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예레미야 14:1-22
예레미야 14:1-22
1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2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 3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4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5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 버리며 6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 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 7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찌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9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 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11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그들이 금식할찌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13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 14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15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17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18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19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20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열방의 허무한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1. 가뭄을 당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음
본문 1-2절에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유다가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 땅에 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에 오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유다에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들어서 온 땅이 바싹 말라 다 죽게 되어 부르짖는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3-6절에 “귀인들은 자기 사환들을 보내어 물을 길으라 하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서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 버리며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종들은 가뭄이 들어서 물을 길어 오지 못하고 빈 그릇으로 가게 될 때에 부끄럽고 근심하여 머리를 가리며 돌아갑니다. 땅은 다 갈라지고, 밭을 갈러 나갔던 자
도 농사하지 못하고 돌아오며, 암사슴은 새끼 먹일 풀이 없으므로 새끼를 내어 버리게 되고, 들나귀들은 자산 위에 서서 시랑같이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게 되는 심한 한재가 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가 죄를 범할 때에 한재(旱災)를 보내서 징계하시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 때, 선지자 엘리야 생전에 이스라엘이 범죄하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한재를 보내어 가물어서 그들이 농사하지 못하고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한재가 임한 어떤 경우에는 아이를 잡아먹은 때도 있었습니다(왕하6:26-30). 한재가 이렇게 큰 재앙인데, 얼마나 가뭄이 심하면 아이들을 다 잡아먹겠습니까?
학개서에도 성전을 짓지 않으면 그날에 한재가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학개서 1장 9-11절에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연고뇨 내 집은 황무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에 빨랐음이니라 그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한재를 불러 이 땅에, 산에, 곡물에, 새 포도주에, 기름에, 땅의 모든 소산에, 사람에게, 육축에게,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임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영적 성전은 황무한데 영적 성전
을 건축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 육신의 집 짓는 것에만 급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들이 가진 많은 것을 다 불어버리셨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한재를 보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이 땅 모든 것과 사람에게 한재가 임하게 되어 심령이 메마르고 모든 면에 메마른 상태입니다. 진리가 메마르고 감동이 메마르고 영적 생명의 역사가 메말라 있습니다.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집으로 가져갔으나 다 불어버리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초대 교회 때의 풍성한 영적 은사와 비교해볼 때 모든 것이 다 한재를 당한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가 한재를 당한 것과 같이 바짝 마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본문 7-9절에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찌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행인같이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 같으시며 구원치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악’, ‘우리의 타락함’,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예레미야가 선지자로서 백성들의 죄에 대하여 공동 책임을 느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2. 어그러진 길로 가며 기도하는 것은 듣지 않으심
본문 10-12절에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들이 금식할찌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찌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십니까?
백성들이 어그러진 길로 가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고 그 길로 가면서 기도하면, 아무리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잠언 28장 9절에 “사람이 귀를 돌이키고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순종하면서 기도해야지, 말씀을 어기면서 기도하는 것은 가증합니다. 어그러진 길로 그냥 가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 부르짖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어그러진 길로 가는 것부터 바로 잡고 회개하며, 잘못된 길과 죄악을 끊어버리고, 발을 바로 세우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어그러진 길로 가면서 하는 기도는 들어주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하나님께서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멸망시키십니다.
3. 거짓 선지자와 그 말을 듣는 자는 다 멸망함
본문 13절에 “이에 내가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시리라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평강을 예언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말하는 것을 참 선지자가 볼 때에 안타깝고 슬픕니다. 거짓 선지자가 거짓으로 예언하여 백성들이 그것에 미혹을 받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칼을 보지 않는다, 전쟁이 나지 않는다, 기근이 이르지 않는다, 언제나 잘된다, 여호와께서 확실히 평강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들은 환난과 기근은 임하지 않고, 언제나 우리 앞에 평안이 있으며, 모든 일이 잘된다고만 합니다. 환난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잘된다는 것만 말해줍니다. 또 십자가와 고난은 말해주지 아니하고, 그저 평안하다고만 합니다. 이것을 볼 때에 안타까운 것입니다. 죄를 책망해야 하는데 죄를 책망하지 않고, 환난을 준비시켜야 하는데 환난도 준비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새도 이런 교역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인들이 많이 모일까 하여 그것에만 열중하면서 죄를 책망하지 않고 잘된다고만 말해주는 것입니다. 죄를 책망하면 교인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말, 위로해주는 말, 이드(라틴어 id)를 채워주는 말만 합니다. 이드란
욕망의 원천을 말합니다. 인간의 욕망의 원천을 채워줘야만 교인들이 잘 몰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좋은 말만 해줍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그런 교역자들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과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환난을 말해주지 않고 평안하다, 잘된다고만 전합니다. 바로 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환난이 온다고 하셨는데, 환난을 전하지 않습니다. 기근이 온다고 하셨는데, 기근이 온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책망하라고 하셨는데, 죄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이 거짓 선지자가 아닙니다.
성경 그대로만 전해야 합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의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교인들을 잡으려고 잘되는 방법이라고 가르치지만 그것이 잘되는 방법이 아닙니다. 말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물론 매일 죄만 책망하고 매일 환난만 온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언제나 영적 양식
을 먹여주는데 치중해야합니다. 영을 살려나가는 것에 치중하면서, 영을 살려나가는 것을 원 줄기로 하고, 죄를 책망하기도 하고, 환난을 말해주기도 하고, 징계도 말해줘야 합니다. 영적 양식을 주지 못하고 매일 죄만 책망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먼저 영을 살려나가면서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 중심입니다.
본문 14-16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입을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을 하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고, 그 말을 하라고 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지고 거짓 계시를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말씀을 거짓되게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면 시험에 빠지니까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쳐야 하는데, 거꾸로 전하였습니다. 잘못 전한 것입니다. ‘복술’은 점을 치는 것을 말합니다. 점을 치는 식으로 예언을 합니다.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새 예언한다는 사람들은 다 복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만 망하면 되겠는데, 그들의 예언을 받는 백성들도 기근과 칼로 인하여 멸망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듣는 사람도 같이 망한다는 것입니다. 듣는 사람의 아내와 아들과 딸까지 망합니다. 이사야 9장15-16절에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머리는 장로이고 꼬리는 거짓 선지자인데, 이들의 인도를 받는 자는 함께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열차 기관장은 장로이고 뒤의 기차장은 거짓 선지자인데, 백성들이 그 기차에 타고 있다가 같이 멸망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망하는 것은 자기 죄 값으로 망하는 것이지만, 인도를 받는 사람이 망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건져내야 합니다.
우리는 환난을 눈 앞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참 선지자가 됩니다. 환난을 바라보고,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그 환난을 날마다 통과하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죽음에 날마다 넘겨지는 생활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1절에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
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음에 넘겨지는 생활,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늘 환난을 통과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평안할 때 통과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통과하셨습니다. 우리도 미리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통과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죄를 날마다 회개해야 합니다. 바울은 ‘내가 죄인 가운데 괴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자기의 죄를 날마다 통회하며, 교인들에게도 죄가 무섭다는 것과 늘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참 선지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는 늘 평강을 말하지만,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날마다 따라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참 선지자가 가는 길은 세 가지입니다.
환난은 당겨다놓고 통과하고,
죄를 날마다 찾아 회개하며 죄를 제거하는 일에 힘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잘 듣게 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2장 4-5절에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 선지자 있은 줄은 알찌니라”고 하였습니다. 또 에스겔 2장 7절에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에스겔 3장 27절에는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여호와의 말씀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교인들에게 듣기 좋게 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해야 합니다. 그대로 전하면서 언제나 신령한 양식을 주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책망을 하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고, 신령한 양식을 주면서 책망해야 합니다. 건설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파괴적으로 말하면 옳지 않습니다. 오늘의 말씀도 거짓 선지자는 기근이 오지 않는다, 평강이 확실다고만 말해줍니다. 복술과 허탄한 것과 거짓계시와 말씀을 바로 전하지 못한다는 것까지만 말하면 소극적인 설교가 됩니다. 안 된다는 것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선지자가 되려면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통과하고, 날마다 죄를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대로 전해야 한다는 건설적인 설교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한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 죄를 책망할 때에도 신령한 양식을 먹이며 책망해야 합니다. 안 된다는 것만 가르쳐서
도 안 되고, 잘된다는 것만 가르쳐서도 안 됩니다. 죄를 회개하도록 해야 잘됩니다. 언제나 우리는 건설적으로 어떻게 해야 잘되겠는지를 제시해 주어야 합니다. 자신이 먼저 그런 길을 걷고, 교인들에게도 이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책망만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책망하고, 위로하고, 권면하고, 싸매주며, 잘되면 소망을 주어야 합니다. 베드로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죽였다고 책망한 후에 그러나 너희가 알지 못해서 그랬으므로 회개하면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너희를 부르신다고 하였습니다. 싸매주면서 건설적으로 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양식을 나눠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자도 망하게 됩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백성들이 망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입니다. 백성들은 몰라서 미혹 받는 일이 많습니다. 선지자이면 다 같은 선지자인줄 알고,
목사면 다 같은 목사인줄 알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는 사람은 따라가지 않지만 아는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대개는 그저 가르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백성들입니다.
4. 예레미야의 눈물의 기도
참 선지자의 신앙
본문 17-18절에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끊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을 인하여 망함이라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선지자가 눈물 흘리며 기도합니다. 망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처녀 딸 내 백성’이라는 것은 순수한 내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순수한 내 백성이 미혹을 받아 멸망하게 된 것을 볼 때에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망할 것을 미리 내다보고 탄식하며 기도하는 것이 참 선지자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날마다 잘된다고만 합니다. 언제나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의 징계가 오는 것도 말해줘야 하고 심판도 말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말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모르고 평안히 있다가 갑자기 환난이 오면 다 망하게 됩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너무 가슴이 아프고 답답하여 예레미야는 밤낮으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내다보며 그것을 지금 당하는 것으로 알고 거기에 대해서 안타까워하며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그것이 참 선지자의 자리입니다. 오늘만 평안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다음에 올 환난과 심판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며 탄식하고 눈물
흘리며 그 백성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참 선지자의 신앙입니다. 우리도 이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늘 믿음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잘 믿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지 못
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으로 피난처를 삼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을 자기의 방패로 삼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날마다 회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다른 백성들이 앞으로 죄 가운데서 멸망할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앞으로 타락하고, 교회에 환난이 올 것을 생각하면서 회개하며 눈물 흘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요새 교회가 타락한 것을 보면 예전에 소련 희랍 정교회가 타락한 것만큼 타락하였습니다. 그때보다 조금도 나은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희랍 정교회의 타락으로 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요새 목사들이 모여서 술을 먹습니다. 어떤 목사는 여 집사와 춤을 추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또 교인들이 목사가 춤을 잘 춘다고 박수를 쳤다고 합니다. 요새 그렇습니다. 얼마나 한심합니까? 형편없습니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멸망할 것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였는데, 오늘날 이 시대에 예레미야가 왔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겠습니까? 교회가 타락하고 세속화되어나가는데, 형편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레미야를 본받아서 하나님의 심판을 내다보고, 타락상, 이 죄악상을 보며, 늘 눈물 흘리는 기도를 해야 하겠습니다.
본문 19-22절에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려도 놀람을 보나이다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위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열방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유다 나라를 대표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대표기도이므로 ‘우리가’라는 말을 썼습니다. ‘징계가 왔는데 하나님께서 왜 치료해주지 않으십니까?’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대로 거짓 선지자는 징계가 온 것을 알지 못합니다. 평강하다고만 가르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가 바라볼 때에는 많은 징계가 왔고 많은 상처를 입고 있습니다. 유다 나라를 하나님께서 많이 치셨고 평강이 없습니다.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평강이 있어 보이나 내부적으로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붙들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잘된다고만 하고, 백성들은 잘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섰다고 교만하면 망합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야 합
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믿어보려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남보다 나은 것이고, 잘 믿어보려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날마다 회개하고,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그 환난을 통과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들은 잘된다고만 하고, 백성들은 잘되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긍휼을 받습니다. 다른 것이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섰다고 교만하면 망합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야 합
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다면,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믿어보려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죄를 찾아서 회개하는 것이 남보다 나은 것이고, 잘 믿어보려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날마다 회개하고, 환난을 앞에 당겨놓고 그 환난을 통과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주의 이름을 위해 우리를 긍휼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또 주의 영광을 위해서 긍휼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또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긍휼히 여겨달라는 것입니다. 행한 죄를 보면 마땅히 멸망을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고, 주의 영광의 그릇, 주의 언약이 있는 유다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만 보지 마시고, 주의 이름과 영광과 언약을 보시고 건져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회개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망하는 것은 괜찮지만 주의 이름, 주의 영광에 욕이 돌아갈까, 주의 언약이 폐하여질까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안타까워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구원해주시고 살려달라는 것은 이기주의가 아닙니다. 살려달라는 원 목적은 주의 이름과 주의 영광을 드러내려함입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정신입니다. 살려 달라는 목적도 이기주의로 목숨을 살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만 살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달라는 원 목적은 주의 이름이 낮아질까, 주의 영광에 욕이 돌아갈까, 주의 영광을 위하여,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주를 위해서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죽어도 주를 위해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이기주의로 자기 하나 잘되게 해달라고 살려달라고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입니다. 사는 목적도 자기 하나 잘되려고 하는 것이면 안 됩니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는 목적도 목회에 성공하려는 데에 두지 말고, 주의 이름과 영광과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거기에 이용당하고 그것을 위해 죽으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열방의 허무한 것’은 우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우상이 아무리 많고 그 세력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비를 내리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상은 돈, 자기 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지 않고 자기를 위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자기를 위하지 말고 하나님을 위하여야 합니다. 이기주의가 우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가족이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가족을 귀히 여겨서 가족 때문에 아무 일을 못합니다. 또 직장이 우상입니다. 직장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어기고 취하는 것은 모두 우상의 제물입니다. 말씀을 어기게 하는 것이 전부 우상이고, 어기고 취한 것은 우상의 제물입니다. 요새 학생들이 주일날 시험을 보고 입학하는 것은 학교가 우상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키라고 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보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더 크게 여긴 것입니다.
‘비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은 신령한 행복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우상이 세력이 세고 세상이 그것을 따라가도, 우상은 심령의 위로와 행복, 생명수를 주지 못합니다. 심령의 생명을 살려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만 이 모든 것을
주십니다. 신령한 단비를 주시고, 소생케 해주시고, 참된 위로와 행복을 주십니다. 따뜻한 모든 행복을 주실 분은 주님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만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으니 주님만 앙망하고, 주님만 따라가고, 주님만 사모하고, 주님만 모셔야 합니다. 이것이 참 선지자가 이스라엘을 대표해서 이스라엘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여 참된 기도를 한 것입니다. 우리도 이 자리에 들어가야 합니다. 참된 비를 내려주실 참된 하나님만 앙망하고, 의뢰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으로만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