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는 자에게 기쁨과 평강과 형통이 있음
시편 122:1-123:4
122:1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6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 8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찌어다 9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123:1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평
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시편 122:1-123:4
122:1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 3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 6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네 성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 8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찌어다 9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 123:1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 3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평
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
1.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기쁨
본문 122편 1절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는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 가는 기쁨이 제일 큰 기쁨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키고, 지금은 신령한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그 신령한 곳을 향해서 가자고 할 때에 마음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기쁨,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자고 하는 말을 들을 때의 기쁨이 큽니다. 또 누구나
하나님의 집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갈 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을 멀리 할 때에는 근심과 고통밖에는 올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기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또 올라가는 즐거움을 항상 체험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즐거움을 겪으며, 그 길을 걷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려고 힘을 쓰고, 올라가는 즐거움에 참여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올라가는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22편 1절에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는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서 올라갔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올라 가는 기쁨이 제일 큰 기쁨입니다. 여호와의 집은 그 당시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가리키고, 지금은 신령한 하나님이 계신 하나님의 집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신 그 신령한 곳을 향해서 가자고 할 때에 마음이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기쁨,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자고 하는 말을 들을 때의 기쁨이 큽니다. 또 누구나
하나님의 집을 향해서 올라가는 생활을 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갈 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집을 멀리 할 때에는 근심과 고통밖에는 올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기를 힘써야 되겠습니다. 또 올라가는 즐거움을 항상 체험해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는 즐거움을 겪으며, 그 길을 걷기 위하여 힘을 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려고 힘을 쓰고, 올라가는 즐거움에 참여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올라가는 생활을 계속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본문 122편 2절에 “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자고 할 때에 기뻐했는데, 벌써 다 올라가 성문 안에 발이 들어섰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문 안에 기쁨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예루살렘 성문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벌써 자기 발이 기뻐하는 예루살렘 성문 안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사모하는 자, 원하는 자는 예루살렘 성문 안, 신령한 예루살렘 성,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 발을 벌써 올려놓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자는 거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사모하지 않는 자는 거기 도달할 수없고, 사모하면 반드시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2편 3절에 “예루살렘아 너는 조밀한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름답게 건설되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 하나님께서 계신 도성이 가장 아름다운 도성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하나님이 떠나면 쓸쓸한 곳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 영광스러운 곳이 되는 것입니다. 아주 광채가 납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가시떨기에 불이 붙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 것처럼, 구경하려고 가까이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계신 성은 이렇게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성읍이 됩니다. 초막이나 궁궐이나 우리 주님, 하나님을 모시고 살면 이렇게 아름다운 성읍과 같이 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 122편 4절에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범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뿐 아니라 예수 믿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다 포함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공경하는 여러 계통의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향해서 전례대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에 판단의 보좌가 있음
본문 122편 5절에 “거기 판단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 집의 보좌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판단의 보좌를 예루살렘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판단의 보좌’는 심판의 보좌도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해주시는 그런 보좌가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그 자리에 나아가서 모든 것을 판단 받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 나가서 판단을 받아야 그 판단이 바로 됩니다. 민수기 27장 5-7절에 “모세가 그 사연을 여호와께 품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슬로브핫 딸들의 말이 옳으니 너는 반드시 그들의 아비의 형제 중에서 그들에게 기업을 주어 얻게 하되 그 아비의 기업으로 그들에게 돌릴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없이 자기 아버지가 죽었는데 슬로브핫의 딸들이 그러면 아버지의 산업을 딸들인 자신들에게 물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좀 기다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해보고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말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가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아들이 없는 경우에는 그 딸들에게 산업을 물려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부터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것입니다. 판단의 보좌가 그런 것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때에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하나님의 판단을 기다린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여쭤본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그 딸들에게도 재산, 즉 기업을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보좌에서 판단해주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또 보좌 앞에 가까이 나아가 기도할 때에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모든 면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아 바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바른 판단, 의로운 판단을 받아 모든 것을 바로 판단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3.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 평강과 형통이 있음
본문 122편 6-7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평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큰 평안이 있습니다. 둘째는 무엇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형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심령의 평안이 있습니다. 또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122편 6-7절에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네 성 안에는 평강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이 있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두가지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평강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큰 평안이 있습니다. 둘째는 무엇이 있다고 하였습니까? 형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심령의 평안이 있습니다. 또 무슨 일을 당하든지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도성, 하나님께서 계신 성읍입니다. 그 예루살렘을 사랑하면 평안이 있고, 형통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사랑하고 사모하며 바라보고 기뻐하는 생활을 할 때에 평안과 형통이 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이므로 오늘날에는 하나님을 모신 교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모신 두, 세 사람이 합심해서 기도하는 곳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들, 즉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섬기는 곳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 계신 곳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발등상을 사랑하는 자, 그런 사람들에게 큰 평안이 있고 형통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며,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물건과 사람을 사랑하는 자는 이와 반대입니다. 그들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은 모두 우상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우상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우상을 섬기며 나아가면 형통하지 못합니다. 반드시 가다가 함정에 빠질 날이 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강이 있고, 또 형통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을 늘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계신 곳을 사랑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곳을 바라보고, 그 자리를 귀히 여기는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언제나 평강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형통한 길을 열어주십니다.
4. 형제와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생활
본문 122편 8-9절에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찌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형제와 붕우(朋友)를 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도를 위하고 또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를 위해서 봉사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다 줄 수 있는 봉사의 생활, 또 발을 씻어주는 생활, 우리가 그런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위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생활이 귀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교회를 위하고 성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바입니다. 받아먹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본문 122편 8-9절에 “내가 내 형제와 붕우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 평강이 있을찌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네 복을 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은 형제와 붕우(朋友)를 위하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도를 위하고 또 하나님의 집을 위하는, 그런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를 위해서 봉사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떠다 줄 수 있는 봉사의 생활, 또 발을 씻어주는 생활, 우리가 그런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집, 즉 교회를 위하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교회입니다. 교회를 위하는 생활이 귀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는데 교회를 위하고 성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하나님께서 즐거워하시는 바입니다. 받아먹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성탄절에 장국밥을 해서 한 그릇씩 주려고 하는데, 먹는 사람도 괜찮을 것 같고, 한 자리에 앉아서 한 번 나눠 먹는 것에도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밥하는 사람, 국 만드는 사람, 밥과 반찬을 날라주는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성도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였는데, 장국밥 한 그릇 주는 사람도 복이 있을 것 아닙니까? 냉수도 주고, 다 주는 것입니다. 하여간 주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봉사하는 사람이 귀합니다. 이럴 때에 봉사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봉사도 조금하는 사람보다 많이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5. 하나님을 바라보며 긍휼을 기다림
본문 123편 1절에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 이것이 좋은 생활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생활,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도와주시기를 기다리는 생활, 그런 생활이 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바라볼 때 눈을 뜨고 바라볼까요? 눈을 감고 바라볼까요?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고, 감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 즉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이 더 좋습니다.
본문 123편 1절에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눈을 들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 이것이 좋은 생활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생활,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도와주시기를 기다리는 생활, 그런 생활이 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는 생활을 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바라볼 때 눈을 뜨고 바라볼까요? 눈을 감고 바라볼까요?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고, 감고 바라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눈을 감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 즉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생활이 더 좋습니다.
본문 123편 2절에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람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바라보고,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바라본다고 하였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기를 기다립니다. 종의 눈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상전의 손을 바라봅니다. 또 여종의 눈은 무엇을 바라봅니까? 그 주모의 손을 바라봅니다. 왜 바라봅니까? 무엇을 줄까 하고, 주지 않을까 하고 바라보는 것입니다. 뭐 하나만 줘도 아주 기쁩니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주모의 손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는 누구를 바라봅니까?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좀 주지 않으실까 하고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좀 주시면 좋겠는데 언제나 좀 주시겠습니까?’하고 하나님의 손을 늘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와주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도움 받은 것을 가지고 종이나 여종을 도와주는 생활, 그런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6. 멸시와 조소를 받는 중에서 건져달라고 기도함
본문 123편 3절에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다른 사람들이 멸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심한 멸시를 받으면서도 하나님께 긍휼 얻기를
기다리는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 123편 4절에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평안한 자라는 것은 죄를 짓고도 가책을 안 받고 마음이 평안한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죄를 지으며 곁길로, 불의한 길로 가면서 아무런 가책도 받지 않고 평안을 누리는 자가 성도를 조소하고 비웃는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가 성도를 멸시하는데, 그것이 우리 심령에 넘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여호와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기시옵소서’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는 때에는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기다리는,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 기도를 하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멸시와 천대 받는 가운데에서 반드시 건져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