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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3일 토요일

예레미야 37:1-21 옥에 갇힌 예레미야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옥에 갇힌 예레미야
예레미야 37:1-21

1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로 유다 땅의 왕을 삼음이었더라 2그와 그 신하와 그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
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3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
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5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 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6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7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갈대아 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 9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 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 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찌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11갈대아 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12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13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 14예레미야가 가로되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로 끌어가매 15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으로 옥을 삼았음이더라 16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17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 18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19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 20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21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

1.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청원함

본문 1-2절에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를 대신하여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로 유다 땅의 왕을 삼음이었더라 그와 그 신하와 그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로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은 선한 왕인데, 그가 죽은 후에 맏아들 여호아하스(요하난)이 나이 23살에 왕이 되어 3달 동안 왕위에 있다가 애굽으로 잡혀갔습니다(왕하23:31-34). 그 다음 요시야 왕의 둘째 아들 여호야김(엘리아김)이 왕이 되어 11년 동안 치리하다가(왕하 23:36)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갔습니다(대하 36:5-6). 그리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고니야)가 8세에 왕이 되어 3달 10일 동안 왕위에 있다가 셋째 아들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는데, 시드기야는 요시아 왕의 아들이며 유다의 마지막 왕입니다. 시드기야가 21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1년을 치리하였습니다(대하 36:11).

본문 3-4절에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므로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어 하나님께 기도해주기를 청원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레미야는 시드기야가 인정한 선지자입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해달라고 청원을 하고, 자기도 기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위급할 때에는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고 예레미야에게 기도해달라고 하였으나,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위급할 때에는 교역자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하고 자기도 기도하지만, 그때가 지나면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어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기도를 하되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기도하고, 그 말씀을 순종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기도해야 기도의 효과가 있고,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2. 바로의 군대로 인하여 물러갔던 갈대아 군대가 다시 와서 예루살렘을 멸망시킨다고 함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야 함

본문 5절에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 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고 하였습니다. 갈대아 군대(바벨론 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시드기야 왕이 애굽에 구원을 청하였습니다(겔 17:15). 이것은 바벨론 왕을 섬기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죄입니다(렘 27:12). 시드기야 왕을 왕으로 세운 이가 누구입니까? 바벨론 왕이 세웠습니다. 바벨론에서 시드기야의 조카 여호야긴을 사로잡아가고, 시드기야 왕을 유다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약조를 했는데, 얼마 후 시드기야 왕이 바벨론 왕과 약조한 것을 배반하고,
애굽을 의지한 것은 바벨론을 배반한 것입니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을 배반하므로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를 벗어버린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 유다는 바벨론의 멍에를 메어야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 좋은 것 같으나 그 멍에를 메고 종 살
이하며 신앙을 잘 지킬 때에 하나님 앞에 좋은 무화과가 되며(렘24:4-7),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에서 성소가 되어 주십니다(겔 11:16). 그러나 시드기야 왕은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를 벗어버리고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바벨론을 섬기면서 신앙을 지키라는 것이지, 신앙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을 섬겨야 너희가 잘되고 산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면 앞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창성해나갑니다. 또 하나님께서 메어주
신 나무 멍에를 꺾어버리면 대신에 쇠 멍에가 옵니다(렘 28:1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나무 멍에를 잘 메고 나가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쇠 멍에는 나무 멍에보다 몇 배나 무겁고, 강한 멍에라서 견디기가 힘듭니다. 예수님께서도 멍에를 메고 나가시며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는데, 멍에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다 멍에가 있는데, 그 멍에를 메고 나가면서 거기서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내가 지고 나가야 할 사명이 누구에게나 다 있는데, 그것이 멍에입니다. 멍에를 메면 제 마음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소가 멍에를 메면 주인이 “이랴”하면 가야 하고, “와”하면 서야 하고, “도취”하면 돌아야 합니다. 멍에를 잘 메고 나가는 소는 주인이 잘해줍니다. 그러나 멍에를 안 메겠다고 하는 소는 잡아먹습니다. 그러므로 멍에를 잘 메어야 합니다. 집에 들어가도 멍에가 있고, 교회에 나가도 멍에가 있고, 직장에 나가도 멍에가 있습니다. 그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아버지의 멍에를 안 메려고 달아나다가 무슨 멍에를 멨습니까? 쇠 멍에를 멨습니다. 아버지의 멍에는 나무 멍에로 사랑도 있고, 배도 안 고프게 해주는데, 쇠 멍에는 사정을 봐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는 고생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더
좋은 성도를 만들어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메어주시는 멍에입니다.
예레미야 29장 11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 멍에를 메어준 것은 재앙이 아니라 장래에 소망을 주려고, 더 잘되게 하려고 메어준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안 메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를 잘 메면 영의 자유가 생깁니다. 육신의 권세가 깨어지면서 영의 권세가 생기고, 육신의 광채가 없어지면서 영의 광채가 생기며, 육신의 힘이 없어지고 영의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멍에를 메어주신 것은 육신의 세력과 육신의 광채를 모두 꺾어버리고, 더 좋은 영적 권세와 영적 능력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벗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본문 6-8절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 왕에게 이르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갈대아 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취하여 불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는데, 유다를 도우러 왔던 바로의 군대는 애굽으로 돌아가고 바벨론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을 치러 와서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불사른다는 것입니다. 나무 멍에를 벗으려고 하면 쇠 멍에가 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메워주신 멍에를 잘 메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적으로도 우리를 도와준 나라를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반미 운동을 하는데 6·25 때 미국이 우리나라를 안 도와주었으면 우리는 망했을 것입니다. 그때 미국에서 많은 구제 물자로 의복과 쌀과 설탕과 약 등을 보내주었습니다. 한국과 북한의 GNP를 비교해도 몇 배의 차이가 납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잘되게 해주셨는데, 배가 불러서 반항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로 가르쳐주고 길러주었는데, 나중에 배신하고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신하는 것이 하나님께 옳은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배신하고 나가면 어떻게 복을 받겠습니까? 배신은 악한 것입니다. 끝까지 의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벗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본문 9-10절에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 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 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찌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고 하였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군대가 아주 물러갔다고 생각하였으나 그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바벨론 군대를 쳐서 부상자만 남긴다고 할지라도 바벨론 군대가 반드시 일어나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불사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벨론 군대가 약해졌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들을 통해서 유다 백성에게 쇠 멍에를 메워주시고야 맙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벗어버리면 더 큰 것이 옵니다. 사람은 언제나 멍에를 메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낮추시고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시려고 한다고 하셨는데(신 8:16),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어야 복을 받습니다.

에스겔 17장 20절에 “내 그물을 그 위에 베풀며 내 올무에 걸리게 하여 끌고 바벨론으로 가서 나를 반역한 그 반역을 거기서 국문할찌며”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안 메고 벗어버리면 올무에 걸리고 쫄딱 망합니다. 또 호세아 2장 6-7절에는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저가 그 연애하는 자를 따라갈찌라도 미치지 못하며 저희를 찾을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이라 그제야 저가 이르기를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쇠 멍에
를 메고 회개한 후에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메어야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3. 예레미야가 고향에 가려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힘

본문 11-13절에 “갈대아 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하여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베냐민 땅은 예레미야의 고향입니다(예레미야 1:1). 예레미야가 자기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베냐민 땅으로 가려 하여 예루살렘 성 북쪽 문 베냐민 문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은 숙부의 아들 사촌 동생의 땅 산 것을 받기 위해 간 것입니다(예레미야 32:8). 이리야는 베냐민 문의
문지기 두목으로,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손자입니다. 이리야의 조부 하나냐는 예레미야를 항상 반대하였고 예레미야와 싸우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죽었습니다(예레미야 28:17). 그러므로 이리야가 예레미야에게 늘 반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때 예레미야를 붙잡아 끌고 가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네가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라고 이리야가 예레미야를 정죄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항복하려 한다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참 선지자에게 누명을 씌워 핍박하고 죽이려고 합니다.

본문 14-15절에 “예레미야가 가로되 망령되다 나는 갈대아 인에게 항복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이리야가 듣지 아니하고 예레미야를 잡아 방백들에게로 끌어가매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으로 옥을 삼았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방백들이 예레미야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매 맞고 옥에 갇힌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위하는 것과 진리 때문에 갇혔습니다.

4.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출옥시켜 떡을 줌

본문 16-17절에 “예레미야가 토굴 옥 음실에 들어간 지 여러 날 만에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그를 이끌어 내고 왕궁에서 그에게 비밀히 물어 가로되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 예레미야가 대답하되 있나이다 또 가로되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토굴에 갇힌 지 여러 날 만에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왕궁으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로서 받은 말씀이 있느뇨?”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왕이 예레미야가 참 선지자인 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의 환난에서 면할 길이 있는가?”하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때 예레미야가 왕에게 “왕이 바벨론 왕의 손에 붙임을 입으리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왕에게 감히 직접 말할 수 없습니다. 왕에게 듣기 좋은 말이나 하지,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생명을 내어놓고 전하였습니다.

본문 18-19절에 “예레미야가 다시 시드기야 왕에게 이르되 내가 왕에게나 왕의 신하에게나 이 백성에게 무슨 죄를 범하였관대 나를 옥에 가두었나이까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왕에
게 먼저 자기는 옥에 갇힐 만한 죄가 없으나 애매하게 옥에 갇힌 일에 대해 호소하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이 와서 왕과 이 땅을 치지 아니하리라고 예언한 왕의 선지자들이 이제 어디 있나이까’라고 하였는데, 이때는 유다 백성이 이미 바벨론에 두 차례나 포로로 잡혀갔고 바벨론 군이 3차로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습니다. 즉, 바벨론 군이 이 땅을 치지 않는다고 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거짓임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의 말은 때가 되면 다 드러납니다. 신명기 18장 22절에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참 말이라고 하면 그 말이 이루어져야겠는데,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보면 거짓된 말임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 20-21절에 “내 주 왕이여 이제 청컨대 나를 들으시며 나의 탄원을 받으사 나를 서기관 요나단의 집으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내가 거기서 죽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이에 시드기야 왕이 명하여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떡 만드는 자의 거리에서 매일 떡 한 덩이씩 그에게 주게 하매 성 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이르니라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머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 왕에게 요나단의 집에 보내지 말라고 탄원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예레미야의 탄원을 듣고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 두고, 성중의 떡이 다할 때까지 매일 떡을 한 개씩 주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성중에 떡이 다할 때까지 예레미야가 굶어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벨론 군대가 다시 온다는 것과 왕이 바벨론 왕에게 잡힌다는 것,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 망하고 불사름이 된다는 말을 했는데도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를 살려둔 것은 하나님께서 시드기야의 마음을 감동시켜 예레미야를 보호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릴 자는 어떠한 사람을 감동시켜서라도 살려놓으십니다. 그리고 데려갈 자는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 있어도 하나님께서 불러 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