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하만은굴욕을당하고모르드개는명예를얻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하만은굴욕을당하고모르드개는명예를얻음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7년 2월 17일 금요일

에스더 6:1-14 하만은 굴욕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명예를 얻음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하만은 굴욕을 당하고 모르드개는 명예를 얻음
에스더 6:1-14

1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2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 하였다 하였는지라 3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 4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5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6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7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8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9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 10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11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 12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 13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14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 

1. 왕이 모르드개의 공적을 발견하고 존귀케 하려 함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심

본문 1-3절에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날 밤에 왕이 잠이 안 왔습니다. 그래서 왕이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올 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바에야 기
도하고 성경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찾게 만들어놓으셨습니다. 

본문 2절에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고 하였습니다. 왕이 이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왕으로 하여금 잠이 안 오게 만들어놓으셨고 또 이것을 읽게 만드신 것입니다. 우리가 잠이 안 올 때에는 왜 잠이 안 올까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무엇을 잘못한 것이 없는가, 하나님께서 무엇을 깨우치시지 않는가를 생각해봐야 하고 성경도 읽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모르드개가 왕을 죽이려 하는 두 내시를 고발한 내용에 대해 읽게 하셨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왕이 읽다가 그 내용이 귀에 쏙 들어와서 거기에서 멈추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동을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물어보기를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라고 하니 시신(侍臣)이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왕이 깜짝 놀랐습니다. ‘이럴 수가 있느냐? 내 생명을 살려준 사람에게 아무 것도 베풀지 않았으니 되겠느냐?’라고 하며 그 사람을 존귀케 하기로 작정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모르드개가 전에 이 일 때문에 상을 받았다고 하면 이때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왕이 무슨 상급을 많이 주고 존귀하게 해주었다고 하면 “그래? 되었다. 그 다음 읽어라”고 하였을 텐데 그때 상을 안 받은 것의 효과가 지금 나오
게 된 것입니다. 왕이 그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습니다. 알아주지 아니하고 관직도 안 주고 묻어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모르드개에게 살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주지 않고 대가를 받지 않은 것은 다음에 가서 받을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 즉시로 받은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선을 심어놓고 받지 못했다고 섭섭할 것이 없습니다. 안 받는 것이 좋습니다. 안 받고 두어야 다음에 한 몫 볼 때가 오는 것입니다. ‘내가 이 만큼 수고를 했는데 알아주지 않고 나를 무시한다. 아무도 본체만체 한다’하고 만일 모르드개가 불평을 했더라면, 지금 여
기에서 왕이 높여주는 자리에 나오지 못합니다. 아무 불평도 없이 아무것도 안 받았어도 그저 감사하고 생각도 하지 않고 ‘선을 행한 것(왕에게 보고한 것)은 자기의 할 책임이다’라고 만족하고 믿음으로 나가니까 그것이 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안 받았던 것, 왕이 몰라주었던 것, 파묻어놓았던 것이 효과가 날 날이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못 받았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가를 안 받아야 이 다음에 한 몫 볼 날이 옵니다. 그때에 바로 받으면 그것으로 다 끝난 것이고 이 다음에 볼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대가를 안 받으면 대목장에 가서 대가를 받을 날이 옵니다. 지금이 대목장이 아닙니까? 생사가 왔다 갔다 합니다. 몇 시간 있으면 죽을 것이 아닙니까? 

이날 저녁에 하만이 왕궁에 왔는데,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기 위하여 그 허락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하만이 오기 조금 전에 왕이 일기를 읽다가 “그 사람에게 상급을 베푼 것이 있느냐?”고 물어보아서 없다고 하니까 그를 높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밖에 누가 있는가 보라”고 할 때 하만이 마침 왔기 때문에 그를 들어 오게 하여서 왕이 높여주고자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가를 물어본 것입니다. 이것은 위기일발(危機一髮)의 순간으로 조금만 지나면 모르드개는 모가지가 날아갈 것입니다. 나무에 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에 아무것도 받지 않았던 것이 바로 이때에 기회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가장 요긴한 때에 대가를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알아주지 않는다. 또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많이 일했는데 날 무시한다. 날 소외시킨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한 번 나올 날이 옵니다. 반드시 심으면 나게 되어 있습니다. 몰라줘도 좋습니다. 가장 요긴할 때, 대목장에 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요긴할 때에 묻어둔 것을 쓰게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요셉이 죄도 없는데 누명을 쓰고 감옥에 2년 동안 갇혔을 때, 알아주는 사람도 없이 억울하게 지냈습니다. 술 감독의 꿈을 해석 해주었지만 그가 감옥을 나가서는 그 사실을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이
“나가서 당신이 득의(복직)하면 나를 생각해달라”고 하였지만 술 감독은 그 사실을 다 잊어버리고 요셉을 생각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효과가 났습니다. 왕이 꿈을 꾼 후에야 술 감독이 요셉 생각이 나서 왕에게 요셉이라는 자가 꿈을 잘 해석한다면서 요셉을 데리고 나온 것입니다. 예전에 요셉이 술 감독에게 꿈을 해석해준 뒤로 2년 동안 그 사실을 다 잊혀지고 묻혀놓은 바 되었습니다. 무효로 돌아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2년 후에 효과가 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부름을 받고 왕의 꿈을 해석한 것입니다.
그래서 몰라주는 것이 사실은 좋은 것입니다. 몰라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심어놓은 것을 잘 길러서 쓰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야(草野)에 묻혀야 합니다. 묻혀야 그 사람이 바로 되어 나갑니다. 고구마 넝쿨도 땅에다가 묻어놓아야 잘되지, 자꾸 위로만 올라가면 안 된다고 합니다. 고구마를 뒤집고 뿌리를 자르고 땅에다가 묻어 놓는데, 묻어놓으면 그 안에서 알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행하고 나서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고 나를 무시한다. 나는 매장 당했다. 나를 이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말고, 심은 대로 거두고 종자는 썩는 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초야에 묻혔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한 번 나올 날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미리 받으면 안 됩니다. 모르드개가 미리 받았다면 끝날 뻔했고, 막대한 손해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 받았기 때문에 그 뒤에 거기에서 몇 천 배, 몇 만 배 더 큰 것을 받았습니다. 만일에 당장 그때에 무엇을 받았다면 얼마나 큰 것을 받았겠습니까? 그때 얼마 못 되는 것을 받는 것보다 유다인 전체의 생명을 받는 것이 훨씬 더 큰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배워서 어떻게 하든지 묻혀서 사는 생활을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선을 행했어도 받지 못할 때가 있는데, 그것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받게 하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는 한 번 알아줄 날이 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누가 알아주었습니까? 그러나 알아줄 날이 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쓰실 날(등용시키실 날)이 옵니다. 다 묻혔고 감옥에 갇혔지만 한 번 하나님께서 쓰실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까지는 불만을 품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미 받은 사람보다 안 받은 사람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일을 드러 내셔서 갚아주실 날이 옵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해나가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셔서 왕의 마음을 감동케 하심

본문 1-3절에 “이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아니하므로 명하여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자기 앞에서 읽히더니 그 속에 기록하기를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 하였는지라 왕이 가로되 이 일을 인하여 무슨
존귀와 관작을 모르드개에게 베풀었느냐 시신이 대답하되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입니다. 왕으로 잠이 오지 않게 한 일, 일기를 가져다가 읽게 한 일, 또 읽을 때에 모르드개에 대한 사건을 읽게 한 일과 왕이 거기에 대해서 존귀케 하였는가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하는 생각 등은 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거저 읽고 지나갔으면 안 될 뻔했는데, 지금 왕의 마음을 주장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일이 참 고맙다고 생각하게 만드셨고 잘해주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님께서 들게 하신 것입니다. 

또 시신이 모르드개에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하였다고 대답했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베풀지 아니한 것이 이번에 모르드개와 유다 사람 전체를 살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모르드개가 무엇을 좀 받았고 사신이 무엇을 베풀었다고 대답했으면 그냥 지나갈 뻔했습니다.
모르드개가 공은 세워놓았지만 존귀케 하는 일이나 무슨 상, 또는 아무 관직도 안 받고 무시되었던 사실이 이번에 자기를 살리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해놓고 무시당하는 일이 있어도 후에 그것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꼭 상을 받고 누가알아주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6장 2-4절에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에게 받지 아니하여야 하나님께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상을 받지 않는 것이 도리어 하늘나라에서 큰 상을 받는 것이 됩니다. 또 앞으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고가 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이미 상을 받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2. 모르드개 존귀케 하는 일을 하만이 맡아 실행함

하만이 심중에 왕이 자기를 존귀케 하기를 기뻐한다고 생각함

본문 4-6절에 “왕이 가로되 누가 뜰에 있느냐 마침 하만이 자기가 세운 나무에 모르드개 달기를 왕께 구하고자 하여 왕궁 바깥 뜰에 이른지라 시신이 고하되 하만이 뜰에 섰나이다 왕이 가로되 들어오게 하라 하니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만도 밤잠을 못 잤는데, 그 이유는 모르드개가 보기 싫어서입니다. 노가 풀리지를 않고 속이 편안치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여야만 밤잠도 잘 오고 밥도 맛이 있고 속이 편안하겠다고 생각하고 밤에 자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이에 하만이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라고 자기 심중에 생각하였습니다.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알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삽니다.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로 알고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아는데, 그것이 오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기가 제일 잘하는 줄로 알면 안 되고, 또 자기밖에 없는 줄로 알아도 안 됩니다. 언제나 겸손하지 않으면 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만의 속에 있는 욕심이 다 드러남

본문 7-9절에 “왕께 아뢰되 왕께서 사람을 존귀케 하시려면 왕의 입으시는 왕복과 왕의 타시는 말과 머리에 쓰시는 왕관을 취하고 그 왕복과 말을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붙여서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서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여 이르기를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게 하소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지금 자기에게 대한 말인 줄로 알고 자기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생각했던 것이 지금 나온 것 같습니다. 하만이 왕복 입기를 원했습니다. 또 그가 평소에 ‘왕의 타시는 말이 상당히 좋을 것인데, 그 말을 한 번 타보면 좋겠다. 또 머리에 쓰는 왕관을 써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왕같이 한 번 해보면 좋겠다고 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한정이 없는 것입니다. 하만은 왕 다음으로 존귀한 방백으로 지금 모든 국민 가운데에서 제일 높은 자리에 있는데, 그것으로 하만이 만족을 못했습니다. 그래서 낮은 자리에 있는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굴복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과 불평이 가득했습니다. 밤잠도 못 자고 노한 얼굴로 다녔습니다. 그리고 왕과 같이 높은 자리에 한 번 올라가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만은 지금 왕의 타는 말, 쓰는 왕관, 입는 의복을 자기도 한 번 타 보고 입어보고 써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해본다고 만족하겠습니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에는 또 무슨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왕이 되고 싶을 것입니다. 의복을 입고 왕관을 쓰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아직 아무 실력이 없으면서도 왕이 한 번 되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또 왕이 되면 만족이 있겠습니까? 그 다음에는 천하를 통일할 생각이 또 들 것입니다.
한 나라를 가지고 무엇을 하겠습니까? 천하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정복해서 만왕의 왕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가 하나님이 되겠다는 생각과 똑같습니다. 마귀가 속에 들어가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주어도 그 속에 만족이 없고 감사도 없습니다. 올라갈수록 점점 더 올라가려 하고, 가질수록 점점 더 많이 가지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많이 주셔도 더 가지려고 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사람의 욕심이 땅보다 두껍다는 말이 있는데, 한정 없는 것이 사람의 욕심입니다. 

그런데 왕은 하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만에 대해 아주 좋지 않게 여긴 것 같습니다. 그래서 “네가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하만을 이렇게 낮추려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하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교만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까딱하다가는 왕의 자리까지 빼앗길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왕의 관, 왕의 말, 왕의 의복을 쓰고 타고 입겠다고 한 것을 보면, ‘지금 네가 왕의 자리까지 빼앗으려고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네가 말을 끌고 나가라”고 한 것 같습니다. 

누구나 다 교만한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말 한 마디만 들어보아도 벌써 압니다. 그러니까 왕이 지금까지 하만을 존귀하게 썼지만 벌써 그 마음이 교만한 것을 보면서 ‘이 사람이 위험 인물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왕이 하만에게 모르드개를 존귀케 하라고 명한 이유

본문 10-11절에 “이에 왕이 하만에게 이르되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 하만이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다녔구나’라고 여기며 왕이 하만을 괘씸하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만에게 명하기를 “너는 네 말대로 속히 왕복과 말을 취하여 대궐 문에 앉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에게 행하되 무릇 네가 말한 것에서 조금도 빠짐이 없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원칙은 왕의 말에 다른 사람을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의복을 입힐 수도 없고, 왕의 관을 씌울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왕이 지금 좀 노한 것 같습니다. 노한 마음에 하만에게 네가 말한 대로 하라고 한 것 같습니다. 하만으로 하여금 말을 끌고 돌아다니게 하려고, 하
만이 이야기한 대로 빠짐없이 처리하라고 지시한 것 같습니다. 그러하여 하만이 왕의 명령대로 왕복과 말을 취하여 모르드개에게 옷을 입히고 말을 태워 성중 거리로 다니며 그 앞에서 반포하되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날 밤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게 해달라고 왕께 청하러 갔었는데, 오히려 반대가 된 것입니다. 모르드개를 말에 태우고 자기는 말을 끄는 마부가 되어 왕이 존귀케 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고 온 거리에 다니면서 반포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말할수 없는 수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역사하십니다.
하만이 높아지면 무엇을 하려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언제나 자기의 분수에 만족해야 합니다. 하만은 지금 왕 다음 가는 방백으로, 가장 존귀한 자가 되었는데 그 이상 얻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우리는 현재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 되겠습니다. 우리가 겸손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높아지면 무엇을 합니까? 왕복을 한 번 입어보고 왕의 말을 한 번 타보고 왕의 관을 한 번 써보면 무엇을 합니까?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공연히 죽음의 길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그런 것들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높아지는 것과 명예, 영광심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총회장 감독의 임기가 2년밖에 안 되니까 대 교단에서 감독이 되려고 선거 운동을 하여 돈을 많이 쓴 사람이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거할 때 자기 돈을 많이 썼으므로 감리 교단 재산을 조금 팔아서 자기의 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교회가 다 부패하고 타락된 증거입니다. 감리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이만큼 타락이 되어서 하나님께 연보한 돈을 가져다가 선거 운동에 사용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진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습니다. 지난 월요일 새벽에 고천에서 나오는데, 안양을 지나오려면 산으로 산업도로가 나있습니다. 거기에서 안양 시내를 한 번 쳐다보니까 빨간 불로 된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지 수십 개, 수백 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 불빛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부를 것이고 예수님을 찾을 것이고 찬송가를 부를 것이므로 어느 종교도 기독교보다 많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첫째로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가운데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교파가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해방신학, 신 신학, 기독교 사회주의와 같은 교회도 상당히 많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의 마음에 진노를 쌓고 섭섭하게 하며 참된 진리 운동을 방해하는 교회도 상당히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을 잡아 죽이지 않습니까? 그런 교회도 많습니다. 앞으로 참 성도를 죽일 교회도 많고, 공산주의와 합할 교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또 그런 종류는 아니라고 해도 바른 진리를 밝히는 교회와 잘못된 교회, 잘못된 진리를 주장하면서 교역자들이 자기 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욕심을 부리면서 어떻게 하든지 교인들의 돈을 좀 더 받으려 하고 신비주의로 나가면서 자기의 호주머니를 챙기는 교역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별미축복이라고 있는데, 별미축복이라는 것은 먹고 해주는 축복을 말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돈을 받고 축복해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돈을 빼앗아서 제 호주머니에 넣겠다는 것입니다. 요새는 교인이 기도를 해달라고 하려면 반드시 돈을 주어야 기도해주는 목사가 있다고 합니다. 또 기도해주면 어떤 일을 안다고 합니다. 자기 동생이 대학교 입학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붙겠나, 안 붙겠나를 기도해달라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돈을 주고 기도해주어야 된답니다. 그래서 돈이 오간 다음에 기도하더니 반드시 이번에 붙는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떨어졌습니다. 그것 참 잘 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물어본 값이므로 건넨 돈은 돌려받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가 나쁜 교회가 아니고 보통 교회입니다. 신촌에서 조금 더 가면 있습니다. 간판은 멀쩡합니다. 또 목사도 멀쩡합니다. 그런데 점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에게 수입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 번을 물어보았답니다. 이런 교회가 부지기수인 줄로 알아야 합니다. 

또 추도 예배할 때에 사진을 가져다가 걸어놓고 촛불을 켜놓고 교회적으로 합동 추도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제사 드리는 것을 죄가 아니라고 한답니다. 십자가는 많지만 십자가 밑에서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
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지금 얼마나 속이 상하시겠습니까? 십자가가 많은 것만 자랑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시고 마음에 안타까워하시겠는가를 그 새벽에 나오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진리가 전체 100가지라고 했을 때 한 절반만 옳은 진리를 주장하고 한 절반은 잘못 전파하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리고 한 30%만 바로 전하고 70%는 잘못 전하는 교회도 많을 것입니다. 가지각색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바로 많이 전하는 교회가 몇 개나 되겠는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십자가가 수 백 개가 되어도 그 십자가 밑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모릅니다. 별의별 짓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부르고 찬송을 부릅니다. 목사들 중에 사리사욕을 채우는 목사가 많고 점하는 목사가 많을 것입니다. 심지어 사람을 죽이는 목사도 있습니다.
어떤 안 믿는 사람이 나를 보고 “목사들이 요새 왜 그럽니까? 신문에 났는데 목사가 중학생을 납치하여 폭행하고 죽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 그랬는가?”하고 물어보니 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읽어보니까 그 사람은 이전에 목사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파면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일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또 물어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목사가 아니고 옛날에 목사하다가 그만 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목사가 아니고 마귀의 종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교회 안에 악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도리어 더 악한 사람들이 십자가 밑에 있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앞으로 참 기독교인을 죽일 사람은 기독교 안에서 나옵니다. 아무튼 지금 여러 가지 마귀의 역사가 십자가 밑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 명예, 영광심 때문에 총회장이나 노회장 선거하는 데에 돈을 많이 써서 교회를 망치며 타락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명예, 영광심을 버려야 믿음에 설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겠습니다. 시편 131편 1-3절에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세계입니다. 마음이 높은 것은 벌써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은 명예, 영광심입니다. 높아지겠다는 것, 어떤 직분을 받아서 높아지겠다는 것은 믿음에서 떠난 것입니다.

각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기라

그리고 각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겨야 합니다. 가령 권찰 자격이되면 권찰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집사 자격이 되면 집사 직분을 맡아야 합니다. 속이 된 대로 의복을 입는 것입니다. 다섯 살 난 아이는 다섯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하고 열 살 난 아이는 열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합니다. 스무 살 난 사람은 스무 살짜리 의복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섯 살 난 아이에게 열 살 난 아이의 의복을 입혀놓으면 의복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둘 다 버립니다. 또 열 살 난 아이에게 스무 살짜리의 의복을 입혀놓으면 의복도 버리고 사람도 버리고 다 버립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게 적당한 직분을 맡겨야 합니다. 적당치 않은 직분을 맡겨놓으면 그 사람도 망하고 그 일도 망치며, 다 망치는 것입니다. 국가로 말하면 장관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장관을 맡겨야지, 장관 자격이 안 되는 사람에게 장관을 맡기면 나라도 망하고 장관도 망하고 다 망할 것입니다. 총리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 총리를 맡겨야 그 나라가 바로 되고 자기도 바로 되지, 총리 자격이 안되는 사람에게 총리를 맡겨놓으면 조금 가다가 총리도 망하고 그 나라도 망하고 다 망합니다. 교회도 직분을 줄 때에 그 사람의 신앙 정도,속 사람이 된 정도에 맞춰서 실력에 맞춰 직분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맡기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데 직분을 맡겨놓으면 어떻게 합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므로 일을 망치게 됩니다. 또 그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 사람도 망칩니다. 

컴퓨터를 다룰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컴퓨터를 맡겨놓으면 기계도 망가지게 해놓을 것이고 그 사람도 그 직분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속의 실력에 맞추어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직분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그 사람을 버립
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존귀한 직분을 맡겨놓으면 “어”하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속 사람이 만들어져야 되겠는데,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고 둥둥 떠다니고 발이 땅에 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치 아니하고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라고 했는데, 다시 말해 높은 곳을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높은 것을 바라보고 높아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속 사람을 만들어야 되는데, 속사람은 높아져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낮아져야 만들어집니다. 땅에 묻혀야 만들어지는 것이지, 높아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신앙으로 믿음에 서지 못합니다. 또 큰 일이 되지 않습니다. 

미치지 못할 일에 힘쓰지 말아야 함

또 어떤 교회는 큰 건물을 짓겠다고 작정하고 빚을 많이 얻어서 외상으로 일하고 일꾼도 외상으로 데려다가 예배당을 크게 지어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중에 자꾸 돈이 모자라니까 금식 기도를 했답니다. 그런데 금식 기도하다가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서는 교인이 얼마 없는데 큰 교회를 짓다가 시험이 들어오고 이웃 주민들에게 욕을 얻어먹고 핍박을 받다가 쫓겨난 목사가 있습니다. 그런 목사가 꽤 많습니다. 

이렇게 예배당을 짓다가 쫓겨난 사람도 있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니이다’라는 것은 자기의 실력만큼만 하고 너무 크게 하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사는 것도 자기의 능력이 되면 사고, 안 되면 그만 두어야 합니다. 자동차를 살 능력이 없는데 남이 산다고 나도 사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감당을 못하면 도로 팔아야 합니다. 노 목사님도 샀다가 팔았습니다. 그것도 잘한 것입니다. 실력이 없으면 실력에 맞춰야지, 빚만 잔뜩 져서 넘어가면 어떻게 합니까? 그런데 팔아서라도 안 넘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실력에 맞추어야 합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심

그리고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고요하고 평온해야만 믿는 일이 됩니다. 젖 떨어진 아이와 같이 어머니로 만족하는 그 자리에 있어야만, 믿는 일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망하고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신다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리고 낮아지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이십니다. 모르드개는 낮아지고자 한 것입니다. ‘말씀을 지키다가 어떤 희생을 당해도 좋다. 낮아져도 좋다’라고 하며 낮아질 각오와 죽을 각오를 하고 이 신앙을 지킨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윗사람에게 절하지 않는 것이 무슨 신앙이냐, 윗사람에게 대한 인사는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경배가 아닙니다. 단순한 인사가 아닌 것입니다. 꿇어서 절하는 신적 경배인 것입니다. 또 하만은 아각 사람으로서 아말렉 사람인데, 성경에 아말렉 사람은 하나님의 대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대적에게 굴복을 하고 신적 경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비 진리와 이단에게 굴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단과 비 진리라는 마귀에게 신적경배를 하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낮아질 각오를 하고 낮아져서 말씀을 지키고자 할 때에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그것은 하지 않고 높아지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낮추십니다. 언젠가는 낮추십니다. 실력도 없는데 높아진 것은 본색이 탄로가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실력이 없는데 높아지면 그 일이 잘 안 될 것이고, 그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모든 사람이 알게 됩니다. 그렇게 때문에 낮아지는 것입니다. 차라리 그 직분을 안 맡았으면 그렇게 망신을 안 당할 것인데,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그만 낮아지는 것입니다.
하만이 말 탈 생각을 안 했으면, 자기가 마부가 안 되었을 것인데 왕의 말을 탈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마부가 된 것입니다. 자기가 높아지고자 하지 않았다면 모르드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그를 높이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인데, 자기가 높아지고자 했기
때문에 모르드개 높이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높아지고자 하면 반드시 이렇게 됩니다. 왕의 말을 타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공연히 왕의 말 탈 생각을 해서 자기가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심부름꾼이 되어 그만큼 낮아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절대 변함이 없습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낮추십니다. 왕의 말을 타고자 하면 반드시 왕의 말을 끌고 다니는 마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사람들이 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가 높아지려고 하는 자를 좋아합니까? 자기를 신임해서 등용하던 왕부터 높아지고자 하므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다녔느냐?’ 하고 괘씸하게 생각해서 말을 끌고 다니라고 한 것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면 왕뿐만 아니라 백성도 알고 누구나 알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그 사람을 존경합니까? 지위만 높았지 다른 사람 앞에 손가락질을 받고 다른 사람이 속으로 무시합니다. 멸시를 받습니다. 높아지려 하지 않았다면 멸시를 받지 않았을 것인데, 높아지려 하다가 괜히 멸시만 받습니다. 그러므로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집사 자격이 없는데 집사가 되었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집사? 그 사람이 무슨 집사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서 담배 한 대씩 피우고 이따금 술도 한 잔씩 먹는 것을 보고 아이들이 가짜 집사라고 할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면 “집사님, 집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아이들이 볼 때에, 또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는 가짜입니다. 또 언젠가는 교회에서 탄로가 날 것입니다. 그러면 교인들이 집사로 인정을 하겠습니까? “네가 이름만 집사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자기가 집사를 안 맡았으면, 아이들한테 그런 멸시를 받지 않고 교인들 앞에서도 그런 멸시를 받지 않았을 것인데 집사를 맡았기 때문에 그런 멸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속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 큰 것입니다. 속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고 높아지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례를 빨리 받아야 되겠다. 집사를 빨리 받아야 되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안 주니까 다른 교회에 가서 받고 오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른 데에 가면 가자마자 집사 직분을 주는데, 여기(창광 교회)에서는 주일을 잘 못 지켰기 때문에 여러
해를 가도 못 받았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창광 교회에 여러 해 나왔지만 주일을 잘 못 지키고 담배를 못 끊었기 때문에 직분을 받지 못해서 천주교에 가서 영세를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여기서는 받을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 사람이 영세를 받아가지고 얼마 있다가 온다고 합니다. 천주교에 가려고 해서 간 것이 아니고 영세를 받으러 간 것이랍니다. 그런데 여러 해가 되었는데 아직도 못 왔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창광 교회에서 집사를 안 주니까 다른 교회에 가서 받아가지고 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 혼자 집사지, 누가 집사라고 해줍니까? 다른 교회에서 몇 달 있다가 받고 왔는데, 다른 사람이 집사인지 어떻게 압니까?
또 목사 안수를 빨리 받아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는 목사 안수를 빨리 못 받겠으니까 다른 교단에 가서 목사 안수를 받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몇 년 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 우리 교단에 받아주겠는가 물어봅니다. 그래서 받아주기는 받아주는데, 순서대로 해야 받아준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 신학교 1년을 하고 다른 신학교를 1년인가 하고 안수를 받았는데, 신학교를 제대로 해야 받아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신학교 2년을 더해야 받아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길래 “안 하려면 그만 두라”고 했습니다. 원리 원칙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그 목사가 목사된 지 몇 년이 되었는데, 다니면서 우리를 좋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그래도 여기서 한 1년을 배웠다고 좋게 생각하는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 사정을 압니다. 그 사람이 가려고 해서 간 것이 아니고 목사 안수를 빨리 받으려니까 간 것입니다. 여기서 하면 신학교 2년을 더 해야 합니다. 그리고 했어도 또 1년을 더 있어야 하지만, 다른데에 가면 금방 목사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벌써 한 4, 5년 전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있었으면 아마 근래에 목사 안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4, 5년 전에 목사 안수를 받았으면 또 뭐합니까? 신학교를 제대로 거쳐서 다 했으면 목사 안수를 여기에서 받았겠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목사 안수 받기 6개월 전에 참지 못하고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강도사 고시에 합격이 되고 6개월 후면 안수를 주게 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다른 데에 가서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 그 사람이 묻기를 “6개월 전에 줄 수 없느냐?”고 하기에 “우리는 줄 수
없다. 조금 있으면 총회로 모이는데 그때 통과해서 안수하기로 되어 있으니 참으라”고 했는데, 그것을 못 참아서 다른 데에 가서 받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참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렇게 조급해서 자기가 되지 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의 자격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지, 목사의 직분을 받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다고 그렇게 처신을 합니까? 조금 먼저 받으면 뭐합니까? 6개월을 못 참습니까? 한 몇 년만 제대로 했으면 얼마나 바로 될 수 있었겠습니까? 신학교도 제대로 졸업하고 목사의 신덕(信德)도 기르고 제대로 해서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신학교만 졸업한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목사의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신덕이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격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목회의 실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제대로 바른 교역자가 되어야지, 쉽게 받는 데, 거저 주는 데에 가서 목사가 되면 뭐하겠습니까? 요새 신학교도 제대로 안 하고 목사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신학교 한 1년 반만 하고 목사안수 받은 사람도 있고, 돈만 내고 신학교를 다니지 않고도 목사 안수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요새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 돈만 조금 주면 졸업장을 주는 신학교가 있는데, 그리고는 안수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굉장히 좋은 명함을 찍어서 가지고 다니면서 목사라고 합니다. 일생 동안 받는 성직인데, 그렇게 돈만 내고 받으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무슨 목회를 하겠습니까? 신학교 간판을 붙여놓고 졸업장을 팔아먹고 목사의 이름을 남발하고 자격도 없는 사람에게 목사 안수를 주는데, 그들은 자기의 책임을 지고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전에 청량리에 어떤 목사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목사가 신학교를 하고 자그마한 교회를 하나 했습니다. 또 대학원을 했습니다. 대학원 졸업장도 받았습니다. 자유당시대 때입니다. 그 학교의 대학원 원장하던 사람은 나한테서 배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오면 붙여주고 졸업장을 주는 것입니다. 대학원도 하고 신학교도 하는데, 신학교 졸업장도 주고 대학원 졸업장도 주고 또 목사 안수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다 망했습니다. 대학원과 신학교가 망하고 그 목사도 어디에 갔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실패한 것입니다. 자기 교회나 잘하지, 무엇 때문에 졸업장을 팔아먹다가 다 망합니까? 그러므로 누구나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돈이나 받아먹고 팔면서 인본주의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셔서 망하는 것입니다. 심판 받는 것입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만드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대학원 원장하던 사람은 지금 미국에 가 있는데,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미국에 갈 일이 있어서 가서 이따금 만나면 아주 기뻐하며 찾아와서 음식을 사준다고 합니다. 주동하던 목사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교회도 망치고 쫄딱 다 망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명예, 영광심과 인본주의로 하면 안 됩니다. 

3. 하만이 집에 돌아와서 친구와 가족에게 고함

작은 것에 불만을 품지 말고 용납하며 나가라

본문 12절에 “모르드개는 다시 대궐 문으로 돌아오고 하만은 번뇌하여 머리를 싸고 급히 집으로 돌아와서”라고 하였습니다. 하만이 머리를 싸고 돌아왔습니다. 너무 부끄러워서 머리를 쌌을 것입니다. 이것이 말이 됩니까? 일국의 재상이 문지기를 태워가지고 돌아다녔으니 위신이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것보다 더 합니다. 그러니 사람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또 그 마음이 얼마나 번민했겠습니까? 그러니까 작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큰 불만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 왜 불만을 품습니까? 모르드개가 절하지 않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을 필요가 무엇입니까? 절하지 않으면 안 받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도 있구나’라고 하며,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갔으면 이런 번민을 당하지 않았겠는데, 작은 것을 가지고 번민하면서 자꾸 생각하고 마지막에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은 자기가 이와 같이 몇 백 배 더 큰 번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큰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까? 문지기에게 절을 받지 않는 수치보다 얼마나 더 큰 수치입니까? 절 받지 못하는 조그마한 수치를 당했으면 되었을 것을 그것보다 몇 만 배 더 되는 수치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또 조그마한 번민이 하나 있었을 때 그것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갔어야 되겠는데, 그것을 죽여 없애려고 하다가 그것보다 몇 백 배, 몇 만 배가 되는 번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것은 용납하고 나가야지, 용납하지 않고 나가면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당할 날이 옵니다. 

우리 몸도 그렇습니다.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은 약합니다. 어떤 부분은 병이 나기도 합니다. 다 건강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속에 시원치 않은 기관이 하나쯤 있는 법입니다. 또 사진을 찍어보면 양성은 아니더라도 음성 결핵균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속의 어떤 기관이 병이 난 사람이 있습니다. 치질이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한 데가 있어도 그저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야지, ‘나 치질 있다. 치질 있다’라고 계속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두면 몇 십년 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일생 동안 치질이 있다고 해서 밤낮 속이 상해서 머리를 싸매고 앉아 있으면 치질 대신에 심장병이 생기고 노이로제에 걸려서 죽습니다. 작은 것이 하나 있어도 좀 과하지 않으면 그냥 가지고 나가면 괜찮습니다. 자그마한 것 하나를 갖다가 자꾸 신경을 써서 속이 상하기 시작하면 그 병은 아무것도 아닌데, 마지막에는 속이 상해서 죽습니다. 속이 상해 돌아가면 각종 병이 다 생기지 않겠습니까?
하만이 모르드개를 가만히 두지 못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이렇게 큰 함정에 빠지고 큰 번민과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수치를 당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은 불만이 들어와도 불만이 없는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작은 불만은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없는 것처럼 통과해 나가는 것을 배워야 되겠습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것처럼, 큰 것이 하나 오면 음지가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것이 많지만 작은 것도 있지 않습니까? 큰 것이 있는데 마귀 역사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있어도 없는 것처럼 하고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에도 가룟 유다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문에 속상할 필요가 없고 불만을 품으면 안 됩니다. 있어도 없는 것처럼 이용하면서 나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이 되어 나간 것입니다. 가룟 유다 때문에 불만을 품었다고 하면 예수님의 일이 실패가 됩니다. 그러니까 작은 불만과 불상사가 있어도 큰 것을 생각해서 그것을 다 없는 것처럼 여기고 나가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만족하며 감사로 통과해야 되겠습니다. 큰 것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가정 파탄이 나는 집들도 큰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고, 작은 것 때문에 파탄이 납니다. 어떤 사람은 비오는 날, 창구멍이 뚫어진 데로 바깥을 내다보다가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창구멍으로 가만히 내다보고 있으니까 부인이 있다가 “왜 내다보느냐?”고 했다고 합니다. “누구 생각이 나서 내다보느냐?”라고 하니까 남편 말이 “생각은 무슨 생각이냐? 그냥 내다보는데 뭘 그러느냐?”고 하니까 그 말을 듣던 부인이 “그래도 누구를 생각하기에 내다보겠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니까 이전에 사귀던 여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지 못하겠나? 내가 무슨 생각을 한다고 그러느냐?”라고 하니 부인이 말하길 “내가 다 안다. 그렇게 생각하려면 가서 살지 뭐하러 여기 앉아 있느냐? 난 이혼해도 좋으니 가서 살아라. 내가 오고 싶어서 왔나? 난 이혼해도 하나 두려울 것이 없다”라고 하였답니다. 그러니 남자가 얼마나 화가 납니까? 그래서 대판 싸우고 ‘이럴 바에는 그만 두자”하고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극히 작은 문제를 소화하지 못해서 큰 것을 다 깨뜨려 내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그것이 참 한심한 것입니다. 

또 조금 높아지겠다고 하다가 즉살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큰 일을 하겠다고 하다가 죽은 목사, 쫓겨난 목사도 보았습니다. 결단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과 큰 일을 하겠다는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큰 것을 생각해서 작은 것은 없는 것으로 여기며 하나님께 맡기고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많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종의 직분과 양 떼 먹이는 사명이 얼마나 큽니까? 그러므로 조그마한 것이 없는 것은 잘 참고, 진리 문제가 아닌 것은 다 양보하고 손해를 보며 나가야겠습니다. 

망건 값을 물어준 선교사 이야기

망건 값을 달라고 하면 망건 값을 물어주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김현봉 목사님한테 들은 것입니다. 선교사가 한국에 처음으로 와서 선교할 때에 우리나라에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선교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교인이 선교사에게 말을 빌려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말을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선교사이기 때문에 말을 빌려달라고 할 때에 빌려주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가지고 그 사람이 망건(갓 쓰기 전에 쓰는 것) 장사를 했는데 그것들을 말에다 싣고 멀리 가져다가 팔았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망건을 잃어버렸답니다. 허술하게 싣고 가다가 떨어진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선교사한테 와서 망건 값을 내라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 선교사가 “왜 망건 값을 내라고 하느냐?”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망건 장사하다가 망건을 잃어버렸다. 말을 안 빌려주었으면 안 잃어버렸을 것이므로 망건 값을 내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다가 얼마인가를 물어보았답니다. 그 망건 값이 상당히 비싼데, 그것을 그 선교사님이 물어주었답니다. 그래서 다른 선교사가 옆에 있다가 “제가 장사하다가 잃어버린 것인데 그 망건 값을 왜 물어주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선교사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조건적으로 희생했느냐? 무조건적으로 희생하지 않았느냐?”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희생하신 것을 얘기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망건 값을 받아간 사람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망건을 잃어버려서 살림살이가 다 없어진 것 때문에 상심했을 것인데, 그 값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마음이 흐뭇하고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는 그것을 물어주었다고 못 살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작은 것을 가지고 불만을 품지 말고 감사로 통과해야겠습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높아지고자 하는 생각을 다 버려야 합니다. 

또 작은 수치를 잘 감당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일개 문지기가 재상을 보고 절하지 않으면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나 그 무시를 달게 받아야 합니다. 본문에서도 문지기가 무시하여 자기의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하만이 달게 받고 나갔더라면, 그가 일생동안 자신의 지위를 유지할 뻔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참지 못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그를 죽여 없애려고 하다가 더 큰 번민이 오고, 몇 만 배 더 되는 큰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며느리가 안 믿는 시아버지에게 절을 하지 않으면 좀 섭섭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아들을 생각하고 잘 참아야 합니다. 그러면 집안이 바로 될 것입니다. 못 참고 그 며느리를 내쫓으면 집안이 망하게 됩니다. 며느리가 절을 안 해도 절하지 않는 아이도 있는가보다, 하고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큰 절은 하면 안 됩니다. 신적 경배는 사람에게 합당치 않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인사는 해도 좋으나 사람이 신이 아니므로 사람에게 신에 대한 경배는 하면 안 됩니다.

하만이 하나님의 백성 앞에서 꺼꾸러지게 됨

본문 13-14절에 “자기의 당한 모든 일을 그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에게 고하매 그 중 지혜로운 자와 그 아내 세레스가 가로되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 아직 말이 그치지 아니하여서 왕의 내시들이 이르러 하만을 데리고 에스더의 베푼 잔치에 빨리 나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세레스와 친구 중 지혜로운 자들이 하만에게 “모르드개가 과연 유다 족속이면 당신이 그 앞에서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 능히 저를 이기지 못하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만이 모르드개를 이기지 못하고 엎드러질 것을 알았겠습니까? 벌써 왕의 생각이 뻔한 것이 아닙니까? 왕의 생각이 모르드개를 높이려는 것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탄 말을 끌고 다니게 했으므로 하만보다 모르드개를 높이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만이 꺼꾸러질 것을 안 것입니다.
지혜 있는 자들이 집에서 모여서 의논을 하는데 벌써 다 안 것입니다. 그리고 대세가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분명히 그 앞에 엎드러지리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또 ‘굴욕을 당하기 시작하였으니’라고 한 것은 왕이 벌써 하만보다 모르드개를 높이겠다고 하는 것이 분명하므로 앞으로 꺼꾸러지지 어떻게 안 꺼꾸러질 수가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하만이 유다 족속과 싸우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도와 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과 하만이 싸우는 것인데, 하나님의 백성 앞에 하만이 꺼꾸러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낮아지는 것과 수치를 당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작은 수치를 잘 당하면 다음에 큰 수치를 안 당합니다. 또 낮아지면 다음에 망하는 가운데에 안 빠집니다. 또 작은 불만을 잘 통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에 큰 번민을 당하지 않습니다. 작은 번민을 잘 참고, 높아지려고 하지 않고, 큰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권고가 늘 그 사람과 같이 합니다.
또 모르드개가 왕과 그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하였는데, 그리고나서 보상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위해서나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나 진리 운동을 위해서 충성을 하고 보상을 받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보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드개가 이와 같이 올라간 것 입니다. 전에 만약 보상을 받았더라면 모르드개는 이번에 죽습니다. 보상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살고 높아진 것입니다. 또 이 세상에서 죽을 때까지 보상을 받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가면 더 큰 상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될 수 있는 대로 보상을 받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더 큰 것을 받고 또 이 세상에서 안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 더 큰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낮아져야 높아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