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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3일 화요일

요한복음 5:1-16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
요한복음 5:1-16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2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 소망을 가져라
본문 1절에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고 하였습니다. 명절은 무슨 명절인지 밝히지는 않았는데, 아마 유월절이나 나팔절인 것 같습니다. 

본문 2절에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양문이라 하는 문이 있는데, 이따금 물이 솟아 올라오다가 또 그쳤다가 또 얼마 후에 또 다시 솟아 올라오다가 그치는 간헐천입니다. 그 못에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이 동하는데, 물이 동할 때에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다 낫는다는 전설이 내려왔습니다. 

우리 한국에도 이런 샘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몬타나주에 올드 페이쓰풀이라는 곳에 솟아올라오는 샘이 있는데 두 시간만에 물이 한번씩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물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물이 갑자기 솟아 올라오는데 높이는 한 10m 이상 올라가는 것 같고, 그 둘레는 한 2-3m되는 굵은 것이 한 10m 높이로 한참 올라가다 그치고 또 두 시간 있다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운물입니다. 여기도 그와 비슷한 샘인 것 같습니다. 

본문 5절에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거기에 여러 병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사람, 38년 된 병자 등이 병을 고치려고 그 가운데 와 있었습니다. 

본문 6절에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환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 병이 오랜 줄 다 아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낫고자 하느냐?란 이 말씀은 소망을 가져라,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이 낫고자 하느냐? 하실 때에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38년 동안이나 앓으면서 여러 곳에 약이란 약은 많이 썼을 것이고, 병원에도 많이 갔을 것이고 의원도 많이 찾아가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병이 못 나았기 때문에 최후에 이 베데스다 못에 와서 한번 고치려고 하는데, 여기도 형편상 자기가 먼저 내려가야 되겠는데, 조금 아픈 사람이 먼저 후덕덕 뛰어 들어가므로 여기에 와서도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뜻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 있는 곳에서 와서도 38년 된 병자는 자비를 받지 못했습니다. 못 이름도 자비의 집이라는 못인데, 여기에 와서도 자비를 받지 못하고 절망 속에 빠졌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자비를 준다고 간판을 내걸었어도 자비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아픈 사람이 나중 들어가고, 많이 아픈 사람이 먼저 들어가야 되겠는데, 여기에서도 생존 경쟁이 있습니다. 이름만 자비이지 사실은 자비가 아닙니다. 정작, 먼저 들어가야 할 사람이 못
들어갔습니다. 세상은 다 이와 같습니다. ‘자비의 집이다’라고 간판은 갖다놓고 있지만, 실지로 거기에 가보면 자비의 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기에도 불공평하고, 거기에도 안받을 사람이 먼저 받는 실망을 주는 그런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여러 가지 자비를 베푸는 기관들이 많이 있지만, 거기에도 가보면 실지는 받을 사람이 못 받고, 못 받을 사람이 받는 이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래서 이 환자는 더욱 더 이 자비의 집에 와서 절망 속에 빠진 것입니다. 

2. 일어나라

본문 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일어나라 할 때에 일어나면 됩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할 때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면 됩니다. 

본문 9절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일어나라 할 때 일어나니 일어났습니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니 자리를 들고 걸어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는 자기가 병석에 누워 있던 자리입니다. 일어날 수 없는 형편입니다. 또 38년 동안이나 병이 났는데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습니까? 또 오랫동안 병을 앓았기 때문에 다리가 다 가늘어졌을 것이고, 또 관절이 다 뻣뻣해졌을 것입니다. 일어나 선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실 때에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못 일어납니다’ 그랬을 것입니다. ‘내 사정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내가 38년 동안이나 앓았는데 어떻게 일어나겠습니까? 일어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에 있습니다’라고 보통 사람은 이렇게 말했겠는데, 그렇게 말했으면 못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모르고 일어나라 그랬겠습니까? 38년 동안 앓으면서, 다리 한번도 쓰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을 예수님이 다 아시고 일어나라고 그랬는데, 자기 사정을 말해야 쓸 데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리를 쓸수 없는 것 다 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알고 일어나라 할 때에 이 사람이 "예”하고 일어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일어나라고 하는데, 못 일어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은 만능입니다. 일어나라 할 때에 못 일어날 것이 없습니다. 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명령은 다 할 수 있습니다. 순종만 하면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38년 병자가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본문 6절에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찾아온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다음에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못에서는 실패했지만, 이제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어라, 그리고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네 병든 상태를 알라는 것입니다. ‘낫고자 하느냐’하는 말은 ‘네가 병든 상태를 알아라’ 또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어라’, ‘나을 수 있는 것을 믿어라’,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뜻입니다.
이것은 38년 된 병자만 아니라 여러 병자에게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무슨 병자가 있습니까?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 등 여러 병자가 많이 모였단 말입니다. 혈기 마른 자는 빼빼 마른 사람입니다. 빼빼 말라서 기운이 하나도 없고, 이제는 건강한 사람으로 돌아가기 힘든 사람입니다. 또 앉은뱅이, 소경, 절름발이, 혈기마른 사람 등 많이 있는데, 이 사람들 전부 예수님을 영접하고, 또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기 병듦을 분명히 알고,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고, 그 다음에 일어나라 할 때에 다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38년 된 병자 보고만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38년 된 병자만 아니고, 여기 있는 사람 전체 보고 너희들 전체 다 일어나라 그럴 때에 일어서면 다 일어 설 수 있습니다. 

누가 일어설 수 있습니까? 소경은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또 절름발이는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혈기 마른사람은 다시 원기 왕성한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일어나라 할 때에 38년 된 병자 보고만 일어나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보고는 한 것이 아닙니다. 38년 병자를 고치신 것은 예수님이 우리 심령의 병을 고쳐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육신의 병은 심령의 병이 나음에 따라서 하나님이 낫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심령의 병에 걸려서 죽은 믿음, 앉은뱅이와 같은 신앙, 절름발이 신앙, 혈기마른 신앙, 38년 된 병자와 같이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서 걸어 다니지 못하는 신앙, 이런 믿음을 다 고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가운데 하나입니다. 소경이 되서 신령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또 신령한 진리도 바라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날 절름발이 신앙은 한 주일엔 보이다가 그 다음 주일엔 보이지 않습니다. 또 새벽기도 하루 나왔다가 그 다음 날에 쏙 들어갑니다. 전도하러 나왔다가 그 다음 주에는 쏙 들어갑니다. 이것이 절름발이 신앙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찾아와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할 때에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고, 네가 나아야 할 자인 줄 알고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나아야 될 자인가, 낫지 않아도 될 자인가 그것부터 알아야 됩니다. 온전한가? 나아야 될 자인가? 무
엇이 하나 부족한 것이 있지 않나? 손이 부족하든지, 다리가 부족하든지, 눈이 부족하든지, 속에 내장이 부족하든지 무엇이 부족한 것이 있지 않나? 이것을 자기 스스로 알고 첫째는, ‘낫고자 하느냐’할 때 낫고자하는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에게 소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을 수 있습니다. 내가 낫고자 합니다. 주님이 나를 고치려고 찾아온 것을 믿습니다’ 하며 믿어야 합니다. 왜 찾아 오셨습니까? 나를 고쳐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병신 노릇하지 않게 만들려고, 강건한 신자가 되어서 달음박질 잘하는 신자가 되게 만들려고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부모 된 입장으로서 아이들이 병신 노릇하는 기뻐하겠습니까? 그것은 부모의 고통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병신 노릇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습니다. 병신 자리에 누워가지고, 침상에 누워서, 발버둥치는 것 하나님이 원치 않습니다. 혈기 말라서 빼빼 말라가지고, 기운이 없어가지고, 죽어 가면서 교회에 나갔다, 들어갔다 하는 것 원치 않습니다. 앉은뱅이도 원치 않습니다. 앉은뱅이 신앙, 그것을 고쳐주시려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려고, 걸어가지 못하는 자를 걸어가게 만들려고, 한 쪽이 부족한 것을 보충시켜 주어서 온전케 만들려고 찾아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고쳐주시려고 찾아왔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무슨 병이 들었습니까?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병이 들렸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무슨 병이 들었습니까? 처음사랑 잃어버린 병입니다. 버가모 교회는 발람과 니골라당을 용납한 병, 두아디라 교회는 이세벨 용납한 병과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 먹는 병, 또 사데 교회는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병, 믿음이 다 죽어있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 첫째이고 그 다음에 자기 병든 것을 아는 것 중요한 것입니다. 무슨 병에 들렸을까? 병에 안들렸습니까? 소아시아 7교회만 해도 병 많지 않습니까? 이세벨 용납한 것, 발람 용납한 것, 니골라당 용납한 것,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것 다 병입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 다 병입니다. 이것을 고쳐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교회도 예수님이 그 병을 고쳐주시러 가신 것입니다. 처음사랑 잃어버렸으므로 찾아라. 또 니골라당, 발람의 교훈 잘못 되었으므로 그것을 이겨라. 또 이세벨 용납한 것 잘못되었으므로 회개하고 거기서 나오라, 살았다 하나 실상은 죽은 사데 교회는, 너희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처음 믿음을 찾아라. 다 고치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가난한 자는 금을 써서 부요하게 하고, 눈먼 자는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고, 벌거벗은 자는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부분을 보이지 않게 하라, 다 고치라는 것입니다. 자기 병든 것, 잘못되는 것, 자기가 온전치 못한 것 등 고칠 수 있습니까? 고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희망이 없습니다. “고칠 수 있다! 고치기를 원한다! 예수님에게 고쳐달라고 기도한다.”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보면 믿음에 덕을 더하라고 하였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덕이 없고, 덕이 있는 사람도 믿음이 없습니다. 지식이 없는 사람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 절제에 인내를 더하여야 합니다. 절제 못하는 사람은 병든 것입니다. 절제 못 해가지고 월급 타서 사흘이면 다 쓰고 돈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절제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몸도 절제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절제 못하는 사람은 늘 피곤해 돌아갑니다. 절제에 인내, 인내에 경건, 경건에 형제우애, 형제우애에 사랑
을 공급하라. 8가지 가운데 자기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아야 됩니다. 

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다 있습니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경건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9가지입니다. 온유해요? 절제하나? 또 사랑이 있어요? 사랑에 있어도 조금 밖에 없는 사람, 또 하나도 없는 사람, 희락 있어요? 화평 있어요? 오래 참아요? 오래 참음, 인내, 자비, 경건은 세상에 물들지 않고 죄에서 멀리 떠나는 것입니다. 자기의 그 병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쳐야 할 바가 뭔지 알아야 됩니다. 고쳐야 될 바를 모르면 안 됩니다. 그것은 희망 없습니다.
베드로후서 1장에 8덕을 말했는데 그 8가지에 비추어서 자기가 고쳐야 될 바가 없습니까? 믿음이 있으면 덕이 없고, 덕이 있으면 믿음이 없고, 절제가 없고, 또 인내가 없고, 오래 참는 것이 없고, 경건이 없고, 형제우애가 없고, 사랑이 없습니다. 갈라디아 5:12-22의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없는 병,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있는 소아시아 7교회 교회들의 병, 또 기도하지 않는 병, 인색한 병,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지 못하는 병, 제물을 우상으로 삼는 병 등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병 가운데 자기가 어떤 병에 걸렸든지 그것을 알아야 됩니다. 어떤 병에 걸려 있느냐? 병이 한 20가지 이상입니다. 이 모든 병 가운데 자기가 어떤 병에 걸렸느냐? 또 영권이 있어야 됩니다. 영권이 없는 것도 병입니다. 혈기마른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전도하지 못하는 병, 전도해도 교회로 인도하지 못하는 병, 그것도 병입니다. 전도하면 교회로 인도해야 됩니다. 둘 다 해야 합니다. 외치는 것도 하고, 교회 인도하는 것도 하고. 둘 다 해야 되겠는데 하나만 하는 것도 병입니다. 그러면 여러 가지 병 가운데 자기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알아야 합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는 것은 네가 나아야 될 자인 줄 아느냐? 고쳐야 될 자인 줄 아느냐? 병을 아느냐? 그 말입니다. 

병을 알았으면 내게 소망을 두라, 내가 너를 고쳐주러 왔다,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라는 것입니다.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이 일어서라고 할 때에 어떻게 하면 됩니까? “예”하고 일어서면 됩니다. 일어서면 쑥 일어서집니다. 힘이 없는 다리에 힘이 생깁니다. 우리가 지금 그 어떤 병이든지 다 걸려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그대로 나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병신 원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가지고 하나님께 데려가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입니다. 며느리 데려올 때 병신 며느리 데려오는 사람 있습니까? 할 수 있으면 고쳐가지고 며느리 데려 오려고 하지, 병신 며느리 데려 오려고 누가 그러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신부인데, 예수님의 신부 데려갈 때에 병신 데려가면 어떻게 합니까? 다 고쳐가지고 데려가야지. 그래서 예수님이 고쳐가지고 데려가시려고 찾아오신 것입니다. 찾아와서 예수님이 네가 병든 상태를 알아라. 낫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라.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어나라 할 때에 “예”하고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예”하고 벌떡 일어서야 됩니다. 그러면 일어서집니다. 하나님이 만능으로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자기의 병을 알아야 되고 또 고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되고, 예수님에게 소망을 걸어야 되고, “예”하고 일어서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어나라고 할 때 “예”하고 일어서는 것만 남았습니다. “앉은뱅이 일어서. 절름발이 일어서. 소경일어서. 혈기마른 사람 일어서. 38년 된 병자 일어서” 다 일어서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 병이 나아서 이제 온전케 됩니다. 
 
3.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 다음에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것은 자리를 두고 가면 다시 와서 눌러 앉을 수 있습니다. 자리를 다 집어 치우고 정돈하고, 다시 와서 누울 수 없게 만들어 놓으란 말입니다. 그리고 걸어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 나은 사람의 생활은 무엇입니까? 병이 나은 사람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나갔는데, 안식일에 병을 고쳤다고 핍박이 들어왔습니다. 핍박을 각오하고 나가야 됩니다. 병 나은 다음에 핍박이 옵니다.
핍박이 올 때에 계속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핍박이 온다고 무서워 하지 않고, ‘나를 고치신 분은 예수다!’라고 계속 증거하는 신앙,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