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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8일 수요일

로마서 3:9-18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다. 이병규목사강해설교 계약신학

하나님 앞에서 의인은 없다
로마서 3:9-18

9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저희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더 나으냐? 결코 그렇지 않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다. 

3:10 이와 같이 기록되어 있다.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3:12 모두가 탈선하여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독설이 가득하다.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며, 

3:16 파멸과 비참함이 그들의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3:18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1.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다

죄인이라는 법적 선언인 ‘원죄

본문 9-10절에,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기록 된 바 의인이 없는데 몇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까?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다 죄인이라고 그랬고, 사람의 의인은 하나님 앞에서는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이사야 64장 6절에,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는데, 인간의 의라는 것은 하나님 앞에 더러운 옷과 같고 의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의는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의 의’는 사람보기에 의 같을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입니다.
예를 들면, 도적질을 해다가 그 도적한 물건을 서로 나눠먹을 때에 양심 똑바로 써서 조금도 불의가 섞이지 않고 공평정대하게 양심 똑바로 써서 나눠가졌다고 합시다. 그렇게 하나 양심 삐뚤게 쓴 것 없이 공평 정대하게 나눠먹었다고 한다면 그게 의 입니까? 그것은 물건 자체가 도적질 한 물건인데, 뭐 아무리 양심 똑바로 써서 나눠도 의가 안 됩니다. 그것은 다 도적질 한 것일 뿐입니다. 사람 하는 것이 그것과 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양심 똑바로 쓰고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그 자체가 도적질 한 것인데 무슨 의가 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다 죄인입니다.
그러면 뭐가 죄입니까? ‘원죄’가 죄입니다. ‘원죄’는 우리 시조 아담이 범죄 할 때에 법정적 선언으로 범죄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다 죄인이 되었습니다. 죄인이라는 법정적 선언을 받았습니다. 아담이 범죄 했고, 죄인이라는 선언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원죄입니다. 

인간의 유전죄

그리고 사람 속에는 부패성이라는 것이 내려왔습니다. 그것이 ‘유전죄’인데, 죄가 사람 속에서 부패성으로 내려오게 되어있기 때문에 사람 속에는 부패성이 다 있습니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악합니다. 다 원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의를 몇 가지 행했다고 해도, 정죄 하에 있는 사람으로서 의를 행한 것입니다. 때문에 결국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범죄를 행하고 감옥에 들어간 죄수가 조금 선한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죄인임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범죄하고 재판을 받아서 감옥에 들어간 이상, 거기서 선한 일하고, 굶주린 자에게 밥을 사주고, 남에게 추울 때 덮을 것을 좀 주었다고 해서, 그것으로 의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인간은 하나님의 원 법정에서 정죄 받은 것이기 때문에 다 죄인입니다. 또한 속에는 부패성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속에 부패성이 있고 속에 도둑놈이 가득한데, 외부적으로 도적질 안 했다고 해서 도적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도적이 아니라고 한다면 속에 있는 도적은 어떻게 합니까? 우리 속의 도적을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십니다. 외부적인 도적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도적도 보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 속에 가득한 더러운 것

세상에는 의인이 없습니다. 점잖은 것 같아도 다 죄인입니다. 점잖은 개가 어디 먼저 올라간다고 했습니까?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사람 속에는 부패성이 다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의인이라고 내놓을 것이 없습니다. 속을 들여다보면 속에 가득한 것이 다 있습니다. 사람 속에 변소 통 같은 것이 몇 가지입니까? 속에 가득한 더러운 것이 21가지나 들어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1장 28-31절에,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 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21가지 더러운 것이 속에 다 있는데 뭘 가지고 의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외부적으로는 의인이라 할 수 있어도, 속에 있는 죄를 하나님께서는 보시기 때문에 그 앞에서 어떻게 의인이 될수 있겠습니까? 옛날 공자도 ‘하루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모든 악이 스스로 일어나느니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 행하는 사람들 같아도 하루라도 선한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면 속에서 모든 악이 스스로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의인이 어디 있습니까? 외부적으로 볼 때에는 괜찮게 선행한 사람이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다 죄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정에 가보면, 벌써 아담이 우리 대표로서 범죄 했기 때문에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고 정죄 받아놓고 있습니다. 그렇게 재판받고 있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법적으로 봤을 때 의인이 하나도 없고, 속을 들여다 볼 때 의인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을 다 행한 사람이 없다

또한 성경을 다 행한 사람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의인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성경을 다 행한 사람 어디 있습니까? 신구약 성경 다 행한 사람 있습니까? 그러니까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하나만 범해도 다 범한 것입니다. 성경을 지킨다고 노력하다가도 다 안 지키고 하나만 범해도 다 범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2장 10절에,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율법을 지키다가 하나만 범해도 다 범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원죄가 있기 때문에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속을 보면 다들 부패성이 있기 때문에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성경대로 다 행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하나만 범해도 성경 다 범한 자가 되니까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바로 찾지 못합니다. 사람이 우상을 찾는다고 했는데, 본문 12절에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한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선이라는 것이 좀 있다고 해도 그것은 다 무슨 옷과 같다고 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더러운 옷과 같다고 했습니다. 

2. 사람 속은 열린 무덤, 입은 독사의 독, 죽이는 발

본문 13절에,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목구멍은 무엇과 같다고 했습니까? 열린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무덤 열어 놓으면 어떻게 됩니까? 썩은 냄새가 풀풀 올라옵니다. 사람 속에는 썩은 것이 가득해서 목구멍만 열면 썩은 게 풀풀 올라옵니다. 목구멍만 열면 썩은 냄새가 그냥 올라오고, 더러운 말들, 더러운 모든 것이 속에서 나옵니다.
생각도 그렇고 혀로는 속이고 간사하며,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해서 “죽여라, 죽여라”하는 독사의 독이 나옵니다. 사람 입이 아주 참 독사와 같습니다. 간사하고 남을 콕콕 쏘고, 칼로 찌르듯 남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말을 하고, 독사의 독이 입에 가득합니다.

본문 14절에,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했는데, 사람 입에 무엇이 가득합니까? 저주와 악독이 속에 가득합니다. 남을 저주하고, 악독을 부립니다. 본문 15절에,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고 했는데, 사람의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고 남을 죽이는데 그저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3. 불신자의 길은 파멸과 고생의 길
 
본문 16절에, “파멸과 고생의 길이 그 길에 있어”라고 했습니다. 사람 즉, 자연인은 파멸과 고생의 길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본문 17-18절에,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이것이 믿지 않는 사람의 길입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파멸밖에 없고, 고생주머니를 차고 가는 것이고, 평강의 길은 알지 못하고, 그저 고생길만 훤한 것입니다.