 “베냐민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하시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막내지만 베냐민 지파가 왜 먼저 나왔느냐면, 베냐민 지파에는 예루살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기 때문에, 성전이 있는 지파를 먼저 기록하려고 먼저 나온 것 같습니다. 르우벤 지파는 맏아들이니까 먼저 나왔고, 그리스도가 오실 유다 지파가 두 번째로 나왔고, 그 다음 레위 지파가 나왔습니다. 그 다음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베냐민 지파가 나온 것입니다.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는 그 곁에 안전히 거하리로다”라고하였는데, ‘그 곁에’라는 것은 성전 곁을 의미합니다. 성전이 있는 지파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전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안전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 곁에 있는 사람은 안전히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전 곁에, 성전 안에 거하여 성전을 떠나지 않는 생활을 하면, 심령이 안전하고 평강하고 하나님께서 안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를 날이 맟도록 보호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성전 곁에 있는 사람을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자기 어깨 사이에 처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전이 베냐민 지파의 영내인 예루살렘에 있으므로 그곳은 모든 지파의 예배 중심지입니다. 그러므로 성전이 있는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의 어깨 사이에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성전 생활하는 은혜를 받아야 되겠습니다. 베냐민 지파는 성전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지파이고, 성전 곁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십니다. 그리고 성전을 모시고 있는 사람에게는 어깨 사이,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위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은 하나님께서 힘써 높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에 대한 축복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해서 풍성한 복을 모세를 통하여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1) 자연 만물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복

본문 13절에 “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컨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라고 하였습니다.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라고 하신 것은 하늘의 이슬과 땅 아래 샘과 지하수가 풍부한 곳에서 살게 해달라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비가 잘 오고 지하수가 많은 땅을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주시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본문 14절에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과”라고 하였는데, 낮에 태양빛이 잘 쪼이는 복을 주시고 밤에는 달로 인하여 모든 보물이 또 잘 자라는 혜택이 있기를 기도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낮이나 밤이나 기후가 좋아서 모든 것이 잘 자라나게 하는 혜택이 있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늘의 이슬이 풍성히 내리고 비가 잘 오고 땅에 지하수가 많은 것은 큰 복입니다. 사막 지대에는 비가 안 오고 지하수도 없습니다. 또 해가 잘 나는 것도 복입니다. 어떤 지방은 해가 잘 안 나고 늘 흐리고 비가 오는 곳이 있습니다. 캐나다 밴쿠버 같은 곳과 미국 시애틀과 같은 곳은 겨울 내내 흐리고 비가 오고 눈이 옵니다. 비가 안 오는 날이 며칠 없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몇 주간씩 흐리기만 하고 해를 못 보는 때도 있다고 합니다. 유럽도 그런 나라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에게는 해를 보는 것이 상당히 귀한 것입니다. 햇빛만 나면 벌거벗고 마당에 나가는 것입니다. 오랜만에 해가 나니까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해가 나면 벌거벗고 나가는 습관이 있습니다.

본문 15절에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과”라고 하였는데, ‘옛 산의 상품물’이라는 것은 목재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산에 목재가 옛날부터 가득히 차있는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몇 백 리를 가도록 나무가 가득히 들이 차서 그 나무를 찍어 팔면 몇 십 년 동안 농사 짓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많이 있습니다. 또 “영원한 작은 산의 땅의 보물과”라고 하는 것은 산에 있는 과수원 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작은 산에 과수원을 해서 실과나무가 많다는 것입니다. 작은 산에 과수원을 통해 많은 보물을 얻는 축복을 해 준 것 같습니다.

본문 16절 상반절에 “땅의 보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지하자원을 많이 얻게 해 달라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어떤 나라에는 석유가 많고, 또 가스, 철, 석탄과 같은 지하자원이 많이 있습니다. 인도 같은 곳에 가면 산이 전부 철이라고 합니다. 산을 깎아 오
면 철을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또 산이 전부 석탄인 나라도 있습니다. 만주에 있던 어떤 탄광은 그곳의 땅이 전부 석탄이라고 합니다. 구덩이를 파지도 않고 척척 가서 파기만 하면 전부 석탄입니다. 그것을 가져다가 때면 얼마나 잘 타는지 석탄이 마치 장작불이 붙는 것처
럼 붙습니다. 그렇게 석탄이 좋습니다. 우리나라의 무연탄 같은 것은 거기에다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그냥 거저 성냥을 갖다 대면 소나무 광솔과 같은 종류인데 불이 얼른 일어나면서 조금만 때도 상당히 덥습니다. 그렇게 좋은 자원을 많이 얻게 해 달라는기도입
니다. 산에 가서 퍽퍽 퍼오면 됩니다. 구덩이를 파는 일도 없습니다. 그런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신령한 축복도 있습니다. 이렇게 신령한 생수의 은혜, 또 하늘에서 내리는 풍성한 은혜를 받는 일,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자라나는 일, 또 모든
큰 산, 작은 산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일, 또 땅에 감추어 있는 보배를 찾아서 가지는 축복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본문 16절 하반절에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의 은혜로 인하여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라고 하였는데, “가시떨기 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환난 가운데에서 돌보아주신 하나님이
십니다. 그리고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구원하기 위해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요셉의 족속을 특별히 환난 가운데서 건져서 구원해주시고 넘치는 복을 주시기를 구한 축복의 기도입니다.

2) 장자의 명분과 위엄의 축복

본문 17절에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첫 수송아지같이 위엄이 있으니”라는 것은 권능이 있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로 돌아왔다고 했는데,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도 있고 위엄도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이 요셉에게 돌아왔다는 것은 역대상 5장 1-2절에 “이스라엘의 장자 르우벤의 아들들은 이러하니라(르우벤은 장자라도 그 아비의 침상을 더럽게 하였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의 자손에게로 돌아갔으나 족보에는 장자의 명분대로 기록할 것이 아니니라 유다는 형제보다 뛰어나고 주권자가 유다로 말미암아 났을
지라도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 있으니라)”라고 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르우벤이 한 번 실수함으로 인해서 그것이 책에 기록되어 대대손손 영원히 그 실수한 것이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한 번 실수한 것이 이렇게 큰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르우벤이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좋을 뻔 했습니까? 실수 안 했더라면 장자의 명분이 그냥 있었을 것이고 위엄이 그냥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실수했기 때문에 역대기에 그것을 기록하고 몇 천 년이 내려가도록 그것을 후손이 읽게 되고, 장자의 명분은 요셉에게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명분만 돌아간 것이 아니고 장자에게는 위엄이 그만치 있는데, 첫 송아지 같이 큰 능력과 위엄이 있는 지파가 될 것을 가리킵니다.

또한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라고 하였는데, 뿔은 권세를 가리키므로 들소의 뿔과 같은 강한 권세가 있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으로 열방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곧 에브라임의 만만이요 므낫세의 천천이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에브라임이 작은 아들이지만 에
브라임을 앞세웠습니다. 므낫세는 맏아들인데 맏아들보다 작은 아들이 더 나아졌기 때문에, 그만큼 책임도 크고 그만한 일을 감당해야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아지게 했다고 해서 교만하고 그것을 자기의 소욕으로 삼으면 안 됩니다. 이렇게 에브라임을 만만으로 해 놓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만큼 에브라임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쓰려고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만들어 주신 사람은 책임이 크고 사명이 큽니다.

요셉 지파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슬, 또 땅에서 올라오는 샘, 결실케 하는 태양과 자라게 하는 달의 혜택이 있게 해 달라는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태양의 복이라는 것은 태양빛이 잘 나서 열매가 잘 익는 것을 말합니다. 하늘에서 이슬이 잘 오고 비도 잘 오고, 또 지하수가 풍성하고 햇빛도 잘 나고 밤에는 춥지 않고 열매가 잘 맺혀지는 축복의 기도입니다. 요셉 지파는 하늘에서부터 시작 됩니다. 하늘의 이슬과 비, 땅 속에 지하수, 하늘의 햇빛, 달빛, 지하자원, 큰 산의 나무, 작은 산의 과수원, 또 지하 자원, 이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셉 지파는 하늘에 이슬과 비가 잘 오게 만들어 주고 땅에 지하수가 풍성하고 태양이 잘 쬐어서 열매가 잘 맺히고 달의 혜택으로 춥지 않고 곡식이 잘 자라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옛 산의 상품물과 영원한 작은 산의 보물이라고 하였는데, 옛날부터 있던 산의 좋은 재목들과 작은 산에 심은 과수나무가 열매를 맺혀 모든 것이 풍성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 지하자원인 땅 속에 모든 보화를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시떨기나무 가운데 거하시던 하나님의 은혜로 요셉 지파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주시고 넘치는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첫 수송아지와 같이 위엄이 있고 들소의 뿔과 같은 세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열방을 정복하여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에 대한 축복

1) 나가고 거하며 열국 백성에게 복음을 전할 축복 

본문 18절에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을 같이 축복했습니다. 이 둘은 다 레아의 아들로서 가나안 땅의 기업을 받을 때도 서로 이웃하여 받았습니다. 어머니도 한 어머니, 기업도 이웃하여 받았기 때문에 언제나 같이 다니는 것입니다.

“스불론이여 너는 나감을 기뻐하라”라고 하였는데, 나가서 상업을 하여 번성하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잇사갈이여 너는 장막에 있음을 즐거워하라”라고 한 것은 농업을 할 것을 가리킵니다. 나갈 사람은 나가고 장막에서 있을 사람은 장막에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다릅니다. 마리아는 성격이 온순하고 얌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르다는 당차게 생겼을 것 같고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왔다 갔다 하는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자가 무서운 줄도 모르고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마르다처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은 나가서 일해야 하고, 마리아처럼 집에서 일할 사람은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나가서 할 사람은 나가서 하고, 본 교회에서 할 사람은 본 교회에서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또 활동적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야 될 사람은 활동적으로 나가서 도와야 되고, 집에 앉아서 도울 사람은 집에 앉아서 도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나 활동적인 사람은 나가서 일하고, 또 가만히 앉아서 해야 할 사람은 고요하게 앉아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멀리 가서 이방 사람을 전도하는 사람이 있고, 또 네 집 근처에 다니면서 전도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네 집 근처 다니면서 전도할 사람은 장막에 거하는 사람이고, 멀리 가서 나가서 전도할 사람은 나갈 사람입니다. 사명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허영심으로 안 나갈 사람
이 나가겠다고 하면 안 되고, 집에 있을 사람이 나가겠다고 해도 안 됩니다. 또 나가야 하는 사람이 게을러서 집에 있어도 안 됩니다. 그것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집에 있을 사람은 집에 있어야 되고, 나가야 할 사람은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벌써 척 보면 이 사람이 나가야 할 사람인지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할 사람은 집에 있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집에 있어야 되고, 내보내야 할 자는 나가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실 때에 그렇게 다 따로 내셨습니다. 집오리와 야생오리가 다르고, 돼지도 집돼지와 멧돼지가 다릅니다. 벌써 다릅니다. 집돼지하고 멧돼지하고 둘 다 같은 돼지인데, 집돼지는 산에 가면 얼마 못 살고 죽습니다. 또 멧돼지는 가만히 가둬놓으면 안타까워합니다. 멧돼지는 내보내야 합니다. 멧돼지 보았습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보통 돼지는 입이 좀 짧은데, 멧돼지는 입이 가늘면서 깁니다. 그래서 보면 압니다. 그와 같이 나가야 할 사람을 보면 알고, 또 집에 있어야 할 사람도 보면 압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것이 다릅니다. 그런데 둘 다 필요합니다. 다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누가 집을 보고, 다 집에 앉아 있으면 누가 왔다 갔다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다 필요해서 내신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내신 대로 써야 됩니다. 괜히 허영심을 가지고 집돼지가 멧돼지 노릇 하겠다고 산에 갔다가는 죽습니다. 집돼지가 산에 가면 며칠 못 갑니다. 다른 동물들이 잡아먹습니다. 자기 먹을 것도 못 먹습니다. 집돼지는 주인이 줘야 먹을 수 있게 되어있고, 주둥이가 짧습니다. 나가야 할 자는 나가고 집에 있어야 할 자는 집에 있어야 합니다. 활동적으로 할 사람은 활동적으로 하고 사무 볼 사람은 사무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 19절에 “그들이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하고 거기서 의로운 제사를 드릴 것이며…”라고 하였는데, 열국 백성을 불러 산에 이르게 한다는 것은 나가서 열국 백성을 불러 모아서 의로운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도록 한다는 것으로 전도를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열국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서 그 사람들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여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하는 복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 다음에는 “바다의 풍부한 것 모래에 감추인 보배를 흡수하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창세기 49장 13절에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바다의 풍부한 것’은 해변에 거하며 어업과 무역으로 번성하게 될 것
을 가리킵니다. ‘모래에 감추인 보배’라는 것은 모래의 사금과 여러 가지 광물을 가리키고 그런 것을 많이 거두어 풍족하게 되기를 축복해 준 기도입니다.

스불론에 대하여는 나가는 은혜, 잇사갈은 장막에 거하는 은혜가 있는데, 나가는 자와 장막에 있는 자가 합해서 전도해서 열국 백성을 불러 모아 하나님께 의로운 제사를 드리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바다의 풍성함과 모래에 감추인 보화가 풍성하기를 축복해 준 것
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이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을 잘 지키면 이 세상에서도 보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믿음을 잘 지키는 자는 많은 보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영적 보화, 신령한 보화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가고 장막에 거하고 또 모아서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많은 보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갓에 대한 축복

1) 광대하여 원수를 정복하는 축복

본문 20절에 “갓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갓을 광대케 하시는 자에게 찬송을 부를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은 갓을 광대케 해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셔야 광대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시지 않으면 광대해 질 수 없습니다. 자기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또 하나님께서 광대케 해주실 때에 광대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갓이 암사자 같이 엎드리고 팔과 정수리를 찢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암사자 같이 엎드렸다는 것은 강한 힘을 가졌다는 것으로 강한 세력을 가지고 원수의 팔과 정수리를 찢게 된 것입니다. 가만히 엎드렸다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원수를 정복하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신 다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자기를 위하여 먼저 기업을 택하였으니”라는 것은 갓 지
파가 요단 강 동쪽에 기업을 먼저 택한 것을 가리킵니다. “곧 법 세운 자의 분깃으로 예비된 것이로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법 세운 자의 분깃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분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2) 전쟁에 앞장 서 나가는 약속을 지켜 복을 받음

또 “그가 백성의 두령들과 함께 와서 여호와의 공의와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는데, 갓 지파가 앞장 서 가나안 전쟁에 나가서 정복해 나갈 것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과 세우신 법도를 행하도다”라고 하였는데, 자기 가족은 요단 강 동쪽에 두고 앞서 가서 가나안 전쟁에 가서 싸우겠다고 약속을 한 것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을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가나안 땅보다 먼저 받았지만, 먼저 받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전쟁에 앞장 서서 요단 강을 건너가서 그 약속을 다 지킴으로 인하여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먼저 기업을 받았다고
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기업을 받은 지파는 앞장 서 나가서 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앞장 서서 잘싸워야 먼저 받은 기업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기업을 가지고 그냥 좋다 하고 앉아있으면 안 됩니다. 기업을 받은 다음에는 남보다 앞장 서 나가면서 하나님의 일에 힘을 쓰고 바칠 것은 바치고 싸울 것은 싸우고 노력할 것은 노력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도와나가야 됩니다. 그래야 먼저 받은 것이 유지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풍성히 하나님께서
해 주신 그것을 가지고 자기 혼자서 잘 살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을 가지고 언제나 앞장 서 나가는 정신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먼저 받은 축복을 내내 유지할 수가 있습니다.

갓 지파는 광대케 되는 축복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암사자와 같이 엎드렸다가 원수를 물어 찢는다고 하였는데, 갓 지파는 광대한 곳에서 암사자와 같이 가만히 엎드렸다가 원수를 물어 찢는 것입니다. 그런 강한 지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업을 먼저 받은 지파로 하나님 앞에서 앞장 서서 나가서 책임을 다해서 가나안 전쟁을 하겠다는 그 약속을 그대로 실행하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장구히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단에 대한 축복

본문 22절에 “단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단은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단 지파에게 축복한 것인데, 창세기 49장 17-18에서는 야곱이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
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라고 축복하였습니다.

‘바산’은 동북쪽 지방에 있는 고원지대로 수풀이 우거져 있고 험악한 산으로 사나운 사자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단은 거기서 뛰어나오는 사자의 새끼라고 하였습니다. 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사나운 성격을 가지고 나와서 모든 것을 다 정복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후에단 지파에서 삼손이 나왔는데, 삼손이 사자와 같이 강해서 블레셋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이렇게 뱀과 독사와 같은 성격이 있는 지파라도 회개하고 믿음으로 나가면 그것이 도리어 선용되어서 사자와 같이 강하게 선한 싸움을 잘 싸워 나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독사와 같은 성격이 있는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그 성격을 믿음에 써서 믿음에 바로 서면 그것이 도리어 믿음이 선용되어서 강한 사자와 같이 믿는 일을 더 용맹하게 잘 해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고집도 믿는 일과 진리를 파수하는데 쓰면, 진리를 굳건히 파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든 것을 믿음에 이용해서 모든 것이 선용되도록 힘을 써야 하겠습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더 좋은 것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납달리에 대한 축복

본문 23절에 “납달리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납달리는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다고 하였는데, 창세기 49장 21절에는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나오는 소리로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영적인 신령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신령한 소리, 영적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영적으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그 자리에 있는 납달리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복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신령한 노래를 부르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은혜가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사람입니다.

또한 “납달리여, 너는 서방과 남방을 얻을지로다”라고 하였는데, 서방은 성경 각주에 바다편이라고 하였습니다. 남방은 갈릴리 바다와 그 남쪽을 가리킵니다. 납달리 지파는 요단강 부근의 땅을 얻었는데, 요단강 맨 북쪽 갈릴리 바다 서북쪽에 가버나움이 있습니다. 그 서북쪽
의 땅을 얻었습니다. 남쪽에는 갈릴리 바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남방을 얻을지로다’라는 것은 갈릴리 바다에서 풍성한 것을 얻을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 바다 서북편에 있는 가버나움은 후에 예수님께서 이사 가신 곳입니다. 나사렛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고 그 다음에 가버나움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가 풍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예수님을 모신 곳은 은혜가 풍성하고 복이 가득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은혜가 항상 족하고 여호와의 복이 가득한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모신 가버나움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가 족하고 하나님의 주신 복이 언제나 가득한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아셀에 대한 축복

본문 24-25절에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다자한 복을 받으며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49장 20절에는 “아셀에게서 나는 식물은 기
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진수를 공궤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기름진 곡식이 아셀에게서 나게 해서 기름진 식물로 왕에게 먼저 공궤를 하는 지파가 된다는 것입니다. 왕을 잘 섬기는 지파가 될 것을 가리킵니다.

1)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복

먼저는 다자한 복을 받았는데, 다자(多子)하다는 것은 아들이 많다는 것, 즉 많이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라고 하였는데, 자손이 많이 번성하고, 그 다음에는 형제에게 기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사회는 여러 사람과 같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 사람과 사귀고 같이사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회는 두 사람 이상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단지 길거리에 두 사람이 오고 가기만 하는 것은 사회가 아닙니다. 유기적인 관계를 가져야 사회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서로 다 관련을 가지고 살지 않습니까? 가정에도 다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서로 관련이 있기에 가정도 한 사회인 것입니다. 교회도 한 사회입니다. 교회도 다 모여서 한 형제가 되고 교역자가 인도하고 성도들이 인도를 받는 사회인 것입니다. 이세상도 국가를 이루고 국가를 받들고 국가의 지시를 받고 세금을 내야 하는 관리가 있는 사회입니다. 이웃 사람과 사는 것도 다 사회입니다. 이웃과 서로 친하게 살고 서로 사귀며 사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살면서 다른 사람과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되도록 하는 것이 큰 복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지파가 아셀 지파인데, 이런 지파가 복 있는 지파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살아야겠습니다. 다른 형제에게 유익을 주고 기쁨을 주고, 도와주고,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
이 좋습니다. 다른 형제에게 손해 주지 않으며 폐를 끼치지 않고 섭섭히 행하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유익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대접 받을 때에 정 나쁘지 않으면 먹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난 커피를 잘 안 먹는데, 어디 가면 자꾸 커피를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한 잔 먹어줍니다. 조금만 가져오라고 해서 조금 먹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 가니까 또 커피를 먹으라는 겁니다. 안 먹을까 했지만, 그러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다른 차는 없고 커피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져오라고 해서 먹었습니다. 대접하는 사람이 섭섭하지 않게 하려고 먹어 줄 때가 많습니다. 사실 안 먹어야 되겠는데, 안 먹으면 섭섭할 것 같습니다. 또 먹어주면 좋아합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좋게 해 주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접받을 때 정 나쁜 것은 안 먹어야 하겠지만, 웬만하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 먹는 것이 좋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가급적이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생활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셀 지파가 그렇습니다. 믿는 사람은 어디서나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는 생활을 늘 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는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만나면 섭섭하고 또 마음이 상하게 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어떤 집은 사돈끼리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을 자꾸 합니다. 사돈의 마음을 상할 것 같으면 그 말을 안해야 되겠는데, 그냥 속에 있는 대로 다 해치우는 겁니다. 그것은 매너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안해야 합니다. 아무리 말할 것이 있어도 서로 마음 상하게 하는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아셀 지파는 다른 형제에게 기쁨이 되는 생활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좋아 하지 않는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하고 살아야 합니다. 자기가 섭섭한 것이 있으면 다 풀고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조금 있으
면 좋은 것이 돌아옵니다. 처음에 섭섭한 것을 참고 잘 해주면 조금 후에 좋은 것이 돌아옵니다. 그 형제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렇지 않고 속에 있는 섭섭한 것을 다 털어놓고 매일 불평하면 유익이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에 어떤 집에서 밥을 질게 해주면 질게 해서 소화가 잘
되겠다고 하며 먹고, 또 되게 해주면 고소하고 맛있다고 하며 먹었다고 합니다. 밥이 좀 되서 안 되었으면 밥을 며느리가 했든 부인이 했든지 하여튼 고소해서 맛있다고 그래야 합니다. 질어졌으면 진 것은 소화가 잘 되니까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 좋게 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되게 했다고 큰소리치고, 또 질게 했다고 매일큰소리치면, 무엇이 좋겠느냐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손님으로 갔을 때, 작은 이불을 주면 발을 구부리고 자면 되고, 얇은 것을 주면 위에다가 의복을 하나 벗어서 올려놓고 자면 됩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구부리고 기도하다 자면 이불 반개로도 됩니다. 이불 큰 것이 필요 없습니다. 긴 이불 주는 곳에 가면 다리 좀 피고 잡니다. 사경회를 다니다보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곳에 가면 봄철에 큰 이불을 줘서 땀이 뻘뻘 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런 곳에 가서 봄철 이불 가져오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때에는 어떻게 하는가 하면 이불 한 귀퉁이로 배만 덮고 발은 내놓고 자는 겁니다. 하여튼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을 좋게 해주고, 자기는 좀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하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또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복이 늘 넘치게 되는 축복

그 다음에 “그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아셀 지파의 발이 기름에 잠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머리에서 발까지 내려가 복된 가운데 걸어가고 복된 가운데 살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발길을 옮기는 곳마다 넘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복된 가운데로 걸어가고, 복된 가운데서 또 다리를 옮겨놓고, 복된 자리에서 사는 생활이 기름에 잠기는 것입니다. 축복이 머리에서부터 발에까지 내려간 것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에다가 기름을 부었는데, 그것이 발에까지 내려갔다고 하였습니다. 발에 잠겼다는 것은 바로 축복이 발에까지 내려갔다는 것입니다. 발걸음 가는 데마다 하나님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아셀 지파에게 이러한 복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견고하게 해주시고 평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축복

본문 25절에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 될 것이니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네 문 빗장은 철과 놋이될 것이니”라고 하였는데, 견고해서 원수가 쳐들어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집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철과 놋이 되게 만들어서 원수가 침략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네 사는 날을 따라 능력이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평생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셔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떠나지 않고, 그 능력으로 모든 원수를 물리치고 형통하게 해 주실 것을 가리킵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의 능력이 늘 같이 하니까, 어떠한 원수가와도 그 능력으로 물리칠 수가 있고, 무슨 일을 당해도 그 능력으로 감당해 나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 전(全)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

하나님과 같은 신이 없음

본문 26절에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전체에게 한 모세의 최후의 말입니다. “여수룬이여”라고 하였는데, 여수룬은 ‘옳은 자’ 혹은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으
로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여수룬이여’라는 것은 ‘사랑하는 자여’,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 믿는 사람이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믿는 사람이여’라고 하는 것이 바로 ‘여수룬이여’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같은 신이 세상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여러 민족에게 신이 많이 있지만, 그 모든 신이 다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같은신은 절대 없습니다.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또 세상 사람들은 자기 조상이 소나 곰과 같은 동물에게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의 조상이 단군이라고 하는데 곰이 낳았다고 하고, 신라를 세운 박씨의 조상인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자기 조상들이 이렇게 곰 또는 알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허튼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지, 왜 알에서 나왔느냐는 것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고, 부, 양 삼신이 땅 구멍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곳이 삼성혈인데, 거기에서 요즘도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땅 구멍에서 나온 것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땅을 만드신 하나님이 크시지, 땅 구멍에서 나온 것이 큽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태양을 신이라고 하여 섬깁니다. 태양도 하나님께서 만드셨는데, 태양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외에도 또 무슨 신이다 하면서 세상에는 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 하나님과 같은 신이 아니고,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고 지어낸 것이고 또 마귀인 것입니다. 참된 신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과거에는 잡신을 섬기고 단군을 섬겼습니다. 여러 신을 많이 섬겼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다 집어치우고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참 신이시기 때문에 그 전에 섬기던 신은 다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신은 다 마귀이고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참 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참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주권적으로 지배하시고 주장하시며,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심판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하늘나라로 데려가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같은 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기 위해서 하늘에서부터 갑자기 나타나신다는 것입니다. 위엄과 능력으로 갑자기나타나셔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처소가 되셔서 보호하시고 대적을 쫓으시는 영원하신 하나님

본문 27절에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위엄을 나타내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우리의 처소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고 우리의 안식처이십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하고 또 사자와 표범과 악한 짐승들이 따라와도,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 곧 피난처 안에 있는 사람은 손도 대지 못합니다. 우리에게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피난처와 성소가 되어서 우리에게 안식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과 생명과 안식처가 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은 언제나 안식을 누리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안식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행복한 자는 하나님 안에서 사는 자입니다.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팔로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영원하신 팔로 우리를 붙들어서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해주시고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실족하지 않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가시면서 우리의 대적을 다 물리쳐 주시고 멸망시켜 주십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이스라엘에게 샘과 이슬을 주심

본문 28절에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안전히 거하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처소가 되시기 때문에 안전히 거하고, 또 능력의 팔로 우리를 보호해 주기 때문에 언제나 안전히 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안전히 거한다는 것입니다. 왜 안전히 거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피난처와 안식처가 되시고, 늘 능력의 팔로 원수를 다 물리쳐 주셔서 우리를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안전히 거하게 됩니다.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안전히 거할 뿐 아니라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홀로 있나니 곧 그의 하늘이 이슬을 내리는 곳에로다”라고 하였는데, 홀로 있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고 누구를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방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홀로 나가는 야곱과 이스라엘입니다. 믿는 사람은 하나님만 의지해야 됩니다. 이 세상 나라를 의지하면 안 됩니다. 또 세상나라를 두려워 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홀로 하나님만 의지하고 독립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야곱의 샘이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하늘의 이슬이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샘이 흘러서 곡식과 새 포도주에 샘물이 공급되니까 곡식이 잘 되고 포도가 잘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슬이 잘 내려서 이슬이 풍성하기 때문에 곡식과 포도가 잘 된다는 것입니다. 샘과 이슬을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에게 준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오늘날 믿는 사람에게도 샘을 주시고 또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모든 곡식이 잘되고, 포도가 잘되고 포도주가 잘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샘은 곡식과 새 포도주의 땅에”라는 것은 생수가 강같이 흘러내려가게 해준다는 뜻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생수가 강같이 흘러 내려가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14절에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
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 곧 생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생수를 주셔서 언제든지 생명의 강이 속에서 흘러내리게 하고,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수를 늘 마시고 자기 속에서 생수가 흘러나오고 생수가 넘쳐서 이 모든 믿는 일이 잘 되나가도록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잘 되고 곡식이 잘 익고 포도가 잘 익는다는 것입니다. 생수의 역사로 인해서 곡식이 잘 자라나고 잘 익습니다. 또 하늘의 이슬이 내려온다는 것은 신령한 은혜가 밤마다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가 하늘에서 밤마다 그리고 날마다 내려오고, 속에서 생수는 강같이 솟아 나와서 언제나 고갈함이 없게 계속 흘러나오도록 하신 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주었습니다. 생수를 주시고 늘 이슬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외에 이 세상에 다른 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얻은 이스라엘은 행복자로다

본문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스라엘은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믿는 사람이 신령한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이스라엘 백성되는 믿는 사람이여,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행복자라는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 제일 행복한 자입니다. 그러면 믿는 사람이 왜 행복자입니까?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너의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행복자가 아닙니까? “너는 행복자로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으니까 “나는 행복자로다”라고 해야 합니다. 다 같이 합시다. “나는 행복자로다. 나는 행복자로다.” 우리는 행복자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 왜 행복자입니까? 첫째는 ‘너 같이 구원 받은 백성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너 같이 구원해준 백성이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다 망하게 된 것을 건져 주셨습니다. 멸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주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안 건져 주셨으면 벌써 다 망했습니다. 6.25 사변 때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몇 백 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때 ‘너도 같이 죽을 것인데, 너를 건져 주었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또 영적으로 보면 우리가 마귀를 섬기다가 전부 마귀에게 종 되어서 망할 것인데,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고 하신 것입니다. 마귀의 종, 죄의 종으로 죄의 종살이를 하다가 다 멸망 받을
자인데, 하나님께서 건져서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렇게 구원해 주었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어디 있느냐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봐도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없고, 또 국가적으로 봐도 일본시대 때 다 망했던 자이고, 6.25 사변 때 다 망했던 자인데 하나님이 능력으로 건져주지 않았습니까?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 이런 큰 구원을 하나님께서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또 영적으로 봐도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피 흘려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이 도리를 가르쳐 주시고 생명길을 걷게 해 주셨으니 ‘너 같이 구원받은 자가 누구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자라는 말입니다. 거지요 고아였던 자를 데려다 왕의 아들로 삼아놨다고 하면 행복자가 아닙니까? 고아이고 거지고 다 죽을 구렁텅이에 빠지고 각종 병이 들어서 살 가망이 없고 때가 덕지덕지하고 머리도 못 감아서 독수리 털 같이 되었고 의복도 남루하고형편없는 자를 데려다가 왕의 아들로 삼아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이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우리는 왕의 아들보다 더 나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늘에 데려다 앉혀 놓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행복자입니까? 이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행복자인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왜 행복자입니까? 하나님은 ‘너를 돕는 방패’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도와서 원수를 막아주시는 방패, 또 너의 영광의 칼이시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하였는데,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광의 칼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셔서 원수가 오는 것을 막아주시고, 영광의 칼이 되는 말씀을 주셔서 그 말씀으로 우리가 선한 싸움을 싸워서 이겨나가고 정복하고 모든 마귀의 세력을 말씀으로 이겨 나가는 것입니다. 마귀시험을 말씀으로 이겨 나갑니다. 마귀의 종들을 말씀으로 이겨 나갑니다. 그래서 점점 우리로 하여금 말씀으로 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게 만들고 영광스럽게 만들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화롭게 해 나가는 말씀의 칼을 주어서 그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만들고 말씀대로 무장하고 말씀대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을 이루어서 점점 영광스럽게 해 나가도록 하십니다. 얼마나 행복합니까? 하나님께서 원수가 오는 것을 막아주시고 그 다음에는 영광의 칼을 주어서 그 말씀의 칼로 마귀를 다 이기고 마귀의 땅을 정복하고 또 그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만들어서 점점 영광스럽게 만들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행복하지 않습니까? 영광스럽게 해주시니까 행복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의 검을 써야 됩니다.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용천검이라도 그것을 쓰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녹이 슬어서 그 다음에는 못 쓰게 됩니다. 써야 됩니다. 기계도 늘 써야 됩니다. 기계도 가만히 놔두면 녹이 슬어서 못 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외국에 나갔다 오느라고 자동차를 1년 내내 세워 두었는데, 그 자동차가 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끔씩 사용 해야 합니다. 한 달에 한 두 번씩 시동을 켜서 사용을 해야 그 자동차가 새 자동차로 있지, 가만히 놔두면 버리게 됩니다. 써야 합니다. 세
탁기도 써야 됩니다. 기도원에 세탁기 헌 것을 몇 개 가져다 놨는데, 작년에 안 쓰고 1년간 놔두었더니 녹이 다 슬어서 금년에 쓰려고 하니까 여러 개 중에 한 두 개 정도만 돌아가고 다 못 쓰게 되었습니다. 사용 안하고 안 쓰면 나중에 못 쓰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의 칼이 되고 그 칼을 주었습니다. 칼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것을 써야 합니다. 말씀으로 행하고 말씀대로 가야 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삽니다. 말씀만 있으면 삽니다.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고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겨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자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점점 자신을 만들어 나가면 영광스럽게 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다 정복하게 만들고 땅을 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정복하니까 넓어지는 것 아닙니까? 기업을 크게 만들고 또 자기를 말씀대로 자라나게 만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니다.

그 다음에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라고 하였는데, 대적이 마지막에는 복종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자가 아닙니까? 아무리 대적이 많고 또 강하지만 그 대적이 완전히 복종하도록 만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대적이 강합니다. 아낙사람 등 아주 강한 대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키가 크고 장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앞에 갖다 대면 메뚜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대적을 다 정복하도록 만들어주십니다. 어떻게 나가면 정복이 되겠습니까? 말씀대로만 나가면 정복이 됩니다. 말씀대로만 나가면 되고, 말씀 양보하면 안 됩니다. 말씀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만 나가면 반드시 대적을 다 정복할 수 있습니다. 정복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복종을 하게 됩니다.

신명기 32:44-52 모세의 마지막 권고와 죽음 예고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마지막 권고와 죽음 예고
신명기 32:44-52

44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8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9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52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1. 이 말씀을 지키면 생명이 살고 장수함

본문 44절에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고 하였는데, 호세아는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본래의 이름은 호세아인데, 앞에 ‘여’자를 하나 붙여서 여호수아로 고쳐준 것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본문 45-46절에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모든 말씀을 마음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또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잘 가르치고, 또 나가서 백성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지켜서 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생명이 살고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7절에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절대로 허사가 아니고 진실한 말씀이고 실제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플 때에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힘이 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실제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 그대로 행하면 그들의 생명이 되고 또 그들의 날이 장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장구한다는 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잘 되어 나가고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만 하면 생명이 살고 실패가 없이 계속 장구히 잘 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2.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

본문 48-50절에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거기서 죽어 하늘나라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아바림 산이라는 것은 사해 바다 북동편에 위치한 산맥으로 느보 산은 그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높이는 802m입니다. 아바림 산에 느보 산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에 모세가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잘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해야 됩니다. 언제 어느 시간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실지 모르니까 늘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은 죄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감

본문 51절에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광야 생활에서 반석에서 물이 두 번 나왔
는데, 처음 번은 호렙 산 밑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냈습니다. 그리고 40년 후에 요단 강을 건너가기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물을 냈는데,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물을 낼 때 잘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팡이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셨는데 두 번 반석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하여 하나님은 뒤에 두고 자신들이 한다고 한 것입니다. 곧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민 20:8-12). 이 두 가지 죄를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앞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에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해도 오히려 부족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한다고 하는 사람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거
룩함을 나타내지 않는 죄가 됩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셔서 늘 감사한 것 뿐이고, 하나님의 일에 심부름하는 것뿐입니다. 그런 자세로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내가 한다고 하다가는 그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빼앗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한다’ 하면서 ‘나, 나’ 하고 돌아가다가, 둘째 번에는 ‘나, 예수’가 되어 ‘나’ 다음에 예수입니다. 그 다음 세 번째에는 ‘예수, 나’하고 예수님을 앞세우고 뒤에 자기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하셨다. 내가 했다’ 하고 따라가다가, 네 번째에 가서는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남아야 됩니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나 행한 것은 죄뿐인 줄로 알고, 다만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만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했다면 심부름한 것인데, 심부름도 변변히 못한 줄을 언제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 알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됩니다.

율법의 대표인 모세는 율법을 범하였기 때문에 가나안에 못 들어감

그런데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라고 한 번 했다고 하더라도,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한 것은 너무 섭섭하지 않습니까? 회개시켜서 들어가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우리’ 또는 ‘나’ 소리를 한 번 했어도 좀 들어가게 해주면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못 들어 가게 하셨겠습니까? 모세가 잘못하기는 하였으나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애굽에서부터 백성들을 끌고 나와서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였는데,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모세는 율법의 대표이고,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합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못들어 간 것은 율법으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죄를 사람 받고 천국에들어간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율법을 범하면 저주 받는 것뿐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표인데, 율법의 대표가 율법을 범하고 어떻게 가나안에 들어가겠습니까? 율법을 하나님께 받아서 전해 준 사람이 모세이고, 자기가 하나님께 받아 전해주고는 자기가 범했기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육신적으로는 율법에 걸려서 가나안에 못 들어갔지만,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영혼은 천당에 들어갔습니다. 율법으로 볼 때에는 육체는 가나안에 못 들어가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영혼이 천당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여호수아와 갈렙과 백성들은 율법을 지켜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작은 죄를 하나 지었어도 율법적으로는 멸망 받고
마땅히 죽을 자로 알아야 됩니다. 죄 지은 것을 용서해준다고 하셨으므로 죄를 약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적은 죄 하나라도 율법적으로는 마땅히 사형을 받고 가나안을 빼앗길 죄입니다. 또 실제로 우리가 율법을 범할 때 영적 가나안을 빼앗깁니다. 영적 복지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히 회개하고 바로 서면 영적 가나안에 참여할 수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짓는 죄는 마땅히 멸망 받아 죽을 죄인 줄을 알아야 되고, 또 심령의 가나안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철저히 회개하면, 다시 가나안을 회복할 수 있고 영적 생명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그러므로 죄 지은 다음에는 철저히 회개 하지 않으면 신령한 세계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 52절에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31:14-29 모세의 교훈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교훈
신명기 31:14-29

1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렀더라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18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23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24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26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29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1. 하나님께서 종을 세우심

본문 14-15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의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렀더라”고 하였습니다. 

후계자를 하나님께서 세워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데리고 회막으로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구름기둥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문 위에 머물러 섰습니다. 후계자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후계자 세우는 일을 힘을 썼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몇 가지를 알아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를 들어서 120세 되도
록 40년간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역을 40년간 시킨 것입니다.

모세는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잘 지킨 채 하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기 할 일을 다 끝마치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후서 4장 7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각자가 다 자기의 할 일이 있습니다. 달려갈 길, 사명이 있다
는 것입니다.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자기 사명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한 사명, 하나님의 구원운동에 대한 자기 사명을 다 하고 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것을 못 다 하고 가면 안 됩니다. 어제 창광교회 김극호 장로님이 연보를 가지고 왔는데 죽기 전에 기도원을 하나 잘 짓고 죽어야 되겠다고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죽기 전에 기도원을 하나 잘 짓고 죽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하여간 자기의 사명이 다 있는데 그 사명을 다 마치고 가야 됩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이길 것을 다 이기고 가야 됩니다. 이기지 못할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하셨습니까? 안 주십니다. 감당치 못할 시험은 안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시험, 아무리 여러가지 시험이 오고 핍박과 멸시와 발로 밟는 것과 죽이는 것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다 감당할 수 있습니다. 또 대적이 아무리 강하고 사자와 같은 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도 감당할 수 있는 능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믿음 잘 지키고 선한 싸움을 잘 싸워서 모든 것을 믿음으로 다 이겨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는 사람, 할 일을 다 끝마치고 가는 사람, 자기 사명을 다 하고 가는 사람, 믿음을 잘 지켜가지고 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세와 사도 바울과 사무엘과 같은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하나님 앞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지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를 세운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고 과거에 모세를 세우신 것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종을 귀히 여길 줄을 알아야 됩니다. 

어제 어떤 목사 부인이 와서 나한테 얘기하기를, 자기 동생이 교역자 부인인데 동생에게 남편을 남편이라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쓰시는 종인 줄로 알고 잘 받들라고 하였답니다. 그것 참 잘 말해준 것 같습니다. 교역자 부인이 남편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
의 쓰시는 종인 줄로 알고 언제나 받드는 위치에 서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교역자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종인 줄로 알고 잘 받들어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되고, 그 교역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이 잘 되어 나가도록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교역자 양성, 신학교를 세우고 신학교에서 참된 교역자를 길러내는 일이 중요합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 즉 예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2. 장차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재앙 받을 것을 알게 함

본문 16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장차 타락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죽은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이 되어서 우상을 섬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장차 이 백성이 타락될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될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또 하나님께서 어떻게 아셨습니까? 

본문 27절에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라고 하였는데 그들이 패역하고 목이 곧은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살았어도 백성들이 이렇게 모세를 거역했는데 모세가 죽은 다음에는 얼마나 거역하겠는가라고 말한 것입니다. 

또 본문 21절에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생각하는 바를 모세가 안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는 바가 타락이니 꼭 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바로 믿으려고 하지 않고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이 좋은 제도를 좋게 여기지 않고 조상들의 좋은 전통을 살려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나는 나중에 그렇게 않겠다고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시대 사람도 또, ‘나는 그대로 하지 않겠다.’라며 고쳐 놓는 것입니다. 또 그 다음 세대 사람들도 ‘그대로 하지 않겠다.’라며 차차차차 고친다는 것입니다. 고치는데 괜찮게 고치는 것도 물론 있겠지만 세속화시키는 일, 인본주의로 하는 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로 점점 고쳐나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점점 교회는 타락되어 내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이기 때문에 반드시 앞으로 타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초대 교회의 신앙에 비하면, 또 이전 세대보다는 많이 타락되었다고 보아야 됩니다. 또 다음 세대는
더 타락이 될 것입니다. 이 다음 세대가 또 문제입니다. 요새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커서 장년이 된 다음 세대가 문제입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믿음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 안 나오는 사람이 많고 성도의 가정에서도 교회에 안 나오는 자녀들이 많습니다. 또 나와도 믿음이 없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부모가 나오니까 나오는 것이고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도 물론 있
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 현대주의, 현실주의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가지고 성경대로만 하면 케케묵고 재미가 없다고 하면서 다른 것을 거기다가 섞으라고 하고 성경대로만 하는 목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설교할 때에 철학을 섞어야 되고 정치학을 섞어야 되고 정부를 공격해야 인기가 올라가고 해방신학을 해야 되고 이런 것을 해야 인기가 올라갑니다. 그것을 또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앞으로 너희가 분명히 타락해서 이방신을 섬기고 우상을 섬길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다는 것입니다. 이방신을 따라가는 것은 오늘날에는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기는 나오나 세상을 따라가면서 하나님을 점점 멀리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렇게 많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많이 따라가고 세상 우상, 돈 우상, 자기 우상을 많이 따라가고 하나님을 점점 떠나고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마음으로 또 영적으로는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이사야 29장 13절에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다 어기고 예수를 믿습니다. 4계명을 헌신짝과 같이 내버리고 돌아가고 부모 공경을 하지 않고 거짓말하고 속이고 양심을 쓰지 않고 자기 욕심으로만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예수를 믿는 시대가 된 증거인 것입니다. 자신을 다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지켰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가까이 하고 나가는가 하나님과 동행하는가 세상을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진노하심

얼굴을 숨기심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첫째는 진노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굴을 숨기셔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습니다. 이사야 59장 1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의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돌이키고 얼굴을 숨기셨기 때문에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이 멀어졌습니다. 

마귀에게 삼킴을 당함

그 결과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삼킴을 당하는 것입니다.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라고 하였는데 마음을 마귀가 빼앗아 가고 마음이 마귀에게 삼켜진바 되어 자기의 마음대로 못 합니다. 매사를 비뚤게 생각하고 바로 하지 못합
니다. 그래서 정당하게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쓴 것을 달다, 단 것을 쓰다 하여 매사를 비뚜로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20절에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라
고 하였는데 그것이 비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이사야 29장 9-10절에 “너희는 놀라고 놀라라 너희는 소경이 되고 소경이 되라 그들의 취함이 포도주로 인함이 아니며 그들의 비틀거림이 독주로 인함이 아니라 대저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눈은 선지자요 너희 머리를 덮으셨음이니 머리는 선견자라”고 하신바와 같게 된 것입니다. 술에 취한 것처럼 매사를 잘 생각하지 못하고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고 또 죽을 길을 산다고 하고 살 길을 죽는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또 광명은 흑암으로 알고 흑암은 광명으로 안다고 하였는데 전부 거꾸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상을 다 잠들게 하셨고 마귀에게 삼켜지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삼켜서 바로 생각을 못합니다. 의식화된 학생들이 바르게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대한민국은 독재이고 이북의 김일성은 민주주의라는 것입니다. 40년 독재를 했어도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고 대한민국은 무엇도 잘못하고 무엇도 잘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북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느냐고 그 학생에게 물어보았더니 그 학생이 한참 있다가 잘 모르겠다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대한민국은 전부 다 잘못 되었는데 이북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흰 것을 붉다, 붉은 것을 희다, 흑암을 광명이다, 광명을 흑암이다, 하도록 사상을 하나님께서 비뚜로 되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죽을 것을 산다, 죽는 행동을 하면서도 대한민국이 그렇게 해야 산다고 합니다. 또 사는 길로 가는 사람을 죽는 길로 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망하게 생긴 것입니다. 

망할 운동만 하면서도 그것이 사는 길이라고 하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틀렸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이 많아지면 이제 다 망하는 것입니다. 점점 그런 사람이 많아집니다. 바로 생각하는 사람이 그래도 많지만 이제 얼마 안 가면 비뚜로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고 끝장이 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입니다. 또 우리 개인적으로도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이 떨어지면 생각을 바로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또 원리원칙대로 판단을 해야 되겠는데 진리대로 하지 않고 자기중심, 욕심 중심, 이기주의로 모든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성경대로 판단을 못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사를 삐뚜로 생각해서, 매사 잘 못 나가 마귀에게 삼켜지게 되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벌입니다. 믿음이 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라고 하였는데 허다한 환난과 재앙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점점 하나님을 떠나 믿음이 타락된 백성들을 환난과 재앙으로 그들을 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환난이 임하는 것을 자기 죄 때문인 줄은 모르고 하나님이 자기 가운데 안 계시기 때문이라고 하며 또 원망하는데 왕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정치가들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원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지 않기 때문에 환난이 임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회개를 못 합니다. 벌써 마귀에게 얽혀 들었기 때문에 점점 더 악화되어 나가고 점점 더 하나님을 떠나고 점점 더 비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심

본문 18절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신 것입니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율법을 노래로 써서 가르치라 함

본문 19절에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타락된 다음에라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써서 노래로 그 자손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옛날에 배운 노래가 생각이 날 것이니 그 노래가 귀에 쟁쟁하게 못이 박히도록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본문 20-21절에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고 하였습니다. 노래를 가르쳐서 귀에 아예 못이 박히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고 또 하고 자꾸 가르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놓으면 나중에 타락된 다음에 옛날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이 날 거고, 옛날에 이런 노래를 불렀는데 참으로 그 노래가 옳다, 그 말씀을 어겼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회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만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김현봉 목사님의 가르침 세 가지
김현봉 목사님이 못이 박히도록 가르쳐 놓은 것이 있는데 
첫째 “양심을 똑바로 써라”, 
둘째 “삼가 조심하라”, 
셋째 “일심정력하라”입니다.
양심 똑바로 쓰고 매사에 삼가고 조심하고 일심정력 다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라는 아주 좋은 가르침입니다. 조심하지 않을 때에 마귀가 들어옵니다. 우리도 많이 배웠는데 이제 후대에게 양심 쓰는 것을 가르쳐야 됩니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노래가 되도록 가르쳐주어 나중에 재앙과 환난 받을 때 양심 쓰지 않아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날 것입니다. 마귀에게 걸려들어서 넘어간 다음에도 생각이 날 것입니다. ‘내가 왜 이렇게 벌을 받았을까 삼가 조심하지 않다가 마귀에게 걸려들었구나, 내가 참 잘못했구나.’ 그리하여, 일심정력을 기울이려고 힘을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노래로 써서 가르쳐주어 내가 이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하고 생각나게끔 하라는 것입니다. 사치하지 말고, 순종하길 못이 박히도록 배웠는데 말 안 듣고 방탕하다가 환난과 재앙을 만나면 하나님을 떠나고 믿음에서 떠날 때 옛날 들은 것이 생각이 납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고 사치하고 나가다가 내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에 못이 박힐 만큼 가르치고 노래가 되게끔 가르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년부 아이들도 성경만 가르쳐야 됩니다. 동화하지 말고 놀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릴 때 배운 것은 속에 들어가 있어 커서도 생각이 남

성경만 배운 어떤 아이가 집에 갔는데 안 믿는 아버지가 주일날 뭘 사왔더랍니다. 그래서 아이가 안 먹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래서 왜 안 먹느냐고 하니까 성경에 주일날 뭘 사먹으면 죄라고 했기 때문에 주일날 사와서 안 먹는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죄를 지었으므로 그것을 회개하고 교회에 나가자고 하더랍니다. 또 자기 외갓집에 데리고 갔는데 추도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 제물을 먹으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안 먹는다고 했답니다. 왜 안 먹느냐고 했더니 성경에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는다고 하더랍니다. 그 아이들이 특별히 가르쳐 준 것은 아닌데 자꾸 가르쳐주니까 배운 것이 속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속에 있는 것이 쑥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에 있는 것이 나오게 자꾸 가르쳐주어야 그 아이들이 커서 타락이 되도 이전에 배운 것이 생각이 납니다. 주일날 뭘 사면 안 된다고 하지 않
았는가 하고 양심에 가책이 됩니다. 그래서 예배당에 안 나오면서도 주일날 뭘 사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언젠가는 한 번 하나님의 매를 맞고 “아이쿠 그 때 내가 뭘 배운 것이 있지 않느냐”하고 다시 한 번 회개할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배부르고 살찌면 타락함

여기 어떻게 하면 타락이 된다고 했습니까? 본문 20절에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땅으로 인
도해서 좋은 환경을 주고 먹어서 배부르게 되면 백성들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다른 신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상합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환경을 주시고 먹어서 배부르게 해 주시면 감사해서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될 것이 아닙니까? 이전에는 먹을 것도 없고 생활이 곤란하고 집도 한 간 없이 박토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은 환경을 주시고 좋은 집도 주시고 먹어서 배부르게 해주신 것이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는데 불만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더 두텁다고 합니다. 땅보다 두텁기 때문에 무엇을 주면 점점 욕심이 더 커집니다. 또 좀 더 주면 욕심이 더 커져가지고 점점 더 모자라고 만족이 없습니다. 

이 세상은 그렇습니다. 이 땅 위에는 평안이 없고 근심걱정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 배가 불러서 그렇습니다. 배가 불러서 살이 찌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납니다. 세상으로 나가 다른 신, 세상의 신을 섬깁니다. 옛날에는 친구가 없었는데 배가 부르고 살이 찌면 오라는 사람
도 많고 갈 데도 많고 친구도 많아집니다. “주식형제는 천개유로되, 급난지붕은 일개무니라”(酒食 兄弟 千個有 急難之朋 一個無 ; 술마시고 밥 먹을때의 형제는 천사람이나 있더니만 위급할때는 벗이 하나도 없구나.)하고 어려울 때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죽어갈 때는 친구가 슬슬 다 달아납니다. 그러나 술을 먹고 다닐 때에는 친구가 천 사람이나 나온다는 것입니다. 사돈에 팔촌까지 다 옵니다. 옛날에 한번 만났던 사람,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향 사람, 같은 성씨, 별의별 사람이 다 찾아오는 것입니다. 또 오라고 해서 한번 가면 아주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래서 친구가 점점 많아지고 청첩장이 점점 많아지고 갈 데가 점점 많아져서 매일 가도 모자라게 됩니다. 그 바람에 그만 하나님의 말씀을 어깁니다. 또 하나님을 점점 떠납니다. 그것이 참 문제입니다. 

요새도 생각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6.25 사변 때에 큰 환난 가운데서 오늘 죽느냐 내일 죽느냐 하면서 피난 다닐 때는 있을 곳도 없고 집도 없고 의복도 없고 그저 가다가 아무 데나 누워 자고 아무것이나 하나 생기면 먹었습니다. 그 때 뭐 모자라는 것이 있었습니까? 불만이
있었습니까? 불만 없습니다. 그저 하루 살면 하루 감사했습니다. 또 아무 것이나 나가서 먹을 것을 벌어왔으면 감사했습니다. 피난민들이 부산에 많이 내려갔는데 피난민들을 부산 성경 학교 기숙사에 갖다 빽빽이 몰아넣었습니다. 그 때 내가 가보니까 가정 식구대로 몰아넣었는데 식구가 많아도 한 가정에 베니어 판 한 장이나 두어 장 크기만큼 조그마하게 내주었는데 막을 것이 없어 보따리로 막아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만치는 우리 집이다. 또 요만치는 너희 집이다.’ 하고 그 식구들이 빽빽하게 살을 대고 누우리만치 가득하게 해놓았습니다. 그렇게 기숙사에 많은 피난민들 여러 세대가 몰려와 있었습니다. 밥은 나가서 해 먹고 잘 때는 빽빽이 잤는데 그래도 그 때는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그때 진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사람들이 서울을 수복하고 집도 하나씩 장만하고 직장도 장만하고 뭘 하고 하니까 이제 배가 불러 가지고 그 때 신앙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도 안 나옵니다. 그 때는 새벽기도 안 나갔겠습니까? 다 나가는데 안 나가기는 어떻게 안 나갑니까? 나가서 간절히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남편도 기도하고 부인도 기도하고 아이도 기도하고 다 기도했습니다. 서울에 와서도 처음에는 기도 좀 했습니다. 헌데 조금 나아지니까 기도는 안 하고 예배당에 한 시간만 갔다 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먹어서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는 것입니다. 평안하면 타락합니다. 너무 안일주의에 빠지면 타락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속 자기를 쳐서 복종을 시키고 올라가려고 힘을 쓰고 계속 자기를 고난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고난에 넘겨주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가 없으면 만들어서 지고 계속 환난 가운데서 주님을 영접하려고 힘을 써야 됩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만들어서 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만듭니까?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의 뜻

이제는 모든 것이 넉넉하고 배가 부르고 먹을 것이 많고 가족이 잘해 주고 남편이 사랑해줍니다. 그리고는 ‘이제 뒤로 좀 자빠져도 되겠다’하며 침대도 좋은 침대 사다 놓고 덜덜 구르는 것입니다. 상아 침상에서 기지개를 켜면서 포도주를 먹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송아지를 잡아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믿음이 다 떨어졌습니다. 믿음이 다 떨어지니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다고 하였습니까? 아모스6장 3-7절에 “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먹고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자로다 그러므로 저희가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를 못 다 말했습니다. “상아 침상에 누우며 양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취하여 잡아먹으며 비파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 거리며”라고 하였는데 앰프 사다가 놓고 스피커는 두 개를 놓고, 오디오를 사다 놓아야 되고 그것을 틀어놓고 따라서 지절거리면서 그 노래를 하고 조금 있다가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시는데 국산은 맛이 없으니까 불란서 포도주를 마셔야 됩니다. 포도주를 수입하면 잘 팔릴 것 같습니다. 이런 종류의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나라야 망하든지 말든지 그것은 생각을 안 하고 그저 조금이라도 더 좋은 포도주를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담배는 양담배를 피우고 몸에는 귀한 기름을 바르는데 한 달에 화장품 값이 10만원 이상씩 든다고 합니다. 10만원이면 한 달 생활비가 되는데 한 달 생활비를 갖다가 몸에다가 바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욕하고는 우유를 바르고 오이를 바르고 계란을 바른답니다. 요새는 또 금가루를 바른다는데 그렇게 하면 번쩍번쩍합니까? 참 망할 때가 되긴 되었습니다. 금가루 바른 다음에 한 번 목욕하면 다 씻겨 지는데 며칠 가겠다고 금가루를 바릅니까? 그 값이 얼마이고 돈이 얼마입니까? 망할 때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암만 돈이 많아도 모자라는 것입니다. 한 달에 몇 백 만원을 주어도 그 사람에게는 모자랍니다. 금 한번만 발라도 돈이 얼마나 들어갑니까? 그러니까 이 세대가 부요할수록 점점 망하게 됩니다. 먹을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계란을 몸에 바릅니까? 또 우유가 없어서 못 먹는데 우유는 왜 바릅니까? 정신이 나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한쪽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고 우유나 계란 하나를 제대로 먹지 못해서 영양부족에 걸린 사람이 많은데 한쪽에서는 몸에 쩔쩔 바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아버지의 심정으로 보면 어떤 아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변변히 먹지를 못하고 비실비실하고 돌아가는데 다른 이들은 몸뚱이에다가 우유를 바르고, 계란을 얼굴에다 바르고 다니면서 안 줍니다. 그러니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발소에 가면 계란을 얼굴에 발라 준다고 합니다. 난 안 바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왜 안 바르냐고 합니다. 그래서 먹을 것도 없는데 바르긴 뭘 바르냐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가면 자기들끼리 이 손님은 계란 안 바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저희끼리 왜 안 바르냐고 물어보고 먹을 것도 없는데 뭘 바르냐고 대답해 줍니다. 한번 안 바른다고 했더니 그렇게 합니다. 이제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배가 부를수록 점점 타락이 됩니다.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않는 자로다”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을 당하는 것은 도무지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다가 당하는 환난이 요셉의 환난입니다. 그것이 십자가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요셉의 환난을 아예 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환
난을 만든 것입니다. 또 모세도 믿음을 지키다가 환난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었으면 환난을 안 당합니다. 공주의 아들이고 애굽의 재산이 다 제 것이지만 그래도 믿음을 지키느라고 다 집어치우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을 받는 데로 나간 것입니다. 그렇기에 안일주의에
빠지지 말고 부요할수록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더욱 기도 많이 하고 더욱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고 더욱 십자가를 지려고 힘을쓰고 발 벗고 나서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이 그것입니다. 

사경회에 참석하는 사람도 안 오는 사람보다는 십자가를 만든 것입니다. 여기 참예하신 분들은 십자가를 조금 만들었습니다. 또 새벽기도 하려고 힘쓴 사람은 그만큼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하려고 힘을 쓰는 것도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만드는
것 아닙니까? 봉사하느라고 땀을 흘리는 것입니다. 전도하느라고 힘쓰고 심방하느라고 힘쓰고 아이들을 가르치느라고 힘을 쓰는 것이 십자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 나아지면 또 전도도 안 하고 가르치지도 않겠다고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점점 벗어놓는 생활입니다. 그러니까 배가 불러서 이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살이 쪄서 하나님을 멸시하고 언약을 다 어기고 세상을 따라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가서는 이 노래가 생각이 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그걸로 하나님께 벌을 받는데 이때 전에 환난 중에 노래로 배웠던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서 회개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환난에 대해서 근심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서 잘 되게 해주었는데 십자가를 만들어 지라는 것입니다. 

5. 여호와께서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백성의 인도자로 세움

본문 22-23절에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가르쳤더라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하였는데 강하고 담대해서 가나안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고 들어가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6. 모세가 이스라엘이 장차 타락하여 재앙을 받을 것을 예고함

율법책을 언약궤 곁에 놓으라

본문 24-26절에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하였는데 언약궤 곁에다가 이 율법책을 언제나 보관하여 늘 거기에 가서 율법책을 볼 수 있게 하고 율법책을 베껴다가 가르칠 수 있게 하고 이 율법책을 중심해서 생활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바른 교훈을 가르치라

본문 27절에 “내가 너희의 패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날 내가 생존하여 너희와 함께 하여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살았을 때에 아이들을 잘 가르쳐 주어야 됩니다. 죽은 다음에도 그 부모가 가르친 말씀이 아이들에게 기억이 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가 죽은 다음에는 아이들이 누구의 책망도 받을 것이 없으므로 전에 자기의 아버지가 권면해 준 것, 자기의 어머니가 책망해 준 것이 생각이 납니다. 교역자도 교인들에게 바른 말씀을 계속 힘 있게 가르치되 기회만 있으면 가르쳐야 됩니다. 그래야 그 교역자가 죽은 다음에도 배운 말이 늘 생각이 난다는 것입니다. “야, 이전에 우리 목사님한테 이렇게 배웠으니까 이젠 이대로 하자!”하며 그 배운 말을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었지만 그 교훈은 그냥 남아서 그들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교훈을 어떻게 하든지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하여서 죽은 다음에도 마음에 남아있도록 하여야 됩니다. 또 부모들은 자기들이 죽은 다음에도 자녀들의 마음속에 일생 동안 바른 교훈이 남아있도록 잘 가르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늘 생각나게 하고 그 교훈을 순종하게 해서 복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바로 배운 것이 아이들에게 큰 유익이 됩니다. 

어떤 부모가 아마 안 믿은 것 같은데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네가 시집을 가면 남편을 하늘과 같이 받들어라.’ 그것을 늘 가르쳤답니다. 그런데 그 딸이 이제 시집을 갔고 부모는 세상을 다 떠났습니다. 시집을 갔는데 그 남편이 말할 수 없는 핍박을 했답니다. 술 먹고
와서는 못 살게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사는 것을 그만 둘까, 도망치고 살지 말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왔는데 늘 부모가 가르친 말이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형편없이 돌아가고 아주 멸시할 정도로 돌아가는데도 부모가 하늘과 같이 남편을 받들라고 했기 때문에 남편을
내내 하늘과 같이 받들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남편도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고 좋은 남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의 교훈이 그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을 막았고 그 남편도 건져내었고 그 가정이 좋은 가정이 되었고 자녀도 좋은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부모가 가르쳐 준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었습니까? 만일 그것을 안 가르쳐 주었더라면 다 결단이 났을 것입니다. 결단이 나도 벌써 다 깨뜨리고 망하고 그만 두었을 것입니다. 교훈이라는 것이 그와 같이 크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교훈, 교역자들의 교훈, 백성의 지도자들의 바른 교훈을 책에 써서 늘 곁에 두고 계속해서 이 말씀을 읽고 배우고 그 말씀을 표준으로 하여 살도록 노래로 가르쳐서 마음에 있게 하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면 이 다음 후대에 그 교훈이 내내 서나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합니다.

백성이 타락하여 재앙을 당할 것을 예언함

본문 28-29절에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유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리고 그들에게 천지로 증거를 삼으리라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좋은 지도자가 떠나면 타락이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좋은 지도자가 있을 때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치하고 싶었는데 사치를 못했고 인본주의로 조금 하고 싶
었는데 인본주의로 다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으니까 되었다 이제는 해보자 그래가지고는 속에 있던 것이 다 나와서 타락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도자의 인도를 받을 때에는 책망을 받을까봐 무서워서 못했는데 죽었으니까 책망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떠난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 손으로 하는 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하므로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고 한 것입니다. 

말세라고 한 것은 세상의 말세도 되지만 그 모세가 죽은 얼마 후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세상 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끝에도 점점 교회들이 타락이 되어서 마지막에는 말세에 큰 환난을 만나고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말세 교회는 분명히 타락이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7교회가 있는데 말세 교회가 꼭 그렇게 됩니다. 사랑이 식고 환난이 들어오니까 믿음을 지키기가 힘들고 발람이 나오고 이세벨이 나오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고 니골라 당이 나오고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이 뜨뜻미지근하고 이렇게 교회들이 말세에 가
서는 다 타락이 됩니다. 또 교회 안에서 새끼 양 같은 두 뿔 달린 짐승이 나와 가지고 이 세상 나라와 합하게 합니다. 말세 교회에서는 이 적기독 세력이 교회 밖에도 나오고 교회 안에서도 나옵니다. 교회 밖의 적기독 세력은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서부터 바다에서 나오는 짐
승이고, 교회 안에서 나오는 적기독 세력은 요한계시록 13장 11절에 새끼 양 같이 두 뿔 가진 짐승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나오는데, 이 세상 적기독 국가하고 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새 기독교 안에서 적기독 세력이 움직입니다. 기독교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해방신학, 민
중신학, 기독교 사회주의와 같은 것입니다. 기독교 사회주의가 사실은 적기독 세력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내용은 공산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다 타도하고 공산주의를 만들어놓자는 것입니다.

신명기 31:9-13 초막절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초막절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
신명기 31:9-13

9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10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 11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12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 13또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 거할 동안에 이 말씀을 알지 못하는 그들의 자녀로 듣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게 할지니라 

레위기 23:33-38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34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35첫날에는 성회가 있을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칠 일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 팔 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될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7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삼고 번제와 소제와 희생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여호와께 화제로 드릴지니 38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낙헌 예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1. 초막절의 의의

고난을 기억하고 구원에 감사함

본문 9-10절에,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매 칠 년 끝 해 곧 정기 면제년의 초막절에”라고 하였습니다. 

초막절은 해마다 칠월 십오일 날부터 한 주간 동안 지키는 절기로서 집에 있지 못하고 여러 나뭇가지들을 꺾어다가 예루살렘에 모여 지붕이나 성전 뜰, 수문 광장, 에브라임 광장에 초막을 짓고 거기서 한 주간 거하면서 하나님을 제사하며 섬기고 율법을 배우는 기간입니다. 

초막절을 지키라는 뜻은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신 것을 기억하여 기념하고 또 그 조상들이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나올 때에 광야 초막에 거하며 고난당하던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평안해지면 이 모든 과거의 고난과 하나님의 구원은혜를 잊고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게 될까봐 해마다 한번 씩 특별기간을 정해가지고 생각하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가운데서 건져주셨는가를 늘 생각해야 됩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특별히 일본 식민지로 종살이 하던 데에서 건져주신 것을 늘 감사해야 됩니다. 지금까지 한국이 해방이 안 되었더라면 그 당시 일본의 정책대로 우리가 한국에 살지 못하고 만주로 다 쫓겨 가고 이 한반도에는 일본인들이 살고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핍박 속에서 한국 사람들이 점점 쇠멸해 갈 뻔했는데 거기서 건져 주신 것 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양심을 써서 말하자면 미국의 공로가 큽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미군을 승리케 하셔서 우리가 다시 이 땅을 찾았잖습니까? 또 육이오 사변 때 공산군이 서울, 대구, 마산까지 점령해 내려 와 불과 며칠 후면 부산까지 다 점령당해 이
나라가 공산주의가 될 뻔 했을 그 급박한 시점에 미군이 상륙을 안 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이처럼 자유롭게 섬길 수 있습니까? 참으로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과거에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배가 고팠고 우리 신앙의 선배들, 조상들이 어떤 고난 속에서 이 신앙을 지켰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 종교 개혁자들은 생명을 내놓고 죽으면서 종교 개혁을 했고 한국의 신앙선조들은 일본 신사참배 때에 7, 8년 동안 감옥에 갇혀 고생
하면서, 순교를 무릅쓰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를 맞고 쫓겨나면서 신앙을 지켜 나온 것을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의 이 믿음이 공중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이스라엘백성도 집 한간 없이 40년 동안이나 초막생활하고 채소도 변변히 못 먹었고 만나만 내내 먹었으며 또 메추라기 한번 먹곤 고기도 변변히 못 먹었습니다. 이렇게 이런 저런 광야에서 고난을 당하면서 이 가나안 복지까지 온 걸 잊지 말라고 초막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과거고난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기도하면서 크신 능력으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고 사모함으로 더욱 능력 있게 이 믿음을 지켜가기 위함입니다.

율법을 듣고 지켜 행함

본문 11-12절에 “온 이스라엘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그 택하신 곳에 모일 때에 이 율법을 낭독하여 온 이스라엘로 듣게 할지니 곧 백성의 남녀와 유치와 네 성 안에 우거하는 타국인을 모으고 그들로 듣고 배우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에스라는 매일 낭독하고 듣게 하고 또 해석해주고 그 다음에 백성들은 듣고 배우고 그 말씀을 행할 힘을 얻었습니다. 

초막절은 남녀노소 유아까지 이스라엘 전 가족, 전 국민이 하나님의 택하신 곳, 예루살렘에 모여 말씀을 배우고 새김질함으로, 이스라엘 전체에게 말씀이 생명이 되는 기간, 영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능력을 받는 기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기간, 또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런 신령한 기간입니다.

또 칠일동안 매일 제물을 드리고 제사를 드리라 하였습니다. 느헤미야 8장 14-18절에도 율법책을 보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대로 초막절을 지켰다고 하였는데 그때 에스라는 첫 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무리가 칠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제 팔 일에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인 레위기에는 초막절에 번제, 소제, 희생, 전제를 드리라고 하였으며 이것은 다 소나 양과 같은 짐승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는 것으로 제물은 하늘 영광을 버리고 우리를 구원해 내기 위해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오실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영접하기를 힘쓰는 것,
오실 그리스도의 고난과 생명에 참여하는 거룩한 절기입니다.

2. 초막절 정신을 계승해 나가자

특별기도로 하나님과 가까이 만나자

초막에 있는 동안은 집에 있는 것보다 고생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칠월 십오일에 지켰던 똑같은 초막절로 지키지는 않지만 특별기도 기간, 특별히 하나님을 사모하는 기간을 가지는 것이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이 특별기도 기간은 첫째 하나님을 만나는 기간입니다. 일심전력하여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사모하는 기간이니까 하나님이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영적으로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 때보다 특별히 말씀과 기도에만 전념하는 기간을 정해서 천막을 치고 기도하고 성경 말씀을 배우는 기간에 말씀에서 생명을 받아 그 생명으로 살고, 말씀대로 실행할 능력을 받아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 년에 한번뿐 아니라 때때로 이런 초막절 지키는 특별 기간을 가지고 거기에 참여해서 이러한 신령한 은혜,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그리스도의 고난과 생명, 능력에 참여하는 기간으로 삼고 말씀으로 생명을 삼는 그런 일을 계속해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국인도 참여하라고 하였듯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다 데리고 같이 참여합시다.

휴가철이 되어 바다로 들로 놀러가는 사람이 많습니다. 놀러가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장막절부터 먼저 지키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생활을 먼저 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먼저 참예하고 오실 그리스도를 먼저 사모하고 먼저 성경을 배우는 데에 참여하고 다른 것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렇지 않고 육신적으로 평안한 것만 찾고 놀고 즐기는 것이 우선이 되면 하나님과는 점차 멀어져 종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내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초막절을 지키지않아도 되지만 초막절을 지키는 정신은 그대로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고난에 참여하는 신앙, 즉 말하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신앙, 안일주의와 평안한 자리를 떠나 현재의 평안한 자리에만 빠져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신 일, 또 앞서 간 성도들이 걸어간 그 고난의 길을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한 주간 동안만은 잠시 모든 일상에서 떠나 전심전력을 하나님께만 기울이는 것입니다. 초막절 정신으로 지킨다 하고선 모여 세상이야기나 하며 친구 만나 먹고 노는 세상 사교장처럼 만들지 말고 전심전력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귀를 기울여 자기 생명이 살고 하
나님을 전적으로 경외하는 천국생활을 경험하며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자기에게 와서 머무는 기간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자가 강해지고 생명과 영권이 있어 세상을 이기고 마귀를 이기고 죄를 이기는 능력 있는 새 사람이 되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자

말세에는 이 세상에 죄악이 관영한 때인데 우리가 특별히 기도하는 기간을 가지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부터 보면 말세의 현상을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세에는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로 기울어져 자기밖에 모르고 돈밖에 모르는 시대라 하였습니다. 이런 시대인데 우리는 초막절 정신의 믿음으로 돈보다 하나님의 말씀, 자기보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하나님 제일주의, 진리 제일주의로 돌아서야 됩니다. 진리 하나가 천하보다 귀합니다. 그 진리 하나를 받으려고 힘을 쓰는 것입니다.

또 부모를 거역한다고 하였는데 초막절처럼 특별기간을 통해 말씀을 바로 배운 자는 하나님께 대해서 바로 하고 사람에게 대해서 바로 하기를 배우므로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 한다고 하였는데, 참으로 초막절 지키는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영접하여 쾌락주의 대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늘 내세를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영접할 준비를
합니다.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대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썩어질 육체의 것이 아닌 영원히 남는 것을 구하는 자가 됩니다.
요즘 노아 시대와 같이 점점 음란방탕하고 먹고 마시는 먹자주의가 되다보니 날마다 늘어나는 것은 술집과 음식점이고 또 여름을 맞아 너도나도 보신탕을 찾으니 개 도둑이 많아져 우리 기도원 개도 몇 마리 잃어버렸습니다. 낮엔 물 좋은 개울마다 비싼 개고기로 안주삼아
술 먹고 놀고 또 밤엔 고급술집에 가서 술 먹고 하니 먹자주의고, 노아 시대와 같고 소돔 고모라와 같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보통 믿음으론 이 세대를 못 이깁니다. 또 노라리세상이 되어 여름에는 교인들이 줍니다. 안 믿는 식구에게 이끌리어 안
식일에 세상에 나가 노라리 하니 이것이 노아 때 물에 쓸려 심판받은 자들의 행태 아닙니까? 그러니 이 시대를 이기려면 초막절 지키는 믿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초막절 지키는 믿음은 특별 기도하는 믿음입니다. 특별 기도는 전심전력을 다 기울여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을 얻어서 그 힘으로 세상을 다 이기는 것입니다. 특별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안일주의에 빠져 뒤로 물러갈 것이 아니라 오로지 성경말씀을 배우며 고난을
조금이라도 체험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을 받으려고 힘을 쓰면, 광야에서 우리를 구원하신 만능의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므로 변하여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런 특별기도 기간을 때때로 가지시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있을 기도원 사경회도 특별 기도하는 기간입니다. 말세적 여러 가지 죄, 환난, 부정부패, 마귀의 역사를 다 이기고 완전한 승리의 신앙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도록 전심으로 기도하여 더욱 참된 신앙으로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생명의 길을 걸으며 능력으로 이 세상을 다 이겨나가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신명기 32:1-52 모세의 마지막 노래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모세의 마지막 노래
신명기 32:1-52

1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 2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 비로다 3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4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 5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6우매 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 7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 8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 9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 11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12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15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19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20여호와께서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21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22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23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24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 25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먹는 아이와 백발노인까지리로다 26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 27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 28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 29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 30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열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31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 32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 33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 34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 35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 36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 37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38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 39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40이제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41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42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 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하시도다 43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 44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 45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46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 47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48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49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50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51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 52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을 네가 바라보기는 하려니와 그리로 들어가지는 못하리라 하시니라

1. 모세의 마지막 노래

이 말씀은 생명을 줌

이것은 모세의 마지막 노래인데 노래로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에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땅은 내 입의 말을 들을지어다”라고 하였는데 천지를 증거로 삼아서 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이 말이 없어지지 않고 이 말씀
대로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본문 2절에 “나의 교훈은 내리는 비요 나의 말은 맺히는 이슬이요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요 채소 위에 단비로다”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단비와 같고 맺히는 이슬과 같고 연한 풀 위에 가는 비와 같고 채소 위에 단비와 같아서 이 하나님의 말
씀을 받는 사람은 그 심령이 소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비가 오고 이슬이 오고 단비가 오고 가는 비가 오는 것은 모든 산천소목을 소생케 하는 것입니다. 여기 비라고 했고 또 연한 풀 위에 가는 비라고 했고 또 단비라고 하고 맺히는 이슬이라고 한 것은 상한 심령도 더 상하지 않게 부드럽게 길러내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또 연한 풀과 같은 약한 심령도 하나님께서 잘 길러나가도록 가는 비와 같이 그들에게 위로해 주시고 연약하여 쓰러진 자에게도 위로해 주시고 권고해 주시고 생명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한 심령을 가지고 나오고 연약하여 쓰러진 심령과 메마른 심령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단비와 가는 비와 이슬과 같이 그 사람의 심령을 소생케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환난을 당하여도, 연약하여 쓰러지고 상처가 나고 메마르고 다 죽을 지경을 당했어도, 하나님 앞에 나와 말씀을 받으면 이 말씀이 그 연약하고 쓰러진 심령을 다 일으켜 주시고 소생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반석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께 위엄을 돌리라

본문 3절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위엄을 우리 하나님께 돌릴지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 위엄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본문 4절에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반석이시니” 하나님께서는 반석과 같이 견고하게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공덕이 완전하고”라고 한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손해가 되는 것은 하나도 주지 아니하시고 전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것만 주셨습니다. 감당치 못할 것은 주시지 아니하시고 전부 감당할 것만 주셨습니다. 또 복된 것만 주셨습니다. 공덕이 완전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완전한 은혜, 완전한 복을 주신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를 연단하고 깨달아 바로 세우시려고 주신 줄로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공평하다는 것입니다. 징계도 공평합니다. 왜 공평합니까? 내가 징계받게 한 것이면 징계를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회개하고 바로 설 것이 아닙니까? 낮아지게 했으니까
내가 낮아져야 됩니다. 공평하게 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실패하게 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실패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공평한 것입니다. 실패하지 않았으면 교만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공평하십니다. 또 진실무망하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는 참되시고 헛된 것이 하나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깨달으라고 함

본문 5-6절에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로다 우매 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하나
님께서 풍성하게 해 주셨지만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자녀의 자격이 없고 흠이 있는 사곡한 종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런 종류입니다.

본문 6절에 “우매 무지한 백성아”라고 하였는데 이것도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켜서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우매 무지하다는 것입니다. 우매는 어리석은 것이고 무지라는 것은 알지 못한다는 것인데 어리석고 알지 못하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너희가 이렇게 하나님께 보답하는 것이 옳으냐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하고 은혜를 악으로 갚는 너희가 옳으냐 이 우매 무지한 백성아’라고 한 것입니다.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에 내주시고 길러주신 아버지이신데 어찌해서 아버지께 이렇게 보답하느냐는 말입니다.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라고 하였는데 너를 지으시고 오늘날까지 세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하나님께 이렇게 대접하느냐고 하는 것입니다.

1) 구원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 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옛날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너를 옛날에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네 뿌리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뿌리가 돌감람나무 아닙니까? 또 버림 받았던 자들이 아닙니까?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종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안 내보내주셨으면 지금까지 종살이 하다가 망했을 것입니다. 한국 백성은 일본의 종살이 하다가 망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다 만주까지 쫓겨가고 망했을 것입니다. 

옛날을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근본 뿌리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종살이하던 데에서 건져주었는데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지 못하고 거지가 돈을 모았다고 해서 동록을 안 주고 거지 때의 생각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우매 무지한 백성아 네 어렸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에 어떻게 자라났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어떻게 독립이 되었습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독립을 안 시켜 주셨으면 지금도 일본의 속국이고 땅도 다 빼앗기고 우리는 쫓겨 갔을 것입니다.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전했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오끼나와의 경우는 오끼나와 독립국이었었는데 일본이 패전했어도 독립을 안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일본이 독립을 안시켜주면 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북해도도 독립국이었었는데 패전한 일본이 독립을 안 시켜주니까 아직도 일본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 한국도 일본이 독립을 안 시켜주었으면 속해 있지 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한반도를 독립국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말입니다. 나라가 없어서 일본 말만 하고 손기정이 올림픽에 가서도 가슴에 일본 국기를 달고 뛰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얼마나 억울한가 말입니다. 한국을 독립시켜주고 올림픽까지 한국의 이름으로 하게 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데 왜 하나님을 배반합니까? 

둘째는 미국이 독립을 시켜 주었습니다. 미국이 독립을 안 시켜주면 한국이 독립을 못 합니다. 독립한 것이 한국 사람의 힘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도와주어서 한 것입니다. 물론 삼팔선을 갈라서 이남만 독립이 됐지만 미국이 아니면 이남도 독립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반미운동하고 삼팔선을 가른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미국을 죄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배은망덕하는 사람들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해 주셨고 그 다음에 미국 사람들이 한국을 독립시켜 주었는데 무엇 때문에 미국을 반대하느냐 말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만약에 한국을 독립시켜 주지 않았다면 일본의 속국이 되었고 일본의 종살이를 하여 한국이라는 이름도 없고 태극기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태극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해방될 때까지 몰랐었습니다. 해방된 다음에 비로소 태극기가 저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해방이 안 되었으면 태극기도 모르고 애국가도 모르고 한국말은 다 없어지고 일본말만 썼을 것입니다. 그러면 한국은 다 없어지고 말 뻔했습니다. 성씨도 다 바꿨는데 ‘이’가는 ‘소노모찌’로 바꾸고 ‘김’가는 ‘가네다’로 바꿨습니다. 성도 일본 사람의 성, 말도 일본말을 쓰고 전부 일본 사람에게 빼앗겼을 뻔했습니다. 또 땅도 다 빼앗겨서 만주로 쫓겨가고 일본 사람들이 다 와서 우리나라에서 살 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독립시켜 주셨는데 왜 배은망덕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려주셨지 우리의 힘으로 독립했는가 말입니다. 이전 것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왜 이전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요새 조금 배가 부르다고 해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미국을 배반하고 나가는가 말입니다. 

우리 한국 백성이 이전에 어떤 처지에 있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있었는지 압니까? 형편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어른들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가서 그들에게 물어보면 다 가르쳐줄 것인데 왜 벌써 잊어버렸느냐는 것입니다.
종살이 하던 일이 어제 같고 6.25 사변 때에 다 망했던 것이 어제 같은데 그것을 벌써 다 잊어버리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이렇게 배은망덕하느냐는 것입니다.

2) 땅을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 8절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 때,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대로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도다”라고 하였는데 땅을 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자가 열국의 기업을 주실때”라고 하는 말은 땅을 나눠주실 때에 라는 말입니다. “인종을 분정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인종에게 땅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흑인종에게는 아프리카 땅을 주시고 황인종에게는 아시아 땅을 주셨고 백인종에게는 유럽과 아메리카 땅을 주셨습니다. 아메리카 땅은 사실은 황인종에게 처음에 주셨습니다. 몽고 사람들인 인디안들이 아메리카 남미 땅까지 가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님을 안 섬기고 우상만 섬겼는데 연기가 충천하도록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백인종에게 다가 황인종의 땅을 빼앗아다가 내어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본래 아람 사람, 메소포다미아에 있던 생명이 없던 자들인데 그 땅을 기업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분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데 하나님
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합니까?

3) 하나님의 기업이요 분깃 삼아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 9절에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택한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고 하나님의 기업은 자기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분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을 기업으로 삼으시고 이들을 자기 분깃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업체요 하나님의기업이요 하나님의 분깃이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기업체에 마음이 다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기업체에 눈이 늘 가있고 손이 늘 갑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은 당신의 기업체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 와있고 늘 여기서 눈이 떠나지 아니하고 늘 하나님의 권고가 여기서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체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잘되면 하나님께서는 성공입니다. 누구나 자기 기업이 잘 되면 성공이고 자기 기업이 실패하면 자기가 실
패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기업이고 하나님의 분깃인데 이것이 잘 되어야 하나님께서 잘 되시고 이것이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실패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눈이 늘 여기에 와있고 손이 늘 여기에 와있고 마음이 늘 여기에 와있고 하나님께서 늘
여기에 오셔서 즉 기업체에 오셔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같은 우매무지한 자들을 당신의 기업체와 당신의 분깃으로 삼으시고 항상 하나님의 눈이 여기에 와있고 손이 떠나지 아니하고 권고가 떠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4) 황무지에서 건져내시고 동행하며 지켜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 10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셨도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애굽에서 나올 때에 하나님께서 광야 황무지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신 것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모리 족속인데 황무지와 같은 소수 민족인 아모리 족속 가운데서 아브라함을 택해서 인도해주셨고 또 광야 황무지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황무지에서 건져내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황무지에 내어버린 자들인데 황무지에 내어버린 자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서 당신의 아들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버림당했던 자들인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길러서 보호해주시고 또 호위하여 자기 눈동자와 같이 우리를 잘 지켜서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5) 독수리가 새끼를 기르듯 길러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11-12절에는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라고 하였는데 독수리가 그 새끼를 보금자리에서 잘 기르는 것처럼 길러주셨다고 했습니다. 독수리가 새끼를 발로 집어가지고 공중에다 내려뜨리면 새끼들이 죽을 까봐 너풀너풀하고 자꾸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독수리가 빨리 아래로 내려가서 날개에다 떨어지는 새끼를 받아준다고 합니다. 그러면 자기 어머니 날개를 타고 척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높이 올라가서 뚝 떨어뜨리면 이놈이 죽겠다고 너풀너풀 하고 떨어지면 또 쑥 내려와서 아래에서 또 받아주고 해서 독수리를 연단을 시킨다고 합니다. 잘 날아가도록 연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독수리가 새끼 연단을 시킬 때에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높이 올라갔다가 떨어뜨려 놓고 또 죽겠다고 나풀나풀하는 것을 내려가서 받아가지고 오고 그렇게 새끼를 길러준다는 것입니다. 나풀나풀하고 내려갈 때 새끼가 좋겠습니까? “야, 이제 죽는다 죽는다”하고 일생에 처음으로 공중에서 내려가는데 어찔어찔하고 당장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을 것입니다. “이제 죽었다 죽었다”하고 나풀나풀하며 내려가는데 죽으려고 하면 어미 독수리가 싹 내려와 받아서 날개에 업어서 또 올라가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연단시키십니다. 이렇게 “이젠 네가 한 번 해봐라”하고 높이 올려다가 떨어뜨려 놓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죽겠다고 난리를 칩니다. “날개가 짧
아서 못 납니다. 내려갑니다. 떨어져서 죽습니다. 죽습니다.”라고 할 때에 어미 독수리가 싹 내려와서 받아줍니다. 받아서 보금자리로 가져가면 좋겠는데 또 어디로 갑니까? 또 올라가서 또 떨어뜨립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쉴 날이 없습니다. 시험 하나가 지나가서 됐다 하면 또 떨어뜨렸다가 또 시험이 지나가서 됐다 하면 또 떨어뜨리니까 그 바람에 날개에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죽지 않으려고 날개를 너풀거리게 되어 있고 너풀거리니까 힘이 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험이 없는 것이 좋습니까? 시험이 있는 것이 좋습니까? 있는 것이 좋습니다. 떨어뜨린 다음에 보금자리에 가만히 한참 두었다가 내 놓으면 날지 못해서 다른 짐승이 와서 잡아 먹습니다. 날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독수리가 날지 못하면 기어다니는 독수리인데 기어 다니는 독수리가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 가지 시험을 많이 당하고 연단을 많이 시켜야만 그것이 쓸만한 빠른 독수리가 되어 ‘휙휙’하고 날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어미가 그렇게 연단을 시켜 놓은 것입니다. 빠른 독수리가 좋습니까? 천천히 날아가는 독수리가 좋습니까? 빠른 독수리가 쥐라도 잡아먹지 천천히 다니면 쥐는 다 달아나고 언제 잡아먹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올렸다가는 떨어뜨리고 해서 우리를 자꾸 연단 시키시는 것입니다. “오늘은 죽습니다. 오늘은 죽습니다. 내려갑니다. 내려갑니다.” 할 때에 하나님께서 또 받아 올리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연단이 많이 되어야 쓸만한 독수리, 빠른 독수리가 됩니다. 그렇게 연단을 많이 받은 독수리는 ‘휙휙휙’하고 날아갑니다. 그것이 누구의 덕택입니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그런 기능을 주셨고 둘째는 자기 어미 독수리의 덕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여러 가지 연단을 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됩니다. 한 번 내려 떨어뜨려야 됩니다. 교역자들도 그저 평안하게 한 교회만 하다가 죽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데에 떨어뜨려 놓으면 죽겠다고 날고뛰어야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좀 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또 다른 데에다 또 개척교회 돌잔등에다 떨어뜨려 놓아야 거기서도 나풀나풀 하다가 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척교회 몇 개를 해야 교역자 구실을 합니다. 여러 개 해야 합니다. 

처음에 가면 나풀나풀하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또 조금 올려서 떨어뜨리고 해야 조금 지나면 점점 교역자가 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교인들도 그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처음으로 조사가 교역자로 왔으면 부족한 것이 많고 연단 못 받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려 놓으면 너풀너풀하고 차차 되어 나가겠거니 하고 그 때를 기다리면서 기도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점점 되어 나갑니다. 독수리가 한번에 다 됩니까? 여러 번 올라갔다가 떨어지고 떨어져야 점점 연단이 되어서 그 다음에는 괜찮은 독수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까? 교인들이 다 협력을 해서 그런 좋은 독수리를 만들어야지 나풀나풀하다고 “이 나풀나풀한 것이 뭘 하러 왔냐? 가라 야, 보기도 싫다. 이전에 왔던 독수리는 휙휙하고 돌아다녔는데 어디 이런 독수리가 다 왔느냐”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 독수리도 조금만 있으면 휙휙 날아다닙니다. 교역자 길러내는 교회가 좋은 교회지 남이 다 길러준 독수리가 휙휙 날아다니면 뭐가 좋습니까? 그러니까 교역자를 길러내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므로 교역자를 잘 길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또 젊은 독수리들은 떨어뜨리면 좋아해야 합니다. 오늘은 또 죽을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 죽이기야 하시겠느냐 이제 조금 있으면 날아오를 것이다.’하면서 달게 참아야 합니다. 몇 번 해 보지 않았습니까? 거의 다 죽게 되면 어미 독수리가 날아오니까 ‘반드시 구원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구원해 주십니다. 그렇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6)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해 주신 은혜를 기억하라

본문 13절에는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라고 하였는데 “높은 곳”은 가나안 땅을 인도하신 것을, “밭의 소산”은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게 하신 것을, “반석에서 꿀을,”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에 꿀이 많은 것을 가리키고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라는 것은 꿀과 기름을 먹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14절에는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의 젖과 기름”은 목축이 잘 되어서 우유를 많이 먹게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좋
은 것은 다 가져다 먹게 하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꿀이 집에 떨어지지 않게 하고 포도즙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또 소고기나 양고기가 떨어지지 않게 하고 기름과 젖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밭의 소산과 모든 곡식이 떨어지지 않게 이렇게 풍성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렇게 해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전에 광야에 내다버렸던 자들을 하나님께서 건지셔서 이만큼 하게 해주셨는데 얼마나 감사합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을 건져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개무량해서 하나님만 자꾸 위해야 되겠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심

본문 15절에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해주었는데 네가 살찌고 부유해지고 윤택해지니까 하나님을 발로 차 내버리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떠나서 경홀이 여기고 세상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자들, 광야에다 내버렸던 자들, 아모리 사람에게 내버린 자들을 건져서 하나님께서 독수리가 새끼를 연단시키는 것처럼 해주시고 모든 것을 풍성하게 잘 먹게 하고 잘 길러주셨는데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이 무엇인가 말입니까? 이것이 얼마나 배은망덕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는가 말입니다. 배가 부를수록 더 잘 섬겨야 되겠는데 배가 부르고 윤택해질수록 더 하나님을 배반하고 더 세상으로 자꾸 기어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습니까? 여기에 “여수룬”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은 “사랑받는 자, 옳은 자”라는 뜻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는가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자가 어찌해서 하나님을 발로 차 내버리고 나가느냐 그 말입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겠느냐 말입니다.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떠나고 이런 악한 일을 한 것입니다.

본문 16절에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라고 하였는데 다른 신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고 가증한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신이라는 것은 세상(신)을 가리킵니다. 세상을 우상화한 것입니다. 

본문 17절에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새 신이라는 것은 새로 일어난 문명, 문화를 말합니다. 세상이 신이고 세상이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새로 일어난 문화와 문명, 세상에 새로 일어난 유행, 새로 나온 음악, 새로 나온 풍조, 새로 나온 과학문명과 같은 것들을 우상화 해가지고 그것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새로 나왔다고 하면 그것에 눈이 번쩍하여 새 것으로만 취하려는 것입니다.

본문18절에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라고 하였는데 우상만 섬기면서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을 잊었다고 하였습니다. 세상 따라가고 새로운 과학 문명을 따라가고 지식을 따라가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범죄하면 재앙과 외국의 침략을 받게 됨

1) 이방 사람을 들어 이스라엘 백성을 시기나게 하고 분노하게 만드심

본문 19-21절에 “여호와께서 보시고 미워하셨으니 그 자녀가 그를 격노케 한 연고로다 여호와께서 말씀에 내가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하고 그들의 종말의 어떠함을 보리니 그들은 심히 패역한 종류요 무신한 자녀임이로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로 나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이 되지 아니한 자로 그들의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얼굴을 숨겨서 그
들에게 안 보여주시고 기도도 안 들어주십니다. 이제 종말에 하나님께서 무서운 심판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자를 섬기고 세상을 따라가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변변치 않은 백성을 들어서 너희를 시기나게 하고 질투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너희보다 위에 올라가서 잘 되게 만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하나님께서 내리누르신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이가 어린아이인데 오라고 해도 안 오고 자꾸 달아나니까 남의 아이를 업어줍니다. 남의 아이 업어주면 어떻게 됩니까? 달아났던 아이가 시기해서 달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말을 안 듣고 나를 배반하고 자꾸 달아나면 나는 남의 아이를 데려다가 사랑한다. 하면서 업어주고 우유를 주고 과자를 주고 의복을 입혀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기나게 만들어서 돌아오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도망간 사람을 누가 해 줍니까? 네가 배반하고 나가면 요새 형편없는 자를 데려다가 네 위에 올라가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2) 재앙이 임하게 됨 본문

22-24절에 “내 분노의 불이 일어나서 음부 깊은 곳까지 사르며 땅의 그 소산을 삼키며 산들의 터도 붙게 하는도다 내가 재앙을 그들의 위에 쌓으며 나의 살을 다하여 그들을 쏘리로다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내가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을 그들에게 보내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말할 수 없이 받고도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면 네가 무시하던, 종살이 하던 사람들로 하여금 너보다 위에 올라가서 너를 압박하게 만들고 그 다음에는 심판의 불을 보내서 이제는 소산을 삼키고 재앙이 네 위에 쌓이게 만들고 심판의 화살을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가는 사람에게 쏜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주리므로 파리하며 불 같은 더위와 독한 파멸에게 삼키울 것이라” 불 같은 더위, 독한 파멸, 들짐승의 이와 티끌에 기는 것의 독에게 다 삼키워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3) 전쟁을 일으켜 망하게 하심

본문 25-26절에 “밖으로는 칼에, 방안에서는 놀람에 멸망하리니 청년 남자와 처녀와 젖먹는 아이와 백발 노인까지리로다 내가 그들을 흩어서 인간에서 그 기억이 끊어지게 하리라 하였다마는”라고 하였는데 이제 전쟁을 일으키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전쟁을 일으키시면 백발 노인, 젖먹는 아이, 청년 남녀, 방 안에 있는 사람 할 것이 없이 다 칼과 놀람으로 비참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전쟁이 안 날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나게 하시면 납니다. 요새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무기를 축소하면서 앞으로 전쟁을 안 할 것 같이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기회만 되면 그 사람도 전쟁을 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나와서 그 사람이 앞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세계가 다 망할 수 있습니다. “원자탄, 핵무기 다 축소하자. 군축하자.” 라고 주장하지만 소련에서 다 감추어 놓고 있다가 한 번만 스위치 누르면 세계가 다 망하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미국 하나만 멸망시키면 전 세계가 다 공산주의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제일 원수입니다. 또 사실 미국 때문에 전 세계의 자유 진영이 유지가 되지 미국이 없으면 어떻게 자유 진영이 유지가 되겠습니까? 소련의 제일 목표는 미국입니다. 미국에다 미사일을 겨루고 있고 쿠바에다 미사일을 많이 갖다 놓고 스위치 한 번만 눌러서 미국을 다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면 전 세계의 자유주의 진영이 다 휩쓸려 넘어가는 것입니다. 전쟁을 안 할 것 같아도 부패한 인간들이 어떻게 전쟁을 안 하겠습니까? 그 사람들이 다 이기주의들입니다. 

국가는 짐승이라고 했는데 짐승이 다 잡아먹게 되어있지 어떻게 안 잡아먹겠습니까? 성경에 국가는 짐승이라고 했습니다. 믿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밖에 믿을 분이 없습니다. “전쟁 안 한다. 평화조약이다. 군축이다.”라고 암만 해도 짐승이기 때문에 기회만 있으면 서로 잡아먹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기독교에 죄악이 들어오고 백성 가운데 죄가 들어오면 전쟁을 시키십니다. 악한 원수를 보내십니다. 원수가 그냥 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시면 전쟁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악이 들이 차면 하나님께서 죽이신다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죄악이 들이 차면 하나님께서 죽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점점 교회에 죄악이 들이 차고 이 사회에 죄악이 들이 차는데 이것이 말세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죽이시게 되어 있습니다. 이제 심판이 멀지 않았습니다. 

대적들의 오해를 염려하심

본문 27절에 “대적을 격동할까 염려라 원수가 오해하고 말하기를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 염려라 하시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이 범죄할 때에 대적을 들어서 하나님의 백성을 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대적은 높아지고
하나님의 백성은 대적의 발 아래에 들어갑니다. 그 때에 한 가지 염려할 것이 있는데 원수들이 오해하고 말하기를 “우리 수단이 높음이요 여호와의 행함이 아니라 할까”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느라고 대적을 몽둥이로 썼는데 대적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몽둥이인 줄은 알지 못하고 자기들이 잘하고 강하고 수단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을 이겼다고 오해할까봐 염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대적들은 무지하고 보잘것 없음

본문 28절에 “그들은 모략이 없는 국민이라 그 중에 지식이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원수들은 모략도 없고 지식도 없는 백성들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29절에 “그들이 지혜가 있어서 이것을 깨닫고 자기의 종말을 생각하였으면”라고 하였는데 대적들이 자기가 하나님의 몽둥이인 줄을 깨닫고 하나님의 백성을 학대하는 그 죄값으로 앞으로 자기네 종말에 자기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을 깨달았다면 좋을 뻔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기들이 지혜가 있고 수단이 좋고 강하고 잘났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치고 신약 시대에는 교회를 치는 줄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본문 30절에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라고 하였는데 그들의 반석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반석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원수들에게 파시
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원수에게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적이 와가지고 두 사람이 만 명을 멸망시키고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아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미약해졌습니다. 대적 한 사람이 들어오니까 천 명이 도망을 쳤고 대적 두 사람이 들어
오니까 만 명이 다 그 앞에서 도망을 치고 그만 사분오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본래 약한 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강하게 만들어 놓으셨고 부요하게 만들어 놓으셨고 풍성하게 만들어 놓으셨고 살찌게 만들어 놓으셨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과거에 다 주셨는데 그 윤택하고 살찌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을 좇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세상을 좇아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그들을 징계하니까 그들의 정신이 산란해지고 생각이 삐뚤어졌습니다. 그래서 바로 생각하지 못하고 삐뚤게 생각하고 곁길로 나가고 많은 물질로 방탕하고 사치향락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서 쓰고 건실하게 자기의 믿음을 지키라고 많이 주셨는데 이것을 가지고 방탕한 것입니다. 상아 침대는 요새로 말하면 몇 천 만원, 몇 백 만원짜리입니다. 거기서 기지개를 켜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먹고 포도주를 마시고 악기를 가지고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고 몸에는 기름을 바르고 환난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방탕한 가운데로 기울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세상이 첫째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마음에 들어오고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으로 나가고 악기로 헛된 노래만 지절거리고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에게 주신 벌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생명으로 삼아야 복을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조금 주시니까 그만 배가 부르고 살이 쪄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세상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진노하
십니다. 기도를 안 들어주시고 얼굴을 돌이키고 징계를 내리워서 정신을 산란하게 하고 생각을 삐뚤게 나가게 만들어서 바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고 흑암을 광명으로 삼고 광명을 흑암으로 삼고 죽을 것을 산다고 하고 살 것을 죽는다고 하면서 모든 사람의 정신이 삐뚤어집니다. 그렇게 정신이 다 삐뚤어져 가지고 제 각각 돌아가니까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우리 자유주의 국가에다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풍성하고 강하고 모든 것을 넉넉하게 주셨는데 이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일치단결해서 잘 지켜나갈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독버섯이 많이 나옵니다. 반전주의주의자들, 반핵주의자들, 평화주의자들이라고 하면서 전쟁을 반대하는 자들, 무기 만드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 반정부운동 하는 자들, 히피족과 같이 방탕하는 자들이 자유주의 진영에 많이 나옵니다. 미국에도 많고 한국에도 이것이 좀 들어왔습니다. 기독교 안에 이것이 들어왔는데 여성 단체들 가운데에서 전쟁을 반대하는 단체가 생겼습니다. 핵무기 반대, 모든 무기 생산하는 것 반대하면서 전쟁은 절대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전쟁은 절대 그만 두고 전쟁 무기는 아예 다 없애고 전쟁 준비도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저 평안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원수가 쳐들어오면 항복하고 관두는 것입니다. 원수한테 항복하면 결과가 월남전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월남이 공산화될 때에 500만이 죽었는데 반정부 데모하는 사람들을 먼저 다 잡아다가 죽였답니다. 반정부 데모하면서 전쟁 반대하는 사람들을 왜 먼저 잡아 죽
이느냐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너희들은 우리에게 와서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다. 월남 정부 반대하는 것을 보니까 우리도 반대할 것 같아 너희부터 죽여야 된다”라고 하더랍니다. 가만히 두겠습니까? 월남 정부 반대하던 사람이 공산정권 반대 안 하겠습니까?
해방 이후에 남로당이라는 공산당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이북으로 다 넘어갔습니다. 박헌영씨를 추종하며 여러 사람이 다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공산주의자들이 이북에 갔는데 같은 공산주의자들인데도 이북에서 얼마 있다가 넘어간 공산주의자들을 다 잡아죽였습니다. 박헌영, 이한구 여러 사람을 다 잡아죽였습니다. 왜 잡아죽였습니까?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디 가나 맞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 잡아죽이고 관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해 주셨을 때에 감사하고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 나라를 잘 받들어 나가면 하나님께서 장구하게 해 주실 텐데 그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믿음이 떠나니까 별의 별 것들이 다 생기고 반대하고 서로 맞지 않아 몇 사람 모이면 서로
충돌만 되고 반대만 생기고 무엇을 하자고 하면 안 하겠다고 하고 사분오열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가 한 사람이 쳐들어오면 천 사람이 도망치고 두 사람이 쳐들어오면 만 사람이 도망치게 되어 있습니다. 꽝 소리만 나면 다 도망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무슨 힘이 있습니
까? 밤낮 술이나 먹고 방탕하고 음악이나 틀어놓고 노라리하고 놀기나 좋아하고 방탕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무슨 힘이 있겠냐는 것입니다. 총소리 한 번만 나면 다 달아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우상이고 세상이 우상인데 왜 생명을 내놓고 하겠습니까? 바벨론이 세계 강국이요 세계를 지배한 나라지만 그러한 바벨론이 메대 바사가 쳐들어올 때에 다 썩어졌기 때문에 쉽게 무너진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부패해지면 원수가 쳐들어 올 때 한 명이 들어오면 천 명, 두 명이 들어오면 만 명이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 놓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망하게 만들어 놓으니까 원수가 쳐들어오는 것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망하게 만들어 놓지 아니하면 원수가 쳐 들어 올 수 없습니다. 부패하고 방탕하고 하나님을 떠나니까 원수가 쳐들어 올 수밖에 없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보내서 징계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1절에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로 판단하도다”라고 하였는데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만 합니까? 우리의 반석은 누구십니까? 만세 반석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이십니다. 전지전능, 천지 창조,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대주재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 사람의 반석은 무엇입니까? 일본사람의 반석이 누구입니까? ‘아마드로스오미까미’인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는 천황의 조상인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에 ‘요로즈노가미’가 있는데 그들이 다 세세한 신들입니다. 그가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우주만물을 주장합니까? 그는 일본을 창조한 것이 아니고 태평양 바다 가운데 있는 일본을 밧줄로 끌어다 거기다가 놨다고 합니다. 어리석기가 짝이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 나라 신들은 다 어리석습니다. 우리 한국 나라 신은 단군인데 그는 곰의 아들로 곰하고 단군의 어머니하고 합해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자기를 곰의 새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미련한 것입니다. 너희 대적의 반석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반석은 유물주의로 물질이 반석이고 물질이 전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반석은 물질을 만든 하나님이시고 물질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떻습니까? 그들은 물질을 믿고 사는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데 물질을 만들기도 하시고 멸하기도 하시는 분이 우리의 반석이십니다. 대적의 반석이 무엇입니까? 또 군대들, 백성들이 일어서는 것은 한 마디면 다 멸망하는 것입니다.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만 절대 못합니다. 그들은 다 미련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을 대적도 인정합니다. 전지전능한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하에 한 분밖에 없고 가장 위대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그들도 인정합니다.

본문 32절에 “그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나무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대적들의 포도나무는 소돔의 포도요 고모라의 밭의 소산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포도주는 소돔 고모라 포도주입니다. 조금 있으면 망합니다. 방탕하는 것, 포도주나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것, 향락하는 것, 쾌락주의는 소돔 고모라의 포도이기 때문에 조금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포도주 마시면서 즐거워하고 취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소돔 고모라의 포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그들의 포도는 쓸개포도니 그 송이는 쓰며”라고 하였는데 좋다고 놀지만 쓰다는 것입니다. 술 먹고 ‘캬’ 하는 것은 쓰다는 말 입니다. 그것이 세상의 재미라는 것입니다. 먹을 때, 목구멍에 넘어갈 때는 뜨끔하니까 좋지만 쓴 것입니다. 모든 세상의 오락과 즐거움이라
는 것은 다 그와 같습니다. 밤새도록 가서 춤을 추고 즐겁게 놀지만 아침에 거기서 나올 때는 쓴 바구니가 생깁니다. 돈만 다 없애고 집에 가면 바가지 긁힐 것이고 아들 보기에 부끄러울 것입니다. 밤새도록 가서 방탕하고 댄스홀에 가서 춤추고 스탠드바, 카페, 룸살롱, 정신이 나가서 도취되어서 다 돌아다녔지만 나올 때는 제정신이 돌아와서 쓴 바구니가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그들의 포도주는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이라”라고 하였는데 세상 것(포도주)은 뱀의 독이요 독사의 악독입니다. 쏜다는 말입니다. 죄악의 즐거움은 독사가 쏘는 것처럼 쏩니다. 잠언에 보면 여자에게 미혹을 받은 사람은 그 여자가 쏜다고 안 했습니까? 간까지 다 긁어 먹습니다. 삼손을 보십시오. 삼손이 여자에게 달콤하게 미혹이 되어서 결과는 잡혀서 눈 다 뽑히고 맷돌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독입니다. 세상 죄악의 낙이라는 것은 전부 독이 있습니다.
세상의 것은 다 독이 있습니다. 춤추러 다니는 여자들한테 걸리면 춤춰주는 남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제비족이라고 하는데 그들한테 한 번 걸려들면 독사한테 잡힌 것입니다. 다음에 또 나오라고 할 때 안나오면 폭로시킨다. 또 돈 백만 원 가지고 오너라 안 가지고 오면 폭로시킨다. 또 천만 원 가지고 오너라 하면 빚이라도 얻어서 가져 가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 갖다 주는 바람에 빚더미에 올라 앉습니다. 자꾸 가지고 오라고 하고 폭로시킨다고 하니까 가져 갈 것이 없어서 자살해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신문에 보니까 대학교 교수 부인이 자살해 죽었습니다. 대학교 교수면 월급을 상당히 타고 살 정도로 줬는데 일시적 포도주 먹으러 돌아다니다가 독사한테 걸려서 자살해 죽은 것입니다. 독이 있습니다. 

아예 우리의 반석, 우리 하나님을 믿는 이것이 십자가이지마는 속에는 생명과 꿀보다 더 달고 꿀송이보다 더 단 것이 있고 생수가 강같이 터져 올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것이 참된 행복이지 하나님 밖에 나가서 세상 것으로 재미를 보다가는 전부 쓴 것이고 독
사의 독이 있어서 독사가 와서 물고 늘어지면 자기는 죽고 다 망하는 것입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 나가면 잘될 것 같지만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나가는데 어떻게 망하지 않겠습니까? 독사의 독이 있고 독사가 물고 늘어질 날이 옵니다. 또 쏩니다. 방탕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쌍합니다. 지금은 좋다고 놀자하며 떠들썩하지만 조금 있으면 속에 쓴 것이 있고 조금 있으면 독사의 독이 와서 독사가 물고 늘어질 때는 쫄딱 망합니다. 

본문 34절에 “이것이 내게 쌓이고 내 곳간에 봉하여 있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는데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징계하시려고 독사의 독 같은 것, 쓴 포도주 같은 것을 곳간에 두셨다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면 곳간에 있던 것을 내리붓는 것입니다. 독사의 독, 쓴 포도주를 내리 부으면 그만 소돔 고모라의 포도주에 취해서 일시적으로 좋다고 하다가 경각간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음부에 내려갑니다. 멸망을 받습니다.

본문 35절에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원수들이 자기가 잘해서 이긴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또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6절에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고 그 종들을 인하여 후회하시리니 곧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을 징계하시고는 후회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즉살시켜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종들을 생각하셔서 후회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무력함과 갇힌 자나 놓인 자가 없음을 보시는 때에로다”라고 했는데 쫄딱 다 망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때 건져내 봐야 이미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어떤 가정의 부인이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봉사도 잘하고 아주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가게 되어 부인이 먼저 이사를 가고 남편은 직장 때문에 잠시 떨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 부인이 친구에게 미혹을 받아서 포도주를 마시러 다닌 모양입니다. 소돔 고모라의 포도주를 마신 모양입니다. 가서 포도주를 마셔보니까 좋았습니다. 이전에 먹지 못하던 포도주였습니다. ‘야 이런 포도주를 내가 알지 못했구나. 참 좋다’라고 하면서 놀러 다니고 또 놀러 다니다가 제비한테도 걸렸습니다. 그 남편이 그것을 알고 내쫓았다고 합니다. 포도주 먹을 때는 좋았으나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 남편 직장이 좋아서 생활비를 넉넉히 줄 때에는 포도주 먹으러 잘 다녔지만 쫓겨나고 보니까 포도주 값이 없었습니다. 제비족은 먹을 것이 없으니까 슬슬 날아갑니다. 할 것이 없어졌습니다. 전 남편에게 갈 수도 없어서 식모살이 다닌다고 합니다. 그것 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있을 때는 월급도 상당히 많이 받고 좋은 집에 괜찮은 귀부인의 지위에 있었고 자기 믿음도 잘 지켜나가 교회에 서도 집사님 집사님 하면서 잘 받들어나갔는데 이 사람이 그만 포도주에 취해서 돌아가다가 제비한테 걸려서 남편한테 쫓겨 난 다음에 제비와 내내 재미를 볼 줄 알았는데 그만 제비가 날아가니까 갈 데가 없어서 식모살이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식모를 두고 살던 사람이 이제는 남의 집 식모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쓴 포도주이고 독사의 독입니다. 뻔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을 떠나 예수 믿던 집사가 제비한테 걸려들고 쓴 포도주를 마시러 다닙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니까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 제비한테 걸려든 것도 포도주 마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떠나면 전부 이 코스입니다. 하나님 떠나면 하나님께서 소돔 고모라 포도주를 마시게 만들어 놓으십니다. 먹기에 좋으나 쓰고 독이 있고 독사가 물고 늘어져 가지고 마지막에는 쫄딱 망하게 만들어 놓는 포도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포도주를 먹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말씀은 처음에는 쓰지만 그 말씀을 먹으면 그 말씀이 꿀보다 달아지고 배 속에 생수가 흘러나와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서 영도 잘 되고 육신도 다 잘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로 나가야 됩니다. 소돔 고모라의 포도주를 먹으며 나가면 처음에는 좋지만 조금 있으면 즉살되는 것입니다.

본문 37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따라가던 신이 어디 있느냐 그것입니다. 너희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던 것들이 지금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피해서 살겠다고 하던 것들이 다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떠나서 다른 것을 의지하고 살려고 했는데 그것이 다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니까 다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의지하고 살겠다고 하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징계하셔서 다 불어버리셨습니다. 네가 좋아하던 것들이 다 어디 갔느냐 말입니다. 다 없어졌습니다.

본문 38절에 “그들의 희생의 고기를 먹던 것들, 전제의 술을 마시던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고 하였는데 네가 의지하고 살던 그 사람들로 와서 너를 좀 도와주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너를 도와줄 바가 아니고 너를 도와주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에야 모든 사람들이 도와주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서 친구들, 동창생들, 가까이 다니던 사람들, 계꾼들 다 어디로 갔느냐는 것입니다. 너를 도와줄 사람이 하나도 없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는데 누가 도와 주겠냐는 것입니다. 남자친구들, 여자친구들 다 어디 갔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는 다 좋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재미로 나가서 재미 보던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가고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니까 하나도 없이 다 달아났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택한 백성을 신원하여 주심

본문 39절에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하였는데 이제 네가 다 망했으니까 이제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나밖에 없는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회개하고 돌아오니 식모살이밖에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벌써 이전의 것은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다른 여자 얻었고 교회 나와도 뒷자리에 앉아 있어야지 있을 데가 없습니다. 이제는 나밖에 없는 줄을 알라는 것입니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

본문 40-41절에 “이제는 내가 하늘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말하노라 나의 영원히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다 심판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건져내신다고 하셨습니다. 번쩍번쩍하는 칼을 갈아가지고 원수를 심판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건져내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42절에 “나의 화살로 피에 취하게 하고 나의 칼로 그 고기를 삼키게 하리니 곧 피살자와 포로 된 자의 피요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 다 하시도다”라고 하였는데 하나님께서 번쩍번쩍하는 칼을 갈아서 원수를 심판하실 때에 원수들이 하나님의 화살의 피에 취하고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그 고기를 삼키게 한다는 것입니다. “곧 피살자와 포로된 자의 피요” 원수들을 다 피살하고 다 죽이고 포로되게 만들어 놓으신다는 것입니다. “대적의 장관의 머리로다” 대적의 장관의 머리를 하나님께서 칼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43절에 “너희 열방은 주의 백성과 즐거워하라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갚으사 그 대적에게 보수하시고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시리로다”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주께서 그 종들의 피를 신원하시고 보복하시되 자기 땅과 백성을 위하여 원수를 다 심판해서 죄값을 다 갚는다는 것입니다. 원수가 성도를 핍박한 죄값을 갚는다는 것입니다. 

2. 이 말씀을 지키면 생명이 살고 장수함

본문 44절에 “모세와 눈의 아들 호세아가 와서 이 노래의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말하여 들리니라”고 하였는데 호세아는 여호수아를 가리킵니다. 본래의 이름은 호세아인데 거기에 ‘여’자를 하나 붙여서 여호수아로 고쳐준 것입니다. 백성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들렸다는 것입니다.

본문 45-46절에 “모세가 이 모든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증거한 모든 말을 너희 마음에 두고 너희 자녀에게 명하여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너희 마음 귀에 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칠을 해서 잘 보이게 하고 이 말씀을 또 너희 자녀들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잘 가르치고 또 나가서 이 백성에게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지켜서 행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너희 생명이 살고 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47절에 “이는 너희에게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이니 이 일로 인하여 너희가 요단을 건너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절대로 허사가 아니고 진실한 말씀이고 실제라는 것입니다. 배가 고플 때에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힘이 나는 것처럼 이 말씀은 실제 알맹이의 말씀이니까 이 말씀 그대로 너희가 행하면 너희의 생명이 되고 또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는 것입니다. 장구하리라는 것은 앞으로 계속해서 잘 되어 나가고 실패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만 하면 생명이 살고 실패가 없이 계속 장구하게 잘 되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3. 모세는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는 못할 것

모세가 하나님께로 갈 준비를 함

본문 48-50절에 “당일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라고 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죽어 하늘나라로 간다고 했습니다. 아바림 산이라는 것은 사해 바다 북동편에 위치한 산맥으로 느보 산은 그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높이는 802m라고 합니다. 아바림 산에 느보 산이라는 봉우리가 있는데 거기에 모세가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하늘나라로 간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언제나 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다 하고 다녀야 됩니다. 언제 어느 시간에 하나님께서 데려가실지 모르니까 늘 하나님 앞에 갈 준비를 잘하고 다녀야 됩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1)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음

본문51절에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나의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연고라”고 하였는데 모세가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 이유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반석에서 물을 두 번 냈는데 처음에는 호렙산 밑에서 반석을 쳐서 물을 냈고 그 다음에 40년 후에 요단 강을 건너가기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 물을 낼 때 모세가 하나님께 범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지팡이로 반석을 가리켜서 물을 내라고 했는데 두 번 반석을 쳤습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라고 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뒤에 세워놓고 내가 한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도 내가 하는 것은 안 됩니다. 내가 앞서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심부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부름을 해도 오히려 부족한 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한다고 하는 사람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으로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해 주셔서 늘 감사한 것뿐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로 심부름하는 것뿐이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을 내가 한다고 하다가는 그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빼앗기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라는 것이 다 없어져야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한다. 내가 한다.”하면서 ‘나, 나’하고 돌아가다가 두번째에는 ‘나, 예수’가 되어 나 다음에 예수가 따라옵니다. 그 다음 세번째에는 ‘예수, 나’하고 따라가는데 예수님을 앞세우고 뒤에 자기가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했다. 자기가 했다.”하고 따라가다가 네번째에 가서는 나와 세상은 간 곳이 없고 ‘구속의 주만’ 남아야 됩니다.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어야 됩니다. 나 행한 것은 죄 뿐인 줄로 알고 다만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만 알고 감사해야 됩니다. 내가 한 것이 하나도 없고 내가 했다면 심부름한 것인데 심부름도 변변히 못한 줄을 언제나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줄로 알고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림으로 언제나 하나님 앞에 복종하는 믿음을 항상 가져야 됩니다. 

2) 율법의 대표로서 율법을 범했으므로 그런데 “내가 너희에게 물을 내랴” 라고 한 번 했어도 모세를 가나안에 들어가게 해주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 번 실수했다고 해서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한 것이 너무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회개시켜 가지고 들어가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내가” 한 번 했어도 좀 들어가게 해주면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잘못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40년간 애굽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간다고 백성들을 끌고 나왔는데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간다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모세는 율법의 대표입니다. 율법적으로 볼 때에는 죄 하나만 지어도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볼 때에는 죄를 용서해 줍니다. 율법은 범하면 저주 받는 것뿐입니다. 모세는 율법의 사자인데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어떻게 들어가겠습니까? 율법을 하나님께 받아서 전해 준 사람이 모세이므로 자기가 주고 자기가 범했기 때문에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모순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가 육신적으로는 율법에 걸려서 가나안에 못 들어갔지만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영혼은 천당에 들어갑니다. 육체는 율법으로 볼 때에는 가나안에 못 들어가지만 오실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천당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면 여호수아는 어떻게 들어갑니까? 여호수아와 갈렙과 백성들은 율법적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사람들은 가나안을 통과해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보여주려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작은 죄를 하나 지었어도 율법적으로
는 멸망 받고 마땅히 죽을 자로 알아야 됩니다. 죄 지은 것을 용서해 준다고 하니까 죄를 약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작은 죄 하나라도 율법적으로는 마땅히 사형을 받고 가나안을 빼앗길 죄입니다. 또 실제로 우리가 율법을 범할 때 영적 가나안을 빼앗깁니다. 영적 복지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철저히 회개하고 바로 서면 영적 가나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마땅히 멸망 받아 죽을 죄인 줄을 알아야 되고 또 심령의 가나안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나 철저히 회개하게 되면 다시 가나안을 회복할수 있고 영적 생명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회개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죄 값은 사망이므로 죄 지은 다음에는 철저하게 회개를 하지 않으면 다시 신령한 세계를 찾지 못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