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왕의 범죄와 최후
사무엘상 31:1-13
1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4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5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8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사무엘상 31:1-13
1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4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5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6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7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 8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 9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10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11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12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 13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일을 금식하였더라
1. 이스라엘이 패전함
본문 1절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가 서로 대진하고 있었는데, 블레셋 군대가 이스라엘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이 패전하여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치는 바람에 많은 사람이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전쟁에 패전하면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2. 사울과 사울의 세 아들 및 그의 사람들이 죽음
본문 2절에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사울의 세 아들이 죽었는데 그 중에 요나단이 죽었습니다. 요나단이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이고 의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다윗에 대해
서도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실 것을 알고 많이 도와 준 선한 요나단인데 여기서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많이 도와주고 하나님의 뜻을 많이 알고 잘 하였는데 그 혜택을 이 세상에서 보지 못하고 그만 전쟁마당에 나가서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나
단이 하늘에 가서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받았을 것입니다. 선한 일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잘 나가다가 이 세상에서 하나도 혜택을 입지 못하고 고난만 당하다 죽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한 것, 하나님 앞에 바르게 한 모든 일,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한 모든 일은 이 세상에서 못 받았어도 하나님의 앞에 가서 다 상급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서 행한 대로 하나님의 앞에 가면 갚아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요나단이 잘해서 죽지 않고 다윗이 왕이 된 다음에 다윗의 다음 자리에 앉아서 오랫동안 총리로 일을 하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 보다 아예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선만 심어 놓고, 의만 심어 놓고 세상에서 거두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하늘나라에 가서 더 큰 영원한 것을 받는 것이 됩니다. 요나단이 다윗의 다음 자리에서 오랫동안 영광을 누리는 것 보다 여기서 죽은 것이 하나님의 앞에 가서는 더 큰 상급입니다. 세상의 것은 다 없어지지만 하나님 앞에서 받는 것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본문 3-6절에 “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 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 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병기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즐겨 행치 아니하
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
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자살했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너무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조급하였습니다. 활 쏘는 자가 뒤로 따라와 지금 당장 잡아 죽이려 하고 여기 중상했다라고 하였는데 어떤 중상을 입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블레셋 사람 앞에 잡힐 것 같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잡히면 끌고 다니면서 얼마나 모욕을 하겠습니까? 얼마나 고난을 주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을 많이 주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 모욕을 하겠습니까? 이에 사울이 ‘아예 자살 하는 것이그런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죽을 것인데 죽을 바에는 블레셋 사람 앞에 농락 거리가 되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에게 끌리어 다니면서 모욕거리가 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죽을 바에는 블레셋 사람의 칼에 죽지 아니하고 자기 병기든 사람보고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병기 든 사람이 사울을 보호하러 다니다가 그 왕을 죽일 수 있습니까? 죽이질 않으니 사울이 자기 칼을 빼서 그 칼에 엎드러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살을 하였습니다. 병기든 자도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 칼은 원수를 죽이려고 가지고 다니던 것입니다. 만들기도 원수를 죽이기 위해 만들었고 가지고 다니는 것도 원수를 죽이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 것인데 결국은 이렇게 위급한 가운데 빠지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니 자기 칼에 자기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별수 없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용사라도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 버리셔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 하고 결국은 자기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자살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가만히 있다가 블레셋 사람의 칼에 죽었으면 죄를 하나도 안 지을 뻔 했습니다. 자살 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입니다. 살인 죄입니다. 자기 생명은 자기 생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생명을 제가 죽였으니 살인 죄에 해당됩니다. 사울이 죽을 때에 살인 죄를 또 짓고 죽은 것입니다. 모욕을 안 당하겠다고 죄를 하나 더 졌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나가게 되면 점점 어두워져서 죄 위에 죄를 더하고 죽을 때에도 죄를 더 짓고 죽고 맙니다.
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에 엎드러지매 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 그 위
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 자살했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너무 위급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조급하였습니다. 활 쏘는 자가 뒤로 따라와 지금 당장 잡아 죽이려 하고 여기 중상했다라고 하였는데 어떤 중상을 입었는지 모릅니다. 이대로 나가다가는 블레셋 사람 앞에 잡힐 것 같습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잡히면 끌고 다니면서 얼마나 모욕을 하겠습니까? 얼마나 고난을 주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을 많이 주겠습니까? 얼마나 하나님 모욕을 하겠습니까? 이에 사울이 ‘아예 자살 하는 것이그런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죽을 것인데 죽을 바에는 블레셋 사람 앞에 농락 거리가 되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에게 끌리어 다니면서 모욕거리가 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죽을 바에는 블레셋 사람의 칼에 죽지 아니하고 자기 병기든 사람보고 죽여 달라고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병기 든 사람이 사울을 보호하러 다니다가 그 왕을 죽일 수 있습니까? 죽이질 않으니 사울이 자기 칼을 빼서 그 칼에 엎드러져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자살을 하였습니다. 병기든 자도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 칼은 원수를 죽이려고 가지고 다니던 것입니다. 만들기도 원수를 죽이기 위해 만들었고 가지고 다니는 것도 원수를 죽이기 위해서 가지고 다닌 것인데 결국은 이렇게 위급한 가운데 빠지고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니 자기 칼에 자기가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도와주시면 별수 없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용사라도 아무리 장사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내 버리셔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 하고 결국은 자기 칼에 죽고 말았습니다. 자살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아무리 모욕을 당해도 가만히 있다가 블레셋 사람의 칼에 죽었으면 죄를 하나도 안 지을 뻔 했습니다. 자살 하는 것은 살인하는 것입니다. 살인 죄입니다. 자기 생명은 자기 생명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피로 값주고 사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값을 주고 산 하나님의 생명을 제가 죽였으니 살인 죄에 해당됩니다. 사울이 죽을 때에 살인 죄를 또 짓고 죽은 것입니다. 모욕을 안 당하겠다고 죄를 하나 더 졌습니다. 이렇게 죄를 짓고 나가게 되면 점점 어두워져서 죄 위에 죄를 더하고 죽을 때에도 죄를 더 짓고 죽고 맙니다.
3. 이스라엘 사람이 도망한 성읍에 블레셋 사람이 거함
본문 7절에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다 도망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죽일까봐 집을 다 버리고, 가축을 다 내버리고, 토지를 다 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도망친 동네에 와서 거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골짜기 저편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과 요단 건너편에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도망한 것과 사울과 그 아들들의 죽었음을 보고 성읍들을 버리고 도망하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르러 거기 거하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 다 도망쳤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죽일까봐 집을 다 버리고, 가축을 다 내버리고, 토지를 다 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러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도망친 동네에 와서 거하였습니다.
4.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를 모욕함
본문 8절에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 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라고 하였습니다. 참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사울이 왜 죽었습니까? 역대상 10장13-14절에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죽은 이유가 나옵니다.
죽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여호와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의 죄 때문에 사울이 죽었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범죄를 하였기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죄 값으로 죽었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원수에게 내 맡기셔서 원수가 와서 다 죽이게 만들어 놨습니다. 죄를 지
으면 하나님께서는 원수에게 내 맡기십니다. 믿지 않는 이방사람에게맡기어서 발로 밟고 다 죽이게 만드십니다. 자기만 죽었습니까? 자기도 죽고 아들 셋이 다 죽고 그 다음에 백성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많은 성읍을 빼앗겼습니다. 죄 값은 이렇게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안 지키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에게 내 맡기어서 이방 사람이 와서 다 점령하게 만들고 다 죽이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입니다.
사울의 세 가지 죄
사울이 망한 죄가 몇 가지입니까?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죄는 이렇게 결과가 비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언제나 지켜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어겨도 잘 살 것 같지만 성경말씀을 어기면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요새 성경말씀은 다 내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때가 되었는데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성경말씀을 언제나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것이 없는가 하며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말씀 어기는 것이 없는가, 십계명
가운데 범한 것이 없는가, 성경을 범한 것이 없는가, 언제나 말씀 어기는 것은 무서운 결과가 초래할 줄 알고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성경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사울이 망한 죄가 몇 가지입니까? 첫째,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죄는 이렇게 결과가 비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언제나 지켜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어겨도 잘 살 것 같지만 성경말씀을 어기면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요새 성경말씀은 다 내 버리고 예수님을 믿는 때가 되었는데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성경말씀을 언제나 잘 지켜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어기는 것이 없는가 하며 늘 살펴보아야 합니다. 자기가 말씀 어기는 것이 없는가, 십계명
가운데 범한 것이 없는가, 성경을 범한 것이 없는가, 언제나 말씀 어기는 것은 무서운 결과가 초래할 줄 알고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성경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둘째 죄는 무엇입니까?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신접한 여인에게 가서 가르치기를 청한 것은 죄입니다. 무당한테 가서 점하는 식으로 가르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무당에게 가는 것, 점하는 것, 사주팔자를 보는 것, 이것이 다 신접한 자에게 청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멸망하는 죄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곳에 가서 물어보면 안 됩니다.
셋째 죄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물어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찾아야 했는데 하나님께 물어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것이 멸망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제 생각대로 하
는 것은 사울의 망하는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는 것은 사울의 망하는 죄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얻는 법
그러면 사울이 실제로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사무엘상 28장 6-7절에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그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물어봤다라고 하였습니다. 물어 봤지만 여호와께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답하지 않으시니 부득불 마지못해서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대답하지 않으셨다고 하였습니까? 사울이 자기 목소리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도록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상달이 되도록 물었어야 하는데 그저 몇 마디 하나님께 물어보다가 응답이 없으니까 신접한 자에게 간 것입니다. 끝까지 상달이 되도록 기도를 해야 하는데 조금 하다가 그만 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물어보긴 물어봤습니다. 물어봤는데 하나님께로부터 소식이 안 옵니다. 전화로 말하면 전화 줄이 끊어졌습니다. 전화 줄이 끊어졌는데 끊어진 전화로 전화를 해보고 응답이 없다고 딴 짓을 한 것입니다. 끊어졌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줄을 이어서 전화를 해야 하겠는데 끊어진 대로 멀리 떠나서 하려니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응답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회개 해야 합니다. 죄로 막혔다고 하였습니다. 죄로 막혀서 하나님과 기도가 안 되니까 하나님께서 안 들어주십니다. 죄를 회개하면서 기도해야 하고 그 다음에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아야 합니다. 그래도 응답이 없으시면 선지자한테 가서 물어 봤으면 될 뻔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신접한 자에게 가면 안 됩니다.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그래도 하나님께만 매달려야 합니다.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하나님께 매달리고 떠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언젠가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을 해주시지 않는다고 해서 신접한 자에게 가는 것은 성경을 어기는 잘못된 방법입니다. 잘못된 방편을
쓰는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죽어도 거기서 죽을 예산을 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어야 하겠는데 사울이 인본주의를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는다고 인본주의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인본주의를 쓰면 안 됩니다. 인본주의는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하며 아무리 찾아도 잘 모르겠으니까 인본주의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죄입니다.
쓰는 것은 멸망의 길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끝까지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다리고, 죽어도 거기서 죽을 예산을 하고 하나님께만 부르짖어야 하겠는데 사울이 인본주의를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는다고 인본주의를 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아도 인본주의를 쓰면 안 됩니다. 인본주의는 쓰지 않아야겠습니다. 사울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하며 아무리 찾아도 잘 모르겠으니까 인본주의를 썼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망하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하였습니까?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는 죄가 가로막아 응답이 없는 것이므로 죄를 회개하려고 힘을 써야 합니다.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둘째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전심
으로 하나님께 구하고 계속 구하여야겠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에게 가서 물어봤으면 그 선지자가 잘 가르쳐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갈 생각은 안 하고 무당에게
간 것입니다. 사무엘이 살았을 때는 사무엘에게 갔으면 됐을 뻔 했고, 사무엘이 죽은 다음에는 사무엘을 계승한 선지자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나단이 있었는지 갓이라는 선지자가 있었든지 누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가서 물어봐도 됐을 뻔 했는데 그만 인본주의를 써서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 봤기 때문에 여기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는 법
오늘날은 하나님께 물어봐도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대답해주시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겠습니까?
첫째,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넷째, 신앙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물어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해야 합니다. 사울은 인본주의를 써서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봤으니 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나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신접한 자에게 물어본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접한 자가 하나님을 압니까?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 가지 죄를 늘 범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사울이 망한 것을 보고도 이리로 들어가면 망합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지킬 것, 말씀을 어기면 멸망인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지금은 잘 될 것 같아도 얼마 안 가면 다 망합니다. 자기도 망하고 아들 셋이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나라도 망하지 않았습니까?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제일 복있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물어봐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명문에는 없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할까요 하지 말까요’, 요새는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 신앙양심, 자기보다 나은 선지자에게 물어보는 일 등 여러 가지 경로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잘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인본주의를 쓰거나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성경대로 대답이 나오지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성경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대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하나님께 물어봐도 하나님께서 이래라 저래라 대답해주시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찾겠습니까?
첫째,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둘째, 성령의 감동으로 찾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아야 합니다.
넷째, 신앙양심에서 찾아야 합니다.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물어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바로 해야 합니다. 사울은 인본주의를 써서 신접한 자에게 가서 물어봤으니 망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언제나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신접한 자에게 물어본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접한 자가 하나님을 압니까?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어떻게 바로 알 수 있습니까? 우리가 세 가지 죄를 늘 범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사울이 망한 것을 보고도 이리로 들어가면 망합니다. 망하는 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나 두렵고 떨림으로 지킬 것, 말씀을 어기면 멸망인줄 알아야 합니다. 누구든지 지금은 잘 될 것 같아도 얼마 안 가면 다 망합니다. 자기도 망하고 아들 셋이 다 망하지 않았습니까? 나라도 망하지 않았습니까? 다 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제일 복있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고 언제나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물어봐서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명문에는 없는 일이 많지 않습니까?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이것을 할까요 하지 말까요’, 요새는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최대한 이용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하고 기도를 많이 하는 가운데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 신앙양심, 자기보다 나은 선지자에게 물어보는 일 등 여러 가지 경로로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바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잘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신접한 자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인본주의를 쓰거나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야 성경대로 대답이 나오지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은 성경대로 대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을 알아야 대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경대로 해결하려고 해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시키는 대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 중에도 바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도 사건을 바로 판단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도 신앙 면에 들어가면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아홉 가지는 바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에 들어가서, 신앙 문제에 결부된 것은 그 속에 마귀가 있으니 비뚤어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 속에는 마귀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는 사람 속에는 성령이 있고 안 믿는 사람 속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 속에 역사하는 신은 마귀라고 하였습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하였습니다. 불순종의 아들, 안 믿는 사람 속에 역사하는 나쁜 영이 있는 줄을 우리가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안 믿는 사람도 좋은 것은 물론 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다가 대목장에 부러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안 믿는 사람의 인도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 좋은 면은 어느 정도 본 받을 수 있지만 신앙 면에서는 본 받으면 안 됩니다. 안 믿는 자들은 성경을 모르고 속에 마귀가 역사하니까 바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언제나 알아야 합니다.
모든 일을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을 하나 해야 하겠는데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기도해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라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신앙양심을 쓰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해보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선지자에게 가서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교역자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바른 인도로 하나님의 뜻을 잘 찾아 행해야겠습니다. 바로 찾아서 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면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섭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도 망하고 자녀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고 그 동네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비참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언제나 이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울은 죽고 이제 다윗의 시대로 넘어 갑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복을 받았는데 나라도 잘 되고 자기도 잘 되고 다 잘 되었습니다. 믿음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여러 세대 후에 유대나라의 마지막인 시드기야 왕 때에 가서 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우상을 따라 갔습니다. 마귀를 따라 갔습니다. 선지자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시드기야 왕을 바벨론 나라에 붙여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나라에 붙이시니 바벨론의 군대가 와서 시드기야 왕을 잡아 그 목전
에서 아들들을 다 죽이고 왕의 두 눈알을 빼고 쇠사슬에 결박해 바벨론에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드기야 왕이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사울 왕이나 시드기야 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아무리 훌륭한 왕이라고 해도 그 자손이 하나님 말씀 어기니까 사울 왕과 같이 유대나라도 그렇게 망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기면 이렇게 무서운 줄 알고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습니다.
사울의 시체가 모욕 받음
본문 9-10절에 “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 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라고 하였습니다. 의복이 아주 귀중한 때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옷을 벗겨다 빨아서 입으려 했던 모양입니다. 승리한 블레셋 사람들이 다음날 죽은 사람들의 옷을 벗기려 왔는데 벗기다 보니 사울을 발견했습니다. 사울과 그 아들 죽은 것을 발견하고 사울의 머리를 벴습니다. 그리고 갑옷을 벗기고 그 머리를 베서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어 자기가 승리했다고 블레셋 사람이나 그 신당에 공포하였습니다. 머리와 갑옷을 전국에 그것을 돌리면서 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다 돌린 다음에 도로 가져다가 머리는 매달고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역대상 10장 10절에 “사울의 갑옷을 그 신의 묘에 두고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단지라”고 하였습니다. 그 머리를 다곤의 묘에 달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음에 머리를 잘라서 여러 지방에 돌리며 자기네 신이 사울을 죽이고 승리했다는 것을 공포하고 그 다음에 가져다가 머리를 자기들의 다곤의 신당 앞에 매단 것 같습니다. 의복은 아스다롯의 신당 우상 집에다 두었습니다. 시체는 어떻게 했습니까? 벧산 성벽에 못 박았습니다. 성벽에 가져다가 못을 박
아 놨습니다. 머리는 가져다가 다곤의 묘에 달아놨으니 모가지 자른 머리 없는 시체를 성벽에 못 박아 놓은 것입니다.
5. 사울과 그의 세 아들을 장사함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에게 입은 은혜를 갚음
본문 11-12절에 “길르앗 야베스 거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의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가 일어나 밤새도록 가서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취하여 가지고 야베스에 돌아와서 거기서 불사르고”라고 하였습니다. 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착한 사람
들입니다. 생명을 내 놓고 장사하러 나온 것입니다. 사무엘상 11장 9절에 ”무리가 온 사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길르앗 야베스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내일 해가 더울 때에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 하라 사자들이 돌아가서 야베스 사람들에게 고하매 그들이 기뻐하니라 야
베스 사람들이 이에 가로되 우리가 내일 너희에게 나아가리니 너희 소견에 좋을 대로 우리에게 다 행하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을 암몬 사람들이 침노하여 들어 왔을 때 다 점령당하고 멸망할 뻔 했습니다. 사울 왕이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생명을
내 놓고 싸워 암몬 사람을 쳐 물리고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하여 준 일이 있습니다. 사울이 왕 된 초기였습니다. 사울이 40년을 왕 노릇했다라고 하였는데, 초기니까 약 40년 전에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사울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야베스 사람
들이 일어선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해준 사울 왕이 이렇게 죽었으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느냐, 우리가 사울 왕을 가만히 둘 수 없다, 30년 전에 어떻게 해줬느냐 사울 왕이 우리를 안 구원해줬으면 다 망했을 뻔 했는데, 30년 전에 우리를 구원해준 은혜를 갚을 때가 이때
다, 일어나 가자’ 하며 일어섰습니다. 용사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지키다가 죽일 줄 모르니 생명을 내놓고 다 일어나 가서 벧산 성벽에 못 박은 사울의 시체,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 왔습니다. 사울의 머리는 다곤 신당에 매달았다, 라고 하였는데, 머리까지 가지고 왔을 것 같습니다. 매달아 놓은 머리도 가져 오고, 벧산 성벽에 못 박은 그 시체도 가져오고 또 세 아들들의 시체도 가져다가 화장을 했습니다. 불살라서 남은 뼈는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였습니다. 화장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화장하는 것이 성경에 있으니 화장하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면 안 됩니다. 매장을 할 수도 있고 화장을 할 수도 있습니다. 세 아들 다 화장했습니다. 사울만 화장한 것이 아닙니다.
선을 심으면 반드시 걷을 날이 옴
본문 13절에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3~40년 전에 사울이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해줬는데, 훗날 이 사람들이 일어나 사울을 장사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을 심어 놓으면 언젠가는 거둘 날이 옵니다. 이 사
람들이 다른 때는 한 번도 사울 왕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사울이 죽은 다음에 ‘우리가 사울이 아니었다면 그때 암몬 사람들에게 다 망하지 않았겠느냐,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사울이 비참하게 죽어서 벧산 성벽에 시체가 못 박혀 있는데 이대로 두면 새들이 와서 먹지 않겠는가, 일어나서 장사하자’ 하며 생명을 내놓고 가서 거둬 장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을 심어놓으면 언젠가 걷을 날이 옵니다. 죽은 다음에라도 걷을 날이 옵니다. 악을 심어 놓으면 죽은 다음에라도 그 악에 대한 보응이 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선을 심어놓고, 남을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하고, 믿음을 쓰고,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구원해야겠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을 선으로 해야 합니다. 언젠가 다 돌아옵니다. 선을 심지 못하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선을 심어야겠습니다. 사울왕도 선을 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에 선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죄지은 것 때문에 죄의 값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또 사울 왕만 망한 것이 아니고 다윗 왕의 후대인 유대나라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도 똑같이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고 이렇게 돌아가다가 똑같이 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이방사람에게 내 맡기어 얼마나 무섭게 심판하시는가를 깨달아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습니다.
본문 13절에 “그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 장사하고 칠 일을 금식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3~40년 전에 사울이 야베스 사람들을 구원해줬는데, 훗날 이 사람들이 일어나 사울을 장사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선을 심어 놓으면 언젠가는 거둘 날이 옵니다. 이 사
람들이 다른 때는 한 번도 사울 왕을 도와준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다가 사울이 죽은 다음에 ‘우리가 사울이 아니었다면 그때 암몬 사람들에게 다 망하지 않았겠느냐,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사울이 비참하게 죽어서 벧산 성벽에 시체가 못 박혀 있는데 이대로 두면 새들이 와서 먹지 않겠는가, 일어나서 장사하자’ 하며 생명을 내놓고 가서 거둬 장사하였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선을 심어놓으면 언젠가 걷을 날이 옵니다. 죽은 다음에라도 걷을 날이 옵니다. 악을 심어 놓으면 죽은 다음에라도 그 악에 대한 보응이 옵니다. 언제든지 우리는 선을 심어놓고, 남을 도와주고, 선한 일을 하고, 믿음을 쓰고, 복음을 전해서 생명을 구원해야겠습니다. 언제나 모든 일을 선으로 해야 합니다. 언젠가 다 돌아옵니다. 선을 심지 못하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선을 심어야겠습니다. 사울왕도 선을 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가 죽은 다음에 선이 돌아왔습니다. 물론 죄지은 것 때문에 죄의 값으로 멸망하였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또 사울 왕만 망한 것이 아니고 다윗 왕의 후대인 유대나라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도 똑같이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우상을 섬기고 이렇게 돌아가다가 똑같이 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죄하면 하나님께서 이방사람에게 내 맡기어 얼마나 무섭게 심판하시는가를 깨달아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섬겨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