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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데살로니가전서 5:12-28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2-28

12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
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항상 기뻐하라 17쉬지말고 기도하라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성령을 소멸치 말며 20예언을 멸시치 말고 21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23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24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25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26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27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28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5: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간구하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님 안에서 너희를 인도하며 훈계하는 자들을 알아주고, 

5:13 그들이 하는 일을 인하여 사랑으로 그들을 극진히 존경하여라. 너희는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5:14 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는데 너희가 게으른 자들을 훈계하고, 낙심한 자들을 위로하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이들을 대하여 오래 참아라. 

5:15 너희는 아무도 악을 악으로 갚지 못하게 하고, 오직 서로에게와 모든 이들에게 항상 선을 추구하여라. 

5:16 항상 기뻐하고, 

5:17 쉬지 말고 기도하며, 

5:18 범사에 감사하여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다. 

5:19 성령을 소멸하지 말고, 

5:20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5:21 모든 것을 분별하고, 선한 것을 취하여라. 

5:22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라. 

5:23 화평의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이 보존되기를 원한다. 

5:24 너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이루실 것이다. 

5:25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여라. 

5:26 거룩한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여라. 

5:27 내가 주님을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령하니, 이 편지를 모든 형제들에게 읽어 주어라. 

5:2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 교회 생활
교역자에 대한 자세(對 敎役者)

본문 12-13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라는 것은 교회에서 하나님의 복음 가지고 일하는 일꾼들, 즉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아주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인도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고 알아주
고 해야 하는데, ‘알아주라는 것’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교인에 대한 자세(對 敎人)

본문 14절에,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규모 없이 돌아가는 사람, 말썽꾸러기, 다른 사람에게 덕을 세우지 못하고 규모 없이 무법천지로 자기만 잘 한다고 주장하고 자기만 자랑하고 자기만 위하는 이런 사람들을 권계하라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마음이 약한 자를 어떻게 하라고요? 마음이 약한 자를 안위해 줘야 합니다. 힘이 없는 자는 붙들어 줘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했는데, 모든 사람이 바로 되기를 오래 참는 신앙을 갖으라는 겁니다.

본문 15절에,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하였습니다. 악은 악으로 악을 갚지 말라는 겁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은 마귀에게 걸려 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나도 너를 대항한다, 내게 대해서 네가 잘못했으니까 너하고 말도 안 한다, 인사도 안 받는다고 하는 것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인데, 이는 자기도 마귀에게 걸려든 것입니다. 저 사람이 아무리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내게 대해서 악하게 한다 할지라도 어떻게 하라고요?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면 믿음이고 선을 행함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17-20절에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고 원수에게 대해서 잘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대적하면 둘 다 망하니까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은 자기도 살고 그 사람도 건져 낼 수 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야지, 악으로 악을 갚으면 둘 다 망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5절에 둘 다 망한다고 그랬는데,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합니다. 형제간에 재판하는 것은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형제간에 재판하면 둘 다 망합니다. 여하튼 서로 물고 먹으면 둘 다 망하는 것인 줄 알아야 합니다. 절대 물고 뜯지 마십시오. 한 사람이 물어도 선으로 악을 이길 생각을 해야지, 같이 악하게 나가면 둘 다 망합니다. 저 사람이 인사 안 한다고 나도 인사 안하면, 둘 다 악으로 악을 갚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인사 안하는 사람은 인사하십시오. 나이가 젊은 사람에 대해서 눈이 말똥말똥해가지고 인사도 안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이가 많은 자기가 먼저 하면 될 거 아니겠습니까? 먼저 몇 번만 하면, 그 사람이 먼저 인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아랫사람이든지, 나이 어린 사람이든지, 무조건 먼저 인사해야 합니다. 몇 번 인사하면 그 사람이 인사할 날이 옵니다. 인사 안 한다고 나도 인사 안 하면 일생동안 인사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2. 영적 생활
항상 기뻐하라

본문 16-18절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항상 기뻐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렇게 하려면 골로새서의 말씀처럼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1-3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은 하나님의 나라인데 신령한 세계인 하나님의 나라를 찾으라, 생각을 하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땅에는 기쁨이 없습니다. 죄악의 세상, 마귀가 여러 가지로 시험하는 세상, 악한 것이 선한 것처럼 보여지는 세상인데, 땅의 것만 가지고는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일시적인 기쁨이 들어올 수 있지만, 그것은 껍데기요, 피상적인 기쁨이고, 이러한 세상 것을 가지고는 심령이 만족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위엣 것,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세계에는 늘 기쁨이 충만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이고, 즐거움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나라는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과 같은 것이 다시 있지 않는, 항상 기뻐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나라와 또 믿음의 나라요, 또 항상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위엣 것을 찾아서 위엣 것을 가지고 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서 살게 될, 하나님의 나라,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나라, 성령의 세계에 들어가는 나라, 그 나라는 항상 기뻐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했는데,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탁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나가시고 우리를 건져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언제나 찾고 생각하며, 땅엣 것은 생각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 것일까요? 땅엣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은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만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죄 지을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란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방탕한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위엣 것만 생각하고 주님이 잘 인도해 주실 줄 믿고 믿음으 로만 따라가는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마귀의 것입니다. 땅엣 것을 생각하다가는 마귀에게 끌려가서 죄 짓게 됩니다. 물욕과 정욕과 사욕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세상에서 사업하는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업이든 뭐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성경에 항상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스데반입니다. 사도행전 6:15절에,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뻐했던 사람입니다. 돌로 때려 죽이려고 하는데 그 얼굴을 보니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해서 얼굴에까지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게 됐는데 도대체 무엇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곧,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기뻐했던 것입니다. 스데반이 말씀을 전하다가 죽음에 이르니 “아, 나도 예수님과 같이 되는구나, 내가 어떻게 예수님처럼 된 걸까” 하면서 너무 기뻐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나
가는 사람, 위에 것을 생각하고 위에 것을 찾는 사람, 위에 것을 바라보는 사람은 항상 기뻐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본문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를 계속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24시간 기도만 계속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고넬료가 오후 3시에 기도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는데, 바로 그런 것이 항상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몇 십년간 신앙생활 했는데 새벽기도를 쉰 적이 없다 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성경을 봤다, 쉬지 않고 기도했다, 기도원에 가서, 산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고 했노라 하는 것은, 할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계속했다는 말입니다. 또한 늘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인데,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이 곧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기도를 특별하게 작정하고 ‘이렇게 해주십시오, 저렇게 해주십시오’라고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계속되면, 그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그렇게 항상 기도하는 생활, 하나님과 더불어 의로 교통하는 생활, 마음으로 늘 교통하는 것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1) 자연 은총과 특수 은총에 감사하라 

본문 18절에,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는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한 생활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자연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해가 5분만 없어도, 공기가 5분만 없어도 모두 다 죽고 맙니다. 우리가 하루 한 끼 먹을 것만 있어도, 한 가지만 있어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전쟁 나지 않게 해 주신 것, 병 없는 것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병 걸렸다가 난 것보다 병이 안 걸린 것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병이 들었어도, 더 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더 심하면 그보다 더 심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그러다 죽으면 천당 가는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특수 은총을 베풀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영적 양식과 생명의 역사를 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구원을 이루어 나가며 복음의 진보가 있게 해 주심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제일 큰 감사는 구속의 은혜입니다. 제가 유년주일학교 다니던 어느 해 추수감사주일날 구속의 은혜에 감사해서 헌금을 많이 하고 싶었는데 제가 가진 것 다 털어도 15전 밖에 없었습니다. 그 돈을 가지고 감사주일날 교회에 가서 많이 울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을 줄 알아 몸 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하는 마음으로 제 몸을 드리기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2) 자기의 본전을 알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려면 자기의 본전을 알아야 범사에 감사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7-8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본전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벗은 몸으로 왔다가 벗은 몸으로 가니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라도 있으면 감사해야 합니다. 한 끼 먹을 것만 있어도 감사해야 하고, 의복 하나만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본래 있었나요? 없는 것이 본전입니다. 있기만 해도 감사해야 합니다. 없는 것이었는데 있으니 감사 아니겠습니까? 살아 있는 시간도 감사하고 숨 한 번 쉬는 것도 감사하고 살아 있는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있는 것 가지고 언제나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감사할 때만 감사하지 말고, 모든 면에 있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좋을 때나 기쁠 때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고, 감사하지 못할 만한 환경이 닥쳐도 감사하는 생활, 바로 다니엘의 삶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 6:10절에,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자기가 사자 굴에 들
어갈 줄 알고도, 하루 세 번씩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전과 같이 감사하였다고 했습니다. 감사기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서 사자 밥이 될 텐데 그것을 다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어 놓고 하루 세 번씩 감사하며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사자 굴에 들어가게 생겼는데 무엇이 감사하겠습니까? 보통사람들 같으면 살려달라는 기도만 했을 것같습니다. 또 살려달라고 기도하려면 창문 닫고 조심하여 기도해야지,
하나님 앞에 창 닫고 기도하는 것이나 열어 놓고 하는 것이나 같은데 왜 굳이 창 열어 놓고 기도하느냐는 말입니다. 그 나라 사람들이 죽이려고 하는 가운데서도 그래도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전과 같이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제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무엇이 감사한 걸까요? 다니엘은 이미 생명을 전부 하나님께 바쳐놓았으며,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살아서 좋을 것 같으면 살려 줄 것이고 죽어서 좋을 것 같으면 이번 기회에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것이다” 하는 신앙이었습니다. 

빌립보서 1:21-23절에,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런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 좋다”는 것이 다니엘의 소원이요 신앙이었습니다.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살기 때문에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죽더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도 그리스도의 생명이요, 죽어도 그리스도의 생명, 그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사를 초월한 신앙인 것입니다. 바울이 삶과 죽음 둘 사이에 끼었는데 무엇을 원한다고 그랬지요?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만나서 거기서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기를 원하는 생활. 이런 신앙에 선 사람은 항상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스데반도 이런 신앙이었습니다. 스데반도 순교당해서 하나님 앞에 가게 된 것이 너무 즐거워서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항상 기도하는 생활이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

스데반이 순교당할 때 무엇이라고 기도했습니까? 자기 영혼을 받아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무슨 기도를 했습니까?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하는 원수를 사랑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이런 기도입니다. 기도하기 힘든 환경 속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죽는 마당에서도 기도하는 생활입니다. 
또 기뻐하는 생활입니다. 다니엘도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다니엘이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3번씩 기도하며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이것은 사도바울과 같은 신앙입니다. 사도바울이나 다니엘이나 스데반이나 모두 신앙의 표본들입니다. 우리가 그런 신앙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좋을 때만 감사하지 말고, 죽을 때도 감사해야 되겠습니다. 떠나서 그리스도와 같이 사는 것이 더 좋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이런 다니엘의 신앙은 무슨 일 당하든지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의 신앙을 본 받아서 범사에 감사하고, 스데반의 신앙을 본 받아서 항상 기뻐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기도하는 시기와 때를 놓치지 말고 항상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3)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인 줄 알고 감사하라 

로마서 8: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가지만 보면 손해인 것 같으나 합동해서 보면 유익이라는 의미입니다. 종자를 땅에 심으면 썩어지지만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를
맺기 때문에 합동하여 유익이 됩니다. 육신만 생각하면 손해난 것 같아도 영과 더불어서는 큰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만 보지 말고 세상과 내세를 함께 보면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환란만 보지 말고 장차 큰 영광을 주실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합력, 합동, 즉, 다른 것과 합해 보아야 합니다. 육신과 영혼을 합해보고, 처음과 끝을 합해보고, 이생과 내세를 합해보면 다 합동해서 유익이며 그러기에 감사할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만 주시고 복이 되는 것만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 잘못된 것 같아도, 모두 합해 놓으면 결국 잘 된 것입니다. 

욥의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고 십 남매가 하루아침에 다 죽었어도, 욥이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잘 참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욥에게 배나 더 주었습니다. 재산을 배나 더 주셨고 자녀도 더 좋은 자녀를 생산하게 했습니다. 10남매 주셨는데, 전에 죽은 자녀는 천당에 가서 남아있으니, 이제 또 10남매를 주셔서 두 배 아닙니까? 여러 가지 환란의 때는 잠시 다가오지만 장래에 하나님이 연단 시켜서 더 좋은 것
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못 된 것 같아도, 나중에 올 일과 합해 놓으면 큰 유익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젊어서 받는 환란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젊어서 연단 받은 것이 장래에 큰 유익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합력해서 유익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더 좋은 것 주실 것이니까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최권능 목사가 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치루는데 장지에 가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면서 따라갔답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어찌 기뻐하느냐 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만히 좀 계시라고 하니까, 아니, 우리 아들이 천당 가서 오늘 예수님과 함께 있는데, 내가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천당 가는 거 하나 보고 예수님 믿었는데 아들이 천당 갔으니까 기쁘다는 것입니다. 하늘나라를 바라보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신앙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

19절의 “성령을 소멸치 말라”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가야 됩니다. 감동을 끊어 버리면 그다음에는 잘 안 됩니다. 이전에 삼각산 임마누엘 기도원에서 김현봉 목사님 사경회 할 때인데, 제가 저녁 먹고 밖에 돌 위에 나가서 기도 하는데 기도가 여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가 잘 되고 기도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기도 잘 해 나가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까 잠 잘 시간이 됐습니다. 그래서 자고 내일 아침에 해야 되겠다 생
각하고, 뚝 끊어 버리고, 기도 잘 되는 것을 뚝 끊어 버리고서 들어가 잤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려고 나가 보니까 기도가 안 됐습니다. 어제 기도를 좀 더 했으면 잘 했을 텐데 아침에 기도하려고 보니 그 기도의 세계를 다시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께 여쭈어 봤습니다. ‘어저께는 기도가 잘 됐었는데, 오늘 아침 기도가 안 되니 왜 그럽니까?’ 여쭤보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어제는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감동이 안 되었기 때문에 안 됐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올 때에 기도가 잘 됩니다. 그 때에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이 좋습니다. 뚝 끊어버리고 가면 좀 있다하겠다 하면 좀 있다가 감동이 안 됩니다. 감동을 시킬 때에 감동을 무시하지 말고 끊어버리지 말고 감동을 따라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이 성령을 멸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언을 멸시치 말라

20절의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에서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자기가 행할 때 자기가 성경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행해야 되겠다고 깨달았으면 그대로 행해야 됩니다. 안 하는 것은 멸시하는 것입니다. 가령 십일조 못하는 사람이 ‘십일조 해야 되겠다’ 그런 감동이 왔지요? 그럼 십일조 하면 됩니다. 안 하는 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여야겠다’는 감동이 왔는데, 성경에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그 다음에 사랑 안 하면 그것은 감동을, 즉 예언을 멸시하는 겁니다. 언제나 성경 말씀이 깨달아 질 때에 그대로 해야 합니다. 안 하는 것은 예언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본문 21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너희가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은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생각하고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실 것을 생각하고, 믿음으로 모든 것을 승리해야 되겠습니다. 

3. 영, 혼, 몸
삼분설과 이분설

본문 23절에 우리에게 3가지 즉, 영, 혼, 몸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3가지가 있습니다. 영, 즉 영혼입니다. 또 혼, 혼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몸입니다. 한문으로도 영(靈)자가 있고, 그 다음에 혼(魂)자가 있고, 몸 신(身)자가 있습니다. 일본말로도 영을 레이라고 합니다, 혼은 다마시, 야마다 다마시라고 합니다. 몸은 가라다 입니다. 헬라어도 3가지입니다. 헬라어에도 영은 프뉴마, 혼은 프슈케, 몸은 소마입니다. 다 다릅니다. 한문에도 다르고, 영이 있고, 혼이 있고, 몸이 있습니다. 영어로는 영은 spirit, 혼은 soul, 몸은 body입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세 가지로 하는 것이 맞습니다. 삼분설이 맞느냐, 이분설이 맞느냐 논쟁하는데 사실은 삼분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분설로하게 되면 혼은 몸에 가져다 붙여야 됩니다. 영에 가져다 붙이면 안 됩니다. 삼분설과 이분설이 있는데. 사람이 두 부분으로 되어 있느냐,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여기 영과 혼과 몸을 갈라놓으면 삼분설입니다. 이분설로 하려면 혼을 몸에다 갖다 붙여야 됩니다. 혼은 우리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프슈케는 마음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생명, 목숨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목숨도 프슈케입니다. 사람에게는 영과 몸과, 중간에 혼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과 몸의 중간에 혼이 있습니다. 혼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실제로 우리 영혼이 있고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마음이 프슈케입니다. 사실 삼분설도 맞고 이분설도 맞습니다. 이분설을 취하는 사람도 있고 삼분설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이 두 부분으로 됐다는 것은 영혼과 몸의 두 부분으로 됐다는 것이고, 세 부분으로 됐다는 것은 영과 혼과 몸 세부분으로 됐다는 것입니다. 삼분설도 성경에 맞고 이분설도 다 맞는 것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볼 때 삼분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혼이 있고, 영이 있고, 몸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혼에 속하는 것입니다. 프슈케에 속하는데, 마음이 거룩해 져야 됩니다. 영은 중생할 때에 완전히 거룩하여 졌습니다. 

성화의 과정

이제 혼과 몸이 문제인데, 혼을 성화시켜 나가야 됩니다. 또 몸을 성화 시켜 나가야 합니다. 성령과 중생한 영이 합하여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가야 됩니다. 마음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고 또 몸을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을 가지고 역사하셔서 마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겁니다. 몸을 거룩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겁니다. 마귀는 마음을 이용합니다. 인간은 전적 부패한데, 전적 부패성의 좌소(座所)가 어디 있느냐, 부패성이 어디 있느냐, 육신의 정욕이 어디 있느냐, 이 몸에 있느냐 살에 있느냐 하는데, 부패성이 살에 있다면 살이 뚱뚱한 사람은 죄가 더 많고, 빼빼 마른 사람은 죄가 적은 것이 됩니다. 부패성은 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에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는 마음에 있습니다. 예레미아 17장 9절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마음이 부패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패성은 마음에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부패성이 나오지 못하게 성령께서 중생한 영으로 마음을 이용해야 합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에게 이용당하면 성령에게 이용당하는 것이 되는데,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마음이 점점 거룩해 집니다. 마음이 점점 거룩해 지고, 마음이 점점 죄악을 벗어 버리고, 마음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게 됩니다.
그 마음이 또 몸을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으로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시고, 그 다음에 마음은 몸을 이용합니다. 몸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하면 몸이 점점 거룩해 집니다. 몸의 구속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성령과 중생한 영혼을 통하여 이용된 마음이 다시 몸을 통해 역사하면 몸의 구속이 되어서 점점 거룩한 행동을 하게 되고, 몸과 마음이 모두 점차 거룩해 집니다. 그것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중생한 영혼의 기관이냐, 중생한 영혼의 일부분이냐, 사용하는 부분이냐,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게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중생한 영혼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생한 영혼은 별도입니다. 마음하고 다릅니다. 마음은 영혼의 기관이라고 해야 됩니다. 사용하는 기관이며 영혼의 부분이 아니고 영혼의 소속이 아니고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중생한 영혼이 사용하면 마음이 거룩해 지고, 또 그 마음이 몸을 사용하면 몸이 거룩해 지고, 마음이 중생한 영혼에 이용당하지 못하고 마귀에게 이용당하면 악한 마음이 되고 부패한 마음이 되고, 그 마음으로 몸을 이용하면 몸이 또 더러워지고 몸이 악한 행동을 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마음의 병을 고치고 마음을 성령의 인도대로 이용하고 중생한 영혼에게 이용당하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 몸도 점점 거룩하게 만들어 나가야 됩니다. 영과 혼과 몸 세가지가 있는데 점점 거룩하여져서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중생한 영혼은 중생할 때에 이미 다 거룩하여 졌고, 마음과 몸은 거룩해져야 됩니다. 영, 혼, 몸이 예수님 재림할 때에 흠 없게 보전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거룩하게 사용하고 죄 짓는데 마음을 두면 안 됩니다. 마음에 죄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야 됩니다. 마음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점점 거룩해져 나가야 됩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몸을 이용해서 몸이 점점 거룩해져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예수 재림할 때에 흠 없게 보전되는 법입니다.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냐 기관이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뻘콥의 조직신학에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되어 있는데, 기능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기능이라고 하면 영에 속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으로 죄를 지으면 영혼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관이라고 해야 됩니다. 기능이 아니고 기관이어야 됩니다. 마음은 영혼이 사용하는 기관입니다. 기관이니까 사용하면 거룩하여 지는 것이고 사용 못하면 악해지는 것입니다. 기능이 아니고 기관! 마음이 영혼의 기능이라고 하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렇게 되면 중생한 영혼에게 죄 있는 것이 됩니다. 영혼이 기능이니까 마음에 죄 질 생각이 나면 영혼이 죄 짓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기능이 아니고 기관이어야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성령께서 중생한 영혼을 중생시키셨는데, 중생한 영혼을 가지고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용해야 합니다. 성령에게 이용당하려고 하는 마음은 거룩한 마음입니다. 또 거룩한 마음이 몸을 이용하면 몸이 거룩해 지고, 몸과 마음이 거룩해집니다. 마귀는 어디까지 손을 대는가 하면 마음에 손을 댑니다. 영혼에게는 손을 못 댑니다. 마귀가 마음에 손을 대서 마귀가 죄 지을 마음을 일으켜 놓습니다. 이렇게 마음이 죄 짓게 되면 몸도 그것에 이용당해 몸도 죄 짓게 됩니다. 성령은 중생한 영혼을 이용해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고, 마귀도 마음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악한 마음이 있고 선한 마음이 있습니다. 중생한 영혼, 성령에 이용당할 때는 선한 마음, 마귀에 이용당할 때는 악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둘이라고 어떤 사람이 나보고 전화로 따지곤 했었습니다. 나는 마음이 하나라고 하였는데 그 사람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이랍니다. 하지만 그것은 몰라서 그렇습니다. 마음은 하나인데 성령이 이용할 때는 선한 마음이 되고 마귀가 이용할 때는 악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에게 이용당하는 마음, 그 마음에 이용당하는 몸, 거룩한 몸, 신령한 몸 가지고 나가야 되겠습니다.

본문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라고 했는데 ‘미쁘시다’라는 말은 ‘신실하다,’ ‘신용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분은 신실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희를 통해 반드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4. 문안 축복

본문 25절에,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씀대로 교역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기도해 줘야 하나님의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또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기도해 줘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일을 잘 할수 있게 해주시고 또 자기도 은혜 받습니다. 교역자를 위해 기도해 주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에,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고 하였습니다. 제일 가까운 인사, 친절한 인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입 맞추는 것이 제일 친절한 인사였습니다. 요새는 그런 방법이 아니고 우리가 쓰는 친절한 방법으로 인사하면 됩니다. 
 
본문 27절에, “내가 주를 힘입어 너희를 명하노니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 읽어 들리는 것, 이것이 좋은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서 이런 편지가 왔다고 읽어 준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성경을 읽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 읽어 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때로는 강해서 읽어 주어도 좋습니다. 작은 교회들은 교역자들이 교역자 수양회 등, 모이는 데 오게 되면 삼일예배 인도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나가서 성경을 읽어주면 됩니다. 혹은 강해서 읽어 줘도 됩니다. 그리고 찬송가와 주기도하고 끝나면 되는 것입니다. 이기선 목사님은 성경이 제일 좋은 설교라 했습니다. 성경이 예수님 설교이고, 성령 설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보다 어떻게 잘 하겠냐는 것입니다. 성경 읽어 주면 예수님 설교, 성령 설교가 되기 때문에 제일 좋다고 하였습니다. 
 
또 책을 읽도록 선물해서 주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설교집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요새 다른 사람에게 선물했는데 우리교회 안 나오는 사람입니다. 선물하면 그 사람들이 그것을 읽어 보고 은혜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형제에게 이 편지를 읽어 들리라!”는 것은 성경을 읽어 들려라, 강해서 읽어 들려라, 다른 사람에게 전하라는 것입니다. 전하라!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본문 28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 지어다”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11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알고 준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알고 준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11

1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으니, 

5:2 이는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올 것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듯이 파멸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5:4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이르지 않을 것이니, 

5:5 너희는 모두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서 정신을 차리자.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한다. 

5: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5:9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것은 진노를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5: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든지 그분과 함께 살게 하려는 것이다. 

5:11 그러므로 너희가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권면하고 서로 세우라. 


1. 예수님의 재림
마지막 날에 올 불 심판

본문 1-2절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3절에,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정경에 이를 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는데, 주의 날이 도적같이 갑자기 알지 못하는 시간, 예기치 못할 때 갑자기 주의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주의 날’은 재림하는 날, 심판하는 날입니다. 세상 끝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고 세상을 심판하는 세상 끝 날이 ‘도적같이 올 줄을 너희가 자세히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내내 지금처럼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또한 심판하십니다. 불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6-7절에 보면, 노아의 날에 물로 심판했습니다. 그때에는 다 물로 심판했습니다. 전 세계가 다 물로 잠겨서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물에 잠겨있었을 때에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대개 다 죽었습니다. 노아시대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땅위에 사람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고, 방주를 탄 8사람 이외에는 전부 다 심판하고, 또한 짐승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때에 다 심판하여 죽어서 물어 떠다니다가 한 곳에 가서 다 뭉쳐서 그것이 석탄도 되고, 석유도 되고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토탄이라고 하는 나무 썩어진 것들도 있다는데, 아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때에는 물로 심판을 했지만, 이제 세상 마지막 끝에는 베드로후서 3장에 있는 말씀처럼 불로 심판을 한다고 했습니다. 불로 심판할 때에는 땅에 모든 원소가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는 원소가 다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불 심판을 앞에 놓고 나가는 중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내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함과 같이 옴

본문 3절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온 세계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해산의 고통과 함께 해산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잉태된 것이 있습니다. 잉태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해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산하게 되면 고통이 오게 됩니다. 아이를 해산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 세상을 심판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멸망당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한 후에 천년왕국이 임하고, 그 다음에 하늘나라가 오게 됩니다. 그때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잉태가 되어서 평안한 것입니다. 잉태가 되지 않아서 평안한 것이 아니고, 잉태가 되어 있는데 잉태된 자리에서 평안한 것입니다. 잉태된 자리에서 평안한 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해산의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잉태가 된 것은 죄악이 잉태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심판이 잉태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속에 죄악을 잉태하고 속에 품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속에 품고 평안하다 안정하다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평화조약 및 회담도 속에 불의를 품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평화하려고 하지만 속에 불의를 품고 평화를 하려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것은 잉태된 여자입니다. 죄악을 잉태하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그런 평화입니다. 속에 죄악과 불의를 품고 서로 속이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그러한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화는 반시평화입니다. 요한계시록 8장 1-2절에 보면 ‘반시평화(고요)’라고 했습니다. 

불심판도 품고 나옵니다. 초자연적인 불이 임할 수도 있지만 핵무기가 세상을 심판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를 여러 나라가 다 품고 있습니다. 다 잉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소련은 세계를 20번씩 멸망시킬만한 그러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이란도 얼마 안 있으면 핵무기를 소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미사일 쏘는 연습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먼저 선 공격할지도 모른다고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핵전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날지 모릅니다. 여러 나라에서 핵무기를 다 잉태하고 지금 외부적으로는 평화를 누리고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잉태했다는 것이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핵무기 잉태, 불의, 죄악, 거짓의 잉태입니다. 속에 품어두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외부적으로만 평화해 나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지금 죄악을 품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품고, 불의를 품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며 이러한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잉태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은 정해 놓은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임시 평화입니다. 어느 날 해산 할지 알지 못하고서 건강하다, 안전하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잉태된 여자는 언제 해산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같이 오는데 언제 오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것만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잉태된 여자와 같은 세상인 것을 알고 이 세상이 갑자기 이제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이르면 하늘나라가 이루어짐

해산의 고통이 오면 아이를 하나 낳게 됩니다. 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말세학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잉태되어 해산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6-8절을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칠 터인데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이 해산의 고통입니다. 원어에는 ‘재난의 시작이 해산의 고통’이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한 성경들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도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한 것이 몇 군데 됩니다. 그러면 말세의 난리와 난리, 민족이 민족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는 그것이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세학적으로 보면 이것을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원어에 해산의 고통이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에는 그저 ‘고난이다’라고 하는 것이 둘째라고 하는데,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하면 뭘 하나 낳아야 한단 말입니다. 뭘 낳아야 되겠느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그런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지 말고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말세학적으로 참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 본문에도 “해산의 고통이 이른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이르면 아이를 하나 낳아야 되지 않습니까? 남자를 낳든지 여자를 낳든지 하나를 낳아야 합니다. 뭘 낳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 마지막 끝에는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외부적인 평화가 있다가, 속에 잉태된 것이 있기 때문에 불 심판 잉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잉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잉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불 심판이 잉태를 하게 되고, 그리스도가 임하시게 되는데,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나라는 다 끝장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세상이 다 끝이 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속에 잉태된 것이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잉태된 것을 낳아야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갑자기 임한다는 것입니다.

2. 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 자
깨어 있는 자

본문 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2절에는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아니면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오는가? 도적같이 오지 못하는가? 일반적으로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날, 예기치 못한 때에 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있으며 항상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있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게 오는 것, 갑자기 오는 것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는가? 빛 가운데 있는 자, 예비하는 자, 깨어있는 이 세 종류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까? 빛 가운데 있는 자, 예비하는 자, 깨어있는 자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시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영적 역사를 이루어 나갑니다.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대를 분별할 수 있고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신앙 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신자라야만 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1~13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날에는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이 체질이 뜨거운 불에 다 녹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뜨거운 불에 녹아질 것인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요구됩니다. 거룩하라는 말입니다. ‘거룩하지 아니하면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한 행실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의의 거하는 바’는 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나가면 새 하늘과 새 땅[신천신지(新天新地)]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년왕국이 올 것인데 그것이 또 신천신지입니다. 거기에는 거룩한 사람, 경건한 사람, 의를 이루어나가는 사람, 이러한 자들이 거한다고 했습니다.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 졸지 말고, 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심판과 예수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 낮에 속하였지만 낮잠 자면 안 됩니다.
다니면서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밤에 자고 취하는 자는 밤에 취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낮에 속하였습니다. 성경도 알고 예수님의 재림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는 자와 취하는 자는 밤과 같습니다. 낮에 낮잠 자면 그것이 밤이나 낮이나 뭐가 다릅니까? 눈 감고 자면 다 새카만 것인데 밤이나 낮이나 뭐가 다릅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한 자인데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인데, 자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낮잠 자면, 눈 감으면 밤과 같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는 사람이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 조는 신앙, 또 죽은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역사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항상 깨어서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생명의 역사, 감동, 그를 의지하는 마음, 이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하면 맹한 신앙입니다. 아무 감각이 없는 겁니다. 잠자니까 그건 뭐 밤과 같지 않습니까? 흑암을 만나고, 아무 감동이 없고, 그저 제 생각 제 뜻대로만 하고, 세상만 따라가고, 세상 물결치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잠자고 조는 신앙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

본문 5절에, “너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은 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알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두움에 속하지 않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비하고 있는 자

보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갑자기 옵니다.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 갑자기 옵니다. 도적이 알게 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점에 올지 알지 못합니다. 밤에 갑자기 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43-44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에 나와 있듯이, 예비하고 있는 자, 깨어있는자에게는 도적이 갑자기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비하고 있어야겠습니까? 도적이 언제 올지 알지는 못하지만 밤에 도적이 올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온 식구들이 불을 켜고 빛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 집안의 있는 전등을 다 켜서 낮과 같이 만들고, 식구들이 자지 말고 깨어서 도적이 오면 잡으려고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집은 새벽에도 내내 온 가족이 깨어서 준비하고 있는데 도적이 12시에 오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임하지 못합니다. 2시나 3시에 와도 몰래 도적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며, 깨어 있으며, 예비하고 있으며 그렇게 주님이 오실 줄 고대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서도 이렇게 예비하고 있으면 도적같이 재림이 임하지 못합니다. 빛 가운데 있고, 깨어 있으며, 어느 시간에 올지 이 시간에 올지 다음시간에 올지를 예비하고 있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빛 가운데 거하여 불을 켜 놓고 있어야 하고, 예비하고 있어야 하고, 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불을 다 켜놓으라는 것입니다. 불 끄지 말고 항상 빛이 환하게 비추도록 언제나 거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주께서 항상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언제나 있는 성도, 빛 가운데 날마다 걸어가야 합니다. 빛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영적 빛을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진리의 빛, 영적 빛 가운데로 항상 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도적같이 임하면 큰 화를 만납니다.

3. 취하지 말고 예비할 것

영적으로 자지 말고 세상에 취하지 말 것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자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했습니다. 잠자는 자는 밤에 자야지, 낮에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기 때문에 낮잠 자면 그것은 밤이나 낮이나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지 말라는 것은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영적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을 하고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이 늘 깨어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 많이 하고 늘 깨어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취하지 말라’는 것은 술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나 맥주나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도 맥주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술이니까 안 됩니다. 잠언 23장 31절에 보면,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나 맥주나 술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뜻은 세상에 도취되지 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술 먹고 취해서 돌아다니면 그것도 낮이나 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지만, 낮잠 자는 사람과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옵니다.
그 사람은 갑자기 예수님이 오셔서 무슨 일을 만날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시간에 올지, 이제는 빛에 거하여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취하는 사람, 그거 제정신 없습니다. 술 취하지 말고, 세상과 향락에 취하지 말고, 오락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고통이 많으니 그것들을 잊어버리려고 술 먹고 취해서 다 잊어버리려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 가운데 신비주의에 취해 또 잊어버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것에 도취가 되려고 합니다. 열광적으로 해서 도취가 되어서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취하는 것, 그것은 믿는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합니다. 무엇에 취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깨어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락에 취하지 말 것, 세상 향락 주의에 취하지 말 것, 구경 다니는 데에 취하지 말 것, 술 취하지 말 것, 또 육신의 정욕에 취하지 말 것, 세상 명예 영광에 취하지 말 것,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기서 깨어나 믿
음에 서야 하겠습니다. ‘주여 믿습니다’하며 하늘나라를 바라봅니다. 영이 깨어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으로 교통하는, 그러한 영을 가지는 것, 영으로 사는 신앙이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성령을 힘입어 영으로 사는 신앙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이런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염려, 세상 방탕, 향락 등의 세상의 모든 것에 취해 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구경하는데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해도 별거 없습니다. 가봐야 내내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도시나 가보면 다운타운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중심가에 건물 큰 것들 몇 개 있고 다 같은 것들입니다. 일본에 가 봐도 미국에 가 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다른 나라에 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다 구경 해 보면 뭐합니까? 구경 가서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영국구경 갔다 와서 죽은 목사도 하나있고, 미국 구경 갔다 와서 죽은 사람도 하나있고, 구경 갔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죽는가 하니 너무 과로해서 다녀서 그렇답니다. 아침 6시부터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하니까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갔다 와서 죽습니다. 그거 보면 뭐합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아무리 보아도 다 쓸데없고 족함이 없습니다. 

세상에 도취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경 다니는 것, 향락주의, 오락, 방탕, 이 세상 노는 데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남녀가 섞여 다니면서 버스 간에 다니다가 춤추며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 구실 못합니다. 가서 술 먹고 방탕하며 돌아다니는 게 무슨 사람구실을 하겠습니까? 집안이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도취되는 것은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술 취하는 것, 잠자는 것 안 됩니다. 잠자는 것은 육신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영적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육신중심으로 돌아서면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지 말고, 취하지 말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십니다. 깨어있고 취하지 않고 항상 근신하고 빛 가운데 거하고 준비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언제 오셔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아,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왔구나. 말세의 심판이 가까워 왔다’하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잉태된 여자가 언제 해산 할지 알지 못하지만 해산 할 날이 가까워오는 것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심판도 날짜는 언제인지 알지 못해도 ‘이제는 다 되었다. 남은 때가 얼마 없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과 같이 갑자기 고난이
올 것이고, 심판도 올 것이고 또 해산 할 것이라고 압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이렇게 아는 깨어있는 성도는 준비 잘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준비할 것

본문 8절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람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흉배인데 이것을 가슴에 붙이고 나가고, 소망의 투구를 쓰라는 것입니다. 

신망애(信望愛)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을 준비하고 그 다음에 소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을 정면에 붙이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대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험이 들어와도 믿음과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투구와 소망인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소망과 하늘나라 갈 소망을, 투구를 쓰는 것과 같이, 머리에 소망을 이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은 앞에 대고 나아가며 어떠한 일이 닥쳐도 믿음과 사랑으로 해결하고, 시험도 믿음으로 이기고 사랑으로 이기고, 무슨 일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믿습니다!”하며,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해결하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소망입니다. 이제 우리가 얼마 안 있으면 잠시 잠깐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건데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 것이라는 소망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 가지를 항상 준비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가슴에 붙이고 나가며 모든 시험을 다 이기고, 모든 것을 다하고, 모든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으로 베풀고, 믿음과 사랑으로 전진하고, 향상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인데 “내가 이제 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면 그 나라이다. 그 나라가 온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것이다”고 하며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의뢰하여 예비할 것

본문 9-10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예수님과 같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깼다는 것’은 ‘사는 것’이고, ‘자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살든지 죽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와 함께 살게 했다는 것을 알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피차 권면하는 것이 좋고 또 피차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권면해서 덕을 세우도록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줘야 합니다. 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피차 권면하라는 겁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1-13 교회를 위하는 생활과 기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교회를 위하는 생활과 기도
데살로니가전서 3:1-13

1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2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3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4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5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6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7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8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9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10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 11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12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13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3:1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우리만 아테네에 남는 것을 좋게 여겨, 

3:2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일꾼인 디모데를 보냈으니, 이는 너희를 견고하게 하고 너희의 믿음을 격려하여, 

3:3 아무도 이 온갖 환난 가운데서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일을 위해 세우심 받은 것을 너희가 알고있다. 

3:4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우리가 환난당할 것을 너희에게 예고하였는데, 과연 그렇게 되었고 너희도 그것을 알고 있다. 

3:5 그러므로 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너희의 믿음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를 보냈으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3:6 그런데 지금 디모데가 너희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우리를 항상 좋게 생각하며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 싶어 한다고 전해 주었다. 

3:7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3:8 너희가 주님 안에 굳게 서 있으면, 이제 우리는 산다. 

3:9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해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 수 있겠느냐? 

3:10 우리는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밤낮으로 열심히 간구하고 있다. 

3:11 이제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너희에게로 바로 인도하시고, 

3:12 우리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같이 주께서 너희에게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풍성하고 넘치게 하셔서 

3:13 너희 마음을 굳세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분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다시 오실 때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 없게 하여 주시기를 원한다. 아멘.


1. 교회를 위하는 생활
주의 일군을 잘 영접하고 대접하는 생활

본문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 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습니다. 

‘참다 못하여’란 말이 1절에도 있고, 5절에도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너무 사랑하므로 바울의 마음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가운데서 실족하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한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디모데를 잘 영접해 주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디모데를 잘 대접한 것은 바울을 영접한 것과 같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쓰는 사람이며, 바울의 동역자이므로 디모데를 잘 영접하고, 대접한 것은 바울을 잘 영접하고, 대접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를 반대하는 사람은 바울을 반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환란 중에 요동치 않는 신앙생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는데, 당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요동할까봐 바울이 상당히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환난 당하는 것을 마땅한 것으로 알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22에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합니다. 환난을 통하여 성도가 연단을 받습니다. 로마서 5:3-4에,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환난은 성도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고, 복으로 주신 것입니다. 빌립보서 1:29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환난 받을 각오로 준비하는 생활
 
본문 4절에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을 때에 바울이 “앞으로 환난을 받는다”고 미리 말해 놓았는데, 지금 환난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오기 전에 교회에서 미리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성도들이 환난 받을 각오와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미리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 십자가가 닥쳤을 때에 제자들이 낙심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잘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올 환난을 자주 말해주는 게 좋습니다.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서는 앞으로 올 환난에 대해서 많이 기록을 했는데, 자주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미리 말해주어야 환난 받을 준비를 했다가 환난이 오면 쓰러지지 않고 연단을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평안하다”고만 말해주면 안됩니다. “환난이 온다”고도 말해 주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서에 거짓 선지자들이 “평안하다, 평안하다”고만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6:14에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은 “평안하다”고만 밤낮 말해 줍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환난이 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목사들이 “평안하다, 잘 산다, 복 받는다”고만 말해주면 교인들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됩니까? 우리 교회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나오시는데, 그분이 우리 교회에 나오시기 전에는 기장측 교회에 나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니시던 교회 목사님이 축복 기도를 해주시는데, “뭐도 잘 되고, 뭐도 잘 되고”하며 한참 무당 푸념하듯이 축복을 해 주길래, “오늘 복을 너무 많이 받아 과분하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복 받았나 하면 복을 받긴 뭘 받았습니까? 도리어 믿음을 찾지 못하겠기에 우리 교회로 오셨습니다. 

또 어떤 교인의 자녀가 대학교 시험을 치려고 하는데, 어떤 목사가 와서 대학교에 붙는다고 축복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대학교에 붙는다고 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래서 그 목사님에게 닭을 잡아 잘 대접하고 보냈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붙었겠습니까? 붙긴 뭘 붙었습니까? 괜히 닭 한 마리만 죽였습니다. 이와 같이 거짓 선지자는 언제나 “잘 된다, 복 받는다, 평강하다”고 하지만, 참 선지자는 그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가 온다”고 하였지, “평강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도 앞으로 “환난이 온다, 환난 받을 각오를 하라, 연단을 받아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신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도 이 다음에 교회를 맡아서 할 때에 “평강하다, 잘 된다, 복 받는다”고 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죄에 대하여 책망하며 환난을 가르쳐야 교인들이 바로 섭니다.

본문 5절에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라고 하였습니다. 시험하는 자가 와서 시험할 때에 시험에 넘어가면 바울이 전한 것이 다 헛된데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이 염려하여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것입니다.

2. 교회를 인하여 기뻐함

본문 6-7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고 하였습니다. 디모데가 돌아왔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파송했는데,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 소식을 가지고 돌아와서 보고하였는데, 참 좋은 보고가 돌아왔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환난과 궁핍을 당하는 중에서도 데살로니가 교회의 좋은 소식을 들을 때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8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에게서 배운 사람이 주 안에서 굳게 서면 바울이 사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이 믿음에 굳게 서서 믿음을 잘 지켜 나가면, 가르친 자(교역자)가 사는 것입니다. 교역자가 용기를 얻고, 힘을 얻고, 생명이 소생함을 얻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르친 사람들이 다 쓰러지고, 배반하면, 교역자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칼빈이 지금으로부터 450년 전의 사람인데, 우리가 칼빈의 5대 교리를 잘 지키면 칼빈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를 다 내어 버리고 알미니안주의, 현대신학, 신신학으로 기울어지면 칼빈이 죽는 것입니다. 김현봉 목사님이 가르친 사람들이 그의 진리를 그만큼 잘 지키면 김현봉 목사님이 사는 것이고, 그와 반대로 나가면 김현봉 목사님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른 진리를 배웠으면 바른 진리를 세워 나가는 것이 자기도 살고, 가르친 선생도 살고, 둘 다 사는 것입니다. 

3. 교회를 위한 기도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고 기도함

본문 9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잘되는 것을 볼 때에 기뻐서 어떻게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지 말할수가 없었습니다.“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라고 하였는데, 믿음을 보충해 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환난 중에서도 믿음과 사랑에 굳게 서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부족한 면을 보충해 주고, 온전케 하려고 주야로 간구했습니다. 성도의 부족한 면과 무지한 면과 연약한 면과 잘못된 면을 보충시켜 주는 자는 하나님 앞에 영원히 남습니다.

더욱 더 사랑이 풍성해지기를 기도함

본문 11-13절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사랑이 더욱더 넘치게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본래부터 사랑의 수고가 많은 교회이고 환난 중에서도 믿음과 사랑이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데살로니가 교회가 사랑이 더욱 더 많아져서 피차 사랑하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를 바울이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사랑의 세계와 영의 세계와 생명의 세계는 하나입니다.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라고 하였는데, 마음이 연약하면 신앙을 지키지 못합니다. 에스겔 16:30에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음녀의 행동과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약한 자는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못합니다. 히브리서 13:9에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하라고 했습니다. 마음을 굳게 하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
기를 원하노라”고 하였는데, 성도가 주의 재림하실 때에 거룩하고 흠이 없이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것만큼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받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와 상급이 다릅니다.
에베소서 4:15에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고 하였는데, 자라난 것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18 죽은 자에 대한 소망.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죽은 자에 대한 소망
데살로니가전서 4:1-18

1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2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3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4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5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6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7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8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9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10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11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12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 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
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4:1 그러므로 형제들아, 마지막으로 우리가 주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게 간구하며 권면한다. 너희는 마땅히 어떻게 행하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지 우리에게서 받았으니, 너희가 행하는 대로 더욱 풍성히 하여라. 

4:2 너희는 우리가 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준 명령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다. 곧 너희가 음란을 멀리하고, 

4:4 각기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할 줄 알고,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따르지 말고, 

4:6 이런 일에 분수를 넘어 형제를 해롭게하지 마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경고하고 증언한 대로 주께서는 이 모든 행위에 대하여 징벌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4:7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불결함에 이르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거룩함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4:8 그러므로 이를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다. 

4:9 이제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으니, 너희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4:10 또 너희는 온 마케도니아의 모든 형제들에게 사랑을 행하고 있으나,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권면하는 것은 너희가 더욱 풍성히 하고, 

4:11 우리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같이 조용히 자신의 일을 하며, 너희 자신의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4:12 이는 너희가 외부 사람들을 대하여 예의 바르게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4:13 형제들아, 이제 우리는 너희가 자는 자들에 대하여 모르기를 원하지 않으니, 이는 너희가 소망 없는 다른 이들처럼 슬퍼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4: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것을 믿으니,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잠자는 자들도 그분과 함께 데려오실 것이다. 

4:15 우리가 주님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는데, 주께서 오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잠자는 자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이다.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4:17 그 다음에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이다. 

4:18 그러므로 너희는 이 말씀으로 서로 위로하여라.


1. 거룩
믿음, 사랑, 소망이 더욱 풍성하기를 힘쓰라

본문 1절에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에게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배워서 그대로 잘 행하고 있었으나, 바울은 더 많이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은 믿음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행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6절에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 믿음과 사랑이 충만하였는데, 더 많이 충만하라는 것입니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1:2-3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이고,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이고,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즉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 소망, 사랑이 풍성해서 항상 하나님께 바울이 감사하였는데,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뛰는 말에 채찍을 더 한다는 말입니다. 즉 잘하고 있는데, 좀더 잘하라고 채찍질을 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행함과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인데,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잘한다고 해서 그치지 말고 앞으로 더 잘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권면입니다.

음란을 버리라

본문 2-4절에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뜻은 음란을 버리는 것입니다.

◉ 음행 할 수 있는 환경을 피하라

고린도전서 6:18절에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죄가 몸 밖에 있지만 음행 죄는 자기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음행을 피하라고 하였는데, 음행은 피하여야 합니다. 다른 죄는 싸워서 이기라고 하였는데, 음행은 피하여야 이깁니다. 요셉도 보디발의 아내가 음행하자고 할 때에 피하지 않았습니까? 보디발의 아내가 옷을 붙잡았을 때에 요셉이 옷을 벗어 버리고 도망하였습니다.
음행 죄는 피하여야 이깁니다. 

그러면 무엇을 피하여야 하는가? 음행할 수 있는 환경을 피하여야 합니다. 음행의 환경 속에 들어가 있으면 음행을 피하려고 해도 못 피합니다. 어떤 목사가 창녀촌에 전도하러 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전도를 잘하였는데, 오랫동안 창녀들을 사귀는 바람에 마지막에는 창녀들에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럴 바에는 안 간 것보다 못합니다. 그러므로 음행 죄는 피하여야 합니다. 

◉ 음행하는 마음을 피하라

또 음행하는 마음을 피하여야 음행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음행하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걸려듭니다. 그러므로 음행하는 마음은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5:2에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처럼 여기라고 하였는데, “여자다, 남자다” 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저 “성도가 있다, 나도 성도이다”하며 성도와 성도끼리로 여겨야 합니다. 이성관계는 아예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음란 죄가 가득한 세상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소돔, 고모라와 같이 음란죄가 가득해집니다. 누구한테 들어보니까 남녀가 자동차 타고 놀러가는 것이 많다고 합니다. 누구인지 모르고 서로 자동차 타고가서 구경하고, 그 다음에는 술 마시고, 같이 자고 온다고 합니다. 한번 같이 자는데 여자에게 20만원을 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망하는 데로 가는 것입니다. 성도는 음란을 피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자는 음행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하라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할 줄을 알고”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결혼의 신성함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7장에 남자마다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남편을 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음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색욕을 좇지 말라

본문 5절에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라고 하였습니다. 색욕을 좇지 말라는 것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6:1-2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정욕으로 기울어져서 아내를 삼았다고 했습니다. “잘 생긴 남자와 결혼해야겠다, 미인하고 결혼해야겠다”하며 외모를 좇지 말고, 마음을 보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으면 마음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얼굴이 잘 생겼어도 마음이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 없는 여자와 결혼한 사람들은 많은 고난을 당합니다.

◉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

본문 6절에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은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 아내를 취할 줄 알고, 한계를 넘어서 형제의 아내를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분수를 넘어서 음행함으로 형제를 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음행하면 망합니다.
남자가 음행하면 여자를 망하게 하는 것이고, 여자가 음행하면 남자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그 가정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음행을 버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음란을 버리면 그 사람은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음란을 버리지 못하면 앞으로 마귀의 올무에 걸리기 쉽습니다.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는 것은 음행하며 돌아가면 하나님이 원수를 갚는다는 것입니다. 즉 죄에 대한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거룩케 하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심

본문 7-8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가 음행과 색욕을 좇지 않아야 될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거룩케 하여 하나님으로 즐거워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는 것은 남편은 자기 아내를, 아내는 자기 남편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이혼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혼하면 안 됩니다. 누가복음 10:16에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므로 복
음 안에서 맺어준 정당한 관계를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2. 형제 사랑

본문 9-10절에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형제 사랑을 잘하고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형제 사랑을 더 많이 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사랑이 점점 커져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랑이 점점 커지면 영이 자라납니다. 영의 세계와 사랑의 세계는 하나입니다.

종용히 자기 일을 하라

본문 11절에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일하라는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4계명은 주일에 일하지 말고 쉬라는 것이 절반이고,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는 것이 절반입니다. 네 남종이나 여종, 네 육축,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종용하여 자기 일을하고”라고 했는데 조용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자는 실수가 많다고 했습니다(잠 10:19). 종용이 자기 일을 하는 자는 교회의 보배입니다.

종용히 일할 줄 알아야 합니다. “돌이”가 셋이 있는데, 일하지 않으려고 살살 빠져나가는 사람은 배돌이고, 먹는데 빠지지 않는 사람은 감돌이고, 싸우는데 악악하며 싸우는 사람은 악돌이입니다. 성도는 일할 것이 있을 때 안 하려고 살살 피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 일을 종용히 하고, 종용히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10절에,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될수 있는 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말고 자기 손으로 일하여 다른 사람
을 도와주며 살아야 합니다. 일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또 종용히 일하는 사람이 귀한 사람입니다.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궁핍함이 없게 하라

본문 12절에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왜 종용히 일하여야 하는가? 그것은 종용히 일할 때에 안 믿는 사람에게 덕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가 일해서 돈을 벌므로 궁핍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일해서 궁핍이 없이, 남에게 신세짐이 없이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외인은 불신자를 가리킵니다. 신자가 불신자에게도 덕을 세워야 됩니다.

3. 죽은 자에 대한 소망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잠자는 것임

본문 13절에,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을 죽은 자라 하지 않고 자는 자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하였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을 자는 자라 그랬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것을 예수님이 나사로가 잠잔다고 그랬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성도는 잠자는 것입니다. 잠잔다는 것은 생명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생명이 그냥 살아있는데 세계만
바꿔진 것입니다. 이 세상 세계에서 잠자는 사람은 꿈 세계로 바꿔지는 것인데, 현상 세계에서 꿈 세계로 갑니다. 예수 믿고 세상 떠난 사람은 이 현실 세계에서 내세로, 하늘나라로 세계가 바꿔진 것입니다.
생명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잠자는 사람이 생명 그냥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잠자는 사람은 깨어날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잠이 들면 그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듯, 그와 같이 예수 믿고 세상 떠난 사람은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 아침에 다 깨어서 부활해서 하늘로 올라갑니다. 

잔다는 것은 생명이 그냥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만 바꿔졌다는 것입니다. 이제 깨어난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나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자는 것이라 했습니다. 잠자면 잠깐 있으면 깨어나는 것입니다. 잠들었다 깨어난다, 살아있다, 세계만 바꿔졌다, 이 현실세계에서 내세로 세계가 바꿔져있다는 것입니다. 살아있긴 그냥 살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처럼 성도들도 부활함

본문 14절에,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예수 믿고 세상 떠난 사람,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날에 하나님이 앞서간 성도 다 데리고 온다는 그 말입니다. 많은 사람, 수많은 성도를 데리고 온다고 하였습니다. 

유다서 1장 14-15절에,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성도와 함께 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16절에,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라고 하였습니다. 

재림할 때에 자는 자가 먼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먼저 부활해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했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부활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원동력입니다, 원동력이고 첫 열매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부활과 같은 부활이 있고, 그 예수님 부활의 능력으로 예수 믿는 사람도 다 부활합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지낸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늘에 오르사’, 하늘에 올라가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이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부활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부활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은 다시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은 산다고 했습니다. 사는 것입니다. 즉 말하면, 장례 지낸 몸이 부활하여 영과 합해져서, 예수님 부활하신 것 같은 그런 부활의 몸으로 부활합니다. 

다시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제 죽을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 깨어난다”고 하면서 죽으면 됩니다. 잠깐 있으면 살아납니다. 죽을 땐 뭐라 하고 죽으라고 했습니까? “다시 살아난다. 깨어난다” 하고 죽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닙니다. 자는 것이므로 한잠 자고 나면 깨는 것입니다.

4. 예수 재림 때의 될 일
예수께서 오실 때 호령과 나팔소리로 오심

본문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는 호령으로 오십니다. 큰 호령으로, 천지가 다 진동하도록, 아예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납니다. 천사장이 무슨 소리를 할지는 몰라도, 하여간 천사장의 소리가 하늘과 땅을 진동해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을 불면서 오십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날에 호령이 날 것 같은데, 무슨 호령 날 것 같습니까? 하여간 주님이 재림하는 날 세계가 다 알도록 호령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주께서 오실 때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가 있는데, 천사장이 무슨 소리할 것 같습니까? 예수님 재림하신다는 소리일 것입니다. 또한 “성도여 일어나라”는 부활의 소리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팔이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들리도록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석에 바늘 붙듯 하늘로 들려감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라갑니다. 예수 믿고 죽은 사람이 먼저 부활해서 올라가는데, 공중 올라가서 공중에서 예수님 영접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있는 사람도 부활체로 변화가 되어서 다 들려가서 공중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올라오라고 하는 그 말씀의 힘에 의지해서 예수님의 능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지남철을 천장에 매달아 놓고 아래에 바늘을 많이 깔아 놓으면 지남철로 바늘이 다 딸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제트 엔진 없어도 바늘이 훌떡 훌떡 훌떡, 저기도 훌떡 훌떡 훌떡 훌떡 다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까? 지남철의 힘으로 바늘들이 훌떡훌떡 올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힘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힘으로 훌떡훌떡 쑥 올라갑니다. 쑥, 쑥, 쑥 올라갔습니다. 옆에 사람도 쑥 올라갑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못 올라갑니다. 옆에 안 믿는 사람이 자기 좀 봐달라고 말해도 봐주긴 어떻게 봐 주겠습니까? 쑥 하고 올라가는데 봐줄 시간이 없습니다. 가만히 쑥 올라가는데 뭐 어떻게 봐줄 수 없습니다. 차라리 믿어야 됩니다. 믿으면 믿음의 힘으로, 예수님의 힘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쓴 것만 하늘에 남음

그때 뭐 가지고 갈 수 있습니까? 못 가져갑니다. 다 내놓고 가야 됩니다. 우리가 이제는 가기 전에 다 하나님께 바로 써야 됩니다. 물질 있으면 가기 전에 하나님께 바로 쓰고 가야 됩니다. 앞으로 쑥 올라갈 것인데 다른 것 못 가져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쓴 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바로 쓸지, 그게 중요합니다. 세상에 쌓아 놓은 것은 다 내버리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쓴 것만 하늘나라에 가서 남아 있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 영접하고 뭐라고 하였습니까? “내 재산에서 절반은 가난한 사람 주고, 다른 사람의 것 내가 토색한 게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믿음을 썼습니다. 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절반을 뚝 잘라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쉽지 않은데, 하늘나라의 하나님 위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했으니까 물질이 문제가 아닙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이제 쑥 올라가기 전에 할 것 다 해놨습니까? 그 땐 아무것도 못 가져갑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재림을 준비할 것

주께서 호령, 천사장의 소리, 하나님의 나팔이 불면 이제 쑥 쑥 올라가는데, 그 전에 다 준비해놓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에 오실지,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도적같이 오신다고 했는데, 생각지 않은 날 갑자기 옵니다. 그날을 위해서 준비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먼저 부활해서 올라가고, 나머지도 쑥쑥 올라가는 것입니다. 무덤이 터지고 쑥쑥 올라갑니다. 장례 지낸 사람들은 무덤이 터져서 하늘나라 갔던 영혼하고 합하여져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부활체가 되어 쑥쑥 올라가는 것입니다. 쑥쑥 다 올라갑니다. 살아남아 있는 사람도 쑥 하고 올라갑니
다. 쑥쑥 올라갑니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합니다. 올라가면서 변화가 됩니다. 다 신령한 몸으로 변화가 되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령한 몸, 예수님 몸과 같은 그런 몸, 신령한 부활체가 되어서 쑥쑥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언제 갑자기 호령과 나팔소리가 날지 모릅니다. 

하늘로 올리신 대로 보이게 하늘로 오실 그리스도

사도행전 1장 10-11절에,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할 때에 천사들이 와서 양쪽에서 같이 올라가는데, 그때 천사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우러러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올리우신 예수는 올라가신 걸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올라가실 때 하늘로 올라가셨으니까, 그대로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에 하늘로 올라가셨는데, 본대로 오시니 하늘로부터 내려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육신의 눈으로 보게 올라갔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보게 내려오신다는 것입니다. 또 구름타고 올라가셨는데,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본대로 오신다는, 것이 세가지입니다. 하늘에 올라가셨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이고, 볼 수 있게 올라가셨으니까 보게 내려오실 것이고, 구름타고 올라갔으니까 구름타고 올 것입니다. 

요새 재림 예수라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들이 구름타고 하늘에서 내려왔습니까? 아닙니다. 안상홍, 철산에 김성도, 문선명 등, 이렇게 예수라고 하는 자들과 같이 스스로 예수 된 사람들은 다 거짓 그리스도이고,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늘로서 구름타고 오시게 되어있지 그렇게 오시는 게 아닙니다. 또한 천지 일시에 알게 오시는 것이지 그렇게 모르게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걸 봐서 다 잘못된 줄을 알아야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본 대로 오십니다.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사는 성도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공중재림하시고 얼마 있다가 지상 재림을 하십니다. 우리도 지상 재림하신 예수님과 같이 왕 노릇하다가, 천년 왕국이 지난 다음에 하늘로서 백보좌 심판을 거쳐서, 하늘로 올라가게 됩니다. 그래서 항상, 항상 예수님과 같이 영원히, 영원히 삽니다. 

사람은 사는 것이 원래 목적입니다. 사는 게 사람입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살고, 사람은 사는 게 목적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준비하면서 잠깐 사는 것이고, 죽으면 육체는 장례지내고 살아 있는 영은 그냥 떠나서 하늘나라 가는 것입니다. 영원히 삽니다. 세상에서 살다가 죽으면 영혼이 하늘나라 가서 살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영혼이 다시 와서 부활체로 육신이 부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살아남아 있는 사람도 다 변화되어 공중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이 지상 재림할 때는 땅에 내려와서 천년동안 왕 노릇하다가, 천년왕국 지난 다음에 다시 공중 심판 받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산다는 것입니다. 지옥 살 사람은 영원히 지옥 가서 세세무궁토록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살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나라, 예수님의 권세가 영원히 있는데, 우리도 같이 예수님의 영광의 나라에 참여하고, 권세에 참여하고,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삽니다. 백년, 천년, 만년, 억만년, 수 억 만년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영원히 사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한번 났다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 가서 영원히 살지만, 우리는 하늘나라 가서 예수님과 같이 영원히 삽니다. 안 믿는 사람은 지옥 가서 마귀와 같이 영원히 삽니다. 그 얼마나 불쌍합니까?
죽어서 없어지면 모르겠는데 안 없어지고 영원한 지옥을 향해서 나가는 가운데 있습니다.

본문 18절에, “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모로 서로 위로하라’고 했는데, 죽었다고 해서 없어진 줄 알지 말고 잠들었다 이제 깨어난다고 알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살아있습니다. 세계만 바뀌어졌습니다. 재림하는 날 깨어나고 살아나니 얼마나 좋습니까? 잠시 잠깐이면 다시 살아나고, 다시 살아나면 신령한 몸으로 이제 예수님을 영접해서 영원히, 영원토록, 세세무궁토록 하나님과 같이 살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20 전도.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전도
데살로니가전서 2:1-20

1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2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3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4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함이라 5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 6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7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8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 9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10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11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 12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13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14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 15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16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17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알고 있다. 

2:2 너희가 아는 대로 우리가 전에 빌립보에서 고난과 모욕을 당하였으나,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담대히 전하였다. 

2:3 우리의 권면은 기만이나 불순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속임수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2:4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 전할 부탁을 받은 자들처럼 말하니, 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것이다. 

2:5 너희도 아는 것같이, 우리는 어느 때든지 아첨의 말을 하거나 탐심의 탈을 쓴 적이 없으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증인이시다. 

2:6 우리가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 

2:7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들이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들을 기르는 것같이 하였다. 

2:8 우리가 너희를 이같이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하였으니, 이는 너희가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2:9 형제들아, 너희가 우리의 수고와 고생을 기억할 것이다. 우리는 너희 가운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다. 

2:10 믿는 너희에게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는 너희가 증인이며 하나님도 그러하시다. 

2:11 너희도 아는 대로, 우리는 너희 각 사람을 대할 때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2:12 너희를 권면하고 위로하며 너희에게 증거하였으니, 이는 너희를 불러 자신의 나라와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는 것이다. 

2:13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않고 감사드리는 것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니 참으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활동하고있다. 

2:14 형제들아,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은 것처럼 너희도 너희 동족에게 동일한 고난을 받았기때문이다. 

2:15 유대인은 주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내쫓았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에게 대적이 되었다. 

2:16 그들은 우리가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도록 말씀 전파하는 것을 방해하여 항상 자기 죄를 채우니, 마침내 진노가 그들 위에 임하였다. 

2:17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지 마음은 아니니, 우리가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적으로 더욱 힘썼다. 

2:18 우리가 너희에게 가려고 하였으며, 특히 나 바울은 한두 차례 가려고 하였으나, 사탄이 우리를 막았다. 

2:1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 앞에서,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너희가 아니냐? 

2:20 너희야말로 우리의 영광이며, 기쁨이다.


1. 전도자의 자세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전하라

본문 1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감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했는데, 그것이 헛되지 않고 많은 열매가 맺혔습니다.
어떻게 전도를 하였기에 헛되지 않고 많은 열매가 맺혔는가? 1:5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을 능력으로 전했고, 성령으로 전했고, 확신을 가지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또 모범적인 생활을 하면서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에 이렇게 전하면 헛되지 않습니다.

첫째는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해야 합니다.
둘째는 능력으로 전해야 합니다.
셋째는 성령으로 전해야 합니다.
넷째는 확신으로 전해야 합니다.
다섯째는 모범적인 생활로 전해야 합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면 헛되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서 전하든지 다섯가지 방법으로 전하면 헛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효과가 나타나고, 열매가 맺히고, 복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가는 곳마다 승리합니다. 우리가 전할 때에 이렇게 전해야 하고, 또 개척교회를 세우는 것도 이렇게 세워야 하며, 선교사를 보내는 것도 이렇게 하여야 합니다.

고난과 능욕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라

본문 2절에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받으며 복음을 전하고, 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대적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대적하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헛되지 않았고, 열매가 맺혔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복음을 전하라

본문 3-4절에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복음 전하는 사람이 간사한 태도로 복음을 전하면 안 됩니다. 또 속에 욕심을 가지고 유익을 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서도 안 됩니다. 궤계는 속이는 것인데 속임수를 가지고 전도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함이라”고 하였는데,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전도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아첨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간사한 말입니다. 또 “탐심의 탈”이라고 하였는데, 마음속의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으로 전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본문 6절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도로 존중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사람에게서 명예,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에게서 대접받으려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맡았으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전하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2. 전도자의 심정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라

본문 7절에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는 유모가 젖 먹는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어머니의 심정을 가지고 아이들을 기르는 것과 같이 전도하고, 교회도 어머니의 심정으로 길러 나가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진정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해 줄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주기를 즐거워하는 마음으로 교인들을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자의 심정입니다. 즉 전도자는 복음으로 권면하며, 진정으로 교인들을 사랑하고, 자기의 목숨까지 주기를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누를 끼치지 말라

본문 9절에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는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전도하는 사람들이 교인들의 집에 가서 누를 끼치면 안 됩니다. 즉 대접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방 다니는 사람들도 교인들의 집에 가서 누를 끼치면 안 됩니다. 교인들하고 친하니까 무엇을 얻어먹을까? 생각을 하고, 교인들 집에 가서 “무엇을 내 놓아라”하며 냉장고를 열어, 먹을 것을 찾아 먹는 것은 누를 끼치는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합니다. 누를 끼치면 심방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바울은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천막 짓는 일을 하면서(행 18:3), 복음을 전했습니다. 즉 바울이 낮에는 전도하고 밤에는 천막을 만들어서 팔아 생활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4장에 보면, 교인들이 자원하여 연보해서 바울에게 보냈을 때에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같이 자원하여 연보해 주는 것으로 하는 것은 좋지만, 교인들에게 누를 끼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교인들에게 대접 받으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인들이 대접하고 싶어서 대접하는 것은 받아도 괜찮습니다.

범사에 옳고 흠 없이 행하라

본문 10절에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는 범사에 옳게 하여야 합니다. 또 흠이 없이,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다.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하고, 옳고, 흠이 없이 행하여야 합니다. 거룩한 것은 죄에서 떠난 것입니다.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하라

본문 11절에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하였습니다. 전도자는 유모의 심정으로 교인들을 길러나가야 하며(7절), 또 아버지의 심정을 가지고 교인들을 길러 나가야 합니다. 아버지의 심정과 어머니의 심정은 다릅니다. 어머니의 심정은 유순하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심정은 위로하고, 권면하고, 경계합니다. 즉 잘못할 때에는 책망하며 바른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어머니의 심정도 있어야 하고, 아버지의 심정도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의 심정은 없이, 어머니의 심정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본문 12절에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권면하고 경계하는 것도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합당한 성도를 길러 내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합당한 성도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심정도 필요하고, 어머니의 심정도 필요합니다.

3. 수도자의 자세

말씀을 배울 때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라

본문 13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바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즉 바울이 가르치지만 “하나님이 이 시간에 직접 바울을 통해서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이 주는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고 두렵고 떨림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교역자를 통하여 받을 때에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속에서 일하고, 힘쓰고, 살아서 역사하기 때문에 말씀의 열매가 많이 맺힙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하나님이 직접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라

성경을 읽을 때에도 하나님이 직접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면 회개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고, 결심이 나오고, 또 전하여야겠다는 사명감도 나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여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게 죄를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죄를 회개하여야 하고, 또 “끊어 버리라”는 말씀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게 죄를 끊어 버리라고 말씀하시는 줄 알고 죄를 끊어 버려야 합니다. “십일조를 드려라”하면 하나님이 드리라고 했으니까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또 절기 때에 하나님이 복 주신대로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고 했으니까 힘대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된 것입니다. 국가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도 재산이 많고, 적음에 따라 내지 않습니까? 재산이 많은 사람은 세금을 많이 내고, 재산이 적은 사람은 세금을 적게 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연보하는 것도 하나님이 자기에게 ‘얼마나 주셨는가?’를 생각해서 받은 것에 따라 힘대로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좋습니까? “힘대로 예물을 드리라”는 말씀을 받을 때에는 하나님이 내게 직접 주신 말씀으로 알고 감사하여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직접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읽으면, 읽을 때에 은혜가 되고 들을 때에는 깜짝 놀라면서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앞으로 할 일에 대하여 결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 받으라

본문 14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이방에 있는 교회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들을 본 받았습니다. 즉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이방 교회의 모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본 받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본 받았습니까? 고난 받는 것을 본 받았습니다.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가 안 믿는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많이 받았습니다.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는 것은 이방 교회들도 고난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본 받을 때에 고난 받는 것도 본 받고, 구제하는 것도 본 받고, 연보하는 것도 본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힘에 지나도록 연보하는 것을 다른 교회에서 다 본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잘 지키는 교회를 본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농촌에 있는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이 되면 곡식으로 가져옵니다. 즉 쌀로 가져오는 교인들이 있고, 또 벼 가마니를 가지고 오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벼 가마니를 추수감사절 아침에 수레에 실고 옵니다. 몇 십가마씩 싣고 옵니다. 이백 가마니를 농사하는 집은 이십 가마니를 싣고 옵니다. 만평 농사하는 집은 약 사백 가마니가 납니다. 그러면 사십 가마니를 교회로 가지고 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이 되면 예배
당에 쌀가마들이 많이 쌓입니다. 모든 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과거의 믿음 좋았던 교회들을 본 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사실은 이북교회가 고난도 많이 받고, 순교도 많이 당하고, 믿음이 좋았습니다. 이제 다시 이북에 교회들이 세워질 날이 오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북에 하나님께서 복음의 문을 열어 주셔서 하나님의 교회가 다시 설 때에는 일시에 우리가 들어가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4. 복음을 대적한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함

본문 15-16절에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전도자들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노하심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주후 70년에 유대나라가 망하였고, 유대인들이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미국에도 많이 있고, 러시아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성경을 응하게 하시기 위해서, 1948년에 유대 나라를 독립하게 해주셨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서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이제는 유대인들이 자기 나라로 많이 돌아왔습니다. 

5. 사랑과 소망

본문 17절에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나 있지만 마음은 안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7-8에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가 됨이라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사모한다고 하였는데, 바울의 마음에는 빌립보 교인들이 있고, 빌립보 교인들의 마음에는 바울이 있어,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같이 참여했습니다. 

본문 18절에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사단이 우리를 막았다는 것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려고 한 번, 두 번 애를 썼지만 마귀의 역사가 일어나서 못갔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소망과 기쁨과 사랑의 면류관임

본문 19-20절에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의 영광이며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4에 “너희가 대강 우리를 아는 것 같이 우리 주 예수의 날에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의 면류관은 자기가 전도하고, 자기가 성경 말씀을 가르친 교인들이 잘 되는 그것이 바울의 자랑과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또 교인들은 바울이 자랑입니다. 바울이 성경을 잘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만큼 되었다”고 자랑하게 됩니다. 즉 바울이 성경을 잘 가르쳐주었기 때문에 바른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면류관은 교인들이고, 교인들의 면류관은 바울입니다.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하였는데, 교인들이 잘되면 가르쳐 준 사람이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가르치는 자는 잘 배워주어야 하고, 가르침을 받는 자는 잘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전도해서 교회에 새로 나온 사람을 잘 인도하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전도 부인들이 10월까지 전도한 사람이 약 170명 정도 됩니다. 금년에 남은 두 달 동안 최선을 다하면 200명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습
니다. 교인들이 자기가 전도해서 교회로 인도한 사람이 몇 명씩 있어야 합니다. 또 자기가 인도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여야 합니다. 

이전에 조재식 장로에게 어떻게 해서 아현교회에 나오게 되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소년시절에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그 때에 김현봉 목사님을 만났는데, 김현봉 목사님이 자기한테 “너, 예수 믿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와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김현봉 목사님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나온 뒤에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면 전도한 그 사람이 하나님께 상을 받습니다. 전도해서 예수를 믿게 하고, 그들이 믿음을 잘 지켜서 집사도 되고, 장로도 되고, 목사가 된다면 얼마나 좋습니까? 바울이 전한 말씀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이와 같이 신앙생활을 잘 했습니다. “우리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라고 하였는데, 교인들의 영이 자라나고 신령한 인격으로 만들어 지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교역자의 기쁨이고, 주님 재림하실 때와 영원한 천국에서도 기쁨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 됩니다. 

다음 주일이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가 한 가지 감사할 것은, 우리가 연보해서 주차장 건설한 것을 감사하여야 합니다. 또 연보 많이 하도록 하나님이 해주셨습니다. 연보할 감을 주셔서 하나님께 힘써 바치도록 해서 주차장 공사가 완성되게 해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주차장 공사할 때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잘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주차장 공사를 하게 하시고 그 일을 위하여 우리가 연보를 많이 하게 하셔서 하늘나라에 쌓게
하시고, 예수님 재림하실 때에 상급을 주시려고 하신 것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 바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또 기회를 주셔야 바치지, 기회를 주시지 않으면 못 바칩니다. 여러 가지 면으로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하늘나라에 보물을 쌓게 하시고, 하늘나라에서 부요하게 해주신 것에 대해서 진정으로 감사하는 신앙을 가져야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10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본(模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데살로니가 교회의 모본(模本)
데살로니가전서 1:1-10

1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4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5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6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7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9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0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들의 교회에 편지를 쓴다.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에 대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한다. 

1:3 이는 너희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1:4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가 택하심을 받은 것을 안다. 

1:5 이는 우리의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되었는지는 너희가 아는 바와 같다.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다. 

1:8 주님의 말씀이 너희로부터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에 들렸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1:9 그들이 우리에 대해 스스로 전하기를 우리가 너희에게 들어갔을 때 어떠한 대접을 받았는지,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들을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1:10 하늘로부터 임할 그분의 아들을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 아들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이시며 장차 임할 진노에서 우리를 건지실 예수님이시다.


1. 문안 축복

본문 1절에,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실루아노’는 ‘실라’를 가르친다고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늘 같이 다니면서 전도했으며, 디모데는 바울의 아들처럼, 바울을 아버지와 같이 여기며 잘 받들어나갔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는데, 구속의 은혜의 결과로 항상 은혜 가운데 거하고, 언제나 영적 평강 가운데 거하여야 됩니다. 아무 근심 걱정 없이, 두려움이나 염려함 없이 항상 평강을 누리는 사람, 환난이나 핍박이 올 때에도 항상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평강, 화평, 은혜 가운데 항상 거하여야 되겠습니다. 

2. 믿음, 소망, 사랑의 교회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본문 2-3절에,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는데, 데살로니가 교회는 상당히 좋은 교회입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는 교회,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소망의 인내가 있는 좋은 교회입니다.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만 산 믿음입니다. 역사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 믿음의 운동력, 믿음의 열매가 맺히는 역사가 있는 믿음,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었던 교회였습니다.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또 사도바울을 받드느라 수고를 많이 한 교회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언제나 따라다닙니다. 사랑하면 수고가 따라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하면 힘든 줄 모르고 합니다. 사랑에는 수고하고, 힘든 것도 모르고, 더러운 것도 모르고 잘 수고를 합니다. 유아를 기르는 어머니가 특별히 수고 많이 합니다. 자나깨나 뭘 먹여주고, 대소변 갈아주며, 업고 다니지만, 그러나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수고 많이 하면서도 힘든 줄 모릅니다. 그 수고를 단 마음으로 하고, 그 수고에 대해서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돌봐주고 또 붙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이렇게 수고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자기 하나 잘 믿으면 된다’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은 옳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줄 알고, 수고할 줄 알고, 돌봐줄 줄 알고, 고난을 달게 받으며 나가는 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옵니다. 야고보서 5장 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고 욥의 인내를 말했습니다. 욥의 인내를 생각할 때에, 욥이 얼마나 환난 많이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죄가 있어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욥은 의로운 욥이라 했는데, 그래도 환난 많이 받았습니다. 재산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졌고, 십남매 하루아침에 다 죽고, 몸에 병이 나도 욥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잘 참았습니다. 욥의 인내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결국 욥에게 나중에 모든 걸 배나 더 주셨고, 하늘나라에 가서도 많은 상급이 있었을 것입니다. 용납하고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참지 못하고 싸우고 다투면 복이 없습니다. 

하여간 참아야 합니다. 참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외부에서 들어오는 핍박 가운데서 참는 게 하나 있고, 그 다음은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면서 참는 것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계속해서 믿는 일 하면서 참는 사람, 그리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환난을 참는 사람입니다. 고등고시 시험 치르는 사람들은 잘 참으면서 계속 공부합니다. 그건 외부에서 들어오는 핍박이 없어도 자기 목표를 세워놓고 계속해서 그걸 달성하려고 잘 참는 것입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핍박을 참을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일, 선한 일, 믿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 소망으로 잘 참고 견디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 부활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소망, 하늘나라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소망,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모든 고난들을 달게 받고 잘 참으며 나아가는 신앙이 되어야합니다.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는데,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신앙에 대해서 산 믿음, 산 사랑, 산 소망으로 살라고 하기 때문에 쉬지 않고 너희를 위해서 기도한다고 했습니다. 교인들이 믿음의 열매가 잘 맺히고, 사랑의 열매가 잘 맺히고, 소망의 열매가 잘 맺히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도하는 사람도 상당히 기뻐하게 됩니다.

택한 백성의 교회

본문 4절에,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택한 백성이 있고 불택자가 있는데, ‘너희는 택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택한 백성은 무엇으로 압니까? 요한일서 5장 1절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택한 백성은 예수님이 구주로 믿어지는 것, 예수님께서 자기 구주라는 것이 믿어지는 게 택함 받은 증거입니다. 이것이 죽을 때까지 안 믿어지면 그건 불택자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이고, 죽을 때까지 안 믿어지는 사람은 불택자이며 지옥 갈 사람입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인데, 믿어지는 사람은 자기가 믿기로 결심해서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선물로 주셔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예정한 사람에게 믿음의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어지는 사람은 택한 백성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습니까? 

또한 “부활한다”는 부활에 대한 확신, “천당 간다”는 천당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심판대 앞에 가서 어떻게 될까?”하고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앞서 간 성도는 하늘나라 갈 준비를 잘 해서 갔는데, ‘남아있는 우리는 준비 잘 했을까? 책망 받을 일이 없을까? 양심의 가책되는 것이 없을까?’하고 생각해 봅시다. 또 내세에 대한 확신, 부활에 대한 확신, 예수님 재림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또 옳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옳은 진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불택자를 택한 백성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종류가 다릅니다. 불택자는 염소이고 택한 백성은 양입니다. 택한 백성은 곡식이고 불택자는 가라지로서 그렇게 종류가 다릅니다. 불택자는 아무리해도 택한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염소를 아무리 잘 먹여도 양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가라지를 아무리 잘 길러도 곡식이 될 수 없습니다. 종류가 다르니까 그렇습니다.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하는 것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믿음 지키는 것을 보니까 바울이 ‘아, 저 사람들은 택한 백성이다’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3. 전도의 모본이 되는 교회
말로 전할 것

본문 5절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도할 때에 첫째는 말로 전도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18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난다’고 했는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듣는 것이 중요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 복음을 들려주십시오. 가서 들려주면 안 믿을 것 같지만, 그래도 택한 백성은 믿습니다. 택한 백성은 믿게 되어있습니다. 들려주면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서 역사하고, 또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들은 바 복음이 그 사람 속에서 폭탄과 같이 터져서 정복을 당하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에게로 끌려옵니다. 복음 전해주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안 믿을 것 같아도 말씀을 전해주면 그 말씀이 그 사람 속에서 역사해서 마지막에는 말씀에게 사로잡힙니다. 말씀을 믿고 따라옵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말씀으로 전합니다. 이제 전도할 때에 말씀을 전해주란 것입니다. 그저 “예수 믿으시오. 믿으시오” 하기보다는 말씀을 전해줘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이 그 속에서 역사합니다. 아이들 말씀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도할 때도 말씀을 가르쳐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만 전해도 그 말씀이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다, 저를 믿는 자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그 한마디가 사람을 건져낼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거저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님 믿으세요”라고만 하지 말고 요한복음 3장 16절을 하나 전하든지 해야겠습니다. 택한 백성이면 그 속에서 역사해서 하나님께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능력으로 전할 것

그 다음엔 말씀을 능력으로 전하여서 데살로니가 교회에게 줬다고 했습니다. 능력으로 말씀내용을 전하는 것입니다. 최 권능 목사가 ‘예수 천당’ 두 마디 해가지고 교회를 일흔 다섯 개를 세웠다고 하는데 큰 권능이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천당’ 그것도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당간다’는 말입니다. ‘예수천당’ 하고 외치니까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여 마침내 하나님에게로 나온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리도 권능으로 전도하는 일,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으로 전할 것

‘능력으로 전했다’고 했는데, 능력의 사람, 영권이 있는 사람입니다. 능력이 있고 영권이 있고, 그리고 성령의 감동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성령께서 하라는 대로 나가서 전했다는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가 광야로 갈 때에,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광야로 가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순종하여 광야로 가니까 그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전도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을 소멸하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따라서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되겠습니다. 

확신으로 전할 것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전해야 됩니다. 확신이 없이 전하면 듣는 사람이 큰 감동을 못 받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해야 됩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어서라” 해야지,“일어서겠나? 안서겠나?” 해가지고는 안됩니다. 

평양 모란봉 기슭에 앉은뱅이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 믿는 사람이 그걸 일으켜 세우려고 작정을 했답니다. 그런데 사람 많은데서 안 일어서면 안 되겠으니까 하룻밤 지키고 있다가, 그 사람이 이제 동냥 다하고 모란봉 그 기슭으로 돌아가는 것을 따라가서 좀 서라고 하고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라”고 했습니다. 그 앉은뱅이가 일어섰겠습니까? 확신이 없이 전하는데 어떻게 일어서겠습니까? 실패입니다. 안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전제로 하고, 다른 사람 없는데서 해 보겠다는 것은 확신이 아닙니다. 확신을 가지고 하십시오. 확신을 가지고 해야 듣는 사람이 그 말씀을 받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확신을 가지고 가르쳐야 아이들 속에 능력이 됩니다. 그거 몇 가지입니까?
전도할 때에 첫째는 말, 둘째는 능력, 셋째는 성령, 넷째는 확신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전하라는 것입니다.

인격으로 전할 것

5절 하반절에,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는 말은 인격으로 전했다는 것입니다. 말로 전하고, 능력으로 전하고, 성령으로 전하고, 확신으로 전하고, 다섯째는 인격인데 인격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같이 이 5가지로 전도합시다. 5가지로 전도하면 잘 되는데 첫째는 뭡니까? 말로 전하는 것, 말씀, 복음입니다. 둘째는 능력, 능력전도이고, 셋째는 성령으로 전도하는 일, 넷째는 확신으로 하는 일, 다섯째는 인격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했는데, 바울은 자기가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경말씀대로만 나아가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닮아간 사람입니다. 성경, 하나님 말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십자가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예수님을 닮아갔던 바울입니다. 이러한 바울과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며 자기가 만들어지면서 전해야 됩니다. 욕심 부리고 사기횡령하면서 전도하면 어떻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과 같이 모든 면에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이 되어가면서 전도하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많은 사람을 구원하게 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서도 바울이 모범이 되면서 전도할 때에 많은 사람이 인도 받고 교회가 됐습니다. 

4. 모본이 되는 교역자의 조건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증거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본문 5절 말씀에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첫째, 말로 전해야합니다. 둘째, 능력으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셋째, 성령으로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를 많이 하고 힘을 써야합니다. 능력 있는 교역자, 성령으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하고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하나님의 명령에 죽도록 충성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됩니다. 신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졸업 후에는 사도바울에게 있었던 것처럼 아라비아 신학이 있습니다. 또한 모세에게 있었던 미디안 신학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40년간 모든 학술을 배웠지만 배운 학술로 이스라엘 구원운동을 하려고 하다가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후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깊은 기도를 하면서, 신고 있던 신을 다 벗어 버리며, 자기를 벗어 버리는 깊은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쓰셨습니다. 학교를 졸업하는 것은 절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디안 신학이 절반 더 있어야 합니다. 즉, 깊은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영권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항상 성령의 인도를 받고, 성령의 인도를 쫓아서, 언제나 성령을 힘입어, 그 능력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어야합니다. 말로 전하는 것이 첫째이고, 둘째는 능력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맡아서 하지만 하나님의 일이 잘 안되는 것은 능력 없는 증거입니다. 능력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일이 안 되는 것입니다. 능력 있는 교역자가 되려면 하나님께 가서 엎드려야 합니다. 계속 부르짖고 애를 쓰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일심정력을 다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 능력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또한 말씀을 실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겸손한 가운데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실천을 하면 그만큼 능력이 생깁니다. 그 다음에 희생을 해야 합니다. 희생을 한만큼 능력이 생깁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수단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과 확신으로 증거 해야 합니다. 진리를 바로 깨달아서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전해야겠습니다.

인격이 바로 된 교역자가 되어야함

5절 하반 절 말씀에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아는바와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된 사람이 되어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전하는 사람이 바로 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것은 실패인 것입니다. 또한 인격이 바로 되어야합니다. 인간성이 바로 되지 못하면 하나님의 교회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노인들을 부모와 같이 여기고 젊은 사람들을 형제와 같이 여기는 바른 인간성을 가져야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다. 무던한 사람이다. 호인이다. 그 사람을 만나면 좋다. 만나고 싶다. 또 말하고 싶다. 의논이라도 하면 좋겠다. 좋은 인간성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성이 바로 되지 않아 교회를 인도하게 되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고 혼자 왕 노릇 하거나, 자기 명령을 순종하도록 강요하는 사람은 교회를 섬길 수 없습니다. 모든 모난 것이 사라지고 교만한 것이 낮아지도록 늘 자기의 결점을 찾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인간성을 바로 세워 다른사람에게 본이 될 만한 인격자가 되어야합니다. 어떤 분은 가르치기는 잘 하는데, 인간성이 좋지 않아서 목회에 실패합니다. 또 물질에 대해 욕심 부리고 물질을 초월하지 못해서 교인을 다 잃어버린 교회도 있습니다. 물질에 대해서도 초월하고, 이성문제에 대해서 초월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원만한 사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교인들을 억누르고 왕 노릇하고 자기 고집대로만 하는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리에 서야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고 했습니다. 일심정력을 기울여서 충성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교역자들이 게을러서 하나님의 일에 시간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이 안 됩니다. 먼저 자기 자신을 잘 만들어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을 너희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라는 5절 말씀처럼 능력 있고 말씀을 바로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성경을 바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함

교역자는 성경을 전하는 것을 제일 잘 해야 합니다. 말씀을 잘 전하려면 성경을 많이 읽어야합니다. 또한 강도할 본문을 여러 번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증거 할 본문의 확실한 핵심, 중심을 찾아야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성도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 저것 말을 조잡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라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전해야합니다. ‘어떻게 해야 잘 전할 수 있을까?’ 늘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을 잘 전하려고 노력하는 교역자가 되어야합니다. 말씀을 잘 전하는 것은 성경 안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제일 중요하고 가장 요긴한 진리를 본문에서 찾아 말씀들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가 곧 능력 있는 교역자입니다. 

성령으로 전하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지혜로운 말이 나올까봐 벌벌 떨었다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에만 있게 하려고 지혜로운 말을 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말씀을 전할 때 한 가지만 가르치지 말고 여러 가지를 다 가르쳐야 합니다. 본문의 뜻을 잘 알 수 있도록 성경의 여러 곳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로써 성도가 영적 양식으로써 성경을 알고 도덕적인 교훈, 교리적인 교훈도 알아 믿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역자는 여러면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에게 여러 말씀을 통해 신령한 양식을 늘 공급해야합니다. 예배시간에 교인들이 은혜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교인들이 예배 시간에 은혜를 받아 심령이 살아나야
교회가 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서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예배시간에 요리문답을 가르치면 은혜 받는 면에 많은 손상이 있습니다. 요리문답에 신령한 뜻이 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식으로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면이 있지만 은혜 받아서 심령이 살아나는 면에서는 약합니다. 요리문답은 조직신학과 같은 것인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강의한지가 29년쯤 된 것 같은데, 거의 통달해서 알건 알지만 참 어렵습니다. 교회가 부흥되는데 있어서는 조직신학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을 증거 할 때 영생, 삼위일체, 중생, 영혼이 자라나는 것 등이 나오면 그 때 가르치면 됩니다. 조직신학을 표준으로 가르치면 은혜 받는 데 막대한 지장이 있습니다. 교회가 안 됩니다. 부흥이 안 됩니다. 목사의 임무는 교회를 일으켜 세우는 것인데 교회가 일어서려면 교인들에게 신령한 양식을 공급해서 시간마다 새 힘을 얻게 해야 합니다. 교역자는 교인들이 새 힘을 얻게 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가 그 말씀으로 힘을 얻어 새 힘으로 일어나 교인들에게 때를 따라서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줄 자가 누구냐”라고 했는데 때를 따라서 양식을 공급하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역자가 전하는 그 말씀을 듣고 살아나야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궁극적인 목적은 살려내는 것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서야 하고 문둥병자가 깨끗함을 받아야 하고 소경이 눈을 떠야 합니다. 예배시간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를 많이 하고 그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어떠한 조직신학이나 학과만 가르친다는 것은 영적으로 생명을 살려 나가는데 지장이 있습니다. 따라서 생명을 살려나가는 일에 중점을 두고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또 저녁예배나 오후예배 같은 때는 성경을 모조리 가르칠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영을 살려나가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모조리 한다고 하여 지식을 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다른 사람을 살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가운데서 영적 생명양식을 먹고 자기가 먼저 살아나는 것 중요하다.

가르치기에 능한 교역자가 되어야함

교역자는 가르치는데 많은 연단이 되어야합니다. 한 본문을 가지고 열 번, 스무 번, 가르치기만 백번을 가르치다보면 말씀에 권위가 있습니다. 말씀 속에 있는 뜻을 많이 알게 되어 권위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 강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배운 말씀을 새김질하여 그 말씀의 핵심을 강의하게 되면 학생들이 강의를 들을 때 생명이 살아납니다. 

신학교 졸업생들은 가르치기를 잘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말씀에 “감독은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했습니다. 가르치기를 못하면 감독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한 시간 들어보거나 처음 예배 나온 사람들도 그 시간에 말씀을 확실히 받아 믿음의 결심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역자는 능력으로 가르치는 자, 성령으로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하고 인격적으로 만들어져야합니다.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교인들이 생각할 때 ‘말은 잘 한다’고 생각하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교역자는 다른 사람으로 더불어 신앙의 교제가 잘되어야 합니다. 교인들과 통해야 되고 융합이 잘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교회대로 가고 자기는 자기대로 가면 실패하게 됩니다. 교인과 교역자가 다 한마음이 되고 한 뜻이 되어 서로 통해야 합니다. 유치원 선생님들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유치원에 가서 본적은 없지만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같은 말과 행동을 해야 아이들과 통한다고 합니다.
또 대구에 한 노인목사가 있었는데 대구 지방으로 사경회 하러 가면 늘 오셨습니다. 그 분께 돼지 잘 사육하는 비결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돼지와 통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했습니다. 돼지와 통해야 젖을 먹인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통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물어보니, 돼지가 아프면 자기도 아프고, 돼지가 배가 고프면 자기도 배가 고프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제게 돼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물어보는데 “모른다”고 했더니, 그 분 말씀에 돼지는 동풍을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도 동풍을 제일 싫어한다고 합니다. 서로 통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역자가 바로 되어야만 하나님 말씀과 통하여 복음을 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교역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
다고 한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본이 되고 이 복음을 전하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5. 성령의 기쁨으로 하나님의 도를 받은 교회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음

본문 6-7절에,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어떻게 받았다고 했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많은 환난을 받았지만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이 주는 말씀으로 이것 참 좋은 것입니다. 환난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으로 받아서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기뻐서 찬송하고 늘 즐거움으로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와 감동을 받아서 항상 기뻐하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항상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즐거워하는 생활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으려면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회개하고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회개 안하고 나가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이 없습니다. 성령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 말씀 받아서 성령으로 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기도 많이 해야 합니다. 기도 안하면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없고,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기도 안 해서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가 노력한다는 것보단, ‘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생활하는 것도 즐거움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이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신앙입니다.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데살로니가 교회
 
본문 8절에,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지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고 했는데, 마게도냐는 윗 지방이고 아가야는 아랫 지방입니다. 윗지방과 아랫 지방에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의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다’고 했는데, 각처에 퍼졌다는 것을 보니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에 역사가 있고, 운동력이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으며,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였습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다’는 것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6.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교회

믿음, 행함, 열매가 있음

본문 9-10절에,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
‘사시는 하나님,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했을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행했습니다.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믿고 믿음에 행함이 있는 교회입니다.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잘 받아서 열매 맺은 교회, 그것이 모본이 된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렇게 본이 되는 신자가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도 본이 되는 교회가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첫째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믿고, 행하고, 또한 사랑하고, 수고하고, 그 다음엔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참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는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입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로 믿고 행하여야 합니다. “믿노라” 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슨 믿음이라고 했습니까? 그건 죽은 믿음입니다. 주께 행하십시오. 또한 사랑하고 수고하십시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로만 하고 수고가 없고 희생이 없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희생이 따라와야 됩니다. 

그 다음엔 소망의 인내입니다.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참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상급으로 받는다’는 것, 하늘나라 소망입니다. 자기가 희생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하신 것과 같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주노니 들어와 즐거움에 참예하라”는 칭찬을 받을 것을 소망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라와야 됩니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와야 합니다. 소망에는 인내가 따라와야 합니다. 참고 견디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좋은 날을 보게 해주신다고 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김

본문 9절에,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 들어갈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그래도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전도의 성공이 되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이 전해주는 말씀을 듣고 즉시로 우상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안 믿던 사람이 우상 버리는 것은 힘듭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은 완전히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증거입니다. 버릴 수 없는 우상을 어떻게 버렸냐하는 것, 이게 중요합니다. 버려야 합니다. 우상을 버리지 못하면 예수 믿는 것도 헛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면 하나님 섬기는 것이 못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탐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남편을 더 사랑하면 남편이 우상이고,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녀가 우상이고,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자기가 우상이고, 돈을 더 사랑하면 돈이 우상입니다. 직장을 더 사랑하면 직장이 우상입니다. 자기 목숨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목숨이 우상입니다. 또한 세상이 우상이라고 했습니다. 

“난 세상을 더 사랑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시험을 쳐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을 더 사랑하면 말씀 어기고 세상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더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어기고 자기 사랑하는 것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상이 다 있습니다. 그런 우상 따라가지 말고 이기려면 생명을 내놓아야 합니다. 우상을 버릴 때에 생명 내 놓아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서 우상 따라가면 나중에 죽습니다. 싹 다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생명은 주님이시다”라고 믿고 우상을 버리고 돌아오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고 기다림

본문 10절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의 아들을 다시 살리신 건 부활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을 잘 기다리는 교회입니다. 잘 기다립니다. 데살로니가전서 매 장마다 재림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다린다’, ‘도적같이 오실 것을 기다린다’, ‘갑자기 알지 못하는 시간에 오실 것을 기다린다’고 나옵니다. 그렇게 준비하고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이 중요합니다. 사도신경 외울 때에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그 다음엔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오시리라’ 할 땐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으로 외워야 합니다. ‘살아나사 하늘에 올라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를 할 때에는 하나님 우편을 생각하면서 외워야 합니다. 날마다 재림을 기다리는 이 데살로니가 교회와 같아야 합니다. ‘그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 장래 노하심에서 구원해주시는 예수님이 오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37-38절에,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날마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해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믿는 사람은 공중으로 다 들려 올라갑니다. 그 때에는 무슨 옷을 입고 간다고 했습니까? 세마포입니다. 무슨 밍크 옷 한 벌 입거나, 무슨 가죽잠바들, 다른 의복들 많이 있는데 그런 거 입고 가는 게 아닙니다. 세마포입니다. “세마포 흰 옷 입고 나는 가노라”고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그 옷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결혼식 할 때 요새는 드레스 입고하는데, 드레스에 구멍 뚫어지고, 한 쪽은 째지고, 팔 하나 떨어진 그런 드레스 입고 나타나면 결혼식 할 자격 없습니다. 그런 드레스 입고 와서 저보고 주례해 달라고 하면 “야, 가서 다른 거 입고 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에게 나갈 때는 세마포가 제대로 되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세마포 다 장만해 놨습니까? 세마포 준비 다 해 놨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재림을 날마다 고대하는 신앙, 그래서 마지막 준비를 다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가 속히 가리라” 하실 때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하며 영접할 수 있는 그런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