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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시편 23:1-6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의 승리와 복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의 승리와 복
시편 23:1-6

1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 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1. 양은 목자로 만족함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에게 승리가 있고 복이 있음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에게 승리가 있고 모든 복이 있습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양이고 여호와 하나님은 목자이십니다. 양이 목자를 잘 만나고 목자의 인도를 잘 받으면 모든 것이 다 잘됩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은 사람은 부족함이 없다고 하였는데,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항상 만족하고 충만하고 넘쳐흘러 모자라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책망 받을 일도 없고 그 이상 더 요구할 것 없이 만족스럽습니다. 

2. 여호와께서 인도해주심

목자의 인도를 잘 따라가라

본문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양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잔잔한 물가에 누우면 얼마나 만족하겠습니까? 선한 목자는 양을 좋은 초장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풀을 마음껏 먹어 배부르고, 또 잔잔한 물가에 가서 해갈(解渴)이 되도록 물을 마시게 해줍니다. 부족한 것이 없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말로만 목자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목자를 잘 순종하며 그 인도를 잘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자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이신데, 그 목자의 인도를 잘 따라가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순종하면 목자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고, 순종하면 목자가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는 양은 안 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목자가 인도하는 좋은 곳으로 가지 못하므로 푸른 초장을 만날 수 없고 쉴 만한 물가를 만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다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자들이고 양으로서, 목자의 인도에 순종해야 합니다.
동(東)으로 가라고 하면 동으로 가고, 서(西)로 가라고 하면 서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아야 합니다. 목자의 인도대로 가지 않고 제 생각대로 가면, 푸른 초장의 반대 상황이 벌어집니다. 사막, 메마른 환경, 또 쉴 만한 물가의 반대입니다. 물가이긴 한데 회오리가 치면서 떠내려가는 급류를 만나 물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휩쓸려서 떠내려가고 마는 것입니다. 

철원에 어떤 기도원이 있는데, 그 앞에 한탄강이 있습니다. 장마 때 한 번 갔더니 얼마나 물이 세차게 회오리를 치며 내려가는지, 보기만 해도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철원 한탄강에 목욕하려고 들어갔다가 물이 휙 하고 돌아가는 바람에 떠내려가 죽은 이가 있습니다. 거기는 발을 들여놓을 데가 못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리로 인도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시냇가가 얕고 들어가도 빠지지 않는 물이 잔잔한 곳으로 인도하셔서 얼마든지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급류를 타고 회오리를 치면서 내려가는 데에 들어가면 헤엄을 아무리 잘 치는 사람도 소용이 없습니다. 목자의 인도를 받지 않는 양은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막으로 가서 먹을 것이 하나도 없어 빼빼 말라버립니다. 하지만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인도를 잘 받는 양은 언제든지 푸른 초장, 언제든지 쉴 만한 물가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3. 영혼을 소생시키심

본문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을 소생시켜 주시는 주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이십니다. 목자를 의지하고 목자를 잘 순종하는 양은 하나님께서 그 중생한 영혼을 소생시키십니다. 그리고 소생한 영혼 속에서 기쁨과 평안과 희락과 사랑이 올라옵니다. 중생한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런데 목자를 떠나면 이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목자를 가까이하고 목자의 인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목자의 명령을 순종하여 여호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잘 받도록 하여야겠습니다. 

4. 하나님께서 보호해주심

목자의 인도를 받으면 해를 받지 않음

본문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세상이라도, 믿는 사람은 해를 받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100% 다 해를 받을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을 당하여도 해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목자가 함께 하시는데, 양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또 부모가 같이 하면 아이들에게 걱정이 없고, 주인이 같이 하면 모든 가축이 걱정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절대 해를 받지 않는 것은 언제나 목자의 인도
받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목자를 가까이하여 그 인도를 따라가고, 그 말씀에 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아무리 사망의 골짜기라도 그 속에서 주께서 건져 주시고 능력으로 보호해주시며 만능으로 구원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해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목자를 떠나지 않고 항상 동행하는 생활,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을 하면 해를 받지 않습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 인도와 구원, 그리고 심판

그리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하였는데, 목자에게는 지팡이와 막대기 둘이 있습니다. 주의 지팡이는 인도해주는 지팡이, 또 구렁텅이에 빠질 때에 건져주시는 지팡이이고, 막대기는 말을 안 들을 때 때리는 막대기입니다. 가다가 갈 길을 알지 못할 때에 목자가 지팡이로 잘 인도해줍니다.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자. 또 저리로 가자”라고 하면서 그 지팡이로 목자가 잘 인도해주는 것입니다.
양은 따라가면 됩니다. 목자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리로 가자. 저리로 가라. 또 저리로 가라. 일어서라. 저리로 가서 물을 먹어라”, 이렇게 다 다 인도해주시다는 것입니다. 양은 어디로 가야 물이 있겠는지 어디로 가야 풀이 있겠는지 잘 몰라도, 목자가 다 알아 인도해줍니다. 그리고 구렁텅이에 빠졌을 때에는 목자가 지팡이의 구부러진 곳을 양의 목에 걸어서 들어주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목자를 따라갑니다. 그러다 말을 안 듣고 돌아갈 때에는 “이 놈아, 왜 이리로 왔느냐?”라며 막대기로 한 대씩 때리면 돌아서는 것입니다. 막대기의 매를 맞고 돌아서는 양 떼도 많습니다. 

매 맞아보았습니까? 매를 맞을 때에는 회개하고 돌아서야지, 그렇지 않으면 매를 더 맞게 됩니다. 그래도 안 돌아서면 또 맞고, 그래도 안돌아서면 계속 맞습니다. 누가 더 오래 견디겠습니까? 하나님을 이길 사람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못 이깁니다. 마지막에는 쫄딱 망하고, ‘주 예수의 날에 육체는 망하고 구원을 받는다’고 고린도전서 5장 5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빨리 돌아서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의 막대기가 왔을 때에 양들은 깨닫고 회개하며 돌아서야 삽니다. 그래서 언제나 주의 막대기와 지팡이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교역자가 주의 지팡이입니다. 하나님께서 교역자를 지팡이로 사용하셔서 양된 성도들을 인도해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 직접 때리심으로 사고가 나든지 전대에 구멍이 뚫어지든지 하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징계가 오는 것입니다. 돈이 우상이 되어서 믿음을 안 지키고 돈을 벌다, 돈을 주머니에 넣어놓으면 구멍이 뚫어져나가는 경우, 그것도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리고 병이 나든지 가다가 갈 길이 딱 막히든지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은 다 막대기가 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불안해하는 것도 막대기입니다. 그것이 징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이 불안하면 ‘하나님의 막대기가 왔다. 내가 회개하고 목자에게로 달려가야 되겠다’라고 하며 달려가야 합니다. 

5. 승리와 안식을 주심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함

본문 5절에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상은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밥상으로 승리의 축하 상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승리의 축하 밥상을 베
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을 발라주시는 것은 영광스럽게 아름답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38편 8-15절에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편 38편 22절에는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라고 하였습니다. 

탕자에게 돼지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집에서 재산을 받아들고 나와서 허랑방탕하게 돌아갈 때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돈이 다 없어져 먹을 것이 없어 죽게 되었을 때에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어, 돼지를 치는 집에 가서 돼지 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하였습니다. 세상 친구, 세상 것이 다 쓸데없습니다. 탕아를 다 멀리 했습니다. 

종일토록 슬픈 중에 있고 마음이 불안하고 피곤합니다. 또 주 앞에 탄식이 자꾸 나오고 심장은 뛰고 기력은 쇠하며 눈빛이 다 변합니다. 사랑하는 자들과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친척들도 멀어진 상태입니다. 그때 생명을 찾는 자들이 여러 가지 올무를 놓고 올무에 걸리면 잡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벙어리 같이 말하지 않고 귀머거리 같이 듣지 않고 변론하지 말고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며 ‘공중의 새가 짹짹하며 날아가는 것처럼 날아간다’하고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또 파리 백 마리를 잡아먹었다고 거짓말로 비방을
해도 “안 잡아먹었다”고 한 마디만 하고 속상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속이 상하면 마귀한테 지는 것입니다. 참새가 날아가는데 속이 상할 사람이 있습니까? 속이 상하면 또 유익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주를 바라볼 때에 주께서 내게 응락해주실 줄 믿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험악한 세월 중에 있을 때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아야 섭섭한 마음밖에는 들어올 것이 없습니다. 친구가 다 배은망덕합니다. 악으로 선을 갚는데, 그들을 바라보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무엇을 하겠습니까?

또 시편 38편 20절에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쫓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이 세상에는 악으로 선을 갚는 자가 많습니다. 자기가 선을 베푼 친구들과 친척들인데, 자신이 죽을 고비에 빠져도 도와주지 않고 다 멀리 하니 너무 섭섭하지 않습
니까? 그러나 그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을 바라봅니다’하고 나가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데에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것은 다 쓸데없습니다. 

그리고 올무를 놓고 잡아 죽이려는 원수, 악독한 말, 괴악한 말, 거짓 말로 매장을 시키려는 원수, 종일토록 궤계를 베풀어서 죽이려는 여러 원수가 많아도, 그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그 말을 듣지 말아야 합니다. 그 말에 답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능력이 속에 임하고 은혜가 오고 힘이 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 들어갔어도 하나님만 바라보므로 하나님께로부터 위로와 평강과 능력과 기쁨이 왔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응락해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믿으면 벌써 응답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권고가 와서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풀어놓으시고 “원수도 와서 먹어라. 즐거워해라. 축하해라’라고 하시므로, 잔이 넘치게 됩니다. 그 머리에 기름을 바르셔서 영광스럽게 아름답게 해주십니다. 하여간 이렇게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여호와께서 같이 하셔서 승리하게 하시고 ‘상’, 즉 연회 상, 승리의 축하 상을 베풀어놓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밥상에서 같이 먹고 즐거워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또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시는데, 욥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욥이 환난을 당할 때에 친구들이 그를 멀리 하고 친척들이 멀리 하고 아내도 멀리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여호와만 바라보고 그 응락하심을 기다리며 믿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승리의 상을
베풀어주셔서 마지막에는 욥과 친구들이 다 한 상에서 먹고 친척들이다 와서 한 상에서 먹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욥을 축복해주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욥에게 여러 가지 좋은 것들로 배나 더 갚아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목자로 삼는 사람은 반드시 승리하므로 걱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응락해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사람에
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락해주시고 같이 해주십니다. 그리고 승리의 축하 상을 베풀어주시고 그 머리에는 기름을 발라주시며 기쁨과 즐거움의 잔이 넘치게 해주십니다. 기쁨의 잔, 화평의 잔, 은혜의 잔이 넘치게 해주십니다. ‘잔이 넘친다’는 것은 마음에 기쁨과 승리의 찬송이 충만하여 철철 넘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막대기로 때리시고, 여호와를 목자로 삼는 사람은 심부름꾼, 일꾼들, 즉 지팡이로 잘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심부름꾼이 인도할 때 잘 순종하면 목자의 지팡이인 목사가 참 기뻐합니다.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녀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모든 일들을 혼자 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하나님 없이 고난을 당하면 고통스러워도, 예수님과 함께 하면 그것은 고난이 아닙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가 되어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주님 한 분만 같이 하시면 항상 만족하고 항상 감사하고 항상 평안합니다.

본문 6절에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기쁨과 은혜가 넘치는 생활을 계속하고, ‘이 세상에서도 하늘나라에 가서도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승리의 길을 걸어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