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을 성대히 지킨 요시야 왕의 최후
역대하 35:1-27
1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2왕이 제사장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고 면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사무를 행하게 하고 3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4너희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글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 너희 족속대로 반열을 따라 스스로 예비하고 5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6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찌니라 7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8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하나님의 전을 주장하는 자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에게 양 이천육백과 수소 삼백을 유월절 제물로 주었고 9또 레위 사람의 두목들 곧 고나냐와 그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더라 10이와 같이 섬길 일이 구비하매 왕의 명을 좇아 제사장들은 자기 처소에 서고 레위 사람들은 그 반열대로 서고 11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들은 저희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고 또 레위 사람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12그 번제물을 옮겨 족속의 차서대로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소도 그와 같이 하고 13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남비에 삶아 모든 백성에게 속히 분배하고 14그후에 자기와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하니 이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번제와 기름을 저녁까지 드리는 고로 레위 사람들이 자기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함이더라 15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 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은 각 문에 있고 그 직임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였음이더라 16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단에 드렸으며 17그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18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19요시야의 위에 있은지 십팔 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0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사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나 22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활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그 신복이 저를 병거
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위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역대하 35:1-27
1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2왕이 제사장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고 면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사무를 행하게 하고 3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 4너희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글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 너희 족속대로 반열을 따라 스스로 예비하고 5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6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찌니라 7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8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하나님의 전을 주장하는 자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에게 양 이천육백과 수소 삼백을 유월절 제물로 주었고 9또 레위 사람의 두목들 곧 고나냐와 그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더라 10이와 같이 섬길 일이 구비하매 왕의 명을 좇아 제사장들은 자기 처소에 서고 레위 사람들은 그 반열대로 서고 11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들은 저희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고 또 레위 사람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12그 번제물을 옮겨 족속의 차서대로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소도 그와 같이 하고 13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남비에 삶아 모든 백성에게 속히 분배하고 14그후에 자기와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하니 이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번제와 기름을 저녁까지 드리는 고로 레위 사람들이 자기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함이더라 15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 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은 각 문에 있고 그 직임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였음이더라 16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단에 드렸으며 17그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18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19요시야의 위에 있은지 십팔 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 20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사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21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나 22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23활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24그 신복이 저를 병거
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위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25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26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27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1. 요시야가 대대적으로 유월절을 지킴
왕과 방백들과 두목들이 자신들의 사유 재산으로 백성들의 유월절 예물을 사줌
본문 1-3절에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 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 왕이 제사장들에게 그 직분을 맡기고 면려하여 여호와의 전에서 사무를 행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구별되어서 온 이스라엘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에게 이르되 거룩한 궤를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건축한 전 가운데 두고 다시는 너희 어깨에 메지 말고 마땅히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섬길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거룩한 언약궤를 솔로몬이 건축한 하나님의 성소 가운데 두었습니다. 다시는 메지 말고 영영히 거기에 두라고 하였습니다.
본문 4-6절에 “너희는 이스라엘 왕 다윗의 글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글을 준행하여 너희 족속대로 반열을 따라 스스로 예비하고 너희 형제 모든 백성의 족속의 차서대로 또는 레위 족속의 차서대로 성소에 서서 스스로 성결케 하고 유월절 어린 양을 잡아서 너희 형제를 위하여 예비하되 여호와께서 모세로 전하신 말씀을 좇아 행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가 전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주신 말씀대로 모든 것을 회복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본문 7-9절에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 방백들도 즐거이 희생을 드려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주었고 하나님의 전을 주장하는 자 힐기야와 스가랴와 여히엘은 제사장들에게 양 이천 육백과 수소 삼백을 유월절 제물로 주었고 또 레위 사람의 두목들 곧 고나냐와 그 형제 스마야와 느다넬과 또 하사뱌와 여이엘과 요사밧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레위 사람들에게 유월절 제물로 주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앗수르의 침략 때문에 백성들이 다 가난해졌기 때문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해도 양이나 소를 살만한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자기 돈을 내어 백성들에게 유월절 제물을 사주었고, 방백들과 두목들도 자기 사유의 돈으로 제물을 사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원칙은 백성들이 사서 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살 돈이 없으니 왕과 방백들, 두목들이 자기 돈으로 사서 제사를 하라고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왕이 내놓은 돈으로 산 것이 얼마입니까? 요시야 왕이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굉장히 많은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삼만이고 수소가 삼천이면, 돈으로 얼마입니까? 또 방백들도 양 이천 육백과 소 삼백을 사서 유월절 제물로 백성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레위 사람의 두목은 양 오천과 수소 오백을 사서 레위 사람들에게 제물로 주었습니다. 그러면 왕과 방백, 그리고 두목이 사서 나눠준 제물의 합계가 얼마 입니까? 양과 염소가 삼만 칠천 육백, 소가 삼천 팔백입니다. 이만큼 많은 예물을 드린 때는 사무엘 이후 처음입니다. 히스기야 때보다도 더 많이 한 것입니다.
역대하 30장 24절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칠천을 회중에게 주었고 방백들은 수송아지 일천과 양 일만을 회중에게 주었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준 것은 양이 삼만이고, 히스기야는 칠천입니다. 그러니 요시야가 얼마나 많이 내놓았습니까? 요시야 왕 때가 히스기야 왕 때보다 더 많은 희생의 제물을 바치며 유월절을 성대히 지켰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보다 더 성대하게 지킨 것입니다. 그리고 방백과 두목도 다 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내놓을만한 사람이 내놓아야 합니다. 없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하겠습니까? 있는 사람이 내놓아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있는 사람이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사람이 더 내라는 것입니다. 많이 주신 자에게는 많이 달라고 하고, 적게 주신 자에게는 적게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자는 하나님께 내어놓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만드는 것이 원리 원칙입니다. 모든 재물은 자기 것이 아닙니다. 제 것이라고 묶어 놓고 안 내어 놓으면 안 됩니다. 왕도 태어날 때 무엇을 자기가 가지고 나왔습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그것을 내어서 유월절을 지키면 얼마나 많은 복을 받겠습니까? 방백도 이 세상 올 때에 무엇을 가지고 왔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내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수 있다면, 그것이 큰 복인 것입니다. 이렇게 있는 사람이 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없는 자가 몇 푼을 내겠습니까? 정성은 좋습니다. 과부의 엽전 두 푼을 하나님께서 받아 주셨지만 엽전 두 푼으로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 많이 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주신 사람이 많이 내놓아야 하나님의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조금 받아서 조금 낸다고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게 내어놓는 사람도 믿음으로 하면 자기의 믿는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직분에 따라 충성스럽게 유월절 준비를 감당함
본문 10-15절에 “이와 같이 섬길 일이 구비하매 왕의 명을 좇아 제사장들은 자기 처소에 서고 레위 사람들은 그 반열대로 서고 유월절 양을 잡으니 제사장들은 저희 손에서 피를 받아 뿌리고 또 레위 사람들은 잡은 짐승의 가죽을 벗기고 그 번제물을 옮겨 족속의 차서대로 모든 백성에게 나누어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소도 그와 같이 하고 이에 규례대로 유월절 양을 불에 굽고 그 나머지 성물은 솥과 가마와 남비에 삶아 모든 백성에게 속히 분배하고 그후에 자기와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하니 이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번제와 기름을 저녁까지 드리는 고로 레위 사람들이 자기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위하여 준비함이더라 아삽의 자손 노래하는 자들은 다윗과 아삽과 헤만과 왕의 선견자 여두둔의 명한 대로 자기 처소에 있고 문지기들은 각 문에 있고 그 직임에서 떠날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 형제 레위 사람들이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였음이더라”고 하였습니다. 각자가 자기 분야에서 충성하였습니다. 문 지키는 사람은 자기 처소에 서서 문을 잘 지켰습니다. 문지기가 자기 직임을 떠나지 않아야 도적이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방해가 없습니다. 이방 사람이나 부정한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켜주어야 제사가 잘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도와주는 사람들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문지기를 도와주는 사람, 제사장을 도와주는 사람 등 도와주는 사람들이 잘 도와주어야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과 유월절 지키는 일이 잘되는 것입니다. 제사 드리는 제사장만 유월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문지기도 일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문지기가 지켜주지 않으면 이방 사람이나 방해하는 사람이 들어와 제사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여러 면에서 자기의 본분을 다 해야 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문지기는 문을 지키고, 제사장은 제사를 하고, 소를 잡는 사람은 소를 잡고, 그 사람들을 받들어줄 사람은 받들어주면서 자기 분야의 본분을 각각 잘 맡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유
월절 지키는 일이 실패 없이 성공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수종을 드는 사람도 좋은 직분이고 문지기도 좋은 직분입니다. 안에서 일하는 사람만 좋은 직분이 아닙니다. 문지기가 없어도 안 되고 수종을 드는 사람이 없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좋은 자리에만 있겠다고 하지 말고, 낮은 자리에도 앉아 있어야 모든 것이 잘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은 잘되어 나가지 않습니다. 자기가 어떠한 자리에 있던지, 그 자리에서 할 바를 잘해나가면 하나님의 유월절을 잘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왜 문지기에 세웠느냐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문지기가 얼마나 좋습니까? 시편 84편 10절에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화려한 곳에 있는 것보다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문지기를 해도 얼마나 좋습니까?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고 하였는데, 문지기를 오래하면 다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청와대 문지기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문지기는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르드개도 문지기를 하였는데, 교회 사찰도 오래하면 교회 돌아가는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역할을 더욱 충실히 감당할 수 있게 됩니다.
캐나다 토론토에 삼천 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가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가다가 아침 일찍 새벽 예배가 끝나고 가보니까 사찰이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 대해 사찰에게 물어보니까 훤하게 다 알고 있었습니다. 제 일 대 목사가 누구였고 교인이 몇 명이
었으며, 어떻게 예배를 드렸는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을 만난 것보다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찰이 자기네 교회에서 가르치는 책도 줄 수 있다고 해서 달라고 했습니다. 영어로 쓴 것도 있고 한문으로 쓴 것도 있다고 했습니다. 영어는 내가 모르니까 한문으로 쓴 것을 달라고 했습니다. 사찰이 그 교회의 주인인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문지기가 좋은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각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그 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유월절을 잘 지켜서 하나님께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여기서 많은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사무엘 이후로 가장 성대한 유월절을 지킴
본문 16-19절에 “이와 같이 당일에 여호와를 섬길 일이 다 준비되매 요시야 왕의 명대로 유월절을 지키며 번제를 여호와의 단에 드렸으며 그때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유월절을 지키고 연하여 무교절을 칠 일 동안 지켰으니 선지자 사무엘 이후로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월절을 이같이 지키지 못하였고 이스라엘 열왕도 요시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인 온 유다와 이스라엘 무리와 예루살렘 거민과 함께 지킨 것처럼은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더라 요시야의 위에 있은 지 십팔 년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얼마나 성대히 지켰습니까? 사무엘 이후로 지금까지 이처럼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이후에 처음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역대하 30장 26절에 “예루살렘에 큰 희락이 있었으니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아들 솔로몬 때로부터 이러한 희락이 예루살렘에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굉장한 것입니다. 그가 솔로몬 이후 처음으로 성대한 유월절을 지켰다고 했습니다. 사무엘 때로부터 이처럼 유월절을 지킨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 때 지킨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솔로몬 왕의 위가 다윗 왕이고, 다윗 왕의 위가 사울 왕이고, 그 위가 사무엘인데 사무엘부터 지금까지 이만큼 큰 유월절을 지켜본 적이 없고 솔로몬 때보다 더 크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물론 히스기야 때보다 더 크게 지켰습니다. 요시야 왕 18년에 이렇게 성대한 유월절을 지킨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유월절을 성대히 지켜야 함
유월절은 신약시대의 성찬 예식에 해당됩니다. 성례 가운데 성찬 예식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성대히 지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깊이 참여하는 거룩한 예식을 잘 드렸다는 것입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을 때에 재앙이 넘어가며,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참여하는 일, 생명에 참여하는 일에 모든 것을 전폭적으로 쏟아 바쳐서 유월절을 크게 여기며 거룩하게 참여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유월절을 지내며 크게 은혜 받는 것은 신약시대로 보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깊이 참여하고 생명에 깊이 참여하는 거룩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크게 지킨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그리스도의 살과 피에 좀 더 깊이 참여하려는 정신을 가지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크게 발견하고, 좀 더 그곳에 깊이 들어가고, 그 생명을 많이 받아서 생명의 역사가 우리에게 많아지도록 하는 것이 유월절을 크게 지키는 정신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많이, 크게 지키는 정신으로 많은 희생을 드려서 그리스도의 생명과 피에 참여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2. 요시야가 애굽 왕과 싸우다가 전사(戰死)함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못함
본문 20-24절에 “이 모든 일 후 곧 요시야가 전을 정돈하기를 마친 후에 애굽 왕 느고가 유브라데 강가의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온 고로 요사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더니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나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 활쏘는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 왕이 싸우지 않아야 될 싸움을 싸우다가 죽었습니다.
싸우지 않았으면 안 죽었을 텐데, 공연히 싸우다가 죽은 것입니다. 요시야 왕은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가 사무엘 이후에 제일 큰 유월절을 지켰으며, 그때에 자기의 많은 희생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전심으로 여호와를 찾은 왕이었습니다. 또 우상을 철폐하였고 성전을 수축하였습니다.
그런데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예정되지 않은 것은 없기 때문에, 예정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혜가 부족하여 그렇게 나가다가 죽고 만 것입니다. 물론 요시야 왕의 믿음이 좋았습니다. 그는 양 삼만, 소 삼천 등 많은 물질을 바쳐서 유월절을 지키며, 성경을 들을 때에 옷을 찢고, 백성들에게 성경을 많이 가르친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지혜가 부족하여 안 싸울 싸움을 한 것입니다.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와 싸우려고 가는데, 지나가는 사람을 가만 둬둘 것이지 왜 싸웁니까? 그 땅 좀 지나가면 지나가라고 할 것이지, 왜 싸워서 죽느냐는 것입니다.
본문 21절에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가로되 유다 왕이여 내가 그대와 무슨 관계가 있느뇨 내가 오늘날 그대를 치려는 것이 아니요 나로 더불어 싸우는 족속을 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나를 명하사 속히 하라 하셨은즉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니 그대는 하나님을 거스리지 말라 그대를 멸하실까 하나”라고 하였습니다. 느고가 요시야에게 사자까지 보냈습니다. 애굽 왕이 유다 땅을 통과해서 갈그미스를 치려 한다고 사자를 보내서 양해해 줄 것을 정당하게 요청한 것입니다. 내가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을 다 해주었습니다. 애굽 왕이 정의에 입각해서 말을 한 것입니다. 정의에 입각해서 당신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니까 당신과 상관이 없다고 분명히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종교적 입장에서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때에 요시야가 다윗 왕처럼 했더라면 좋을 뻔 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께 물어보고 결정하였습니다. 다윗은 예전에 ‘하나님이여, 애굽 왕 누구와 싸우시렵니까? 또 우리나라를 치실 것입니까?’하고 물어 보았는데, 요시야 왕도 하나님께 물어봤어야 합니다. 물어봐서 했더라면 싸우지 않았을 자리인데, 무조건 싸우면 되는가보다 하고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잘 모른 것입니다. 애굽 왕 느고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명해서 속히 간다고 했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전폭적으로 믿지는 못해도 그 말을 듣고 요시야 왕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 물어보고 상고해봐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보고 지시를 받았다면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애굽 왕을 통해서 하라고 한 것은 사실인데, 기도를 했더라면 그것이 사실인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도 하지 않고 다 무시해버리고 신임하지 않고 나가다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본문에 보면 우리를 치러 오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왜 싸웁니까? 그저 지나가는 것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치는 것으로 의심이 되면 마주나가 싸우지 말고 지나가는 길 옆에 군대를 배치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나가면 가만히 두고, 싸우자고 하면 싸울 예상을 하고 군대를 배치해놓으면 그만인 것입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 무엇 때문에 마주나가 싸우는 것입니까? 또 하나님께 기도해 보아야 합니다. 기도해보면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셨을 것입니다.
셋째로 정책적으로 ‘너를 죽인다. 그대를 멸할까 하노라’고 한 것을 보면 네가 우리를 막으면 죽인다는 것입니다.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은혜를 좀 받은 후에 온 백성이 요시야 왕을 존경하며 나라가 잘되니까 조금 교만해진 것 같습니다. 요시야가 믿음을 써서 종교 개혁을 하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며 성전을 정결케 하고 수리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을 성대히 지켜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거치며 조금 교만해진 것 같습니다.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은 지혜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믿사오니’하고 나가는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기 쉽습니다. 또 지혜 있게 나가는 사람은 신 신학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했으면 될 뻔 했는데, 요시야 왕이
하나님께 구하지 않고 무조건 나가서 대적하다가 망했습니다. 그렇게 대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싸움이라는 것은 하다 하다 할 수가 없으면 하는 것이지, 이렇게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어찌하든지 회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싸우지 않고 해결을 보려고 하는데도 안 되면 최후에 정 할 수 없을 때에 하는 것이지, 그냥 전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도 북한과 전쟁할 만한 일이 얼마나 많이 생겼습니까? 또 미국과 북한이 전쟁할 만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전쟁을 하면 손해가 많이 나니까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문제도 이와 같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싸우지 않고 해결을 해보려고 해야 합니다. 한 번 안 되면 두 번, 두 번 안 되면 세 번, 싸우지 않고 해결 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도 정 안되겠으면 싸우지 말고 갈라져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니까 안 다투는 방법으로 서로 갈라지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것은 괜찮지만, 싸우면 얼마나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까? 전도의 문이 막히고 피차에 상처가 생기고 막심한 손해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든지 싸우지 않고 해결을 하려고 하다가 정 안되면 서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지는 것이 싸우는 것보다 낫습니다. 피차간에 손해는 생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단이 갈라지는 것도 그래서 갈라지는 것입니다. 같이 있으면서 싸우고 서로 물고 찢고 싸우면 피차간에 망하니까 하다 하다 결국 갈라지는 것입니다. 갈라질 때 싸우지 않고 갈라지면 다음에 만나도 반갑고 인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싸우고 원수가 되어서 이놈, 저놈, 죽일 놈 하면 덕이 되지 않습니다. 갈라져도 좋게 갈라지면 서로가 만나서 인사도 하고 합할 기회가 되면 또 다시 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새 합동 측도 합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싸우지 않고 갈라졌으면 다시 합할 수 있습니다. 고려 파에서도 마산 진주 측과 부산 측이 오랫 동안 갈라졌다가 합했습니다. 그런데 서로 물고 찢다 죽으면 서로 피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가는 것은 하나님의 성도가 할 바가 아닙니다. 안 맞으면 갈라졌다가 다음에 합할 수 있을 때 합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싸우지 않는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무조건 ‘믿사오니’하면서 나가지 말고, 성경의 지혜로 나가야 되겠습니다. 성경에 뭐라고 했는지 잘 모르면,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언제나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보다 앞선 사람은 훤히 알 수가 있습니다. 6학년이 1학년 책을 보는 것과 같기 때문에 훤합니다. 그러나 1학년이 1학년 공부를 하려면 쩔쩔 맵니다. 간단한 덧셈, 뺄셈을 손가락까지 다 써도 쉽지가 않은데 6학년이 1학년 책을 보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또 남자가 한 번 칼을 뺏다가 꽂을 수 있겠는가?,하는 것은 인본주의 생각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칼을 뺏다가 다시 꽂을 수 있지, 뭘 못 꽂겠습니까? 말했다가 고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말했다가도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칠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상고해보면서 기도해보니까 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 같아 고쳤다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처음부터 잘했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잘할 만한 실력이 없었다. 처음에는 잘하려고 하다가 그 다음에 기도해보니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을 어찌하겠느냐? 나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려고 고쳤으니까 너희들도 순종해라”고 하면 주위에서 순종을 안 하겠습니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몇 이나 되겠습니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몇 사람 안 됩니다. 하나, 하나 고쳐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처음부터 잘하지 그랬습니까?”라고 하면 “너희들은 처음부터 잘했느냐? 나도 너희와 비슷하다. 나도 너희와 같은 인간이다”라고 하면서 고쳐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르호보암도 군사를 모아서 북쪽 이스라엘과 싸우려 했다가 하나님의 선지가가 싸우지 말라고 해서 그만두었습니다. 하려고 하다가 그만 두는 것은 괜찮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으면 즉시 그만 두어야 합니다.
시편 121편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켜주신다고 했습니다. 요시야 왕이 믿음 지킨 것을 보면 그가 참 잘했는데 하나님께서 왜 안 지켜주셨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은 지켜주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사람은 도와주지 않으십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나가면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안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를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요시야 왕이 국가도 부흥시키며 다른 여러 면에서 좋았는데, 그만 하나님의 뜻을 찾는 지혜가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잘못 찾았기 때문에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앞장서 싸우다가 전사함
본문 22절에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고 변장하고 싸우고자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므깃도 골짜기에 이르러 싸울 때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라고 했는데, 느고가 애굽의 왕이지만 하나님께서 애굽 왕의 입을 통해 요시야 왕에게 알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때로 불신자의 입을 통해서 바른 말을 들려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당나귀를 통해서도 바른 말을 해주실 수 있습니다. 또 닭의 소리를 통해서도 회개하라고 경책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미련한 당나귀를 통해서도 선지자를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애굽 왕 느고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것이 분명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안 믿는 사람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바른 말을 해주시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경고해주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말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다 무시해버리고 제 고집대로 나가다가는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본문 23-27절에 “활쏘는 자가 요시야 왕을 쏜지라 왕이 그 신복에게 이르되 내가 중상하였으니 나를 도와 나가게 하라 그 신복이 저를 병거에서 내리게 하고 저의 버금 병거에 태워 예루살렘에 이른 후에 저가 죽으니 그 열조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를 슬퍼하고 예레미야는 저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는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 날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 요시야의 남은 사적과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한 모든 선한 일과 그 시종 행적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야가 변장을 하고 나가서 싸웠다는 것은 앞장섰다는 것입니다. 종교 개혁에는 앞장서는 것이 좋은데, 싸우는 데는 앞장서는 것이 아닙니다. 왜 변장을 하고 나갔습니까? 변장을 하고 나가서 다 실패했습니다. 예전에도 아합 왕이 변장을 하고 나갔다가 실패하여 죽었습니다.
왕은 싸움을 하는데 앞장 설 바가 아니고 하나님을 찾는 데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왕이나 제사장은 하나님을 찾는 것에 앞장을 서야 하고, 율법을 찾는 것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르치는 데에 앞장을 서야 합니다. 싸우는 데는 앞장설 바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시켜서 세상 일을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데, 왜 왕이 나가서 앞장을 섭니까? 다윗 왕은 앞장서지 않았습니다. 군대 장관들을 내보내서 싸웠습니다. 이것이 원리인데, 공연히 변장해서 앞장서 싸우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요시야 왕이 지혜가 부족했고 하나님께 기도해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좀 받아서 교만해져 나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잘되어나가고 백성들이 잘 받들어나가니까 교만해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고 겸손하지 않다가 죽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나귀를 통하여 발람 선지자를 책망하신 것처럼, 요시야 왕에게도 느고를 통해서 바른 말을 들려주셨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변장하고 전쟁에 앞장서 나가다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참고로 하여 우리도 이렇게 안 되도록 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