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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9일 월요일

마태복음 19:1-29 부자와 천국 소유자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부자와 천국 소유자
마태복음 19:1-29

1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3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5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10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11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
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13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15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 16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말라, 간음하지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말라, 19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22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25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27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1. 이혼문제에 대하여

본문 1-2절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고 했습니다. 병을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는 권능이 예수님에게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이면 병 고쳐주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 3-6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가로되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 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이혼문제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물어 봤습니다. 그런데 시험하려고 물어봤다고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여 말하기를 어떻게 말하나 보자하며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무론하고 아내를 내어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하고 물어 봤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그랬습니다. 이 결혼문제 부부문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인데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그러셨습니다. 

본문 7-9절에, “여짜오되 그러하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내어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24:1에,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보낼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모세 때에 ‘수치 되는 일이 있을 경우에 이혼증서를 줘서 내보내라’ 그런 말이 있답니다. 이 수치 되는 일이라는 것은 간음하는 것 같은 종류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수치된 것에 대한 조건은 생각지 않고 이혼증서만 써주면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인데 사람이 나누지 못 한다고 하셨습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나누기 전에는 나누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눠주시는 조건은 음행하는 것입니다. 음행한 것은 이혼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또 신앙문제 때문에 내쫓는 것이 있는데, 고린도전서 7장에 신앙문제로 쫓겨나는 일로 인해 갈리자고 하거든 갈리게 하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집을 떠나 남편이 교회적으로나 법적으로 다시 합할 수 없는 경우에는 부부계약이 해약이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조건은 한쪽이 죽는 것입니다. 그 몇 가지 이외에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나누지 못 한다고 그랬습니다.
요새 한국사회에 이혼이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이혼이 많아졌는데 몇 프로라 그럽니까? 30%라고 합니까? 열 쌍이 결혼한다 하면 이혼이 30%니까 세 쌍이 이혼하는 것입니다. 이혼이 이렇게 많다고 합니다. 지금 이것이 말세가 되어서 한심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성경에 이혼 하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이혼하지 말아야 되고, 이혼하지 않으려면 서로가 자기를 만들어 나가고, 용납하고 참고, 자기를 고치고, 피차간 하나님께서 자기를 만들라고 주신 줄로 알고, 그 자리에서 잘 만들어 나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어느 교회나 이혼하는 사람이 많이 생기는데, 이 한국사회가 이혼율이 30%니까 많이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이혼하는 사람을 책벌해야 됩니다. 책벌하는 것을 6개월 하는 경우도 있고 1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책벌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기한이 있습니다. 무제한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6개월이나 1년 동안 징계를 하고 회개하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회개 한 다음에는 징계를 풀어주고 다시 재혼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이혼하고서 책벌이 끝난 이후엔 결혼하지 않고 사는 것도 있고, 이혼한 여자와 같이 사는 방법 등 여러 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 기한을 정하여 책벌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엔 해벌해 주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는 말씀을 우리가 믿고 어떠한 경우가 있어도 이혼하지 않도록 힘을 써야 됩니다. 욕하면 먹자, 때리면 맞자, 죽이면 죽자는 결심을 하고 그저 자기를 잘 만들어서, 참고 견디고 회개 하고 믿음에 바로 서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2. 독신생활

본문 10-12절에, “제자들이 가로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삽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한번 결혼하면 이혼할 수 없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나누지 못한다고 한다면 차라리 장가가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합니다. 그때에도 이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장가가지 않는 것, 결혼하지 않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물어보니까, 예수님께서 뭐라고 답변하셨습니
까?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찌니라”라고 하십니다. 타고난 자라만 결혼 안하고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고자가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모태로부터 된 고자, 두 번째는 사람이 만든 고자, 세 번째는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세 종류 전부 타고난 자들입니다. ‘모태로부터 고자로 난 사람이 있고’, 이런 고자는 성적 불구자로써 결혼이 불가능한 사람이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이 만든 고자, 그 다음에는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된 고자인데 신앙으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7:40에,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혼자 살았지만 “나는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이 혼자 살게 된 것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천국을 위해서 스스로 독신생활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것입니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3.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 

본문 13-15절에,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 거기서 떠나시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은 이런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의 안수하심과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어떻게 했다고 그랬습니까? 꾸짖었습니다. 유아, 애들을 데리고 와서 부산스럽게 한다고 그렇게 꾸짖으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하십니다.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라는 것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천국을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8:3에,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어린아이와 같이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자신을 낮춥니다. 겸손하여 낮은 자리에 처하는 자가 어린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교만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고 하는 것은 천국 밖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언제나 겸손하고 순진해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겸손하고 순진합니다. 솔직하게 속에 있는 것을 그대로 다 말하는 것입니다. 어린 아들보고 물어보면 그 집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압니다. 어린아이들은 솔직하니까 그대로 다 말해줍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리에 내려가고 순진한 자리에 내려가야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11:25에,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천국을 숨기시고 어린아이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떤 것입니까? 여기 어린아이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한다고 그랬으니까, 이것은 계시를 받는 자 계시의 말씀을 잘 받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순진하고 겸손해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잘 그대로 받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겸손하다고 그랬습니다.
그리고 잘 배운다고 그랬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배우기 잘하는 것이 어린아이입니다. 어린아이가 제일 잘 배웁니다. 말 배우는 것도 어린아이 때에 외국어 배우면 잘하지만 어른이 된 다음에는 아무리 잘하는 것 같아도 잘 못합니다. 어린아이가 잘 배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어린아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17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드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자기를 낮추고 순진하고 하나님 말씀을 잘 듣고 배우고, 하나님의 나라, 하늘나라를 잘 받듭니다.

베드로전서 2:2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갓난아이들 같이’라고 했는데, 갓난아이들이 어떤 것입니까?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신령한 젖 사모하는 것이 갓난아이라는 말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자라나는 것이 갓난아이라는 것입니다. 갓난아이는 신령한 젖을 사모합니다. 갓난아이가 하루에 젖을 몇 번 먹습니까? 8번 먹습니까? 8번 먹어도 배가 고파서 헐떡헐떡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받아먹고 소화를 잘 하고 그 다음에 더 먹으려고 헐떡헐떡 하고 이것이 갓난아이입니다. 한번 먹여놓았는데 그 다음엔 배부른 사람이 되어가지고 안 먹으려 하는 것은 갓난아이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병이 난 것입니다. 병 안 걸리고 정상적인 갓난아이는 하루 여러 번 먹어도 또 배가 고파서 헐떡헐떡합니다. 젖을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또한 자라난다는 말입니다. ‘구원에 이르러 자라나게 하려 함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갓난아이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갓난아이는 어디에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부모가 없으면 고아원이라도 가야 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만 살 줄 알고 떠나서는 못 살 줄 알고, 그 다음은 배우려고 애를 씁니다. 신령한 도의 젖을 먹으려고 애를 씁니다. 겸손하고 순진해서 말씀을 잘 받아먹으려고 힘을 쓰고 하늘나라를 잘 받들어 나가는 이것이 갓난아이입니다.
갓난아이와 같은 자리에 있으면 참 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그 사람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갓난아이에서 떠나서 이것이 육체로 돌아가면 천국 밖에서 사는 사람이 됩니다. 갓난아이 같은 자를 찾아야 됩니다. 그런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말씀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런 사람이 말씀을 배우게 되고 자라나게 됩니다. 그런 갓난아이 같은 사람이 자라납니다. 완고한 사람은 못 자라납니다. 풀이나 곡식도 자라나는 것은 연한 순에서 자라납니다. 연한 순이 없이 뻣뻣한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연한 순이 나와야 잘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갓난아이와 같은 그런 성도가 되면 참으로 하나님께 복을 받습니다. 갓난아이와 같은 자를 기뻐하시고, 천국을 주시고, 자라나게 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부자 청년과의 영생문답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는가

본문 16-20절에,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물어봤습니다. 이 사람은 영생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만 지금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한 것을 보면 선한 일만 많이 하면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 하고 지금까지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입니다. 선한 일 하면 좋은 곳에 간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선한 일을 많이 하면 좋은 곳에 간다고 하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 사람도 선한 일 해가지고 영생을 얻어 보려고 많은 힘을 힘썼습니다. 

인륜에 대한 계명으로 대답하심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선한일 해야 되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인데, 네가 선한 일 좀 해가지고 영생을 얻으려고 지금까지 힘을 썼구나. 또 지금도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되겠는지 물어보는구나’하는 마음으로 대답하십니다. “선한 이는 오직 한분이시니”,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선하신데 다른데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느냐고 하시며,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어느 계명이오니까?”하고 다시 묻습니다. 예수께서 대답으로 십계명을 말씀하십니다. ‘살인하지 말라’ 이것은 6계명이고, ‘간음하지 말라’ 이것은 7계명, ‘도적질하지 말라’는 것은 8계명,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것은 9계명입니다. 열 번째 계명은 말씀 안하셨습니다. 그런 대답을 하신 뒤에 또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5계명을 말씀해주셨습니다. 또 계명의 대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는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것은 인륜에 대한 계명만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천륜에 대한 계명, 하나님께 대한 그 계명은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말씀 안 해 주신 것입니다. 5계명 ‘탐내지 말라’에서부터 9계명까지 말씀해 주시고 열 번째 계명은 말씀 안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사람이 선한 일을 하여야 구원 받을 줄 알고 힘을 많이 썼기 때문에 인륜에 대한 계명들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대답에 이 사람이 그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행했습니다”하고 답변했습니다. “그 계명들은 내가 다 지켰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어려서부터 많이 힘을 쓴 것입니다. 이 사람은 “그것을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킨 것인데, 아직도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사람은 계명을 잘 지켜가지고 구원받으려고 하고, 영생 얻으려고 힘을 썼지만 그래도 영생문제가 해결이 안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 봤다는 말입니다. 

네 소유를 청산하고 나를 좇으라

본문 21-22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아직도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하고 청년이 물어보니까 예수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의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라고 했는데, 네 소유를 팔아서 희생하고, 가난한 사람을 주고 예수님을 따라오면 하늘나라에 보화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하늘나라에 보화가 있습니다. 보화를 하늘나라에 쌓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사람을 주든지, 하나님의 나라의 필요한데 사용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사용할 때 하늘나라의 보화가 네게 있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쌓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쌓는 것입니다. 그건 도적이 도적질 못해간다고 그랬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재물이 우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를 좇으라.” 예수님을 전적으로 좇아가면, 믿고 좇아가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재물 처리하기 전에는 못 좇아가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나를 좇아와서 영생을 얻으려면 ‘네 우상이 되어있는 그것’ 즉, 재물부터 처리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또 그 사람이 지금까지 외부적 선한 일을 행해서 영생을 얻겠다고 하던 그 문제도 예수님께서 해결해 주
셔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외부적으로 행하는 그것을 가지고는 안 된다는 말을 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라고 하신 것을 보면 그것 가지고는 온전하게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사람 앞에서 선한 일 해가지고는 온전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네 우상인 그것, 걸림돌이 되는 우상을 처리하고 나를 좇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 좇는데 생명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재산을 가지고 좇으면 안 될까요?”라고 재산이 많아도 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재산이 많은 사람이 재산을 두어두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영생구원 못 받습니다. 재산을 그냥 두어두려하고, 그냥 가지고 있고, 그냥 소유하고 와서 예수님을 따라가면 어떻게 됩니까? 될 것 같습니까? 안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만 따라가면 구원받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서 구원 받는 것입니다. 재산을 버리더라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 아닙니까?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함

마태복음 6:22-24에,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재산을 두어두고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혹 이를 미워하면 저를 사랑하고, 혹 저를 사랑하면 이를 미워하든지 하는 것이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만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 손에는 재산을 붙들고 한 손에는 예수님을 붙들고 이렇게 믿으면 될 것 같지만 그것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두 주인 섬기는 것
을 예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한 여자가 두 남자 섬기는 것을 원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또 한 신하가 두 임금을 섬기면 그런 것은 임금이 원치 않습니다. 한국 대통령도 섬기고 김정일도 섬기고 하는 신하입니다. 그런 사람을 나라에서 쓰겠습니까? 한 사람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재물이 이 사람에게는 주인입니다. 재물이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도 주인으로 모시려고 합니다. 둘 다 모시려고 합니다. 재물도 주인, 예수님도 주인입니다. 재물도 붙들고 예수님도 붙들고 이렇게 가고자 합니다. 그것은 실패입니다. 실패이고 불가능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를 내어 놓고 하나만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재물을 내놓고 예수님만 따라가면 네가 구원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선한일 하여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야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따라갈 때에, 우상을 버리고 따라가야 구원을 받습니다. 선한 행실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야 구원받습니다. 따라가는데 재물이 우상이 되어가지고, 그 재물 때문에 못 따라가게 생겼는데도, 재물 그냥 두어두고 따라오려고 하면 그것은 껍데기만 따라가는 것입니다. 속은 거기 재물에 다 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만 사랑하고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만 따라가야지 다른 것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상을 다 버려야 됩니다. 이 사람은 재물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우상이고, 어떤 사람은 직장이 우상입니다. 이 우상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따라가겠습니까? 따라가지 못합니다. 따라가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못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데 가서 네 재물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고서 나를 좇으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는 것은 그 재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는 말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그 재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까? 네 재물을 팔아서, 네 재물이 필요한 곳에 쓰라는 말입니다. 구제하는 것에 재물이 필요하고 또 하나님을 위해서 재물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일하는 것에 재물이 필요합니다. 당나귀 바치라고 하면 당나귀 바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재물을 가지고 필요한 곳에다가 사용하고 너는 예수님만 붙들고 예수님만 따라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못 따라 갔습니다. 재물 따라갔습니다. 재물 버리지 못하면 예수님 따라가다가도 언젠가는 재물로 돌아갈 날이 옵니다. 우상을 두어두고 따라가는 사람은 언젠가는 다시 우상으로 돌아갈 날이 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만큼 시간이 없으신데도 많은 문답을 해주시고, 예수님의 시간 다 빼앗기면서 예수님께서 좋은 말씀을 해주셨는데, 이 사람이 그래도 근심하고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그 우상 있는 데로 돌아갔습니다. 우상 있는 데로 간 것은 예수님 따라가는 것이 둘째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람에게 첫째가 무엇입니까? 첫째가 재물입니다. 그래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재물이 우상 된 사람, 이기주의자들, 자기가 우상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집이 우상이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도 예수님 따라가려고 힘을 쓰다가도 언젠가는 근심하며 돌아갈 날이 옵니다. 우상을 버려야 됩니다. 아내가 우상 된 사람이 있습니다. 또 남편이 우상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근심하고 돌아가게 됩니다. 얼마쯤 예수님 따라가다가 마지막에는 근심하고 돌아갈 날이 옵니다. 

5. 부자와 천국소유자

본문 23-24절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라고 했습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십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했는데,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여기서의 바늘귀를 ‘침공문(針空門)’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침공문’이라는 문이 있는데 약대가 엎드려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실제로 약대를 말하고 실제로 바늘귀를 말합니다. 침공문이 아니고 우리 바느질 하는 바늘귀에 실제로 약대가 거기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것보다 더 어렵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심에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랐습니다.

부자를 바늘귀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

본문 25-26절에,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서 말하기를,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합니다. 예수께서 저희 제자들을 보시며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다 할 수 있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는 못합니다. 사람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게 할 수 있습니까?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게 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만능이신데 그것 못하시겠습니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지만, 사람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습니다. 들어갈 수 있게 만들어 가지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부자를 가난하게 만들어서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부자의 마음가지고는 못 들어가지만, 하나님께서 그 부자가 가난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들어가도록 만드십니다. 모든 재산 다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아무 것도 없는 줄 알고,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들어가게 하시
는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부자 그대로는 못 들어갑니다.
부자 그대로는 못 들어가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들어가게 하실 수 있는데 어떻게 한다고 그랬습니까? 부자가 가난한 마음을 갖게 만들어서 하늘나라 들어가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가난한 마음이 되지 않으면 재산이 다 없어지든지, 징계를 내려서라도 다 하나님께 바치게 하고 마음으로 가난한 마음을 가지게 하십니다. 가난한 마음가지고 하나님께 나오게 만들어서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으로서는 못합니다.

주를 좇은 자에게 심판의 권세 주심

본문 27-28절에,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베드로가 참 좋은 것을 물어봤습니다.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무엇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어보니까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대답해주십니다. 다 버리고 예수님을 좇아가
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그랬습니까?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재림 할 때에 어떻게 됩니까? ‘세상이 새롭게 되어’를 보면 세상이 새롭게 될 텐데, 그때 예수님을 좇는 제자들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 버리고 좇아가면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지파를 심판한다는 말입니다. 

의인이 되어 해와 같이 빛남

마태복음 13:41-43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천사를 보내시는데, 인자의 천사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는다고 하셨습니다. 43절에 보면, 그때에 의인들이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라고 합니다. 다 버리고 따라간 사람이 의인입니다. 예수님 따라갔으니까 의인 아닙니까? 그 사람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아버지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난다는 말입니다. 다 내어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은 이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서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납니다. 환해지는 것입니다. 따라가지 않은 사람은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지 못합니다. 많이 따라간 사람은 광채가 더 많이 나고 영광이 더 크고, 적게 따라간 사람은 영광이 작습니다. 안 따라간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은 장차 얼굴이 해와 같이 빛나고, 열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됩니다. 그만큼 잘하고 능력이 있으니까 열 두 지파를 심판할 권세가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다 버리고 따라가면 장차 하늘나라에 가서 그만큼의 큰 권세의 자리에 앉아서, 그만큼의 권세와 능력이 임하고 또 해와 같이 빛나고, 영원히 빛나는 그런 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 짧은 세상에서 모든 것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영원한 영광에 해와 같이 빛나는 그것이 이루어져나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고 따라가면 된다고 했습니까? 다 버리고 따라가면 얼굴이 영원히 빛나는 얼굴로 되고, 다스리는 왕권이 주어지는 그 자리로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버리지 못해가지고 못 따라가는 사람은 참 너무너무 어리석습니다. 아니, 이렇게 큰 것을 주시려고 하는데, 그것하나 썩어질 재물 버리지 못해서 그런 것 때문에 못 따라갔으니 얼마나 손해입니까? 

본문 29절에,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상속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 나 전토를 버린 자’라는 것은 예수님 따라가려고 다 버렸다는 말입니다. 예수 따라가느라고 무얼 버렸습니까? 집, 형제, 자매, 어머니, 아버지, 자식, 전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갔다는 말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30절을 한 번 더 읽어 보십시오. 쫄딱 망한다고 되어 있습니까?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재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