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데살로니가전서 5:1-11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알고 준비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주의 날이 도적같이 이를 줄 알고 준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11

1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4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7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8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10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5: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으니, 

5:2 이는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올 것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 

5: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듯이 파멸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5:4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이르지 않을 것이니, 

5:5 너희는 모두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 

5: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서 정신을 차리자. 

5:7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한다. 

5:8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5:9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우신 것은 진노를 받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5:10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이는 우리가 깨어 있든지 자든지 그분과 함께 살게 하려는 것이다. 

5:11 그러므로 너희가 하고 있는 그대로 서로 권면하고 서로 세우라. 


1. 예수님의 재림
마지막 날에 올 불 심판

본문 1-2절에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3절에,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정경에 이를 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고 했는데, 주의 날이 도적같이 갑자기 알지 못하는 시간, 예기치 못할 때 갑자기 주의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주의 날’은 재림하는 날, 심판하는 날입니다. 세상 끝 날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고 세상을 심판하는 세상 끝 날이 ‘도적같이 올 줄을 너희가 자세히 앎이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이 내내 지금처럼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세상 끝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또한 심판하십니다. 불 심판이 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6-7절에 보면, 노아의 날에 물로 심판했습니다. 그때에는 다 물로 심판했습니다. 전 세계가 다 물로 잠겨서 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물에 잠겨있었을 때에 사람들이나 동물들이 대개 다 죽었습니다. 노아시대에는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땅위에 사람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죄악이 관영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준비하게 하고, 방주를 탄 8사람 이외에는 전부 다 심판하고, 또한 짐승들도 많이 있었지만 그 때에 다 심판하여 죽어서 물어 떠다니다가 한 곳에 가서 다 뭉쳐서 그것이 석탄도 되고, 석유도 되고 그런 것 같습니다. 또 토탄이라고 하는 나무 썩어진 것들도 있다는데, 아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그 때에는 물로 심판을 했지만, 이제 세상 마지막 끝에는 베드로후서 3장에 있는 말씀처럼 불로 심판을 한다고 했습니다. 불로 심판할 때에는 땅에 모든 원소가 다 드러난다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0절에는 원소가 다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불 심판을 앞에 놓고 나가는 중에 있습니다. 지금처럼 내내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잉태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함과 같이 옴

본문 3절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온 세계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해산의 고통과 함께 해산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잉태된 것이 있습니다. 잉태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반드시 해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해산하게 되면 고통이 오게 됩니다. 아이를 해산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이 세상을 심판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멸망당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심판한 후에 천년왕국이 임하고, 그 다음에 하늘나라가 오게 됩니다. 그때가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는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잉태가 되어서 평안한 것입니다. 잉태가 되지 않아서 평안한 것이 아니고, 잉태가 되어 있는데 잉태된 자리에서 평안한 것입니다. 잉태된 자리에서 평안한 것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해산의 날은 정해져 있습니다. 잉태가 된 것은 죄악이 잉태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고, 심판이 잉태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속에 죄악을 잉태하고 속에 품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의를 속에 품고 평안하다 안정하다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의 평화조약 및 회담도 속에 불의를 품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과 북한이 평화하려고 하지만 속에 불의를 품고 평화를 하려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것은 잉태된 여자입니다. 죄악을 잉태하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그런 평화입니다. 속에 죄악과 불의를 품고 서로 속이고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는 그러한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평화는 반시평화입니다. 요한계시록 8장 1-2절에 보면 ‘반시평화(고요)’라고 했습니다. 

불심판도 품고 나옵니다. 초자연적인 불이 임할 수도 있지만 핵무기가 세상을 심판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핵무기를 여러 나라가 다 품고 있습니다. 다 잉태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소련은 세계를 20번씩 멸망시킬만한 그러한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이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이란도 얼마 안 있으면 핵무기를 소유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미사일 쏘는 연습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이 먼저 선 공격할지도 모른다고들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핵전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 날지 모릅니다. 여러 나라에서 핵무기를 다 잉태하고 지금 외부적으로는 평화를 누리고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잉태했다는 것이 이러한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핵무기 잉태, 불의, 죄악, 거짓의 잉태입니다. 속에 품어두고 서로 잡아먹으려고 하면서 외부적으로만 평화해 나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지금 죄악을 품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를 품고, 불의를 품고 외부적으로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며 이러한 평화와 안전을 추구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잉태가 되었기 때문에 반드시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은 정해 놓은 것입니다.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을 정해 놓은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임시 평화입니다. 어느 날 해산 할지 알지 못하고서 건강하다, 안전하다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잉태된 여자는 언제 해산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도 도적같이 오는데 언제 오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것만 보지 말라는 말입니다. 언제나 우리가 잉태된 여자와 같은 세상인 것을 알고 이 세상이 갑자기 이제 해산의 고통이 올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이르면 하늘나라가 이루어짐

해산의 고통이 오면 아이를 하나 낳게 됩니다. 아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그리스도의 나라가 앞으로 이루어질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말세학적으로 보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잉태되어 해산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6-8절을 보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칠 터인데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재난의 시작이라는 것이 해산의 고통입니다. 원어에는 ‘재난의 시작이 해산의 고통’이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한 성경들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도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한 것이 몇 군데 됩니다. 그러면 말세의 난리와 난리, 민족이 민족을 치고, 나라가 나라를 치는 그것이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말세학적으로 보면 이것을 해산의 고통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원어에 해산의 고통이라고 되어있고, 그 다음에는 그저 ‘고난이다’라고 하는 것이 둘째라고 하는데,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하면 뭘 하나 낳아야 한단 말입니다. 뭘 낳아야 되겠느냐?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심판하고,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그런 뜻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지 말고 ‘해산고통의 시작’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말세학적으로 참 맞는 것 같습니다.
여기 본문에도 “해산의 고통이 이른 것 같이 멸망이 홀연히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해산의 고통이 이르면 아이를 하나 낳아야 되지 않습니까? 남자를 낳든지 여자를 낳든지 하나를 낳아야 합니다. 뭘 낳느냐 하면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 탄생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세상 마지막 끝에는 평안하다 안전하다 하며 외부적인 평화가 있다가, 속에 잉태된 것이 있기 때문에 불 심판 잉태,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 잉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잉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세에 가서는 불 심판이 잉태를 하게 되고, 그리스도가 임하시게 되는데, 그리스도가 임하시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나라는 다 끝장이 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세상이 다 끝이 날 줄을 알아야 합니다.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평안하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속에 잉태된 것이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잉태된 것을 낳아야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갑자기 임한다는 것입니다.

2. 주의 재림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 자
깨어 있는 자

본문 4절에,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그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본문 2절에는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고 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아니면 ‘도적같이 임한다’는 말씀이 맞습니까?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오는가? 도적같이 오지 못하는가? 일반적으로는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생각하지 못한 날, 예기치 못한 때에 옵니다. 

그러나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있으며 항상 깨어있는 자들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것은 알 수 있게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오는 것입니다. 알지 못하게 오는 것, 갑자기 오는 것이 도적같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는가? 빛 가운데 있는 자, 예비하는 자, 깨어있는 이 세 종류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까? 빛 가운데 있는 자, 예비하는 자, 깨어있는 자입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함이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습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시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신앙은 영적 역사를 이루어 나갑니다.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세대를 분별할 수 있고 예수님의 재림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또 자기 신앙 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깨어있는 신자라야만 준비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11~13절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날에는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 이 체질이 뜨거운 불에 다 녹아진다고 하였습니다. 뜨거운 불에 녹아질 것인데,‘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라고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요구됩니다. 거룩하라는 말입니다. ‘거룩하지 아니하면 주를 보지 못하리라’, 거룩한 행실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경건해야 합니다. 경건은 하나님 앞에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것은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바로 사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바라보고 사모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의의 거하는 바’는 의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나가면 새 하늘과 새 땅[신천신지(新天新地)]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천년왕국이 올 것인데 그것이 또 신천신지입니다. 거기에는 거룩한 사람, 경건한 사람, 의를 이루어나가는 사람, 이러한 자들이 거한다고 했습니다. 항상 깨어서 근신하여 졸지 말고, 취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무엇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심판과 예수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 6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고 했습니다. 낮에 속하였지만 낮잠 자면 안 됩니다.
다니면서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직 깨어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밤에 자고 취하는 자는 밤에 취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낮에 속하였습니다. 성경도 알고 예수님의 재림도 알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는 자와 취하는 자는 밤과 같습니다. 낮에 낮잠 자면 그것이 밤이나 낮이나 뭐가 다릅니까? 눈 감고 자면 다 새카만 것인데 밤이나 낮이나 뭐가 다릅니까?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한 자인데 예수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인데, 자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낮잠 자면, 눈 감으면 밤과 같습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는 사람이 잠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 조는 신앙, 또 죽은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역사가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입니다. 항상 깨어서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생명의 역사, 감동, 그를 의지하는 마음, 이 믿음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은 어떤 신앙인가 하면 맹한 신앙입니다. 아무 감각이 없는 겁니다. 잠자니까 그건 뭐 밤과 같지 않습니까? 흑암을 만나고, 아무 감동이 없고, 그저 제 생각 제 뜻대로만 하고, 세상만 따라가고, 세상 물결치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잠자고 조는 신앙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

본문 5절에, “너희는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라고 했습니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는 것은 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다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알고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두움에 속하지 않은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예비하고 있는 자

보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갑자기 옵니다. 알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했을 때 갑자기 옵니다. 도적이 알게 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정점에 올지 알지 못합니다. 밤에 갑자기 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4장 43-44절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는 말씀에 나와 있듯이, 예비하고 있는 자, 깨어있는자에게는 도적이 갑자기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예비하고 있어야겠습니까? 도적이 언제 올지 알지는 못하지만 밤에 도적이 올지 미리 알고 준비하고, 온 식구들이 불을 켜고 빛 가운데 있어야 하겠습니다. 온 집안의 있는 전등을 다 켜서 낮과 같이 만들고, 식구들이 자지 말고 깨어서 도적이 오면 잡으려고 예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 집은 새벽에도 내내 온 가족이 깨어서 준비하고 있는데 도적이 12시에 오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임하지 못합니다. 2시나 3시에 와도 몰래 도적질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으며, 깨어 있으며, 예비하고 있으며 그렇게 주님이 오실 줄 고대하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오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서도 이렇게 예비하고 있으면 도적같이 재림이 임하지 못합니다. 빛 가운데 있고, 깨어 있으며, 어느 시간에 올지 이 시간에 올지 다음시간에 올지를 예비하고 있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도적같이 임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빛 가운데 거하여 불을 켜 놓고 있어야 하고, 예비하고 있어야 하고, 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불을 다 켜놓으라는 것입니다. 불 끄지 말고 항상 빛이 환하게 비추도록 언제나 거하라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어떻게 한다고 했습니까? “주께서 항상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빛 가운데 언제나 있는 성도, 빛 가운데 날마다 걸어가야 합니다. 빛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영적 빛을 잃어버리지 말고 항상 진리의 빛, 영적 빛 가운데로 항상 걸어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도적 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도적같이 임하면 큰 화를 만납니다.

3. 취하지 말고 예비할 것

영적으로 자지 말고 세상에 취하지 말 것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자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7절에,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라고 했습니다. 잠자는 자는 밤에 자야지, 낮에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기 때문에 낮잠 자면 그것은 밤이나 낮이나 분별이 없는 것입니다. 자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지 말라는 것은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말라는 뜻도 있습니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영적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영적 생활을 하고 육신으로 기울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이 늘 깨어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도 많이 하고 늘 깨어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 다음에 ‘취하지 말라’는 것은 술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포도주나 독주나 맥주나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도 맥주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다 술이니까 안 됩니다. 잠언 23장 31절에 보면,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포도주나 맥주나 술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뜻은 세상에 도취되지 말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술 먹고 취해서 돌아다니면 그것도 낮이나 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믿는 사람은 다 빛의 아들이고 낮의 아들이지만, 낮잠 자는 사람과 취해 돌아다니는 사람에게는 도적같이 옵니다.
그 사람은 갑자기 예수님이 오셔서 무슨 일을 만날지 알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시간에 올지, 이제는 빛에 거하여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는 그런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취하지 말라’고 했는데, 취하는 사람, 그거 제정신 없습니다. 술 취하지 말고, 세상과 향락에 취하지 말고, 오락에 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취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고통이 많으니 그것들을 잊어버리려고 술 먹고 취해서 다 잊어버리려 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 가운데 신비주의에 취해 또 잊어버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것에 도취가 되려고 합니다. 열광적으로 해서 도취가 되어서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취하는 것, 그것은 믿는 일이 아닙니다. 정신을 똑똑히 차려야 합니다. 무엇에 취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깨어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오락에 취하지 말 것, 세상 향락 주의에 취하지 말 것, 구경 다니는 데에 취하지 말 것, 술 취하지 말 것, 또 육신의 정욕에 취하지 말 것, 세상 명예 영광에 취하지 말 것, 취하지 않아야 합니다. 거기서 깨어나 믿
음에 서야 하겠습니다. ‘주여 믿습니다’하며 하늘나라를 바라봅니다. 영이 깨어 하나님과 더불어 성령으로 교통하는, 그러한 영을 가지는 것, 영으로 사는 신앙이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성령을 힘입어 영으로 사는 신앙은 깨어있는 신앙입니다. 이런 깨어있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세상염려, 세상 방탕, 향락 등의 세상의 모든 것에 취해 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구경하는데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세계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계 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해도 별거 없습니다. 가봐야 내내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여러 나라를 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어느 도시나 가보면 다운타운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중심가에 건물 큰 것들 몇 개 있고 다 같은 것들입니다. 일본에 가 봐도 미국에 가 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계 다른 나라에 가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다 구경 해 보면 뭐합니까? 구경 가서 죽는 사람도 많습니다. 영국구경 갔다 와서 죽은 목사도 하나있고, 미국 구경 갔다 와서 죽은 사람도 하나있고, 구경 갔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죽는가 하니 너무 과로해서 다녀서 그렇답니다. 아침 6시부터 하루 종일 강행군을 하니까 당할 수가 있습니까? 그렇게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갔다 와서 죽습니다. 그거 보면 뭐합니까?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한다고 하였는데, 아무리 보아도 다 쓸데없고 족함이 없습니다. 

세상에 도취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구경 다니는 것, 향락주의, 오락, 방탕, 이 세상 노는 데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남녀가 섞여 다니면서 버스 간에 다니다가 춤추며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람 구실 못합니다. 가서 술 먹고 방탕하며 돌아다니는 게 무슨 사람구실을 하겠습니까? 집안이 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세상에 도취되는 것은 술 취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에 도취되면 안 됩니다.
술 취하는 것, 잠자는 것 안 됩니다. 잠자는 것은 육신중심으로 돌아서는 것입니다. 영적 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육신중심으로 돌아서면 잠자는 것입니다. 

잠자지 말고, 취하지 말고 있으면 예수님께서 도적같이 임하지 않으십니다. 깨어있고 취하지 않고 항상 근신하고 빛 가운데 거하고 준비하고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도적같이 임하지 못합니다. 언제 오셔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는 그 날과 그 시는 알지 못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아, 이제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왔구나. 말세의 심판이 가까워 왔다’하고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잉태된 여자가 언제 해산 할지 알지 못하지만 해산 할 날이 가까워오는 것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 심판도 날짜는 언제인지 알지 못해도 ‘이제는 다 되었다. 남은 때가 얼마 없다’고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임하는 것과 같이 갑자기 고난이
올 것이고, 심판도 올 것이고 또 해산 할 것이라고 압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것이라고 이렇게 아는 깨어있는 성도는 준비 잘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준비할 것

본문 8절에,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람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흉배인데 이것을 가슴에 붙이고 나가고, 소망의 투구를 쓰라는 것입니다. 

신망애(信望愛)를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을 준비하고 그 다음에 소망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과 사랑을 정면에 붙이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대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어떠한 시험이 들어와도 믿음과 사랑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투구와 소망인데, 예수님이 재림하실 소망과 하늘나라 갈 소망을, 투구를 쓰는 것과 같이, 머리에 소망을 이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사랑은 앞에 대고 나아가며 어떠한 일이 닥쳐도 믿음과 사랑으로 해결하고, 시험도 믿음으로 이기고 사랑으로 이기고, 무슨 일을 해도 믿음으로 하고 사랑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믿습니다!”하며, 믿음으로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해결하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구원의 소망입니다. 이제 우리가 얼마 안 있으면 잠시 잠깐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실 건데 하늘나라에 가서 예수님과 같이 살 것이라는 소망이 점점 커져야 합니다. 믿음과 사랑과 소망, 이 세 가지를 항상 준비하고 나아가야겠습니다. 믿음과 사랑은 가슴에 붙이고 나가며 모든 시험을 다 이기고, 모든 것을 다하고, 모든 사람에게 믿음과 사랑으로 베풀고, 믿음과 사랑으로 전진하고, 향상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소망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실 것인데 “내가 이제 살 나라는 이 세상이 아니고 주님이 재림하면 그 나라이다. 그 나라가 온다. 잠시 잠깐 후면 오실 것이다”고 하며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고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의뢰하여 예비할 것

본문 9-10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예수님과 같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문 10절에 ‘깼다는 것’은 ‘사는 것’이고, ‘자는 것’은 ‘죽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살든지 죽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예수와 함께 살게 했다는 것을 알고,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 그런 신앙을 가져야 되겠습니다.

본문 11절에,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하였습니다. 피차 권면하는 것이 좋고 또 피차 덕을 세우도록 해야 합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는 사람은 권면해서 덕을 세우도록 해야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 주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줘야 합니다. 덕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다른 사람이 기뻐하는 그런 사람이 되도록 피차 권면하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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