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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14일 화요일

역대하 31:1-21 십일조와 헌물(獻物) 이병규목사성경강해 창광교회 계약신학 1990년

십일조와 헌물(獻物)
역대하 31:1-21

1이 모든 일이 마치매 거기 있는 이스라엘 무리가 나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와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 3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 4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 5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6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7삼 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 월에 마친지라 8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더미를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
니라 9히스기야가 그 더미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10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여 가로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 11그 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 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12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13여히엘과 아사시야와 나핫과 아사헬과 여리못과 요사밧과 엘리엘과 이스마갸와 마핫과 브나야는 고나냐와 그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가 되니 이는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아사랴의 명한 바며 14동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는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는 것과 모든 지성물을 나눠주며 15그 수하의 에덴과 미냐민과 예수아와 스마야와 아마랴와 스가냐는 제사장의 성읍들에 있어서 직임을 맡아 그 형제에게 반차대로 무론대소하고 나눠주되 16삼 세 이상으로 족보에 기록된 남자 외에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그 반차대로 직임에 수종드는 자들에게 다 나눠주며 17또 그 족속대로 족보에 기록된 제사장들에게 나눠주며 이십 세 이상부터 그 반차대로 직임을 맡은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18또 그 족보에 기록된 온 회중의 어린아이와 아내와 자녀들에게 나눠 주었으니 이 회중은 성결하고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하는 자며 19각 성읍에서 녹명된 사람이 있어 성읍 가까운 들에 거한 아론 자손 제사장들에게도 나눠 주되 제사장들의 모든 남자와
족보에 기록된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더라 20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21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1. 절기를 지킨 후 백성들의 여러 성읍의 우상들을 파멸함

자기 직임(職任)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함

본문 1-2절에 “이 모든 이스라엘 무리가 다 가서 유다 여러 성읍에 이르러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단을 제하여 멸하고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각각 그 본성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히스기야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반차를 정하고 각각 그 직임을 행하게 하되 곧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여호화의 영문에서 섬기며 감사하며 찬송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난 다음 이제는 자기 직임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전을 정결케 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각 지방에 돌아온 다음에는 우상을 철폐하며 각자가 자기 직임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임을 잘 감당하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자기 직책을 잘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집사는 집사 직책, 장로는 장로 직책, 또 권찰은 권찰 직책, 목사는 목사 직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자기 직임을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림

자원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이 복됨

본문 3절에 “또 자기 재산 중에서 얼마를 정하여 여호와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번제 곧 조석 번제와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의 번제에 쓰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자기 사재(私財)를 하나님께 드려서 제사 하는데 쓰게 하였는데, 그것이 아주 귀한 일입니다. 왕들 가운데 자기 사재를 하나님께 드린 왕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윗도 자기 사재를 많이 드렸습니다. 역대상 29장 3절에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즉 자기 사재의 은과 금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위해서 바쳤다고 하였습니다. 또 역대하 35장 7절에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 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 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라고 하였습니다. 요시아도 자기 사재를 하나님께 드렸다고 했습니다. 많은 어린 양과 염소와 소를 바쳤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자기 사재를 뚝 잘라서 하나님께 바침으로 하나님 섬기는 일이 잘되도록 해나가는 일이 중요함을 알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어나가도록 해야겠습니다. 땅에 쌓아두면 어떻게 된다고 하였습니까? 좀이나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와서 도둑질 해간다고 하였습니다. 요새 도둑이 들끓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개인 재산으로 하나님의 구원 운동이 잘되도록 하면 그것은 하늘나라에 쌓아두는 것입니다. 자기 영혼이 자라납니다. 그것을 가지고 믿는 일을 하면 자기 영이 살아나고 하늘나라에 쌓여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좀 먹지 않고 도적질 당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고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어리석게 세상만 따라가면 안 됩니다. 자손에게 다 줄 필요가 없습니다. 자손에게 많이 물려줘봐야 자손이 그 재산을 능히 지키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도리어 후손들로 방탕하게 만듭니다. 자손은 공부나 시켜주고, 그 다음에 약간 줄 것이 있으면 주는 것이 좋지, 너무 많이 주면 못씁니다. 부자 집 아들이 재산을 잘못 지킵니다. 대부분이 잘못 지킵니다. 부모가 주는 재산 잘 지키는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또 사기꾼이 많이 있기 때문에 다 사기를 당해 잘못 지키는 것입니다. 뭐하자, 뭐하자해서 다 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자기 재산을 바쳤기 때문에 제사하는데 풍성히 됐다는 것입니다. 아주 어려움이 없이 제사를 잘 지내게 되었습니다. 바칠 사람이 바치면 하나님을 섬기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아주 순리적으로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칠 사람이 안 바치면 하나님
의 일하는 데 여간 곤란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 한 번 드리려고 해도 여간 잘되지가 않습니다. 또 제사 드리는 것을 보고도 안 바치면 하나님 앞에 양심을 안 쓰는 것입니다. 바칠 것을 바쳐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가는데 잘되어 나가도록 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면
자기도 기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그 일도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일이 잘되니 참 좋습니다. 또 자기 영도 자라납니다. 그러므로 바칠 수 있는 사람은 바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억지로 하면 안 됩니다.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려면 안하는 것이 낫습니다.

3. 백성들이 첫 열매와 십일조를 드림

하나님께 풍성하게 바침

본문 4절에 “또 예루살렘에 거한 백성을 명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응식을 주어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 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분깃을 준다는 것입니다. 응식(應食)이라는 것은 분깃이라는 뜻입니다. ‘저희로 여호와의 율법을 힘쓰게 하라’고 한 것은 전무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육자들이 생활비를 충분히 해줘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하는 데 전무하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전무 하도록 만들려면 물질에 대한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각별히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에 전무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하는 데 전무해야 합니다. 다른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역자가 밤낮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돌아다니지 말고 기도실에 가서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심방하는 등 하나님의 일에 전무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같이 하셔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5-7절에 “왕의 명령이 내리자 곧 이스라엘 자손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과 꿀과 밭의 모든 소산의 처음 것을 풍성히 드렸고 또 모든 것의 십일조를 많이 가져왔으며 유다 여러 성읍에 거한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또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별 하여 드릴 성물의 십일조를 가져왔으며 그것을 쌓아 더미를 이루었는데 삼 월에 쌓기를 시작하여 칠 월에 마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모든 처음 익은 열매와 십일조, 소나 양의 십일조까지 다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바로 되었습니까? 바로 되었습니다. 유월절을 바로 지켰고, 유월절 지킨 사람들이 가서 우상을 타파하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날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소와 양의 십일조를 가져왔고, 그 다음에 영의 해방과 자유의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영의 생명 운동이 다 일어나니까 너무 감사해서 ‘아 이젠 성경대로 살자. 그래, 처음 열린 열매는 바치자.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나님께 바치자.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라고 하며 모든 백성들이 십일조를 많이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또 처음 익은 열매도 많이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큰 더미를 이루었습니다. 또 그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을 바로 지키고, 그 다음에 백성들이 나와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리고, 자유와 해방 운동을 하니까 이렇게 백성들이 즐거움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즐거이 많이 바치게 된 것입니다. 연보가 풍성하게 되었습니다.

소도 십일조가 되었습니다. 목축하는 사람들은 소를 십일조로 바쳤습니다. 또 꿀, 곡식, 포도주 여러 가지 십일조로 처음 익은 열매를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하나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는 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제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십일조를 잘라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임

말라기 3장 8-10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와 헌물을 바치지 않은 것이 도적질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 안 바치는 것은 도적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도적입니다. 또 십일조는 누구의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나의 것이라 하였습니다. ‘너의 것이 아니라 십일조는 나의 것이다. 나의 것을 왜 잘라먹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도적질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주일날은 무슨 날입니까? 그런데 일요일이 아니라 주님의 날, 주일날입니다. 일요일이라고 하지 말고 우린 주일날이라고 하여야 합니다. 주일날이라는 것은 주님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날이 아니고 주님의 날, 하나님의 날입니다. 성경에 주의 날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주의 날에 대하여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나와 있습니다. 주의 날입니다. 주의 날은 사람의 날이 아니라 주님의 날입니다. 그 날을 주를 위해서 온종일을 바쳐야 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주일을 자기를 위해서 사용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일날 안 지키는 사람은 주님의 날을 도적질하는 사람입니다. 날 도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을 도적질 했다는 것입니다. 날 도둑, 십일조 안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건 도둑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도적질하지 말고, 온전히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며 양심을 똑바로 쓰고 바로 해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려면 복장부터 고쳐야 합니다. 도적이 무슨 예수를 믿겠습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에게 돌리고 주일날을 지키며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그래야 바로 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도적입니다.

그런데 주일날 예배 시간만 참여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뭘 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시장 좀 봐도 괜찮고, 주일날 예배 갔다 와서 시장 꾸러미 가지고 나가도 괜찮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주일날 나가서 배추와 명태 대가리를 사가지고는 목사님이 보시면 뭐라 하신다고 치마 안에 감춰놓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사는 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니, 주일은 하나님의 날인데 왜 나가서 물건을 사서 도적질을 하고 돌아갑니까? 주일날은 24시간 온전히 하나님의 날로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사면 안 됩니다. 사고팔면 안 됩니다. 

그리고 십일조는 딱 떼어놓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닌 줄을 알고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다시 말하는데 십일조를 안 바치는 것은 도적질이고,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 도적이고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저주를 안 받으려면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바치면 더 잘됨

화천에서 고아원을 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목사님의 사모님이 저한테 물어보러 왔습니다. 자기네 생활비는 십일조로 바치는데 고아원 양식 중에 잡곡 나오는 것은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보리밥이 나왔으므로 잡곡이 나온 것입니다. 보리가 배급되어 나오는데 아이들이 많으므로 여러 가마니가 나옵니다. 그것은 십일조를 안바쳐도 괜찮은지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쳐야 됩니까? 안 바쳐도 됩니까? 자기 생활비는 바치는데 고아원 아이들의 양식에 대해서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까? 안 바쳐도 됩니까? 나도 잘 알 수가 없었습 니다. 그것은 아이들의 것이고 자기네 목사 생활비는 바친다고 하므로 잘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는 화천에 사경회를 갔었을 때인데 내가 서울에 가서 물어보고 답변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님한테 갔습니다. 자기네 생활비는 바치는 목사님인데, 아이들 양식 나오는 것을 십일조로 바쳐야 되겠는지 안 바쳐야 되겠는지 물어봤습니다. 내가 몰라서 물어보고 답변해주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답변해줘야 되겠습니까?하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그 보리에 대한 십일조를 바치면 보리밥이 쌀밥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늘 보리밥을 먹으려면 바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배웠습니다. 배운 데로 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화천의 목사님에게 편지를 했습니다. 십일조를 안 바치면 매일 보리밥이고 십일조를 바치면 보리밥이 쌀밥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늘 보리밥을 먹으려면 십일조를 바치지 마십시오. 그러다 십일조를 바치면 보리밥이 쌀밥이 됩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 바치는 사람들은 절대 가난해지지 않습니다. 안 바치는 사람이 가난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왜 가난해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나가서도 복을 받고 들어 와서도 복을 받습니다. 세계 으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떡 반죽그릇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왜 가난하냐는 것입니다. 안 바치니까 점점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보리밥만 내내 먹으려는 사람은 안 바쳐도 되는 줄로 아십시오. 그리고 저주를 받으려면 안 바쳐도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복 받으려면 바치십시오. 더 잘됩니다. 바치면 더 잘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본문 8-10절에 “히스기야와 방백들이 와서 더미를 보고 여호와를 송축하고 그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축복하니라 히스기야가 그 더미에 대하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독의 족속 대제사장 아사랴가 대답하여 가로되 백성이 예물을 여호와의 전에 드리기 시작함으로부터 우리가 족하게 먹었으나 남은 것이 많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복을 주셨음이라 그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이 쌓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십일조가 더미로 쌓였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린 날부터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린 날부터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것들로 더 많이 주셔서 백성들이 더 잘 살게 되었습니다. 또 십일조 더미가 커져서 하나님의 일이 더 잘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 일이 더 잘되며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잘되도록 하나님께서 더 많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4. 히스기야가 십일조를 분배할 직분자를 임명하여 그 임무를 실행케 함

하나님의 재물은 진실한 자가 맡아서 처리해야 함

본문 11-14절에 “그때에 히스기야가 명하여 여호와의 전 안에 방을 예비하라 한 고로 드디어 예비하고 성심으로 그 예물과 십일조와 구별한 물건을 갖다 두고 레위 사람 고나냐는 그 일을 주관하고 그 아우 시므이는 버금이 되며 여히엘과 아사시야와 나핫과 아사헬과 여리못과 요사밧과 엘리엘과 이스마갸와 마핫과 브나야는 고나냐와 그 아우 시므이의 수하에서 보살피는 자가 되니 이는 히스기야 왕과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아사랴의 명한 바며 동 문지기 레위 사람 임나의 아들 고레는 즐거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맡아 여호와께 드리는 것과 모든 지성물을 나눠 주며”라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예물과 십일조를 드려서 큰 더미를 쌓았는데, 관리하는 사람들로 성실한 사람을 세웠다는 것입니다. 진실하고 성실히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재물은 진실한 사람이 취급을 해야 합니다. 양심을 쓰고, 진실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덕이 되고, 덕을 세우는 사람을 뽑아서 하나님의 재산을 관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는데 하나님 앞에 바친 물질은 이렇게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을 세워서 장부를 맡기고 관리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바로 해야 합니다. 진실하게 하지 못하면 도리어 이 물질로 말미암아 교회에 큰 시험이 들어올 염려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눠주는 생활에 대해 언급
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교회에서 전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생활비로 나눠줬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15-17절에 “그 수하의 에덴과 미냐민과 예수아와 스마야와 아마랴와 스가냐는 제사장의 성읍들에 있어서 직임을 맡아 그 형제에게 반차대로 무론 대소하고 나눠 주되 주되 삼 세 이상으로 족보에 기록된 남자 외에 날마다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그 반차대로 직임에 수종드는 자들에게 다 나눠 주며 또 그 족속대로 족보에 기록된 제사장들에게 나눠 주며 이십 세 이상부터 그 반차대로 직임을 맡은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라고 하였습니다.

관리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십일조로 바친 물질들을 잘 관리하고 그 다음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분량대로 나눠줬습니다. 교회 재정은 진실한 사람을 택해서 재직을 맡겨야 합니다. 또 재직이 많은 교회에서는 재정부에서 맡아야 합니다. 재직 가운데 재정부가 또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들이 맡아서 그것을 정해서 나눠 줘야 합니다. 목사에게도 나눠 주고 조사에게도 나눠 주고 전도부인에게도 나눠 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양을 정해서 받아야 합니다. 십일조 받는 것을 자기가 다 받아먹으면 안 됩니다. 나눠 주는 대로 받아먹어야 합니다.

목회자는 자신에게 정해진 사례, 그 몫에 감사하며 그것에 맞추어 살아야 함

요새 어떤 교회는 십일조 가져오는 것을 목사가 다 가지는 교회가 있는데 그것은 고쳐야 합니다. 정해주는 데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정해서 주면 그것으로 다 맞춰야 합니다. 적게 주던, 많게 주던, 그것을 가지고 맞출 생각을 해야 합니다. 더 받으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더 받으라고 되어 있습니까? 정해진 것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적게 주면 적게 주는 대로 살고, 많이 주면 많이 주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정해진 것 이외에 더 요구하느 것을 잘못입니다. 산 기도 가는 비용을 내라, 고천 기도원 가는 비용을 내라, 또 무슨 비용 내라, 이것은 못된 버릇입니다.

매일 아침 기도실에 걸어가면 한 반 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는 위치 인데, 기도실에 가는 비용을 한 달에 몇 만원을 내라고 합니다. 뭐 택시 타고 다닙니까? 그것이 바로 된 것입니까? 무엇 때문에 교회에서 비용을 쓰라는 것입니까? 한 반 시간 가는 것은 걸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걸어갔다 오는 것이 좋습니다. 운동도 됩니다. 걸어가는 것이 좋은 줄 아십시오. 기도실 가는 비용 내라, 휴가 가는 비용 내라,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그런 직분자는 그만 두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나오는 사람은 자기 위신만 떨어지는 줄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이 우리 교회 목사라는 사람은 돈만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라, 무엇을 내라, 그렇게 하면 집사들이 시험에 듭니다. 그러면 대접하고자 하는 생각이 안 듭니다. 다시 말하는데 무엇을 떨어내는 것을 생각하지 말고 주는 것을 가지고 맞춰야 합니다. 

사례비를 조금 주면 맞추는 법이 있습니다. 개척교회 같은 경우 조금 주면 어떻게 맞추는지 아십니까? 먼저 쌀을 사다놓는 것입니다. 식구가 둘이면 쌀 두 말을 사다놓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연탄을 사다놓는것입니다. 그 다음에 소금을 사다놓는 것입니다. 그러면 몇 푼 들겠습니까? 쌀 두 말에 얼마입니까? 이만 원입니다. 연탄 한 달 뗄 것이 얼마입니까? 쌀 값 이만 원, 연탄 값 이만 원, 소금 값 오백 원입니다. 또 채소 값, 채소도 싼 것을 사야 합니다. 채소는 채소 시장에 저녁 때 쯤에 나가면 시퍼런 잎 떼서 놓은 것을 한 봉지에 오백 원에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떤 조사는 저녁에 한 가득 사오면 오백 원치를 가지고 한 주간 먹는다고 합니다. 떡잎 떼어서 놓은 것으로 사면 됩니다. 시퍼런 것이 영양이 더 많습니다. 줄기는 비타민 씨가 별로 없습니다. 시퍼런 것이 더 많습니다. 영양가 없는 줄기는 돈 많은 사람이 먹으라고 하고, 가난한 사람은 시퍼런 영양가 많은 것만 갖다 먹는 것입니다. 조금 주면 조금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의복은 어떻게 합니까? 의복은 하나 달라고 하면 줄 것이고 신도 맞는 것 하나 있으면 달라고 하면 줄 것입니다. 내 발만한 사람 오라고 하십시오. 신발 없는 사람은 나눠주겠습니다. 줄려고 해도 발에 맞는 사람이 없어서 문제인데, 그래도 맞는 사람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많이 있으면 그 사람들 중 제일 없는 사람을 골라서 줄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가 한 것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만나주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내게로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을 구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떠난다고 하였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면 왜 안 주시겠습니까? 반드시 하나님께서 주시는데 전심으로 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은 조금만 하고, 다른 데 세상에 나가서 돌아가므로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해서, 뜻을 다해서, 정성을 다해서, 전심으로 하나님만 구하면 하나님께서 받아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주시게 되어 있습니다. 자기 분깃, 하나님께 바친 물건은 제직회에서 처리하고, 처리하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처리하며, 그것으로 총회에서는 하나님의 일하는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정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해줄 때에 그것을 가지고 맞추어 살라는 것입니다. 더 받으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적다는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든 많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가지고 맞춰 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같이 해주시고 또 점점 더 잘되게 해주십니다. 그것을 맞출 줄 아는 사람이 잘되고 더 받으려고 안해야 하나님께서 더 많이 주십니다. 더 받으려고 하
면 하나님께서 더 안주십니다. 더 받으려는 사람은 믿음 안 쓰는 사람 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나가면 집사들 전체가 시험에 듭니다. 더 받으려고 하면 시험에 듭니다. 그러나 집사들은 교역자에게 할 수만 있으면 풍족히 주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교역자가 세상 근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전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지장 없이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지장 가는 것이 없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5.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구하고 율법을 지키며 선정을 베풂

선한 왕 히스기야

본문 18-21절에 “또 그 족보에 기록된 온 회중의 어린아이와 아내와 자녀들에게 나눠 주었으니 이 회중은 성결하고 충실히 그 직분을 다하는 자며 각 성읍에서 녹명된 사람이 있어 성읍 가까운 들에 거한 아론 자손 제사장들에게도 나눠 주되 제사장들의 모든 남자와 족보에 기록된 레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더라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히스기야가 참 잘하였습니다.

나눠줄 것을 나눠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물건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하는 데 적당하게 써야 합니다. 일꾼에게 적당하게 나눠 주고, 하나님의 교회에 쓰고, 또 개척하는 데 써야 합니다. 선교사 보내는 데에도 써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가지고 이렇게 효과적
으로 하나님의 일이 잘되어 나가도록 바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신학교 일꾼 기르는 데 써야 합니다. 여러 면으로 우리가 잘 사용해야 되겠습니다.

‘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무릇 그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 하나님을 구하고 일심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일심정력으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진실한 마음으로, 선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것입니다. 정의를 행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행하고, 일심정력으로 행한 히스기야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에나 계명에나 성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하나님을 구하는 일에나 전부 일심정력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구하는 일, 계명 지키는 일, 성전에서 수종드는 일 또 백성을 다스리는 일 그것에 전심정력을 가지고 진실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고 충성을 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개(個) 교회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고 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함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서 바친 십일조나 헌물 등 모든 물질을 가지고 여러 면에 사용해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자기 지파에만 사용하면 안 됩니다. 히스기야도 자기 지파에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 다 나눠준 것이 아닙니까? 열두 지파 일하는 사람에게다 나눠줬습니다. 열두 지파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다 나눠줘야 합니다. 유다 지파이면 유다 지파에 있는 레위 사람에게만 나눠주면 안 됩니다. 베냐민 지파에게만 나눠 주면 그것 또한 안 됩니다. 또 에브라함 지파에게만 나눠 줘도 안 됩니다. 전국에 있는 레위 사람에게 다 나눠 줬다는 것입니다. 

요새로 말하면 개 교회 이기주의로 나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개 교회 이기주의로 나가는 것은 유다 지파만 잘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생각입니다. 또 베냐민 지파만 잘하겠다는 것이고 또 에브라함 지파나 므낫세 지파만 잘하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이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전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한 쪽에만 하겠다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개 교회 이기주의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와 헌물 등을 가지고 약한 교회를 도와주고 신학교도 세우며 일꾼을 길러내는 데 바로 사용해야 합니다. 또 선교회에도 보내면서 전체에 대한 것을 다 잘해나가야 합니다. 일꾼들도 생활비를 주면서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성경대로 전체가 바로 됩니다. 전체를 다 무시하고 ‘우리는 베냐민 지파니까 베냐민 지파만 잘해나가자. 다른 지파는 우리와 상관없다’라고 하면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의 몸으로 말하면 그저 팔만 잘되도록 만들어놓은 것과 같습니다. 다리야 부러지던 부러지지 않던 상관하지 않습니다. 또 입은 입만 잘되게 만들어놓고 배는 배만 잘되게 만들어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지체가 서로 도와주고 협력하여야 몸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한 교회만 잘 해나가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 교회가 합해서 한 성전을 지었다고 하였고, 사도신경에도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고 하였는데, 거룩한 공회라는 것은 한 교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들이 연합한 그 상부 기관도 거룩한 교회입니다. 노회나 총회도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 연결되어 함께 잘되도록 만들어야 한 교회도 잘되어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안 되면 한 교회가 아무리 잘되는 것 같아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이 비쳐나갈 수 없습니다. 개척 교회하는 곳을 도와주고, 약한 교회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개척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일 년에 교단적으로 한 개를 세우고 또 개 교회적으로 세울만한 교회는 한 개씩 또 세우는 것이 좋습니다. 한 개씩은 세워야 합니다. 자기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잘못하는 것입니다. 이기주의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