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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2일 수요일

빌립보서 3:12-17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라.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라
빌립보서 3:12-17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3:12 내가 이미 붙잡았다거나 이미 온전해진 것이 아니므로 오직 내가 그리스도께 붙잡혔기 때문에 나 또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간다. 

3:13 형제들아, 나는 나 자신이 잡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붙잡고자 하여, 

3:14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위로부터 부르신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 

3:15 누구든지 온전한 자들은 이렇게 생각하자. 너희가 무언가 다르게 생각한다면, 이것 또한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나타내실 것이다. 

3:16 오직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을 좇아가도록 하자.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는 자들이 되어라. 또 너희가 우리를 본 받는 것처럼 그렇게 행하는 자들을 주목하여라. 


1. 예수께 붙들리어 달음질하라
본문 12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이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또 ‘어느 정도 온전해졌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아야 됩니다. 그것은 이미 교만한 자이고, 교만한 자는 이미 넘어진 자입니다. ‘얻었다’, ‘이루었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또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했는데, 이것은 또한 이루지 못했다고만 밤낮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도 아니며, 또 ‘이루지 못했다 함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겁니다. 

그리고 된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하였습니다. ‘잡힌 바 된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잡으셨다는 것입니다. 나는 잡힌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잡힌 바 됐는데, 잡힌 바 된 것은 예수님이 나를 붙잡으셨고 우리는 잡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붙잡으신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향해서 끌고 가시는데, 나도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야 됩니다. 우리가 언제나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으신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중생한 영혼을 주셨고, 또 예수님은 우리를 붙잡으시고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목표를 향해서, 목적을 향해서 끌고 가십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또 심령에 매인 바 되었다는 것에 대해서 사도행전 20장 22절에,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심령에 매인 바가 되서 예루살렘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매였다는 것은 붙잡히었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
다. ‘예수님께 붙잡혀 예루살렘으로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환난과 결박이 기다려도 올라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를 붙잡아 인도하셔서 가실 때에 가만있지 말고 나도 그걸 붙잡으려고 좇아가야 된단 말입니다. 이제 그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붙잡으셨다는 말입니다. 붙잡으셔서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가자!” 하고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나도 갑시다! 같이 가요” 그러면 됩니다. 붙잡아서 끌고 가는데 안 가려고 하면 그 다음엔 매나 얻어맞고 별 수 없습니다. 

붙잡아서 저 목적지를 향해서 끌고 간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끌고 가실 때, “예수님 갑시다!” 그러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붙잡으셔서 끌고 가는데, 빨리 따라오니까 얼마나 참 좋아하시겠습니까? 자기도 발자국을 떼야 됩니다. 발자국 안 떼고 매달려 놓으면 그것은 곤란합니다. 매나 얻어맞고 그 다음엔 예수님 붙들고 갈 수가 없습니다. 매달리는 거 어떻게 붙들고 가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를 붙들고 예수님이 늘 끌고 가십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어’라고 하였는데, 심령을 붙들고 끌고 가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쓰려고 끌고 갈 때에 “나도 거기로 가겠습니다” 해야지 “난 저리로 가겠습니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끌고 가시는 데로 가야지 “아, 나는 그리로 안 갑니다. 저리로 갑니다. 나는 니느웨 안 갑니다. 다시스로 갑니다.”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라” 할 때에, “예! 갑시다” 하고 갔으면 고기 뱃속에 안 들어갈 거 아닙니까? 그것을 왜 다시스로 가겠다고 뒤로 꽁무니 빼다가 환난만 만나고 그거 참 얼마나 고통 많이 당했습니까? 또 다른 사람도 얼마나 고통 많이 당했습니까? 한 배에 탄 사람들, 다 죽을 뻔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붙들고 끌고 가는 데로 어디든지 나는 가겠습니다. 환난과 결박이 기다려도 나도 갑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올라갑니다” 하고 바울이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진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에 많이 참여할 수가 있었습니다.

언제든지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됩니다. 신앙 양심을 깊이 살펴보아야 됩니다. 주께서 나를 붙들고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그것을 잘 발견하여 그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안 따라가면 안됩니다. 안 따라가면 무용지물이 됩니다. 주님은 끌고 가서 저기서 쓰려고 하시는데, 안 따라가니까 그 다음엔 무용지물입니다. 못 쓰게 됩니다. 그러니까 무용지물 되지 말고, 주님이 붙들고 끌고 가는 데로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끌고 가는지 안 가는지 모르겠으면 기도를 많이 하고, 회개하고, 특별히 고집을 회개하고, 교만을 회개하고 자기 자신이 깨져나가고, 빈 마음이 되도록 기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반드시 주의 인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의 인도를 발견할 때, 그 인도를 따라가면 됩니다. 따라가면 하나님이 만능으로 태산을 넘게 만들고, 홍해를 가르고, 강을 건너게 만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기 도달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심령에 매인 바 되어 끌고 가는데 “난 안갑니다. 돈 좀 벌고 가겠습니다”, “또 부친 작별하고 가겠습니다”, 또 한 사람은 “가족을 작별하고 오겠습니다”, 또 “고난 많이 받으면 난 원치 않습니다”고 합니다. 또, 예수님이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 없다”고 하니까, “나는 고난 너무 많이 받으면 못 견딥니다. 몸이 약합니다”하고 꽁무니 빼면 그건 하늘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저 가야 합니다. 당나귀 쓰시겠다 하면, 내놔라 하면, 당나귀 내놓는 것이고, 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내놔라 하면 내놓는 것이고,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다락방 내놔라 하면 내놓는 것입니다. 누가 다락방 내놨지요? 마가 요한입니다. 그것 다락방 얼마나 가치가 있게 썼습니까? 그거 안 내놨으면 뭘 하겠습니까? 안 내놨으면 다 없어졌을 것인데 내놨기 때문에 하늘나라에 기억한 바가 되고 영원히 그 다락방이 가치 있는 다락방이 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붙들고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나는 좇아가노라’ 좇아가는 것뿐입니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얻었다 해도 안 되고 이루었다 해도 안 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으셨고 끌고 가시잖습니까? 나도 그것을 붙잡으려고 따라가란 말입니다. 같이 따라가란 말입니다. 그러면 됩니다. 그러면 가기가 쉽습니다. 주님이 붙들고 끌고 가시면, 나는 발자국만 슬슬 들었다 놨다 하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제가 6.25때 이북에서 피난 나올 때 청천강을 건너는데 물이 허리에 거의 올라왔습니다. 피난민이 많이 그리로 오는데 어떤 영감님 한 분이 짐짝에다 어린아이를 올려놓고 건너오다가 중간에 강물에 넘어졌습니다. 영감이 자기 혼자 몸으로도 물살이 센데, 거기다가 또 짐 지고 어린아이까지 놨으니 넘어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붙잡아줬습니다. 붙잡으니까 “아, 선생님 살려 주세요, 선생님 살려 주세요” 그럽니다. 붙잡아서 일으켜줬습니다. 붙들고 나가자고 하니까 “아, 선생님 살려 주세요”하며, 발자국 뗄 때마다 “선생님 살려 주세요, 선생님 살려주세요”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생님이라니요, 하나님이 살려주시지 내가 어떻게 살려주겠습니까?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영감이 “하나님 살려주세요, 하나님 살려주세요”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영감님 끌고 나왔는데 이 영감님은 다리만 슬
슬 들었다 놨다 하면 거저 오는 것입니다. 뭐 다리 하나 올리기만 하면 거저 오는 것입니다. 내가 끌고 가니까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강을 쉽게 건넜습니다. 영감이 넘어져서 물에 빠져 죽을 것도, 붙잡고 가니까 발자국만 뗐다 놨다 하면서 거저 가는데,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 붙잡고 가는 것은 그보다 더 확실할 것 아닙니까? 

예수님 붙잡고 가는 것은, 발자국 한 번 뗐다 놓으면 벌써 두 발자국 세 발자국 가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가는 게 아니고 그거 붙잡은 사람의 힘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예수님의 힘으로 우리도 “나도 갑시다” 하고 예수님과 같이 가면 그저 슬슬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힘이 안 듭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힘들지 않다고 했죠? 주와 같이 길 가는 것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떡하면 힘이 들겠습니까? 반대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힘듭니다. 예수님이 이리로 끌고, 난 저리로 가려니까 예수님하고 싸우는 것입니다. 누가 힘이 세겠습니까? 예수님이 힘이 세실 건데 그것은 죽을 고생당합니다. 예수님이 끌고 가시는 데로 안가고, 반대방향으로 가다가는 그것은 죽을 고난을 당하고 결국엔 실패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쉽고, 못 믿으려면 아주 힘듭니다. ‘아, 예수님 믿기 힘들어서 못 믿겠다고’고 합니다. 이것은 억지 쓰는 것입니다. 붙들려 가는 게 얼마나 쉬운 건데, 제가 하려고 힘을 쓰니까, 그만 힘들어서 못하는 것입니다.
순종해야 됩니다. 붙들리어 끌고 가는 데로 순종하면 그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아주 쉬운 길입니다.

2.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달음질하라

본문 13-14절에,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고 말씀했는데, 뒤에 있는 것은 잊어 버려야 됩니다.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면 달음박질 하지 못합니다. 뒤에 있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제대로 달음박질 하겠습니까?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려야 된다는 것입니다. ‘과거는 묻지 마세요’ 라는 말 있지 않습니까? 과거의 것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것 생각하면, 못한 것 생각하면 낙심이 나고 잘한 거 생각하면 교만해집니다.
과거 것은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세상 것입니다. 세상 것은 다 뒤에 있는 것이고 앞에 있는 것은 예수님 한 분 밖엔 없습니다. 예수님 한 분만 앞에 있고 세상 것은 다 뒤에다 돌려 세워놓아야 됩니다. 과거에는 세상을 앞에다 두고 예수님을 뒤에다 두고 살았는데, 이제 돌이킨단 말입니다. 돌이키니까 예수님만 앞에 있고 다 뒤에 있게 됩니다. 세상 것은 다 잊어버리고 하나님께 맡기고 이젠 앞에 있는 푯대, 즉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향해서 달음박질 합니다. 그래야 달음박질 잘 할 수 있습니다. 

롯의 처는 돌아서긴 돌아섰지만 뒤에 있는 것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음이 가 있다가 도로 뒤를 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됐습니다. 뒤에 있는 것 다 이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잊어버리고 ‘내가 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해서 달음박질 하는 거 하나다’ 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염려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하나님이 세상에 냈으니까 먹을 것도 같이 내셨을 거고, 또 제 밥 먹고 살지 어머니 밥 먹고 사는 것 아닙니다. 아이들이 밥 달라고 할 때에 ‘어머니 밥’을 달라고 합니까? ‘아버지 밥’ 달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내 밥’ 달라고 합니다. 아이들은 자기 밥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당당히 ‘내 밥’을 달라는 것입니다. 세살짜리 아이도 자기 밥 먹고 살지, 부모가 준 밥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다 자기 밥 먹고 살 건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냈으니까 하나님이 그 아이를 기를 책임이 있습니까.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내놓고 죽이려고 냈겠습니까? 사람이 소 사다놓고 죽이려고 사다 놨겠습니까? 소 사다놓고 먹을 것 안 주고 죽이면 그것은 얼마나 미련한 일입니까? 하나님은 지혜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내놓은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다 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은 다 하나님께 맡기고,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향해서 달려가라는 말입니다. 뒤에서 붙잡으려고 해도 붙잡히지 말고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붙잡으려고 할 때에붙잡히면 안 됩니다. 또 혼자 달려가야지 다른 거 붙잡고 달려가려면 못 달아납니다. 이것도 좀 붙잡고, 또 저것도 붙잡고 하면 뒤에서 매달려서 못 갑니다. 다른 거 붙잡지 말고 “난 달려갈 거니까 넌 따라오너라” 해야 합니다. 안 따라오면 관두라고 하고, “난 달려간다” 하고 달아나는 것입니다. 안 따라오던 것이 이제는 뒤에 자빠져서 한참 바라보니까, 앞서 가던 사람이 벌써 저 만치 갔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도 가야 되겠다. 이제 안 되겠다’ 하고 부슬부슬 의복을 입고 그냥 따라오는 것입니다. 롯의 처가 롯이 환난 받을 때 뒤에서 매달렸죠? 뒤로 나가 자빠졌습니다. 그래도 롯이 롯의 처 때문에 달음박질 잘못했습니까? 그것은 문제없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간다”하고 달음박질 계속 해나가니까 롯의 처가 생각하기를 과부가 되겠으니까 따라왔습니다. 모든 것이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 뒤에다 세워놓고 하나님께 맡기고 달아나면 뒤로 전부 따라옵니다. 재산도 따라오고 가족도 따라오고 자녀도 따라오고 다 따라옵니다. 뒤로 많이 따라옵니다. 세상이 다 따라옵니다. 달음박질 하는 사람, 예수님만 바라보고 달음박질 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게 다 따라옵니다. 그런데 따라오는 게 좋다고 해서 돌아서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면 또 달아납니다. “아, 이게 다 내 뒤를 따라 온 거다, 가자 우리 같이 살자” 하고 붙잡으려고 돌아서면 한 발자국 뒤로 달아납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한 발자국 달아나고 두 발자국 달아납니다. 많이 따라올 때에 “아, 이젠 이만큼 따라왔으니까 이제 붙잡아가지고 살아야 되겠다, 잘 살아야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돈도 많이 따라와서 “아, 이제 돈 가지고 좀 잘 살아야 되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또 다른 것들이 많이 따라오니까 “아, 이거 가지고 잘 살아야 되겠다”고 하고 그것을 돌아서서 붙잡으려고 하면 그것들이 달아난단 말입니다. 한 발자국 달아난 것을 잡으려고 한 발자국 따라가면 두 발자국 도망치고, 두 발자국 따라가면 네 발자국 도망치고, 네 발자국 따라가면 여덟 발자국 도망치고, 여덟 발자국 따라가면 열여섯 발자국 도망칩니다. 따라가서는 절대 못 잡습니다. 그것을 잡는 법은 예수님만 향해서 달음박질하면 이것들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계속 주님만 향해서 뒤에 있는 것 다 잊어버리고 달음박질하면 다 따라옵니다. 그 다음엔 어떻게 잡아야 할까? 뒤로 그것을 바라보지 말고 뒤로 손을 내밀어서 하나씩 잡아다 먹어야 됩니다. 그래야지 돌아보면 다 잃어버립니다. 뒤를 보지 말고 뒤로 모두 따라왔으니까 예수님만
향해서 달음박질하면서 뒤로 손 내밀어서 하나 잡아 먹고, 또 이거 하나 잡아먹고 또 하나 잡아먹고 이렇게 하면 세상 것 다 잡아가져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아주 아름답습니다. 달아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달음박질하기만 하면 다 따라옵니다. 이것이 달음박질하는 자세입니다. 잡은 줄로 여기면 달음박질 하지 못합니다. 벌써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지게 됩니다.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지게 되고 언제나 자기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아야 됩니다. 

3.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라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 한다’는 것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대만을 향해서 달음박질하는 것입니다.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해서 거기에 도달하기를 달음박질하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얻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에 참여하려고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그게 목표입니다.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좀 더 알고, 알기 위해서 달음박질 한다는 말입니다. 좀 더 얻으려고 달음박질 하는 것, 일심정력한다는 말입니다. 좀 더 그 안에서 발견되려고 달음박질 하는 것, 그 다음엔 좀 더 부활의 권능에 참여하려고 달음박질하는, 이것이 목표가 돼야 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달음박질의 목표라는 것, 푯대라는 것, 거기에 도달하려고 달음박질을 계속 해나간단 말입니다. 

4.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음질하라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는 것은 상을 받는 것입니다. 달음박질을 잘한 사람은 상이 많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박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상을 얻는 자는 하나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상을 얻는 자가 하나라는 것은 금메달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상을 얻기 위해서 달음박질하라는 것입니다. 최고의 상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만 위하여 달음박질해야 합니다. 상은 하나인데 예수 그리스도 하나 얻으려고 계속 달음박질을 해나가야 됩니다. 

5.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것 다 벗어버리고 달음질하라
 
히브리서 12장 1-2절에,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했는데 모든 무거운 것, 얽매이기 쉬운 것 다 벗어버려야만 달음박질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가지고 달음박질하려면 못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온전히 다 벗어버려야만 달음박질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 무거운 것도 벗어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무거운 것이 무엇인가? 무거운 것이라 한 거 보니까 죄는 아닙니다. 얽매이기 쉬운 무거운 것은, 뒤에 매달
리는 것인데, 자기가 짐을 지고 가는 게 무거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을 자기가 짐 지고 가려고 하지 말고, 그 짐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짐은 하나님께 맡기고 달음박질하야만, 달음박질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자기가 지고 가려면 그건 무거워서 달음박질을 하지 못합니다. 다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자기가 하겠다는 것, 자기가 하려고 하는 것, 자기가 뭘 하는 일들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목표로 하고 달음박질만 계속 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 너희 모든 짐을 다 맡기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나아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지고 가는 것들, 다 예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예수님, 맡깁니다”하고 맡기십시오. 가족도 맡기고, 자기가 하는 사업도 맡기고, 교회도 맡기고, 다 맡겨놓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자기는 달음박질만 하는 것입니다. 그거 맡겨놓으면 하나님이 잘 해주십니다. 자기가 해놓은 것보다 더 잘해주십니다. 자기가 하려면 잘 안 됩니다. 내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의 내 짐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걸어나가는 것입니다. 내일 일 그것은 모릅니다. 내일 일은 알 수 없는 것이고, 하나님만 아시는 것이고, 오늘에 내가 달음박질 하는 것만 하는 것입니다. ‘내일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하나님이 아실 것입니다.
또 ‘장래에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도 하나님이 아실 것이고, 그것도 다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오늘 내가 최선을 다해서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짐 맡겨놓고 최선을 다하면, 제일 좋은 걸로 골라서 반드시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유익된 것이니까, 감사하게 받고 달음박질 하는 것만 계속 하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서 달음박질 하는 것입니다. 죄는 회개하고, 내가 지고 나가야 할 무거운 짐도 하나님께 맡기고, 하루하루를 달음박질 하는 신앙을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를 좀 더 알고, 좀 더 얻고, 그 안에서 좀 더 발견되고, 그를 좀 더 닮아가고, 그것을 목표로 해서 달음박질 해 나갑니다. 그러면 달음박질 하는 데 따라서 이제 하나님 앞에 가면 상 주십니다. 하나님이 상급을 주시는데 많이 예수님을 닮아온 사람은 상급이 많고, 달음박질 많이 한 사람은 상급이 큽니다. 하지 못한 사람은 상급이 없고 조금한 사람은 상급이 적습니다. 달음박질 하는 데에 따라 상급이 정해집니다. 그러므로 달음박질을 잘 해야 되겠습니다. 

6. 전심전력하여 달음질하라

그런데 자기의 모든 힘을 다 기울여서 달음박질해야 됩니다. 달음박질을 할 때에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모든 것을 기울이고 달음박질해야 됩니다. 전심전력, 자기에게 있는 모든 힘, 모든 마음,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하고, 또 주의 명령대로 달음박질해야 됩니다. ‘푯대를 향해서 나가는데 주의 명령대로 달음박질해야 된다’고 했는데, 자기에게 있는 힘을 다 기울여서 해야 됩니다. 

자기에게 있는 힘 얼마나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힘이라 하면 우리가 힘쓸 수 있는 것, 손으로 힘쓸 수 있는 것, 또 다리로 힘쓸 수 있는 것, 그것도 우리에게 있는 힘입니다. 이렇게 힘쓸 수 있는 기간에 달음박질 잘하라는 말입니다. 이제 좀 있으면 그 힘 다 쇠해질 날이 옵니다. 누구든지. 힘이 쇠해지기 전에 그 힘을 가지고 믿음의 달음박질을 잘 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 또 무슨 힘이 있습니까? 경제적 힘, 하나님이 자기에게 경제적 힘을 주셨는데 그 힘을 다 기울여서 달음박질해야 됩니다. 그 있는 힘을 기울여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일을 충성되이 해 나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라’ 하는 명령을 따라서 내게 있는 힘, 이 몸의 힘, 또 마음의 힘, 경제적인 힘, 하나님이 준 힘, 그것을 다 기울여서 하나님의 복음 운동에 많이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달음박질하는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기주의로, 자기중심으로 하지 말고, 자기는 다 죽어지고 예수님만 위하는 정신, 또 자기 개교회 위주로 나가지 말고 개교회를 초월해서 하나님의 일에 전부 협력해서, 선교사업이나 복음사업에 모든 것을 다 기울여서 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달음박질 많이 할 수 있습니다. 

7. 자기의 환경을 다 이용하여 달음질하라

또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환경, 그것도 자기 힘입니다. 이용할 수 있는 환경도 다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달려갈 길을 가는 것입니다. 달려갈 길 간다는 것에 대해서 바울이 자기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명, 모두를 위해서 복음 전파하는 사명, 이것이 달려갈 길인데 이것을 위해서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자기 환경을 다 이용해야 되겠습니다. 이용할 수 있는 것을 다 이용해서 달려갈 길을 가야 됩니다. 이제 좀 있으면 그것은 다 없어집니다. 그것이 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힘이 있을 때 그것을 써야합니다. 그것 가지고 달음박질 해야지, 달려갈 길을 가야지 가만 둬두면 다 없어집니다. 동록이 슬고 좀이 먹고 도적질해가고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있을 때에 이 달려갈 길에 사용을 해야 되겠습니다. 안 쓰고 달려갈 길 가지 아니하다가 얼마쯤 둬두고 몇 십년 지나가면 다 없어집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 보면 달려갈 길 제대로 못하고 나이만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제 달려갈 수 없습니다. 나이 많은데 어떻게 달려가겠습니까? 또 이용할 수 있는 환경 다 잃어버렸고 돈 좀 있던 것도 다 없어졌는데 무엇을 이용하겠습니까? 그래도 입으로만 큰소리 쾅쾅 치고 앉아있는 사람이 있는데, 입으로 암만 큰소리치면 무슨 소용입니까? 나이가 많으니까 별로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또 뒤에서 누구 받들어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달려갈 길을 가는데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그 힘을 다 이용해서 가야 합니다. 그러면 힘 있게 달음박질 잘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 몇이 있는데 아들들을 다 이용해서 하나님의 일, 달려갈 길 갈 수 있습니다. 아들들이 재산 좀 있으면 “돈 좀 내라”고 해서 달려갈 길, 하나님 일 하는데 다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용할 수 있고 어머니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또 교단 이용해서 그 교단의 힘을 또 뒤에서 배경으로 해서 갈 수 있고, 선교사 가는 것도 여러 것을 다 이용할 수 있는 대로 이용을 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하나님이 주신 재산도 이용하고, 또 자녀들도 이용을 하고, 자녀들 재산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해서 달려갈 길 좀 더 많이 하고 하나님께 가야만 상급이 큽니다. 달려갈 길 많이 가고 하나님께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좀 더 가면, 좀 더 있으면 못 갑니다. 그러니까 힘이 없어지기 전에, 자기가 힘이 있을 때에 하라는 말입니다. 달음박질, 달려갈 길을 달려가라는 말입니다. 시간 다 가면 다 끝나는 겁니다. 시간이 남아 있을 때 달려갈 길 부지런히 달려가라는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 좋은 환경 주셨을 때 그 환경을 이용하라는 것입니다. 환경 이용해서 달려가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 혼자 하려면 못합니다. 뒤에서 밀어주는 사람,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혼자서 얼마나 하겠습니까? 혼자 하겠다는 어떤 사람이 하나 있는데, 혼자서 중국선교를 하겠다고 합니다. 혼자서 선교하면 얼마나 하겠습니까? 도와주는 사람, 배경이 없는데 무슨 힘으로 하겠습니까? 돈도 없고, 나이도 많은데, 혼자서 얼마나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자기가 이용할 수 있는 환경, 그것도 자기 힘입니다. 그것을 다 이용해서 달려갈 길 많이 가고 하나님께 가면 이제 면류관 상급이 큽니다. 바울이 ‘내가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하나님께 가면 면류관이 있다’ 안 그랬습니까? 얼마나 면류관을 받겠느냐? 달려갈 길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고 하나라도 더 하고 가십시오. 가만 앉아있지 말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용할 수 있는 대로 다 이용하십시오. 작은 아들, 큰 아들, 딸 할 것 없이 다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용해서 달려갈 길 가자!”하는 것입니다. 이제 하늘나라 가서 면류관 받을 때, 도와준 사람도 같이 참여하는 것입니다. 상급을 나누어 줍니다. 교단 배경, 또 자기 자녀들 배경, 자기 있는 현재 재산 배경, 많지 않습니까? 그것 다 자기 힘인데 이용할 수 있는 것 다 이용해서 하늘에 가면 쑥 올라가는 것입니다. 달려갈 길을 더 많이 가면 면류관 상급이 더 커지는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 

누가 얼마나 더 달려갈 길 가겠느냐가 문제입니다. 교인들도 앞에서 복음 전하는 일하는 사람들, 선교하러 나가는 선교사 등을 도와주는 것도 달려갈 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렇게 여러 면으로 개인이 달려갈 길 달려가고, 교회적으로 달려가고, 또 복음 전도하는 데 도와주고, 선교를 도와주고, 여러 면으로 우리가 달려갈 길을 힘 있게 달려가야 됩니다. 그러면 이제 면류관 상급이 있습니다. 면류관 상급을 받을 때까지 계속 달음박질 합시다. 뛰는 마라톤 선수들 보니까 계속 뛰다가 마지막 금메달을 땁니다. 결승선에 도달하기까지 계속 뛰다가 결승지점에 가서는 푹 넘어지는 것입니다. 죽을 힘 다 쓰는 것입니다. 우리도 계속 달리다가 그 마지막 선에 가서는 팍 넘어지는 것입니다. “죽을 힘을 다 썼으니 이젠 죽습니다. 쓰러집니다” 합시다. 계속 달리다가 거기 그 마지막 선에 가서 쓰러지면 그 다음엔 금메달입니다. 금메달 상급인 것입니다. 상급을 하나님이 주시니 참 좋을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면류관이고 썩지 아니할 것입니다. 세상 면류관은 썩는 것인데, 우린 썩지 않을 것, 영원한 것, 금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영원한 면류관을 우리에게 줍니다. 

8. 깨닫게 해 주실 것을 믿고 달음질하라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얻었다 함도 아니다’ 하고 푯대를 향해서 달음박질만 해야지 온전히 이루었다고 하고 거기서 머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옳다,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바울과 같이 생각하라’ 그것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 잡으라고 달음박질해야 옳다는 것입니다.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했는데,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되고 자기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하면 그래도 달음박질만 하면 하나님이 이것을 깨닫게 해 주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안 맞는다고 해서 반대하지 말고, 내가 지금 이게 안 맞아도 달음박질만 계속하면,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자라나지를 못해서 모르니까 현재 자기가 안 맞는다고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 도달한 정도에 따라서 깨달음이 다릅니다. 1 계단짜리가, 2계단 하려하니까 안 맞습니다. 2계단짜리가 5계단을 하려 하면 안 맞습니다. 그것이 잘 이해가 안 될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얼마동안 배워서, 자라나보면 그게 맞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세 살 난 아이에게 결혼생활 하는 것을 아무리 가르쳐줘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자라나야 아는 게 있다고 했습니다. 자라나지 못해서 안됐다, 못됐다 하면서 괜히 불평하면 자기만 손해납니다. 안 맞아도 그대로 순종하고 계속 달음박질만 하면 좀 있으면 알아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달리 생각하는 것이 있어도 계속 달음박질만 하면 하나님이 다 알게 해준다는 겁니다. 좀 있으면 깨닫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고 했습니다. 순종하면서 달음박질 하는데 왜 안 알아주겠습니까? 

9. 계속하여 달음질하라

16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그대로 행할 것이라”가 무슨 말입니까? 달음박질 하라는 겁니다.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뭐 조금 간 사람, 좀 많이 간 사람, 좀 더 많이 간 사람, 천층만층 있는데 거기서부터 계속 그대로 달음박질을 계속 하라는 겁니다. 많이 간 사람은 거기서 달음박질하고, 중간 간 사람은 거기서부터 달음박질하고, 처음에 출발하는 사람은 거기서부터 달음박질하고, 3분지 1 간 사람은 거기서부터 달음박질하고, 현재 자기가 어디까지 이르렀던지 거기서 계속 달음박질하면 됩니다. 뭐 나는 많이 왔다, 적게 왔다, 앉았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제 언제 가느냐? 아 이제 갈 길이 지금 먼데 내가 언제 거길 가겠느냐’ 하지 말고,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그저 계속 달음박질하면 도달할 날이 올 것을 믿고 달음질하는 것입니다. 또 거의 다 갔다고 해도, 거의 다 가서 맥 놓으면 뒤떨어집니다. 많이 간 사람이 많이 갔다고 맥 놓으면 그만 뚝 떨어지고 맙니다. 갈 길이 아무리 멀어도 계속 달음박질 하다보면 도달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탓하지 말고, 또 많이 가도 교만하지 말고, 방종하지 말고, 또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 갔다 해도, 이제 출발한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가면 언젠가는 도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거기서부터 가라는 것입니다. 뒤떨어졌다, 앞서 갔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0. 성경 말씀대로 달음질하라
17절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라” 

고린도전서 4장 6절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고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자는 것입니다. 

바울이 나와 아볼로를 본받으라는 말은 기록한 말씀 밖에 더하지 말라, 즉 성경 말씀대로만 하는 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더 나아가지도 말고, 성경보다 덜 나아가지도 말고. 성경대로만 하는 것을 바울에게서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경대로만 하는 것을 본받아야 된다는 말입니다. 바울이라는 인격을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고, 성경대로 하는 그것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성경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 성경말씀에서 덜 나가지 않은 것도 본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이 사는 것입니다. 성경보다 더 나가도 안 되고, 덜 나가도 안 됩니다. 성경대로 하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성경을 지키면서 믿는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지켜야 합니다. 

성경 지키는데 뭐부터 지키라 했습니까? 주일 지키는 것부터 하고, 십일조 드리는 것부터 하고, 우상의 제물 먹지 않는 것부터 지키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주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바울에게서 뭘 배워야 하냐면, 성경 지키는 것을 배워야 하는데, 주일 지키는 것부터 배워야 합니다. 주일 지켜야 합니다. 주일에 뭘 사고팔고 예배드리고 나서 주일에 뭘 사도 안 됩니다. 또 주일에 결혼식에 가도 안 됩니다. 주일은 하루 종일 하나님의 날이기 때문에 이 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이 날에 뭘 사고파는 것은 죄입니다. 또 결혼식 가는 것도 다 죄입니다. 아예 생명 내놓고 주일날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십일조 드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일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구약성경에만 있는 것이라고 어떤 사람이 그러는데, 마태복음 23장23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라는 건, 의와 인과 신이고, 저것도 버리지 말라는 건, 십일조 하는 것을 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십일조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일조 하라고 했는데, 십일조 안하는 건 성경대로 믿지 못하는 증거입니다. 성경대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상의 제물을 먹지 말아야 합니다. 제사 음식을 먹으면 안 됩니다. 제사 하러 다니는 사람은 죄 짓는 것입니다. 제사 하러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큰 집에서 제사한다 해도 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제사 음식 먹으면 안 됩니다. 상갓집의 것은 제사 놓지 않았던 것만 먹으면 됩니다. 제사하기 위해서 차린 것은 전부 다 제물입니다. 제사 전에 먹어도 제물입니다. 명절날 제사하기 위해서 차린 것은 전부다 제물입니다. 

우리가 성경대로 믿는 것을 배워야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가지 지은 죄 있죠? 거기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뭐죠? 우상 섬기고, 간음하고, 하나님을 시험하고, 원망하고. 그 4가지 하다가 망했습니다. 4가지 죄 가운데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은 애굽에서 모두 다 나왔지만 광야에서 다 쓰러졌습니다. 그러니까 우상섬기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하나님 시험하지 말고, 원망하지 않아야 됩니다. 성경대로 믿는 것을 바울에게서 본받아서 우리가 성경대로 믿어야 되겠습니다.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라’는 것은 성경대로 믿는 자들을 보라는 말입니다. 성경대로 믿는 사람이 나타나야 되고, 그 사람을 보고 또 다른 사람이 따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