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기야와 여호야긴의 다른 행보
예레미야 52:17-34
예레미야 52:17-34
17갈대아 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에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19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20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 22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23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육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 24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25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칠 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육십명이라 26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27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28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이요 29느부갓네살의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삼십이 인이요 30느부갓네살의 이십삼 년에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사십오 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인이었더라 31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 월 이십오 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32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33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
1. 성전 기구를 바벨론으로 가져감
본문 17-20절에 “갈대아 인이 또 여호와의 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전의 놋바다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또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으며 시위대 장관이 또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갔는데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 있는 열두 놋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중수를 헤아릴 수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왕 때에 하나님 앞에 믿음과 정성으로 온 백성이 힘을 합하여 바친 모든 기명들을 여기 거명한 대로 바벨론 왕이 모조리 다 가져가서 자기들이 신이라고 섬기는 것들의 묘에 두었습니다.
본문 21절에 “그 기둥은 한 기둥의 고가 십팔 규빗이요 그 주위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사지놓이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스물 일곱 자 높이와 열 여덟 자 둘레의 큰 성전 기둥도 가져가고 말았습니다.
본문 22-23절에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고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으며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륙이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일백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 성전 앞에 있는 두 기둥은 그 위에 일곱 자 반이나 되는 머리를 얹은 아주 큰 기둥이요, 아주 요긴한 기둥으로서 상당히 많은 놋으로 정성을 들여 만든 성전 기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바벨론에게 빼앗긴 것입니다. 범죄하면 아무리 잘해놓았어도 하나님께서 원수의 손에 붙여 다 빼앗기게 만드십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놓았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2. 많은 사람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아감
본문 24-27절에 “시위대 장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전 문지기 세 사람을 잡고 또 성중에서 사람을 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 또 성중에서 만난 바 왕의 시종 칠 인과 국민을 초모하는 군대 장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중에서 만난 바 국민 육십 명이라 시위
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그들을 잡아가지고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바벨론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고 하였습니다. 원수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죽이고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며 사람 앞에 메어주신 멍에를 메지 않고 하나님을 거역하였기 때문에, 시드기야 자신도 망하고 백성도 망하고 전부 불사름을 당하였습니다. 또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귀한 보물을 원수에게 다 빼앗기고 자신의 눈도 빼앗겨서 어두워져 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끌려가서 종 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면 이와 같이 그 결과가 비참합니다.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 사람을 배신하는 일,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메지 않는 일이 초래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가 잘 보십시오.
본문 28-30절에 “느부갓네살의 사로잡아 옮긴 백성이 이러하니라 제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이요 느부갓네살의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옮긴 자가 팔백 삼십 이 인이요 느부갓네살의 이십 삼 년에 시위대 장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옮긴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그 총수가 사천 육백 인이었더라”고 하였는습니다. 여기 연대에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세 번 포로로 잡혀갔었는데, 제 칠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두 3차례에 걸쳐 포로로 잡혀갔는데, 1차 포로는 주전 606년 여호야김 때입니다. 2차 포로는
주전 299년 여호야긴 때입니다. 그리고 3차 포로는 588년 시드기야 때에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대가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느부갓네살 왕 제 일 년에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듯합니다. 다니엘 1장 1절에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
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김 삼 년이 제1차 포로인데, 다니엘 2장 1절에는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지 이 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다니엘이 잡혀간 때이므로 다니엘
은 느부갓네살 왕 일 년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1차 포로가 느부갓네살 왕의 일 년이라고 해야 하는데, 본문에서는 칠 년이라고 하였으니, 본문 28절은 2차 포로를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일 년이 1차 포로, 칠 년이 2차 포로, 3차는 본문 29절에 십팔 년이 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본다면 주전 년대와 맞지 않습니다. 본문 30절에는 또 이십삼 년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포로로 잡혀간 것이 네 번에 걸친것 같은데, 모두 3차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사천 육백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칼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주전 299년 여호야긴 때입니다. 그리고 3차 포로는 588년 시드기야 때에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지금 연대가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느부갓네살 왕 제 일 년에 다니엘이 포로로 잡혀간 듯합니다. 다니엘 1장 1절에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
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김 삼 년이 제1차 포로인데, 다니엘 2장 1절에는 “느부갓네살이 위에 있은지 이 년에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고 하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다니엘이 잡혀간 때이므로 다니엘
은 느부갓네살 왕 일 년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1차 포로가 느부갓네살 왕의 일 년이라고 해야 하는데, 본문에서는 칠 년이라고 하였으니, 본문 28절은 2차 포로를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일 년이 1차 포로, 칠 년이 2차 포로, 3차는 본문 29절에 십팔 년이 되어야 합니다. 이대로 본다면 주전 년대와 맞지 않습니다. 본문 30절에는 또 이십삼 년이 나와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포로로 잡혀간 것이 네 번에 걸친것 같은데, 모두 3차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여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이 사천 육백 명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칼과 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3.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출옥시켜 후대함
여호야긴이 37년 만에 감옥에서 나오게 됨
본문 31-34절에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이 월 이십오 일에 그가 유다 왕 여호야긴을 옥에서 내어놓아 그 머리를 들게 하고 그에게 선히 말하고 그의 위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그 죄수의 의복을 바꾸게 하고 그 일평생에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그의 쓸 것은 날마다 바벨론 왕에게서 받는 정수가 있어서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끊이지 아니하였더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긴 왕은 2차 포로 때에 잡혀간 왕인데, 여기서 갑자기 여호야긴 왕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바벨론 왕이 여러 나라의 왕을 잡아 옥에 가뒀는데, 여호야긴 왕은 감옥에서 삼십칠 년 동안을 있다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이 선처를 베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야긴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으므로 끌려가게 하셨는데, 삼십칠 년 후에 바벨론 왕으로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 왕으로 ‘반역한 것과 끝까지 거역한 것 없이 항복하고 섬기겠다고 했으니, 이렇게 오래 놔두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여기게 하셔서 여호야긴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만드셨습니다. 여호야긴이 그 뒤로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십 년 내지 이십 년은 살았을 것입니다.
바벨론 왕으로 ‘반역한 것과 끝까지 거역한 것 없이 항복하고 섬기겠다고 했으니, 이렇게 오래 놔두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여기게 하셔서 여호야긴으로 감옥에서 나오게 만드셨습니다. 여호야긴이 그 뒤로 얼마나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 십 년 내지 이십 년은 살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멘 여호야긴에게 은혜를 베푸심
이 여호야긴에 대하여는 열왕기하 24장 8-1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야긴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 달을 치리하니라 그 모친의 이름은 느후스다라 예루살렘 엘라단의 딸이더라 여호야긴이 그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
라 그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신복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그 성을 에워싸니라 그 신복들이 에워쌀 때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도 그 성에 이르니 유다 왕 여호야긴이 그 모친과 신복과 방백들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왕이 잡으니 때는 바벨론 왕 팔 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야긴이 십팔 세에 왕이 되어 석 달을 치리하는 동안 자기 부친을 본받아 하나님께 악을 행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을 보내시고 예루살렘을 포위하게 하셨습니다. 그때 여호야긴 왕이 모친과 신복과 방백과 내시들과 함께 바벨론에 항복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사실은 많지만 바벨론 왕에게는 항복하였습니다. 즉, 하나님의 멍에를 거역하지 않고 바벨론 왕의 멍에를 자원해서 멘 것입니다. 그 뒤로 여호야긴이 바벨론에서 삼십칠 년 동안 감옥에 있게 되었고 그후에 에윌므로닥 왕이 순순히 항복한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에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야긴이 선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우상을 섬기고 계명을 어기며 종교적인 면에서 잘못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왕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의 말대로, 바벨론 왕의 멍에를 메었습니
다. 하나님께서 메라고 하신 멍에를 멘 사람이 여호야긴이었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메라고 하신 멍에를 멘 사람이 여호야긴이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을 선대해준 이 사실을 최후에 기록한 것은 시드기야 왕과 대조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바벨론 왕을 배반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지 않고 마지막까지 버티다가 붙잡혀 비참하게 되었습니다. 아들들이 눈 앞에서 죽임을 당하고 눈까지 뽑히고 쇠사슬에 결박된 여생을 보내다 감옥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하나님을 거역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가서 겸손한 마음으로 멍에를 메었습니다. 물론 그도 그전에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 때문에 삼십칠 년 동안 감옥에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께서 건져주시고 후대해주시어 죄수의 의복을 벗겨주셨습니다. 그리고 일평생 쓸 것을 바벨론 왕으로 주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형통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시려고 여호야긴의 일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시드기야 왕의 일과 여호야긴 왕의 일을 보면 낮아질 때는 낮아져야 하고, 멍에를 메라고 하실 때에는 멍에를 메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멍에를 메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멍에를 메야 살 길이 생깁니다. 또 여호야긴이 삼십 칠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 것은 우상을 섬기고 부친을 따라 하나님 앞에 지은 죄 값을 치른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메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낮아지는 것 같아도, 죽는 것 같아도, 그것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길입니다.
메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면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낮아지는 것 같아도, 죽는 것 같아도, 그것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고 나가야 함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 멍에를 잘 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메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잘된다고 나가도 실은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멍에를 메라고 하실 때에는 멍에를 메고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멍에를 메야만 살 길이 생깁니다. 윗사람을 섬기라고 하실 때에 섬기고, 왕을 섬기라고 하실 때에 섬겨야 합니다. 자주 독립하는 것만 좋은 것이 아닙니다. 바벨론 왕을 섬기는 것은 자주 독립하는 것이 아니고 남의 나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섬기라고 하실 때에는 섬기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멍에를 메지 않고 끝까지 나가던 시드기야 왕의 결과는 비참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멍에를 메는 순종이 언제나 모든 면에서 유익한 것만은 아닙니다. 인간적인 면으로는 손해도 많고, 머리를 숙여야 할 때도 많고, 낮아지고 멸시와 천대를 받는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멍에를 잘 메야 하나님께서 앞 길을 열어주십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
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메지 않으면 결과는 다 망하는 것입니다. 자기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아랫사람, 가족, 성전까지 다 망하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고 나가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또 진리에 대해서도 절대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생명을 내어놓고
진리를 지켜야 합니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갔지만 왕이 먹는 진미를
먹지 않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작정하며 생명을 내어놓고 진리를 지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니엘을 특별히 보호해주시고 높여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진리를 양보하지 말고, 신앙 양심도 양보하지
말고, 생명을 내놓고 지켜야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메어주신 멍에를 잘 메고, 또 잘 감당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야 하겠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면 죄 값을 반드시
치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합니다. 죄는 벌벌 떨며 멀리 떠나고,
하나님의 말씀은 순종하며, 하나님께 메어주신 멍에는 자원하여 잘 메고
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